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사성어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2|조회수1,366 목록 댓글 0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새가 멀리 날고 크게 울 날을 기다려 삼 년 동안이나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큰 뜻을 펼치기 위하여 적절한 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이다.

三 : 석 삼(一/2)
年 : 해 년(干/3)
不 : 아닐 불(一/3)
飛 : 날 비(飛/0)
又 : 또 우(又/0)
不 : 아닐 불(一/3)
鳴 : 울 명(鳥/3)

(유의어)
복룡봉추(伏龍鳳雛)
불비불명(不飛不鳴)
삼년불비(三年不蜚)
삼년불비불명(三年不飛又不鳴).
와룡봉추(臥龍鳳雛)
용구봉추(龍駒鳳雛)
일명경인(一鳴驚人)
자복(雌伏)
퇴장(退藏)

출전 :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여씨춘추(呂氏春秋) 심응람(審應覽)

 

 

새가 멀리 날고 크게 울 날을 기다려 삼 년 동안이나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큰 뜻을 펼치기 위하여 적절한 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과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심응람(審應覽)에 나오는 말이다.


이 성어는 새가 3년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큰 일을 하기 위하여 침착하게 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심응람(審應覽)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초엽, 오패(五覇)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장왕(莊王)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오.” 그 후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은 돌보지 않은 채 주색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오거(伍擧)는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차마 직간할 수가 없어 수수께끼로써 우회적으로 간하기로 했다.

오거왈, “전하,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까 하나이다.” 장왕왈, “어서 내 보시오.” 오거왈,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三年不飛又不鳴).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이겠나이까?” 장왕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오.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제 그대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으나 장왕의 난행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전에 나아가 직간했다. 그러자 장왕은 꾸짖듯이 말했다. “경은 포고문도 못 보았소?” 소종왈, “예, 보았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서 국정에 전념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장왕왈, “알았소. 물러가시오.”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다. 3년동안 장왕이 주색을 가까이했던 것은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 장왕은 국정에 임하자마자 간신을 비롯한 부정부패 관리 등 수백 명에 이르는 반윤리적 공직자를 주살하고 수백명의 충신을 등용했다. 그리고 오거(伍擧)와 소종(蘇從)에게 정치를 맡겨 어지러웠던 나라가 바로잡히자 백성들은 장왕의 멋진 재기를 크게 기뻐했다.

반면에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도 있듯이, 영웅도 때를 잘 만나야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는 제(齊)나라의 위왕(威王)을 예로 든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이 말의 원전은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실려 있는데 초장왕(楚庄王)보다 약 250년 후의 사람인 제위왕(齊威王)때 순우곤(淳于髡)이 위왕에게 한 말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열국지(列國志)에는 신무외(申无畏)가 초장왕(楚莊王)에게 이야기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에는 오자서(伍子胥)의 조부인 오거(伍擧)가 초장왕에게 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기회주고증(史記會注考證)에 의하면 초장왕에 간한 사람은 오거가 아니라 오삼(伍參)이라 했다. 오삼은 오자서(伍子胥)의 증조부로서 초장왕 때 사람이며 그의 조부인 오거는 초장왕의 아들들인 초강왕(楚康王)과 초영왕(楚靈王)때 사람이다. 결론은 기원전 600년 경에 초(楚)나라의 오삼이 초장왕에게 한 말을 약 250년 후의 제나라 사람 순우곤이라는 사람이 알고 제위왕을 설득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느 지역 인사를 쓴다느니 쓰겠다느니 미리 말할 것이 아니라 충신과 간신을 가려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믿고 따를 만한 인재를 찾아 앉히는 일일 것이다. 인생도 살다보면 생각하지 못한 일로 곤란한 지경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런 때도 스스로 삼년불비의 시기라고 생각하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이전보다 더 발전하는 자기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동의어는 재능이 있는 자가 재능을 발휘할 때를 기다린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라는 복룡봉추(伏龍鳳雛), 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라는 와룡봉추(臥龍鳳雛), 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라는 용구봉추(龍駒鳳雛) 등이 있고, 유사한 말로는 자복(雌伏) 등이 있다.

 

 

초 장왕(楚 莊王)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22대 군주로 6대 왕이다. 초나라의 군주 중에서 손꼽히는 명군이며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생애: 재위 초기

출생연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기원전 614년 부친인 초 목왕이 급사하여 아주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왕 때부터 불안정한 왕권과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 어린 나이 때문에 그의 재위는 매우 불안정하였다.

 

거기에 재위 초반에 일어난 홍수, 냉해로 인한 기근까지 발생하여 민심이 흉흉해졌으며, 이를 진정시키려 측근 반숭과 영윤(재상) 자공이 동정을 나간 사이 약오(초나라 제14대 군주) 씨족(대대로 재상을 배출해온 유력 귀족 가문이었다)인 투극이 반란을 일으켜 공자 섭을 내세우고 수도를 장악한 다음, 장왕을 납치하여 자신의 근거지인 상밀로 향했다.

 

그러나 여 땅에서 즙리와 습윤 등의 유인에 빠져 사망하고 장왕은 간신히 풀려난다. 이러한 불안정한 정국이 조금 진정되자 장왕은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조회를 폐지한 채로 매일 사냥과 주연을 벌였다. 몇몇 대신들이 간언을 했지만, 오히려 장왕은 "간언을 하는 자는 대부(大夫)와 상오(常晤)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생활이 3년이나 지속되면서 정계에는 간신들이 들끓게 되었고, 국력은 나날이 쇠락해졌다.

 

초 장왕 3년(기원전 611년), 이렇게 매일 같은 방탕의 끝에, 참다 못한 오거라는 신하가 목숨을 걸고 간언을 올렸다. 오거가 말했다. "언덕의 새 한 마리가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어떤 새입니까(有鳥在於阜 三年不蜚不鳴 是何鳥也)?" 장왕이 말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다니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것이고(三年不蜚 蜚將沖天), 3년 동안 울지 않았다니 울었다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오(三年不鳴 鳴將驚人). 경의 뜻은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시오(舉退矣 吾知之矣)." 

 

그 뒤로 몇 달이 지나도록 장왕은 여전히 향락을 그치지 않았는데, 오거의 친구이자 또 다른 충신인 대부 소종(蘇從)이 찾아와서 목숨을 걸고 간언을 올리자, 장왕은 비로소 잔치상을 치우고 소종과 마주 앉아 국정을 논하고는, 다음날 그동안 아부하던 간신들을 숙청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3년에 걸친 사치와 향락은, 나라가 너무나도 혼탁해 충신과 간신을 구분할 수 없자, 일부러 사치와 향락을 즐겨 옥석을 가리고자 했던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간신들을 처단한 장왕은 오거와 소종에게 국정을 맡기고 이후 신분이 미천하고 촌 사람이었던 손숙오를 영윤(재상)으로 삼고, 토지 개간 및 화폐 개혁을 실시해 국력을 크게 키우며 패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유명한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이다. 그야말로 간지 폭풍의 일화이다.

 

조상들도 저 일화에서 간지 폭풍을 느꼈는지, 이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성어가 상당히 많다. 새가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 삼 년 동안이나 날지 않는다는 삼년불비(三年不飛), 3년간이나 한번도 날지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3년 동안 꼼짝도 않으며 날지도 울지도 않는다는 삼년부동불비불명(三年不動不飛不鳴), 그리고 일비충천(一飛冲天) 일명경인(一鳴驚人) 즉 '한 번 날면 하늘을 찌르고 한 번 울면 사람들이 놀란다'는 뜻이다. 보면 알겠지만 위 일화에서 오거와 장왕의 대화를 한자로 풀어 만들어진 고사성어들이다.

 

생애: 패자를 자처하다

초 장왕 3년(기원전 611년), 용(庸)나라를 정벌하였다. 초 장왕 6년(기원전 608년), 송나라를 공격하여, 전차 200승(대)을 얻었다. 초 장왕 8년(기원전 606년), 장왕은 육혼(陸渾)의 융(戎)을 정벌하고, 낙하(洛河)에 이르자, 주나라의 국경 부근에서 군대를 사열했다.

 

한편 위기를 느낀 주나라는 권력은 없었지만, 종주국이라는 명목은 있는 나라였는데, 주정왕(周定王)은 왕손 만(王孫 滿)을 초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주나라의 사신인 왕손 만이 오자, 초 장왕은 구정의 무게가 얼마나 나가냐고 물었는데(問鼎輕重), 왕손 만은 "천자의 자리는 정(鼎)이 아니라 덕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어찌 정에 대해 물으십니까?"라고 대답했다. 이는 초장왕의 말은 "중원의 패자가 되어 천자의 권위를 내가 가지겠다"라고 떠 본 것이고 사신인 왕손 만은 "아직 덕과 명분이 주나라에 있으니 천자의 권위를 넘보지 말아라"라는 뜻이다.

 

그러자 장왕은 껄껄 웃으며 "우리 초나라는 도검과 갈고리에 붙어 있는 날 만을 꺾어 녹여도 구정을 여럿 주조할 수 있지요"라고 하면서 허울 뿐인 권위 따위는 초나라의 무력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간접적으로 말했는데, 이에 왕손 만은 "먼 옛날 순과 우 임금의 치세가 성하자 정을 만들어 백성으로 하여금 '신령스러운 것과 간악한 것(神奸)'을 구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나라의 걸이 덕을 어지럽히자 정은 은나라로 옮겨갔고, 은나라의 주가 포악하게 굴자 정은 주나라로 옮겨갔습니다. 덕이 있다면 구정은 작아도 무거운 법이고, 간사하고 사악하면 아무리 커도 가벼운 법입니다. 주나라의 덕이 쇠하긴 하였지만 천명은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의 경중을 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고 답했고, 장왕은 이를 듣고 천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버리게 되었다.

 

참고로 구정은 하나라 때 만들어진 솥으로 왕권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국보였는데, 그것의 무게를 물어봤다는 것은 자기가 그 솥의 주인이 되어 초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겠다는 속마음의 선포나 마찬가지였다. 정확히는 장왕의 초나라가 패권국을 넘어서서,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종주국이 되려고 했던 야망을 표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나라 사신은 '아직 덕과 명분은 주나라에게 있다. 이는 초나라의 군사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지적하였고, 초 장왕도 이를 인정하고 물러난 것이다.

 

이러한 발언은 초나라가 주나라가 아닌 상나라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주나라 질서가 아닌 묘족의 영역에 위치한 나라였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즉 상나라 전기 이주민으로 시작한 만큼 주나라보다 기원이 길면서도, 장강에 위치하여 주나라를 벗어나 독자 의식을 가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오나라는 주나라의 중시조의 자손이 세운 나라이니만큼 주나라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져 나름의 명분이 있지만 초나라는 주족이 개척한 제후국이 아니라 상족과 묘족들이 후대에 주나라에게 명목상 복속한 것이기 때문에 주나라에 충성할 이유가 적었다. 다른 제후국들이 현실적인 힘이야 어찌됐든 명목상으로나마 주천자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오나라 역시 시조가 주나라 왕실의 혈통이라 봤기 때문에 일정 부분 주나라의 체면을 지켜준 반면 초나라는 전혀 연관 관계도 없고, 신세진 것도 없었기에 주나라를 경시했다.

 

초나라가 주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였지만, 이는 초나라가 중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지 복속했다고 보기 어려운데, 이는 군주의 명칭을 주나라와 같은 왕을 썼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황제란 단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천자의 공식 작위는 왕이었고, 제후국들은 오등작 명칭을 사용했다. 장왕의 발언은 단순히 그의 야망이라기보다는 초나라의 야망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생애: 투월초의 난

초 장왕 9년(기원전 605년), 투월초(鬬越椒)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어떤 이가 투월초를 모함했는데, 장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던 투월초는 반란을 일으켰다.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의 활 솜씨는 신궁에 가까워서 전쟁 중에 장왕을 두 번이나 활로 위태롭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병사들 사이에선 장왕이 투월초의 화살에 맞아 곧 죽게 된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이 초나라에 보물로 내려오는 화살이 3발이 있는데, 그걸 투월초가 두 발을 훔쳐가서 이제 두 발을 다 썼으니 다시는 장왕의 목숨을 노릴 일이 없다며 병사들을 안심시켰다. 이런 소문을 퍼트린 한편으로 장왕은 계략을 써서 투월초가 활을 쏘는 것을 못하게 막아내고,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이 없게 하여 투월초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기도 했다.

 

이때 투월초와 대결한 사람은 양유기(養由基)였는데, 양유기는 버들잎을 100보 앞에서도 맞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장수였다. 이들은 활쏘기 시합을 하기로 했는데, 먼저 투월초가 3발을 쏘자 양유기는 활로 막고,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화살을 이로 물어서 투월초의 공격을 막아냈고, 그 다음에 한 발로 투월초를 쏴서 반란을 제압했다. 그 뒤에 초 공왕은 양유기가 재주만 믿고 함부로 날뛰니, 활을 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초장왕 13년(기원전 601년), 서(舒)나라를 멸망시켰다.

 

생애: 춘추시대 최대 스캔들

초 장왕 16년(기원전 598년), 진(陳)나라에 하어숙(夏御叔)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하어숙의 부인인 정나라 출신 하희(夏姬)는 미인으로 유명했는데 하어숙이 죽고 난 이후 하희가 정나라의 다른 사람들과 정분이 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진(陳)나라의 군주였던 영공(靈公)까지 하희와 스캔들이 나서 하희의 아들이었던 하징서(夏征舒)가 영공을 살해해버렸다.

 

당시 맹주였던 초 장왕은 신하가 군주를 죽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진(陳)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은 진나라는 성벽이 높고 양식이 많으며 무기가 많아 작은 나라일지라도 쉽게 정벌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장왕은 그 말을 듣고서 진(陳)나라가 그 정도로 성벽이 높으며 양식이 많고 무기가 많다는 것은 백성들을 고달프게 해서 성벽을 높게 하고 양식을 빼앗으며, 무기를 만들게 해 그 원망이 얼마나 클 것이냐라고 하며 진(陳)나라를 쉽게 정벌할 수 있다고 설득하여 진(陳)나라를 공격했다.

 

장왕은 진(陳)군을 공격하여 하징서를 죽여버리고 하희를 초나라로 데려왔다. 하지만 하희가 워낙 미인이라 장왕이 탐을 내 후궁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신하인 신공 무신(申公 巫臣)이 하희는 남자를 망치는 여자라 하면서 장왕이 후궁으로 삼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그러자 장왕은 그 말을 들어 얼마 전에 아내를 잃은 신하에게 하희를 시집보냈다. 하지만 그도 전쟁에서 죽게 되자 하희를 고향인 정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15년 후, 제나라로 가는 사신으로 무신이 자청해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무신이 제나라로 가던 도중 정나라에 있던 하희를 데리고 진(晉)나라로 도망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초 성왕은 무신의 가족을 몰살시켜 버렸다. 신공 무신은 초의 재상인 영윤 자중과 사이가 나빴는데, 영윤 자중이 송나라를 정벌한 공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지를 하사해달라고 했지만 무신이 반대하여 영지를 받지 못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무신의 아들은 죽고 그 재산은 대부들이 나누어 가졌다.

 

잘한 것 하나 없는 무신은 이에 극도로 분노해 양심은 있냐? 진나라 군주에게 본인을 오나라로 보내주면, 오나라를 크게 일으켜 두고두고 초나라의 근심거리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듣보잡 나라였던 오나라는 무신에 의해 중원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류하기 시작했으며 합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오자서와 손무를 장군으로 삼아 대규모 원정군을 조직, 초나라의 수도 영을 점령하고 종묘를 불태우기까지 이른다.

 

고작 몇 사람의 성욕 때문에(...) 여러 가문과 여러 나라가 쑥대밭이 된 나비 효과인 셈이다. 어이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근대에는 나라의 정책결정이 극소수의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기에 개인적 원한으로 전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국익에 별로 도움될 것도 없는데 그냥 순수하게 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릉대전을 일으킨 유비라거나.

 

생애: 지과위무(止戈爲武)와 사망

초 장왕 17년(기원전 597년) 봄, 장왕은 정나라를 공격하여 포위를 하고, 세 달 만에 함락시켰다. 초나라가 정(鄭)나라를 쳐 굴복시키자, 진문공(晉文公) 이후 중원의 패자를 자처하던 진(晉)나라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해 여름에는 필(邲) 땅에서의 전투에서 진나라(晉)를 물리치고, 중원의 패권을 장악했다.

 

초장왕이 정나라 땅 형옹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을 때, 신하 반당이 말했다. “임금께서는 어찌 병장기들을 끌어모아 쌓고 진나라 군의 시신을 거두어서 경관(京觀)[18]을 만들지 않습니까? 신이 듣기로는, 승전을 하면 반드시 자손이 그 무공을 보고 잊지 않도록 한다고 합니다.”

 

이에 초장왕이 말했다. "잘 모르는 소리다. 글자를 봐라. '武(무)'자는 '止(멈출 지)'와 '戈(창 과)'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중략) 무릇 武(무)의 7덕은 금폭(禁暴), 집병(戢兵), 보대(保大), 정공(定功), 안민(安民), 화중(和衆), 풍재(豊財)이다. 그래서 자손이 그 가르침을 기억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두 나라 병사들의 뼈가 들판에 흩어지게 하였으니, 이것은 폭력[暴]이다. 무력을 과시하여 제후들을 위협하였으니, 이것은 병기를 거두지 못한 것[兵不戢]이다. 폭(暴)하고 불집(不戢)하니, 어찌 보대(保大)를 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가 여전히 존재하니, 어찌 정공(定功)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백성들이 바라는 것에 거스른 것이 이미 많거늘, 어찌 안민(安民)했다 할 수 있겠는가. 덕이 없으면서 제후들과 강함을 다투었으니, 무엇으로 화중(和衆)할 수 있겠는가. 남의 위태로움을 나의 이익으로 여기고, 남의 환난을 나의 평안으로 삼아 영화를 누리고자 하니, 어찌 풍재(豊財)를 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무(武)의 7덕 중 나는 한 가지도 가진 게 없는데 무엇을 자손에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저 선대 왕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전쟁에 이겼음을 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무(武)는 나의 공적이 아니다. 옛날의 밝은 왕들은 불경한 자들을 토벌하여 그 우두머리를 죽여 땅에 묻고 흙을 쌓아올려 큰 치욕을 받게 하였다. 그런 일로 경관(京觀)이 만들어져, 불의하고 부정한 무리들을 징계한 것이다. 지금 진나라는 죄로 삼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고, 백성들은 모두 충성을 다해 그 군주의 명에 따라 죽었으니, 내가 어찌 그들을 경관(京觀)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 (춘추좌씨전 中)

 

초장왕은 황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선군의 사당을 지어 전승을 고한 후 초나라로 돌아갔다. 초 장왕 23년(기원전 591년), 장왕이 죽으니, 그의 아들 웅심이 초 공왕이 되었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年(해 년/연, 아첨할 녕/영)은 ❶형성문자로 禾(화)는 벼, 음(音)을 나타내는 人(인) 또는 千(천)은 많음을 나타낸다. 年(연)은 가을에 많은 수확이 있음, 익다, 나중에 벼가 자라는 기간에서 연월(年月)의 해란 뜻으로 쓰고, 익다의 뜻은 稔(임)으로 쓴다. ❷형성문자로 年자는 '해'나 '나이', '새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年자는 干(방패 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年자는 禾(벼 화)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年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자 위로 禾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볏단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볏단을 등에 지고 간다는 것은 수확을 마쳤다는 뜻이다. 농부들에게 한 해의 마무리는 당연히 추수가 끝나는 시점일 것이다. 그래서 年자는 한해가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에서 '해'나 '새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年(년, 녕)은 ①해 ②나이 ③때, 시대(時代) ④새해, 신년 ⑤연령(年齡) ⑥잘 익은 오곡(五穀) ⑦콧마루 ⑧사격의 하나 ⑨사람의 이름 ⑩익다 ⑪오곡(五穀)이 잘 익다 그리고 ⓐ아첨하다(녕)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 동안을 연간(年間), 한해의 마지막 때를 연말(年末), 새해의 첫머리를 연초(年初), 일년 단위로 정하여 지급하는 봉급을 연봉(年俸), 해의 첫머리를 연두(年頭), 십 년 단위로 햇수를 셀 때 쓰는 말을 연대(年代), 사람이나 생물이 세상에 난 뒤에 살아온 횟수로 나이의 높임말을 연세(年歲),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1년에 일정 기간씩 주는 유급 휴가를 연가(年暇), 지나가는 날이나 달이나 해를 연화(年華), 해마다 하게 되어 있는 관례를 연례(年例), 그 해의 안 또는 한 해 동안을 연중(年中), 한 해의 마지막 때를 연모(年暮), 지난해를 작년(昨年),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열 살 안팎의 어린 나이를 충년(沖年), 매해나 하나하나의 모든 해를 매년(每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년(餘年), 곡식이 잘 되고도 잘 여무는 일 또는 그런 해를 풍년(豐年),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사내 아이를 소년(少年), 평상시의 해를 예년(例年), 한 해의 마지막 때와 새해의 첫머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연말연시(年末年始), 한 해 동안 하루도 쉬는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연중무휴(年中無休), 풍년이 들어 백성이 즐거워 함을 이르는 말을 연풍민락(年豐民樂), 세월이 매우 오래다는 말을 연구월심(年久月深), 나이가 젊고 한창 성함을 일컫는 말을 연부역강(年富力强), 나이가 많거니와 덕도 아울러 갖춤을 일컫는 말을 연덕구존(年德俱存),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하청(百年河淸),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뜻으로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함 또는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권불십년(權不十年), 백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라는 뜻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약(百年佳約), 부부가 서로 사이좋고 화락하게 같이 늙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해로(百年偕老),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위를 두고 이르는 말을 백년지객(百年之客),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온 힘을 쏟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냄새가 만 년에까지 남겨진다는 뜻으로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김을 일컫는 말을 유취만년(遺臭萬年)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飛(날 비)는 ❶상형문자로 새가 날개 치며 나는 모양으로, 날다, 날리다, 빠름의 뜻이 있다. 부수(部首)로 쓰일 때는 날비몸이라 한다. ❷상형문자로 飛자는 ‘날다’나 ‘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飛자는 새의 날개와 몸통을 함께 그린 것이다. 飛자는 본래 ‘날다’를 뜻하기 위해 만들었던 非(아닐 비)자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새로이 만들어진 글자이다. 飛자는 새의 날개만을 그렸던 非자와는 달리 새의 몸통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飛(비)는 ①날다 ②지다, 떨어지다 ③오르다 ④빠르다, 빨리 가다 ⑤근거 없는 말이 떠돌다 ⑥튀다, 튀기다 ⑦넘다, 뛰어 넘다 ⑧날리다, 빨리 닿게 하다 ⑨높다 ⑩비방(誹謗)하다 ⑪새, 날짐승 ⑫빨리 달리는 말 ⑬높이 솟아 있는 모양 ⑭무늬 ⑮바둑 행마(行馬)의 한 가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상(翔)이다. 용례로는 어떤 일의 영향이 다른 데까지 번짐을 비화(飛火), 공중으로 날아서 감을 비행(飛行), 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을 비륜(飛輪), 빠른 배를 비가(飛舸), 하늘을 나는 용을 비룡(飛龍), 날아 다니는 새를 비조(飛鳥), 높이 뛰어오르는 것을 비약(飛躍), 날아 오름을 비상(飛上), 공중으로 높이 떠오름을 비등(飛騰), 세차게 흐름을 비류(飛流), 공중을 날아다님을 비상(飛翔), 하늘에 오름을 비승(飛昇), 매우 높게 놓은 다리를 비교(飛橋), 날아서 흩어짐을 비산(飛散), 날아오는 총알을 비환(飛丸), 여름 밤에 불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방을 비아(飛蛾), 날아가 버림을 비거(飛去), 내리는 서리를 비상(飛霜), 바람에 흩날리며 나리는 눈을 비설(飛雪), 용맹스럽고 날래다는 비호(飛虎), 던지는 칼 또는 칼을 던져 맞히는 솜씨를 비도(飛刀), 띄엄띄엄 넘어가면서 읽음을 비독(飛讀), 날아 움직임을 비동(飛動), 일의 첫머리를 비두(飛頭), 힘차고 씩씩하게 뻗어 나아감을 웅비(雄飛), 높이 낢을 고비(高飛), 떼지어 낢을 군비(群飛), 어지럽게 날아다님을 난비(亂飛), 먼 데 있는 것을 잘 보고 잘 듣는 귀와 눈이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의 넓고 날카로움을 이르는 말을 비이장목(飛耳長目), 날쌔게 말에 올라 탐을 비신상마(飛身上馬), 천리까지 날아감을 비우천리(飛于千里), 날아가고 날아옴을 비거비래(飛去飛來), 곧바로 흘러 떨어짐을 비류직하(飛流直下),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비상지원(飛霜之怨), 성인이나 영웅이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 있음을 비유하는 말을 비룡재천(飛龍在天),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구를 만큼 바람이 세차게 붊을 형용하는 말을 비사주석(飛沙走石), 새도 날아 들어가지 못할 만큼 성이나 진지의 방비가 아주 튼튼함을 이르는 말을 비조불입(飛鳥不入) 등에 쓰인다.

▶️ 又(또 우)는 ❶상형문자로 오른손을 본뜬 글자이다. 본디는 오른쪽, 가지다, 돕다, 권(勸)하다를 뜻하였으나 뜻으로 빌어 썼다. 한자(漢字)의 부수(部首)로서는 손의 거동(擧動)에 관한 뜻을 나타내며 음부(音部)가 될 때에는 돕다, 풍부(豐富)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又자는 ‘또’나 ‘다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又자는 사람의 오른손을 그린 것으로 이전에는 ‘손’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중국에서는 오른쪽이 옳고 바름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오른손잡이가 되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又자는 ‘손’을 뜻하다가 후에 ‘또’나 ‘자주’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자주 쓰는 손이라는 뜻인 것이다. 특히 금문에서부터는 손과 관련된 여러 글자가 파생되면서 又자는 손이 아닌 ‘자주 사용한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又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여전히 ‘손’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又(우)는 ①또 ②다시 ③또한, 동시에 ④더욱 ⑤오른손, 오른쪽 ⑥거듭하다, 두 번 하다 ⑦용서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하물며를 이르는 말을 우황(又況), 또 말하기를 또는 다시 이르되를 이르는 말을 우왈(又曰), 의뢰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의뢰함을 우뢰(又賴), 한두 번을 이르는 말을 일우(一又), 더욱이 또는 뿐만 아니라를 이르는 말을 우중지(又重之), 대청 빌면 안방 빌자 한다는 뜻으로 체면없이 이것저것 요구함을 이르는 말을 기차당우차방(旣借堂又借房), 제곱한 수를 또 제곱하여 몇 번이든지 곱한다는 말을 자승우승(自乘又乘), 몇 가지를 겸한 위에 또 더욱 겸한다는 말을 겸지우겸(兼之又兼), 오묘하고 또 오묘하다는 뜻으로 도의 광대 무변함을 찬탄한 말을 현지우현(玄之又玄) 등에 쓰인다.

▶️ 鳴(울 명)은 ❶회의문자로 鸣(명)은 간자(簡字)이다. 鳥(조)는 새의 모양으로, 나중에 꼬리가 긴 새를 鳥(조), 꼬리가 짧은 새를 새추(隹; 새)部라고 구별하였으나 본디는 같은 자형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 것이며 어느 쪽도 뜻에 구별은 없다. 한자의 부수로서는 새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수탉을, 口(구)는 입, 소리로 수탉이 때를 알리는 모양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鳴자는 ‘울다’나 ‘(소리를)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한자를 이해하는 팁 중 하나는 글자 앞에 口(입 구)자가 있으면 대부분이 ‘소리’와 관련된 뜻이라는 점이다. 鳴자가 그러하다. 鳴자 역시 口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것으로 새가 우는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수탉이 운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바로 鳴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鳴자를 보면 口자와 함께 닭 볏이 강조된 수탉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수탉이 鳥자로 표현했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鳴(명)은 ①새가 울다 ②울리다 ③소리를 내다 ④부르다 ⑤말하다, 이야기하다 ⑥이름을 날리다 ⑦놀라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울리어서 진동함을 명동(鳴動), 마음에 느껴 사례함을 명사(鳴謝), 북을 쳐서 울림을 명고(鳴鼓), 산 비둘기를 명구(鳴鳩), 혀를 참을 명설(鳴舌), 종을 쳐서 울림을 명종(鳴鐘), 고운 목소리로 우는 새를 명금(鳴禽), 우는 학을 명학(鳴鶴),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짐을 명향(鳴響), 원통하거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여 나타냄을 명로(鳴露), 코를 곪을 명비(鳴鼻), 큰 소리를 내며 뒤흔든다는 명흔(鳴掀), 갑작스러운 위험이나 두려움 때문에 지르는 외마디 소리를 비명(悲鳴), 남의 생각이나 말에 동감하여 자기도 그와 같이 따르려는 생각을 일으킴을 공명(共鳴), 저절로 소리가 남을 자명(自鳴),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바다에서 들려 오는 먼 우레와 같은 소리를 해명(海鳴), 땅 속의 변화로 산이 울리는 소리를 산명(山鳴), 때를 알리는 종이 울림을 종명(鐘鳴), 사이렌 등을 불어 울림을 취명(吹鳴), 새가 소리를 합하여 욺으로 여러 가지 악기가 조화되어 울림을 화명(和鳴), 외손뼉은 울릴 수 없다는 고장난명(孤掌難鳴),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계명구도(鷄鳴狗盜),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래킨다는 일명경인(一鳴驚人), 새가 삼 년 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 개구리와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댄다는 와명선조(蛙鳴蟬噪) 등에 쓰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