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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치사(致仕)한 권중화(權仲和)의 졸기

작성자낙민|작성시간15.10.18|조회수33 목록 댓글 0

태종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11월 23일(정묘) 1번째기사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치사(致仕)한 권중화(權仲和)의 졸기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치사(致仕)한 권중화(權仲和)가 죽었다. 중화(仲和)는 안동(安東) 사람인데, 고려(高麗) 정승(政丞) 권한공(權漢功)의 아들이다. 지정(至正) 계사년 을과(乙科) 제2인에 올라 공민왕(恭愍王)을 섬겨 대언(代言)이 되었다가, 지신사(知申事)로 옮기고 전선(銓選)을 맡았는데, 근신(謹愼)하고 주밀(周密)하여 친구(親舊)에게 사(私)를 두지 않으니, 공민왕이 심히 중하게 여기었다. 정당 문학(政堂文學)으로 정사년에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는데, 문하(門下)에 명사(名士)가 많았다. 염정(恬靜)1365) 자수(自守)1366) 하여 권귀(權貴)에게 아부하지 않아서 세상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여러 벼슬을 거쳐 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태조(太祖)가 즉위한 뒤에 기년(耆年)·숙덕(宿德)으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를 제수하고 예천백(醴泉伯)을 봉하여, 본관(本官)1367) 으로 그대로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고사(故事)에 정통하므로 무릇 상정(詳定)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가서 물었다. 나이 비록 늙었으나 정력(精力)이 쇠하지 않아서 의약(醫藥)·지리(地理)·복서(卜筮)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더욱이 대전(大篆)1368) 과 팔분(八分)1369) 을 잘 썼다. 평소에 산업(産業)을 다스리지 않고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앉아서 이[蝨]를 잡으며 이야기하였다. 늙어서 다만 말라빠진 말[馬] 한 필이 있었다. 나이 87세에 죽으니 조회(朝會)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중관(中官)을 명하여 조제(弔祭)하였다. 유사(有司)에 명하여 예장(禮葬)하고, 문절(文節)이란 시호(諡號)를 주었다. 중궁(中宮)도 또한 내시(內侍)를 보내어 치제(致祭)하였다. 아들이 하나이니 권방위(權邦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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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365]염정(恬靜) :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함. ☞

[註 1366]자수(自守) : 행실이나 말을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 ☞

[註 1367]본관(本官) : 판문하부사를 말함. ☞

[註 1368]대전(大篆) : 한자(漢字) 서체(書體)의 하나.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 태사(太史) 주(籒)가 만들었다고 하며, 그 특색은 번잡(繁雜)하고 수식(修飾)을 주로 한 점임. ☞

[註 1369]팔분(八分) : 예서(隷書) 이분(二分)과 전서(篆書) 팔분(八分)을 섞어서 만든 한자(漢字)의 서체(書體). 한(漢)나라 채옹(蔡邕)이 처음 만들었다고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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