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지애(手足之愛)
손과 발의 사랑이라는 뜻으로, 손발같은 형제간의 우애를 말한다.
手 : 손 수(手/0)
足 : 발 족(足/0)
之 : 갈 지(丿/3)
愛 : 사랑 애(心/9)
(유의어)
동기지친(同氣之親)
수족지정(手足之情)
양조추리(讓棗推梨)
여족여수(如足如手)
우단사연(藕斷絲連)
자죽분수(煮粥焚鬚)
자형화(紫荊花)
작애분통(灼艾分痛)
장침대금(長枕大衾)
체화지정(체華之情)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제수족(兄弟手足)
형제투금(兄弟投金)
한 부모의 자식이라는 점에 있어서 형제는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상에 태어난 차례가 있다는 점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순서가 있다. 그러므로 가까운 형제간이지만 서로 지켜야 될 예절이 있다. 형제간에 지켜야 할 예절로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른 말씨를 쓰는 것이다. 함부로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공손한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와는 반대로 속에는 공손한 마음이 있으면서 말투가 거칠게 나오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항상 다정한 우애가 우러나오는 부드러운 말을 쓰는 버릇을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형제간의 예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양보이다. 형은 아우가 어리므로 양보하고 아우는 형이 자기보다 윗사람이니까 양보한다면 형제간에 다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다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사회생활도 순조롭게 잘 해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근본 자세가 서 있기 때문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안의편(安義篇)에 이런 말이 나온다.
莊子曰: 兄弟, 爲手足; 夫婦, 爲衣服. 衣服破時, 更得新; 手足斷處, 難可續.
장자왈 형제위수족 부부위의복. 의복파시 갱득신 수족단처 난가속.
장자가 말하기를, "형제는 손발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으니, 의복이 떨어졌을 때는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나 수족이 잘라진 곳은 다시 잇기가 어렵다."
당시에 장자가 부부 사이와 형제 사이의 우열관계를 말하려 했던 의도였는지의 여부를 짐작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비유는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부란 서로의 몸에 맞는 옷일수도 있고 맞지 않는 옷일수도 있어서 서로의 뜻에 따라서 언제든 헤어지고 만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형제란 천륜에 의해서 정해진 한핏줄이고 한몸과 같은 것이다. 결국 장자는 형제간의 우애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나보다는 가족과 집안이 중요시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결혼은 개개인의 결합이라는 의미 만큼이나 집안끼리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짙다.
이런 말이 있다. '그 집안이 잘 될라고 하면 들어오는 사람이 잘 들어와야 된다' 들어오는 사람이란 그 집안에 시집을 오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말이야말로 정말 기막히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말과 앞에서 언급한 장자의 말을 연관시켜서 생각했다. 그 집안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가에 따라 형제간의 우애가 아무리 좋던 집안이라도 풍비박산이 날수 있고 형제간의 우애가 별로였더라도 돈독한 우애를 지니게 되기도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이나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 했던가? 남자들이란 여자에게 빠지면 이성과 판단력을 상실해 버린다. 아무리 명약관화한 일이라도 남자에겐 오직 여자의 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수족인 형제간의 우애 따위는 하찮게 생각하고 결국엔 자신의 수족을 기꺼이 잘라내 버리고 만다. 마치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의복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자신의 수족을 기꺼이 잘라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의복이 몸에 맞지 않는다면 그 의복을 고쳐야 하는 것이지 손발을 잘라내서 의복에 몸을 맞출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몸에 맞지 않은 의복을 입었다면 그 의복을 고쳐야 될 것이고 고쳐질 의복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그 의복을 버려야 된다. 몸에 맞지 않은 의복을 기어코 입어야겠다며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잘라낸다고 과연 그 의복이 딱 맞을까?
사자소학(四字小學)은 주자(朱子)의 소학과 기타 여러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생활한자로 편집한 한자학습의 입문서로써, 옛날에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자의 기초 교과서이다. 사자소학에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 친구간의 우정, 스승 섬기기, 바람직한 대인관계 등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기 위한 기본적인 행동철학이 담겨져 있어, 종합적인 도덕교육과 인성교육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자소학은 단순한 한자 교과서가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않는 시공을 초월한 인성교육의 지침이 될 권위있는 책으로서, 이를 익히다 보면 한자공부 뿐 만 아니라 도덕성 회복과 인간성 복원에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이 사자소학은 비록 옛날에 나오 것이지만, 그 정신은 21세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에 더욱 빛나고 있으며,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바로 이 사자소학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사자소학(四字小學) 형제편(兄弟篇)
兄弟姉妹(형제자매) 同氣而生(동기이생)
兄友弟恭(형우제공) 不敢怨怒(불감원노)
형제와 자매는 같은 기운으로 생긴 것이니, 형은 우애롭고 동생은 공손하여 감히 원망하고 성내지 않아야 한다.
骨肉雖分(골육수분) 本生一氣(본생일기)
形體雖異(형체수이) 素受一血(소수일혈)
뼈와 살이 비록 나뉘어졌으나 본래 하나의 기운에서 생긴 것이며, 형체가 비록 다르지만 본래 하나의 피를 받았다.
比之於木(비지어목) 同根異枝(동근이지)
比之於水(비지어수) 同源異流(동원이류)
이를 나무에 견주어 본다면 뿌리는 같고 가지만 다른 것이며, 물에 견주어 본다면 근원은 같고 흐름이 다른 것이다.
兄弟怡怡(형제이이) 行則雁行(행즉안행)
寢則連衾(침즉련금) 食則同牀(식즉동상)
형제가 화합하여 길을 갈 때 기러기처럼 나란히 가고, 잘 때는 이불을 나란히 하고 먹을 때 밥상을 함께해야 한다.
分毋求多(분무구다) 有無相通(유무상통)
私其衣食(사기의식) 夷狄之徒(이적지도)
나눌 때 많은 것을 구하지 말고 있고 없는 것을 서로 통해야 한다. 자신의 의복과 음식을 사사로이 하면 오랑캐의 무리이다.
兄無衣服(형무의복) 弟必獻之(제필헌지)
弟無飮食(제무음식) 兄必與之(형필여지)
형에게 의복이 없다면 동생은 반드시 그것을 드리고, 아우에게 음식이 없다면 형은 반드시 그것을 주어야 한다.
一杯之水(일배지수) 必分而飮(필분이음)
一粒之食(일립지식) 必分而食(필분이식)
한 잔의 물도 반드시 나누어 마시며, 한 알의 음식도 반드시 나누어 먹어야 한다
兄雖責我(형수책아) 莫敢抗怒(막감항노)
弟雖有過(제수유과) 須勿聲責(수물성책)
형이 비록 나를 꾸짖는다 해도 감히 대항하여 성내지 말며, 동생이 비록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모름지기 소리내어 꾸짖지 말아야 한다.
兄弟有善(형제유선) 必譽于外(필예우외)
兄弟有失(형제유실) 隱而勿揚(은이물양)
형제간에 잘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밖에 칭찬하며, 형제간에 잘못이 있으면 숨기고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兄弟有難(형제유난) 悶而思救(민이사구)
兄能如此(형능여차) 弟亦效之(제역효지)
형제간에 어려움이 있으면 근심하고 구제할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니, 형이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동생 또한 이를 본받아야 한다.
我有歡樂(아유환락) 兄弟亦樂(형제역락)
我有憂患(아유우환) 兄弟亦憂(형제역우)
내게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면 형제간에 또한 즐거운 것이다. 내게 근심이 있다면 형제간에 또한 근심이 있는 것이다.
雖有他親(수유타친) 豈若兄弟(기약형제)
兄弟和睦(형제화목) 父母喜之(부모희지)
비록 다른 친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형제와 같겠는가. 형제간에 화목하면 부모님께서 이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흔히 형제자매의 우애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경쟁은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형제간의 우애는 단순히 피를 나누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형제간의 경쟁을 지혜롭게 다스리고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가족 환경에서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형제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편애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보다 더욱 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해지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비교는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자식이라 할지라도 형제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성격, 취향, 지적능력, 재능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차이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저 다름을 의미한다. 첫째가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데 배해, 둘째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조용하다면 이는 누가 더 뛰어나고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개성을 이해하고 아이들 각각이 가진 좋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모는 첫째의 적극적인 면을 칭찬해 주는 동시에 둘째의 사려 깊음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여줄 줄 알아야 한다.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기 위해서는 서열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이때의 서열은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무조건 떠받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연장자로서 존경과 이득을 얻는 대신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며, 막내는 막내로서의 특권과 면책을 얻는 대신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의무를 해야만 한다. 자장면도 나이 순이다는 말처럼 첫째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더 먼저 먹을 수는 있으나, 아직 어린 동생을 위해 뒷 정리를 도와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동생은 어리기 때문에 형의 도움을 얻고 힘든 일을 덜하게 되는 대신에 형의 말을 존중해야 한다.
아무리 사이좋은 형제라 할지라도 다툼은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만 부모가 어설프게 개입할 경우에는 오히려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부모가 섣불리 판사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아예 상관없는 다른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할 때보다 부모가 나설 때 아이들은 더 발끈하기 쉽다. 아이들 모두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소한 싸움일 경우에는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낫고, 문제가 커질 경우에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 주는 것보다 각각의 입장을 헤아려 준 후 서로 때리거나 욕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 보라고 아이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좋은 형제가 있는 것은 좋은 부모를 만난 것만큼이나 커다란 축복이다. 그리고 이러한 축복은 저절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나누는 기쁨을 가르친 부모님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나라에 형제가 금덩이를 내던진 형제투금(兄弟投金) 설화가 있다. 길을 가던 두 형제가 금덩이를 주워 둘이 나란히 나누어 가졌는데, 강을 건너다가 동생이 자기 몫인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깜짝 놀란 형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전에는 형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였는데 금덩이를 주운 다음에는 욕심이 생겨 형님이 없었으면 내가 다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금덩이가 우리 형제 사이를 갈라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네 말이 옳다'하고 자기도 역시 금덩이를 강에 던져 버렸다는 내용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전답보다, 금덩이보다 더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러나 형제들이 나이가 들어 사이가 멀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재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재산을 사이에 둔 형제간의 다툼은 대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형제간의 결속이 약해지는데 이때는 대부분 자신의 가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병중에 있거나 돌아가셨을 때, 형제간에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은 어렵지 않게 보아 왔을 것이다. 이런 형제는 패륜아로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부모는 자신들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었으며, 형제간에 항상 우애있게 지내라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재산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일까? 이 모두가 욕심이 앞서서 생기는 일이다. 형제투금(兄弟投金)을 한 번 생각해 볼일이다.
형제는 부모의 몸을 나누어 가지고 같은 피를 이어 받은 사람들이다. 어릴 때에는 부모의 크나 큰 사랑을 고루 받고 자랐고, 함께 밥을 먹고 옷은 돌려가며 입었으며 학문은 서로 이어 받고, 언제나 뜻을 같이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도리에 어긋나고 난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형제는 서로 사랑한다. 형과 아우는 세상에서 가장 친하면서도 가장 많이 싸우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거나 형제에게 위험이 있으면 형제는 하나가 되어 뭉쳐서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사람이 있은 후에 남편과 아내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가 있은 후에야 아버지와 자식이 있으며, 아버지와 자식이 있은 후에야 형제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한 집에 이 셋이 가장 친한 사이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 형제로부터 구족(九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세 가지 친함이 바탕이 된다. 이러한 때문에 인륜에서 이 셋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니 이 친함을 더욱 두텁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형제가 장성하여 각각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게 되니, 비록 우애가 돈독하게 두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정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동서(同壻) 사이를 형제에 비교한다면 멀고도 정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멀고 정이 없는 사람들을 친하고 두터운 정을 헤아려 조절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로 인해서 형제 사이의 틈이 벌어지게 되나, 오직 우애와 공경함이 지극히 깊어서 아내가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야만 우애가 약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 혼사에 있어서 사람의 선택은 그 사람이 가진 재물이나 영화로움보다는 인품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사람이 현명하다면, 현재는 비록 가난하고 지위가 낮더라도 미래에 부유하고 귀하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아내의 재물로 부유해지고 아내의 권세로 몸이 귀해진다고 한들, 대장부의 기개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는가?
예로부터 집안의 흥망성쇠는 며느리에게 달려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한 때 며느리의 부귀를 부러워하여 며느리를 삼는다면 며느리는 자신의 집안의 부귀함을 자랑하여 남편을 가볍게 여기고 시부모를 업신여기지 않을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하고 질투하는 습성이 생겨나면 그 집안에는 근심이 끝이 없게 된다.
소경(蘇瓊)이라는 사람이 고을 태수로 부임해 갔을 때, 그 고을에서 형제간의 농토를 서로 가지려고 다투고 있었다. 이 다툼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였다. 그들 형제는 수백명의 증인을 내세워 자기의 주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형제는 원수지간으로 변하고 말았다.
마을 태수 소경은 이를 안타까이 생각하여 두 형제를 불러 '천하에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이고 구하기 쉬운 것이 농토이다. 가령 농토를 얻는다 하더라도 형제의 우의를 잃게 되면 어찌 하겠느냐?'하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자, 모여 있던 증인들 모두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후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서야 이들 형제는 태수의 말이 옳다는 것을 느끼고 농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전처럼 형제가 다정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형제의 우애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오직 우애와 공경함이 지극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형제간의 우애가 지켜짐을 새겨야 한다.
전통사회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긴 것은 인륜이 있었기 때문인바 인륜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전통교육에서 가장 중시한 것도 바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었고, 역대 왕조 대대로 각 방면에서 뛰어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교화에 사용했다.
조선 왕조에서 인륜을 가르치는 교재로 가장 중시했던 것은 세종(世宗) 때 간행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정조(正祖) 때 간행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들 수 있다. 행실도는 글을 잘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림을 그리고 한글로 해석해 놓았는데, 이 책에 조효(趙孝)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동한(東漢) 명제(明帝)때 패(沛)지방에 조효(趙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조예(趙禮)라는 동생과 아주 우애가 깊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해지자 각지에서 도적떼가 출몰해 사회가 혼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한 가닥 광풍이 몰아쳤다.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과연 한 무리 도적떼들이 의추산(宜秋山)을 점거하고 사방으로 다니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백성들은 살기 위해 황급히 도망쳤고 기아에 지친 도적들은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았다. 도적들은 빈집에서 먹을 만한 양식을 찾지 못하자 사람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조예가 도적들에게 잡혀갔다. 조예는 몸이 허약해 비쩍 마른 상태였지만 흉악한 도적들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도적들은 배가 고픈 나머지 조예를 잡아먹기 위해 나무에 묶어 놓고는 그 옆에서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형 조효는 다행히 화를 면한 뒤 동생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조급하게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동생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동생을 잃는다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고 자신도 더 이상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조효는 동생을 살려내기 위해 도적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조효의 순수하고 간절했던 마음이 통했는지 길을 잃지 않고 곧장 도적들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형이 온 것을 본 조예는 놀라서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조효는 동생을 돌볼 겨를도 없이 곧장 도적들에게 달려가 애원했다. '제 동생은 병이 있는데다가 몸이 약해 맛도 별로 없을 겁니다. 부디 제 동생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도적들은 화를 벌컥 내며 '풀어주라고?, 그럼 우린 뭘 먹으란 말이냐?'라고 하자 조효는 '제 동생을 풀어만 주신다면 제가 대신 끓는 물속에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몸도 건강할 뿐만 아니라 살도 통통합니다.' 도적들은 순간적으로 멍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죽기를 자청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예가 옆에서 형의 말을 듣고는 놀라 소리쳤다. '안돼요! 안돼! 붙잡힌 건 나란 말이에요. 우리 형은 아무 잘못 없으니 죽이지 마세요.' 동생의 말을 들은 조효는 달려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비록 흉악하기 그지없는 도적들이지만 어린 형제가 서로 죽기를 다투며 자신을 희생하여 서로를 살리려는 것을 보고는 깊은 감동을 받아 오랫동안 닫혀있던 측은한 마음이 올라와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은 양식을 구해오라는 조건을 달아서 조효 형제를 풀어주었다. 비록 조건을 달긴 했지만 그냥 풀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들이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한 도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효는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방으로 다니며 식량을 구하려 했으나 못 구하자 다시 되돌아가 '약속대로 식량을 구하지 못했으니 저를 삶아 드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도적들은 기이하게 여겨 아무 조건없이 그를 풀어주었다.
나중에 이 일이 황제에게까지 알려져 명제(明帝) 역시 감동받아 조서(詔書)를 내려 조효에게 간의대부(諫議大夫)란 벼슬을 내렸다. 아울러 이들이 덕으로 도적들을 감화시킨 선행을 널리 알려 모든 백성들이 본받게 했다. 속담에 '형제란 수족과 같다'는 말이 있다. 부모라는 한 나무에서 나온 가지와 같다는 뜻이다. 조효 형제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형제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니 실로 그 우애가 깊다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효제(孝悌;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함)란 인(仁)의 근본이라 하여 인을 실천함에 효제(孝悌)를 아주 중시했다.
형제자매는 한 부모로부터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로서, 동일한 성장 체험을 통하여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 성장한다. 형제자매 간에 지켜야 할 행동양식은 가정교육을 통하여 배우고 익히며,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원형이 된다. 형제자매가 우애하며 지내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길이다. 형제자매 관계는 연령의 차이와 이성의 구별이 있다.
형제자매는 자신들이 동일한 부모의 자녀임을 확인하고, 혈연과 공통체험에서 축적된 서로간의 친애감을 바탕으로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부모에 대한 효와 형에 대한 공경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아우는 형을 부모와 같은 존재로 공경하고, 형은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아우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형수와 시동생은 한없이 어려워질 수 있는 관계이지만, 다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관계이기도 하다.
형제자매의 범위를 넓히면 동년배 친척관계에서의 형제자매, 더 확장하면 사회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로까지 확대된다. 건강한 가정은 부부간의 돈독한 사랑에서 출발하고, 건전한 사회는 가정에 바탕을 둔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제16 안의편(安義篇)
명심보감(明心寶鑑) 안의편(安義篇)은 의리 있게 사는 인간관계를 강조하며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01. 부부, 부자, 형제 사이가 인륜의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안의편(安義篇)은 편안히 의리(義理)에 따를 것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의리란 사람과 사람 사이, 예컨대 백성, 부부, 부자, 형제, 친척들 사이의 의리로서, 자연적으로 부여된 인간관계에 지켜야 할 정의로운 이치이다. 각각의 인간관계에 있어, 절도(節度)와 예(禮)를 준수하고, 아울러 존엄성과 화목을 바탕으로 하는 끈끈한 유기적(有機的) 관계를 이 글은 권장한다. "부유해도 가까이하지 않으며 가난해도 멀리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대장부요, 부유하면 나아가고 가난해지면 멀리하는 것, 이는 인간 중에 참으로 소인배(小人輩)이다"라는 말은 인간관계의 아름다운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顔氏家訓曰(안씨가훈왈) 夫有人民而後(부유인민이후)에 有夫婦(유부부)하고 有夫婦而後(유부부이후)에 有父子(유부자)하고 有父子而後(유부자이후)에 有兄弟(유형제)하니 一家之親(일가지친)은 此三者而已矣(차삼자이이의)라 自玆以往(자자이왕)으로 至于九族(지우구족)히 皆本於三親焉(개본어삼친언)이라 故(고)로 於人倫(어인륜)에 爲重也(위중야)니 不可不篤(불가부독)이니라
안씨가훈(顔氏家訓)에 말하였다. "백성이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뒤에 형제가 있나니, 한 집의 친한 관계는 이 세 가지뿐이다. 이로부터 나아가 구족(九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삼친(三親)에 근본한다. 그러므로 인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 돈독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삼친(三親), 곧 부부, 부자, 형제 사이를 인륜의 가장 중요한 관계로 보고, 구족(九族)도 여기서 근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안씨가훈(顔氏家訓)은 북제(北齊)의 안지추(顔之推)가 엮은 20편 2권으로 된 책이다. 입신(立身)․ 치가(治家)의 방법을 말하고, 세속의 잘못을 변정(辨正)하여 자손을 경계한 것이다.
구족(九族)은 고조(高祖), 증조(曾祖), 조(祖), 부(父), 자기(自己), 자(子), 손(孫), 증손(曾孫), 고손(高孫, 현손玄孫)의 직계친(直系親)을 중심으로 하여 방계친(傍系親)으로 고조(高祖)의 사대손(四代孫) 되는 형제(兄弟), 종형제(從兄弟), 재종형제(再從兄弟), 삼종형제(三從兄弟)를 포함하는 동종(同宗) 친족(親族)을 말한다.
02. 형제는 손발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다
莊子曰(장자왈) 兄弟(형제)는 爲手足(위수족)하고 夫婦(부부)는 爲衣服(위의복)이니 衣服破時(의복파시)엔 更得新(갱득신)이어니와 手足斷處(수족단처)엔 難可續(난가속)이니라
장자가 말하였다. "형제는 수족(手足)이 되고 부부는 의복이 되니, 의복이 떨어졌을 때는 새 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거니와, 수족이 잘라진 곳은 잇기가 어렵다."
이 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형제간의 사랑을 수족지애(手足之愛)라 하고, 그 정을 수족지정(手足之情)으로 표현하여 형제를 수족(手足)에 비유하는데, 이 같은 맥락에 이 글은 자칫 부부간의 정에 밀려 소홀히 하기 쉬운 형제애(兄弟愛)를 지적하고 있다.
03. 대장부와 소인배
蘇東坡云(소동파운) 富不親兮貧不疎(부불친혜빈불소)는 此是人間大丈夫(차시인간대장부)요 富則進兮貧則退(부즉진혜빈즉퇴)는 此是人間眞小輩(차시인간진소배)니라
소동파가 말하였다. "부유해도 가까이하지 않으며 가난해도 멀리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대장부요, 부유하면 나아가고 가난해지면 멀리하는 것, 이는 인간 중에 참으로 소인배(小人輩)이다."
어떠한 상황에서 인의(仁義)의 대도(大道)를 굽히지 않는 대장부(大丈夫)는, 인의(仁義)를 지키면서 지배권을 형성할만한 지적 소양과 덕목을 갖춘 이상적 인간형인 군자(君子)와 통한다. 이에 반하여 소인배(小人輩) 또는 소인은 인격적인 면과 사회 계층의 측면에서 모두 뒤떨어진 사람을 말한다. 이 글은 권리(利權)에 따라 휩쓸리지 않는 대장부를 권장하고, 그 반대의 소인배를 꼬집은 것이다.
소동파(蘇東坡) 소식(蘇軾)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현 쓰촨 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 사(詞), 부(賦), 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대장부(大丈夫)는 맹자 등문공장구(滕文公章句) 下 7에 나와 있는 대장부에 대한 정의(正義)이다. "천하의 넓은 거처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를 행하여 뜻을 얻었을 때는 그 도를 백성과 더불어 따르고, 뜻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혼자 그 도를 행하여 부귀도 그의 마음을 음란케 하지 못하고, 빈천도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하지 못하고 위무(威武)도 그의 마음을 굴복시킬 수 없게 되어야 이것을 일컬어 대장부라 한다(孟子曰: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형제 우애, 부모에게 가장 큰 효(孝)
형제자매는 한 부모로부터 생명을 물려받은 한 몸. 동기간에 우애 있게 지내려면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은 세자의 자리가 배다른 동생에게 돌아가자, 이에 분개하여 세자는 물론 또 다른 이복동생까지 죽였다. 이후 태조의 둘째 아들 정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넷째 아들 이방간과 이방원의 세력 다툼으로 이번에는 동복 형제간에 싸움이 일어났다. 전자가 '제1차 왕자의 난', 후자가 '제2차 왕자의 난'이다.
조선 초기에 일어난 이 골육상쟁의 비극은 지금 이 시대에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 40대 그룹 중 지금까지 경영권 분쟁을 겪은 그룹이 18곳으로, 재벌가 '형제의 난'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 돼버렸다. 재벌가가 아닌 일반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재산 분배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동생이 형 부부에게 총기를 겨누는가 하면,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 할 장례식장이 유산을 더 차지하려는 자식들 때문에 난장판이 되곤 한다.
형제간 다툼은 법정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가장이 사망한 후 유산 문제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2005년 158건에서 2014년 811건으로 9년 사이 크게 늘어났다. 개중에는 액수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형제가 돈 문제로 법원까지 들락거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지만, 어떻게든 다른 형제보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심사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내 가족 하나 건사하는 일조차 버겁다 보니 자연스레 사이가 소원해지거나, 소득 수준, 학력의 격차 혹은 부모 봉양 문제로 형제지간에 의절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요즘 세상에 '형제 우애' 하면 고리타분한 말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으니, 시대가 아무리 삭막해졌다고는 하지만 혈육의 정까지 식어지고 있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형제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기 때문에 많은 추억을 공유한다. 같은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다 보니 때로는 경쟁자가 되기도 하고, 터울이 많은 경우 손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부모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시기 질투 미움 사랑 애틋함 섭섭함 고마움 뿌듯함 등 여러 감정을 나눈다. 부모가 내리사랑의 대명사로서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면, 형제자매는 대등한 관계로서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의사소통의 기술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대상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원가족에서 남은 혈육은 형제자매밖에 없다. 인생을 80년으로 가정해 초반, 중반, 후반부로 나누었을 때, 초반부에는 배우자가 없고 후반부에는 부모가 없다. 그러나 형제자매는 인생 전반을 함께한다. 다른 인간 관계는 학교나 직장 등 같은 집단에 속해 있을 때에만 유지되거나 취미, 성격, 관심사 등에 따라 관계가 맺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형제자매 관계는 평생 지속된다. 아옹다옹, 티격태격, 치고받고 다툴지라도 살면서 가장 오랜시간을 함께하는 존재이자, 부모자식만큼 각별한 관계가 형제자매인 것이다.
그렇기에 형제자매 간의 유대감은 남다르다. 함께한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아도 유대감은 깨어지지 않는다.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면만 보아도 그렇다. 전쟁으로 인해 코흘리개 어린 시절에 헤어졌던 형제자매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될 때까지 서로를 잊지 못하고 다시 만나는 이유는 한 배에서 태어난, 그야말로 피를 나눈 사이이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해도 단 하나, 부모님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사랑해야 하는 천륜을 타고난 것이다.
우애 있게 지내려면 존중, 예의는 필수
형제자매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성인기에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동기간 불화를 우울증의 초기 전조증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동기간에 가깝게 지내는 것이 타인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형제자매와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
형제자매는 좋은 기억도 공유하지만 나쁜 기억도 공유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지난날 섭섭했던 기억, 나쁜 기억은 묻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로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어렸을 땐 형도 아우도 철이 없어서 서로 맞먹고 으르렁거리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고 또 각자 가정을 이루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전에는 나의 형, 누나, 오빠, 동생이었어도 결혼 후에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내이자,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명절날 형제가 오랜만에 만나 다투는 경우가 많은데, 다툼을 피하려면 논쟁이 될 만한 정치·사회적인 주제, 서로의 가정 형편, 자녀들의 학업·진로 문제 등 상대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나 지나친 자기 자랑은 삼가야 한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서로의 사정을 고려하여 말하고, 실수나 잘못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자. 동생은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마음으로 형을 존경하며 따르고, 형은 부모를 대신하는 마음으로 동생을 아끼고 사랑할 때 우애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형제 우애와 효도는 불가분의 관계
황금을 버린 형제 이야기가 있다. 의좋은 형제가 길에서 우연히 황금을 주웠는데, 황금으로 인해 욕심이 생기고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자 미련 없이 황금을 버렸다는 내용이다. 정말 훈훈하고 마음 흐뭇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두 형제를 보며 가장 흐뭇해할 사람은 아마도 그들의 부모가 아닐까.
자녀가 아무리 출세가도를 달린다 해도 형제자매와 원수같이 지낸다면 부모 마음은 늘 근심 걱정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생활 형편이 조금 어려워도 자식들이 서로 우애 있게 지낸다면 부모는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다. 부모님께 좋은 옷, 좋은 음식을 해드리는 것도 효도이지만, 형제자매 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 가장 큰 효도다.
형제 우애와 효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다. 율곡 이이는 그의 저서 '격몽요결'에서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 만약 진정으로 부모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그 부모가 낳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성경에서도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 하며 영의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형제 우애를 한가지로 여기며,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하고 형제 우애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러나 우애보다 황금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형제가 남보다 못한 사이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불효 중의 불효다. 자녀들에게는 싸우지 말고 서로 우애 있게 지내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본인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면 진정한 교육이 되겠는가. 부모가 먼저 고모, 이모, 삼촌 등 혈육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이다.
캐나다 맥마스터대학 연구진은, 한 화분에 종자가 다른 식물을 심었을 땐 물과 영양분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뿌리를 마구 뻗었지만 형제격인 식물들을 심었더니 뿌리의 길이를 조절하며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쓰러지는 식물. 나약하고 무능해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자기 형제는 알아보는 것이다.
아담의 장남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성경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살인이 형제간 살인이었으니, 인류 평화를 위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형제 우애가 아닐까. 형제 우애가 효(孝)로 이어지고 효자 치고 나쁜 사람 없으니 형제 우애가 회복된다면 가정에 평화가 깃드는 것은 물론, 전 세계가 평온하고 화목해질 것이다.
퇴계선생이 가르친 우애(友愛)
우애(友愛)는 일반적으로 형제 자매간 또는 친구 사이의 사랑이나 정분을 말하고, 정분은 정에 넘치는 따뜻한 마음 또는 사귀어 정이 든 마음이다. 또한 우애는 형제간의 정애(情愛)에서 나아가서 널리 가족 등 동일 집단을 결합하는 정애, 인간 전체를 하나의 가족으로서 감싸는 인간 상호의 형제애를 의미하며, 박애, 이웃애와 동의어이다. 이런 우애의 관념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근대 이후 가장 명확한 관념으로 제도화된 것은 서구의 경우이다.
우애의 관념이 라틴어의 프르테르니타스(fraternitas)에서 온 프라터니티(fraternity)라는 말로 이용된 것은 12세기 경부터이며, 박애, 인류애( philanthropy)라는 말이 그리스어나 라틴어 필란트로피아(philanthrōpia)의 역어로서 이용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말을 상호 상대에게 좋은 것을 바란다는 점에서 동류의 유덕한 인간끼리의 친애, 정의 뜻으로 이용했는데 거기에는 노예를 제외한 시민 사이에서, 인간은 같은 큰 가족의 일원이라는 관념이 있으며, 이런 인간 동료에 대한 공감적 우애로서의 인간애(philanthrōpia)라 하였다. 이런 인간애는 인류가 온당한 삶을 영위 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므로 우리의 부모들은 자고로 자식들이 우애 있게 지내기를 바라고 또한 그것을 강조해왔다. 그만큼 우애가 가정 화목에 중요한 변인(variables)이 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자녀를 낳지 않거나 한 자녀 가정이 늘고 있어서 형제 자매간에는 우애가 필요 없는 말로 사라질까 걱정되고 있다. 우애는 친구 사이에도 꼭 필요 되는 말이다. 형제가 없어서 평소 서로가 따뜻한 정을 나누며 우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보니 그것을 친구 간에 정분을 나누는데 선행학습의 결핍으로 우애의 전의(transfer)가 일어나지 않아서 비사회적 이기성을 띤 자아가 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사회생활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게 되어 비친화적인 고립된 삶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우애만사성(友愛萬事成)'이란 말까지 등장하여 우애 있게 생활하는 것을 바라고, 또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 왔다.
퇴계 이황은 우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추연 우성전의 아버지 우언겸이 안동판관으로 왔을 때 퇴계가 인사하러 갔다. 퇴계가 인사말을 하지 못하고 애통하게 우는 모습이 마치 초상집 분위기 같았다. 퇴계는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말하기를, "성주(城主, 안동판관)께서 형님을 위해 그토록 보호해 주셨으므로 은혜에 감사하나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이제야 뵙게 됐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형 온계가 평안도 갑산 적소로 귀양 갈 때 금부도사 판관이 우언겸은 억울하게 매를 맞아 걷지를 못하는 것을 보고 온계를 민가에 들어가게 하여 약을 쓰고 쉬게 하였다. 온계는 지금 미아리의 민가에서 운명하였으나 퇴계는 우언겸 도사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위의 다섯째 형 찰방공 징(澄)에게 퇴계가 대하는 예를 보고 추연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선생께서 형님 댁에 가시면 찰방공에게 밥상을 선생님께 먼저 드렸다. 선생은 간절히 사양하시면서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선생은 '저는 형님이 계시는데도 형님한테 자제(子弟)의 도리를 다 못하고 있습니다.'"
퇴계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형제가 일체라고 하지만 마음이 하나가 안 되면 일체가 될 수 없다. 어느 한쪽을 서운하게 하면 평화는 깨어진다. 또 형의 흠은 나의 흠이고 동생의 흠은 나의 흠임을 알아야 한다."
형제가 허물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고 김성일이 퇴계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그때 퇴계의 대답은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성의를 다해서 느끼고 깨닫게 해야 한다. 절대로 의리를 해쳐서는 안 된다. 형을 원망하고 잘못을 들어 나무라도 안 되고, 동생이라고 정면으로 꾸짖어도 안 된다. 형제는 늘 서로 조심하고 자기 체통을 다 지켜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라고 퇴계는 가르쳐 주었다.
퇴계는 김성일이 형제의 허물에 대한 물음의 답으로, 성의를 다해 깨닫게 해야 하고,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말며 서로가 조심하고 체통을 지키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라 하였다. 형의 흠은 나의 흠이고, 동생의 흠이 나의 흠이라는 일체의 마음가짐이며,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말고 먼저 성의를 다해 깨닫게 해야 한다는 퇴계 선생의 교훈적인 우애에 관한 말은 가을 하늘 밝은 달처럼 우러러 명심해야 할 말씀이라 생각된다.
▶️ 手(손 수)는 ❶상형문자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마찬가지로 손의 모양에서 생긴 글자는 又(우; 또), 寸(촌; 치) 따위가 있다. 手(수)는 投(투; 던지다), 招(초; 부르다) 따위 다른 글자의 부분이 되면 재방변(扌=手; 손)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手자는 '손'이나 '재주', '수단', '방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다. 본래 '손'을 뜻하는 글자로는 又(또 우)자가 있었지만, 후에 뜻이 바뀌면서 금문에서는 手자가 '손'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손의 기능이나 역할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재주나 솜씨, 수단 등과 같이 손과 관련된 기술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手자는 운전수(運轉手)나 가수(歌手)와 같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手(수)는 바둑이나 장기 등에서 두는 기술의 뜻으로 ①손 ②재주, 솜씨 ③수단(手段), 방법(方法), 계략(計略) ④사람 ⑤힘, 도움이 될 힘이나 행위 ⑥필적(筆跡) ⑦권한(權限), 권능(權能) ⑧가락, 곡조(曲調) ⑨바둑돌이나 장기 말을 한 번씩 두는 번수 ⑩손수, 스스로 ⑪쥐다, 손으로 잡다 ⑫속박하다, 묶어 두다 ⑬손바닥으로 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발 족(足)이다. 용례로는 죄인의 손목에 걸쳐 채우는 수갑(手匣), 손으로 움직이는 것을 수동(手動),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 방도를 수단(手段), 늘 가지고 다니면서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을 적을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마한 공책을 수첩(手帖), 의료 기계를 써서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을 수술(手術), 정해진 급료 이외에 경우에 따라 덧붙여 주는 보수를 수당(手當), 손과 발 또는 손발과 같이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을 수족(手足), 범인을 잡으려고 수사망을 폄을 수배(手配), 순서나 과정을 수순(手順), 손아래나 부하를 수하(手下), 일을 꾸미고 치러 나가는 재간을 수완(手腕), 자기의 생활이나 체험을 적은 기록을 수기(手記), 어떤 일에 손을 대어 시작함을 착수(着手), 잘못하여 그르침 또는 그 짓을 실수(失手), 기쁨과 찬성과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거나 할 때 두 손뼉을 마주 두드림을 박수(拍手),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수(歌手), 운동이나 기술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을 선수(選手), 얼굴을 씻음을 세수(洗手), 손을 위로 들어 올림을 거수(擧手), 손에 들어옴 또는 손에 넣음을 입수(入手),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鼓手),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를 공수(拱手), 손에 땀을 쥔다는 뜻으로 위험한 광경이나 사건의 추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몹시 긴장됨을 이르는 말을 수악한(手握汗),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을 열심히 함을 이르는 말을 수불석권(手不釋卷), 형제간의 우애를 일컫는 말을 수족지애(手足之愛), 자기에게 직접 딸린 병사 또는 자기의 수족과 같이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수하친병(手下親兵),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뜀을 일컫는 말을 수무족도(手舞足蹈),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손을 묶인 듯이 어찌 할 방책이 없어 꼼짝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뻔히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꼼짝 못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속수무책(束手無策),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을 양수집병(兩手執餠),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녹사수수(鹿死誰手), 쉽게 승부를 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타수가결(唾手可決) 등에 쓰인다.
▶️ 足(발 족, 지나칠 주)은 ❶상형문자로 무릎에서 발끝까지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발을 뜻한다. 한자(漢字)의 부수(部首)로 되어 그 글자가 발에 관한 것임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足자는 ‘발’이나 ‘뿌리’, ‘만족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足자는 止(발 지)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것이다. 그러나 足자에 쓰인 口자는 성(城)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止자가 더해진 足자는 성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실 足자는 正(바를 정)자와 같은 글자였다. 그러나 금문에서부터는 글자가 분리되면서 正자는 ‘바르다’나 ‘정복하다’를 뜻하게 되었고 足자는 단순히 ‘발’과 관련된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足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발의 동작’이나 ‘가다’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足(족, 주)은 소, 돼지, 양, 개 따위 짐승의 무릎 아랫 부분이, 식용(食用)으로 될 때의 일컬음으로 ①발 ②뿌리, 근본(根本) ③산기슭 ④그치다, 머무르다 ⑤가다, 달리다 ⑥넉넉하다, 충족(充足)하다 ⑦족하다, 분수를 지키다 ⑧물리다, 싫증나다 ⑨채우다, 충분(充分)하게 하다 ⑩만족(滿足)하게 여기다 ⑪이루다, 되게 하다 ⑫밟다, 디디다 그리고 ⓐ지나치다(주) ⓑ과도(過度)하다(주) ⓒ더하다, 보태다(주) ⓓ북(식물의 뿌리를 싸고 있는 흙)을 돋우다(도드라지거나 높아지게 하다)(주) ⓔ배양(培養)하다(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두터울 후(厚), 짙을 농(濃), 도타울 돈(敦), 넉넉할 유(裕), 풍년 풍(豊), 발 지(趾), 남을 여(餘), 넉넉할 요(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손 수(手)이다. 용례로는 죄인의 발에 채우는 쇠사슬을 족쇄(足鎖), 발자국으로 걸어오거나 지내 온 자취를 족적(足跡), 발바닥이 부르틈을 족견(足繭), 바쳐야 할 것을 죄다 바침을 족납(足納), 무덤 앞의 상석 밑에 받쳐 놓는 돌을 족석(足石), 발바닥을 때림 또는 그런 형벌을 족장(足杖), 발뒤꿈치로 땅을 눌러 구덩이를 만들고 씨를 심음을 족종(足種), 발을 이루고 있는 뼈를 족골(足骨), 발자국 소리를 족음(足音), 발가락으로 발 앞쪽의 갈라진 부분을 족지(足指), 발의 모양 발의 생김새를 족형(足形), 발로 밟아서 디딤 또는 걸어서 두루 다님을 족답(足踏),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마음에 모자람이 없어 흐뭇함을 만족(滿足), 일정한 분량에 차거나 채움을 충족(充足), 손과 발로 손발과 같이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을 수족(手足), 기관이나 단체 따위가 첫 일을 시작함을 발족(發足), 아주 넉넉함으로 두루 퍼져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음을 흡족(洽足), 매우 넉넉하여서 모자람이 없음을 풍족(豐足),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을 자족(自足),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충분히 갖추어 있음을 구족(具足), 보태서 넉넉하게 함을 보족(補足), 어떤 장소나 자리에 발을 들여 놓음을 측족(廁足),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공경하는 일을 예족(禮足), 머리와 발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수족(首足), 발 가는 대로 걸음을 맡김을 신족(信足), 발을 잘못 디딤을 실족(失足), 발 벗고 뛰어도 따라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능력이나 재질 등의 차이가 두드러짐을 이르는 말을 족탈불급(足脫不及), 흡족하게 아주 넉넉함을 족차족의(足且足矣), 넉넉하여 모자람이 없든지 모자라든지 간에를 족부족간(足不足間), 발이 위에 있다는 뜻으로 사물이 거꾸로 된 것을 이르는 말을 족반거상(足反居上), 발이 땅을 밟지 않는다는 뜻으로 매우 급히 달아남을 이르는 말을 족불리지(足不履地), 자기 자신이나 또는 자기의 행위에 스스로 만족하는 일을 자기만족(自己滿足),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愛(사랑 애)는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디 천천히걸을쇠발(夊; 천천히 걷다)部와 기운기엄(气; 구름 기운)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천천히걸을쇠발(夊)部를 뺀 글자 애(가슴이 가득차다, 남을 사랑하다, 소중히 하다, 아끼다)와 좋아하는 마음에 다가설까 말까(夊) 망설이는 마음의 뜻이 합(合)하여 사랑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愛자는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愛자는 爫(손톱 조)자와 冖(덮을 멱)자, 心(마음 심)자, 夊(천천히 걸을 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금문에 나온 愛자를 보면 단순히 旡(목맬 기)자와 心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이것은 사람의 가슴 부위에 심장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금문에서는 사람의 가슴에 심장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그려져 ‘사랑하다’를 표현했다. 이러한 모습이 변하면서 소전에서는 마치 손으로 심장을 감싸 안은 것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愛(애)는 어떤 명사(名詞)의 밑에 붙어서, 위의 명사의 내용에 대하여 가지는 자애(慈愛), 사랑 등을 나타내는 어미(語尾)의 뜻으로 ①사랑, 자애(慈愛), 인정(人情) ②사랑하는 대상(對象) ③물욕(物慾), 탐욕(貪慾) ④사랑하다 ⑤사모(思慕)하다 ⑥가엾게 여기다 ⑦그리워하다 ⑧소중(所重)히 하다 ⑨친밀(親密)하게 대하다 ⑩역성들다(옳고 그름에는 관계없이 무조건 한쪽 편을 들어 주다) ⑪즐기다 ⑫아끼다, 아깝게 여기다 ⑬몽롱(朦朧)하다, 어렴풋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랑 자(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미울 증(憎), 미워할 오(惡)이다. 용례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사랑하는 마음이나 남녀 사이에 서로 그리워하는 정을 애정(愛情),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애마(愛馬), 사랑하고 좋아함을 애호(愛好), 사랑과 미워함을 애증(愛憎), 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을 애옥(愛玉), 남을 사랑함 또는 열애의 상대자를 애인(愛人),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다루거나 보며 즐기는 것을 애완(愛玩), 아끼고 소중히 다루며 보호함을 애호(愛護), 본이름이 아닌 귀엽게 불리는 이름을 애칭(愛稱), 어떤 사물과 떨어질 수 없게 그것을 사랑하고 아낌을 애착(愛着), 사랑하고 사모함을 애모(愛慕), 좋아하는 사물에 대하여 일어나는 애착심을 애상(愛想), 사랑하는 마음을 애심(愛心), 사랑하고 좋아함을 애요(愛樂), 겨울철의 날이나 날씨 또는 시간을 아낌을 애일(愛日), 사랑하는 아들이나 아들을 사랑함을 애자(愛子), 귀여워 하는 새 또는 새를 귀여워 함을 애조(愛鳥), 사랑하는 아내 또는 아내를 사랑함을 애처(愛妻), 남의 딸의 높임말을 영애(令愛), 형제 사이의 정애 또는 벗 사이의 정분을 우애(友愛), 아쉬움을 무릅쓰고 나누어 줌을 할애(割愛), 모든 것을 널리 평등하게 사랑함을 박애(博愛), 남달리 귀엽게 여겨 사랑함을 총애(寵愛), 남녀 사이에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을 연애(戀愛), 널리 사랑함을 범애(汎愛), 아랫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로운 사랑을 자애(慈愛), 이성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여 상대편도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일을 구애(求愛),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 또는 어진 사랑을 인애(仁愛), 자타나 친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든 세상 사람을 똑같이 사랑함을 겸애(兼愛),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김을 애지중지(愛之重之), 자기의 나라와 겨레를 사랑함을 애국애족(愛國愛族), 남을 자기 몸같이 사랑함을 애인여기(愛人如己), 사람은 덕으로써 사랑해야 함을 애인이덕(愛人以德),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을 애주애인(愛主愛人), 사랑이 지붕 위의 까마귀에까지 미친다는 뜻으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까지도 사랑스럽다는 말을 애급옥오(愛及屋烏), 얼음과 숯이 서로 사랑한다는 뜻으로 세상에 그 예가 도저히 있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빙탄상애(氷炭相愛)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