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순신 장군이 진짜 영웅인 이유.jpg

작성자다정다감|작성시간19.03.16|조회수169 목록 댓글 0
























1545(1)

38: 서울 건천동에서 이정의 3째아들로 태어남.

1565(21) : 20살이 되는 해에 결혼.

1573(29) : 훈련원 별과에 응시, 낙마(말에서 떨어지다)해서 탈락.

1576(32)

2: 식년시 무과에 급제.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첫 관직생활을 시작하다.

12: 9품 함경도 동구비보권관(董仇非堡權管)으로 부임하다.

1579(35)

2: 8품 한성 훈련원 봉사로 배직.

10: 충청도 병마절도사 군관이 되어 충청도 해미병영으로 가다.

1580(36)

둘 째 형이었던 이요신이 죽었다.

7: 전라좌수영 관내 발포 수군만호(水軍萬戶)(4)로 전근.

1582(38)

1: 군기경차관[22]으로 온 서익이 과거의 일에 대한 보복으로 부당한 보고를 올려 발포수군만호직에서 파직했다.

5: 8품 훈련원봉사로 복직되었다.

1583(39)

7: 함경도 남병사 이용이 이순신을 자신의 군관으로 삼다.

8: 여진족 토벌의 공을 세워 훈련원 참군으로 승진하다.

10: 경원고을 건원보의 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115: 부친 이정이 74세의 나이로 별세하다.

1584(40)

1: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접하다.

1586(42) :

1: 시복시 주부(8)가 되었다.

2: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로 임명 되었다.

8: 정언신의 추천으로 녹도 둔전사의(鹿島 屯田事宜)도 겸직하게 되었다.

1587(43)

1: 맏형이었던 이희신이 사망하다.

10: 녹둔도 전투가 일어나다. 그리고 이일의 모함으로 백의종군되다.

1588(44)

1: 여진족 시전부락 공격에 참가, 공을 세워 사면되었다.

6: 아산으로 내려가다.

1589(45)

1: 비변사에서 불차채용을 하게 되자 이산해와 정언신의 추천을 받았다.

2: 이광의 추천으로 전라도 감사 휘화 조방장(4)에 임명되다.

11: 선전관으로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가다.

12: 류성룡이 천거해서 전라도 정읍현감(6)으로 관직에 오르다.

1590(46)

7: 류성룡이 고사리진 병마첨절제사(3)로 천거했으나 사관원의 반대로 개정되었다.

8: 평안도 만포진 병마첨절제사로 천거되었으나, 역시 사관원에서 지나치게 진급이 빠르다는 이유로 개정되었다.

1591(47)

213: 이억기, 이천, 양응지와 함께 이순신을 남해 요해지로 임명하여 공을 세우게 하라는 선조의 전교를 받았고, 이전처럼 진급이 빠르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종6품 정읍현감에서 종4품 진도군수(珍島郡守)로 승진시킨 후, 부임하기도 전에 종3품 가리포진 수군첨절제사(加里浦僉節制使)로 전임시켰으며, 이 또한 부임하기 전에 정3품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초수(超授)했다.

1592(48)

412: 거북선 건조를 완료하다.

413: 임진왜란이 발발하다.

54: 전라좌수군의 1차 출동.

57: 옥포와 합포에서 승리로 이끌다.

58: 적진포 해전을 승리로 이끌다.

529: 전라좌수군의 2차 출동. 사천 해전을 승리로 이끌다. 거북선을 실전에서 처음으로 사용하다.

62: 당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65: 당항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67: 율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76: 전라좌수군의 3차 출동.

78: 한산도에서 승리를 거두다.

710: 안골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824: 전라좌수군의 4차 출동.

829: 장림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다.

91: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초량목, 부산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1593(49)

26: 전라좌수군의 5차 출동.

210: 웅포로 진격하다.

36: 웅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52: 웅포에서 두 번째 승리를 거두다.

715: 전라좌수영 본영을 한산도로 이주하다.

815: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다.

1594(50)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6번째 출동.

34: 당항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929: 장문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101: 영등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104: 장문포에서 승리를 거두다.

1597(53)

26: 선조가 이순신의 파직을 명하다.

210: 부산포로 출정해 무력시위를 벌이고 돌아오다.

225: 통제사직에서 해임되다.

226: 후임 삼도 수군통제사인 원균에게 인계 후 서울로 압송당하다.

34: 감옥에 투옥되다.

41: 옥중생활을 마치고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지시 받고 내려가던 도중 아산에 들러 잠시 머물다.

411: 어머니가 별세하다.

413: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접하다.

723: 이조판서 이항복, 경림군 김명원의 건의로 이순신이 종2품 삼도 수군통제사에 복직하다.

818: 배설로부터 12척의 전선을 인계받다.

828: 어란진에서 8척의 왜선과 조우, 교전 끝에 승리를 거두다.

829: 진도 벽파진으로 진을 옮기다.

92: 배설이 도주하다.

915: 선전관 박천봉이 찾아와 수군을 폐하라는 지시를 받다.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는 장계를 올리며 수군의 폐지를 반대하다.

916: 13척의 전선과 일부 어선을 동원해 울돌목에서 일본군 133척과 맞서 싸워 승리하다.

1598(54)

719: 절이도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다

920: 명군과 합류해 장도에서 승리를 거두다

107: 명군과 합류해 왜교성 전투를 진행하였으나, 명군의 무리한 전술로 소득을 얻지 못하고 물러나다.

1119: 퇴각하는 왜군을 노량에서 요격, 분멸하다. 이순신은 총탄에 맞아 전사하다.

1604

덕풍부원군으로 추봉되었으며 이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1643

충무라는 시호를 받다.

1793

영의정으로 추증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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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이종격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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