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벌방교회 앞에 서있는 마을 수호신 소나무
예천군 감천면 벌방교회 소나무 앞에서…
감천면 벌방리 마을 한가운데에는 벌방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교회 앞에는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이 마을의 ‘수호신’ 같은 나무다.
벌방교회 앞 소나무는 볼 때마다 마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고향을 지키는 고향지킴이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벌방리 소나무에는 마을의 오래된 기억과 추억도 함께 서려 있다.
옛날 단오날이면 소나무 가지에 그네를 매달아
아이들이 신나게 그네를 탔고,
교회 앞에는 화재 등 비상 상황을 알리기 위한 종탑도 있었다.
소방서가 없던 시절 마을에 불이 나면
그 종을 급하게 울렸고,
주민들은 양동이와 바가지를 들고 달려와 함께 불을 껐다.
세월이 흐르면서 종은 사이렌으로 바뀌었다가
현대식 소방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어느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세월은 그네도, 종도, 사이렌도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고향을 떠나고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벌방교회 앞 소나무만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고향을 찾은 출향인들은 소나무 앞에 서면
자연스레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단오날 그네를 타던 기억,
마을에 울려 퍼지던 종소리,
함께 뛰놀던 친구들의 얼굴이 아련하게 되살아난다.
고향을 떠나 수십 년이 흐른 뒤 다시 돌아왔을 때,
한 사람 두 사람 세상을 떠나고 익숙했던 풍경이 많이 바뀌어 있어도
이 소나무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마을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듯
벌방교회 앞 소나무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향 어머니 집 마당에 들어선 듯 마음이 놓인다.
벌방리 마을 낮은 언덕에 자리한 벌방교회.
긴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공간 곁에서
이 소나무는 또 하나의 기둥처럼 서 있다.
그리고 그 긴 세월 속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도 담겨 있다.
2023년 7월,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이어지던 그 무렵이다.
짧은 시간 쏟아진 폭우로 산비탈이 무너지고,
흙과 나무, 그리고 큰 바위들이 계곡을 따라 쓸려 내려오면서
물길이 방향을 잃었다.
마을 곳곳은 순식간에 토석류에 휩쓸렸고
주택과 농경지는 한순간에 흔적을 잃었다.
그날 밤, 정전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에서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주민들은 몸만 겨우 빠져나와야 했고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마을은 한동안 정적과 혼란 속에 놓였다.
그리고 벌방리의 일상은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졌다.
익숙했던 길이 사라지고, 삶의 터전이 흔들리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이재민이 생겼고, 마을은 긴 복구 과정에 들어갔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을을 찾았고
중장비의 굉음이 하루 종일 이어지며
수해 복구 작업이 계속됐다.
그때 벌방교회와 이 소나무는
말 그대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불안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던 자리였고,
무너진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붙들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상처 입은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를 견디게 해준
조용한 지주(支柱)였다.
산사태와 수해가 지나간 지 3년.
지금은 대부분의 현장이 정리되어 흔적도 많이 옅어졌다.
겉으로 보면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임시주거단지가 조성되고 이주단지 논의가 이어지면서
익숙했던 삶의 자리를 떠나야 하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달 말이면 임시주거단지 사용 기한도 만료된다.
누군가는 새 이주단지로,
누군가는 자녀가 있는 객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먼저 길을 떠난 이들도 있다.
작별이 준비되지 않은 이별들이 시간 속에 쌓여갔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도 희미해진다고 하지만
2023년 7월 그 새벽의 장면만큼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벌방교회 앞 소나무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서 있다.
그날의 무너짐과 지금의 일상을 모두 품은 채
말없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앞으로 마을의 모습은 달라질지 몰라도
벌방교회 앞 소나무는 변함없이 또 다른 세월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그 나무 아래서 다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될지 모른다.
2026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