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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 선조 교유록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년(중종 38)∼1620년(광해군 12). 선생의 처삼촌

작성자낙민|작성시간15.10.19|조회수74 목록 댓글 3

정구(鄭逑)1543년(중종 38)∼1620년(광해군 12). 선생의 처삼촌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성주(星州) 출신.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판서 사중(思中)의 아들이다. 성주이씨(星州李氏)와 혼인한 인연으로 성주에 정착하였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 일컬었다.

7세 때 《논어》와 《대학》을 배워 대의를 통하였으며, 12세 때 그의 종이모부이며 남명 조식(曺植)의 고 제자였던 덕계 오건(吳健)이 성주향교의 교수로 부임하자 그 문하에 나가 배우고, 퇴계 이황(李滉)·남명 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다.

과장(科場)까지 갔다가 시험에 응하지 않고 귀향하였고, 그 뒤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구도의 일념으로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그의 학문세계는 우주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경서(經書)·병학·의학·역사·천문·풍수지리 등 모든 분야에 통달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예학(禮學)은 특출하였다.

그의 예는 가깝고 먼 것을 정하고, 믿고 못믿음을 결정하고, 같고 다름을 구별하고, 옳고 그름을 밝히는 기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저서 《오선생예설분류 五先生禮說分類》는 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사마광(司馬光)·주희(朱熹)의 예설을 분류한 것으로 예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예를 통하여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생활을 이롭게 한다는 도덕지상주의적인 이론을 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성리학 부분의 대표작으로는 《심경발휘 心經發揮》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그의 경사상(敬思想)을 토대로 하여 이황의 《심경후론 心經後論》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역사서로는 고금의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정치의 득실과 그 요체를 밝힌 《고금충모 古今忠謨》와 《고금치란제요 古今治亂提要》 등 10여권이 있으며, 의서로는 눈병에 관한 처방을 수록한 《의안집방 醫眼集方》과 산아와 육아에 관한 《광사속집 廣嗣續集》이 있다.

그밖에도 수령직을 맡을 때마다 그 고장의 산천·물산·고적·인정·풍속 등을 조사, 수집하여 내용을 정리한 7종의 읍지(邑誌)를 간행하였는데, 현존하는 것은 《함주지 咸州誌》 하나뿐이다.

인조반정 이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천곡서원(川谷書院), 충주의 운곡서원(雲谷書院), 창녕의 관산서원(冠山書院), 성천의 학령서원(學翎書院), 통천의 경덕사(景德祠) 등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한강(寒岡) 정 선생(鄭先生)에 대한 제문

 

아 슬프옵니다 / 嗚呼哀哉

말세에 태어나 / 生乎季世

선생과 같으신 분을 / 而有如先生

어찌 항상 얻을 수 있겠습니까 / 安可常得其儔匹

저 중국의 명현과 헤아려 보고 / 揆諸夏賢

고인과 비교해 보더라도 / 等之古人

바른 도를 행하여 길함은 또한 많이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 亦不多讓其履道之貞吉

도가 우주간에 있어 / 夫道之在宇宙間

그 이치는 하나이니 / 其理則一

땅은 내외의 구별이 있고 / 地焉有內外

때는 고금의 차이가 있으나 / 時焉有古今

이치는 내외의 구별이 없고 / 理自是無內外

고금의 차이가 없어 / 無古今

한 판과 같고 / 如一局

하루와 똑같습니다 / 如一日

그러므로 문왕을 기다리지 않고 일어난 호걸들은 / 故不待文王而興者

어찌 일찍이 지역과 때를 반드시 한정함이 있겠습니까 / 何嘗地與時之有必

비록 그 조예와 성취한 사업은 / 雖其造詣成就之業

혹 모두 지극하고 다 구비하지는 못하였으나 / 或不能皆至且備

또한 함께 호걸 중의 갑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蓋亦同爲豪傑中之甲乙

오직 선생은 일찍이 스스로 이 이치를 보시고 / 唯先生早自有見於此理

성현을 좇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謂聖賢可追而遵

진유의 사업이 / 遹知眞儒事業

박학과 독행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 / 在博學與篤行

종사하여 부지런히 힘쓴 것이 / 所從事而孜孜者

의리를 궁구하고 / 義理之窮

덕행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 踐履之實

선비들은 나아감에 올바른 길을 잃어 / 士趨失正

많이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 多由於應科

선생은 과거 공부를 버리고 뜻이 더욱 전일하였으니 / 遂捐擧業而志益專壹

이는 진실로 기질이 특이하고 빼어나서이나 / 固惟氣質之秀異

또한 어찌 학술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 豈亦無自其學術

우리 나라 명현들의 정학은 / 東賢正學

한훤당에 이르러 독실해졌사온데 / 至寒暄而篤實

선생은 바로 그 외손이시니 / 先生爲其外裔

남은 가르침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 卽餘訓之有騭

정론을 두류산에서 받으니 / 承正論於頭流

수립한 것이 마치 기둥이 주춧돌을 얻은 듯하며 / 所以樹立者如柱得

분명한 뜻을 도산에서 얻어 들으니 / 聞的旨於陶山

합하여 깨달음은 향기로운 난초의 방에 들어간 듯하였습니다 / 所以契悟者如入蘭室

돌아와 다시 육경과 사서에 찾으니 / 歸而更求諸六經四子

서로 전하는 심법과 / 相傳之心法

이미 정해진 법도를 / 已定之繩墨

스스로 알고 스스로 다스리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 無非可以自會自律

효도와 공경은 과연 인을 행하는 근본이니 / 孝悌果爲爲仁之本

미루어 백 가지 행실을 하는 것입니다 / 推之爲百行者

이는 진실로 뿌리 깊은 나무가 / 誠若根深之木

자연 가지와 잎이 무성한 것과 같습니다 / 自有枝葉之茂密

충양함이 이미 쌓임에 / 充養旣積

연마함이 더욱 깊어지니 / 磨礱旣深

평탄하고 화락한 말씀 / 坦夷樂易之辭氣

화기애애하게 가득 넘쳤습니다 / 藹藹乎其盈溢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온화한 가운데에 엄함과 사납지 않은 위엄을 두려워하여 / 人猶畏溫中之厲不猛之威

비록 친애함을 입었으나 감히 친압하고 가까이 하지 못하였습니다 / 雖被親愛而不敢狎暱

천 년 동안 끊긴 학문이 / 千載絶學

정주에 이르러 다시 밝아졌사온데 / 至程朱而復明

그 학설을 독실히 믿으시어 / 篤信其說

신명에게 질정하듯이 하였습니다 / 擬神明之可質

선생은 더욱 예학에 유념하여 / 尤留意於禮學

삼천 가지와 삼백 가지의 근본과 뜻을 모두 다하였습니다 / 三千三百本末之俱悉

우리 동방의 선유들은 / 我東儒先

비록 일찍이 예를 강론하지 않은 것이 아니오나 / 雖未嘗不講於禮

대개 회암의 가례를 근거하여 대략 스스로 따름에 불과하였사온데 / 槩不過乎據晦庵家禮而略自循率

선생은 경전과 자집을 널리 상고하고 / 而先生博考于經傳子集

또 반드시 주소를 참고하여 뽑아 냈습니다 / 又必參商註疏而括出

다섯 가지 예를 종합하여 집안과 고을과 나라에 행하는 것이 / 五禮之錯綜乎家鄕邦國者

진실로 굵은 줄이 올려짐에 그물눈이 펼쳐지듯 하여 / 固如綱擧而目張

찬란한 하늘의 질서 아님이 없었습니다 / 無不燦然其天秩

근래에 선비들이 관혼상제에 의장과 도수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 / 邇來士子之得知夫冠婚喪祭之不可無儀章度數

예문(禮文)을 서로 강하며 / 持文相講

일에 임하여 서로 질문하는 것은 / 臨事相質者

이 모두 선생의 창솔 때문이었습니다 / 莫非先生之唱帥

때로는 임천에 거닐고 / 徜徉林泉

한가로이 노닐며 술 마시고 시 읊조리되 / 逍遙觴詠

바람 불고 꽃 피며 눈 내리고 달 밝은 때였으니 / 每在於風花雪月之辰

이는 실로 모두 덕을 기르는 자리요 고상한 지취(志趣)에 맞게 한 것으로 / 實無非養德之地雅趣之適

답답하고 막힘을 펴신 것입니다 / 而有以宣暢其堙窒

벗과 문도들을 불러모아 / 召集朋徒

서적을 상고하고 교정하기를 / 攷校書籍

질병으로 신음하는 즈음에도 쉬지 않으셨으니 / 不輟於疾病沈呻之際

또한 이는 범위의 가운데에 훈도시켜 / 亦所以薰陶於範圍之中

하여금 마음과 생각을 개발하고 / 使之開發其心思

방탕한 데로 흐름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防閑其流泆

진서산의 심경 한 책은 / 眞西山心經一部

실로 이 학문의 냇물을 막는 돌기둥과 남쪽을 가르쳐 주는 수레가 되옵는데 / 實爲此學防川之柱指南之車

보주가 미진함을 흠으로 여겨 / 而欠其補註之未盡

마침내 선유들의 한 마디 말씀과 짧은 글귀를 거두어 취하되 / 則遂爲之收取先儒之片言隻句

삼십칠 장의 뜻을 발휘하는 것이 있으면 / 有以發揮乎三十七章之義者

하나도 누락하거나 빠뜨림이 없었습니다 / 無所漏逸

송조(宋朝)의 다섯 선생의 예를 논한 말씀은 / 五先生禮之說

성인이 예를 제작한 본의를 미루어 밝혀 우익이 되옵는데 / 得以推明羽翼乎聖人制作之本義者

여러 책에 흩어져 나와 산만함을 염려해서 / 患其散漫於各書

이에 유로 모으고 편을 배열해서 / 則於是乎類輯篇排

한 질의 가운데에 모았습니다 / 會聚於一帙之中

그리하여 절문과 의칙이 / 而節文儀則

나열되어 모두 구비하였으니 / 森列畢備

이 어찌 보통의 저술이겠습니까 / 是豈尋常之著述

이는 바로 선생의 참다운 사업이니 / 此正先生之眞事業

비록 이 세상에 펴서 시행하지 못했으나 / 雖不得展布於斯世

어찌 피차의 득실을 한탄할 것이 있겠습니까 / 何歎夫此得彼失

일곱 고을을 맡은 작은 공적과 / 至於歷典七邑之小績

이품에 이른 부운 같은 영화로 말하면 / 爵至二品之浮榮

스스로 선생의 여사로서 밖에서 이른 것이니 / 自是先生之餘事外至

어찌 큰 사업의 시작과 마침에 경중과 유무가 될 것이 있겠습니까 / 何足爲輕重有無於大業之始卒

군주에게 요순 같은 성군이 되기를 바라 / 若夫望君堯舜

일에 따라 정성을 다한 뜻이 / 隨事盡誠之志

확고하여 도끼 따위의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 確確乎有所不畏於斧鑕

널리 사랑하고 두루 포용하여 / 唯其汎愛包容

사람마다 후하게 대하지 않음이 없는 덕은 / 無接不厚之德

정성스러워 보통 정으로는 미처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梱梱乎常情之所不及恤

돌아보건대 이 어리석고 용렬한 몸은 / 顧惟愚庸

일찍이 딸을 부탁하는 의리를 받자와 / 早承贅托之義

실로 친자식과 조카처럼 똑같이 여기셨습니다 / 視實幷於子姪

질병으로 쓰러져 누워 / 疾患頹靡

비록 함장에게 경전을 잡고 배우지는 못했사오나 / 縱不得執經於函丈

적셔 주고 보태 주신 은혜를 / 涵濡滋益之恩

어찌 말과 섬 양과 근으로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 何可量以斛斤鎰

아 슬프옵니다 / 嗚呼哀哉

매양 절하고 뵈올 때면 / 每於拜接之時

반드시 부지암재의 조용하고 편안함을 언급하시며 / 語必及於不知巖齋之靜謐

말씀하기를 내 병이 다소 편안해지고 / 而曰吾待得此痾少安

시절이 다소 평화로워지며 / 詩節稍平

봄에 흐르는 물이 다소 불어나거나 / 方春流微漲

혹 가을에 물결이 깨끗해지거든 / 或秋波澄潏

외객들을 번거롭게 동원하지 않고 / 卽不煩外客

이 사이의 관동 육칠 명을 데리고 / 攜此間冠童六七

조그마한 배를 금호강(琴湖江)에서 출발시켜 / 發片舟於琴灘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밧줄을 이끌고 / 泝洛江而引繂

부지암 언덕에 배를 매어 놓은 다음 / 止繫於不知巖畔

빈 집에 앉아 증점의 비파를 울리겠다 하였으며 / 坐虛堂而鳴點瑟

마침내는 반드시 이 소회를 과연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시고 / 終必曰此懷之其果得以遂之耶

혹은 서찰에 간곡히 써서 보이셨는데 / 或示丁寧於札筆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 今焉已矣

영구히 무궁한 한 가지 한이 되오니 / 永爲無窮之一恨

어찌 조물주에게 이것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 / 誰從造物者而致詰

장례를 모시는 좋은 때에 임하여 / 迫卽遠之靈辰

맑은 술과 향기로운 음식 올리오며 / 奠爵淸與簋飶

밝은 영령께서 굽어 흠향하시기 바라옵니다 / 冀昭明之垂歆

말은 다하오나 정은 다함이 없사오니 / 情莫盡而言畢

아 슬프옵니다 / 嗚呼哀哉

 

 

0 寒岡先生文集卷之三

0 與張德晦顯光

新春。想德履有相。多納福祐。慰賀可量。僕添老增衰。病憒益深。無足言者。似聞貴縣罪人斯得云。其然否。獲其半而逸其半云。亦然否。縣尙未報。而監司先自有聞云。亦然否。不知緣何曲折。而未及報於監司所聞之前耶。想旋已卽報。而其事之端緖。今何如耶。公之推考結末。則亦何如。頑吏不堪於淸明之政。欲其生事。而爲此兇惡之變云。此言亦然否。人不堪於吾政。而不測之禍。上及聖廟。其爲未安當如何。宜君之欲早爲之去就。而朋友之相愛者。亦不得以終止之也。第未知推事之終有何指揮。不敢遙度進退遲速之宜耳。可以姑留。則固不可倖倖徑歸。如合早去。亦不當一日苟留。須精察其事理審處焉。如何。

0 答張德晦

專人來。三復辱書。欣悉新正進學有相。德福俱茂。深以感慰也。僕老病愈加。他不足云。頃聞罪人斯得。已馳書告以鄙懷矣。昨又聞未必眞其人。而亦又安知其非其人耶。想惟京官。爲能案其狀而得其精矣。奉慰。當畢於春丁之前。幸甚。第未知推事究竟當如何。而欲去則欲於何時决焉耶。旣不可輕而近倖。又不可苟而涉嫌。惟明審而善斷焉。

專价辱書。謹悉春寒雅履冲迪。蘇慰亡量。僕扶病如昨。但血證轉苦。可慮。東岡之葬。在明日。今已啓殯。僕亦將力疾馳赴爾。劾狀已送云。快哉。但推事未畢。則未知朝廷譴罰之當如何。而先自爲去就形跡。恐爲未安。負罪之臣。安保其終爲無事。而徑擅去官哉。鄙意見如此。亦不敢自是。須量處如何。僧舍村廬。皆非所宜。惟廢事深縮。只句管不得已之公務。以待朝命如何。內行則或可先還舊寓。不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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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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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진달래 | 작성시간 16.10.02 성주이씨(星州李氏)와 혼인한 인연으로 --> 벽진이씨(碧珍李氏)와 혼인한 인연으로
    星州지역에 李氏는 총6개로 가리이씨(加利李氏),경산이씨(京山李氏) , 광평이씨(廣平李氏) ,벽진이씨
    (碧珍李氏), 성산이씨(星山李氏) 성주이씨(星州李氏) 6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광평이씨(廣平李氏),
    벽진이씨(碧珍李氏), 성산이씨(星山李氏) 성주이씨(星州李氏) 4개 성씨는 성주,성산인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본관을 찿는데 많은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 작성자진달래 | 작성시간 16.10.02 한강선생의 모친은 벽진이씨 문정공파 18世 李煥의 女입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낙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10.02 한강 선생의 부인은 성주 이씨가 맣는 것 같습니다. 한강 선생의 묘갈 신도비 연보등을 첨부했습니다 읽아 보아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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