CAFE

고사성어

불식지무(不識之無)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22.09.08|조회수427 목록 댓글 0

 

불식지무(不識之無)

 

백거이가 7개월 때 알았던 쉬운 두 글자도 모른다는 뜻에서 이 단어는 '글자를 모른다', '무식하다' 등의 뜻을 이르는 말이다.

不 : 아닐 불(一/3)
識 : 알 식(言/12)
之 : 갈 지(丿/3)
無 : 없을 무(灬/8)


한 살짜리 백거이(白居易)도 아는 之(지)와 無(무) 자를 알지 못하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백거이와 관련된 고사로 백거이는 한 살 때 이 두 글자를 알아 보았다고 한다. ① '之'나 '無'같은 간단한 글자도 모른다 ②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③ 일자무식(一字無識)이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불편을 드려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 사과문을 본 누리꾼들이 다투어 항의하는 댓글을 달았다. "심심한 사과? 나는 이것 때문에 더 화나는데",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한데" 등등이었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심심'한 사과의 '심심'이, '할 일이 없어 지루하다'의 뜻으로 잘못 이해할 뿐, 원래 '매우 깊다'의 뜻인 '심심(甚深)'인 줄은 몰랐다.​ '심심(甚深)'은 자주 쓰이던 말로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젊은 세대들의 우리말 독해 수준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뜻을 모르면서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글을 못 읽는 통계상의 문맹률은 1%이지만, 문장 이해가 안 되는 실질적 문맹률은 75%에까지 이른다. 한자는 자기가 모르면 절대 읽을 수 없다. 그래서 최근 우리말의 많은 단어들이 급격히 사어(死語)가 돼버려졌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일반 사회인들이 일상생활하는 데 필요한 단어가 약 4500개 정도였는데, 20년 만에 약 1700개 단어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는 단어를 들으면 "쉬운 우리말을 쓰지, 왜 어려운 말을 씁니까?"라고 불만을 표시하며 자신의 무지를 도리어 변호하려고 한다.

서울의 어떤 회사에서 사원을 뽑으면서 괄호 속에 '중국어 가능자 우대'라는 조건을 걸었다. 합격한 두 사람은 모두 중국 유학생이었다. 한국 젊은이들의 우리말 수준이 중국어 학생에게도 못 미치는 것이다.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어 단어는 한자를 알면 거저 알겠구나' 하는 원리를 터득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꼭 한자로 표기 안 하고 한글로 표기해도 다 안다. '한자 한문이 어렵다'라는 핑계로, 학생들에게 교육을 안 한다. 우리말은 75% 이상이 한자에서 유래된 단어다.

학술용어 등은 거의 99% 한자로 된 단어다. 한자, 한문을 안 배우면 안 되는 문화를 가진 나라인데,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우리 글자가 아니라고 해서 교육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바보로 만들어 평생 괴롭게 만들고 있다.

한자 용어로 가득 찬 의학이나 법률관계 서적이 요즈음 한글로만 돼 있다. 완전히 암호다. 학생들은 하나하나 다 외워야 하니, 그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뜻이 모호해지자 괄호 속에 전부 영어를 집어넣어 놓았다.

당(唐)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갈 지(之)'자와 '없을 무(無)'자를 알았다. 백거이가 7개월 때 알았던 쉬운 두 글자도 모른다는 뜻에서 이 단어는 '글자를 모른다', '무식하다' 등의 뜻이 된다.

 

'심심한 사과' 논란, '쓰는 능력'을 일깨우다

 

읽는 능력과 함께 메시지를 만드는 능력은 문해력을 구성하는 양대 요소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라는 글쓰기 일반 원칙은 여기서 접점을 찾는다.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심심한 사과’를 놓고 새삼 공방이 벌어졌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올린 사과문 한 줄이 발단이 됐다. ‘…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이를 두고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같은 댓글이 달리면서 누리꾼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순우리말 ‘심심하다’(지루하고 재미없다)만 알고 한자어 ‘심심(甚深)하다’(마음의 표현이 깊고 간절하다)는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문해력은 ‘읽는 능력’ 외에 ‘쓰는 능력’ 포함

 

이를 두고 ‘새삼’이라고 한 것은 이런 논란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문해력(文解力)이란 관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발명품’인 한글 덕분에 문자 해독률은 높아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문해력’이란 말 자체도 알아듣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웹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초판(1999년) 때만 해도 이런 말은 없었다. 우리 입에 오르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문해력(literacy)은 한마디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사전에서도 그렇게 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해력이 자칫 ‘읽는 능력’이 다인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문해력을 얘기할 때 대개 독해 수준을 따질 뿐 ‘쓰는 능력’은 간과한다.

 

문해(文解), 즉 ‘글을 풀어내고 깨닫는다’는 것은 읽고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잘 쓰고 다듬는 것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커뮤니케이션 흐름으로 보면, 메시지 작성과 수신이 잘 어우러져 일치하는 상태를 말한다. 

 

발화자는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 딱 들어맞게 메시지를 구성하고, 수신자는 이를 100% 해석해 온전하게 내용을 받아들인다. 이럴 때 ‘커뮤니케이션 성공’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느 한쪽이라도 문해력이 뒤져 오류가 생기면 ‘실패’를 초래한다. 그런데 우리는 문해력을 말하면서 ‘쓰는 능력(메시지 구성)’보다 주로 ‘읽는 능력(독해)’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동안 불거진 문해력 논란을 살펴보면 대개 그런 범주에 속한다.

 

공공언어 영역에선 쉬운 말 우선해 써야

 

지난해 어느 고등학교 수업시간. 교사가 영화 ‘기생충’의 가제(假題)를 설명하면서 '가제'의 뜻을 물어보자 "랍스터(가재) 아닌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현실은 그 일단에 불과하다. 역마살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주인공을 설명할 땐 "역마살은 어느 부위인가요?"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설마 삼겹살과 역마살의 '살'을 같은 말로 본다는 것인가?

 

2020년 언론에서 광복절 휴일을 ‘사흘 연휴’라고 보도하자,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3일 쉬는데 왜 사흘이라고 하냐”는 반응이 나온 것도 같은 종류다. 고유어 '사흘'을 '4흘→4일'로 착각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인터넷을 달군 '금일 공방'도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한 대학에서 과제 제출일이 '금일까지'였는데 이를 금요일로 이해한 학생이 시한에 맞추지 못했다는 ‘웃픈’ 일화다. 금일(今日)은 순우리말로 '오늘'이다.

 

모두 어휘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사례다. 하지만 어휘력 측면만 봐서는 문해력의 절반만 파악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애초 ‘가제’라고 하지 않고 ‘임시 제목’이라고 했으면 오해의 소지는 없었을 것이다. ‘금일’ 대신 ‘오늘’이란 일상의 말을 썼다면 의사소통도 매끄럽고 글도 더 편해지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심심한 사과’도 입말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표현이다. ‘깊은 사과’가 더 좋은 어휘 선택이다.

 

읽는 능력과 함께 메시지를 만드는 능력은 문해력을 구성하는 양대 요소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라는 글쓰기 일반 원칙은 여기서 접점을 찾는다. 그렇다고 ‘심심한 사과’를 버릴 것까지는 없다. 한자어든 문어체든 다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주는 어휘군이다. 다만 공공성, 대중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쉬운 말을 우선으로 쓴다는 원칙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識(알 식, 적을 지, 깃발 치)은 ❶형성문자로 识(식)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戠(시, 식)으로 이루어졌다. 말(言)로 듣고 알게 된다는 뜻으로 알다를 뜻한다. 본디는 戠(시)이라고만 써서 여러 가지 뜻을 나타내었으나 나중에 말뚝은 樴(직)이라 쓰고, 안표(眼標)가 되는 깃발은 幟(치)라고 쓰며, 그 밖에 職(직)과 織(직) 따위의 글자가 생기고, 안표(眼標), 알다란 뜻의 경우는 말씀언변(言)部를 붙여 識(식)이라고 쓴다. ❷회의문자로 識자는 ‘알다’나 ‘지식’, ‘표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識자는 言(말씀 언)자와 戠(찰흙 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戈(창 과)자에 깃발이 걸려있는 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긴 창이나 막대기에 깃발을 매달아 부대나 종족을 구별했었다. 識자에 아직도 ‘깃발’이나 ‘표시’라는 뜻이 남아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識자는 본래 이러한 표식을 그렸던 것이지만 후에 言자와 音(소리 음)자가 차례로 추가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말(言)과 소리(音)를 통해서도 식별한다는 뜻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識(식)은 (1)사물의 시비(是非)를 판단하는 작용 (2)오온(五蘊)의 하나. 사물을 인식, 이해하는 마음의 작용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지식(知識) ③식견(識見) ④친분(親分) 그리고 적을 지의 경우는 ⓐ적다(지) ⓑ기록하다(지) ⓒ표시하다(지) ⓓ표지(標識: 표시나 특징으로 다른 것과 구분함)(지) 그리고 깃발 치의 경우는 ㉠깃발(旗-)(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지(知), 알 인(認)이다. 용례로는 사물을 식별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식견(識見), 사물의 성질이나 종류 따위를 구별함을 식별(識別), 사람이 지니고 있는 학식이나 견문이나 도량을 식량(識量), 학식이나 상식 따위가 있는 사람을 식자(識者), 학식과 사람을 잘 알아보는 감식력을 식감(識鑑), 어떤 의식 작용의 생기와 소실과의 경계를 식역(識閾), 견식이 있고 사물의 도리에 밝음을 식달(識達), 학식과 덕행을 식덕(識德), 견식과 도량을 식도(識度),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을 식력(識力), 마음과 영혼을 식신(識神), 일식 또는 월식 때에 해 또는 달이 제일 많이 가리워진 때를 식심(識心), 어떤 순간에 있어서의 의식 경험의 전 범위를 식야(識野),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을 인식(認識), 생각이 미치어 대상으로서 알거나 깨닫거나 느끼는 것을 의식(意識), 어떤 대상을 연구하거나 배우거나 또는 실천을 통해 얻은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지식(知識), 일반인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보통의 지식을 상식(常識), 양심적인 지식과 판단력을 양식(良識), 감정을 하여 식별함을 감식(鑑識), 많이 알고 있음을 다식(多識), 배우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음을 무식(無識),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이 된다는 뜻으로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됨 또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르는 말을 식자우환(識字憂患), 고무래를 보고도 그것이 고무래 정丁자인 줄 모른다는 뜻으로 글자를 전혀 모름 또는 그러한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목불식정(目不識丁),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박학다식(博學多識), 얼굴을 반만 아는 사이라는 뜻으로 서로 알아는 보지만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 사이를 이르는 말을 반면지식(半面之識), 잠깐 만난 일이 있었을 뿐인데도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반면식(半面識), 한 번 서로 만난 일이 있어 약간 안면이 있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일면식(一面識), 늙은 말이 갈 길을 안다는 뜻으로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음 또는 경험 많은 사람이 갖춘 지혜를 일컫는 말을 노마식도(老馬識途), 얕게 보고 엷게 안다는 뜻으로 천박한 견문과 지식을 이르는 말을 천견박식(淺見薄識),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불학무식(不學無識), 듣고 보고 한 것이 적고 지식이 얕음을 일컫는 말을 과문천식(寡聞淺識), 보고 들은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을 일컫는 말을 다문박식(多聞博識)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無(없을 무)는 ❶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無자는 ‘없다’나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無자는 火(불 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당이나 제사장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춤추다’가 본래의 의미였다. 후에 無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 되면서 후에 여기에 舛(어그러질 천)자를 더한 舞자가 '춤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함을 무사분주(無事奔走), 한울님은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슨 일에나 함부로 다 참여함을 무사불참(無事不參), 즐거움과 편안함에 머물러서 더 뜻 있는 일을 망각한다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아무 탈없이 편안함을 무사태평(無事泰平), 재미나 취미나 없고 메마르다는 무미건조(無味乾燥) 등에 쓰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