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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무불통지(無不通知)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4|조회수1,292 목록 댓글 0

 

무불통지(無不通知)

무엇이든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 또는 두루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無 : 없을 무(灬/8)
不 : 아니 불(一/3)
通 : 통할 통(辶/7)
知 : 알 지(矢/3)

(동의어)
무소부지(無所不知)
박학다식(博學多識)
무불통달(無不通達)


교양은 현대에서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요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교양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인문적인 교양을 쌓은 사람, 따라서 우리나라 또는 동양의 고전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을 의미하였으며, 또 그것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교양은 다만 고전에 대하여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유를 위하여, 즉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뿐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발전을 위하여 쌓은 업적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자신도 그와 같이 노력함으로써 새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자유의 정신과 신생의 교양이었다.

그것이 그 이후에는 정신이 빠진 형식으로서, 따라서 옛 고전(古典)을 읽으며 암송(暗誦)하는 데 그치고 그것이 사람과 자유의 형성에 있어서의 참된 의미를 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있어서도 참다운 의미에서의 인문적 교양은 요구된다. 그것은 자유의 정신에 의한 신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양을 두루 갖춘 것을 가리켜 무불통지(無不通知)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고사성어로는 무소부지(無所不知), 박학다식(博學多識)이 있다.

중국의 극명한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 말기, 나라와 나라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던 때이다. 강대국 조(趙)나라는 연(燕)나라를 정벌하러 가는 길목에 위치한 소국 양(梁)나라의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십만의 대군으로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양성을 쓸어버리겠다는 포부를 가진 조(趙)나라 장군 항엄중은 뛰어난 장군이자 전술가로, 소위 전쟁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위기에 처한 양성은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묵가(墨家)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하염없이 대답을 기다리던 어느 날 묵가(墨家)의 한 사람인 혁리(革履)는 혈혈단신 양성에 입성한다. 처음 양성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던 혁리(革履)는 뛰어난 지략으로 조(趙)나라의 기를 꺾으며 그후 놀라운 전략과 방어전술로 거듭되는 조(趙)나라 군대의 공격으로부터 양성을 지켜내면서 영웅으로 떠 오르며 백성의 추앙을 한 몸에 받게 된다.

혁리(革履)는 신분보다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하고, 전투에선 누구보다 용감하게 앞장서며, 검소한 생활속에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격려한다. 그러자 양성의 모든 사람들이 혁리(革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혼자의 힘 앞에 태산(泰山)이 쓰러지니 가히 무불통지(無不通知)로다."

그후 몇 번의 패전과 후퇴를 거듭하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양성의 함락이 어려운 것을 알게 된 조(趙)나라 군대는 철군하는 척 위장하며 땅굴을 통해 재 침략을 도모하고, 이를 알지 못한 채 조군이 철수한 줄로 착각했던 양성의 군주는 자신의 권세가 혁리에게로 넘어간다고 생각한 나머지 혁리를 추방 해 버리고, 급기야는 조군의 계략에 의해 양성은 함락되고 만다.


무불통지(無不通知)

무엇이든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

무슨 일이든 다 통달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고대의 철학과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이 성어는 주로 지혜와 지식을 겸비한 인물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공자와 같은 성현들은 무불통지(無不通知)한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학문과 예술, 그리고 인생의 여러 측면에 대해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성어는 또한 고대 중국의 학자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간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한 분야에만 능통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두루두루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자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무불통지(無不通知)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의 CEO는 경영, 마케팅, 재무, 인사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불통지(無不通知)는 단순히 고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아 무불통지(無不通知)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불통지(無不通知)는 어떠한 사항도 통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무'는 없음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며, '불통'은 통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이를 합쳐 무불통지라는 용어가 형성되었고, 이후 무불통지는 어떠한 사항도 통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
무불통지(無不通知)는 어떠한 사항도 통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실생활에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나 인터넷 연결 등의 문제로 인해 상대방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은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예시입니다.

소식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 상황
무불통지(無不通知)는 어떠한 사항도 통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실생활에서는 소식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장소에서 통신이 불가능하거나 소식 전달이 차단된 상황은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예시입니다.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무불통지(無不通知)는 어떠한 사항도 통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실생활에서는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언어적인 장벽이나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인해 상호간의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은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예시입니다.

무불통지(無不通知)는 어떠한 사항도 통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실생활에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 소식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 상황,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등 다양한 상황에서 무불통지(無不通知)의 상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무불통지의 학자관료,

이가환(李家煥, 1742~1801)

 

이가환(李家煥)은 이른바 ‘신유사옥’ 때 옥사했다. 사교를 믿고 사교도를 이끈 대역죄인이란 혐의로 조사를 받다 옥중에서 죽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기록은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의 삶은 정약용의 기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정약용은 이가환과 함께 신유옥사를 겪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 긴 유배생활을 했는데, 마침내 18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와서 이가환의 묘지명을 썼다. 그가 왜 이가환의 묘지명을 썼는가? 그가 천주교도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가환의 자는 정조(庭藻), 호는 금대(錦帶), 정헌(貞軒)이다. ‘여흥 이씨’였는데, 그의 씨족이 서대문 안의 옛 정릉에서 살아서 세상 사람들이 ‘정릉 이씨’라고 불렀다. 이가환의 아버지는 이용휴(李用休)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침(李沈)이다. 할아버지 형제 가운데는 옥동 이서(玉洞 李溆), 섬계 이잠(剡溪 李潛), 성호 이익(星湖 李瀷) 등이 있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집안이었다. 당색으론 남인계에 속했다.

 

정약용은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들 성호 쪽 집안사람들과 직접 교유하기 시작했다. 이가환은 정약용보다 20세 위였는데, 정약용에 따르면 그는 무불통지(無不通知)였다. 정약용이 역경(易經, 주역)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하루는 이가환에게 물었다. “다른 경(經)은 대략 통했는데, 주역만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이가환이 말했다 “나는 주역에 관해 이미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으니, 내게 묻지 말라.”

 

그래도 정약용은 주역에 관한 여러 학설서를 언급하며 주역 공부의 도움을 얻고자 했다. “성호 선생의 '역경질서(易經疾書)'는 어떻습니까?” “우리 집안의 책이라 일찍이 숙독해 보았으나 주역은 알 수 없었다.” “정산(貞山, 이병휴)의 '역경심해(易經心解)'는 어떻습니까?” “그것도 우리 집안의 책이라 일찍이 숙독해보았으나 주역은 알 수 없었다.” “내의선(來矣鮮)의 '역주(易註, 周易集注)'는 어떻습니까?” “주역은 알 수 없었다.” “오징(吳澄)의 '역찬언(易纂言)'은 어떻습니까?” “알 수 없었다.” “주진한(朱震漢)의 '상역(上易)'은 어떻습니까?” “알 수 없었다.” “이정조(李鼎祚)의 '주역집해(周易集解)'는 어떻습니까?” “이 책은 조금 낫다. 그래도 알 수 없었다.”

 

이가환은 이내 스스로 수십 사람의 주역 학설을 들어 말했다. “모두 읽어 보았으나, 주역은 알 수 없었다.” 또 말했다. “자네는 마음을 두지 말라. 무릇 역학은 흐릿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자네처럼 분명한 사람은 결코 역학을 할 수 없네.” 또 말했다. “궁벽한 시골 먼 곳에서 종신토록 주역을 읽고서 마침내 ‘노 주역’, ‘최 주역’이라 호칭하는 자가 이루 셀 수 없는데, 자네도 장차 이러려는가?” 두 사람은 마침내 껄껄 크게 웃었다. ‘정헌묘지명’에 부기된 일화였다.

 

이가환의 학식을 호학군주 정조도 주목하고 있었다. 탕평의 일환으로 남인계로 소외된 인재인 이가환을 중용하고자 했다. 정조의 탕평은 오랫동안 당색과 지역에 따른 차별을 시정하고자 했다. 이가환의 ‘정주진사제명안서(定州進士題名案序)’라는 글에는 서북지역 차별의 슬픈 현실이 고발되어 있다.

 

이가환이 정조 10년에 평안도 정주 수령으로 부임했다. 그곳에 진사제명안(進士題名案)이 있어 열람해보았다. 당시 3년마다 시행하는 식년시에서 선비 200명을 뽑는다. 이들을 진사(進士)라고 한다. 이조에서는 이 가운데 관리를 임용한다. 그런데 정주에서는 1450년부터 그때까지 약간 명이 진사로 이름을 올렸는데, 그 가운데 관리로 임명된 자가 극히 소수였다.

 

이가환은 한탄했다. “200명은 모두 대궐 뜰 가운데 들어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호명에 따라 절을 하고 교지(敎旨)를 받아 가슴에 품고 종종걸음으로 물러나온다. 기러기처럼 나란히 나아가 물고기처럼 줄지어 물러나는 것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다 같지 않다. 출신지역에 따라 판이했다. “대궐문을 나서면, 서울과 서울 부근에 사는 사람은 대체로 차례대로 관직을 얻어 벼슬이 현령이나 관찰사에 이른다. 아름다운 의복에 살찐 말을 타고 영화와 부를 누리다 인생을 마친다. 서울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은 바로 행장을 꾸려 고향에 돌아간다.  난삼 한 벌을 입고 연건 하나를 쓰고 귀가하여 부모에게 절하고 성묘하고 친지들을 두루 찾아뵙는다. 집안사람들이 기뻐서 웃고 마을 사람들은 목을 빼어 구경하며 열흘을 지낸다. 그것으로 끝이다. 아무리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도 모두 벼슬 없이 시골에서 살다 죽는다. 슬프도다!”

 

임용을 막는 법령이 없고, 정조가 서북 인재 등용을 그토록 강조하거늘 정주 지역의 임용 사례는 참으로 저조했다. 그는 이 사실을 고발함과 동시에, 하늘이 인재를 차별하지 않고 국가 또한 인재를 차별하지 않음을 밝혀, 관직 임용을 맡는 자를 각성시키고자 했다.

 

이가환은 당색에 따른 공격을 심하게 받았다. 공격 구실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이잠의 후손이란 점이다. 이잠은 이가환의 종조부로서, 숙종 때 조정 신료들을 비판하는 소를 올렸다가 장살당했다. 주류 노론로선 못마땅한 일이었는데, 마침 더 좋은 공격 구실이 생겼다. 바로 천주교다. 그가 사교에 물들었고, 사교도를 이끈다는 점이다.

 

천주교에 관한 한 그는 억울했다. 그는 한역서학서를 읽고서 서양의 학문에 조예가 깊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종교로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서학은 받아들였으나 서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조가 그를 시켜 책을 편찬해 수리와 역상의 원리를 밝히고자 했을 때, 그는 사양했다. 서학과 서교의 구분을 못하는 무리들에 의해 오해를 살까 우려한 것이다. 또한 천주교에 빠지는 젊은이들을 만류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천주교도의 비판을 받았다. 그가 천주교도이고, 천주교도를 비호했다는 것은 중상모략이었다.

 

그러나 정조가 죽자 노론벽파와 정순왕후가 천주교를 빌미로 정적들을 숙청하고자 했다. 채제공 사후 남인 세력의 차기 지도자였던 이가환은 표적이 되었다. 이가환은 모진 고문에 6, 7일 만에 옥사하고 말았다. 그의 서학은 쓰이지 못하고, 오히려 탄압의 구실이 되었다. 그는 재능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희생되었다.  



▶️ 無(없을 무)는 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함을 무사분주(無事奔走), 한울님은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슨 일에나 함부로 다 참여함을 무사불참(無事不參), 즐거움과 편안함에 머물러서 더 뜻 있는 일을 망각한다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아무 탈없이 편안함을 무사태평(無事泰平), 재미나 취미나 없고 메마르다는 무미건조(無味乾燥)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通(통할 통)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甬(용, 통)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甬(용)은 管(관)과 같은 모양의 것, 桶(통) 등 甬(용)이 붙는 글씨는 속이 빈 것, 꿰뚫는 것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通자는 ‘통하다’나 ‘내왕하다’, ‘알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通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甬(길 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甬자는 고리가 있는 종을 그린 것이다. 通자는 본래 ‘곧게 뻗은 길’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甬자는 속이 텅 빈 종처럼 길이 뻥 뚫려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길이 뚫려있으니 이동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그래서 通자에서 말하는 ‘통하다’나 ‘내왕하다’라는 것은 길을 가는 데 있어 거침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通(통)은 쉽게 빠져 나가는 것의 뜻으로 ①통하다 ②내왕하다 ③알리다 ④알다 ⑤정을 통하다 ⑥통(편지 따위를 세는 단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통할 철(徹), 통할 경(涇), 이룰 성(成)이다. 용례로는 통하여 지나가거나 옴을 통과(通過), 소식이나 의지나 지식 등을 남에게 전함을 통신(通信), 통지하여 보고함 또는 그 보고를 통보(通報), 외국과 교통하여 서로 상업을 영위함을 통상(通商), 말을 서로 주고 받음이나 전화 등으로 말을 서로 통함을 통화(通話), 특별하지 않고 예사임을 통상(通常), 서면이나 말로 통지하여 알림을 통고(通告), 통행하는 길을 통로(通路), 여러 곳에 두루 통용 되거나 관계가 같음을 공통(共通), 특별한 것이 없이 널리 통하여 예사로움을 보통(普通), 막힘이 없이 서로 오가는 일을 교통(交通), 거침없이 흘러 통함을 유통(流通), 막히지 아니하고 서로 통함이나 뜻이 서로 통함을 소통(疏通), 하늘에 통하는 운수라는 뜻에서 매우 좋은 운수를 이르는 말을 통천지수(通天之數), 절친한 친구 사이에 친척처럼 내외를 트고 지내는 정의를 통가지의(通家之誼), 무엇이든지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음을 무불통지(無不通知), 길이 사방 팔방으로 통해 있음을 사통팔달(四通八達) 등에 쓰인다.

▶️ 知(알 지)는 ❶회의문자로 口(구; 말)와 矢(시;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矢)처럼 말(口)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合)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知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知자는 矢(화살 시)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知자는 소전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智자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知자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知(지)는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알리다, 알게 하다 ③나타내다, 드러내다 ④맡다, 주재하다 ⑤주관하다 ⑥대접하다 ⑦사귀다 ⑧병이 낫다 ⑨사귐 ⑩친한 친구 ⑪나를 알아주는 사람 ⑫짝, 배우자(配偶者) ⑬대접(待接), 대우(待遇) ⑭슬기, 지혜(智慧) ⑮지식(知識), 앎 ⑯지사(知事) ⑰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認), 살펴 알 량/양(諒), 알 식(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를 일컫는 말을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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