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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백마비마(白馬非馬)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3|조회수1,019 목록 댓글 0

 

백마비마(白馬非馬)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뜻으로, 억지 논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白 : 흰 백(白/0)
馬 : 말 마(馬/0)
非 : 아닐 비(非/0)
馬 : 말 마(馬/0)


是를 非라 하고 非를 是라 하는 것과 같은 억지 논리로 馬은 형태를 가리키고 白은 색깔을 가리키므로 백마(白馬)는 馬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춘추시대 趙나라의 궤변학자 공손룡(公孫龍)의 저서 공손룡자(公孫龍子)에 “白馬는 馬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있는데, 이것은 白馬라는 개념과 馬이라는 일반개념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白馬란 말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백색에 한정된 말이다. 그러나 馬이라는 것은 빛깔이나 모습이나 능력 등으로 한정되지 않은 말 일반을 뜻한다.

그러므로 백마(白馬)라는 개념과 말이라는 개념 사이에는 광협(廣狹)의 차이가 있으며, 백마(白馬)와 말(馬)의 개념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백마를 말(馬)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명제(命題)는 얼핏 보아 궤변(詭辯)처럼 보이나, 논리학(論理學)에서 특칭 부정(特稱否定)의 판단형식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예(例)라고 볼 수 있다.

공손룡(公孫龍)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말(馬)을 타고 국경(國境)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국경(國境)을 지키는 관리(官吏)가 공손룡(公孫龍)에게 말(馬)은 지나갈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공손룡(公孫龍)은 내 말(馬)은 희다, 그리고 흰 말(白馬)은 말(馬)이 아니다(白馬非馬)라며 그냥 지나가 버렸다고 한다.

흰 말(白馬)은 말(馬)중에서 흰 색의 말(馬)을 한정하는 표현이고, 말(馬)은 일반적으로 두루 지칭(指稱)하는 표현이기에, 흰 말(白馬)과 말(馬)의 개념(槪念)과 지칭(指稱)이 다르기에 흰 말(白馬)은 말(馬)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백마론(白馬論)이라고 한다.

또한 공손룡(公孫龍)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단단하고 흰 돌은, 눈으로 봐서 희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단단함에 대해서는 어떨지 모르며, 손으로 만져 봐서 단단함을 알 수 있지만 색이 흰색인지 어떨지는 모른다(견석비석:堅石非石)

단단하고 흰 돌은 각기 다른 감각인 눈(目)과 손(手)으로 인식(認識)되어 표현(表現)된다. 그러나 단단하다. 희다.라는 단편적(斷片的)인 물질이나 물체의 속성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견백론(堅白論)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이론(異論,궤변)의 배경(背景)에는 정명론(正名論)이 있다.

명실론(名實論)이라고도 하며, 명칭(名稱)에 어울리는 실질(實質)이면 훌륭한 통치(統治)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공자(孔子)의 정치사상(政治思想) 견해(見解 즉, 이름에 맞는 행동이 나와야한다는 말로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의 이름에 걸맞는 덕을 실현하여 올바른 세계질서를 이룸)가 논리학(論理學)에 그대로 적용되어 공손룡(公孫龍)의 사상(思想)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하지만, 공손룡(公孫龍)의 백마론(白馬論)에 대해 묵자(墨子)는 “흰 말이든 검은 말이든 말을 탔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흰 말도 말이다.”라며 반박(反駁)하였고, 순자(荀子)는 공손룡(公孫龍)의 논리(論理)에 대해 “분석의 정밀함은 인정하지만 필요없는 논의”라고 하여 실용적(實用的) 입장에 서서 부정하였다.

순자(荀子)의 실용적(實用的) 명분론(名分論)은 송(宋)나라의 춘추학(春秋學)과 정통론(正統論)으로 연결되었는데, 여기에서 논란이 발생한다. 맹자(孟子)의 혁명론(革命論)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혁명론(革命論) 역시 공자(孔子)의 정명론(定命論)에 기초(基礎)하는데,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임금이라는 이름에 대한 덕(德)을 상실(喪失)했으므로 더 이상 천자(天子)가 아니며 이 때는 천자인 임금이 아닌 그냥 사람인 임금을 혁명(革命)으로 제거(除去)할 수 있다는 이론(理論)이다.

사마광(司馬光)과 이구(李滑)는 맹자(孟子)의 혁명론(革命論)을 군신(君臣)관계의 절대성(絶對性)을 이유로 들어 비판했으며, 반대로 여윤문(余允文)은 존맹변(尊孟辨)이라는 저서(著書)를 통해 맹자(孟子)를 변호(辯護)했으며, 주희(朱熹) 또한 독여은지존맹변(讀余隱之尊孟辨)을 통해 여윤문(余允文)과 입장을 같이 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희(朱熹)는 약간 다르게, 군신 관계는 의리(義理)로 맺어진 관계로 의리가 맞지 않을 때는 떠난다라는 이념(理念)을 제시(提示)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고려(高麗) 말기(末期)에 송(宋)나라의 춘추학(春秋學)이 유입(流入)되면서 명분론(名分論)이 학계(學界)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명분론(名分論)은 내용이 바뀌어 명(明)은 인간의 정치적 지위(地位), 분(分)은 인간의 정치적 지위에 따른 차별(差別)을 가리키게 되었고, 상하 차별적 질서속에 놓인 인간의 관계를 예제(禮制)와 법률(法律)이라고 했다.(귀인이 천인을 거느리고 천인이 귀인을 받드는 관계, 윗사람이 아랫 사람을 부리고, 아랫 사람은 윗사람을 섬기는 관계)

조선(朝鮮)의 예제(禮制)와 법제(法制) 제정(制定)시, 이러한 명분론(名分論)은 이념적(理念的) 기반이 되었으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을 통해 법률적(法律的)인 부분이 마련되었다.

 

[참고] 정명론(定命論)

 

공자에 대하여는 국가이념이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평가를 달리하고 있으며, 현재도 학자들간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단지, 어떤 학문이나 이념에 맹종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발전에 필요한 부분들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하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 나열(羅列)하는 얘기들도 그 견해(見解)를 달리하는 학자들의 다른 관점에 관해 같이 언급하였으니 참고(參考)하기 바란다.

(관점 1)
공자(孔子)가 살던 시대는 혼란한 춘추시대(春秋時代)다. 공자(孔子)는 시국이 혼란한 원인을 제도의 모순(矛盾)에서 찾지 않고 예(禮)와 악(樂)의 붕괴(崩壞) 즉 주례(周禮)에서 정한 신분과 직분의 차별, 명분의 혼란에서 찾고 따라서 그 해결방법으로 어지러운 명(命)을 바로 잡는다는 정명(定命)을 주장했다.

공자(孔子)에게 있어서 본래 명(命)이란 상대방을 군신(君臣).부자(父子)라고 부름으로서 사회적 기능을 규정하는 명(命)이었던 것이다.

명(命)이란 직분(職分)을 명령(命令)하는 행위(行爲)이므로 공자(孔子)에게 정명(定命)이란 논리학(論理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분주의(名分主義)를 뜻한다.

여기서 명(命)은 계급의 정체성을 명령하는 것을 의미하며 분(分)은 맡은 직분을 가르킨다. 그러므로 정명은 소극적으로 무너지는 계급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각 계급마다 독립적 직분을 담보하는 것이다.

주례(周禮)에 의하면 권력을 독점되었던 관직은 세분화되고 철저하게 등급화 되어 있어 같은 계급이라도 차별이 엄격했다. 이것을 굳게 지키려고 했던 것이 공자의 복례(復禮)이며 명분주의(名分主義)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의 정명론(定命論)은 주례(周禮)를 회복함으로서 상하 존비(尊卑)의 종법제도(宗法制度)를 바로 세워 귀족지배(貴族支配)와 노예적(奴隸的) 봉건주의(封建主義)를 지켜내려 한 것이다.

결국 주례(周禮)를 이념화(理念和)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그에 의하면 복례(復禮)의 목적은 인(仁)이며, 인(仁)을 담보(擔保)하는 것이 정명(定命)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정명(定命)은 예(禮)를 위한 도구인 것이다.

종합해 설명하면 주례(周禮)를 회복함으로서 지배계급인 왕과 공경(公卿)들의 쟁탈(爭奪)관계를 조화시키고, 피지배계급인 사(士), 농(農), 공(工), 상(商) 상호간 직업관계를 정리하여 안정시키려 한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관점 2)
명(名)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주로 명실(名實) 관계에 대한 정치(政治), 윤리적(倫理的) 개념(槪念)이다. 구체적(具體的)으로는 명(名)의 의미(意味)에 따라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사물(事物)의 실상(實像)에 대응하는 이름으로 본다. 이 경우 정명(定命)은 사물의 실제와 그 명(名)을 일치(一致)시킨다는 뜻으로 동이(同異), 시비(是非), 진위(眞僞)를 분별한다는 논리학(論理學)의 사실 판단에 해당한다.

둘째, 인간(人間)의 내면적(內面的) 덕(德)에 대응(對應)하는 명분(名分)의 의미(意味)로 본다. 이 경우 정명론(定命論)은 인간의 덕과 그 명분을 일치시킨다는 뜻으로 명분(名分), 귀천(貴賤), 선악(善惡)을 구별한다는 윤리학(倫理學)의 가치 판단에 해당한다.

공자(孔子)는 자로(子路)라는 제자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반드시 명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고 하였고, 또한“정치란 바로 잡 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도 하여 정치에 있어서 정명(定命)의 중요함을 피력(披瀝)하였다.

제(제)나라 경공(景公)이 정치에 대해서 물었을 때,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고 하여 명분(名分)과 그에 대응(對應)하는 덕(德)이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공자(孔子)의 정명사상(定命思想)은 사회 성원 각자가 자기의 명분에 해당하는 덕(德)을 실현함으로써 예(禮)의 올바른 질서가 이루어지는 정명의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공자(孔子)가 바라는 정명(定命)은 단순한 명분의 고수가 아니다. 예컨대 군자(君子)는 명분상 군자이기 위해서는 그 실(實)로서의 인(仁)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孔子)의 정명론(定命論)을 더욱 발전시켜 맹자(孟子)는 혁명론(革命論)을 전개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할 때 혁명(革命)을 통해 임금도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관점 3)
명칭(名稱)과 실질(實質)의 일치(一致)를 지향한 이 정명론(定命論)은 명실론(名實論)이라고도 한다. 정치 사상적인 것과 논리학적인 것의 두 경향이 있는데, 전자(前者)가 주류(主流)를 이루었다.

정명론(定命論)의 발단(發端)은, 정치의 급선무(急先務)는 이름을 올바르게 하는 데 있다고 한 공자(孔子)의 주장인데(論語 子路篇), 그 구체적인 내용은 예(例)를 들어 군신부자(君臣父子)는 각기 군신부자(君臣父子)다워야 한다는 것으로(論語 顔淵篇), 명칭에 어울리는 실질이면 훌륭한 통치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견해(見解)이다.

이러한 견해(見解)는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정명(定命), 심분편(審分篇)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론적 정명론(定命論)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서 이름(직무)에 어울리는 형(形)실(實;實績)을 추구하여 군주가 신하를 독책(督責)한다고 하는 형명참동(形名參同)의 정치사상을 창안(創案)한 것이 법가(法家)이다.

정치론적 정명론(定命論)은 관자(管子) 심술(心術), 순자(荀子) 정명(正名), 한비자(韓非子) 정법(定法) 등의 여러 편에서도 볼 수 있다. 뒤에 특히 송(宋)나라 이후, 명분론(名分論)으로서 전개되었다.

한편 명가(名家)의 공손룡(公孫龍) 등이 공자(孔子)의 정명사상定命思想)을 일반 사물에 적용한 것이 논리학적(論理學的) 정명론(定命論)이 된 듯하다.

공손룡자(公孫龍子)에는 명실론(名實論)도 있는데, 즉 백마론(白馬論)에서 백마는 말이 아니라고 하거나, 견백론(堅白論)에서 견백석(堅白石; 단단하고 하얀 돌)은 2개라고 하는 주장에 그 정명론의 특징이 명백히 나타나 있다.

백(白)은 색에, 말(馬)은 형태(形態)에 속하는 것으로서 말(馬)이란 형태에 대해 말하는 것이므로 색과 형태가 합쳐진 백마(白馬)는 말 곧 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단단한 돌이라고 할 때에는 하얀 돌은 의식되지 않고, 하얀 돌이라고 의식할 때에는 단단한 돌은 지각(知覺)되지 않는다고 해서, 견백석(堅白石)은 하나 또는 셋이라고 보는 설(說)을 부정(否定)했다.

이 백마비마(白馬非馬)에 관해 묵가(墨家)는 묵자(墨子) 소취편(小取篇)에서 백마를 탔거나 이마(驪馬黑馬)를 탔거나 말(馬)을 탔다고 말하기 때문에 백마(白馬)는 말(馬)이라고 순수히 논리적으로 반박(反駁)하였다.

이러한 명(命)과 실(實)의 논리적인 논의는 순자(荀子) 정명편(正名篇)에서도 볼 수 있는데, 순자(荀子)는 이러한 논의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고 분석의 정밀함은 인정하지만 불요불급한 논의라고 하여 정치적실용적 입장에서 부정하였다. 순자(荀子) 이후 정명론(定命論)은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현재까지 논란(論難)되고 있다.

또 주자(朱子)에 이르러서는 명분론(名分論)으로 구체화(具體化)되고 이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입만 떼면 명분을 들먹거리지만 정작 군자(君子)로서의 도리를 찾고자하거나 학문적인 순수한 명분과는 거리가 멀고 정치적으로 음흉(陰凶)한 뜻을 가리는데 찾은 것이 대부분이다.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 옛날 한(韓)나라에 소후(昭侯)라는 왕이 있었다. 어느날 술이 취해 잠이 들게되었는데 그 옆에 시중을 들던 전관(典冠: 임금 모자를 담당하는 관리)이 술이 취해 옷도 제대로 안 갖추고 잠든 임금을 보게되었다. 군주가 추위에 몸이 상할까 염려되어 옷을 임금에게 덮어 주었다.

임금이 술에서 깨어 옷을 덮고 자고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여 누가 그렇게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전관이 그와같이 하였다고 하자 잠시 생각하고는 전관과 전의(典衣:옷을 담당하는 관리)를 불러 오라 했다.

전의는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였다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전관은 자신의 한일에 대하여 기쁘게 생각하고 왕 앞에 나섰다.

그러나 왕은 두 사람에게 모두 벌을 주라 하였다. 전의를 그 임무를 소홀히한 것이고, 전관은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 월권행위를 하였다는 논리였다.

왕은 추위에 옷을 덮어준 것은 고마운 것이나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고 다른 일에 간섭하는 폐해는 그 추위보다 더 큰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 할 수 있으리라.

참고(參考)로 이 정명론(正名論)은 이 정명론(定命論)과 틀린 것이니 유의하기바라며, 이 정명론(定命論)은 쉽게 설명하면 운명론(運命論)을 말하는 것이다.

 

▶️ 白(흰 백)은 ❶상형문자로 햇빛이 위를 향하여 비추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희다, 밝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白자는 '희다'나 '깨끗하다', '진솔하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白자는 촛불을 그린 것으로 해석한다. 갑골문에 나온 白자를 보면 타원형 중심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는데, 이것은 촛불의 심지와 밝게 빛나는 불빛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白자는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白자는 그동안 다양하게 해석되곤 했다. 손톱이나 쌀알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갑골문에서 白자가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으로 쓰인 것을 보면 본래는 촛불을 그렸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白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주로 모양자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白(백)은 (1)백색(白色) (2)백지 (3)백군(白軍) (4)성(姓)의 하나 (5)백국(白國). 곧 벨기에 등의 뜻으로 ①희다 ②깨끗하다 ③분명하다, 명백하다 ④진솔하다 ⑤밝다, 밝아지다 ⑥빛나다 ⑦비다, 가진 것이 없다 ⑧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탄핵하다 ⑨흘겨보다, 경멸하다 ⑩흰빛 ⑪백발(白髮) ⑫대사(臺詞) ⑬술잔 ⑭비단(緋緞), 견직물(絹織物) ⑮볶은 쌀 ⑯소대(小隊: 군대 편성 단위의 하나) ⑰거저, 대가(代價) 없이 ⑱부질없이, 쓸데없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흴 고(暠), 흴 호(皓), 밝힐 천(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검을 흑(黑)이다. 용례로는 흰 눈을 백설(白雪), 희고 깨끗한 이를 백치(白齒), 빛깔이 흰 종이를 백지(白紙), 흰 빛을 백색(白色), 대낮을 백주(白晝), 흰 빛깔의 기를 백기(白旗), 죽은 사람의 살이 다 썩고 남은 뼈를 백골(白骨), 늙은이를 백수(白叟), 하얗게 센 머리털을 백발(白髮),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함을 고백(告白), 의심할 것 없이 아주 뚜렷하고 환함을 명백(明白), 깨끗하고 흼 또는 죄가 없음이나 공명정대함을 결백(潔白), 혼자서 중얼거림을 독백(獨白),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음을 공백(空白), 스스로의 죄를 고백함을 자백(自白), 검은빛과 흰빛으로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흑백(黑白), 종이 따위의 글자나 그림이 있는 이외의 빈 부분을 여백(餘白), 죽어도 잊지 못할 큰 은혜를 입음이란 뜻으로 남에게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을 백골난망(白骨難忘), 대낮에 꾸는 꿈이라는 뜻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르는 말을 백일몽(白日夢),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을 일컫는 말을 백안시(白眼視),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또는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을 이르는 말을 백운고비(白雲孤飛),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면서생(白面書生), 아무 것도 없거나 모르는 상태를 일컫는 말을 백지상태(白紙狀態), 예로부터 흰 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 한민족을 이르는 말을 백의민족(白衣民族), 벼슬이 없는 사람으로 군대를 따라 싸움터에 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의종군(白衣從軍),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모래와 푸른 소나무라는 뜻으로 흰 모래톱의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을 백사청송(白沙靑松), 아무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수건달(白手乾達), 서로 백발이 되기까지 사귀어도 마음을 알지 못하면 새로 사귄 것이나 같다는 뜻으로 친구가 서로 마음을 몰랐던 것을 사과하는 말을 백두여신(白頭如新),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말로 억지 논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백마비마(白馬非馬), 믿을 만한 출처나 자료를 가지고 하는 선전을 일컫는 말을 백색선전(白色宣傳), 흰 옥이 흠이 없다는 뜻으로 결점이 전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옥무하(白玉無瑕) 등에 쓰인다.

▶️ 馬(말 마)는 ❶상형문자로 말의 모양으로 머리와 갈기와 꼬리와 네 다리를 본떴다. 개는 무는 것을, 소는 뿔을 강조한 자형(字形)이지만 말의 경우에는 갈기를 강조하고 있다. 부수로 쓰일 때 말과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馬자는 ‘말’을 그린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馬자를 보면 말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큰 눈과 갈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소전으로 넘어오면서 머리와 갈기는 간략화 되었고 해서에서는 다리가 점으로 표기되면서 지금의 馬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말은 고대부터 사냥과 전쟁에 이용되었지만 주로 먼 거리를 달리는 용도로 쓰였다. 그래서 馬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주로 ‘(말을)타다’나 ‘가다’, 말의 행위, 동작과 관계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馬(마)는 (1)성(姓)의 하나 (2)말 등의 뜻으로 ①말(말과의 포유류) ②벼슬의 이름 ③산가지(수효를 셈하는 데에 쓰던 막대기) ④큰 것의 비유 ⑤아지랑이 ⑥나라의 이름, 마한(馬韓) ⑦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마구간을 마사(馬舍), 말의 똥을 마분(馬糞), 말을 타는 재주를 마술(馬術), 말이 끄는 수레를 마차(馬車), 말을 부리는 사람을 마부(馬夫), 말을 타고 떼를 지어 다니는 도둑을 마적(馬賊), 말의 몇 마리를 마필(馬匹), 말의 다리를 마각(馬脚), 말을 매어 두거나 놓아 기르는 곳을 마장(馬場), 경마할 때에 파는 투표권을 마권(馬券), 말을 타고 나감으로 선거에 입후보함을 출마(出馬), 수레와 말을 거마(車馬),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애마(愛馬), 타는 말이나 말을 탐을 기마(騎馬), 걸음이 느린 말이나 둔한 말을 노마(駑馬), 걸음이 썩 빠른 말 한마를 준마(駿馬), 말에서 떨어짐을 낙마(落馬), 말이 빨리 달리는 것을 겨룸을 경마(競馬), 말을 탐으로 사람이 말을 타고 여러 가지 동작을 하는 경기를 승마(乘馬), 대나무를 가랑이 사이에 끼워서 말로 삼은 것을 죽마(竹馬), 기차를 말에 비유한 일컬음을 철마(鐵馬), 말의 귀에 동풍이라는 뜻으로 남의 비평이나 의견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 버림을 이르는 말을 마이동풍(馬耳東風), 말의 다리가 드러난다는 뜻으로 숨기려던 정체가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마각노출(馬脚露出), 말의 가죽으로 자기 시체를 싼다는 뜻으로 옛날에는 전사한 장수의 시체는 말가죽으로 쌌으므로 전쟁에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의 마혁과시(馬革裹屍), 말이나 소에 의복을 입혔다는 뜻으로 학식이 없거나 예의를 모르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마우금거(馬牛襟裾),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난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발전하고 정진하자는 뜻의 마부정제(馬不停蹄), 말도 갈아타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예전 것도 좋기는 하지만 새것으로 바꾸어 보는 것도 즐겁다는 말의 마호체승(馬好替乘) 등에 쓰인다.

▶️ 非(아닐 비, 비방할 비)는 ❶상형문자로 새의 좌우로 벌린 날개 모양으로, 나중에 배반하다, ~은 아니다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非자는 ‘아니다’나 ‘그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非자를 보면 새의 양 날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非자의 본래 의미는 ‘날다’였다. 하지만 후에 새의 날개가 서로 엇갈려 있는 모습에서 ‘등지다’라는 뜻이 파생되면서 지금은 ‘배반하다’나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飛(날 비)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非(비)는 (1)잘못, 그름 (2)한자로 된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잘못, 아님, 그름 따위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그르다 ③나쁘다, 옳지 않다 ④등지다, 배반하다 ⑤어긋나다 ⑥벌(罰)하다 ⑦나무라다, 꾸짖다 ⑧비방(誹謗)하다 ⑨헐뜯다 ⑩아닌가, 아니한가 ⑪없다 ⑫원망(怨望)하다 ⑬숨다 ⑭거짓 ⑮허물, 잘못 ⑯사악(邪惡)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옳은 이치에 어그러짐을 비리(非理), 예사롭지 않고 특별함을 비상(非常), 부정의 뜻을 가진 문맥 속에서 다만 또는 오직의 뜻을 나타냄을 비단(非但),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보통이 아니고 아주 뛰어남을 비범(非凡), 법이나 도리에 어긋남을 비법(非法), 번을 설 차례가 아님을 비번(非番), 사람답지 아니한 사람을 비인(非人), 잘못되거나 그릇된 행위를 비행(非行), 불편함 또는 거북함을 비편(非便), 결정하지 아니함을 비결(非決), 사람으로서의 따뜻한 정이 없음을 비정(非情),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을 시비(是非), 옳음과 그름을 이비(理非), 간사하고 나쁨을 간비(姦非), 아닌게 아니라를 막비(莫非), 그릇된 것을 뉘우침을 회비(悔非), 이전에 저지른 잘못을 선비(先非), 교묘한 말과 수단으로 잘못을 얼버무리는 일을 식비(飾非), 음란하고 바르지 아니함을 음비(淫非),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비일비재(非一非再),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라는 비승비속(非僧非俗),꿈인지 생시인지 어렴풋한 상태를 비몽사몽(非夢似夢),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라는 말을 비례물시(非禮勿視), 모든 법의 실상은 있지도 없지도 아니함을 비유비공(非有非空)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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