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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 연구

≪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작성자낙민|작성시간16.01.07|조회수48 목록 댓글 0

≪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孔翔喆*
1)
▷ 目 次 ◁
1. 들어가며
2. ‘게임의 규칙’
3. 형식들
4. 공간들
5. 질감들
6. 바탕들
7. 머묾의 현상학
8. 맺음말
1. 들어가며
“무엇 때문에 최후의 영상이 사라지자마자 우리는 벌써 세상과 격절된 선경
(仙境)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는가? 감정의 파편이 둥둥 떠다니고 떨어지는 물
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세계이, 것만이 영혼 속에 가볍고 담담한 흔적
을 남길 수 있나 보다. 떠나야 하리라, 마지막 자막의 검붉은 글자가 끝나기
전에.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세계를 되돌아보려는 미련에 마음이 엉기면 떨치고
떠나질 못한다.”1)
*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수
1) Alain Bergala, <海上花>, Olivier Assayas 외, ≪侯孝賢≫ 203쪽, 臺灣國家電影資料
館, 臺北, 2000(인용한 대목은 유세종의 번역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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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베르갈라(Alain Bergala)는 영화 ≪海上花≫에 대한 평론을 이런 몽환적인
언어로 시작한다. 이 짤막한 평론 속 나른한 언어들은 이 영화 고유의 질감을 대변
해 주고 있는 것이지만, 굳이 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海上花≫는 충분히
의아하고 곤혹스런 영화다. 더군다나 1983년 자서전적 영화로 입문한 감독이 15년
만에 구축해 낸 미학적 수준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성장’이라고 하기엔 너
무 느닷없고,2) ‘도약’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담담하다.3)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서사나 현란한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담담하면서 시리고 아련하면서도 소
쇄하다. 실상(實相)이 허환(虛幻)의 맞은편에 있지도 않고, 생활이 미학의 건너편
에 있지도 않으며, 사물과 사람이 명징이 분할되지도 않는다. 사물은 제 자리를 주
장하는 법이 없이 응당 있어야할 자리에 그냥 놓여 있고, 사람은 그저 이런 사물의
질서 속을 시종일관 오고 가고 먹고 마시고 놀고 떠들 뿐이다. ‘생활’이라면 너무
무료하고 무기력하지만, 미학적 구조물로는 너무 무사하고 무작위하다. 대체 무얼
하자는 것일까?
막이 오르자마자 관객의 이목을 자극하는 것은 야연(夜宴)의 떠들썩함이다. 이
신(scene)은 무려 9분 이상을 쁠랑 세깡스(plan sequence)로 주행하다가 ‘海上花’
라는 제목에 겨우 자리를 내준다. 이는 마치 미학에 대한 생활의 인색한 양보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건네받은 미학이 정교하고 주밀하냐 하면 딱히 그렇
지도 않다. 카메라는 그저 네 장소―미학적 무게중심은 사실상 세 장소다―를 차례
대로 순례하며 완만한 순환의 궤적을 그릴 뿐이다. 이때 카메라는 두 축에 의지해
20도 내외의 패닝 쇼트(panning shot)로 좌우를 훑으며―이때 그의 카메라 워크
는 꼭 화가의 붓질을 닮았다―인내심 있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무얼
2) 侯孝賢의 미학적 ‘성장의 현상학’에 관해서는 공상철, <바람은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
―侯孝賢의 <風櫃來的人> 읽기>(≪중국어문논역총간≫ 제24집, 중국어문논역학회,
2009.1)를 참고 바람.
3) 이 점에 대해 Jean-Michel Frodon은 이렇게 말한다. “그 본인이나 그의 주석가들이
어떻게 진술하든 간에 그의 창작 역정에서 진정한 단절은 없다. 일련의 변화가 있을 뿐
이다. 이 변화의 성질은 미끄러짐에 가까운 것이지 도약이 아니다.”(Jean-Michel
Frodon, <在鳳山的芒果樹上, 感覺身處的時間和空間>, Olivier Assayas 외, ≪侯孝賢≫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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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 기다림 덕분에 영화는 38개의 쇼트, 즉 자기 완결적인
소우주를 창조해낸다. 이 숫자는 화폭으로선 넘칠 만한 편폭이지만, 영화의 구성단
위로선 영세하다 못해 위태로울 정도다. 게다가 다소 고전적인 방식으로 명멸하는
빛과 어둠―fade in/out―은 이 위태로운 우주들을 헐겁게 분할하면서 간신히 연
접해 주고 있다. 마치 시공의 존재 양태가 그런 것이라는 양.
막이 내리는 순간 떠오르는 느낌은 얼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선문(禪門)에서나
들려올 법한 ‘한 소식’ 같은 것이다. ‘앞으로 더 이상 영화 찍기 힘들겠구나…….’4)
아니, 어쩌면 ‘한 소식’에 대한 추구조차 소거되어 있는 듯도 하다. 아무튼 여기서
‘侯氏美學’이 정점을 치고 있다는 점만은 왠지 분명해 보인다. 다른 하나는 카메라의
형식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뤼미에르 형제의 마술 앞에
서 사람들은 나무를 보고도 경악했다”고 한다. “나뭇잎들이 움직였기 때문이다.”5)
그런데 ≪海上花≫는 이 사건 이래의 역사가 일구어낸 ‘마술’적 규칙의 경계를 자꾸만
서성이고 싶어 하는 듯하다. 이 서성임은 뭐랄까, 모색이라 하기엔 너무 래디컬하고
도전이라 하기엔 너무 성찰적이며 ‘탈주’라 하기엔 너무 근본주의적인 그런 미학적
실존성에 가깝다. 무엇을 되짚고 또 어디를 바라보고자 하는 것일까?
이 글은 ≪海上花≫에 어른거리는 이런 미학적 실존성에 관한 하나의 고찰이다. 문
제의식의 기본 가닥은 새로운 영화적 문법의 지평에 관한 侯孝賢 식의 성찰에 맞추
어져 있다. 여기서의 ‘새로운’이란 인식론적인 ‘발견’의 함의라기보다는 존재론적 의
미에서의 ‘사유되지 않은 것’에 좀 더 가깝다. 侯孝賢의 맥락에서 그것은 중국문화
의 내부, 그러니까 영화라는 형식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에 관한 중국
적 우주론의 실감과 무관하지 않다.
4) 이런 관점에서 이 이후 제작된 ≪밀레니엄 맘보(千禧曼波)≫(2001), ≪까페 르뮈에르(咖
啡時光)≫(2003), ≪쓰리 타임즈(最好的時光)≫(2005)의 성격을 가늠해 보는 일도 가능
하다.
5) 르 클레지오,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서문>, 로베르 브레송 ≪시네마토그래프
에 대한 단상≫ 9쪽, 오일환⋅김경온 옮김, 동문선,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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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임의 규칙’
≪게임의 규칙≫이란 어떤 영화입니까?
우리 시대 부르주아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게임
에는 규칙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게임에서
지는 거지요.6)
≪海上花≫에서 르느와르 식의 ‘게임의 규칙’을 찾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海上花≫를 읽는 데 일말의 참조체계를 제
공한다.
≪게임의 규칙≫에는 두 가지 차원의 규칙이 존재한다. 그 하나는 20세기 초반 유
럽 부르주아 사회에서 통용되는 비정한 규칙이다. 여기서의 규칙이란 “개인이 짓밟
히지 않기 위해 사회적 삶을 살면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7) 이 영화에 등장하는
9명의 주요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진지한 인물은 앙드레다. 그는 이 위선의 집단을
향해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게임의 규칙’
을 위반한다. 그 결과 그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희생자가 된다.
다른 하나는 카메라의 미학적 규칙이다.
“이 작품에서 르느와르는 스크린 밖/스크린
공간의 대립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즉, 쇼
트들의 절반 이상이 프레임 내에 들어오는
누군가로 시작하거나, 프레임을 나가는 누군가로 끝이 난다. 1930년대를 통해 발
전했던 르느와르 스타일은 스크린 바깥 공간의 활용과 항상 배우들의 움직임과 연
기를 자유롭게 돕는 트래킹, 패닝, 프레임 재구성에 따른 이동 카메라, 몇 명의 인
물들이 연계되어 서로 다른 행위 및 동시의 행위를 보여주는 그룹 쇼트에 대한 선
호, 전경과 후경의 행위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시계 심도의 사용, 정지된 이미
6) 앙드레 바쟁, ≪장 르느와르≫ 233쪽, 박지희⋅방혜진 옮김, 한나래, 2005.
7) 프랑수아 트뤼포, <≪게임의 규칙≫ 필모그래피>, 앙드레 바쟁, 위의 책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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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다는 카메라나 배우에 의한 움직임과 시간에 따라 유동하는 구도, 쇼트 내에서
배우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끊임없이 프레임의 경계선을 오가는 기법 등으로 특징 지
워진다.”8)
이와 같은 소위 ‘르느와르 스타일’에 대해선 이미 펑구이 출신의 천둥벌거숭이 소
년을 통해 충분히 연습을 거친 바 있다.(≪風櫃來的人≫) 그리고 생활과 미학이라는
두 차원의 ‘게임’이 갈마들고 포개지는 경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성찰을 거친 상태
다.(≪戱夢人生≫) 그런데 왠지 ≪海上花≫에선 좀 다른 차원의 ‘게임’ 공간이 조성되면
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규칙을 수립해 가고 있는 듯하다. 이 점과 관련하여 르
느와르 식 ‘게임’의 336 쇼트와 侯孝賢 식 ‘게임’의 38 쇼트는 자못 상징적인 데가
있다. 영화적 일반 문법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숫자는 지나치게 과다하거나 과소하
다. 그 결과 카메라의 액션 역시 지나치게 민활하거나 고요해진다. 이런 ‘과소’의 경
제학, 혹은 ‘고요’의 물리학을 통해 대체 무엇을 담아내겠다는 말일까?
도대체 영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화는 내가 세상을 대하는 예의입니다.9)
언제가 侯孝賢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이 조촐하
고 단단한 언어 속엔 적어도 세계의 배면을 엿본 자의 쓸쓸한 여유랄지 아니면 단
출한 넉넉함이랄 지 그런 것이 배어있다. 이를 테면 이런 세계 말이다.
“그때 위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는데, 그 시간과 공간이 분명히 느껴지는 거
예요. 그런 뒤 하나의 자아가 느껴지는 겁니다. 일종의 적막한 느낌, 적막한
어떤 심정 말예요. 신기한 건 이 인상이 아주 깊고도 심각했다는 겁니다. 그
뒤 영화를 찍어 볼 엄두를 낸 건 이런 측면과 아주 연관이 깊을 겁니다.”10)
8) 신강호, ≪영화 작가 연구≫ 31쪽, 월인, 2006.
9) ≪한겨례≫ 대담, 2001.3.16(이 기사는 조영현, <侯孝賢의 근대 시공간의 재현>, ≪중국
어문논역총간≫ 제22집, 중국어문논역학회, 2008.1에서 재인용)
10) 侯孝賢 대담, Jean-Michel Frodon, <在鳳山的芒果樹上, 感覺身處的時間和空間>에
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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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명백히 侯孝賢 식의 ‘규칙’에 관한 언설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의’란 통상적
인 의미에서의 예절이나 의례가 아니라,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세상사의 “참 재밌
다”는 관계성, 그 관계의 물리학 속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
면 시간과 공간이 빚어내는 다양한 형식들의 프로토콜(protocol) 속에 머묾 정도가
된다.
3. 형식들
“≪海上花≫에서 후 샤오시엔은 모든 출구를 봉쇄한다. 언제나 가옥구조를 활용해
온 그의 미장센에서 가족과 세계를 이어주었던 창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굳게 닫혀 있거나, 단 한 번 열리지만 바깥세상은 드러나지 않는다.……오색실로 한
뜸 한 뜸 수를 놓은 정교한 수예품 같은 화려한 세트 공간 안에서 세상사를 잊어버
린 듯한 후 샤오시엔은……사람들의 마음과 예법과 관계에만 치중한다.”11)
≪海上花≫는 형식들―이는 피상적으로는 경제적 후원 관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 놀이하는 장소다. 저마다의 형식들은 서로 마찰하거나 충돌하는 법이 없이 저
마다의 공간 속을 마냥 부유하고 있는 듯하다. 갈등은 이 형식을 추수하는 데서 오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형식적 규칙을 인정하지 않거나 침입하려 할 때 발생한
다. 沈小紅은 이 규칙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王蓮生에게 버림을 받고 끝내 낙오자
가 된다.
형식의 내함은 야연 신에서 좀 더 분명히 맥락을 드러낸다. 매번의 술자리―이
장면은 전체 38개의 쇼트 가운데 5개를 차지하면서 영화 전반의 리듬과 색조, 분
위기를 조율한다―에는 예외 없이 설을 푸는 자, 노는 자, 마시는 자, 먹는 자, 떠
드는 자, 듣는 자, 지켜보는 자가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자리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
니라 언설, 놀이, 술, 음식, 소음, 시선 그 자체다. 이 진공의 공간에서 ‘말하다’,
‘놀다’, ‘마시다’, ‘먹다’, ‘떠들다’, ‘듣다’ 등등의 동사는 동태성을 박탈당한 채 쉽사리
11) 이연호, <상하이, 전세기말 태평천국>, ≪KINO≫ 1998. 7.
≪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231
상태성으로 변질되고, 이런 상태
성은 곧잘 양식성으로 고착화 된
다. 카메라는 냉정한 시선으로 이
변질과 고착의 과정을 그저 묵묵
히 담아낼 뿐이다. 증발하는 기의
와 양식성의 만찬, 이는 영화 전
반을 관통하는 기조다. 이 공간에
서는 으레 손을 닦고 으레 밥을 먹고 으레 물담배를 피고 또 으레 아편을 태운다.
하다못해 질투나 달램이나 노여움도 으레 그래왔다는 듯 도무지 두께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일한 두께는 어둠, 쇼트와 쇼트를 절합(切合)하는 어둠뿐인 듯하다.
이러한 양식성을 위협하는 시도가 안팎으로 두어 차례 있긴 하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외부를 자각하게 만드는 유곽 바깥에서의 사고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소
동도 일시적인 술렁임을 가져오는 데 그칠 뿐 이내 양식들의 만찬 속으로 포획되고
만다. 또 한 차례 시도는 내부로부터 온다. 제목이 오른 뒤 첫 장면에서 沈小紅의
기생어미는 張蕙貞에게 나들이를 하는 王蓮生을 향해 이 게임의 법칙을 재차 주지
시킨다. “유녀가 한 손님과 관계를 해야 한다는 법이 없듯이, 손님 역시 한 유녀와
관계를 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王蓮生은 沈小紅에게 분명 ‘약속’을 했
다. 그러므로 王蓮生의 행위는 명백히 규칙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 영화의 형
식적 규칙에 관한 준엄한 환기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이 공간에서의 생활이 의사
(擬似) 생활임이 드러난다. 손님들 대부분은 타지에서 온 관리―王蓮生은 廣東에
서, 羅子富는 山東에서 파견 나온 관리다―나 사업가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공간
은 엄연한 가정이기도 하고 단순한 놀이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이원적 생활을 결
합시켜 주는 유일한 근거는 형식적 규칙인 것이다.
王蓮生의 이런 규칙 위반에 대해 沈小紅은 복수를 한다. 경극 배우와 가진 그녀
의 하룻밤은 생활의 관점에서는 분명 노동이지만, 형식적 규칙의 관점에서는 외도
나 불륜에 가깝다. 이 장면을 목격한 王蓮生이 집기를 부수며 난장을 부리는 대목
은 이 영화의 민감한 급소다. 사물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은 곧 이 영화의 전제
를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활동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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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대목의 편집 리듬도 잘고 급박
하게 쪼개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王蓮生의 원(原) 생활로의 복귀, 즉 이 게임 공
간으로부터의 퇴출이다.
4. 공간들
잘 알려진 대로 ≪海上花≫는 19세기 중반 상하이 유곽을 배경으로 쓴 韓子雲의
≪海上花列傳≫을 張愛玲이 번역⋅각색한 원고를 기초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소설 속
의 인물과 관계만 남기고 그 속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는 방식을 취한다.
≪海上花≫ 촬영은 선생의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단계의 시작이
라고 말할 수 있을 런지요?
얘기하자면 깁니다. 일본의 히라토(平戶)라는 도시는 타이완의 운명과 연관
이 깊습니다. 거기에 鄭成功이라는 중요한 인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국
인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평생을 일본에서 살았어요. 청나라 때 그는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게다가 군대를 이끌고 타이완에 있던 네덜란드 사람들을 내쫒았어
요. 그런데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히라토가 저에게 鄭成功에 관한 영화 한 편
을 찍자고 제의를 해 온 거예요. 그래서 그에 관한 자료를 섭렵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 양반이 허구한 날 기방을 드나들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
뒤 자연스레 韓子雲의 소설을 보게 되었는데 아주 재미난 거예요. 게다가 그가
기방을 묘사하는 방식이 제 영화와 많이 닮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변을 다
른 일을 멈추고 ≪海上花≫를 찍게 된 거죠. 제 목적은 그 시대 일들의 세부 묘
사가 아니었어요. 핵심 초점은 그 여인들의 몸과 그녀들의 개성, 그리고 그녀
들의 생활방식에 있었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보니 그녀들의 처지가 요즘 여성들과 많이 닮은 거예요. 그
녀들은 그 시대 여인들과 달랐어요. 기녀들에겐 자기 생활공간이 있었을 뿐 아
니라 남자를 선택하는 권력도 있었어요. 마지막 대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건, 그녀들이 장악할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12)
12) Emmanuel Burdeau, <侯孝賢訪談>, Olivier Assayas 외, ≪侯孝賢≫ 120~2쪽.
≪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233
“그녀들이 장악할 수 있는 공간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느냐 하는
것”, 이런 문제의식의 맥락에서 영화는 세 그룹의 ‘의사(擬似) 가족’13)을 만들어낸
다.
이 영화의 가장 토대가 되는 공간은 公陽里 周雙珠의 기방이다. “周雙珠 기방은
이 영화의 ‘바탕색’이자 기원이라는 공간적 생태의 완정한 ‘모델’이다. 만약 기원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애정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꽃봉오리라 할 수 있다면 周雙珠
기방에 드러나는 일반 ‘長三堂子’
의 가정적 분위기는 해저 깊숙한
곳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14)
이런 ‘가정적 분위기’는 그녀가
기생어미의 친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15)
이는 侯孝賢의 다음과 같은 입
장, 즉 “제가 빚어내려는 건 인물이 아니라 분위기입니다”16)라는 말을 염두에 둔다
면 매우 중요한 공간적 장치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영화에서 벌어지는 분쟁―작게
는 周雙珠 기방 내에서 벌어지는 雙玉과 손비의 알력에서부터 크게는 沈小紅의 기
방에서 불거지는 王蓮生과 沈小紅의 갈등까지―의 흐름을 내밀히 주도하고 수렴한
다. 이 공간에서 그녀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무색무취한듯하지만 전면적이고
13) 진성희, <후효현의 ≪海上花≫ 읽기>, 중국어문논역학회 2008년 추계학술대회 발표문.
14) 朱天文, ≪最好的時光―侯孝賢電影記錄≫ 174~5쪽, 山東畵報出版社, 2006.
15) ≪海上花≫에 등장하는 기녀들은 당시 기녀 사회에서 존재했던 네 등급, 즉 書寓, 長
三, 么二, 野鷄 가운데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長三이다. 胡根喜에 의하면, 당시 상
하이 기방가에서는 書寓와 長三까지가 고급 기녀 축에 속했고, 野鷄는 사실상 창기
취급을 받았다. 가장 높은 단계인 書寓는 1860~70년대에 이르면 거의 소멸되어 長
三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속했다.(胡根喜, ≪老上海四馬路≫ 55쪽, 學林出版社,
2001) 근대 시기 상하이 기루의 변모양상과 이것의 근대적 의미에 관해서는 김수연,
<청루를 통해 본 근대성 증후>(≪중국소설논총≫ 제22집, 중국소설학회, 2005)를 참조
할 수 있다.
16) Emmanuel Burdeau, <侯孝賢訪談>, Olivier Assayas 외, ≪侯孝賢≫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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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듯하지만 주밀하다. 그래서 이 공간을 구성하는 사람의 관계, 나아가 배치된
가구의 질서, 하다못해 창살의 문양조차 균형감 있고 안정적이다.
이에 비해 薈芳里 沈小紅의 기방은 周雙珠 기방의 대척점에 있다. 그래서 분위기
의 흐름이 가장 불균형적이고 불안정하다. “그녀의 솔직하고 분방한 성격이 그녀를
이 업종에서 실패자로 만들고 만다.”17) 沈小紅과 王蓮生의 내면적 친밀성은 이 영
화에서 가장 진실하고 내밀하고 열렬하지만 끝내 의사소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이 공간에서 그녀의 권력 행사 방식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다. 그래서 드러나는 둘
의 관계 양상도 마지못하거나 파행적인 형태로 극단화된다.
尙仁里 黃翠鳳의 기방은 좀 독특하다. “黃翠鳳은 신랄하고 수완이 뛰어나며 모든
일에 자신만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이 업계에서의 별종이다.”18) 그래서 그녀의 권력
행사 방식도 시원시원하고 주도적이다. 그녀는 오히려 기생어미의 생활태도를 구박
하기도 하고 情人인 羅子富를 휘어잡기도 한다.(사실 이 둘은 정인이라기보다는 금
전적 계약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관계다.) 그래서 이곳의 사물 배치는 사뭇 패셔너
블하고 심지어 로코코적이기까지 하다. 하다못해 이 공간의 창은 전통적인 문양의
격자가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그녀로 하여금 기녀
생활을 마감하고 羅子富의 첩이라는 또 다른 일상으로 진입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의도적으로 세 그룹의 ‘의사 가족’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侯孝賢
은 무엇을 이끌어내고 싶어 하는 것일까?
5. 질감들
侯孝賢이 만들어내는 ‘의사 가족’의 범주에는 사람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사물까지도 엄연한 가족이 된다. 38쇼트 거의 매 장면
공간 배치의 축이 되는 것은 두 개의 등잔이다. 이 등잔들은 각각 공간의 감성적
17) 朱天文, 위의 책 175쪽.
18) 朱天文, 위의 책 176쪽.
≪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235
리듬과 상태에 따라 하나가 되기도
하고 둘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두
축이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되는 곳은
야연 공간이고, 그 다음은 周雙珠의
공간이다. 이에 반해 가장 불안하게
동요하는 곳은 沈小紅의 공간이다.
沈小紅의 공간에서 생활과 형식이
긴장을 잃어버리고 한 쪽으로 쏠릴 때 대부분 등잔은 하나다. 그러다가 다시 이 긴
장이 복원되면 대개 등잔은 두 개로 변한다. 王蓮生의 심야 난장 장면에서 제일 먼
저 쓰러트리는 것도 바로 이 등잔이다. 등잔이 깨진 뒤의 어둠은 유난히 길고도 깊
다. 여기서 어둠의 음각에 의해 부각되는 것은 빛의 양각성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scene)은 張蕙貞의 공간이다. 거기서 王蓮生은 홧김에 洪善卿에게 張蕙貞과의
혼인 계약을 의뢰한다. 여기서 모든 형식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래서 등잔은
존재하되 무용하다. 왜냐하면 한낮의 자연광이 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이는 동시
에 이들 관계의 파행을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海上花≫에서는 사람과 사물 사이의 여백, 그 여백을 채우고
있는 공기도 가족이 된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주인공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
가 공간에 관한 영화가 아님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시간은 공간을 경
우하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무드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
의 욕망은 철저하게 외부의 시
선을 견지함으로써 감정을 차
단하는 대신에 공기의 흐름에
집중한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사운드는 더욱 두드러지고 물
질적인 감각은 일깨워진다. (매
번 그릇이 부딪히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시간의
체험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은 그야말로 무색무취한 것으로 다루어
236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6輯
진다. 시종일관 낮게 깔리는 음악이 결코 분위기를 장악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
에서이다.…… ≪海上花≫에서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얼굴을 보이지 않으며 마치 장식
처럼 그 장소에 그렇게 붙박혀 있다. 화려하고 몽환적인 색채에 조명은 감정을 억
누르고 단지 분위기만을 집요하게 잡아낸다. 그리하여 영화는 점점 이야기와 멀어
지고, 현실의 공기는 그토록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숙명적으로 늘 현재일 수
밖에 없는 영화에 대한, 그리고 영화적인 시간에 대한 영화이다.”19)
이는 철저히 의도된 것이다. 이 의도성을 侯孝賢은 이런 식으로 해명한다. “이 모
든 건 영화의 질감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모사와도 같은 새로운 생활적 질감의 대
지가 창조되어 나오는 것, 이것이 바로 영화의 바탕색입니다.”20) 보이지 않는 시간
을 질감으로 체험하고 사유하기(體認). 여기서의 질감은 시간보다 훨씬 더 총체적
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간은 질감의 소여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미술
자문을 맡았던 阿城은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영화의 미장센은 질감이다. 인물은 상이한 질감들의 환경 속에서 이러저러
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큰 소품 말고 자잘하고 사소한 소품이 밀도를 깔아주고
인물의 일상적 성격을 깔아준다.…… ≪海上花≫ 속의 기녀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환경이 바로 그녀들의 집이다. 고금의 가정은 환경의 밀도라는 측면에서 대동
소이하다. 따라서 ≪海上花≫의 환경은 세속화된 로코코 양식이자 촉광의 현란
함이며 그러모아 닿을 만한 조계의 욕정이자 깜박이는 여적(餘適)이다.21)
이런 ‘질감’과 ‘질감들의 환경’, 그리고 ‘환경의 밀도’는 이 영화의 출발점이자 종
착점이다. 이처럼 민감하고 세밀한 장치 덕택에 “≪海上花≫에서 비밀은 존재하지 않
는다. 늘 덩어리처럼 뭉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
는 것처럼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
들의 체험은 서로 이어져 순환하며 거대한 기후를 형성하고 있다.”22) ‘순환’의 사슬
19) 최은영, <후 샤오시엔의 ≪해상화≫와 왕가위의 ≪화양연화≫―벨 에포크의 무드>, ≪KINO≫,
2001. 12.
20) 朱天文, 위의 책 302쪽.
21) 朱天文, 위의 책 303쪽.
≪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237
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기후’는 마치 ‘실재하는 지속(durée réelle)’―이는 앙리 베
르그송(Henry Bergson)의 용어다―처럼 흘러 “우리의 의지의 도움 없이 빛 가운
데로 들어와, 그것이 불러일으킨 현재의 순간을 밀어젖히려 한다.”23)
6. 바탕들
≪海上花≫에서 모든 일은 ACTION 전이나 뒤, 혹은 근방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곧 ACTION이 하나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네요.
그렇습니다. ACTION은 제가 관심을 갖는 게 아닙니다. 제 주의력은 늘
저도 모르게 다른 사물들에 의해 빨려 들어가곤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그 당시 남긴 흔적이고 이 흔적 속에서의 사람의 움직임입니다.
저는 엄청난 기력을 들여 이 흔적을 추적하고 있고 사람의 자태와 정신적 풍
모(神采)를 포착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에겐 이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
분입니다.24)
이 답변은 사실상 ‘侯氏美學’의 매니페스토(manifesto)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여
기서 제기된 ‘시간과 공간이 그 당시 남긴 흔적’, ‘이 흔적 속에서의 사람의 움직임’,
‘사람의 자태와 정신적 풍모’ 등등은 ‘侯氏美學’의 본령, 즉 정동적(靜動的) 화해 미
학의 본령에 해당한다. ‘侯氏美學’에서 ≪海上花≫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도 바로 이
어름에 있다.
흥미로운 것은 ≪海上花列傳≫을 ≪海上花≫로 번역⋅각색한 張愛玲이 이런 대목을
주목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이 작업 과정에서 이런 말들을 남긴 바 있다.
“나는 소박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그저 현대인의 기지와 장식을 묘사함으로
써 인생의 소박한 바탕을 도드라지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유미의 결점은 그 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미가 바탕이 없다는 데 있다.” “인생의 안온함을 바탕 삼아 인
22) 최은영, 위의 글.
23) 오영환,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 72쪽, 통나무, 1997.
24) 朱天文, 위의 책 299쪽.
238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6輯
생의 비약을 묘사한다. 이 바
탕이 없으면 비약은 그저 부
유하는 포말일 뿐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작품들은 사람들에
게 흥분을 줄 뿐 계시를 주진
못한다. 다시 말해 실패는 이
바탕을 장악하는 법을 모르는
데 있는 것이다.”25) 여기서
張愛玲이 반복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바탕(底子)’은 侯孝賢이 말하는 ‘시간과 공간
이 그 당시 남긴 흔적’과 이 속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자태와 정신적 풍모’에 다름
아니다.
일견하기에 이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하는 ‘아우라(aura)’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는 ‘아우라’보다 훨씬 더 내재적이고 실질적인 그 무엇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현상학적 맥락에서의 ‘지향적 움직임에 선행하는 원초적 바탕’
같은 것이다. 이를 테면 “그것은 방의 분위기와 같은 것이다.”26) 다시 말해 “그것은
‘사물이 암시하는, 있을 수 있는 국면의 무한함, 그리고 거기에 열리는 연결과 통로
의 무한함을 가리키는 지시들의 얼크러짐’에 선행하면서 이러한 것에 심각한 실질성
을 부여하는 것이다.”27)
25) 朱天文, 위의 책 300쪽.
26)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물건, 잘 구워진 고기, 포도주의 향기, 이러한 것들은 바탕에
대하여 표상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험이다. 이것들의 바탕은 무엇인가?……어떤 감
각들은 특히 특정한 지각작용에 대해서보다도 우리의 행동 전체에 대한 바탕을 이룬
다. ‘부드러운 옷자락처럼 감싸거나 동화 속의 궁전의 둥그런 방의 푸른 별과 같이 감
싸는 냄새’가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바탕은 ‘우리의 행동 환경의……모든 표상과 사물
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결정한다.’ 그것은 방의 분위기 같은 것이다. 결국 이 바탕들
은 전체적으로 ‘자아와 자아가 만나는 사물들에 대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김우창,
<심미적 이성>, ≪심미적 이성≫ 364쪽, 솔, 1992)
27) 김우창, 위의 글, 위의 책 365쪽.
≪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239
7. 머묾의 현상학
거리의 문제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건 孔子가 말한 ‘述而不
作’과 같은 것으로, 정리하고 서술만 하지 비판하고 간섭하거나 무슨 내용을
첨가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비록 주관적이긴 하지만, 저는 한 생명의 전모
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강구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영화를 찍을 때에
도 자각하진 못했지만 이런 태도가 드러나곤 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중국의
전통 희극과 소설을 많이 보아온 터라 은연중에 이런 습관이 양성되었던 거
죠.……중국 전통에서 인간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이 역시 제 영화의 태도가
되어버렸습니다.28)
여기서 侯孝賢이 말하고 있는 서늘한 ‘거리’는 비단 롱 테이크(long take)로 대
변되는 그의 카메라 워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海上花≫에 이르면 이 ‘거리’
는 카메라의 렌즈로부터 시공 자체로 스며들어 빛과 어둠, 사람과 사물, 말과 정적
을 내밀하게 절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체와 개체, 개체와 개체를 허허롭게 통섭
하고 있다.
≪海上花≫는 어떤 점에서 둘둘 말린 영화다.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그냥 봐선 안 되고 펼쳐 보아야 한다. 그것은 흡사 독립적인 38폭의 화폭이 끊어질
듯 이어질듯 만들어내는 거대한 두루마리(橫卷)을 연상시킨다. 주지하는 대로 두루
마리는 공간에 관한 매체이면서 동시에 시간에 관한 매체다. 전체 그림은 서사의
리듬과 감상자의 시계 폭에 맞추어 몇 개의 하위 프레임(sub-frame)으로 구성되
어 있다. 따라서 감상자는 한 번에 그림의 전모를 볼 수 없다. 둘둘 말린 두루마리
를 어깨 넓이만큼 펼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화폭의 프레임 하나하나를 따라갈
뿐이다. 감상의 리듬과 속도는 순전히 감상자의 몫이다. 이런 점에서 두루마리는
“시각예술의 ‘사적인 매체’의 극단적인 형식”인 셈이다. 이러한 한 차례 순례가 마무
리되었을 때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역 방향으로의 순례도 가능하다.29)
≪海上花≫는 ‘실재하는 지속’과 존재하는 것의 ‘바탕’ 위에 38개의 독립적인 쇼트
28) Emmanuel Burdeau, 앞의 책 92쪽.
29) 이에 관해서는 우홍, ≪그림 속의 그림≫(서성 옮김, 이산, 1999) 61~73쪽을 참조.
240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6輯
를 얹힌 ‘미학적 집’이다. 이 ‘소우주’에선 전체와 개체가 상충하지 않고 단절과 연속
이 대립하지도 않으며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도 않는다. 이 속에서 빛과 어둠은 희
붐하니 얽혀들고 사람과 사물, 말과 정적 역시 나른히 말려든다. 여기서 하위 프레
임 하나하나는 제 자리를 잃은 채 부유하지 않으면서 고착적인 정주(定住)를 애써
주장하지도 않는다. 프레임 하나하나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 역시 동일한 거주의 양
식을 갖는다. 이런 존재 양식 내지 상태성을 굳이 이름 하자면 얹혀 있음 내지 머
묾 정도가 된다.30)
8. 맺음말
≪海上花≫가 펼쳐내는 ‘지속’과 ‘바탕’의 토대를 현실 역사의 지평으로 전이해 보자.
1983년 澎湖 열도의 한 어촌 마을에서 출발한 그의 미학적 순례가 高雄, 臺南을 거
쳐 臺北으로 응축되다가 다시 上海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정학적 문제의식은 이 난해
한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자그마한 실마리가 될 런지도 모른다. 이 궤적이 侯孝賢이
쓰고 있는 ‘대항 역사(count-history)’의 줄기를 구성하고 있다면, ≪海上花≫가 기억
30) ≪海上花≫가 구축하는 ‘미학적 집’은 이런 점에서 客家族 전통 토루(土樓)의 순환적 군
체 양식을 연상시킨다. “기하학적 형태의 단순한 벽으로 둘러싸인 객가인의 토루는 하
나의 소우주이다. 토루는 자연이 지닌 공간구조 즉 우주의 공간구조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객가인의 토루는 마치 두터운 껍질로 둘러싸인 과일과 같다. 황토색의 진흙 벽
은 요새와 같이 견고한 외관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내부로 들어가면 씨를 가진 과일
속과 같이 섬세하게 짜인 목구조의 개실군(個室群)이 중정을 둘러싸고 자리하는데,
이 중정은 다시 조당을 부드럽게 감싼다. 또한 天空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태양광은
조당과 함께 공간의 구심성을 응축시켜 토루의 공간적 완숙성을 강화시켜 준다. 조당
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마치 소우주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거대한 오페라 극장 무대
의 가운데 서 있는 것과 같은 강렬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상층의 주마랑에
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개실이라는 소공간에서 대공간으로 확장되는 시선의 움직임을
통해, 종족의 일체감을 지각하는 동시에 개체의 존재가 편안해짐을 느끼게 된다.”(손
세관, ≪깊게 본 중국의 주택≫ 218쪽, 열화당, 2002) 이런 존재 양식은 북방식 사합
원의 봉폐된 구조에서 오는 존재 양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241
해내는 ‘실재하는 지속’과 존재하는 것의 ‘바탕’은 이 역사의 ‘공동의 자리
(common-ground)’를 구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공동의 자리’ 위에서 臺灣과
大陸은 서로를 허여하며 서늘히 머물고 있다. ≪海上花≫는 이런 머묾에 관한 물음이
아닐까.
≪海上花≫는 侯孝賢 식 ‘게임의 규칙’에 관한 영화다. 이 규칙은 기존의 영화적 실
험에서 시도된 방식과는 달리 극도의 ‘과소’와 극단적인 ‘정적’으로 모색된다. 이 ‘과
소’와 ‘정적’의 형식들 속에서 공간은 질감으로 경험되고, 이 질감은 시간으로 체험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공간성에 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시간성에 관한 영화
다. 이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흔적’을 侯孝賢은 쫒아가고 싶어 하고, 이 시공
속에 ‘실재하는 지속’과 ‘바탕’을 포착해내고 싶어 한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미학
적 실존성의 본령이면서 동시에 그가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의 핵심이다. 이 ‘흔적’
과 ‘실재하는 지속’, 그리고 ‘바탕’ 속에 머묾, 그가 말하는 ‘세상을 대하는 예의’란
어쩌면 이런 사태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42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6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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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上花≫, 그 머묾의 현상학 243
≪海上花≫, 其停留的現象學
孔翔喆
中文提要
≪海上花≫, 既是‘侯氏美學’的结晶又是‘底子’电影。 不仅如此, ≪海上花≫也是侯孝
贤式的‘游戏规则’电影中的一部。 这‘规则’与既存的电影实验方式不同, 可看作是极度的
‘寡小’与极端的‘靜寂’。 在这‘寡小’与‘靜寂’的形式里, 我们可以把空间作为质感去体验,
又可以把这质感体会成时间。 所以该电影既是一部关于空间性的, 也是一部关于时间性
的电影。 侯孝贤想追寻这空间与时间所创造出来了的‘痕迹’, 想捕捉这时空里实存的‘純
粹持續’的实在。 这就是他所想要的美學實存性的本領, 同时也是他想创作的电影的核
心。 这痕迹与实在里的停留, 他所说的‘对世界的礼仪’也许就是说这样的世界。
關鍵詞: 侯氏美學, 底子, 擬似家族, 停留
투고일: 2009. 11. 18. / 게재 확정일: 2010. 1. 13. / 최종 수정일: 201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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