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핵사 이용태의 가혹한 진압에서 다시 집결한 농민군은 백산에 진을 치고 사방에 격문을
돌렸다. 그것이 이른바 (백산격문)이다. 백산격문에서는 전봉준을 중심으로 멀리 무장의 손
화중, 태인의 김개남 등에게까지 연결을 모색하여 적극 호응을 얻게 되어 이를 계기로 농민
군 지도부가 형성되었으며, 적어도 호남 일도에 걸친 전쟁으로 전선은 확대되었다.
이들은 먼저 감영이 있는 전주를 지향하여 금구와 부안의 관아를 습격하였다. 이 과정에
서 이들은 우선 전라우도, 즉 법성포에 세곡이 수집되는 과정에서 자행되는 불법, 적 전운사
의 불법을 제기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부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균전사의 불법을 규탄하였다. 이를 계기로 고부, 김제, 부안, 흥덕, 무장, 고창 등 전라우도 민중의 전반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농민군 봉기 소식에 접한 전주에서는 감영 군사 800명과 보부상군 800명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주도면밀히 대응하고 준비해왔던 농민군에 대해서 감영군과 보부상군의 혼합
군은 오합지졸이었다. 이들을 맞아 농민군은 황토재 싸움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어 농민
군의 위력을 실감나게 하고, 다급해진 전라감사는 중앙정부에 원군을 요청하였다.
황토재 승리 이후 농민군들은 흥덕, 고창 등 여러 관아를 격파하고 무장에 진주하여 이른
바 (무장포고문)을 발포하였다.
중앙정부군은 군산에 상륙하여 전주를 비워두고 남하하는 농민군을 뒤쫓았다. 초토사 홍
계훈은 전주 감영에서 먼저 농민군과 내통한 혐의가 있는 전주 영장 김시풍 등을 효수하여
농민군과 협조하는 세력에 경고를 보냈다. 그리고는 전라우도 일대를 휘쓸고 있는 농민군을
뒤쫓았다. 농민군을 남하하는 정부군을 맞아 장성 황룡강 싸움에서 정부군을 격파하고 비어
있는 전주성에 무혈입성하였다.
앞에서 고부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경제적 상황을 설명하였는데, 그러한 상황
은 다만 고부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모순 구조,
부패 구조는 전국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고부민란이 전쟁으로 확대된 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고부민란이 단순히 고부군 내의 문제 제기에 그쳤다고 한다면, 이후 전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는 백산봉기, 무장봉기에서는 호남과 호서에 걸치는 농민군의 조직과 지
도부가 결정되고, 봉기의 목표도 보다 분명히 하게 되었다. 이러한 광범위한 조직을 가능하
게 한 것은 물론 동학이 조직이 매개가 된 것이었다.
백산봉기와 무장봉기를 계기로 동학농민군의 지도부가 확정되었다. 전봉준이 대장이 되고
손화중, 김개남이 총관령이 된 것이다. 그러나 부대 편성에 있어서는 전봉준, 손화중 부대와
김개남 부대가 상호협력 관계를 가지면서도 별개로 행동을 하였다. 전자가 주로 전라우도를
무대로 활동하였다면 후자는 주로 좌도를 담당하였다.
농민군들은 양반, 부호, 방백, 수령 들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민중들을 총궐기하여 투쟁
할 것을 호소하였다. 3월 27일 백산에서 발포된 격문은 민중을 양반, 부호, 탐관오리의 수탈
로부터 구하여 국가를 안정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백산격문)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른 것은 그 본의가 다만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에
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의 위에다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
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코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의 앞에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
백(감사)과 수령의 밑에 굴욕을 받는 소소한 이서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조금
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갑오 3월 27일 호남창의대도소 재백산
4월에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의 명의로 발포된 무장에서의 격문도 기본적으로 (백산격문)
과 뜻을 같이하지만, (백산격문)보다는 훨씬 가다듬어지고 봉기의 목표도 뚜렷해졌다. 즉 '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에게서 국왕에 반대하는 것을 볼
수는 없다. 다만 국가에 기생하여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탐관오리들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무장창의문)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다 하는 것은 인륜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군신부자는 인
륜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곧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고
아들이 효도한 연후에야 집과 나라에 끝없는 복이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임금은
인효자애하고 총명한지라, 현량방정한 신하가 있어서 그 총명을 도울지면 요순의 덕과 문경
의 선치를 가히 바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오늘날의 신하 된 자는 보국은 생각지 아니하고 부질없이 녹위만 도적질하여 총명
을 가리고 아부와 아첨만을 일삼아 충간하는 말을 요언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비도라 하
여, 안으로는 보국의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을 학대하는 관리가 많도다. 인민의 마음은
날로 흐트러져 생업을 즐길 수 없고 나아가 몸을 보존할 계책이 없도다.
학정은 날로 더해가고 원성은 그치지 아니하니,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명
분은 무너지고 말았다. 관자가 가로되, 사유(인, 의, 예, 지)가 바로서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
한다 하였으니, 오늘의 형제는 옛날보다 심하도다. 공경 이하 방백수령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위난은 생각지 아니하고 부질없이 일신의 비대와 가문의 윤택만을 꾀하고, 과거의 문을 돈벌이와 길이라 생각하고 응시의 장소는 매매하는 저자로 변하고 말았다.
허다한 돈과 뇌물은 국고로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개인의 사보만 채우고 있도다. 국가에
는 누적된 빚이 있으나 갚을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교만과 사치와 음란한 일만을 일삼으
니, 팔로는 어육이 되고 만민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도다.
수제가 탐학하니 백성이 어찌 곤궁치 아니하랴.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라. 근본이 쇠잔하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는도다. 보국안민의 방책을 생산치 아니하고 밖으로는 향제를 설치하여
오로지 제 몸만을 위하고 부질없이 국록만을 도적질하는 것이 그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
가! 우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일지라도 나라에 몸붙여 사는 지라. 국가의 위망을 앉아서 보
겠는가! 팔역이 마음을 합하고 수많은 인민들의 뜻을 모아 이에 의기를 들어 보국안민으로
사생의 맹세를 하노니, 금일의 광경은 비록 놀랄 만한 일이기는 하나 경동하지 말고 각자
그 업에 안착하여 같이 태평 세력을 빌고 함께 임금의 덕화를 입게 된다면 천만다행으로 생
각하노라.
갑오 4월 일 호남창의소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여기에서 우리는 농민전쟁의 한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국가를 새로운 체제로 만드는 어
떠한 비전을 가지지는 못하고 다만 농민들을 중심한 정의로운 국가를 지향한 것이었다. 그
것은 근대국가로 지향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 한계를 가지는 것이긴 하였지만, 기존의 부패
구조를 재생산하는 국가와는 다른 것을 지향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전주성을 빼앗긴 홍계훈은 다급해져 농민군을 뒤따라와 전주성을 포위하고 부내가 내려다
보이는 완산에 진을 치고 포격을 가하였다. 농민군들은 적어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영장
이 있는 경기전이 있기 때문에 직접 포격을 가할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홍계훈은
그런 것을 가릴 정신이 아니었다. 183cm의 유리한 위치에 진을 친 경군은 부내를 향하여
몇 차례 포격을 가하니 경기전의 일부가 파괴되었다. 경군의 포격을 받은 농민군은 반격에
나서 문을 열고 나와 경군을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많은 사상자를 내고 성내로 후퇴하였다.
5월 3일에는 다시 북문으로 나와 용머리고개의 경군 기지를 공격하였으나 이번에도 많은 전
사자를 내고 대장기와 500여 자루의 총검을 빼앗겼다. 이처럼 출격전서 아무런 성과를 거두
지 못하고 타격을 입자 농민군들은 전의가 크게 저하되었다. 또 농민군들은 모내기철을 맞
아 하나둘 성을 빠져나갔다. 농민군 지도자는 협상에 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청군이 조선에 파견되어 오고, 뒤
이어 일본군도 출동하여 사태가 복잡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로서도 빨리 농민군을 해산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전봉준과 전라감사 김학진은 선화당에 앉아 협상에 임하여 12개
조항의 폐정개혁을 약속하고 농민군을 해산하였다. 12개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도인과 정부 사이에는 숙혐을 씻어버리고 서정에 협력할 것.
2.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사득하여 일일이 엄징할 것.
3. 횡포한 부호배는 엄징할 것.
4. 불량한 유림과 양반배는 징습할 것.
5. 노비문서는 불태워버릴 것
6. 칠반천인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 머리에 쓰는 평양립은 벗어버릴 것.
7. 청춘과부는 개가를 허할 것.
8. 무명잡세는 일절 거둬들이지 말 것.
9. 관리의 채용은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10. 왜와 관통하는 자는 엄징할 것.
11. 공사채는 물론이고 기왕의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12.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케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