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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문학논문(2)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동양문고본 세책과 완판 84장본을 중심으로-

작성자낙민|작성시간16.12.15|조회수117 목록 댓글 0

 

첨부파일 12.성아사선생님.pdf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동양문고본 세책과 완판 84장본을 중심으로-

 


성아사**

 


【국문초록】
춘향전의 계보와 그 이본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때로는
정설로 여겨졌던 이론이 시간이 흐르면서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전혀 타
당하지 않은 가설이라고 여겼던 것이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이
되기도 했다. 다만 그러한 중에도 정확한 가설을 찾아 연구해온 선학들의 노력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데 끊임없이 일조하고 현재에 이르게끔 했다는 것은 자명
하다.
춘향전의 판본 문제에서 현재까지 논의된 바로는, 세책이 경판을 만드는데 일조
하였고 경판 안에서의 분화가 완판에 영향을 미쳤으며, 다시 완판 내에서의 변화
는 최종본인 완판 84장본에 영향을 주었다고 이야기된다. 완판 84장본은 새롭게
창조된 듯 보이는 독특한 구성과 변화된 인물 성격에도 불구하고 경판의 영향이
없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예전에는 완판 84장본을 중심으로 춘향전의 내용과 체
재를 논했기 때문에 다른 이본과의 연결 면에서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
했었다.
이렇듯 통시적 흐름으로 진행된 춘향전 연구에서만 본다면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은 그 거리가 좁힐 수 없을 만큼 멀게만 느껴진다. 경판 춘향전을 거치지
않고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 그러할까? 완
판 84장본과 세책 춘향전과의 친연성은 전연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인가?
* 이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는 ‘BK21플러스 연세대학교 한국 언어․문학․문화 국제
창의인력양성사업단’의 지원비를 받았음.
** 연세대
356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이들 두 작품은 계열로 본다면 시작과 끝으로 그토록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실
은 1900년대 초 같은 시기에 유통되던 판본들이다.
즉 기존의 연구에서 더 나아가 세책에서 완판으로 바로 연결하는 공시적 관점으
로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두 작품이 공유하는 다른 여러 요소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이번 논의에서는 몇몇 핵심화소와 노정기를 중심으로 공시적 비교연
구를 진행했다.
핵심어 : 세책, 완판, 춘향전, 강구문동요, 춘당춘색고금동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57

 

차례
1. 서언
2. 세책 춘향전과 경판 춘향전, 경판과 완판 간의 연관성
3. 동양문고본 세책 춘향전과 완판 84장본 춘향전 비교
3.1. 유통 시기의 일치
3.2. 서울과 지방의 간극 축소
4. 결론

 

1. 서언
서울(안성 포함)에서 간행된 방각본 춘향전은 경판 35장본, 경판 30장본,
경판 23장본, 안성판 20장본, 경판 17장본, 경판 16장본 등 6종(이판본 포함
10종)이 알려져 있다. 이들 경판은 가장 앞선 것이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졌
으며, 이후 방각본의 특성상 점차 장수가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이중
가장 오래된 경판 35장본은 서울에서만 유통되던 세책 춘향전을 축소시켜
생성된 이본으로 알려져 있다.
세책 계열 춘향전은 필사본으로 남원고사, 일본 동양문고 소장본(향
목동 간기), 아천문고 소장본, 도남문고 소장본, 이명선본 등 5종이 있다.
남원고사는 실제 세책으로 유통되던 것은 아니나, 필사시기가 1864~
1869년으로 적어도 세책이 그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양문
고본은 1900년~1911년 동안 필사된 권들이 합쳐져 한질을 이루고 있으며,
아천문고본은 1907년 필사, 도남문고본은 세책을 대본으로 하였으나 임의
적으로 노래를 넣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명선본은 이명선이 문장에 실은
춘향전으로 옛 이야기책을 얻어 옮긴 것이라고 밝혔으나 세책으로 추정될
뿐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중 실제로 세책으로 유통되었다는 증거
358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를 갖고 있는 것은 향목동 간기를 지닌 동양문고 소장본뿐이다. 이들 세책
계열 춘향전은 시기나 체재에서 차이가 있지만 몇 십 년 간 내용에 있어서
는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왔다. 남원고사나 동양문고본이 직접적으로 경
판 춘향전에 영향을 미쳤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세책
(남원고사나 동양문고본으로 이어진)이 경판 춘향전의 대본이 되었으리라
는 것이 최근의 연구결과이다. 즉 세책 춘향전을 기반으로 축소하여 경판
35장본이 탄생하였고, 세책 춘향전과 당시 유행가와 판소리 사설을 적절히
조합하여 경판 30장본이 만들어진 것이다.
완판 춘향전1)은 어떠한가? 구성이 온전한 완판에는 26장본, 29장본, 33
장본, 84장본 등 모두 4종이 알려져 있다. 1881년 이전에 유통되었을 것으
로 추정되는 완판 40장본이 완판 장풍운전의 배접지 형태로 발견되었으
나 낱장이어서 구성이 온전치는 않다. 발생순서 상으로는 40장본이 가장
앞서고, 그 다음 서로 선후를 가늠할 수 없는 29장본과 26장본이 뒤따르며,
이어서 33장본이 나타났다. 84장본은 가장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나, 그동
안 국문학계에서 판소리 연구와 결부시켜 선본(善本)으로 삼았기 때문에
많은 논쟁을 낳았다. 과거의 춘향전 연구자들은 전라도에서 발생한 판소리
춘향가의 영향으로 춘향전 관련 텍스트가 나타났으며, 이것이 서울로 전파
되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방각본 춘향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1) 완판이라는 용어에는 주의를 기울여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기본적으로
완판 33장본까지는 기본적인 방각본의 특성(후대로 갈수록 장수를 줄이고 내용을
축약하는)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게다가 각각의 행문분석을 통해
경판과의 친연성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파악하는 연구까지 이루어진 상태다. 그러
나 완판 84장본은 도리어 장수가 늘어나고 의도적인 개작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완판들과 동일선상에 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전형적인 방각본의 특성을 그대
로 따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완판’이라고만 지칭하는 대상은 84장
본을 제외한 나머지 완판 춘향전 계열을 가리키는 것으로 설정한다. 84장본은 반드
시 ‘완판 84장본’으로 지칭하였음을 밝혀둔다.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59

 

완판 춘향전이 경판 춘향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
근 판소리학계 및 국문학계의 연구에서는 서울의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역
할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판소리가 발생하여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로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예상과 방각본 또한 서울에서 지방으로 퍼
져나갔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2. 세책 춘향전과 경판 춘향전, 경판과 완판 간의 연관성
앞서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서울에서만 유통되었던 세책 춘향전은 경판
춘향전 35장본과 30장본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고, 경판 35장본은 전주의
완판 40장본과 29장본과 유사한 화소와 단락구성을 공유하고 있다. 완판
29장본은 완판 33장본의 행문과 47%정도 일치한다. 마지막으로 완판 84장
본은 33장본의 행문을 이어받았으나 전체 분량의 10%미만이다.2) 그러나
장면과 화소가 일치하는 측면으로 따져본다면, 독자적인 텍스트를 구축하
되 완판 84장본은 33장본의 구조적인 틀을 받아들이는 등 친연성이 상당했
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도식을 설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세책 춘향전 → 경판 춘향전 → 완판 춘향전
말하자면 지금까지 이야기되어왔던 것처럼 완판 춘향전이 독자적으로
탄생한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서울에서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
춘향전이 시기적으로 먼저 성행하였고, 이를 저본으로 목판을 만들어 판매
한 서울의 방각업자가 나타났으며, 두 가지 모두를 참고하여 완판 춘향전

 

2) 전상욱, 「방각본 춘향전의 성립과 변모에 대한 연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169-171면.
360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이 만들어졌다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세책에 관련된 기록은 18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난다.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나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문집에는 돈을 내고 책을
빌려본다든가, 한글소설이 대단히 성행해서 그 이익을 노리고 상인들이 세
책을 만들어 팔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775년 당시 유행하고 있던 현상
이므로 18세기 중반부터는 세책이라는 형태의 출판업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스템은 1910년대까지 지속되었는데 독특한 점은 서울에만 있었
던 형태라는 것이다.3) 현재까지 이름이 알려진 세책집은 30여 집이 되는데
최소한 이 정도 이상의 세책집이 영업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4) 그러나 그
이상의 숫자가 영업하고 있었다하더라도 각 세책집에서 필사해 마련할 수
있는 세책의 권질은 1종에 2~3질 정도로 한정되었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
컨텐츠가 현재 인기가 있다고 해서 계속적으로 나갈지의 여부도 문제지만,
내구성을 위한 질 좋은 종이의 가격이라든가 필사인력의 품삯, 베끼는데
드는 소요시간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거기다 세책이 분실․훼
손이라도 되는 경우에는 다시 채워 넣어야하므로 또 비용이 발생한다. 다
시 말하면 인기 컨텐츠를 무한정 필사해 소비자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으면
많은 이익을 볼 것 같지만 실제 여건상 그럴 수 없는 것이다.5) 따라서 세책

 

3) 오오타니 모리시게, 韓國古小說硏究, 景仁文化社, 2010. 450-453면.
4) 이윤석, 향목동 세책 춘향전 연구, 경인문화사, 2011, 머리말.
5) 현대의 도서대여점으로 예를 들자면 우선 고객들이 많이 찾는 만화나 무협지 권질을
온전히 갖추어 놓는 것을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고객의 수요에 적절히 부응하
지 못할 경우 심각한 재고부족비용을 지출해야한다. 수익 창출 기회를 놓치는 것은
물론 신뢰도 하락으로 업체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것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많은 동일
종류의 제품을 보유하는 것은 추가적인 재고관리의 부담을 유발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는 대여업체가 기대하는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그 손실의 규모가 영업대
여기간 동안 대여가격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책정해야하는지, 공급량은 어느 정도여
야 하는지의 모형까지 제시되고 있다.
박해철, 「수요가 시간 경과에 따라 감소하는 대여제품의 최적 재고수준」, 韓國生産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61

 

집에서 인기 있는 컨텐츠의 수요가 발생하는 경우 그와 동시에 공급부족이
일어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소설독서시장의 만성적 초과수요
상태는 방각업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안전한 한문본 실용서적․교육서
적을 위주로 출판되던 방각본이 소설시장에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
다.
품삯이나 종이 질에 따른 비용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종이와 먹만 있으
면 언제든지 필사하고, 반대로 언제든지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는 세책과
는 달리 인건비, 목판, 종이 등의 고정 자본이 투입되는 방각본은 아무래도
시장 진입에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비용이 미리 투입되어 손실의 규모
를 조절할 수 없는데다가 만약 손해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고스란히 떠안아
야하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방각본 소설이 19세기 후반에 인출
된 것이기에 명확한 증거자료가 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18세기 중반부터
세책업이 성행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방각본 소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세책 춘향전은 큰 인기를 끌었고, 이에 대한 초과수요가 발생함에 따라
서울의 방각업자들은 세책 춘향전을 방각본으로 간행하는 사업에 뛰어들
었다. 빌리는 값이 꽤 나갔던 세책과 달리 가격을 낮추는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방각본의 종이와 먹, 그리고 인쇄상태는 다른 간행
물과 비교해서 조악하고 조잡스러웠으며 내용도 원래보다 축약되었다. 하
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싼 값에 자신만의, 자신을 위한 텍스트를 누구나 소
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두고 다시 보고 싶은 책을 소장하려면
수고스럽게 필사를 해야만 했다. 그것도 책 몇 권을 베낄 수 있을 만큼 충
분한 종이와 먹,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특히 소장하고자 하
는 텍스트가 소설인 경우, 그러한 노력을 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남의 시선
管理學會誌 19, 한국생산관리학회, 2008. 3-22면.
362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을 의식하고 몰래하거나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소설무용론과 같은 인식에
굴복하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각본으로 만들어져 구매한 컨
텐츠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도 괜찮았다. 기한에 맞춰 돌려줄 필요
도 없었고 인기 있는 세책 전질을 빌리는데 드는 값보다 훨씬 적게 들었다.
비록 그 내용이 짧아지고 최신 유행가나 사설을 제때 수용하지는 못했지
만, 이야기의 기본적인 내용은 담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별로 손해
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이 모든 과정은 문화적 중심지
였던 서울에서 대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세책본이 존재하지 않았던 전주 지역에서 방각본 춘향전은 언제
부터 만들어졌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완판 40장본과 29장본은 경판 35장본과
의 친연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경판 35장본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남원고사나 동양문고본과 같은 세책 계열을 대본으로 축소되었
고, 장수가 많은 것이 선행하는 방각본의 특성상 경판 춘향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춘향과 관련된 이야기가 언제 창작되었을지
는 단언할 수 없지만, 경판 35장본과 세책 춘향전이 그리 크지 않은 시간차로
유통되었을 것이다. 한편 완판 40장본은 1881년 이전에 유통되었으며 남아있
는 부분으로 미루어보아 초기 경판 춘향전과의 관계가 깊었을 것으로 추측되
고 있다. 29장본이나 26장본은 현존하는 판본들이 1908년에 번각 및 보판을
거친 판들이지만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1906년에
나온 완판 33장본이 29장본의 행문을 대거 수용하며 판소리 춘향가에서
유래된 새로운 내용을 끼워 넣은 판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완판 84장본
은 1908년 龜洞에서 신간으로 나온 판본이 현재 가장 이른 본이다.6) 84장본은
6) 완흥사서포(1912), 다가서포(1914)에서 나온 완판 84장본과 판식이 동일하다. 龜洞
은 전남 南川邊 半石里를 가리킨다. 龜石里 또는 九石里라고도 부른다. 완판 방각
본 소설이 가장 많이 간행된 곳으로 戊申仲春完龜洞新刊(1908년 2월) 소대성전,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63

 

33장본의 변모를 지속시키고 완성시킨 판본이다.7)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세책 춘향전 중 남원고사, 동양문고본
은 초기 경판 춘향전과의 친연성이 증명되었다. 또 초기 경판 춘향전, 즉
35장본은 초기 완판 춘향전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후 완판은 나름대로의 변모를 거듭해왔고, 그러는 중에 경판도 30장A본
(1886년 이전), 30장B본(1887년 이전)8), 23장본(1889년 이전), 17장본(1903
년) 등의 형태로 변화해왔다. 이중 경판 30장A본은 완판 29장, 33장과의
친연성이 있다. 그리고 완판 33장본은 완판 84장본의 형성에 어느 정도 기
여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 논의된 바를 정리하면 경판 35장본을 줄여서 만든 것이 경판
30장본계열이고, 이것이 완판 29장본에 영향을 미쳤으며, 완판 29장본은
완판 33장본의 행문과 관계가 깊다. 마지막으로 완판 33장본은 완판 84장
본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러므로 완판 84장본은 마치 새롭게 창조된 듯 보
이는 독특한 구성과 변화된 인물 성격에도 불구하고 경판의 영향이 없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9)
그렇다면 여기까지 진행된 춘향전 판본 논의10)에 한 가지 논의를 덧붙
戊申孟夏完龜洞新刊(1908년 4월) 장경전, 戊申仲夏完龜洞新刊(1908년 5월)에
춘향전 상권이 나왔고, 6월에 하권을 간행했다.
이옥성, 「춘향전 寫本과 刊行本의 系統 및 書誌的 特徵에 관한 연구」, 한성대
석사학위논문, 2009. 63면 주석112번 참조.
7) 전상욱, 앞의 논문, 160면.
8) 30장B본은 孝橋에서 간행되었다는 간기가 있어 1887년 이전에 유통되었음을 짐
작할 수 있다. 그런데 A본에는 B본에서 탈락된 행문이 들어가 있어 B본보다 이전의
판본으로 알려져 있다.
9) 물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완판 84장본의 선행본이 존재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본고에서는 현존하는 춘향전 판본만을 대상으로 삼기로 한다.
10) 이상 1-2장의 논의는 이윤석, 이창헌, 정명기, 전상욱, 주형예, 유광수, 유춘동 등
최근 10여 년 간 축적된 조선 후기 세책고소설 및 경판본에 대한 논의를 참고해 다시
364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여보고 싶다. 과연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또 지금껏 경판 춘향전을 거치지 않고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다고
여겨온 완판 84장본과 세책 춘향전과의 친연성은 전연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이와 같은 의문을 밝히기 위해 실제로 세책집에서 빌려주
던 것이 확실한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의 내용을 직접 비교해보고자
한다. 세책계열 춘향전 중에서는 남원고사가 그 분량이나 내용이 풍부하
지만, 세책을 대본으로 베낀 사본이어서 엄밀히 말해 세책으로 볼 수 없다.
이명선본도 세책을 그대로 소개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그러나 동양문고본 세책 춘향전에서는 실제로 유통되었던 세책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간기가 뚜렷하고 침자리가 있는 형태가 잘 드러나 있으며
여백에 독자들의 낙서가 완연히 존재한다. 이처럼 세책의 특징을 완벽히
지니고 있는데다가 완판 84장본과 동일한 시기에 유통된 사실이 확실한
서술한 것이다. 언뜻 중첩되는 내용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학계의 춘향전 판본에
대한 정리나 전반적인 현재 상황을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따로 장
을 할애하여 서술하였다. 3장의 가설이 단순 비교를 한번 시도해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전제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 논의들을 종합하고 추론해본
결과로 세책 춘향전과 완판 84장본이 시기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존재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학계의 논의가 상식으로서 널리 수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책본과 경판본, 그리고 완판본에 관한 지난 성과들을 본고에서 종합
적으로 요약하고 덧붙여 보여줄 필요가 있었음을 밝힌다.
(이윤석․오오타니 모리시게․정명기 편, 세책고소설연구, 혜안, 2003. 이윤석, 향
목동 세책 춘향전 연구, 경인문화사, 2011. 이윤석, 도남문고본 춘향전 연구, 경인문
화사, 2012. 이창헌, 경판방각소설 춘향전과 필사본 남원고사의 독자층에 대한 연구,
보고사, 2004. 정명기, 「세책필사본 고소설에 대한 서설적 이해」, 고소설연구12,
한국고소설학회, 2001. 「세책본소설의 유통양상」, 고소설연구16, 한국고소설학회,
2003. 정병설, 「세책소설 연구의 쟁점과 방향」, 국문학연구10, 국문학회, 2003. 전상
욱, 「방각본 춘향전의 성립과 변모에 대한 연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주형예, 「매체와 서사의 연관성으로 본 19세기 대중소설 시장의 성격」, 고소설연구27,
한국고소설학회, 2009. 유광수, 「세책본 고소설의 성립 연원과 제작 방식에 대하여」,
고소설연구29, 한국고소설학회, 2009. 유춘동, 「20세기 초 구활자본 고소설의 세책
유통에 대한 연구」, 장서각15,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65

 

자료이기 때문에 동양문고본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본고에서 주목하는 부
분이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동시대성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부분이
므로, 각 계열 이본 중 특징과 간기가 확실한 본, 그리고 비슷한 시기 유통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본을 대표로 선정해 비교연구를 진행하였다.
3. 동양문고본 세책 춘향전과 완판 84장본 춘향전 비교
우선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의 대체적인 내용을, 핵심적인 화소를 중
심으로 정리해보기로 한다.11)
【표 1】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 화소 비교
구분
춘향
신분
주인공
이름
만남
시간
만남
방식
불망기
춘향집
노래
혼약
장소
신물
교환
사후
기약
동양문고본
기생
(사랑

면천)
이몽룡
성춘향
三春
광한루
대면

대면 시
요구
권주가/바리가
/비점가/사랑
가/업음질노래
광한루
(불망기
+혼약)

이별 시
거울과 옥
지환 교환

완판
84장

성참판
서녀
이몽룡
성춘향
오월
단오일
귀가

광한루
대면

사랑가/情字노
래/宮字노래/
업음질노래/乘
字노래
춘향집
(월매
중매)
☓ ○
승차
이별
장소
춘향
위로
황릉묘
몽유
과거
춘향
편지
파경몽
기생
해칼
동양문고본 내직 오리정
한량
왈짜

? /
춘당춘색
고금동


옥중상봉
직전

완판
84장

내직 춘향집
구경꾼
기생

태평과/
춘당춘색
고금동


황릉묘
몽유 직후

11) 화소를 분류하는 기준은 전상욱(2006)의 분류기준을 그대로 따른다.
366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표 1>에서 보다시피 세책인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은 화소 면에서
그다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면의 위치가 바뀌어 서술
되거나 새로운 화소를 집어넣은 데서는 열녀로서의 춘향의 성격을 확고히
하려는 완판 제작자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기존의 서사를 활용하는 쉬
운 방법을 마다하고 새롭게 판본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황릉묘 몽
유와 파경몽․해몽 단락의 연관성은 이러한 시각에서 이해된다. 춘향전에
서 본질적인 화소에 해당하는 파경몽․해몽 단락은 복선이라는 역할을 수
행한다는 점에서, 꿈에 관련된 화소라는 점에서 새로 집어넣으려는 화소인
황릉묘 몽유와 겹친다. 그러나 삭제시킬 수는 없는 중요한 화소이므로 옥
중 상봉 장면에 있던 파경몽․해몽 단락을 형장 직후로 옮기고 황릉묘 몽
유 단락을 끼워 넣었다. 이를 ‘극적 효과’ 또는 ‘청각 중심 문화’, ‘구성의
안정성’ 등으로 설명한 선행 연구자들12)이 있고, 이몽룡과 춘향이 만나는
시간 설정의 차이를 근거로 함께 들면서 춘향의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형상
화를 위해 나타난 변화로 풀이한 연구13)도 있다.
그러나 화소상 일치하는 부분이 그다지 없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판본을 비교한 결과 상당한 의미를 가진 단초를 발견하는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은 각각 서울과 전주라는 멀리 떨어
진 위치에도 불구하고, 몇몇 대목에서 ‘동시대 유통되었던 텍스트이기 때
문’이라고 해석하기에 충분한 친연성을 갖고 있다. 세책과 방각본이라는
제작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 나아가 시대적․문화적 배경이
동일함을 나타내는 대목들이 삽입되었다는 사실에서 오히려 위로부터 이

 

12) 설성경, 춘향전의 통시적 연구, 서광학술자료사, 1994. 502-503면.
이창헌, 경판방각소설 춘향전과 필사본 남원고사의 독자층에 대한 연구, 보고사,
2004. 46-47면.
13) 전상욱, 앞의 논문, 54-55면.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67

 

어져 내려온 같은 계열의 판본보다도 가까운 점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위의 화소비교표를 중심으로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의 몇몇 장면을 살펴보겠다.

 

3.1. 유통 시기의 일치
1860년대 간기가 있는 남원고사는 40년 뒤에 유통된 동양문고본과 큰
변화 없이 기본적으로 같은 이야기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조금씩 차이
가 난다.14) 다시 말하면 20~40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서울의 세책 춘향
전 안에서 약간씩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동양문고본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 양상이 완판 84장본에 수용된 부분을 일부 발견할 수 있었다.
남원고사, 동양문고본, 완판 84장본의 동일 장면의 행문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이런 문장 가쇼다. 당시에 긔로 한믁의 독보니 국민안고 시
화셰풍이라 강구에 격 / 양가 연월 이곳〃지라 방경누흡여 알셩과 뵈
시거늘 시지 엽 고 츈당 드러가셔 현졔판 바라보니 강구에 문동
요라 두렷시 거럿거늘 금슈간장 창문장 졔 각고 뇽미연에 믁을
갈고 슌황모 무심필을 반듕동 흠셕 프러 왕희지필법으로 됴보의 쳬
바다 일필휘지니 문블가졈이라 샹시관이 글을 보고 칭찬여 니말이
글시 볼작시면 뇽비등고 글귀 보량이면 아모랴도 귀신이 곡
다 쳬격은 굴원이오 문법 // 은 한퇴지라 〃이 비졈이오 귀〃히 관쥬로
다 샹지샹에 등을 막혀 댱원급졔것고나 금방에 닐홈 고 텬은을 숙
고 어쥬삼 마신 후에 몸의 쳥삼이오 머리에 어화라 쳔금쥰마
빗기 타고 댱안로 화류듕의 헌거로이 도라올 졔 니 션달이오 브

 

14) 이윤석, 앞의 책, 머리말.
368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니 신로다 원풍악은 훤텬고 금의화동은 져 빗기부니 단산츄
야월에 봉의 소로다 쳥운낙슈교의 시졀이 평이라 노류댱화 우거지
고 거리〃〃 격양가 브 젹의 화문젼 다니 부모형뎨와 종족친
붕 향당고리드리 / 졔셩칭찬니 셰상의 조흔거시 급졔밧긔  잇가
(남원 권4: 16뒤~17앞)
이런 문장 가쇼다 당시의 문장긔로 한묵의 독보니 국민안고
시화셰풍이라 강구의 격양가 연월이 곳〃이라 방경누흡여 격양가
뵈시거 시지 픔고 츈당의 드러가셔 현졔판을 바라보니 츈당츈이
고금동이라 둥두려시 거럿거 금슈간장 창문장 졔 각고 용미
년의 한님풍월 슌황모필 반즁등 흠셕 푸러 왕희지의 필법으로 조보 쳬
 바다 일필휘지니 문블가졈 조흘시고 일쳔의 션장니 // 상시관이
글을 보고 칭찬여 글시 용비등고 글귀 귀신 곡읍이라 쳬격 굴원이
오 문법은 한유라 〃 비졈이오 귀〃 관쥬 상시상 등을 막혀 장원급졔
금방 일흠 쓰고 텬은 어쥬삼 마신 후의 몸의 쳥이오 머리의 어
화라 쳔금쥰마 빗기 고 장안도 화류즁의 헌거로이 도라올 졔 금의화
동 져 빗기 부니 단산츄월의 봉의 노로다 쳥운낙교상의 시졀이
평이라 노류장화 욱어지고 강구의 문동요라 고당의 영화오 종족의 치하
로다 인간의 조흔 거시 급졔밧  잇가 (향목동 권7: 20뒤~21앞)
잇 한양셩 도련임은 주야로 시셔가어를 숙독하야슷니 글노난 이
이요 글씨는 왕흐지라 국가으 경사잇셔 평과을 뵈이실  셔을 품으
로 품고 장중으 드러가 좌우을 둘너보니 억조창 허다 션 일시의 숙
한다 어악풍유 쳥셩의 무가 춤을 춘다 졔학 츌하야 어졔을 
리신이 도승지 모셔여 홍장 우여 거러논니 글졔으 하여씨되 춘당춘이
고금동이라 두러시 거러건늘 이도령 글졔을 살펴보니 익키보던 라 시졔
을 펼쳐노코 졔을 각야 용지연을 먹을 가라 당황모 무심필을 반중
동 덥벅 푸러 왕히지 필법으로 조보 체을 바다 일필휘지 션장하니 상시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69

 

관이 이글을 보고 자〃이 비졈이요 귀〃이 관주로다 용사비등고 평사
낙안이라 금셰으 로다 금방으 일홈 불너 어주삼 권하신 후 장원급
졔 휘장이라 실 진퇴나올 젹으 머리예는 어사화요 몸으난 삼이라 허
리에난 학로다 (완84 137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남원고사와 동양문고본이 같은 세책 계열로 내
용이 거의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문을 비교해보면 동양문고본이
조금씩 축약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류듕의 헌거로이 도라올 졔 
니 션달이오 브니 신로다 원풍악은 훤텬고 금의화동은 져
 빗기부니 단산츄야월에 봉의 소로다” 라는 남원고사의 구절에서
“니 션달이오 브니 신로다 원풍악은 훤텬고”를 삭제한 채
바로 금의화동 운운으로 넘어가는가하면, “노류댱화 우거지고 거리〃〃
격양가 브 젹의 화문젼 다니 부모형뎨와 종족친붕 향당고리드리
/ 졔셩칭찬니”를 “강구의 문동요라 고당의 영화오 종족의 치하로다”로
간단히 처리하고 있다. 일견 거의 같아 보이는 세책 계열 안에서도 텍스트
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이는 같은 세책 계열이라도 40년이라는 시간
차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재미있는 점은 오히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같은 계열끼리의 친연성보다도 같은 시대에 유통된 완판 84장본과의 화소
공유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위의 인용문은 이도령이 과거 급제하는 단락으로, 이도령의 글씨와 글의
수준에 대해 용사비등(龍蛇飛騰)하고 글자마다 비점에 구절마다 관주를
칠 만큼 뛰어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장원급제하여 방방의(放
榜儀)를 마치고 장안에서 유가(遊街)를 펼치는 모습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과의 친연성이 드러나는 부분
이 이곳이다. 과거시험의 종류와 시제(試題)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370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이다. 남원고사에서는 알성과를 보았고 ‘강구문동요(康衢聞童謠)’를 시
제로 제시했다. 동양문고본에서는 필사자의 실수로 무슨 과인지 알 수 없
지만, 시제는 태평과에 ‘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이라고 나온 완
판 84장본과 정확히 일치한다. 1906년 간행된 완판 33장본도 태평과에 ‘춘
당춘색고금동’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비슷한 시기 생산된 세책과 완판 계열
의 친연성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이보다 앞서 유통된 완판 29장본, 26장본
에서 태평과에 ‘강구문동요’로 나타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15)
춘향의 성(姓)이 어떤 성씨로 표기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도 동양문고본
과 완판 84장본의 친연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아래 <표
2>를 살펴보자.16)
【표 2】춘향전 텍스트의 유통시기와 춘향의 성씨
구분 유통시기 춘향의 성(姓)
세책 남원고사 1864년 이전 김
경판 35장본 ? 김
30장A본 1886년 이전 -
30장B본 1887년 이전 -
23장본 1889년 이전 안
세책 동양문고본 1900~1911년 성
경판 17장본 1903년 안

 


15) 한편 남원고사와 동양문고본에서 나타나는 과거 급제 단락에서의 시제 차이는 다
르게 생각할 여지가 남아있다. 이러한 세부 항목의 차이는 세책 필사자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또는 세책 계열 안에서도 ‘강구문동요’ 시제를 채택한 텍스트와 ‘춘당춘색
고금동’ 시제를 채택한 텍스트가 분파․수용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다. 마
지막으로는 ‘춘당춘색고금동’라는 시구가 기존의 ‘강구문동요’ 시구보다 유행의 첨단
으로 인식되어 후대에 교체․수용되었을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춘향과 몽룡의 성
씨 변화 문제도 세책 계열 내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다.
16) 남원고사나 아천문고본은 엄밀히 말해 세책으로 유통되었던 책은 아니지만, 세책
의 형태를 띠고 필사되었으므로 표에서는 ‘세책’이라고 앞에 표기하기로 한다.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71

 

안성판 20장본 1906년 이전17) 성
완판 33장본 1906년 성
세책 아천문고본 1907년 성
경판 16장본 1905~1908년 안
완판 26장본 1908년 이전 성
완판 84장본 1908년 성
전상욱은 초기의 세책 춘향전에서 ‘김’춘향이라고 한 것을 받아들여 경
판 35장본이 ‘김’춘향으로 표기하고 있고, 이후 23장본에서 ‘안’춘향으로 바
뀌면서 23장본의 강한 영향권 내에 있는 판본인 경판 17장본과 16장에도
그대로 ‘안’춘향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현전 판소리 춘향가나
완판 춘향전의 경우 ‘성’춘향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안성판 20장본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고 당시 유행하던 텍스트의 영향을 받아 춘향의 성의 ‘안’
에서 ‘성’으로 바꾸었다고 보았다.18) 그렇다면 당시 유행하던 텍스트라는
것은 무엇일까? <표 2>를 보면 경판본을 제외하고는 후대로 갈수록 대부
분의 판본에서 ‘성’춘향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하
면 1900년대 초 제작․유통된 판본들 -안성판 20장본, 세책 동양문고본,
완판본들은 춘향과 이도령의 성씨에 관한 텍스트 혹은 정보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에 맞게 서술했다는 이야기다. 이도령과 성춘향의 바뀐 성씨에

 

17) 이정원에 의해 서강대에 소장되어 있던 안성판 20장본이 2005년에 새롭게 발굴되었
다. 2006년에 재발표한 논문에서 ‘안셩동문이신판’이라는 간기는 같지만 표지에 “병
오정월일공동” “경슐이월일미동궁졍동” 藏書記가 있어 그동안 1912년 북촌
서포 간행으로 알려져 있던 시기를 앞당겨 유추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고 말했
다. 병오년은 1906년을 가리키는 것이고, 경술년(1910)에는 서울의 미동(美洞)과 궁
내정동(宮內井洞)에서 안성판을 소장했으며, 안성판이 서울에서도 유통되었다는 증
거 또한 된다고 보았다.
이정원, 「안성판 방각본의 소설 판본」, 한국고전연구 14, 한국고전연구학회, 2006.
238면.
18) 전상욱, 앞의 논문. 64면.
372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관해서는 세책 동양문고본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다. 이 도령이 춘향
의 이름과 성을 묻고, 두 사람의 성을 따서 ‘二姓之合이 아닌 李成之合’이
라는 대구풀이를 하는 것이다.19) 당대 감각으로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고 느껴졌을 이 언어유희가 유행하고 있던 차에, 이것을 춘향전 텍스트에
적용하고 보자는 세책가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신분이 낮은 기생 출신 춘
향의 성이야 ‘김’이든 ‘안’이든 상관없이 세책집마다 혹은 필사자마다 달랐
지만, 이도령의 성이 이씨라는 점은 변함없이 같았으므로 춘향의 성만 바
꿔 서술하면 되었다. 저본이 정해져있고 분량감소라는 목적에 중점을 두어
변경하기 어려웠던 경판본을 제외하고는, 동시대에 유통되었던 1900년대
의 춘향전 텍스트에서 과거 시제와 춘향의 성씨에 관한 정보의 변경을 단
행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미처 살피지 못한 다른 화소에도 이 같은 경
판본의 경직성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추가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3.2. 서울과 지방의 간극 축소

 

이어서 이도령이 과거 급제 한 후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전라도 어사로
내려가는 노정기 대목을 살펴보자.
젼나어 특하시니 평의 소원이라 엇지 아니 황감리 당일노
발할  어젼의 하직고 금의 다 치고 젼쳑 슈의 삼마 고두리
의 단〃이 고 군관비장 셔리반당 츌여 변복여 션송고 삼방
하인 귀속여 남모르게 장을 두고 암으로 려갈  쳡 업 헌 파
립의 무명실노 을 고 당만 남은 헌 망근의 갓풀 관 조희 당쥴 다
19) 성이 다른 남녀가 합한다는 뜻으로 혼인을 이르는 말인 이성지합(二姓之合)을 이가
(李哥)와 성가(成哥)가 합한다는 이성지합(李成之合)으로 썼다. 이윤석, 앞의 책.
44면 24번 주석 참조.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73

 

러진 베 도포 모양 업시 걸쳐 닙고 칠분자리 목통의 다 여진 맛
붓치 웃다님 즐근 고 변쥭 업 붓 들고 고당의 // 하직고 젼나
도로 려갈  쳥파역졸 분부고 슉예문 밧 다라셔 칠 팔 이문동
도져골 다리 지나 쳥 다리 돌모로 밥젼거리 모톱 지나 동작이 밧
비 건너 승방들 남령 인덕원 과쳔 즁화고 갈 근 군포 미력당
지나 오봉산 바라보고 지〃 올나셔〃 참나무졍이 얼는 지나 교구졍
도라드러 팔달문 다라 샹뉴쳔 하뉴쳔 황교 진울 젼거리 즁하고
즁밋 오뮈 진위 칠원 소 비트리 텬안삼거리 김졔역마 가라고 덕졍 원
터 광졍 활원 몰원 슛막 공쥬 금강 휙근 지나 경쳔 노셩 황하졍이 은진
닥다리 능기울 삼예 지나 여산관 슉쇼고 젼쥬 드러 한벽누 구경고 남
창교 도라드러 반슈역의 군호고 조분목 만마동 노구바희 임실관 슉쇼
고 오슈참 즁화고 나려올  슈의어 쳘관풍 심산 // 의 호로다
(향목동 권7: 22뒤~24앞)
졀나도 어사을 졔수하시니 평으 소원이라 수의 마 유척을 주시
니 젼하게 하직고 본으 나어갈 졔 쳘관풍는 심산호 갓탄지라 부
모젼 하직고 졀나도로 할  남문 밧 쎡나셔〃 셔리 중방 역졸 등
를 거나리고 쳥역말 자바타고 칠 팔 다리 얼는 너머 밥젼거리 지
 동젹이를 얼풋 거네 남령을 너머 과쳔읍의 즁와고 사그 밀럭당
이 수원숙소고 함괴 젼거리 진올 즁밋 진의읍의 중와고 칠원
소 고다리 셤환역의 숙소고 상유쳔 하유쳔 술막 쳔안읍의 중와
고 삼거리 도리터 짐게역말 가라타고 신구덕평을 얼는지 원터의 숙소
고 팔풍졍 화란 광졍 모란 공주 금강을 건네 금영의 중와고 놉푼 질
소 문어미 널틔 졍쳔의 숙소고 뇌셩 풋 사다리 은진 간치당이 황화
졍 지미고 여산읍의 숙소고 잇튼날 셔리 즁방 불너 분부되 (생략)
(완84 139면)
어사가 전주까지 내려가는 노정에서 향목동과 완판 84장본을 비교해보
374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면 어사의 차림새를 묘사하는 부분이 출발할 때 나타나는가 또는 여산에
도착한 다음에 나타나는가하는 위치상의 변화 외에 구체적인 지명을 서술
하는데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완판 84장본이 서울의
세책이 서술하는 노정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방에
서 만든 판본이기 때문에 생기는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동양문고본이 그나마 서울에서 만들어진 춘향전 치고는 상당히 자세
한 노정기를 서술한 텍스트라는 점이다. 84장본에 비해 몇몇 지명이 빠져
있을 뿐 도중에 쉰다거나 숙소를 정하는 등의 여정을 집어넣고 여산과 임
실까지 내려오는 행로에 충실하다. 동양문고본과 84장본의 친연성이 드러
나는 대목이다. 이 사실은 같은 세책 계열인 남원고사와 비교해보면 더
욱 잘 드러난다.
젼나어 특하시니 평의 소원이라 엇지 아니감츅리 즉일 발
올젹의 어젼의 하직고 집에 도라와 고당 허고 부모의게 하직고
금의 다 바리고 쳘업슨 헌 파립에 미명실노 을 고 당만 남은 헌
망건의 갓플 관 됴희 당 졸나고 다 러진 뵈도포 모양 업시 거
러입고 칠푼 리 목분합 흉복통을 / 눌너고 하여진 맛부치 웃다
님으로 잘 고 변쥭 업슨 송션을 숀의 고 남문을 다라셔 군관
비장 셔리반당 녕니 군 츌여 변복시겨 남모게 션송고 암으로
려갈 졔 칠 팔 니문동 도젹골 다리 지나 쳥 다리 돌모로 동
젹이 밧비 건너 승방 남타령 인덕원과 과쳔 갈뫼 근평 군포 미력당
지난 후의 오봉산 라보고 지〃 올나셔〃 참나무졍 얼 지나 교구졍
도라드러 댱안문 드리다라 팔달문 다라 샹류쳔 하류쳔 즌골 젼거리
즁밋 음의 딘위 칠원 // 소 비트리 쳔안삼거리 진계역지나 덕평원 진슉
원 슛막 번듯 지나 공 금강을 흿근 지나 은진 닭다리 능기울 삼녜 지
나 녀산 고산의 젼가 여긔로다 슈의어 쳘관풍 심산의 회로다 (남
원 권4: 18뒤~19앞)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75

 

어사의 외양을 설명한 대목은 건너뛰고 “칠패 팔패...”로 시작하는 노정
부터 앞의 두 인용문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문고
본이 임금 앞에서 물러나와 사당에 고하고 부모에게 하직하는 부분을 빼기
는 했지만 남원고사와 거의 같은 행문을 갖고 있다. 그러나 천안삼거리
를 지나면서부터는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하고 쉬어가는 데서 조금씩 차이
가 드러난다. 시기적으로 원형에 가까운 남원고사가 서울의 세책답게 지
방의 지명을 휙 지나가는 것으로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의 독자 중
에는 지방의 지명을 아는 이가 드물 것이고 따라서 자세히 일러두어보았자
구체적인 노정기에 흥미를 느낄 사람이 적었을 것이다. 경판 춘향전에서는
아예 대표적인 지명만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완판은 전주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대상독자들이
인근의 지명을 대부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아는 지명이 나오는데서 친근
함과 흥미를 느꼈을 수 있다. 그런데 동양문고본은 서울의 세책이지만 남
원고사와는 달리 어사의 노정을 조금 늘려서 서술하고 있다. 그것도 서울
과 가까운 지역이 아니라 천안을 넘어가면서부터 사실적으로 어디에 묵고
어디에서 쉬었는지를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문고본이 유통되던 시기
는 남원고사가 유통되던(실제 세책은 아니지만) 19세기 중반에 비해 교
통이 한결 원활해져 왕래가 늘었다. 개항, 철도부설, 신작로 개통과 같은
여건이 삼남지방과 서울과의 왕래를 보다 쉽게 만든 것이다. 특히 1901년
에는 경부선이 착공, 1905년 1월에 개통되었다. 중부지방까지의 노선(경성
- 용산 - 노량진 - 영등포 - 시흥 - 안양 - 군포장 - 수원 - 병점 - 오산
- 서정리 - 평택 - 성환 - 천안 - 소정리 - 전의 - 전동 - 조치원 - 내판
- 부강 - 신탄진 - 대전)은 기존의 삼남대로와 대부분 일치한다. 1908년에
는 전주-군산, 목포-광주 간 신작로까지 완성되었다. 걸어서, 혹은 우마를
이용해 이동하던 구불구불한 경로가 철도나 신작로를 이용한 것으로 바뀌
376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면서 달라진 속도와 접근성은 예전과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이광수는 1917
년 매일신보에 이러한 교통로를 이용해 54일 동안의 <오도답파여행(五道
踏破旅行)>이라는 기행문을 연재하기도 했다.20) 다시 말해 예전보다 쉽게
서울의 세책이 삼남으로, 삼남의 완판본이 서울로 오고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밖에도 책의 직접적인 이동이라는 조건 외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노래나 연희를 통해서 춘향전에 대한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을 수 있다. 이
또한 교통의 원활함, 이동의 용이성에 의해 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이야기 속 배경이 되는 지역에 대한 일반적 상식이 대중에게 퍼져있
었으며, 1900년대 초에 생산된 춘향전이 당대 유행어나 노래를 지역에 상
관없이 수용했으리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공통점들이 단지 동
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 간 유사성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문화적 유행의 범주가 구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에는 소설 텍스트 간 영향 관계 도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소설 텍스트
를 벗어난 연구방법론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21)

 


4. 결론
앞에서 세책 춘향전과 경판 춘향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리해보고, 경
판과 완판 간의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
면서 세책 → 경판 → 완판으로 이어지는 춘향전 텍스트의 생성도식이 타

 

20) 이광수, 매일신문 1917. 6. 26 1면 5단 - 53회 완.
21) 새로운 연구방법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주신 심사위원에 감사드린다. 일련의 춘향
전 이본 계열 간 비교연구를 통해 자료가 축적된 후 이를 바탕으로 시도해보려 한다.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77

 

당하다는 잠정적 소결을 얻은 바 있다. 이 논의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하
여 실제 세책으로 유통되었던 동양문고본과 완판 춘향전의 마지막 정착지
점인 완판 84장본의 화소 및 행문을 비교하였다. 도식 상 다소 거리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로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은 몇몇 단락에서
상당한 친연성을 보였다.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유통되었을 시점을 짚어본 결과,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의 화
소 차이는 완판 제작자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 세월의 차이로 생긴 것
은 아니다. 왜냐하면 동양문고본은 1900년에서 1911년까지 서울에서 유통
된 것이고 완판 84장본은 1908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세책의 간
기는 해당 텍스트가 필사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착된 시점만을 알려
줄 뿐이지만, 적어도 동양문고본이 먼저 생성되어 완판 84장본과 같은 시
기에도 유통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증명해줄 수 있다. 지역은 다를지언정
유통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이다. 서울의 동양문고본과 전주의 완판 84장본
이 연결될 수 있는 일차적 조건을 충족한다.
둘째, 동양문고본과 완판 84장본은 몇몇 단락에서 상당한 친연성을 보였
다. 제작자가 의도하여 바꾼 대목들을 제외한 완판 84장본의 나머지 단락
에서 경판본이나 다른 완판본보다도 오히려 동시대 유통된 세책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다. 도식 상 경판의 영향으로 완판이 생
성되었음이 눈에 보이지만, 세책과 방각본이 상당한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
로 유통된 것이 아니라 거의 동시적으로 독서시장을 양분하고 있었기 때문
에 세책 → 완판이라는 직접적인 경로가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세책
이 끼친 영향이 무시하지 못할 만큼 존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책 →
경판, 세책 → 완판, 경판 → 완판과 같은 각각의 도식이 성립될 수도 있다.
이처럼 공시적 관점으로 바꾸어 살펴본다면 동양문고본 세책 춘향전과
완판 84장본 춘향전 사이에서 이외에도 더 많은 동시대적 요소를 찾아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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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춘향전 전체를 놓고 본다면 과거시험 종류와
시제, 춘향의 성씨, 그리고 어사노정기에 관한 행문은 극히 미미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아니다. 게다가 이 논문에서 제시한 경향성에서
벗어나는 이본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소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냥 지나
칠 수도 있는 작은 차이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하나를 정보로 수집함
으로써 그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세책계열, 경판본, 완판본, 그외 주요한 필사본이나 창본으로 논의
를 확대하고, 현재 진행 중인 춘향전 속 삽입한시의 계열별 정리를 추가한
다면 훨씬 보완된 논의가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또한 관점과 방법 설정에
있어서 지금처럼 단순한 비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다양한 주제
로 접근해 춘향전의 공시성에 대해 논의할 수도 있다. 이는 추후의 순차적
과제로 남겨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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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2014. 1. 29. 심사완료일: 2014. 3. 7. 게재확정일: 2014. 3. 10.
380 洌上古典硏究 제39집(2014. 3)

 

Abstract
A synchronic comparative Study on the Sechaeck Chunhyang-jeon
and Wanpan Chunhyang-jeon
22)Sung, A-sa*
There have been repeated discussions up until now about the genealogy and
variant versions of Chunhyang-jeon. Some of the theories that had been thought to
be true were turned out to be wrong after some time, and some of the hypotheses
that have been regarded invalid have become common sense which everyone agrees
with. But in the meantime, it is obvious that the efforts of previous scholars striving
to study to find out an accurate hypothesis did aid the discovery of new facts
constantly and lead us to the present.
According to the discussions that have been conducted so far, sechaek did
support the creation of gyeongpan, the division within gyeongpan influenced
wanpan, and again the changes within wanpan had an influence on the final edition
of the wanpan 84 pages edition. Even though the wanpan 84 pages edition seems
to have been newly created for its unique plot and different characters, they see it
must have been influenced by gyeongpan.
Seen from the research of Chunhyang-jeon that has been conducted to the
diachronic flow, the sechaek Chunhyang-jeon and the wanpan Chunhyang-jeon
seem too distant to narrow the gap. It means that there exists some gap which can
never be overcome without the gyeongpan Chunhyang-jeon. But is this really true?
Can’t the affinity between the wanpan 84 pages edition and the sechaek
Chunhyang-jeon be the object to be considered at all? In terms of the lines, the two
works seem too distant like beginning to end, but in fact, they are the editions that
were distributed in the same period of the early 1900’s. In other words, exceeding
the previous research, we also need to see it with the synchronic view to connect
the sechaek to the wanpan directly. At this time, we may find the other elements
that the two works share, but in this discussion, synchronic comparative research
* Yonsei Univ.
세책 춘향전과 완판 춘향전의 공시적 비교연구 381
was conducted mainly around some of the motives and the itinerary.
key words sechaek, wanpan, Chunhyang-jeon, synchronic, motif, itine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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