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이화(無爲而化)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교화한다는 뜻으로, 억지로 꾸밈이 없어야 백성들이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는 말이다.
無 : 없을 무(灬/8)
爲 : 할 위(爪/8)
而 : 말이을 이(而/0)
化 : 화할 화(匕/2)
출전 : 노자(老子) 第57 순풍편(淳風篇)
이 성어는 애써 힘들이지 않아도 스스로 변화하여 잘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자고로 군주의 덕이 크면 민초들은 스스로 잘 따르고 감화된다느 뜻이다.
정치하는 사람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이 말을 본 받아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회가 평온하고 태평성대가 이루어 진다. 道는 스스로 순박한 자연을 따른다는 무위자연을 주장한 노자의 말로, 백성을 교화함에 있어서 잔꾀를 부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노자(老子) 제57장 순풍편(淳風篇)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나라는 바른 도리로써 다스리고, 용병(勇兵)은 기발한 전술로 해야 하지만,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무위(無爲)로써 해야 한다. (中略) 그러므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我無爲而民自化(아무위이민자화)
我好靜而民自正(아호정이민자화)
我無事而民自富(아무사이민자부)
我無欲而民自樸(아무욕이민자박)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감화되고, 내가 고요하니 백성들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 내가 일을 만들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부리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소박해진다.
노자(老子)는 문화를 인류의 욕심이 낳은 산물로 보고, 문화가 인류의 생활을 편하게는 하였지만 또한 인간의 본심을 잃게 만들었다고 하여, 학문과 지식을 버리라고까지 하였다. 무위(無爲) 또는 무위이민자화(無爲而民自化)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윗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한편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도 다음과 같이 무위(無爲)에 관한 내용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무위(無爲)를 덕치(德治)로 해석하여, 덕(德)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마음으로 따른다고 하였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함이 없이 다스리는 자는 순(舜)임금이다. 무엇을 하였는가. 자기를 공손히 하고 똑바로 남쪽을 향해 있었을 뿐이니라(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무위이화(無爲而化)란 이와 같이 법과 제도로써 다스리려 하는 법가사상(法家思想)과 대치되는 생각이지만, 유가(儒家)에서는 덕을 중시하고, 도가(道家)에서는 인(仁)이나 예(禮)마저도 인위적인 것이라고 하여 배척한다. 자연상태 그대로의 인간 심성과 자연의 큰 법칙에 따르는 통치가 바로 무위이화(無爲而化)이다.
무위이화(無爲而化)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성인의 덕은 지대하여서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다스려진다는 말이다.
무위(無爲)는 도가(道家) 사상의 핵심이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도가를 설명하면서 자주 언급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은 바로 이를 뜻한다.
도가는 인위적으로 선을 긋지 말라 한다. 선을 그으면 피아가 구별되고 선과 악, 높고 낮음, 밝고 어둠이 갈라지면서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 사상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는,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이다.
노자(老子) 제57장 순풍(淳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나라는 바른 도리로 다스리고, 용병은 기발한 전술로 해야 하지만,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무위로 해야 한다. (중략) 그러므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감화되고(我無爲 而民自化), 내가 고요하니 백성들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我好靜 而民自正), 내가 일을 만들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부유해지고(我無事 而民自富),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소박해진다(我無欲 而民自樸).''
노자는 문화를 인류의 욕심이 낳은 산물로 본다. 문화가 인류의 생활을 편하게는 하였지만 인간의 본심 또한 잃게 만들었으니 학문과 지식을 버리라고까지 한다. 현대인의 시각과는 어긋나지만 함의는 깊다. 무위이화(無爲而化)는 무위이민자화(無爲而民自化)를 줄인 것으로, 힘써 공들이지 않아도 자연의 이치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감화한다는 뜻이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인간 심성과 자연의 큰 법칙에 따르는 통치가 바로 무위이화(無爲而化)다.
논어의 위령공 편에도 무위에 관한 내용이 보인다. "공자가 말하기를, 함이 없이 다스리는 자는 순임금이다. 무엇을 하였는가. 자기를 공손히 하고 똑바로 남쪽을 향해 있었을 뿐이니라." 여기서의 무위는 덕치(德治)로 해석된다. 덕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마음으로 따른다는 얘기다.
무위지치 무위이화(無爲之治 無爲而化)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라고 한다. 무위지치 무위이화(無爲之治 無爲而化)는 도가(道家)의 정치사상으로 군주가 직접 나서서 인위적인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백성을 잘 살게 한다는 뜻으로서 위대한 정치가와 교육가들은 무위지치 무위이화(無爲之治 無爲而化)를 정치적 이상으로 삼았다.
국가 통치자로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공명과 정의를 위하여 법으로 통제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정의가 실현되고 나라가 안정되고 건강한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노자는 '천하의 금령(禁令)이 많을수록 죄인은 많아지고 백성은 가난해진다'고 했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많아질수록 국민의 삶도 힘들어지고 경제도 힘들어진다. 규제와 간섭보다 국민의 삶과 경제활동에 불필요한 규제와 제약이 없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통치자의 가장 큰 역할이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는 국가를 경영하는데 있어서 통치자의 주관적, 사적 판단이 배제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국가 통치자는 구체적인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이 다스려지는 무위지치 무위이화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실제로 국가 통치자는 현장의 모든 일을 직접 지휘할 수도 없고 또 관여해서도 안 되는 지위이다. 그리고 통치자의 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개인의 역량은 한계가 있기에 통치자는 사람을 발굴하고 일을 맡기고 평가해서 상벌 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무위지치(無爲之治)는 통치자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법 집행을 하고 직접 일을 하지는 않지만 타인에게 일의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군주의 통치술을 의미한다. 애써 바로잡지 않아도 저절로 잘 이루어지는 것을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하는데 무위지치(無爲之治)란 바로 이 무위이화로 이루어지는 군주의 덕치를 말한다.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정치가 필요한 나라
노자(老子)가 알려주는 도덕경(道德經) 제57장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정책(正策)을 써야 하고, 전쟁을 하는 데는 기책(奇策)을 써야 한다. 그렇다면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정책도 기책도 초월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말하자면 무위(無爲)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답하기를 "천하에 금(禁)하는 명령이 많아지면 백성은 더욱 가난해진다. 백성들이 편리한 기구를 많이 가질수록 국가는 더욱 혼란해진다. 사람의 기술이 발달할수록 진기한 물건이 생겨나 국민의 정신을 해치게 된다."
이렇기 때문에 성인은 입을 열어, "나는 아무것도 함이 없는데 백성이 스스로 감화(感化)되게 한다. 나는 고요함을 즐기고 있는데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살아간다. 나는 별달리 시책을 베풀지도 않았는데 백성은 스스로 잘 살아간다. 나는 바라는 것이 없는데 백성은 스스로 순박해진다"라고 하였다. 무위이화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백성이 스스로 감화되게 한다(我無爲而民自化)'에서 온 말이다. 자기 중심의 욕심(慾心)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님을 수천년 전부터 말해온 것이다.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다"라고 한 지적이다. 정치도 경제도 인간관계에 있어 모두다 자신을 비우는 것을 배우라고 자연의 이치를 들어 노자는 인간을 깨우치고 있다. 돌에 달걀을 던지면 달걀만 부서진다. 그리고 달걀로 달걀을 치면 둘 다 패하고 부상을 입는다. 원인은 둘 다 유연성(柔軟性)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자가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경구이다. 군주(君主)가 미혹에 빠지고 과단성 있는 지력(智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지도자에게 금기(禁忌)라 했다. 공손하고 겸손해야 하며 타인의 관점이나 견해가 자기 것보다 나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나 스스로 오만 불손하지 않아야 진정한 군주로써의 덕을 쌓아 치리를 할 수 있음이다.
역사를 보면 먼저는 지금의 혼란기 보다 더 혼란했던 시절이 수 없이 많았다. 수 많은 정치인들 특히나 임금이나 왕이나 대통령과 그와 함께하는 왕비나 영부인들이 있었다. 때로는 한나라를 뒤흔들었던 왕비도 있었고, 무력한 왕 보다 도 더 훌륭한 왕비나 영부인들도 많이 있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판! 무심한 대통령과 참으로 치졸한 정치인들을 보면서 왜 이 노자의 말씀이 생각이 났을까? 민심(여론조사)은 조작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나는 전 정권에서 엉망으로 만든 정책이나 위법적인 조치들을 정상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소신껏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당이 숫자가 많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라고 자위(自爲) 하기도 할 것이다. 허나 국민이 힘들어 하고, 지지율과 반대 여론이 위험한 수준이기에 이를 정치로 풀어내는 것은 대통령과 집권당의 몫이다. 순수가 동반된 소신은 아름다운 것이고, 아집(我執)이 동반된 소신은 욕심(慾心)이다. 정치란 욕심을 버리는데 있다고 노자가 말하고 있음이 아니던가?
자연은 욕심을 버리기 때문에 순수한 것이고 순수란 사물간에 신뢰와 사랑이 연결되어야만이 있어지는 것이다. 내 평생의 반려자 일지라도 잘못이 있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바꾸면 되는 것이다.
영부인을 감옥 보내자고 한 것이 아니다. 이는 대통령이 흠이 없으니 자신들의 집권욕을 위해 가장 약한 곳을 끊임없이 건드려야만 한다. 부하뇌동이란 말이 있다. 한쪽에서 튀니까 다른 쪽에서도 튄다는 말이다. 야당은 영부인 하나만 물고 늘어질 수 밖에 없다. 영부인이 움직이면 사건을 만들어 보도하고, 안 움직이면 사생활 까지 간섭하며 심지어는 인물 까지를 건들지 않던가?
인생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듯이 진실하고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믿고 사랑한다면 국가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써 영부인의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야 한다. 정치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정책(正策)을 쓰라 했다. 지도자부터 바르게 살라는 말이다. 오늘날의 이 나라는 여당과 야당의 첨예한 전쟁이다. 전쟁은 기책(奇策)을 쓰라 했다. 그 기책이 무엇을 말하던가? 잘못이 있다면 달게 받으면 된다. 대통령일지라도 자기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국민들 또한 우민(愚民)들이 아니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이 민심을 제대로 읽고 민중 앞에서 좀더 적극적인 자신의 정치를 해야만 한다. 민심은 항상 작은 일에서부터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익히 배웠고 학습했기에 말이다.
민심이란 항상 정직한 약자를 따르게 되어 있다. 이것이 기책(奇策)이다. 선전 선동술에 능한 야당은 없는 것도 만들어 낸다. 시끄러운 나라를 만들어야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있다. 이것을 인정하고 정치를 펴야 한다. 또다시 탄핵을 빌미로 범죄자도 옹립하여 정권을 잡아 자신들의 입지를 넓힐 수가 있기에 말이다. 현명한 지도자는 자기중심의 욕망을 제거해야 한다고 노자는 말한다.
천하를 움켜쥐고자 함은 강인한 인내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선장은 키를 움켜쥐고 배가 제대로 가는지 항로를 이탈하는지 여부만 보면서 수 많은 선원들이 각자의 사명을 완수하면 그 배는 오대양 육대주를 힘차게 항해하게 되어 있다.
이제 임기 절반을 남긴 어려운 대 항해지만 종국(終局)에는 윤석렬 호는 항구에 닻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배가 뱃고동을 울리며 새로운 힘찬 항해를 할 것이다. 자연의 이치(理致)속에 깊이 들어있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깊은 뜻이 백성들의 마음임을 깨닫는 정치가 이루어지길 기원해 본다.
무위지치(無爲而治)
개요
무위지치(無爲而治)는 중국의 전통적인 철학 중 하나인 도가(道家)에서에서 나온 개념으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는 뜻이고, 지치(治)는 '다스리다' 또는 '치유하다'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무위지치(無爲而治)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스리다' 또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대로 흘러가게 두다'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징
첫번째 특징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있다 '무위'는 무엇인가를 강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무작정 개입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행동하면서 세상을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두번째 특징으로는 자연의 원리를 따른다는 특징이 있다. 무위지치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강조한다. 도가 철학에서는 자연이 어떤 방식으로든 원활하게 흘러가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번째 특징으로는 불필요한 노력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무위지치는 불필요한 노력을 피하고, 힘들게 노력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도가가 생겨나기 전에 진나라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정치행정은 수탈과 토목공사 등의 백성에게 고역을 안기는 것과 황하처럼 멀쩡한 강을 똥물로 만드는 거처럼 뻘짓이 많았으니 그 여파로 생겨난 생각들이라고 보면 딱맞다.
▶️ 無(없을 무)는 ❶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無자는 ‘없다’나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無자는 火(불 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당이나 제사장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춤추다’가 본래의 의미였다. 후에 無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 되면서 후에 여기에 舛(어그러질 천)자를 더한 舞자가 '춤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함을 무사분주(無事奔走), 한울님은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슨 일에나 함부로 다 참여함을 무사불참(無事不參), 즐거움과 편안함에 머물러서 더 뜻 있는 일을 망각한다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아무 탈없이 편안함을 무사태평(無事泰平), 재미나 취미나 없고 메마르다는 무미건조(無味乾燥) 등에 쓰인다.
▶️ 爲(할 위)는 ❶상형문자로 为(위), 為(위)는 통자(通字), 为(위)는 간자(簡字)이다.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양을 본떴다. 전(轉)하여 하다, 이루다, 만들다, 다스리다의 뜻으로 삼고 다시 전(轉)하여 남을 위하다, 나라를 위하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爲자는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爲자는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爲자를 보면 본래는 코끼리와 손이 함께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코끼리를 조련시킨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爲자의 본래 의미는 '길들이다'였다. 하지만 후에 코끼리에게 무언가를 하게 시킨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爲(위)는 ①하다 ②위하다 ③다스리다 ④되다, 이루어지다 ⑤생각하다 ⑥삼다 ⑦배우다 ⑧가장(假裝)하다 ⑨속하다 ⑩있다 ⑪행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사(徙),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들 거(擧), 옮길 이(移), 다닐 행(行), 구를 전(轉)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를 위함을 위국(爲國),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 다른 것에 앞서 우선하는 일이라는 위선(爲先), 힘을 다함을 위력(爲力), 첫번을 삼아 시작함을 위시(爲始),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생업을 삼음 또는 사업을 경영함을 위업(爲業), 사람의 됨됨이를 위인(爲人), 정치를 행함을 위정(爲政),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예정임 또는 작정임을 위계(爲計), 진실한 즐거움을 위락(爲樂), 어떤 것을 첫 자리나 으뜸으로 함을 위수(爲首), 기준으로 삼음을 위준(爲準), 나라를 위한 기도를 위축(爲祝), 부모를 위함을 위친(爲親),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가 도리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위총구작(爲叢驅雀), 치부致富하려면 자연히 어질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을 위부불인(爲富不仁), 바퀴도 되고 탄환도 된다는 뜻으로 하늘의 뜻대로 맡겨 둠을 이르는 말을 위륜위탄(爲輪爲彈), 겉으로는 그것을 위하는 체하면서 실상은 다른 것을 위함 곧 속과 겉이 다름을 일컫는 말을 위초비위조(爲楚非爲趙), 되거나 안 되거나 좌우 간 또는 하든지 아니 하든지를 일컫는 말을 위불위간(爲不爲間), 선을 행함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말을 위선최락(爲善最樂),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된다는 뜻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어육(爲魚肉), 어떤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새로이 마련함이나 남을 위해 정성껏 꾀함을 일컫는 말을 위인설관(爲人設官),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함 또는 그 계획을 일컫는 말을 위자손계(爲子孫計), 가난을 면하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귀소소(爲鬼所笑), 자기가 정한 법을 자기가 범하여 벌을 당함을 일컫는 말을 위법자폐(爲法自弊),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을 전화위복(轉禍爲福),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됨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지록위마(指鹿爲馬),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마부위침(磨斧爲針),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한다는 말을 귤화위지(橘化爲枳), 손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이르는 말을 객반위주(客反爲主), 인공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를 일컫는 말을 무위자연(無爲自然),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는 뜻으로 작은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진적위산(塵積爲山),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또는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무위도식(無爲徒食)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등에 쓰인다.
▶️ 化(될 화, 잘못 와)는 ❶회의문자로 訛(와), 譌(와)의 고자(古字)이고, 僞(와)는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모양을 바꿔 다른 사람(匕)이 된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化자는 ‘되다’나 ‘변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化자는 人(사람 인)자와 匕(비수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化자의 갑골문을 보면 두 사람이 서로 엇갈려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산사람과 죽은 사람을 함께 그린 것이다. 化자는 본래 윤회(輪廻)를 표현한 것으로 人자는 ‘산 사람’을 匕자는 ‘죽은 사람’을 뜻한다. 化자에 ‘죽다’나 ‘태어나다’의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化자는 ‘변천하다’나 ‘바뀌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化(화, 와)는 (1)천지(天地) 자연(自然)이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하는 작용. 천지(天地)의 운용(運用), 변화(變化)의 법칙(法則)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되다, 화(化)하다 ②교화(敎化)하다, 감화(感化)시키다 ③가르치다 ④따르다, 본받다 ⑤변천(變遷)하다, 달라지다 ⑥죽다, 망(亡)하다 ⑦없애다, 제거(除去)하다 ⑧교역(交易)하다, 바꾸다 ⑨태어나다 ⑩가르침, 교육(敎育) ⑪교화(敎化) ⑫습속(習俗), 풍속(風俗) ⑬요술(妖術), 마술(魔術) ⑭변화(變化), 조화(造化) ⑮죽음 ⑯다름 그리고 ⓐ잘못(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고칠 개(改), 바꿀 역(易),고칠 경(更), 변할 변(變), 가죽 혁(革)이다. 용례로는 다른 것으로 변하여 간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르는 화거(化去), 죽은 사람을 화자(化者),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화상(化像), 둘 이상의 물질이 결합하여 본디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새로 특유한 성질을 가진 물질이 되는 일을 화합(化合), 성질을 변하게 함을 화성(化性), 마음을 변하게 함을 화심(化心), 얼굴을 곱게 꾸밈을 화장(化粧), 지질시대에 살았던 동식물의 유해 또는 그 흔적이 퇴적암 같은 바위 속에 남아 있는 화석(化石),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어 달라짐을 변화(變化), 약하여짐 또는 약하게 함을 약화(弱化), 강하게 함을 강화(强化), 나쁘게 됨을 악화(惡化), 깊게 함 또는 깊어짐을 심화(深化), 깨끗하게 함을 정화(淨化), 둔하여 짐을 둔화(鈍化), 격렬하게 됨을 격화(激化), 물건이 사라져 없어져서 변화함을 소화(消化), 진보하여 차차 더 나은 것이 됨을 진화(進化), 다른 사물의 영향을 받아 마음이 변함을 감화(感化),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함을 교화(敎化), 동물의 알이 깨는 것을 부화(孵化), 백성을 교화하여 아름다운 풍속을 이룸을 화민성속(化民成俗), 교화가 미치치 못하는 곳의 백성을 화외지민(化外之民), 덕화가 사람이나 짐승 뿐만 아니라 초목에까지도 미침을 말함을 화피초목(化被草木), 나라의 풍속을 순수하고 온화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국풍순화(國風醇化), 좋은 친구와 사귀면 자연히 그 아름다운 덕에 감화됨을 이르는 말을 지란지화(芝蘭之化), 끊임없이 달라져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음을 변화불측(變化不側), 변화가 심해 종잡을 수 없음을 변화무상(變化無常), 애써 하지 않아도 잘 된다는 뜻으로 힘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변하여 잘 이루어짐을 무위이화(無爲而化),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한다는 말을 귤화위지(橘化爲枳)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