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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살생유택(殺生有擇)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2|조회수995 목록 댓글 0

 

살생유택(殺生有擇)

살생하는 데에 가림이 있다는 뜻으로, 살생을 함부로 하지 말고 가려서 해야한다는 말이다. 화랑의 세속오계 중에 하나이다.

殺 : 죽일 살(殳/6)
生 : 날 생(生/0)
有 : 있을 유(月/2)
擇 : 가릴 택(扌/13)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의 세속오계(世俗五戒)의 하나로 살생하는 데에 가림이 있다는 뜻으로, 살생을 함부로 하지 말고 가려서 해야 함을 이른 말이다. 동양사상 가운데 폭력을 가장 부정하는 사유체계는 불교일 것이다. 불교의 계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율은 ‘살생하지 말라’이며, 이 계율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해당하는 지상명령이다.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스님들은 밥 공양(供養)을 할 때 밥을 다 먹고 나면 바릿대에 물을 붓고 김치 한 조각으로 그릇을 깨끗이 닦은 다음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신다. 그 까닭은 작은 밥알만 걸려도 목이 메어 죽는 아귀(餓鬼)를 위해서이다. 아귀는 욕심쟁이가 죽은 뒤 다시 태어난 존재인데, 배는 남산만 해 항상 배가 고파 쩔쩔매면서도 목구멍이 바늘구멍보다 더 가늘어 물밖에 삼키지 못한다.

 

그 아귀가 절 부엌 하수구 밑에 살기 때문에 절에서는 자갈과 모래를 깔아 물만 걸러져 나가도록 하고 있다. 아귀도 죽이지 않으려는 것이 불교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많은 승려들이 나서서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무기를 들고 싸운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고려 때 거란이나 몽고와 싸웠고 조선시대에는 왜(倭)와 싸웠던 승병들의 일화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의 화랑(花郞)들은 원광법사(圓光法師)로부터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받았으며, 그 가운데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는 계율이 있었다.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택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택(擇)하는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죽일 대상인지 아닌지를 택해야 하고, 열 명을 죽일 것인지 백 명을 죽일 것인지 그 양을 택해야 하며, 산란기에 짐승을 잡지 않는 것처럼 지금이 죽일 때인지 아닌지를 택해야 한다. 하긴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에서 가장 큰 폭력인 살생을 쉽게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택함이 가능할 수 있을까? 가장 근본적으로는 깨닫기 위한 출발인 집착을 버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집착 가운데 가장 큰 집착은 자신에 대한 집착이며 이 집착을 버렸을 때 모든 사물이 가장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즉 내 이해관계를 떠나면 정말 고통받는 이가 누구이며 고통을 주는 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보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깨달으려는 자신의 마음과 고통받는 중생의 마음이 하나임을 알게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여 중생 구제의 차원에서 실천적으로 추구해 간 것이 곧 승병이었으며, 따라서 그 실천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행 과정이기도 하였다.

원광법사는 신라 불교계에 있어서 혜성과 같은 존재로서 온 국민의 숭앙을 받던 분이다. 성(姓)은 박(朴)씨로, 신라 22대 법흥왕(法興王) 19년(532) 서라벌(徐羅伐) 계림부(鷄林府)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천재로서 어렸을 때 유교(儒敎)에 대한 학문을 모두 전수하고 25세 때 중국에 유학했다. 그 당시 중국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로 진패선(陣覇先)이 양(梁)을 대신하여 황제가 되었으니 이 나라가 곧 진(陳)나라다.

원광법사는 중국에 들어가 유교의 지식을 넓히는 동시에 불교도에 호기심을 느끼던 참에 대장엄사(大莊嚴寺)의 민공(閔公)스님의 제자에게서 불교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가 불교의 진리를 듣고 보니 유교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깨닫고 불현듯 출가(出家)하여 중이 되었다.

먼저 소승론(小乘論)인 아비달마론(阿毘達磨論)과 구사론(俱舍論)과 성실론(成實論)을 배우고 연구하였으며 다음에는 대승불교(大乘佛敎)인 십지론(十地論)과 열반경(涅槃經)까지 연구하여 학승(學僧)으로서 불교의 거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치 아니하고 사교입선(捨敎入禪) 즉 교(敎)를 버리고 선(禪)으로 들어서 실지로 마음에 근본 바탕이 무언가를 탐구하는 좌선(坐禪)을 여러 해에 걸쳐 수행하였다. 이 참선(參禪)을 수행할 때는 번화한 곳보다 고적한 곳이라야 된다 하고 호구산(虎丘山)에 들어가서 피나는 정진을 하였다.

원광법사는 이름을 감추고 은거생활을 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명성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방에서 구름같이 모여들어 감로수(甘露水)를 청하였다. 개중에는 세속 신자인 청신사(淸信士)도 많이 모여 법을 청하였으므로 반야경(般若經)을 강설하기도 하였다.

원광법사가 중국에 유학한지 30여년 후인 진(陳) 선재(宣宰) 말년에 양견(楊堅)이 난을 일으켜 국도(國都)에 침입하였다. 이때 원광법사도 그 난리에 휩쓸려서 어느 절에 숨어 있다가 그만 난민에게 붙들려서 꽁꽁 묶이고 말았다. 그런데 적장(敵將)이 멀리서 그 절을 바라보니 그 절에 불이 나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불길이 타오르고 있지 않는가! 적장은 곧 군사들을 불러 그 곳 절의 불을 꺼 주라고 명령했다.

군사들이 한 걸음에 그 곳에 와 보니 한 떼의 난민들이 한 스님을 탑에다 꽁꽁 묶어 놓고 돈을 내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약탈당해 쌀 한톨, 돈 한 푼 있을리 없는 원광은 다만 적묵(寂黙)히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화가 치민 난민들은 그를 죽이려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찰라, 그 스님의 머리 위에 찬란한 불빛이 환하게 서려 원광법사의 주위를 맴돌았다. 무리들은 일변 놀라고 또 밝은 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비틀거라고 있었다.

 

적의 군사들은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겨 달려들어 법사의 결박을 풀고 그를 곧 적장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적장은 원래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므로 그를 후대하여 극진히 보호하였다. 다음 날 수양제(隋煬帝)에게 이 사실을 아뢰자 수양제는 그를 스승으로 모고 각별하게 대우하였다.

원광법사는 누가 보아도 머리가 숙여지고 공경심을 일으키게 할 만한 체격과 학식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키가 7척이나 되고 부리부리한 눈에는 광채가 서려 있고 당당한 풍체는 선풍도골(仙風道骨;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인데, 그가 한번 웃으면 춘풍(春風)에 피어나는 꽃과 같고 한번 노(怒)하면 추상열일(秋霜烈日; 가을에 내리는 찬 서리와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같아서 가히 쳐다볼 수 없는 데다가 학문이 바다와 같이 깊고 조행(操行; 태도와 행실)이 빙설(氷雪)같이 청정(淸淨)하므로 누구든지 그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원광법사는 25세 때 중국에 들어가 69세 때에 본국으로 돌아왔으니 무려 45년간을 중국에서 보낸 셈이다. 원광법사가 귀국하였을 때 진평왕(眞平王)은 그를 국사(國師)로 봉하여 모시고 극진하게 대우하였다.

서라벌(徐羅伐) 모량리(毛良里)에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라는 두 청년이 있었는데 그들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하루는 그들이 원광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저희들이 처세하는데 평생 지켜 행할 수 있는 계명을 하나 얻어서 몸이 다할 때까지 지키고자 하오니 일러 주십시오” 하였다.

원광법사는 말씀하되 "너희가 불교 신자라면 불교 5계를 받았을 줄로 안다. 이것만 잘 지키면 그만이지 이 밖에 더 좋은 것이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들에게 세속 5계(世俗五戒)를 하나 일러 주겠으니 이것을 평생 지키도록 하여라. 이는 내가 스스로 창안한 것인데, ①임금(국가)에 충성을 다할 것이요(사군이충 事君以忠), ②부모에 효도를 다할 것이요(사친이효 事親以孝), ③신의로써 벗을 사귈 것이요(교우이신 交友以信), ④전쟁터에 나아가서는 물러남이 없을 것이요(임전무퇴 臨戰無退), ⑤함부로 살생을 하지 말 것이다(살생유택 殺生有擇)이니라."

이것이 원광법사의 유명한 세속 5계(世俗五戒)로 후에는 화랑도의 근본정신이 된 것이다. 귀산과 추항이라는 두 청년에게 제시했던 이 교훈은 화랑도의 신조로 생각된다.

원광법사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이는 불도를 엄격히 따를 수 없는 세속생활의 처지를 고려하여 제시된 것이므로 승려들이 지켜야 하는 보살계(菩薩戒)와는 달리 세속오계(世俗五戒)라 했다. 이러한 덕목은 원광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충(忠), 효(孝), 신(信) 등을 가르치는 유교 정신과 상치(相値)되지 않도록 불교 정신을 생활에 적용한 교훈이다.

이 중 임전무퇴(臨戰無退)나 살생유택(殺生有擇)은 불교의 윤리관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원광이 중국에서 배웠다고 하는 열반경(涅槃經)에 ‘불법을 수호하는 사람은 칼과 활을 들고 비구를 수호해야 한다’, ‘국왕, 대신, 신자들이 불법을 지키기 위해서 칼과 창을 지니는 것은 결코 파계가 아니다’라고 설한 예가 있어, 세속오계(世俗五戒)도 이에 바탕을 둔 듯하다.

이 세속오계에 대해 다른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나 ‘살생을 하되 가려서 하라’함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라, 이는 매월 6재일에 살생을 하지 말라는 것이니, 6재일이란 매달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을 말하는 것으로 이 날은 모든 천신(天神)들이 모여서 세간의 선악을 검사하는 날이다.

다시 말하면 선행을 행한 자에게는 복을 주고 죄악을 범한 자에게는 죄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봄이나 여름에 죽이지 말 것이니, 이 때는 짐승들이 새끼를 치는 번식기이다. 또는 인축(人畜)에 대하여 피해를 주지 않는 동물은 죽이지 말 것이니 토끼, 다람쥐, 노루, 사슴, 곰, 너구리, 까마귀, 꿩, 비둘기, 까치, 기러기, 학, 제비 등이다.

사람은 원칙적으로 살아있는 것은 죽여서 안 되는 것이지만 적군이 나라를 쳐들어 올 때에는 정당방위로 죽이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전투원인 양민은 죽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일 필요가 없는 것은 죽이지 말고 반드시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쥐, 파리, 독나방 같은 것은 죽여도 무방한 것이다.

원광법사는 경주(慶州) 황룡사(黃龍寺)에서 99세에 조용히 입적하였는데 이때 하늘에서는 풍악소리가 들려오고 방안에는 향기가 풍겼다. 상하 군신과 서민이 애통하는 가운데 국장(國葬)으로 모시게 하여 왕의 장례와 똑같이 치루었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죽은 아기 시체를 원광법사의 무덤 곁에 몰래 묻었더니 그 날 밤에 뇌성벽력이 천지를 흔들고 그 아기의 무덤에 벼락이 떨어지더니 그 시체가 영역 밖으로 날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원광법사의 무덤에 예배 공경하는 사람이 줄을 잇고 부처님과 같이 숭봉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삼국사기 열전 제5 귀산(貴山)

 

살생유택의 의미를 이해하다  

 

貴山等曰, 他則旣受命矣. 所謂殺生有擇, 獨未曉也.

귀산 등이 말하기를, “다른 것은 이미 명을 받은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살생유택(殺生有擇)만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師曰, 六齋日·春夏月不殺, 是擇時也. 不殺使畜, 謂馬·牛·雞·犬. 不殺細物, 謂肉不足一臠. 是擇物也. 如此唯其所用, 不求多殺. 此可謂丗俗之善戒也.

원광법사가 말하기를, “6재일(六齋日)과 봄철과 여름철에는 살생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니, 이것은 때를 가리는 것이다. 부리는 가축을 죽여서는 아니 되니, 말·소·닭·개를 말한다. 작은 동물은 죽이지 않는 것이니, 고기가 한 점도 되지 못하는 것을 말함이다. 이것은 물건을 가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그 쓰이는 것만 필요하니, 많이 죽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세속(世俗)의 좋은 계율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貴山等曰, 自今已後, 奉以周旋, 不敢失墜.

귀산 등이 “지금부터 이후로 받들어 좇아 감히 명을 떨어뜨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註)

●육재일(六齋日):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재계일(齋戒日)이니, 8, 14, 15, 23, 29, 30일이 그것이다. 이 6일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사람의 선악을 엿보는 날이라고 하여 특히 조심한다

●세속(世俗)의 좋은 계율: 살생유택(殺生有擇)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이다. 6재일(齋日)과 봄과 여름에는 살생하지 않으며, 가축이나 작은 생명체를 필요 없이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른다. 한편 이를 오계(五戒) 자체를 총체적으로 설명한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세속오계(世俗五戒)는 글자 그대로 세속적인 계명으로, 대개 유가의 덕목인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에 기초한다. 오계 중 임전무퇴(臨戰無退)는 용(勇)이고, 살생유택(殺生有擇)은 인(仁)이라 할 수 있다. 불가에서는 살생을 10악업(惡業)의 하나로 여겨 엄금(嚴禁)하고 있다. 그러나 세속적인 계명인만큼 살생을 하되, 불가의 속기일(俗忌日)인 6재일에는 하지 말 것과 동물이 번식하는 춘하절에도 하지 말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는 택시(擇時)라 할 수 있다. 또 가축이나 미물을 함부로 죽이지 말 것은 택물(擇物)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6재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가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원광은 유학에도 겸통(兼通)하고 국책(國策)에도 순응하던 고승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세속적인 5계(戒)를 주었던 것이라고 해석된다.

 

 

살생유택(殺生有擇)

 

이 표현은 생명을 죽이는 일조차도 선택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으로, 무조건적인 파괴나 폭력을 경계하며, 생명에 대한 존중과 신중함을 강조합니다. 살생유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특히 생명과 관련된 일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살생유택을 풀이해보면, '殺(살)'은 '죽이다'를, '生(생)'은 '생명'을, '有(유)'는 '있다'를, '擇(택)'은 '선택하다'를 의미합니다. 즉, 생명을 죽이는 일조차도 가려서 선택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는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특히 신중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 표현은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고, 그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며, 언제나 신중하게 행동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살생유택은 우리가 일상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이나 생명과 관련된 경우에 신중함을 가져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인생에서 우리는 때때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직면하게 되며,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그 결정이 미칠 영향을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 사자성어는 우리가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비슷한 사자성어로는 작전유택(擇戰有擇)이 있습니다. 이는 전쟁을 선택할 때에도 신중해야 함을 의미하며, 살생유택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신중함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두 표현 모두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특히 그것이 생명이나 중요한 사안과 관련된 경우에 신중하게 행동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렇다면 살생유택의 교훈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미칠 영향을 깊이 고민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살생유택은 생명을 죽이는 일조차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결정이 동료나 조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둘째, 우리는 생명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그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며, 언제나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살생유택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보호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동물이나 식물을 대할 때도 그 생명을 존중하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더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셋째,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살생유택은 단기적인 이익이나 결과에만 집중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재정적인 투자나 중요한 계약을 체결할 때, 그 결정이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살생유택은 생명을 죽이는 일조차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 뜻으로,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신중하게 행동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살아가야 함을 상기시켜 주는 중요한 사자성어입니다. 여러분이 이 교훈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신중하게 고민하며, 생명을 존중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신중한 판단과 생명에 대한 존중은 우리가 더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 殺(죽일 살/감할 살, 빠를 쇄, 맴 도는 모양 설, 윗사람 죽일 시)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갖은등글월문(殳; 치다, 날 없는 창)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杀(살)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杀(살; 나무와 풀을 베다)와 때려 잡는다는 殳(수)의 뜻이 합(合)하여 죽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殺자는 '죽이다'나 '죽다', '없애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殺자는 杀(죽일 살)자와 殳(몽둥이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杀자는 짐승의 목에 칼이 꽂혀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죽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본래 '죽이다'라는 뜻은 杀자가 먼저 쓰였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殳(몽둥이 수)자가 더해지면서 '죽이다'라는 뜻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殺(살, 쇄, 설, 시)은 ①죽이다 ②죽다 ③없애다 ④지우다 ⑤감하다 ⑥얻다 ⑦어조사(語助辭) 그리고 ⓐ감하다(쇄) ⓑ내리다(쇄) ⓒ덜다(쇄)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쇄) ⓔ빠르다(쇄) ⓕ매우(쇄) ⓖ대단히(쇄) ⓗ맴 도는 모양(설) ⓘ윗사람 죽일(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일 도(屠), 윗사람 죽일 시(弑), 죽일 륙/육(戮), 다 죽일 섬(殲),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살 활(活), 있을 유(有), 날 생(生)이다. 용례로는 남의 생명을 해침을 살해(殺害),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를 입힘을 살상(殺傷), 사람을 죽임을 살인(殺人), 살해를 당함을 피살(被殺),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어서 죽음을 자살(自殺), 있는 것을 아주 없애버림을 말살(抹殺), 때려 죽임을 박살(樸殺), 남에게 당한 죽음을 타살(他殺), 죄다 죽임을 몰살(沒殺), 참혹하게 마구 무찔러 죽임을 학살(虐殺), 보고도 안 본 체, 듣고도 안 들은 체 내버려두고 문제 삼지 않음을 묵살(默殺), 얄망궃고 잔재미가 있는 말씨와 태도를 와살(瓦殺), 낙인을 지워 없앰을 쇄인(殺印), 세차게 몰려듦을 쇄도(殺到), 덜어서 적게 함을 감쇄(減殺), 몹시 괴롭힘을 뇌쇄(惱殺), 수습하여 결말을 지음을 수쇄(收殺), 등급을 아래로 낮춤을 강쇄(降殺), 몹시 놀람을 경쇄(驚殺),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함을 일컫는 말을 살신성인(殺身成仁),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절개를 세움을 일컫는 말을 살신입절(殺身立節),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의 세속오계의 하나로 산 것을 죽일 때는 가려서 죽일 것을 이르는 말을 살생유택(殺生有擇), 죽여도 아깝지 않다는 뜻으로 죄가 매우 무거움을 이르는 말을 살지무석(殺之無惜), 무엇을 트집잡아 사람을 잔인하게 마구 죽이는 변고를 일컫는 말을 살육지변(殺戮之變), 음악에서 곡조가 거세고 급하여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 소리를 일컫는 말을 살벌지성(殺伐之聲), 죽여도 아깝지 않다는 뜻으로 죄가 매우 무거움을 이르는 말을 살지무석(殺之無惜), 무엇을 트집잡아 사람을 잔인하게 마구 죽이는 폐단을 일컫는 말을 살육지폐(殺戮之弊),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 말을 살활지권(殺活之權), 살기가 얼굴에 잔뜩 올라 있음을 이르는 말을 살기등등(殺氣騰騰), 살기가 있어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살기담성(殺氣膽盛),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일컫는 말을 교각살우(矯角殺牛),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간단한 경구나 단어로 사람을 감동시킴 또는 사물의 급소를 찌름의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촌철살인(寸鐵殺人), 자기의 몸에 불을 질러 목숨을 스스로 끊음을 일컫는 말을 분신자살(焚身自殺),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남을 이용하여 사람을 해치는 음험한 수단을 이르는 말을 차도살인(借刀殺人),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뜻으로 거짓말도 되풀이 해 들으면 믿어버리게 된다는 말을 증삼살인(曾參殺人), 사람을 죽이기를 꾀하다가 이루지 못한 행위를 일컫는 말을 모살미수(謀殺未遂), 살리든지 죽이든지 마음대로 함 또는 제 마음대로 날뛰는 것을 이르는 말을 활살자재(活殺自在),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뜻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생살여탈(生殺與奪) 등에 쓰인다.

▶️ 生(날 생)은 ❶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生(생)은 (1)생명(生命) (2)삶 (3)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흔히 편지에 씀 등의 뜻으로 ①나다 ②낳다 ③살다 ④기르다 ⑤서투르다 ⑥싱싱하다 ⑦만들다 ⑧백성(百姓) ⑨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⑩자기의 겸칭 ⑪사람 ⑫날(익지 않음) ⑬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 어느 곳 또는 세상에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것을 발생(發生),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 사람이 태어남을 탄생(誕生),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일단 못 쓰게 된 것을 손질하여 다시 쓰게 됨 또는 죄를 뉘우치고 마음이 새로워짐을 갱생(更生), 다시 살아나는 것을 회생(回生),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날것과 찬 것을 생랭지물(生冷之物),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생구불망(生口不網),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생기사귀(生寄死歸),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생사고락(生死苦樂),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생살여탈(生殺與奪),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등에 쓰인다.

▶️ 有(있을 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 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𠂇(우; 又의 변형)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有자는 ‘있다’, ‘존재하다’,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有자는 又(또 우)자와 月(육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月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다. 有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손으로 고기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내가 고기(肉)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有자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져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有(유)는 (1)있는 것. 존재하는 것 (2)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소유 (3)또의 뜻 (4)미(迷)로서의 존재. 십이 인연(十二因緣)의 하나 (5)존재(存在)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②존재하다 ③가지다, 소지하다 ④독차지하다 ⑤많다, 넉넉하다 ⑥친하게 지내다 ⑦알다 ⑧소유(所有) ⑨자재(資財), 소유물(所有物) ⑩경역(境域: 경계 안의 지역) ⑪어조사 ⑫혹, 또 ⑬어떤 ⑭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존(存)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유명(有名), 효력이나 효과가 있음을 유효(有效), 이익이 있음이나 이로움을 유리(有利), 소용이 됨이나 이용할 데가 있음을 유용(有用), 해가 있음을 유해(有害),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세력이 있음을 유력(有力), 죄가 있음을 유죄(有罪),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있음과 없음을 유무(有無), 여럿 중에 특히 두드러짐을 유표(有表), 간직하고 있음을 보유(保有), 가지고 있음을 소유(所有),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공동으로 소유함을 공유(共有),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을 미증유(未曾有),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계란유골(鷄卵有骨), 웃음 속에 칼이 들어 있다는 소중유검(笑中有劍),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유구무언(有口無言) 등에 쓰인다.

▶️ 擇(가릴 택, 사람 이름 역)은 ❶형성문자로 択(택), 择(택)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나누다의 뜻을 가지는 글자 睪(역, 택)으로 이루어졌다. 손으로 가려 뽑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擇자는 '가리다'나 '분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가리다'라는 것은 사물을 구별한다는 뜻이다. 擇자는 手(손 수)자와 睪(엿볼 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睪자는 죄수를 눈으로 감시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죄수를 감시하는 모습을 그린 睪자에 手자가 더해진 擇자는 잡혀 온 죄수가 정말로 죄를 지었는지를 판가름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擇자는 '가리다'라는 뜻 외에도 '구별하다'나 '선택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擇(택, 역)은 ①가리다, 분간(分揀)하다 ②고르다 ③구별하다 ④뽑다 ⑤선택하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릴 간(揀), 가릴 간(柬), 가릴 선(選)이다. 용례로는 많은 가운데서 뽑아냄을 택발(擇拔), 좋은 땅을 고름을 택지(擇地), 좋은 날짜를 고름을 택일(擇日), 하나를 고름 또는 좋은 날을 가림을 택일(擇一), 좋은 날을 가려서 고름을 택길(擇吉), 벗을 가리어서 사귐을 택교(擇交), 짝을 고름이나 배필을 고름을 택우(擇偶), 보다 좋은 것을 선택함을 택량(擇良), 나무를 골라 가리어서 벌채함을 택벌(擇伐), 며느리감을 고름이나 아내를 고름을 택부(擇婦), 여럿 가운데서 골라 뽑음을 선택(選擇), 골라서 가려 냄이나 가려서 뽑음을 채택(採擇), 여럿 중에서 골라냄을 간택(簡擇), 분간하여 고름을 간택(揀擇), 도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을 결택(決擇), 매우 정밀하게 고르는 일을 극택(極擇), 특별히 가려 뽑음을 별택(別擇), 삼국 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의 세속오계의 하나로 산 것을 죽일 때는 가려서 죽일 것을 이르는 말을 살생유택(殺生有擇), 글씨를 잘 쓰는 이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일에 능한 사람은 도구를 탓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둘 중에서 하나를 가림을 일컫는 말을 양자택일(兩者擇一), 굶주린 사람은 먹을 것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빈곤한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은혜에도 감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기불택식(飢不擇食),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는 뜻으로 어진 사람은 훌륭한 임금을 가려 섬김을 이르는 말을 양금택목(良禽擇木),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골라잡음을 이르는 말을 취사선택(取捨選擇), 말을 삼가지 아니하고 함부로 한다는 말을 어불택발(語不擇發), 말이 모두 법에 맞아 골라 낼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망유택언(罔有擇言), 한 마디도 가려서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을 구무택언(口無擇言)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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