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金 敏 鎬2)
**
1. 머리말
2. 明代以前 소설⋅희곡 목록
3. 明代 소설⋅희곡 목록
4. 淸代 소설⋅희곡 목록
5. 기타 소설⋅희곡 관련 목록
6. 나가며
< 目 次 >
국문제요
조선 시대에는 1년에 한 번 이상 북경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외교 사절의 행차, 즉 燕行
이 있었다. 조선 시대 연행을 다녀온 사신들은 외교적인 업무만 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서적
들을 살펴보고, 목록을 작성하고, 또 구입을 하였다. 이에 중국 서적의 조선 전파를 연구하
려면 연행록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연행록 관련 연구가 최근 활기를 띄고
는 있지만 연행록에 기록된 소설⋅희곡 목록과 관련 상황을 전문적으로 살펴 본 연구는 아
직 눈에 띄지 않는다. 본 논문은 18세기 연행록에 등장하는 소설⋅희곡 목록 관련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고전 소설⋅희곡의 조선 유통에 대한 지평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이번
* 이 논문은 한림대학교 교내연구비에 의해 수행되었음.(HRF-201404-001)
** 翰林大學校 中國學科 敎授.
68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연구 결과 18세기 연행록에 보이는 명대 이전 소설⋅희곡 작품은 20종, 명대 작품은 19종,
청대 작품은 13종의 관련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5장 기타 소설⋅희곡 관련 목록’
에서는 저자, 시대와 내용이 미상인 소설 작품들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소설 및 소설⋅희곡
관련 용어들의 등장을 소개하였다. 특히 ‘소설’이란 용어가 나온 부분을 통해 당시 중국의
설서와 貰冊 상황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하였고, 戱劇의 공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
는지 홍대용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았다.
중심어: 연행록, 소설, 희곡, 목록, 중국, 조선
1. 머리말
본 연구자는 최근 燕行錄을 비롯하여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 관련 기록에 관심을 갖
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소설 관련 자료들이 연행록에 적지 않게 수록되
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국 고전소설의 한국 전파 및 출판과 관련하여 박재연, 민관동,
김명신 등이 이미 많은 연구 성과를 낸 바 있다.1) 그러나 아쉽게도 연행록에 수록된 중국
소설 목록에 대한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중국 소설을 포함한 중국
문헌들이 조선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 통로로 매년 1회 이상 있었던 조선 사신의
북경 使行, 즉 燕行을 들 수 있다. 연행록이란 바로 이 연행을 다녀 온 사신들의 기록으로
여기에는 중국 문헌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들이 기록되어 있다. 마침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신
익철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2014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에서 《18세기
연행록 기사 집성 –서적⋅서화편》(이하 《연행록 –서적⋅서화편》)이 출판되었다. 600 종류
가 넘는 연행록 모두를 살펴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이 논문에서는 기본적으로 《연
행록 –서적⋅서화편》에 수록된 중국 소설⋅희곡 목록과 그와 관련된 상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2) 이 논문에서는 명대이전 소설⋅희곡 목록과 명대 소설⋅희곡 목록, 그리고 청대 소
1) 이와 관련하여 《중국고전소설비평자료총고 –국내 자료》(민관동⋅김명신 공저, 서울: 학고방,
2003.), 《중국 고전소설의 출판과 연구자료 집성 –한국편》(민관동, 서울: 아세아문화사,
2008.), 《中國古典小說在韓國的硏究》(閔寬東, 上海: 學林出版社, 2010.), <國內의 中國古典小
說 飜譯 樣相>(민관동, 《中國語文論譯叢刊》 第24輯, 2009. 1.), 《중국고소설과 문헌학》(박재연,
서울: 역락, 2012.), 《朝鮮時代 中國古典小說의 出版本과 飜譯本 硏究》(민관동⋅김명신 공저,
서울: 학고방, 2013.) 등의 연구 성과가 있다.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69
설⋅희곡 목록 및 기타 소설⋅희곡 관련 목록들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연행록에 수록된 중국
소설⋅희곡의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연행록에 기록된 중국 소
설⋅희곡 관련 기록들 중 의미 있고, 흥미로운 상황들을 소개하려 한다. 이 논문이 앞선 연
구자들의 성과에 벽돌 하나 얹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바란다.
2. 明代以前 소설⋅희곡 목록
《연행록 –서적⋅서화편》에 수록된 명대 이전 소설⋅희곡 목록을 살펴보면 모두 20종이
있다. 《산해경》을 필두로 하여 《박물지》, 《수신기》, 《세설신어》, 《술이기》 같은 漢代 및 六朝
시기의 작품들과 《대당신어》, 《속신선전》, 《유양잡조》 같은 唐代 작품들, 《강인기잡지》, 《동
파지림》, 《태평광기》, 《풍창소독》, 《권유록》, 《민수연담록》, 《상산야록》, 《후청록》, 《계신잡
지》(송말원초) 같은 송대 작품들, 《서상기》, 《설부》(원말명초), 《철경록》(원말명초) 같은 원
대 작품들이 있다. 아래 명대 이전 소설⋅희곡 목록을 ‘표 1.’로 정리하였는데, 그 작품들이
수록된 연행록의 출처와 함께 작가 등 관련 사항도 밝혔다.
2) 중국 고전소설, 특히 文言小說의 경우 현대적 의미의 소설로 분류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이
논문에서 인용한 소설⋅희곡 작품들 중 문언소설은 기본적으로 寧稼雨의 《中國文言小說總目提
要》(濟南: 齊魯書社, 1996)를 기준으로 수록⋅분류하였으나, 일부 작품의 경우 《중국문언소설
총목제요》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소설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연행록에 수록된 소설⋅희
곡 상황 파악에 도움을 주기 위해 ‘5장 기타 소설⋅희곡 관련 목록’에 소개하였음을 밝힌다.
번호 서명 작가 시기 수록 연행록 (연대) 기타
1 《山海經》미상 상고
李宜顯, 《庚子燕行雜識》 하(1720).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6월 24일, <鵠汀筆談>.
徐浩修, 《燕行記》 1790년 7월 16일.
志怪
2 《博物志逸篇》
張華
(232-300)
西晉
朴趾源, 《熱河日記》 <銅蘭涉
筆>(1780).
장화
《박물지》
중 빠진
내용을
뜻함.
3 《搜神記》
干寶
(?-351)
東晉
韓祉, 《兩世燕行錄》 1713년 12월 23
일.
志怪
* 표 1. 명대이전 소설⋅희곡 목록
70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徐浩修, 《燕行記》 1790년 6월 27일.
4 《世說新語》
劉義慶
(403-444)
六朝 宋
李心源, 《丁亥燕槎錄》 1767년 2월 1
일.
志人
5 《述異記》
任昉
(460-508)
梁
朴趾源, 《熱河日記》 <黃圖紀略> <洋
畵>(1780).
志怪
6 《大唐新語》劉肅唐
朴趾源, 《熱河日記》 <銅蘭涉
筆>(1780).
志人
7 《續神仙傳》沈汾당 朴趾源, 《熱河日記》 <避暑錄>(1780).
葛洪의
《神仙傳》을
본떠 지은
것으로
여겨지나
미상.
8 《酉陽雜俎》
段成式
(803-863)
당
朴趾源, 《熱河日記》 <銅蘭涉
筆>(1780).
傳奇
9 《江隣幾雜志》
江休復
(1005-1060)
宋
朴趾源, 《熱河日記》 <金蓼小
抄>(1780).
志人
10
《東坡志林》蘇軾송
李宜顯, 《壬子燕行雜識》 하(1732).
朴趾源, 《熱河日記》 <忘羊錄>, <銅蘭涉
筆>(1780). 雜俎
=《蘇黃志林》蘇軾송
朴趾源, 《熱河日記》 <銅蘭涉
筆>(1780).
11 《太平廣記》
李昉
(925-996)
송
李宜顯, 《壬子燕行雜識》 하(1732).
朴趾源, 《熱河日記》 <避暑錄>(1780).
雜俎
12 《楓窗小牘》
袁褧
(?-?)
송
朴趾源, 《熱河日記》 <金蓼小
抄>(1780).
志人
13
《倦遊錄》
=《倦遊雜錄》
張師正송
朴趾源, 《熱河日記》 <金蓼小
抄>(1780).
志人
14 《澠水燕談錄》王闢之송 朴趾源, 《熱河日記》<金蓼小抄>(1780). 志人
15 《湘山野錄》文瑩송 朴趾源, 《熱河日記》<鵠汀筆談>(1780). 雜俎
16 《侯鯖錄》趙令畤송
朴趾源, 《熱河日記》 <金蓼小
抄>(1780).
雜俎
17 《癸辛雜識》周密송말원초
朴趾源, 《熱河日記》 <金蓼小
抄>(1780).
雜俎
18 《西廂記》王實甫원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關帝廟
記>, <關內程史 1780년 7월 30일.
白景炫, 《燕行錄》 1791년 1월 15일.
雜劇
19 《說郛》
陶宗儀
(1329-1412?)
원말명초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월 3일.
雜俎
20
《輟耕錄》
=《南村輟耕錄》
陶宗儀
(1329-1412?)
원말명초
朴趾源, 《熱河日記》 <口外異聞> <獅
子>(1780).
徐浩修, 《燕行記》 1790년 8월 26일.
雜俎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71
위의 작품들 중 《산해경》은 이의현의 《경자연행잡지》 하(1720), 박지원의 《열하일기》
<도강록> 1780년 6월 24일조와 <곡정필담>, 그리고 서호수의 《연행기》 1790년 7월 16일조
에 보이고 있다. 그 중 《열하일기》 <곡정필담>을 보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지정이 말했다. “서양 사람들이 기록한 것을 믿는다면 개의 나라, 귀신의 나라,
모가지만 있어 날아다니는 나라,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람의 나라, 팔뚝이 하나인
사람의 나라, 눈이 하나인 사람의 나라 등등 별의별 기괴한 나라들이 있어서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곡정이 말했다. “비단 서양 사람의 기록만이 아니라, 우
리의 경전에도 나와 있는 나라입니다.” “무슨 경전인가요?” 내가 물으니, 곡정이 답
하였다. “산해경입니다.”[志亭曰: “以西人所紀為信, 則果有狗國, 鬼國, 飛頭, 穿胸,
奇肱, 一目, 種種奇怪, 非情量所及.” 鵠汀曰: “不特西人所紀,於經有之.” 余問: “何
經?” 鵠汀曰: “《山海經》.”]3)
위의 대화를 보면 박지원이 미처 《산해경》의 존재를 떠올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러나 박지원은 이미 《산해경》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는 그의 《열하일기》 <도강록> 1780
년 6월 24일조를 보면 알 수 있다.
《唐書》를 살펴보면, “고려의 馬訾水는 靺鞨의 白山에서 나오는데, 그 색깔이 마치
오리의 머리처럼 푸르기 때문에 鴨綠江이라고 부른다.”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백산
이란 長白山이다. 《산해경》에는 장백산을 不咸山이라 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白頭
山이라 부른다.[按《唐書》: 高麗馬訾水, 出靺鞨之白山, 色若鴨頭, 故號鴨綠江. 所謂
白山者, 即長白山也, 《山海經》稱不咸山, 我國稱白頭山.]4)
이처럼 박지원은 《산해경》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산해경》에 수록된 내용
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蘇軾의 《동파지림》은 이의현의 《임자연행잡지》 하(1732)에 이의현이 사들인 책
목록에 보이고 있고, 또 박지원의 《열하일기》 <망양록>에도 보인다.
연암이 말했다. “그 문제는 동파 소식이 지은 《동파지림》에 실려 있지요. 고려는
아무 죄도 없었는데 소동파는 고려를 아주 증오했습니다.” 고려의 명신 김부식과 김
3) 박지원, 《열하일기》 <곡정필담>.
4) 박지원, 《열하일기》 <도강록> 1780년 6월 24일.
72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부철은 소식과 소철을 사모하여 이름마저 그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도 소동파는
몰라주었습니다. 곡정이 말했다. “소동파가 황제께 올린 글에서 논하기를, 고려가
조공을 바치는 것은 털끝만 한 이득도 없고 도리어 다섯 가지 손해만 끼치고 있으
니, 청컨대 서적을 사 가지고 가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冊府
元龜》 같은 책이 고려에 들어가 광범위하게 인쇄되지 않았습니까?” 연암이 말했다.
“동파의 상소는 실언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 작은 나라가 중국을 사모해서 사간
것을 하필 이해로 따졌을까요.”[余曰: “此載《東坡志林》. 高麗無罪, 而東坡最憎之.
高麗名臣有金富軾, 富轍, 慕蘇為名, 而坡殊不知也.” 鵠汀曰: “子瞻上劄論高麗入貢,
無絲髮利而有五害, 請勿許買書籍. 然《冊府元龜》其時所出, 貴邦廣為繡印否?” 余曰 :
“東坡札論未免失言. 小國慕華而來, 大邦何必曰利?”] 5)
위의 내용은 연암과 곡정이 송의 소식이 고려를 미워한 상황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이러
한 상황은 《열하일기》 <동란섭필>에도 등장하고 있고, 이 부분에서도 소식의 《동파지림》에
기록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元 王實甫의 잡극 《西廂記》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온다. 《열하일기》
<도강록><관제묘기>에는 《수호전》과 《서유기》 관련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廟堂이 웅장 화려하여 複殿과 重閣에 금빛, 푸른빛이 휘황찬란하다. 그 正殿에는
關公의 塑像을 모셨고, 동쪽 회랑에는 張飛를, 서쪽 회랑에는 趙雲을 배향하였으며,
또 蜀의 장군 嚴顏의 굴복하지 않는 꼴을 설치하였다. 뜰 가운데에는 큰 碑 몇이
서 있는데, 모두 이 사당의 창건과 중수한 사실의 시말을 적은 것이다. 그 중 새로
세운 한 비는, 山西의 어떤 상인이 사당을 중수한 일을 새긴 것이다.
사당 안에는 노는 건달패 수천 명이 왁자하게 떠들어, 마치 무슨 놀이터 같다.
혹은 창과 곤봉을 연습하고, 혹은 주먹놀음과 씨름을 시험하기도 하며, 혹은 소경
말⋅애꾸말을 타는 장난들을 하고 있다. 또는 앉아서 《수호전》을 읽는 자가 있는데,
뭇사람이 삥 둘러앉아서 듣고 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코를 벌름거리는 꼴이, 방
약무인의 태도이다. 그 읽는 곳을 보니, 곧 <火燒瓦官寺>의 대문인데, 외는 것은 뜻
밖에 《서상기》였다.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이건만 외기에 익어서 입이 매끄럽게 내
려간다. 이것은 꼭 우리나라 네거리에서 《林將軍傳》을 외는 것 같다. 읽는 자가 잠
깐 중지하면 두 사람이 비파를 타고 한 사람은 징을 울린다.”[廟堂壯麗, 復殿重閣,
金碧璀璨. 正殿安關公像, 東廡張飛, 西廡趙雲, 又設蜀將軍嚴顏不屈之狀. 庭中列數
笏穹碑, 皆記修創始末. 新建一碑, 記山西商人重修事也. 廟中無賴游子數千人, 鬧熱
如場屋. 或習槍捧, 或試拳腳, 或像盲騎瞎馬為戲. 有坐讀《水滸傳》者, 眾人環坐聽之,
5) 박지원, 《열하일기》 <망양록>.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73
擺頭掀鼻, 旁若無人. 看其讀處則火燒瓦官寺, 而所誦者乃《西廂記》也. 目不知字而口
角溜滑, 亦如我東巷肆中日誦《林將軍傳》. 讀者乍止, 則兩人彈琵琶, 一人響叠鉦.]6)
위의 인용문은 국문학 관련 논문 등에서 단골로 인용되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설서를 하는 이가 글을 모르면서도 마치 책을 읽어 내려가는 듯한 연출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의 설서인 상황과도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박지
원은 《서상기》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서상기》의 내용을 모르면서 설서인
이 이야기하는 것이 《서상기》인 줄 알 수 없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더불어 《열하일기》 <관내정사> 1780년 7월 30일조에도 《삼국지》, 《수호전》, 《서상기》 관
련 언급이 나온다.
길옆에 삿자리를 걸쳐서 햇빛을 가리고 군데군데 놀이 하는 곳을 만들었는데,
《삼국지》를 연출하는 자, 《수호전》을 연출하는 자, 《서상기》를 연출하는 자가 있어
서, 높은 소리로 그 詞를 부르고 음악이 이에 따른다. 온갖 장난감들을 벌여놓고
파는데 모두들 어린이들의 일시적 장난감이었지만, 그 재료가 희귀한 것일뿐더러
만든 솜씨가 하나도 교묘하지 않은 게 없으며, 어떤 것은 손만 거쳐도 깨질 물건인
데도 그 수공은 몇 냥이나 좋이 된다. 탁자 위에는 關公의 상을 몇 만 개나 벌여
놓았는데 칼을 가로 잡고 말을 탔으나 그 크기는 겨우 두어 치밖에 안 되며, 모두
종이로 만들어 교묘하기 짝이 없다. 이는 아이들 장난감인데 이렇게 많음을 보니
다른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하도 황홀⋅찬란한 것들을 많이 보았는지라 이목과
정신이 함께 피로할 지경이었다.”[道傍連簟蔽陽, 處處設戲, 有演《三國志》者, 有演
《水滸傳》者, 有演《西廂記》者, 高聲唱詞, 彈吹並作. 千百玩戲之物, 擺列賣買, 皆為孩
提片時供玩之資, 而非但物料稀奇, 其製作莫不精巧, 或觸手破碎而工費不下數兩紋
銀. 桌上列數萬關公像, 橫刀立馬, 其大纔數寸, 皆紙造而巧妙入神. 此是小兒戲具而
其多如此, 則他可推知. 眩慌駭惑, 三官並勞.]7)
이처럼 《삼국지》, 《수호전》 같은 소설도 희곡으로 연출이 되었고, 소설⋅희곡과 관련한
어린이 장난감도 정교하게 많이 만들어 박지원이 화려함에 기가 질리는 상황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중국의 소설⋅희곡이 서민들의 생활에까지 폭 넓게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다.
위의 표 1. 명대 이전 소설⋅희곡 목록을 보면 그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연행록이 韓祉의
6) 박지원, 《열하일기》 <도강록><관제묘기>.
7) 박지원, 《열하일기》 <관내정사> 1780년 7월 30일.
74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兩世燕行錄》(1713), 李宜顯의 《壬子燕行雜識》 하(1732), 李心源의 《丁亥燕槎錄>(1767),
朴趾源의 《熱河日記》(1780), 徐浩修의 《燕行記》(1790), 白景炫의 《燕行錄》(1791) 등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경우 20편의 작품 중 18 작품이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열하일기》가 연행록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고 있는데 과연 그 말이 무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3. 明代 소설⋅희곡 목록
《연행록 –서적⋅서화편》에 수록된 명대의 소설⋅희곡 목록을 살펴보면 모두 19 종류가
있는데, 《국색천향》, 《금병매》, 《서한연의》, 《수호전》, 《삼국연의》, 《남북송연의》, 《당서연
의》, 《낭야만초》, 《봉헌별기》, 《칠수유고》, 《이십일사탄사》, 《위항총담》, 《서유기》, 《사성
원》, 《염이편》, 《동주열국지》, 《회원》, 《수상육재자서》, 《초사》 등의 작품들이 있다.
아래 명대 소설⋅희곡 목록을 ‘표 2.’로 정리하였고, 역시 그 작품들이 수록된 연행록의
출처도 밝혔다.
번호 서명 작가 시기 수록연행록 (연대) 기타
1 《國色天香》吳敬所明李宜顯, 《庚子燕行雜識》 하(1720). 傳奇
2 《金甁梅》蘭陵 笑笑生명 白景炫, 《燕行錄》 1791년 1월 15일. 白話長篇
3
《西漢演義》
=《西漢通俗演義》
甄偉所명
李器之, 《一庵燕記》 1720년 11월 12일.
白景炫, 《燕行錄》 1791년 1월 15일.
白話長篇
4
《水滸傳》
=《水滸志》
施耐庵
(1296-1370)
명
金昌業, 《老稼齋燕行日記》 1713년 12월 24일.
李器之, 《一庵燕記》 1720년 9월 15일
李商鳳, 《北轅錄》 1761년 1월 18일.
洪大容, 《燕記》 <場戱> 1766년 1월 4일.
李心源, 《丁亥燕槎錄> 1767년 12월 8일.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關帝廟記>,
<關內程史> 1780년 7월 30일.
白話長篇
5 《三國志》
羅貫中
(1330?-
1400?)
명
崔德中, 《燕行錄》 1713년 2월 3일.(정사삼
국지)
李宜顯, 《壬子燕行雜識》하 1732.
朴趾源, 《熱河日記》 <關內程史 1780년 7월
30일, <漠北行程錄> 1780년 8월 6일.
白話長篇
* 표 2. 명대 소설⋅희곡 목록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75
徐浩修, 《燕行記》 1790년 6월 27일.(정사)
徐有聞, 《무오연행록》 1798년 11월 27일.
백경현 연행록. 1791년 1월 15일.
《三國志演義》
羅貫中
(1330?-
1400?)
명
金昌業, 《老稼齋燕行日記》 1713년 1월 12
일, 2월 29일.
洪大容, 《을병연행록》 1765년 12월 25일.
李心源, 《丁亥燕槎錄> 1767년 12월 8일.
6
《南北宋演義》
=《南北兩宋志傳》
熊大木
(1506?-
1578)
명 李心源, 《丁亥燕槎錄> 1767년 2월 1일. 白話長篇
7
《唐書演義》
=《唐書志傳通俗演
義》
熊大木
(1506?-
1578)
명
李德懋, 《入燕記》 1778년 4월 14일.
徐有聞, 《무오연행록》 1798년 11월 23일.
白話長篇
8 《琅琊漫鈔》
文林
(1445-1499)
명
朴趾源, 《熱河日記》 <口外異問> <王越詩
券>(1780)
雜俎
9 《篷軒別記》黃暐명 朴趾源, 《熱河日記》 <避暑錄>(1780). 志怪
10 《七修類考》
郞瑛
(1487-?)
명 李德懋, 《入燕記》 1778년 5월 19일. 雜俎
11 《二十一史彈詞》
楊愼
(1488-1559)
명
李宜顯, 《庚子燕行雜識》하(1720),《壬子燕行
雜識》하(1732).
彈詞
12 《委巷叢談》
田汝成
(1503-1557)
명 朴趾源, 《熱河日記》 <避暑錄>(1780). 雜俎
13 《西遊記》
吳承恩
(1510?-
1582?)
명
李商鳳, 《北轅錄》 1761년 1월 18일.
李心源, 《丁亥燕槎錄> 1767년 12월 8일.
徐浩修, 《熱河紀遊》 1790년 8월 2일.
白話長篇
14 《四聲猿》
徐渭
(1521-1593)
명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월
3일.
雜劇
15 《艶異編》
王世貞
(1526-1590)
명 李宜顯, 《庚子燕行雜識》하 1720. 傳奇
16 《東周列國志》
馮夢龍
(1574-1646)
명말 李心源, 《丁亥燕槎錄> 1768년 2월 1일. 백화장편
17
《獪園》
=《獪園志異》
錢希言
(1612년 전후
생존)
명 李德懋, 《入燕記》 1778년 5월 19일. 志怪
18 《繡像六才子書》
金聖嘆
(1608-1661)
명말 李商鳳, 《北轅錄》 1761년 1월 18일.
제5, 제6
재자서가
《수호전》,
《서상기》임
19 《樵史》
陸應陽
(1543-1627)
청
盧以漸, 《隨槎錄》 1780년 8월 8일.
朴趾源, 《熱河日記》 <口外異聞> <樵
史>(1780).
雜俎
76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위의 작품들 중 소설⋅희곡 관련하여 흥미로운 기록을 남겨 놓은 작품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백경현의 《연행록》 1791년 1월 15일조에 수록된 《서한연의》, 《삼국지》, 《금병매》,
《서상기》 공연과 관련된 상황을 기록해 놓은 부분이다.
“길을 가다가 사거리에 이르렀는데, 징과 북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나는 곳을 물
으니 창시라고 한다. 그곳에 가서 구경하였는데, 이른바 창시는 우리나라의 산대나
야유와 같은 것이다. 분장한 가면을 쓰고 옛 복식을 입고, 《서한연의》를 따라 한신
이 구리산에서 천여 명의 군사로 매복하여 항우를 포위하고, 항우가 우희와 이별하
는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혹은 《삼국지》를 따라 초선이 풍의정에서 여포를 희롱하
는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혹은 《금병매》를 따라, 노파가 반금련을 유인하고 무송이
서문경을 발로 차고 때리는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혹은 《서상기》를 따라, 장생이
밤에 최앵앵과 담장가의 꽃나무를 흔들어, 그 그림자가 움직일 때 만나자는 약속에
따라 그곳에 이르러 몰래 살펴보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이들은 연희
를 할 때에 쓰는 것들로 한때의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주관하는 이가 문 앞
에서 돈을 받고서야 사람들이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게 하니, 이 또한 돈을 버는
하나의 방도이다.”[行道通衢, 聞錚鼓之聲, 問之則倡市也. 入其處玩之, 所謂倡市, 如
我國山臺⋅野遊之類也. 粧飾假面, 着古時衣冠, 或依《西漢演義》, 而作韓信圍項王於
九里山十百埋伏, 項王別虞姬之樣, 或依《三國志》, 而作貂蟬調戱呂布於風儀亭之樣,
或依《金甁梅》, 而作老派誘引潘金蓮, 而武松踢打西門慶之樣. 或依《西廂記》, 而作張
生夜赴崔鸚鸚, 拂墻花影動之約, 暗窺躊躇之樣. 此等戱玩之具, 適足以助一時之笑,
主張者在門受錢, 而許人入玩, 此亦財利之一道也.]8)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행록》의 저자인 백경현이 《서한연의》, 《삼국지》, 《서상기》
는 물론 《금병매》의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백경현(1732-1799)은 본관이 善山이
고, 자는 時晦, 호는 悟齋로 액정서 사알 및 승정원 서리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1790년 동
지사 金箕性(1746-1806)의 別遣折衝, 즉 裨將으로 북경을 다녀왔다. 비록 고위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관리인 그가 음서의 대명사인 《금병매》의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
운 일이다. 또 위의 인용문을 통해 당시 중국의 연극계는 입구에서 돈을 내고 들어가야만
연극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연의》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기록들이 있다. 한글로 기록된 서유문의 《무오연행
록》 1798년 11월 27일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8) 백경현, 《연행록》 1791년 1월 15일.(《연행록 –서적⋅서화편》, 528-529쪽에서 재인용.)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77
바람벽 위에 혹 소설의 음담패설을 그림으로 번역하고, 또한 남녀의 희학하는 모
양을 그려 붙였으니, 북경까지 가는 길에 이렇지 않은 데가 없다. 대체로 사람이
성인군자가 아니면 재물을 좋아하지 않으며 색을 좋아하지 않는 이 어디 있을까마
는, 사람이 염치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비록 지극히 천하더라도 방자
히 입 밖에 내는 일이 없거늘, 이 나라 풍속은 이와 반대되어 글과 그림에 형용하여
떳떳이 눈으로 보니 풍속의 더러움이 이와 같았다. .... 주인 오가가 여러 번 기웃거
려 무슨 말을 하고자 하거늘 불러서 말을 묻고 “네 집에 무슨 책이 있는가?”라고 하
니, 즉시 《協紀辨方書》와 《三國志》 두어 질을 갖다가 보라고 하였다.”9)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내용을 통해 당시 중국에서는 음란한 소설 속 내용을 그림으로 그
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상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렇게 보여주는 것은 그냥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보여주는 것이었다. 소설이, 그리고 소설 중 대중의 흥미를 끌
어들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음란한 그림을 그려서라도 이익을 추구하는 당시 중국의 상황
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삼국지》(=《삼국연의>)가 일반인의 집에서도 쉽게 구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민간에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이심원(1722-?)의 《정해연사록》 1767년 12월 8일조를 보면 그가 구입한 서적과
그 가격을 적어 놓은 기록을 볼 수 있다.
...7전으로 《수호지》를, 7전으로 《삼국지》를, 7전으로 《서유기》를, 4전으로 《자
휘》를 구매했다. 역관 홍명복과 친분이 있는, 대궐을 지키는 호인의 집에 맡겨 두고
북쪽으로 갔다.[七錢買《水湖志》, 七錢買《三國志》, 七錢買《西遊記》, 四錢買《字彙》,
付置洪命福所親守闕胡人家而入北.]10)
이심원은 본관이 연안이고, 자는 宅之로 1750년(영조 26년) 謁聖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대사헌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리고 1767년 사은겸동지부사가 되어 연행을 간 것이었는데
이처럼 고위 관료가 《수호전》, 《삼국지》, 《서유기》 같은 통속소설을 구입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1768년 2월 1일에도 책방에 가 다양한
책을 구입하면서 《蘇黃志林(=東坡志林)》, 《列國志》, 《世說新語》 같은 소설을 구입하고 있
다.
또 이상봉(1733-1801)의 《북원록》 1761년 1월 18일조를 보면 金聖嘆에 대한 언급을 하
9) 서유문, 《무오연행록》 1798년 11월 27일.(《연행록 –서적⋅서화편》, 560-561쪽에서 재인용.)
10) 이심원, 《정해연사록》 1767년 12월 8일.(《연행록 –서적⋅서화편》, 287쪽에서 재인용.)
78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면서 그가 《수호전》과 《서유기》에 평을 단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유성의 숙소에 이르자 《수상육재자서》를 꺼내보였는데, 김성탄이 지은 것이다.
그 문장은 莊周의 口氣를 훔쳐 남을 속이고 변환하는 데만 힘을 썼으며, 조금도 평
순하고 각실한 뜻이 없었다. 언뜻 보면 사람을 미혹시킬 수 있을 듯하나, 실은 창우
의 희극과 같은 부류다. 김성탄은 강희 연간의 사람으로 사람됨이 허탄하고 망령되
며, 의협심에 따라 행동함을 스스로 자랑삼았기에 결국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지 못하였다. 책을 비평하는 것을 특히 잘하였는데, 《수호전》, 《서유기》 및 소설
을 모두 평한 것이 있어, 세상에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詣幼成所, 出示繡像六才子
書, 金聖嘆所作也. 其爲文, 偸得莊生口氣, 專務誕詭變幻之態, 少無平順慤實之意,
驟看若可惑人, 而其實倡優戱劇之類也. 聖歎康熙間人, 爲人誕妄, 以任俠自詡, 竟不
得考終. 尤善評書, 水滸傳,西遊記及諸小說, 皆有所評, 行於世云.]11)
이상봉은 본관이 全州이고, 자는 伯祥, 호는 懶隱이며 나중에 義鳳으로 개명을 하였다.
1773년에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부수찬, 교리, 신천 군수, 좌승지, 대사간, 공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북원록》은 이상봉의 부친 이휘중이 삼절연공사의 서장관으로 떠날 때 자제군
관으로 연행한 체험을 기록한 것으로 위의 인용문을 보면 그가 김성탄의 문장, 즉 《수상육재
자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고, 김성탄의 사람 됨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구외이문> <왕월시권>을 보면 흥미로운 기록이 또 나온다.
王越의 과거 시험지가 바람에 날려 우리나라에 떨어져서 그 종이를 奏年使 편에
부쳤더니, 중국에서는 기록하기를 琉球라고 잘못 기록하였다. 당시 왕월을 風力이
있다고 해서 사법관의 직책에 탁용했다 한다. 일찍이 明 文林의 《瑯琊漫鈔》에 보니,
‘成化 연간에 太監 王高가 휴가를 얻어서 집에 나와 있을 제 兵部尙書 아무개가 찾
아 갔더니, 때마침 都御史 왕월과 戶部尙書 陳鉞이 역시 왔었다. 왕고가 한참 있다
가 나와 여러 사람 앞에 읍하고 앉아서 말하기를, “옛날 王振이 일을 처리할 때 六卿
이 많이들 사사로이 찾아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치를 제멋대로 전단한다고 뒷말
을 하였다 하더니, 이제 여러분들이 이렇게 찾아온다면 어찌 외인들이 왕고를 걸어
시비하지 않으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여러분은 나를 방문하였지마는 묻노니 왕
고를 어떤 사람으로 알았단 말이오.” 하였을 때, 병부상서는, “귀공은 성인이외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고는 얼굴빛을 변하면서, ‘위대한 교화력을 지닌 이를 성인
11) 이상봉, 《북원록》(1760) 1761년 1월 18일조.(《연행록 –서적⋅서화편》, 233쪽에서 재인용.)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79
이라 하므로 孔子께서도 오히려 ‘내가 어찌 감히...’라고 말씀했거늘, 하물며 왕고가
어떤 사람이건대 감히 성인이라고 일컬을 것인가.’ 하였다. 여럿은 이 말을 듣고 숨
을 내쉬지 못하였다.” 하였다. 그 당시 병부상서는 비록 이름을 숨겼으나 공론은 가
릴 수 없었은즉, 소위 왕월의 風力인들 어디 있을 것인가.”[王越試卷為風所漂, 飛落
我國, 以其券付奏年使, 而中國記載誤稱琉球. 當時以越謂有風力, 擢居憲職, 嘗見《琅
琊漫抄》. 成化間, 太監王高休沐, 有兵部尚書某往謁之, 會都御史王越⋅戶部尚書陳
鉞亦至. 高良久始出, 揖諸公坐, 謂曰: “昔王振用事, 六卿多通私謁, 人以為擅權. 今
諸公見訪, 安知外人不議高耶? 且諸公訪高, 不識以高為何如人?” 兵部曰: “公聖人也.”
高作色曰: “大而化之之謂聖, 孔子尚曰‘則吾豈敢’, 王高何人, 敢謂聖人?” 眾惴不能出
氣云. 其時兵部, 雖隱其姓名, 公議難掩, 則至於王越所謂風力安在?]12)
위의 인용문은 중국에서 본 왕월의 과거 답안지가 우리나라까지 날아오자 이 과거 답안지
를 연행사 편에 중국으로 돌려보냈고, 이를 본 중국에서 왕월이 ‘풍력’, 즉 바람의 힘을 지니
고 있다고 여겨 사법 기관에 발탁하였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박지원은 명 문림이
지은 《낭야만초》의 기록을 들어 왕월이란 사람이 권력자인 환관 왕고나 찾아다니는 형편없
는 인물로 무슨 풍력 같은 신통력이 있냐고 비판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서 본 과거
시험지가 바람에 날려 우리나라까지 왔고, 또 이를 사신 편에 중국에 돌려 준 상황이 기록되
어 있다는 것이다.
위의 표 2. 명대의 소설⋅희곡 목록을 보면 그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연행록이 金昌業의
《老稼齋燕行日記》(1713), 崔德中의 《燕行錄》(1713), 李器之의 《一庵燕記》(1720), 李宜顯
의 《庚子燕行雜識》 하(1720) 및 《壬子燕行雜識》하(1732), 李商鳳의 《北轅錄》(1761), 洪大
容의 《燕記》, 《을병연행록》(1766), 李心源의 《丁亥燕槎錄>(1767), 李德懋의 《入燕記》
(1778), 朴趾源의 《熱河日記》(1780), 徐浩修의 《燕行記》(1790) 및 《熱河紀遊》(1790), 白
景炫의 《燕行錄》(1791), 徐有聞의 《무오연행록》(1798), 盧以漸의 《隨槎錄》 등 다양하게 분
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淸代 소설⋅희곡 목록
《연행록 –서적⋅서화편》에 수록된 청대의 소설⋅희곡 목록을 살펴보면 모두 13종류가 있
12) 박지원, 《열하일기》 <구외이문> <왕월시권>.
80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는데, 《우초신지》, 《무성희》, 《입옹소사》, 《소설귀수전고사》, 《동산담원》, 《기원기소기》, 《향
조필기》, 《지북우담》, 《황화기문》, 《설령》, 《괴서잡지》, 《난양수록》, 《설림》 등이 그것이다.
아래 청대 소설⋅희곡 목록을 ‘표 3.’으로 정리하였고, 역시 그 작품들이 수록된 연행록의
출처도 밝혔다.
번호 서명 작가 시기 수록 연행록 (연대) 기타
1 《虞初新志》
張潮
(1650-1709)
청초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傳奇
2 《無聲戱》
李漁
(1611-1679)
청초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話本小說
3 《笠翁笑史》
李漁(?)
(1611-1679)
청초
朴趾源, 《熱河日記》 <盛京雜誌> <粟齋筆
談> 1780년 7월 11일.
馮夢龍의
《笑史(=古今笑
史=古今譚槪)》
를 의미하는
듯함.
4 《小說鬼輸錢故事》
李漁
(1611-1679)
청초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미상
5 《東山談苑》
余懷
(1616-1696)
청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雜俎
6 《寄園奇所寄》
趙吉士
(1628-1706)
청
李德懋, 《入燕記》 1778년 5월 19일.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雜俎
7 《香祖筆記》
王士禛
(1634-1711)
청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口外異聞> <彩鷂⋅胡蝶>, <金
蓼小抄>. <銅蘭涉筆>.
雜俎
8 《池北偶談》
王士禛
(1634-1711)
청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太學留館錄> 1780년 8월 9일,
<避暑錄>.
李德懋, 《入燕記》 1778년 5월 19일.
柳得恭, 《熱河紀行詩註》 <瀋陽>(1790).
雜俎
9 《皇華紀聞》
王士禛
(1634-1711)
청
李德懋, 《入燕記》 1778년 5월 19일.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志人
10
《說齡》
=《說鈴》
汪琬
(1624-1690)
청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志人
11 《槐西雜志》
紀昀
(1724-1805)
청 金祖淳, 《燕行錄》 1792-1793.
《閱微草堂筆記》
의 일부.
12 《灤陽隨錄》
紀昀
(1724-1805)
청 徐有聞, 《무오연행록》 1796년 2월 5일.
《閱微草堂筆記》
의 일부.
13 《說林》錫泰 輯청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
월 3일.
志怪
박지원은
毛奇齡의
* 표 3. 청대 소설⋅희곡 목록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81
청대 소설⋅희곡 목록에도 다양한 소설⋅희곡 관련 작품들의 목록이 보인다. 이 중 우리
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열하일기》 <도강록> 1780년 7월 3일조다. 박
지원 일행은 압록강을 건너 遼陽까지 가는 도중 큰 비를 만나 通遠堡에 며칠 머무르게 된다.
큰 비로 인해 발이 묶이자 심심해진 박지원은 동네 훈장을 찾게 되고 거기서 富圖三格이란
만주 鑲藍旗 사람을 만난다. 박지원은 그에게서 북경 유리창에 있던 鳴聲堂의 書目을 빌려
오게 되고, 이 서목에 소설⋅희곡 목록이 꽤 많이 들어있다. 이 상황을 잠시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또, “물에 막혀서 이곳에 머무른 지가 벌써 수일이나 되었소. 이다지 긴 여
름 해를 보내기 난감하니, 노인께 볼 만한 책이 있으면 며칠만 빌려 주실 수 없겠
소.” 하였더니, 그는, “별로 없습니다. 전에 서울 있을 때, 가친 折公이 鳴盛堂이라고
이름을 붙인 刻舖를 내었는데, 그 때의 책 목록이 마침 행장 속에 들어 있사온즉,
만일 소일삼아 보시려면 빌려 드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이 있습
니다. 영감께서는 이제 바로 돌아가셔서 진짜 환약과 조선 부채 중에 잘 된 것을
골라서 초면의 정표로 주신다면 영감의 참된 사귐의 뜻을 알겠으니, 그 때에 서목을
빌려 드려도 늦지 않겠소이다.” 한다. 그 생김새와 말투를 보자니, 뜻이 하도 비루하
고 용렬하여 더불어 이야기할 바가 못 될 뿐더러, 오래 앉았을 수도 없으므로 곧
하직하고 일어섰다. 부가 문에 나와 읍을 하여 보내면서, “귀국의 명주를 살 수 있겠
습니까.” 하기에,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 정사가, “무어 볼 만한 것이 있던
가. 더위 먹을까 조심스러우이.” 하기에, 나는, “아까 한 늙은 훈장을 만났는데, 한갓
만주 사람일 뿐 아니라 몹시 비루하여 더불어 이야기할 위인이 못 됩디다그려.” 한
즉, 정사는, “그가 이왕 구하는 바에야 어찌 환약 한 개, 부채 한 자루를 아끼겠는가.
그리고 서목을 빌려다 봄도 해롭진 않아.”한다. 드디어 시대를 시켜서 청심환 한 개
와 魚頭扇 한 자루를 보냈더니, 시대가 이내 크기가 손바닥만 하고 몇 장 되지도
않은 작은 책을 들고 돌아온다. 그나마 모두 빈 종이였고, 기록된 서목은 모두 청인
의 小品 70여 종이다. 이는 불과 몇 장 되지도 않는 걸 가지고 많은 값을 요구하니,
그의 뻔뻔스러움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왕 빌려 온 것이요, 또 눈을 새롭기
하기 위하여, 베껴 놓고 돌려보내기로 한다.
작품이라
했으나 청대의
경우 석태의
《설림》만 있음.
82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鳴盛堂書目
尺牘新語 6책 : 汪淇(이름) 瞻漪(자) 箋.
焚書 6책, 藏書 18책, 續藏書 9책 李贄(이름) 卓吾(자) 저.
宮閨小名錄, 長洲雜說, 西堂雜俎 : 尤侗(이름) 展成(자) 저.
......
說林, 西河詩話 : 毛奇齡(이름) 大可(자) 저.
皇華記聞, 池北偶談, 香祖筆記 : 王士禛(이름) 貽上(자) 저.
毛角陽秋, 羣書頭屑, 閨閤語林, 朱鳥逸史 : 王士祿(이름) 子底(자) 저.
笠翁通譜, 無聲戲, 小說鬼輸錢故事 : 李漁(이름) 笠翁(자) 저.
......
虞初新志 : 張潮(이름) 山來(자) 저.
寄園寄所寄 8책 : 趙吉士(이름) 天羽(자) 저.
說齡 : 汪涴 저.
說郛 : 吳震方(이름) 靑壇(자) 저.
......
정 진사와 함께 나누어 베껴서 이 뒤에 책사에서 참고하기로 하고, 곧 시대를 시
켜서 돌려보내고, 또 시대더러, “이런 책들은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므로, 우리 영감
께서 이 서목을 보시지 않았소.”라고 말하라 일렀더니, 시대가 돌아와서, “부씨가 제
가 전하는 말을 듣더니, 자못 계면쩍은 빛을 보이면서 저에게 수건 한 개를 주더이
다.” 한다. 그 수건의 길이는 두 자 남짓한 올이 말려들게 짠 천인데, 새 감으로 만든
것이다.
[余曰: “吾阻水留此已數日, 真此永日難消, 你老豈有可觀書冊, 為借數日否?” 富
曰: “無有. 往在京裏時, 舍親折公新開刻鋪, 起號鳴盛堂, 其群書目錄適在橐中, 如欲
遣閑時, 不難奉借. 但願你老此刻暫回, 携得真真的丸子清心丸;⋅高麗扇子, 揀得精
好的作面幣, 方見你老真誠結識, 借這書目未晚也.”余察其容辭志意, 鄙悖庸陋, 無足
與語, 不耐久坐, 即辭起. 富臨門揖送, 且言: “貴邦明綢可得賣買麼?”余不答而歸. 正
使問: “有何可觀? 恐中暑.” 余對: “俄逢一老學究, 非但滿人, 鄙陋無足語.”正使曰: “彼
既有求, 何可嗇一丸一箑耶? 第不妨借看書目.” 遂使時大送清心丸一丸;⋅魚頭扇一
柄. 時大即回, 持掌大幾葉小冊而來, 皆空紙所錄書目, 盡是清人小品七十餘極. 此不
過數頁所錄, 而要索厚價, 其無耻甚矣. 然既為借來, 且新眼目, 遂謄而還之. 《尺牘新
語》共六冊, 汪淇澹漪箋; 《焚書》共六冊, 《藏書》共十八冊, 《續藏書》共九冊, 李贄卓吾
著; 《宮閨小名錄》;⋅《長洲雜說》;⋅《西堂雜俎》, 尤侗展成著; 《筠廊偶筆》, 宋犖牧仲
著; 《同書》;⋅《字觸》;⋅《閩小記》;⋅《因樹屋書影》, 周亮工元亮著; 《四禮撮要》, 甘京
著; 《說林》;⋅《西河詩話》, 毛奇齡著; 《韵白匡林》;⋅《韵學通指》;⋅《潠書》, 毛先舒稚
黃著; 《西山紀游》, 周全然著; 《日知錄》;⋅《北平古今記》, 顧炎武著; 《不知姓名錄》,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83
李清映碧著; 《蔣說》八蔣虎臣著;《影梅庵憶語》冒襄闢疆著;《古今書字辨訛》;⋅《東山
談苑》;⋅《秋雪叢談》, 余懷澹心著; 《冬夜箋記》, 王崇簡著; 《皇華記聞》;⋅《池北偶
談》;⋅《香祖筆記》, 王士禛貽上著; 《毛角陽秋》;⋅《群書頭屑》;⋅《閨閤語林》;⋅《朱鳥
逸史》, 王士祿著; 《笙翁通譜》;⋅《無聲戲》小說;⋅《鬼輸錢故事》, 李漁笠翁著; 《天外
談》, 石龐著; 《奏對機緣》, 弘覺著; 《十九種》, 柴虎臣著; 《橘譜》, 諸虎男著; 《日下舊
聞》共二十冊, 朱彝尊錫鬯著; 《虞初新志》, 張潮山來著; 《寄園寄所寄》共八冊, 趙吉士
著; 《說鈴》, 汪琬著; 《說鈴》, 吳震芳青壇著; 《檀几叢書》, 王晫著; 《三魚堂日記》陸隴
其著; 《亦禪錄》;《幽夢影》張潮著; 《粉墨春秋》, 朱彝尊著; 《兩京求舊錄》朱茂曙著;
《燕舟客話》, 周在浚著; 《崇禎遺錄》, 王世德著; 《入海記》, 查嗣璉著; 《琉球雜錄》, 汪
楫著; 《博物典匯》, 黃道周著; 《觀海記行》, 施閨章著; 《析津日記》, 周篔著. 與鄭進士
分錄, 以為書肆考求之資. 即送時大還傳, 且令語之曰: “此書皆我東所有, 故吾老爺不
覽此書目”云爾. 時大歸言, 富也聽渠所傳, 頗有憮然之色, 贈渠手巾云. 手巾長二尺餘,
新件黑色縐紗也.]13)
위의 서목을 보면 그 중 《설림》, 《동산담원》, 《황화기문》, 《지북우담》, 《향조필기》, 《무성
희》, 《소설귀수전고사》, 《우초신지》, 《기원기소기》, 《설부》 등 꽤 많은 소설 목록이 들어 있
음을 알 수 있다. 박지원은 이 서목을 빌려 준 通遠堡의 훈장 富圖三格가 “비루하고 용렬하
여 더불어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하여 그냥 그 집을 나왔지만 후에 정사이자 박지원
의 삼종형인 박명원이 “어찌 환약 한 개, 부채 한 자루를 아끼겠는가”라며 서목을 빌려오게
한다. 그런데 그 훈장이 빌려 준 서목은 몇 장 되지도 않은 조그만 책자였다. 이에 박지원은
그의 뻔뻔스러움에 분개하나 그래도 이 목록을 다 베끼고는 이를 돌려준다. 비록 “비루하고
용렬한” 시골 훈장이긴 하였지만 그 덕분에 당시의 소설 관련 목록을 지금 볼 수 있게 되었
으니 그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덕무의 《입연기》 1778년 5월 19일조에도 다양한 서목이 등장한다.
3700여 리의 먼 길을 더운 날씨에 달려온 뒤 관에 4-5일을 유숙하니 참으로 南冠
楚囚 같았다. 연경의 책방은 예로부터 유명하였기 때문에 책을 열람하고자 재선 및
건량관과 함께 유리창에 가서 우리나라에 없는 책과 희귀본만을 기록했다.
《황화기문》, 《지북우담》, 《회원》, ... 이상은 嵩秀堂이란 책방에서 기록한 것이다.
《기원기소기》, ....이상은 名盛堂이란 책방에서 기록한 것이다. (315)
... 《칠수유고》. 이상은 帶草堂이란 책방에서 기록한 것이다.
[三千七十餘里, 炎天驅馳之餘, 留館又四五日, 眞如南冠楚囚. 燕市書肆, 自古而
13) 박지원, 《열하일기》 <도강록> 1780년 7월 3일.
84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稱, 政欲繙閱, 於是余與在仙及乾糧官, 往琉璃廠, 只抄我國之稀有及絶無者, 今盡錄
之. 《皇華紀聞》, 《池北偶談》, 《獪園》,... 以上嵩秀堂. 《寄園奇所寄》, ...以上名盛堂.
...《七修類考》, 以上帶草堂.]14)
이덕무의 《입연기》 1778년 5월 19일조에 등장하는 서목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가 당시
“우리나라에 없는 책과 희귀본만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민관동⋅김명신 공저의 《朝鮮時
代 中國古典小說의 出版本과 飜譯本 硏究》(서울: 학고방, 2013.) <1. 중국고전소설의 유입
목록과 번역본 및 출판본 목록>을 보면 위에 언급한 작품들 중 비록 《지북우담》, 《회원》,
《기원기소기》 같은 작품이 보이기는 하나 《황화기문》과 《칠수유고》는 문헌기록 조차 보이지
않고 있기에15) 실제로 위에 인용한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없는 책과 희귀본만”을 기록한 것
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앞에 박지원이 《열하일기》 <도강록>
1780년 7월 3일조에서 기록한 ‘鳴盛堂書目’과 이덕무가 《입연기》에 기록한 ‘名盛堂’이 같은
곳일까에 대한 부분이다. 비록 ‘鳴’과 ‘名’으로 한자가 다르긴 하나 중국어 발음으로는 모두
‘míng’으로 같고, 둘 모두 유리창에 있는 서점이며, 《기원기소기》가 두 서목에 모두 있는 것
으로 보았을 때 같은 서점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위의 표 3. 청대의 소설⋅희곡 목록을 보면 그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연행록이 李德懋의
《入燕記》(1778), 朴趾源의 《熱河日記》(1780), 柳得恭의 《熱河紀行詩註》(1790), 金祖淳의
《燕行錄》(1792), 徐有聞의 《무오연행록》(1798) 등인데 그 중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수록
된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볼 수 있다.
5. 기타 소설⋅희곡 관련 목록
이 장에서는 작가나 시기 등이 밝혀지지 않아 어느 시대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는 작품들,
그리고 영가우의 《중국문언소설총목제요》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제목으로 보아 소설류로 보
이거나 소설과 관련이 있는 작품들, 중국 소설이 아닌 조선 소설 작품들, 그리고 소설과 관
련된 단어 등을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 작가나 시기 등이 불명확한 작품으로는 《단청기》와
14) 이덕무, 《입연기》 1778년 5월 19일.(《연행록 –서적⋅서화편》, 315-317쪽에서 재인용.)
15) 민관동⋅김명신 공저, 《朝鮮時代 中國古典小說의 出版本과 飜譯本 硏究》(서울: 학고방, 2013.),
25-27쪽.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85
《두첩여전》을 들 수 있다. 《단청기》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저자 미상이라고 주석을 단
책으로 齊諧書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怪談을 수록한 작품으로 보인다. 《두첩여전》의 경우
이기지의 《일암연기》 1720년 11월 13일조에 보이고 있는데, 이기지가 토아산 아래서 포로
로 잡혀 온 조선인의 후손인 김국용과 우천작을 만나 조선어를 잘하는 비결을 묻자 이들이
언문책인 《서한연의》와 《두첩여전》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두첩여전》은 국내에 현전하는 언
문 소설로는 서명이 확인되지 않는데 불멸의 사랑을 주제로 한 傳奇소설이라고 한다. 이처
럼 시대나 작가, 그리고 내용 등이 확인되지 않은 작품들과 더불어 조선의 소설로 《사씨남정
기》, 《유씨삼대록》, 《임장군전》 등이 있어 참고삼아 기록해 둔다. 앞에서 언급한 소설 작품
들 외에 소설과 관련된 용어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소설’, ‘장희’ 등이 그것이고, ‘희본제
목’이라 하여 희곡 제목들을 적어 놓은 책자에 대한 부분도 나온다.
번호 서명 작가 시기 수록 연행록 기타
1 《吳越春秋》趙燁後漢
朴趾源, 《熱河日記》 <馹汛隨筆> 1780년 7
월 20일, <漠北行程錄> 1780년 8월 6일.
志怪적 성격
강한 史書.
2
《風俗通》
=《風俗通義》
應邵
(153-196)
後漢朴趾源, 《熱河日記》 <銅蘭涉筆>(1780).
筆記
대량의
神話와
기이한
이야기를
수록함.
3 《遊宦紀聞》張世南송 朴趾源, 《熱河日記》 <金蓼小抄>(1780).
筆記
당시의
逸闻轶事
등을 기록.
4 《文海披沙》
謝肇淛
(1567-1624)
명 朴趾源, 《熱河日記》 <金蓼小抄>(1780)
《四庫全書總
目》에 子部
雜家類에
著錄했으나
영가우의
《중국문언소
설총목제요》
에서는
소설로 볼
수 없다고
함.
* 표4. 기타 소설⋅희곡 관련 목록
86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5 《五侯鯖》彭嚴명 朴趾源, 《熱河日記》 <銅蘭涉筆>(1780).
筆記
옛 고사들을
모아 14개
조목으로
분류기록.
6 《白眉故事》許以忠명 李宜顯, 《庚子燕行雜識》하(1720). 故事사전
7 《黃眉故事》鄧志謨명 李宜顯, 《庚子燕行雜識》하(1720). 故事사전
8 《艮齋筆記》
李澄中
(1630-1700)
명말청초
朴趾源, 《熱河日記》 <口外異聞> <降仙
樓>(1780).
筆記
권1
<情話錄>에
당시 산동
諸城에
전하던
기이한
이야기,
笑話 등을
기록.
9 《宮閨小名錄》
尤侗
(1618-1704)
청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월
3일.
漢에서
明까지
여인들을
后妃, 列女,
仙鬼
등등으로
분류해 기록.
10
《閨閣語林》
=《閨閤語林》
王士祿
(1626-
1673)
청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1780년 7월
3일.
여성 인물
관련 필기.
11 《劉溪外傳》
陳鼎
(1650-?)
청
朴趾源, 《熱河日記》 <太學留館錄> 1780년
8월 10일.
명말청초
인물전기로
節烈, 神仙
등
13부문으로
나눠 기록.
12 《戴斗夜談》작자미상 청
朴趾源, 《熱河日記》 <口外異聞> <十可
笑>(1780).
京師
十可笑를
기록.
13 《北里齊諧》介休然청 朴趾源, 《熱河日記》 <鵠汀筆談>(1780).
내용미상이
나 제목으로
보아
기생집의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87
연행록에는 소설⋅희곡 작품의 목록 뿐 아니라 소설과 관련된 용어들도 나온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소설’이다.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 1712년 12월 26일과 1713년 1월 19
일에는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을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그 중 1713년 1월 19일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거리에 점옥을 만들고 붉은 종이로 간판을 붙여 혹은 ‘신상(神相)’ 혹은 ‘자평(子
平)’ 혹은 ‘점서(占筮)’라고 적었는데, 탁자에 걸터앉은 자가 10여 명이었다. 탁상에
는 모두 서책과 붓, 벼루 등을 놓았으니, 모두 점을 치는 무리들이었다. 여러 사람들
이 둘러싼 가운데에서 의자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자가 있었는데 통주에서 본
괴이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보임.
14 《丹靑記》미상 미상 朴趾源, 《熱河日記》 <銅蘭涉筆>(1780).
박지원이
齊諧書라고
한 것을
보면 괴담을
수록한
것으로 보임.
15 《杜婕妤傳》미상 미상 李器之, 《一庵燕記》 1720년 11월 13일.
국내
현전하는
언문
소설로는
서명이
확인되지
않음.
16 《謝氏南征記》金萬重洪大容, 《을병연행록》 1765년 12월 25일. 조선소설
17 《劉氏三代錄》미상 조선후기
朴趾源, 《熱河日記》 <馹汛隨筆> 1780년 7
월 17일.
조선소설
18 《林將軍傳》미상 미상
朴趾源, 《熱河日記》 <渡江錄> <關帝廟
記>(1780).
조선소설
19 小說
김창업, 《노가재연행일기》 1712년 12월
26일, 1713년 1월 19일.
이기지, 《일암연기》 1720년 9월 20일.
이상봉, 《북원록》 1760년 12월 23일.
용어
20 場戱洪大容, 《燕記》 <場戱>
21 戱本題目
김창업, 《노가재연행일기》 1713년 2월 29
일
희극의
제목을
적어놓은
목록
88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것과 같으니,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자다. 또, 갑도 없는 헌 책을 노상에
쌓아 놓았는데 다 소설이다. 이것은 읽는 자에게 돈을 받기 위해서 놓아 둔 것 같다.
나아가서 보니, 모두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하던 책들이다.[當街設簟屋, 用紅紙爲膀,
或書神相, 或書子平, 或書占筮, 據卓而坐者十餘人. 卓上皆置書冊筆硯, 蓋賣術之徒
也. 衆人圍擁, 中有踞凳讀書者, 似通州所見, 是收直於聽者也. 又有無匣弊書, 堆在
路上, 皆小說. 是則似爲取直於讀者而置也. 就視之, 皆名未曾聞者.]16)
이처럼 김창업은 연행을 가는 도중 돈 받고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소설을 길거리에 쌓아 놓고는 이를 돈 받고 빌려 주는 상황까지 파악하게 된다.
홍대용의 1766년 1월 4일의 기록인 《湛軒書》 外集 10권 《燕記》 <場戱>조에는 중국 희곡
관련해 소중한 기록들이 기록되어 있다. <장희>조 전체가 소중한 자료가 되지만 지면 관계
상 그 중 일부만 소개하기로 한다.
正陽門 밖에 10여 개의 연극 공연하는 극장이 있는데, 관아에서는 그 크고 작은
규모에 따라서 세금을 징수한다. 그 중 큰 것은 창립비가 8-9만 냥이 든다 하는데,
수리하는 비용은 들지 않았다 하니 그 수입의 굉장함을 알 수 있다.
대개 한 사람이 한번에 3-4냥의 은을 주면 즐겁게 구경만 할 뿐 아니라, 차와 과
일 그리고 술과 안주 등 극진한 진미를 종일 마음껏 먹고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소위
비단옷 입는 부호들은 여기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이런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雜劇들은 왕도정치에서 볼 때 반드시 금지되어야 할 일이다. 다만 漢族이 이민족에
게 망한 이래로 漢官의 威儀나 역대의 章服이 유민들에게 숭앙의 대상이 되었고 뒷
임금들의 본받을 바가 되었으니, 소홀히 여길 것이 아니며, 또 忠孝義烈이나 五倫
같은 일들을 그대로 분장 연출하고, 노래와 곡으로써 마음을 격양하고, 피리와 퉁소
같은 것으로서 감정을 순화시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愀然히 그와 같은 사람을
직접 보는 것처럼 만들어 하루하루 자기도 모르게 착한 데로 옮겨가게 한다면, 이것
은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하는 공이 아마도 시경의 교화에 다를 바 없을 터이니 또
한 적게 볼 수 없는 일이다.[正陽門外, 有十數戱庄. 自官徵稅有差, 其大者創立之費
銀已八九萬兩, 修改之功不與焉, 則其收息之繁富, 亦可想也. 盖一人一日之觀, 予之
三四兩銀, 則不惟戱翫之娛而已, 茶酒果羞極其珍美, 飽嬉終日惟所欲, 所以綺紈富豪
耽嗜而不知止也. 此其淫靡雜劇, 王政所必禁, 惟陸沉以來, 漢官威儀, 歷代章服, 遺
民所聳瞻, 後王所取法, 則非細故也. 且以忠孝義烈, 如五倫全備等事, 扮演逼其眞.,
詞曲以激颺之, 笙簫以滌蕩之, 使觀者, 愀然如見其人, 有以日遷善而不自知, 此其懲
勸之功, 或不異於雅南之敎, 則亦不可少也.]17)
16) 《노가재연행일기》 1713년 1월 19일.
18세기 燕行錄에 보이는 小說⋅戲曲 목록 연구 / 89
홍대용은 정양문 밖에 10여 개의 연극 공연용 극장이 있다고 한 뒤 그 규모가 엄청나며,
3-4량만 내면 연극 구경 뿐 아니라 차와 과일은 물론 술과 안주까지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며
북경 연극 관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연극은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것
이기에 응당 금해야 마땅하지만 한족의 복장 등을 입고 하는 연극이기에 만주족 치하에서
일정 정도 교화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긍정하고 있기도 하다. 더불어 그는 이 인용문 뒷
부분에서 시작 시간보다 늦게 극장에 도착해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을 억지를 써서 들어간
상황과 동전 50닢을 입장료로 낸 상황, 그리고 그 돈을 표 빈 칸에 적어 들여보내는 상황
등 당시 중국의 연극 공연 상황을 이해하는 소중한 자료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는 남들이
웃으면 이해도 못하면서 바보 같이 남들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후에 귀국길에 玉田
縣에서 공연하는 《수호전》을 구경할 때에는 그래도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한 마
디 한 마디에 감탄하였고 대목이 재미가 있어 돌아가는 것마저도 잊게” 될 정도로 중국 연극
에 빠지게 된다.
이 외에도 소개할 소설⋅희곡 관련 상황들이 많이 있지만 지면의 한계상 다음 기회로 미
루기로 한다.
6. 나가며
이 논문은 연행록, 그 중에서도 18세기의 일부 연행록에 등장하는 소설⋅희곡 관련 목록
들을 정리하고, 그와 관련된 상황들을 소개한 것이다. 중국 문헌의 조선 수용은 주로 燕行,
즉 조선 사신들의 북경 방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조선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중국의 소설⋅희곡 반입이 금지된 적도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소설⋅희곡
은 계속 반입이 되었다. 연행록은 중국 소설⋅희곡 반입의 주체인 연행사들의 기록인 만큼
그 안에 다양한 소설⋅희곡 관련 기록들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명대 이전, 명대, 청대, 그리고 기타 소설⋅희곡 관련 상황들로 분류해
소설⋅희곡 명단을 소개하였다. 우선 2장 명대 이전 소설⋅희곡 목록의 경우 20종의 소설⋅
희곡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목록 뿐 아니라 說書 등 소설⋅희곡 관련 상황들도 소
개하여 중국의 소설⋅희곡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3장 명대 소설⋅희곡 목
17) 홍대용, 《담헌서》 외집 10권 《연기》 <장희>.
90 / 中國小說論叢 (第 48 輯)
록의 경우 19종류의 작품을 소개하였는데 그 중 고위 관리인 이심원이 《수호전》, 《삼국지》,
《서유기》, 《동파지림》, 《열국지》, 《세설신어》 등의 소설을 구입한 기록도 소개하였다. 4장에
서는 청대의 소설⋅희곡 목록을 소개하였다. 청대의 경우 13종의 소설⋅희곡을 소개하였고,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수록된 명성당서목에 있는 서적 목록과 함께 이덕무가 《입연기》에서
우리나라에 없거나 귀한 서적들만을 유리창에서 필사한 목록 중 소설 작품들을 소개하였다.
5장 기타 소설⋅희곡 관련 목록에서는 저자, 시대와 내용이 미상인 소설 작품들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소설 및 소설⋅희곡 관련 용어들의 등장을 소개하였다. 특히 ‘소설’이란 용어가
나온 부분을 통해 당시 중국의 설서와 貰冊 상황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하였고, 戱劇의
공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홍대용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 논문은 연행록에 등장하는 중국 소설⋅희곡 목록 상황을 정리한 최초의 작업이다. 600
여 종에 달하는 연행록 중 18세기의 일부 연행록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그 마저도 지면의
한계로 다양한 상황들을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향후 이 논문에서 다루지 못한 연
행록들에 등장하는 중국 소설⋅희곡 목록들을 소개할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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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f Chinese Novels and Dramas Appearing in 18th Century
Yeonhaengrok
Joseon emissaries made records of and purchased various books when they
visited China. Recently, despite remarkable outcomes stemming from research on
Yeonhaengrok, there has been limited research into Chinese novels and dramas. To
expand the horizon of the circulation of Chinese novels and plays to Joseon, this
study examines records of Chinese novels and dramas which appeared in 18th
century Yeonhaengrok. As a result, 20 pre-Ming dynasty books, 19 Ming dynasty
books and 13 Qing dynasty books which appeared in 18th Century Yeonhaengrok
were uncovered. As well as records of the titles of Chinese novels and dramas, this
study also introduces significant details of the novels and dramas themselves.
Keywords: Yeonhaengnok, Novel, Drama, List, China, Joseon
투고(접수)일 2016년 3월 10일 심 사 일 2016년 3월 14일
수 정 일 2016년 3월 28일 게재확정일 2016년 4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