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훼상(弗敢毁傷)
감히 (내 몸을) 손상(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우리의 몸은 털끝 하나까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에 함부로 손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弗 : 아니 불(弓/2)
敢 : 감히 감(攵/8)
毁 : 헐 훼(殳/9)
傷 : 상처 상(亻/11)
감히 (내 몸을) 손상(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효경 제1장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그 제자 증삼(曾參)에게 효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이는 공자가 "우리의 몸은 양팔, 양다리를 비롯하여 머리털, 피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결코 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떨침으로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니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고 한데서 유래했다. 몸을 손상하지 않고 소중히 가꾸는 것은 효를 넘어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천부적인 명령일 것이다.
1.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
한국은 전통적으로 생명 중시의 사회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생명을 중시하는 철학과 전통은 사라진 것 같다. 그것은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2017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 내 한국인의 자살률은 세계 1위다. 미국 내 한국인 자살률은 3.7%로 미국 평균 1.68%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는 같은 아시아계인 베트남계 2.0%, 중국계 1.7%보다도 높고, 아메리카 원주민 자살률 3.15%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러한 통계는 17세 이상 청소년, 청장년층, 노인층에 이르기까지 공통으로 높은 수치이며, 특히 노년층의 자살률도 인구 10만 명당 13.9명으로 가장 높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에서의 한국인 자살률은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4.1명으로 OECD 37개국 중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이는 2010년 35명에서 줄기는 했지만 OECD 평균인 11.0명과 비교하면 여전히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렇게 한국인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정신 건강상의 요인, 사회경제적인 요인, 문화적인 요인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한국 사회가 지금 생명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생명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과 물질 중심의 생명 경시 풍조의 만연이 내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살을 죄악시해 왔던 윤리적 전통을 탈기한 것이며 특히, 자살은 가장 큰 불효라는 전통적인 윤리 사상의 뿌리인 효 사상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효 사상은 자기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강조한다. 생명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여 생성된 것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온 것이다. 부모로부터 온 것이기에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다. 다만 그 생명을 잘 보전하고 가꾸어 손상하지 않아야 하며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철학적 입장에서는 무상명령과 같은 것이다.
요즈음 인생에서 자기 결정권을 매우 강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들은 자살도 자기 결정권의 일부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생명에 관한 한 그 누구도 자기 결정권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 생명에 대한 탄생이 자기 결정권에 의한 것이 아니듯, 죽음 또한 자기 결정권이 개입될 수 없는 것이다.
총체적인 생명의 탄생과 보존, 소멸은 천부(天賦)이기 때문에 신의 영역이지 자기 결정권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이 전통적으로 효를 기반한 전통 윤리의 핵심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생존하는 동안 주어진 자기 몸을 함부로 손상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려 노력하여야 한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의 실천이며 인간적인 겸허의 실천이다.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오만한 인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2. 불감훼상(弗敢毁傷)
우리의 몸은 언제나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과 부모에게서 주어진 무상명령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절대로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이점에 대하여 효경 제1장 효경 제1장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서 공자와 그의 제자 증삼(曾參)은 이렇게 대화를 전개하고 있다.
공자께서 모든 일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지내고 있을 때 증자(曾子)가 모시고 그 곁에 앉아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參)아! 선대(先代)의 성왕(聖王)들께서는 지극(至極)한 덕(德)과 사람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중요한 도(道)를 갖추고 계셨으며, 그로써 천하만민(天下萬民)을 가르치고 이끄셨다. 따라서 백성들은 서로 화목하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원망하는 일이 없었다. 너는 그 지극한 덕(德)과 도(道)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느냐?"
증자가 물러나 앉으며 말했다. "삼(參)은 총명하지 못합니다.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저 효(孝)라는 것은 덕(德)의 근본이며, 선왕(先王)들이 가르친 바도 모두 효(孝)에서 비롯된 것이니라. 돌아와 앉아라. 내 네게 이야기를 해주마. 우리의 몸은 양팔과, 양다리와 머리카락과 피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따라서 결코 이를 감히 상하게 하지 하는 것(弗敢毁傷 불감훼상)이 효(孝)의 시작이요. 몸을 세우고 도(道)를 행하여 후세(後世)에 이름을 떨침으로써(立身行道입신행도)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孝)의 끝이니라(夫孝德之本也 敎之所繇生也 復坐 吾 語女 身體髮膚 受于(之)父母 弗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우리가 말하는 불감훼상(弗敢毁傷)은 위와 같은 공자와 그의 제자 증자(曾子; 본명 曾參)의 대화에서 유래하였다. 우리의 몸은 털끝 하나까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에 함부로 손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몸을 손상하지 않고 잘 보전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사실 부모는 가장 먼저 자식의 부귀영화나 성공보다는 안위(安慰)를 걱정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은 뒷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까지 효도로 곡해되어 사회적인 경직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몸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이지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듬지 말라는 것은 절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위의 불감훼상(弗敢毁傷)에서 弗은 不보다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弗敢(불감)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다. 毁傷(훼상)은 毀(헐 훼)와 傷(상처 상)으로 헐어 상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몸과 생명을 손상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부주의로 몸을 상하게 하는 것만 아니라 잘못을 저질러 형벌을 받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몸을 함부로 하여 상하게 하지 말 것이며 주어진 천명을 다하려 노력하라는 것은 장자(莊子)도 강조하고 있다. 장자가 몸을 손상하지 말고 잘 가꾸라는 것은 삶의 자연성에 맡기며 절대로 욕심을 과하게 가지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장자에 의하면 억지로 삶에 집착하거나 삶을 버리고 죽음을 택하는 것은 모두 죄를 낳는 일이 된다. 장자가 강조하는 것은 ‘타고난 그대로의 모습’을 잘 보존하여 지켜가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그 방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을 가지고 한계가 없는 것을 쫓으려고 한다면 위태로울 것이다. 그런데도 앎을 억지로 쫓아가면 결국 위태로울 뿐이다. 선(善)을 행하며 명성을 가까이하지 말고, 악(惡)을 행하며 형벌을 가까이하지 말라. 선악을 떠난 중간의 상태를 기준으로 삼으면 신체를 잘 보존할 수 있고 타고난 본성을 보전할 수 있으며 부모를 제대로 봉양할 수 있고 천수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장자, 내편, 제3편 양생주)"
공자에게서든 장자에게서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몸은 항상 존엄한 것이었다. 특히 근대의 천부인권 사상이 출현하면서 그러한 사상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생명 존중 사상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천부 사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란 무상명령적인 사상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결코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며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갈 근원적인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은 인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자각이다.
3. 불감훼상(弗敢毁傷)하는 삶의 자세
우리의 소중한 몸을 불감훼상(弗敢毁傷)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을 통하여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기 결정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체득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기 결정권은 자기 생명의 영역 밖의 일이다.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명까지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인식에 대한 대단한 오만과 왜곡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에 관한 한 겸허한 마음과 생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셋째, 건강한 몸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올바른 생활 태도와 습관을 가지는 일이다. 몸은 올바른 습관과 태도를 통해 건강이 유지된다. 식생활 습관, 일상 생활 습관 등 모든 영역에서의 올바른 습관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과음으로 몸을 망친다거나 과도한 흡연, 약물 남용 등으로 몸을 망치는 일은 의지의 문제를 넘어선 삶에 대한 오만과 게으름과 왜곡된 가치관의 탓이다.
넷째, 경건한 마음과 생활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강제로 구속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법을 위반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강제 구속이 된다. 욕심이 과하여 문제를 일으켜도 법적 처벌을 받는다. 그러면 몸은 상하게 된다. 그것은 스스로 훼상하는 일이 된다.
불감훼상(弗敢毁傷)에는 효(孝)의 영역을 넘어 전통적인 생명 존중의 사상이 내재 되어 있다. 우리의 몸은 굳이 효도라는 개념을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소중하게 지키고 가꾸어야 하는 천부적인 것이다. 따라서 함부로 훼상해서는 안 된다. 자살률이 세계 1위인 나라, 대한민국에서 지금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불감훼상(弗敢毁傷)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겸허함을 깨달을 때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몸이란?
공자(孔子)가 남긴 효경(孝經)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이 글귀를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우리 몸은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감히 헐고 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 출세하고,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드날림으로써, 부모를 드러내 주는 것이 효의 끝이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이 글귀의 첫 행에 나오는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문자 그대로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 일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몸 전체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주어진 몸을 전체로서 건강하게 잘 보존해 나가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의 시작이요, 효의 첫걸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여 효를 행할 수 있지만, 몸이 조금이라도 상하면 정신도 상하게 되어 효를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가(儒家)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신체를 매우 중시했으며, 신체를 손상시키는 모든 행위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1895년(고종 32년)에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졌을 때를 생각해 보라.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 오두가단 차발불가단)"고 말하면서 저항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잘 알려져 있다.
좀처럼 화장(火葬)을 하지 않으려는 요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시신 부검을 한사코 반대하는 형사사건 피해자 가족들의 태도, 장기 이식이나 장기 기증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생각, 심지어는 헌혈을 꺼리는 일부 사람들의 행동까지도 같은 범주에 넣어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는 이러한 통념과 인습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 단적인 예로 바디 아트(body art)의 한 분야로 여겨지고 있는 피어싱(piercing)과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목적의 미용성형을 들 수 있다. 전자인 피어싱은 신체의 특정 부위-귀나 코뿐 아니라 입술, 혓바닥, 눈썹, 젖가슴, 배꼽, 그 외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분까지-를 뚫어 장식하는 것을 일컬으며, 미용성형은 쌍꺼풀을 만들거나 코를 높이는 등 서구적 외모를 만들기 위해서, 또는 주름살이나 군살 제거를 통해 젊음을 되찾기 위해서 신체의 일부에 칼을 대는 것을 가리킨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신체 손상 행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또 그런 만큼이나 거부감도 약해지고 있다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신체에 구멍을 뚫거나 신체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변형시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또 아름다움을 가꾸는 행위는 최근 몇 년 동안 철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여성학 등의 제(諸) 학문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간의 몸에 대한 거대 담론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몸에 관한 거대 담론은 대부분이 소비문화를 특징으로 갖는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몸이 어떻게 상품화되어 있고, 또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의 몸이 왜곡되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의 몸과 그에 기초한 활동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현실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인간의 몸에 관한 논의가 이렇듯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 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정신을 중시하는 반면에 자연이나 물질 또는 몸과 육체를 열등한 것으로 여기던 근대적인 사유에 대한 반성, 그리고 환경 파괴와 생태계 위기에서 비롯된 자연- 물질계- 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신체 일부를 손상하면서까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미적인 감각을 극대화하려는 요즘 세대의 새로운 경향이 인간의 몸에 대한 이러한 거대 담론의 맥락에 속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몸을 단순히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만큼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몸 관리와 부분적인 변형을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사실상 자연 생태계의 일부인 인간의 몸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통찰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에 대한 이처럼 새로운 이해가 자연 생태계를 과도하게 파괴하거나 착취하지 않는 한편으로, 우주 전체의 기본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연 생태계를 부분적으로만 변형시키고 잘 관리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생태계의 공존 상생을 추구하는 쪽으로 계속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타투는 '타인의 취향'
얼마 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타투 사진이 화제가 됐다.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 6주년을 맞아 원년 멤버 6명 중 스칼렛 요한슨, 크리스 에반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크리스 햄스워스 등 5명이 차례로 어벤저스를 상징하는 타투를 새긴 것이다. 이른바 ‘우정 타투’인 셈이다. 영화 캐릭터로 보자면 아이언맨, 호크아이, 토르, 블랙 위도우, 캡틴 아메리카가 같은 타투를 몸에 새긴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영화 ‘어벤저스’ 멤버들과 함께 타투를 새겼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이라면 과거에 친구들끼리 우정반지 맞춘 기억을 가진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많이 했다. 커플반지, 우정반지 등 액세서리를 통한 공동의 증표는 꽤 오래된 애정표현법 중 하나다. 타투도 이제 마찬가지 의미다. 액세서리나 타투나, 몸에 부착하나 몸에 새기나, 결국 중요한 건 의도와 의미이지 방법과 형태 자체는 아니다.
타투, 다른 말로 문신이다. 여전히 용이나 뱀이 그려진 조직폭력배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타투에 대한 시각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타투는 패션이자 자기 표현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이들이 크게 늘어났다. 사실 서양은 우리보다 타투에 관대하다. 외국의 유명 뮤지션이나 영화배우 등 셀럽들의 타투는 오래전부터 패션으로 받아들였다. 타투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기도 하다. 패션과 액세서리, 메이크업, 스타일링 등이 모두에게 기본이 된 시대, 타투의 확산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에서도 타투 인구를 100만 명 이상으로 본다.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들도 타투를 많이 하는데, 밀레니얼세대 연예인들에겐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다. 예전엔 타투가 있으면 방송 출연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타투를 한 부위에 테이프를 붙이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주 옛날 얘기가 아니다. 불과 수년 전까지도 방송에선 그랬고, 지금도 그런 곳도 있다. 2030들의 타투가 패션이 되어 확산되는데 기성세대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흥미럽게도, 요즘 4050들도 타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대놓고 겉으로 드러나는 부위에는 못해도 발목이나 등, 팔목 등 옷으로 가릴 수 있는 곳에 작은 타투 하나 숨겨둔 4050들이 꽤 생겼다. 심지어 눈썹 반영구 문신을 하는 중년남자들도 증가했다. 눈썹 반영구 문신은 여성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유행이었다. 분명 문신이지만 화장법 차원으로 받아들였기에 좀 더 관대했다. 바로 그 눈썹 문신을 중년 남자들이 하는 것이다.
60대 이상 남자들 사이에서도 눈썹 문신이 확산 중인데, ‘효도문신’이란 이름으로 노년의 아버지를 위해 자식이 손잡고 모시고 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눈썹은 인상을 크게 좌우하는데, 나이가 들어 눈썹이 빠지고 옅어지면서 인상이 바뀌는 중년과 노년 세대에게 눈썹 문신이 선호되고 있어서다.
시작은 눈썹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타투에 대한 기성세대의 태도가 서서히 바뀔 가능성은 크다. 본인이 직접 타투를 하진 않더라도 다른 이의 타투에 대한 시각이 좀 더 관대해지고 개방될 수 있는 것이다. 타투 얘기만 나오면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얘기하는 사람들 꼭 있다. 공자는 2500여 년 전 사람이다. 아마 공자가 지금 살아 있다면 타투를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타투를 두려워하지 말고 공동체와 대화를 위한 기회로 보라고 얘기했다. 사제의 입장에서 타투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물은 신학생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분명 타투의 시초는 부정적인 의미였을지라도, 이젠 더 이상 타투를 부정적으로 보고 선을 긋지 말잔 의미다. 십자가를 타투로 새긴 이들도, 자신의 세례명을 타투로 새기는 이들도 꽤 있다.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자신의 좌우명을 레터링으로 새기는 이들도 늘었다.
과거에 기성세대가 가훈을 집에 붙여두었듯, 요즘 밀레니얼세대는 집 대신 몸에 새긴다. 기성세대에게 내 집 마련이 중요했고 가정과 가족이 중요했듯, 지금 세대에겐 자기 자신과 취향, 개인이 그만큼 중요해진 것이니 가훈이나 타투 레터링이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리도 아니다. 타투가 좋고 나쁘고, 해야 하고 말아야 하고의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타투는 하나의 표현이자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우리는 자신이 안 해본 것을 과도하게 두려워할 때가 있다. 내가 안 하는 것을 하는 이들에게 경계심을 가질 때도 있다. 하지만 문화는 다양성이 중요하고, 개개인의 표현과 선택권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모든 걸 내 기준으로만 두고 섣불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여름이 다가오면 타투를 볼 기회가 많아진다. 솔직히 나는 당신이 타투를 하건 말건 관심 없다. 타인의 타투를 칭찬할 것 아니면 그냥 모른 체, 못 본 체하는 게 더 낫다. 어떤 이유로도 타인의 스타일과 외모, 취향을 함부로 평가하고 지적할 자격은 없다. 그런 평가와 지적은 애정도 관심도 아니다. 시비이자 언어폭력일 수 있다. 우린 결코 미인대회 심사위원이 아니다. 타투는 그냥 패션일 뿐이고, 문화일 뿐이다. 괜히 심각해지지 말자.
▶️ 弗(아닐 불/말 불)은 회의문자로 끈으로 매어도 물건이 뒤로 젖히는 모양에 의하여 돌아온다는 뜻을 나타내며 음(音)을 빌어 不과 같이 ‘아니다, 아니하다’ 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弗(불)은 달러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말다 ③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걱정하다 ④다스리다 ⑤어긋나다 ⑥떨다, 떨어버리다 ⑦빠른 모양, 세차고 성(盛)한 모양 ⑧달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 아닐 미(未), 아닐 비(非),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크게 일어나는 모양을 불불(弗弗), 할로겐 원소의 하나로 불소(弗素), 달러로 미국 돈을 불화(弗貨), 신하가 간하는 말을 임금이 어기지 않고 좇는 일을 불불(弗咈), 남을 위한 동정심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항상 가져야 함을 조차불리(造次弗離),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중인불승(中人弗勝) 등에 쓰인다.
▶️ 敢(감히 감/구태여 감)은 ❶회의문자로 양 손으로 잡는 것을 나타내는 표(손톱조 爪=爫; 손톱部+又)와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의 변형 古(고)로 이루어졌다. 나아가서 '잡다'의 뜻이 전(轉)하여 '감히 ~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敢자는 '감히'나 '함부로', '용맹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敢자를 보면 맹수의 꼬리를 붙잡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용맹함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달다'라는 뜻의 甘(달 감)자가 함께 쓰여 발음역할을 했다. 소전에서는 맹수의 머리와 몸통이 月(육달 월)자와 ⺕(머리 계)로 바뀌면서 지금의 敢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敢자는 본래 '용맹하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히'나 '함부로'라는 뜻이 확대되었다. 그래서 敢(감)은 ①감히 ②구태여 ③함부로 ④감(敢)히 하다, 감행(敢行)하다 ⑤굳세다, 용맹스럽다(勇猛) ⑥결단성(決斷性) 있다 ⑦감히 하지 아니하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랠 용(勇)이다. 용례로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행함을 감행(敢行), 결단하여 실행하는 모양을 감연(敢然), 어떤 일을 과감하게 함을 감위(敢爲),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감사(敢死), 결사적으로 싸움을 감전(敢戰), 과감히 결단함을 감단(敢斷), 과감하게 싸움을 감투(敢鬪), 용감할 만큼 정직함을 감직(敢直), 용단을 내려 결정 지음을 감결(敢決), 감히 청함을 감청(敢請), 감히 범함을 감범(敢犯), 감히 물음을 감문(敢問), 과감하고 용감함을 감용(敢勇), 결단성 있고 용감하게 행동함을 과감(果敢), 씩씩하고 겁이 없으며 기운참을 용감(勇敢), 감히 하지 못함이나 감히 할 수 없음을 불감(不敢), 어찌 감히라는 말을 기감(豈敢), 어찌 감히나 감히 하지 못함을 뜻하는 말을 언감(焉敢), 힘이 부치어 감히 마음 먹지 못함이나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감불생심(敢不生心), 거리낌 없이 말할 만한 처지를 이르는 말을 감언지지(敢言之地), 용감하기 짝이 없다를 이르는 말을 용감무쌍(勇敢無雙), 원망을 사면서도 꿋꿋하게 일을 진행한다를 이르는 말을 임원감위(任怨敢爲), 날카롭고 강한 기질을 이르는 말을 과감지기(果敢之氣),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으랴의 뜻을 이르는 말을 언감생심(焉敢生心), 부모에서 받은 몸을 깨끗하고 온전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감훼상(不敢毁傷), 부모께서 낳아 길러 주신 이 몸을 어찌 감히 훼상할 수 없다는 말을 기감훼상(豈敢毁傷), 어느 누구도 감히 어찌하지 못한다를 이르는 말을 막감수하(莫敢誰何), 맨주먹으로 맹수를 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험을 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불감포호(不敢暴虎) 등에 쓰인다.
▶️ 毁(헐 훼)는 ❶형성문자로 毀(훼)의 속자(俗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갖은등글월문(殳; 치다, 날 없는 창)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쌀을 찧어 정백(精白)하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훼)로 이루어졌다. 본래 쌀을 찧을 때 쓰는 토사(土砂)를 뜻했으나 虧(휴)와 통하여 망그러지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毁자는 '헐다'나 '부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毁자는 臼(절구 구)자와 工(장인 공)자, 殳(몽둥이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工자는 절구의 받침대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장인'이라는 뜻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렇게 절구와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毁자는 절구통을 깨부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절구가 아닌 밥그릇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해석에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毁(훼)는 ①헐다 ②부수다 ③제거하다, 철거하다 ④이지러지다(불쾌한 감정 따위로 얼굴이 일그러지다) ⑤무너지다 ⑥감손(減損)하다 ⑦훼손(毁損)하다 ⑧손상(損傷)하다 ⑨비방(誹謗)하다, 헐뜯다 ⑩몸을 해치다 ⑪젖니를 갈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헐 양(瘍), 부술 쇄(碎),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릴 예(譽)이다. 용례로는 헐거나 깨뜨리어 못 쓰게 만듦을 훼손(毁損), 남을 헐뜯어 비방함을 훼방(毁謗), 절개나 절조를 깨뜨림을 훼절(毁節), 몸에 상처를 냄을 훼상(毁傷), 남의 약점을 들어서 헐뜯어 말함을 훼단(毁短), 일을 짖궃게 훼방함을 훼사(毁事), 헐어서 깨뜨림을 훼괴(毁壞), 남을 헐어서 꾸짖는 말을 훼언(毁言), 헐어서 깨뜨림을 훼파(毁破), 헐거나 부숨 또는 남의 실패를 헐어 말함을 훼패(毁敗), 헐거나 깨뜨리어 버림을 훼기(毁棄), 헐어 망침을 훼멸(毁滅), 몸이 상하도록 죽은 어버이를 사모함을 훼모(毁慕), 남을 비방함과 칭찬함을 훼예(毁譽), 헐뜯고 욕함을 훼욕(毁辱), 다닥쳐서 꺾임을 훼절(毁折), 헐어 내어 걷어 버림을 훼철(毁撤), 어린아이가 배냇니를 갊을 훼치(毁齒), 훼방하여 남을 헐뜯음을 훼자(毁訾), 깨뜨리어 부숨을 훼쇄(毁碎), 너무 슬퍼하여 몸이 바짝 파리하여 짐을 훼척(毁瘠), 남을 깎아 내리고 헐뜯음을 폄훼(貶毁), 깨뜨리어 헐어 버림을 파훼(破毁), 물리쳐 비방함을 배훼(排毁), 때려 부숨을 타훼(打毁), 뒤에서 비방함을 배훼(背毁), 깨뜨려서 헐어 버림을 잔훼(殘毁), 몹시 야윌 만큼 부모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애훼(哀毁), 조정에서 공공연히 비방함을 정훼(廷毁), 침노하여 무너뜨림을 침훼(侵毁), 비방하고 헐뜯음을 저훼(詆毁), 참소하기 위하여 거짓을 꾸미어 남을 헐뜯어 말함을 참훼(讒毁),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남의 나쁜 일이나 추행 등을 드러내어 명예를 손상함을 비훼(誹毁), 시기하여 비난하고 헐뜯음을 시훼(猜毁),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는 뜻으로 국가나 사회 또는 조직이나 집단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을 소훼난파(巢毁卵破), 기와를 헐고 흙손질한 벽에 금을 긋는다는 뜻으로 남의 집에 해를 끼침을 이르는 말을 훼와획만(毁瓦劃墁), 너무 슬퍼하여 몸이 바짝 마르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남을 일컫는 말을 훼척골립(毁瘠骨立), 칭찬하고 비방하는 말과 행동을 일컫는 말을 훼예포폄(毁譽褒貶), 훼방도 없고 칭찬도 없음을 일컫는 말을 무훼무예(無毁無譽), 남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깎는 일을 일컫는 말을 명예훼손(名譽毁損), 부모에서 받은 몸을 깨끗하고 온전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감훼상(不敢毁傷) 등에 쓰인다.
▶️ 傷(상처 상)은 ❶형성문자로 伤(상)의 본자(本字), 伤(상)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상)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부수를 제외한 글자의 본디 글자는 (창)으로 이루어진 상(화살 상처)이다. 사람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傷(상), 마음에 상처 나는 것은 심방변(忄=心, 㣺)部를 쓴다. ❷회의문자로 傷자는 '상처'나 '다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傷자는 人(사람 인)자와 昜(볕 양)자, 矢(화살 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傷자의 상단에 있는 것은 화살을 뜻하는 矢자가 변형된 것이다. 昜(볕 양)자는 태양이 제단 위를 비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볕'이나 '양지'라는 뜻이 있다. 傷자는 본래 화살에 맞아 다친 사람을 뜻했던 글자였다. 화살을 맞아 치명상을 입게 되면 몸에 열이 나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傷자는 화살과 昜자를 결합해 상처로 인해 몸에 열이 나고 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傷(상)은 ①다치다 ②해치다 ③애태우다 ④근심하다 ⑤불쌍히 여기다 ⑥상하다 ⑦상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칠 창(刱)이다. 용례로는 속을 썩임 또는 마음을 상함을 상심(傷心), 받은 은정을 상하게 함을 상은(傷恩), 남의 몸에 상처를 내어 해를 입힘을 상해(傷害), 상처로 인하여 몸이 야위어짐을 상고(傷枯), 마음을 상하게 하고 슬프게 함을 상기(傷氣), 마음이 아프도록 몹시 슬퍼함을 상도(傷悼), 부상과 질병을 상병(傷病), 몹시 분하고 억울하게 여기어 한탄함을 상분(傷憤), 정분을 상함을 상정(傷情), 근심하고 슬퍼함을 상참(傷慘), 마음 아파하고 슬퍼함을 상탄(傷歎), 마음속으로 애통히 여김을 상회(傷懷), 상처가 난 흔적을 상흔(傷痕), 가난에 쪼들려서 마음을 상함을 상빈(傷貧), 죽음을 슬퍼함을 상서(傷逝), 정신을 상함을 상신(傷神), 몸의 다친 자리를 상처(傷處), 활에 놀란 새 즉 활에 상처를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는 뜻으로 한번 놀란 사람이 조그만 일에도 겁을 내어 위축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상궁지조(傷弓之鳥), 살림이 군색하고 가난함에 대한 한탄을 일컫는 말을 상재지탄(傷哉之歎), 풍속을 상하게 하고 썩게 한다는 뜻으로 풍속을 문란하게 함 또는 부패하고 문란한 풍속을 일컫는 말을 상풍패속(傷風敗俗),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밈을 이르는 말을 중상모략(中傷謀略), 부모에서 받은 몸을 깨끗하고 온전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감훼상(不敢毁傷), 부모께서 낳아 길러 주신 이 몸을 어찌 감히 훼상할 수 없다는 말을 기감훼상(豈敢毁傷), 바람에 병들고 더위에 상함이라는 뜻으로 고생스러운 세상살이에 쪼들림이라는 말을 병풍상서(病風傷暑), 효자가 죽은 부모를 너무 슬피 사모하여 병이 나고 혹은 죽는다는 말을 이효상효(以孝傷孝),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마다 슬픔을 자아 내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촉목상심(觸目傷心)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