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社稷)
토지신(土地神)과 곡식신(穀食神)이라는 뜻으로서, 옛날에 임금이 국가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사직단(社稷壇)에서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므로 사직은 국가의 기반 또는 국가라는 뜻으로 변했다.
社 : 땅신 사(礻/4)
稷 : 곡식 신 직(禾/10)
사직(社稷)이란 한국과 중국에서 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국토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神)인 직(稷)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옛날 군주가 되는 사람은 이 두 신(神)에세 제(祭)를 올렸으므로 사직(社稷)이라는 말이 국가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나라 또는 조정, 종묘사직을 뜻하기도 한다.
백성은 땅(土)과 곡식(穀食)이 없으면 살 수 없으므로 사직(社稷)은 풍흉(豊凶)과 국가의 운명을 관장한다고 믿어 나라를 창건한 자는 제일 먼저 왕가(王家)의 선조(先祖)를 받드는 종묘(宗廟)와 더불어 사직단(社稷壇)을 지어서 백성을 위하여 사직(社稷)에게 복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사(社)는 본래 중국에서 일정한 지역의 혈족집단이 지낸 중심 제사(祭祀)의 대상인 것으로 보이나, 혈연사회가 붕괴하면서 토지신(土地神), 농업신(農業神)으로서 받들고, 여기에 곡물신(穀物神)인 직(稷)을 합하여 사직(社稷)이라 하였다.
특히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 사(社)는 서민집단의 한 단위로서도 존재하여, 함경도(咸鏡道) 지방에 특히 많았던 사(社)는 현(縣)의 아래 행정구역으로서, 본래는 제례집단(祭禮集團)의 단위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 천(天), 지(地), 인(人) 사상이 생기면서 사(社)와 직(稷)은 하나로 합하여 토지(土地), 곡물(穀物)을 관장(管掌)하는 지신(地神)으로 받들어 이로부터 천자(天子)가 주재하는 국가적 제사(祭祀)가 되었다.
사직(社稷)을 받드는 제사는 고구려(高句麗) 고국양왕(故國壤王) 때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와 391년에 국사(國社; 社稷)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新羅)에서는 783년(선덕왕 4)에 처음으로 사직단(社稷壇)을 세웠으며, 고려(高麗)는 991년(성종 10)에 사직단(社稷壇)을 세워 사직(社稷)에 제사하였다.
조선(朝鮮)의 태조(太祖)는 개국(開國)하여 한양(漢陽)으로 천도(遷都)하면서 1395년(태조 4) 경복궁(景福宮), 종묘(宗廟)와 더불어 가장 먼저 사직단(社稷壇)을 건립하여 국가의 정신적인 지주(地主)로 삼았다.
나라가 망하면 종묘사직(宗廟社稷)이 없어지므로 조선시대에도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종묘사직(宗廟社稷)이 망한다는 말로 비유할 만큼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사직(社稷)의 제례(祭禮)로는 중춘(仲春)·중추(仲秋)·납일(臘日)의 대향사(大享祀)와 정월(正月)의 기곡제(祈穀祭), 가뭄 때의 기우제(祈雨祭)가 있었는데 대향사(大享祀) 때는 국가와 민생(民生)의 안정(安定)을 기원(祈願)하였다.
영화(映畵)나 드라마 등에서 옛 왕조시대(王朝時代)를 보노라면 왕(王)이나 중신(重臣)들이 수시로 종묘사직(宗廟社稷)을 거론(擧論)하면서 나라일을 걱정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장면과 만나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종묘사직(宗廟社稷)이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함께 일컫는 말로써 종묘(宗廟)는 왕실(王室)의 계보(系譜)를 따라 역대(歷代) 선왕(先王)과 왕비(王妃)들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정기적(定期的)으로 제사(祭祀)를 지내는 곳이다.
사직(社稷)은 토지(土地)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穀食)의 신(神)인 직(稷)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서 백성(百姓)들의 복(福)을 위하여 사직신(社稷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내는 곳을 사직단(社稷壇)이라고 한다.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은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을 가운데 두고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原則)에 따라 종묘(宗廟)를 왼쪽에, 사직(社稷)을 오른쪽에 배치(配置)하였다.
사직단(社稷壇)에서는, 일년 국가(國家) 대운(大運)을 비는 대사(大祀), 일년 농사(農事)를 잘 되게 해달라는 선농(先農), 일년 잠업(蠶業)과 좋은 베를 얻게 해달라는 선잠(先蠶), 가뭄과 천재(天災)에 시달리지 않게 해달라는 우단(寓壇) 등의 큰 제사(祭祀)를 네번 지냈다.
또한 비가 내리지 않거나 천재지변(天災地變)을 방지(防止)하기 위해 기우제(祈雨祭), 기곡제(祈穀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렇듯 왕조시대(王朝時代)에 나라를 대신하는 말로 쓰여진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건만 지금에 와서 종묘(宗廟)는 잘 관리(管理)되고 유지되어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으로 지정된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사직(社稷)은 사직공원(社稷公園)이라는 이름으로 덧 씌워져 무슨 동네 어귀에 자리잡은 작은 공원(公園)인줄로만 알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한일합방(韓日合邦) 이후 일제(日帝)는 사직단(社稷壇)을 헐어버리고 사직공원(社稷公園)으로 폄하(貶下)하여 일반화(一般化)하려 했으나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2개의 단(壇)은 남아 있게 되었으며 주변은 형편없이 좁아지고 복잡해진채 방치(放置) 상태(狀態)로 지내오다가 88올림픽을 앞두고 추진한 국가적(國家的) 정비계획(整備計劃)에 의거 진행한 사직단(社稷壇) 복원공사(復元工事)를 통하여 사라졌던 돌계단을 복원(復元)하고, 제단(祭壇)을 에워싼 담장과 홍살문이 다시 세워져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되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오래 단절(斷絶)됐던 사직대제(社稷大祭: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도 1988년 이후 고증(考證) 복원(復元)되어 해마다 시행(施行)된다고 한다.
▶ 社(모일 사/토지신 사)는 ❶회의문자로 토지(土)의 신에게 제사(示) 지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내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社자는 ‘모이다’나 ‘행정단위’, ‘토지 신’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社자는 示(보일 시)자와 土(흙 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示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土자가 결합한 社자의 본래 의미는 ‘토지의 신’이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제물을 바친다. 그래서 社자는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모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고대 중국에서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행정단위를 社라고 했다. 그래서 社(사)는 (1)회사(會社), 통신사(通信社), 신문사(新聞社) 등을 줄여 이르는 말 (2)조선시대 때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주(州), 현(懸)의 아래, 동(洞), 이(里), 촌(村) 보다 높은 행정 단위로 함경도(咸鏡道)에 많았음. 우두머리는 사장(社長)임 (3)고대(古代) 중국에서 토지(土地)의 수호신(守護神) 및 그 제사(祭祀), 또는 그 수호신(守護神)을 중심으로 한 스물다섯 집의 부락(部落). 원(元)나라 때에는 오십 집을 단위로 하여 권농을 중심으로 한 촌락(村落) 자치제 (4)옛날, 대만(臺灣)의 행정 구역의 최하급(最下級) 등의 뜻으로 ①모이다 ②제사(祭祀)를 지내다 ③땅귀신 ④토지신(土地神) ⑤단체(團體), 모임 ⑥사창(社倉: 각 고을의 환곡(還穀)을 저장하여 두던 곳집) ⑦사학(社學) ⑧행정(行政)의 단위 ⑨어머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을 모(募), 모일 총(叢), 둥글 단(團)이다. 용례로는 모든 형태의 인간의 집단적 생활을 사회(社會),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을 사원(社員), 회사의 사업을 사업(社業), 회사나 결사의 주인이 되는 사람을 사주(社主), 회사의 규칙을 사규(社規), 같은 사에 근무하는 동료를 사우(社友), 사원이 지켜야 할 회사의 방침을 사훈(社訓),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교제함을 사교(社交), 조선시대에 환곡을 저장해 두던 각 고을의 창고를 사창(社倉), 숨어 사는 쥐란 뜻으로 어떤 기관이나 사람의 세력을 의지하여 간사한 일을 하는 자를 이르는 말을 사서(社鼠), 상행위를 목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설립한 사단법인을 회사(會社), 자기가 소속해 있는 회사를 자사(自社), 지국이나 지사에 대하여 그 본부를 본사(本社), 회사 등에 취직하여 들어감을 입사(入社), 회사를 처음으로 세워서 엶 또는 그 일을 창사(創社), 사원이 퇴근함 또는 회사의 직원이 그 회사를 그만두고 물러남을 퇴사(退社), 회사에 근무하고 있음을 재사(在社), 다른 회사를 타사(他社), 회사나 신문사 등에 찾아옴을 내사(來社), 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을 사직지신(社稷之臣), 사직이 폐허가 되었다는 뜻으로 나라가 망하는 일을 사직위허(社稷爲墟), 성곽에 사는 여우와 사단에 사는 쥐라는 뜻으로 임금 곁에 있는 간신의 무리를 이르는 말을 성호사서(城狐社鼠) 등에 쓰인다.
▶ 稷(피 직, 기울 측)은 형성문자로 통자로는 昃(기울 측)이 있다. 뜻을 나타내는 벼화(禾: 곡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畟(측)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稷(피 직, 기울 측)은 (1) '피 직'의 경우는 ①피(볏과의 한해살이풀), 기장(볏과의 한해살이풀) ②곡신(穀神: 오곡의 신) ③농관(農官) ④빠르다 ⑤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⑥합하다(合--) 따위의 뜻이 있고, (2) '기울 측'의 경우는 ⓐ(해가)기울다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기장쌀이나 좁쌀을 직미(稷米), 임금이 곡신인 직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을 직단(稷壇), 곡식을 맡아본다는 신령을 직신(稷神), 작은 나라의 태직을 국직(國稷),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후직에게 제사 지내던 곳을 태직(太稷),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후직에게 제사 지내던 곳을 대직(大稷), 토지 신과 곡식 신이라는 뜻으로서 옛날에 임금이 국가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사직단에서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므로 사직은 국가의 기반 또는 국가라는 뜻으로 변하여 이르는 말을 사직(社稷), 왕실과 나라를 함께 이르는 말을 종묘사직(宗廟社稷), 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을 이르는 말을 사직지신(社稷之臣), 사직단에 모신 토신과 곡신을 이르는 말을 사직지신(社稷之神), 나는 기장과 피를 심는 일에 열중한다를 이르는 말을 아예서직(我藝黍稷), 사직이 폐허가 된다는 뜻으로 나라가 망함을 이르는 말을 사직위허(社稷爲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