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김 승 우 *
42)
1. 서론
2. 구성 분석의 준거와 검증
3. 용비어천가의 구성과 층위
4. 결론
<한국어초록>
본고에서는 시형, 대우, 악곡상의 실연 여부, 악곡상의 분단과 순환, 인물과 사적 등
<용비어천가>의 구성에 관계된 여러 준거들을 분석 및 검토한 후, 이를 종합하여 작품
전체의 구성을 앞부분부터 차례로 살핌으로써 <용비어천가> 내부의 층위가 어떠한 방
식으로 분단되고 또한 각 층위들이 어떻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장편을 이루게 되는지
논의하였다.
이를 통해 <용비어천가>는 서사, 본사, 결사의 삼단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 본사가
다시 서․본․결로 삼분되는 형태로 정리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용비어천가> 125
개 장은 우선 ㉠1~2장, ㉡3~8장, ㉢9~14장, ㉣15~16장, ㉤17~26장, ㉥27~89장,
㉦90~109장, ㉧110~114장, ㉨115~124장, ㉩125장의 총 열 개 부분으로 분단되며,
㉠이 서사, ㉡~㉣이 본사의 서, ㉤~㉦이 본사의 본, ㉧~㉨이 본사의 결, 그리고 ㉩이
결사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각 장의 차사(次詞)에 다루어진 조종의 사적에 따라 본사의 서와 본에서는 그 안에
서 또 다시 일정한 순차가 나타나며, 서의 말미인 제15~16장, 본 가운데 각각 태조와
태종 사적의 마지막 부분인 제86~89장 및 제108~109장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형식
이나 인물이 제시되면서 앞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거나 전환하는 형상을 띤다. 한편, 본
사의 결에서는 조종의 순차를 일정 정도는 고려하되, 그보다는 사왕들에게 전달하는
교훈적 내용을 우선시하여 두 층위의 규계를 잇달아 제시한다. 이러한 본사를 서사인
* 전주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176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제1~2장과 결사인 제125장이 전후로 감싸면서 작품 전체의 내용을 예고하고 끝맺는
구성을 취하였던 것이다.
<용비어천가>의 구성이 대단히 번만해서 그 흐름이 쉽게 간취되지 않는다는 평가는
이미 조선전기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제출되어 왔다. 조종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사왕을 향한 경계를 드러내고, 조선의 건국사를 다루되 중국사와의 연계를 현시하려는
가 하면, 가창 텍스트이지만 문학적으로도 완정한 형식을 갖추어 작품을 제진하려던
여러 복합적인 지향이 엇걸리면서 이처럼 다단한 작품이 산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용비어천가>에서는 그러한 중층적 의도를 한 작품 안에 모두
담아내어야 하고 또한 담아낼 수 있다는 제작자들의 의지 내지 자신감이 묻어나기도
한다. 다종의 요소들을 어떻게든 균형감 있게 배치해 보려는 모색이 여러 부면에서 감
지되기 때문이다. 때로 그러한 시도가 과히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회의적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겠으나, 그처럼 불완전한 결과물을 통해서라도 이 작품을 짓는 데 간여된 본
래적 지향들을 되짚어 보아야 할 필요성은 다분하다. 따라서 본고에서 이루어진 검토
는 일차적으로는 <용비어천가>의 구성과 층위를 구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작품의
제작 목적을 가늠하는 데에도 긴요하게 소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주제어 : 용비어천가, 악장, 구성, 단락,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1. 서론
본고에서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구성에 관계된 각종 준거들
을 분석 및 종합하여 작품 전체의 체계를 명확히 검증하는 데 목적을
둔다. 즉, <용비어천가> 내부의 층위가 어떠한 방식으로 분단되고 또한
각 층위들이 어떻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지 살피게 될 것이
다.
<용비어천가>의 개별 장(章)은 대개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간혹 몇 개의 장들이 엮여 일정한 서사적 내용을 형상화한 경우라도 그것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77
이 전후 부분과 과히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같은 인물이
반복하여 등장하거나 심지어 동일한 사적이 거듭 나타나는 경우마저 적
지 않아서 <용비어천가>를 일관하는 구성 원리나 서사적 특성을 집약하
여 제시하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한 장 한 장 사이의 긴밀한 연결 관계보다는 수 개 또는 수십
개의 장이 모여 이루는 단락들의 층위를 검토함으로써 작품 전체의 흐름
을 개괄할 수는 있다. 실제로 <용비어천가>를 본격적인 문학 텍스트로
다룬 연구자들은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설명을
해 왔다.1) 대개 서사(序詞)․본사(本詞)․결사(結詞)의 3단 구조를 설정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2) 같은 3단 구조 안에서도 세부 논의를 어떻
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견해가 엇갈리기도 한다. 3단 구조 틀 내의 4단
구조로 보는 김사엽,3) Peter H. Lee,4) 3단 구조 틀 내의 5단 구조로 보는
1) <용비어천가>에 대한 근래까지의 주요 연구 동향은 김승우, 용비어천가의 성립과
수용, 보고사, 2012, 13-28쪽에서 분야별로 정리된 바 있다. 작품의 구성에 대한 종래
의 논의 역시 이 책에서 정리된 내역을 활용하여 나열한다. 한편, 김승우의 선행 연구에
서는 용비어천가라는 복합적 전적이 제작된 방식과 그것이 후대에까지 전승 및 향유
된 궤적을 정치사적 문제와도 연계 지어 드러내기는 하였지만, 정작 문학 작품으로서의
<용비어천가>가 지닌 특징과 짜임에 대해서는 별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점이 보충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2) 【⑴ 一段: 1장(전체의 總敍) / ⑵ 二段: 2~109장(2장은 二段의 서곡) / ⑶ 三段:
110~125장(125장은 전체의 總結)】 조윤제, 조선시가사강, 동광당서점, 1937, 178
쪽; 김윤경, 「용비어천가에 나타난 옛말의 변천」, 동방학지 4집, 연세대 국학연구원,
1959, 206쪽; 조윤제, 한국문학사, 탐구당, 1963, 127쪽; 장덕순, 한국문학사, 5판,
동화문화사, 1987, 163쪽; 김기동, 국문학개론, 태학사, 1981, 164쪽 등.
3) 【⑴ 서사: 1~2장 // ⑵ 본사: 3~124장 (① 文德武功: 3~109장 / ② 陳戒: 110~124
장) // ⑶ 결사: 125장】 김사엽, 이조시대의 가요연구, 대양출판사, 1956, 182쪽.
4) 【⑴ 서사: 1~2장 // ⑵ 본사: 3~124장 (① praises: 3~109장 / ② admonitions: 110~124
장) // ⑶ 결사: 125장】 Peter H. Lee, 김성언 역, 용비어천가의 비평적 해석, 태학사,
1998, 64쪽; Peter H. Lee, “Early Chosǒn eulogies,” A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Ed. Peter H. Lee,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2003, pp.152-153.
178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박찬수,5) 김학성,6) 3단 구조 틀 내의 5단 구조로 보되 세부 분석을 추가
한 성기옥,7) 김선아,8) 양태순9) 등 견해가 다양하다. 이밖에 작품을 4단
구조로 파악하는 조규익,10) 김문기도11) 분석 준거와 방식에서 뚜렷한
5) 【⑴ 서사: 1장 // ⑵ 본사: 2~124장 (① 서사: 2장 / ② 본사: 3~109장 / ③ 결사:
110~124장) // ⑶ 결사: 125장】 박찬수, 「용비어천가 연구」, 충남대 석사학위논문,
1994, 94쪽.
6) 【⑴ 서사: 1장 // ⑵ 본사: 2~124장 (① 서사: 2~16장 / ② 본사: 17~109장 / ③
결사: 110~124장) // ⑶ 결사: 125장】 김학성, 「<용비어천가>의 짜임새와 시적 묘미」,
국어국문학 126, 국어국문학회, 2000, 178쪽.
7) 성기옥, 「용비어천가의 서사적 짜임」, 백영 정병욱선생 환갑기념논총 간행위원회 편,
백영 정병욱선생 환갑기념논총, 신구문화사, 1982, 421-424쪽.
四祖
(3~8장)
→
太祖
(9~16장)
: 서사 (제1~16장)
※제1~2장은 전체의 프롤로그
四祖
(17~26장)
→
太祖
(27~89장)
→
太宗
(90~109장)
: 본사 (제17~109장)
四祖
(110~111장)
→
太祖
(112~122장)
→
太宗
(123~124장)
: 결사 (제110~125장)
※제125장은 전체의 에필로그
順次的 進行의 原理
週
期
的
循
環
의
原
理
8) 【⑴ 序詞: 1~2장 // ⑵ 敍事部: 3~124장 [① 上部(開王業部): 3~16장 (ⓐ 先祖의
사적: 3~8장 - ⓑ 創業主의 사적: 9~14장 - ⓒ 기타人의 사적: 15~16장) / ② 中部(聖人神力
部): 17~109장 (ⓐ 四祖事蹟: 17~26장 - ⓑ 太祖事蹟: 27~89장 - ⓒ 太宗事蹟: 90~109장)
/ ③ 下部(願毋忘部): 110~124장 (ⓐ 육체적 안일을 경계: 110~114장 - ⓑ 王者之德을
훈계: 115~119장 - ⓒ 王者治國의 道를 제시: 120~124장)] // ⑶ 結詞 : 125장】 김선아,
「용비어천가 연구: 서사시적 구조분석과 신화적 성격」, 숙명여대 박사학위논문, 1985,
29쪽.
9) 【⑴ 서사: 1장 // ⑵ 본사: 2~124장 [① 서사: 2장 / 본사: 3~109장 (ⓐ 사조: 3~8장
- ⓑ 태조: 9~16장); (ⓐ 사조: 17~26장 - ⓑ 태조: 27~89장 - ⓒ 태종: 90~109장) / 결사:
110~124장 (ⓐ 사조: 110~111장 - ⓑ 태조: 112~122장 - ⓒ 태종: 123~124장)] // ⑶ 결사:
125장】 양태순, 「<용비어천가>의 짜임과 율격」, 한국고전시가의 종합적 고찰, 민속
원, 2003, 385-388쪽.
10) 【⑴ 교술적 화자: 1~2장(건국의 지극한 원리 제시) / ⑵ 서사적 화자: 3~109장(조종
의 행적을 제시한 서사적 부분) / ⑶ 교술적 화자: 110~124장(서사부분에서 도출된
교훈을 반복 제시) / ⑷ 교술적 화자: 125장(전체를 요약․반복하여 결말지음)】 조규익,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79
차이를 드러낸다.
동일 작품의 구조에 대한 견해가 그처럼 다양하게 나타났던 것은 서로
다른 기준들을 서로 다른 비중으로 적용했기 때문인데, 이는 한편으로
<용비어천가>의 특성이 그만큼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지
만, 그렇다고 해서 종래의 분석들이 모두 균일한 정도의 타당성을 획득한
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각 견해가 지니는 타당성은 무엇보다도, 작품을
세부 국면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면밀하게 분석하였으며, 어느 정도 유효
한 기준들을 작품 전체의 특성과 연관 지어 해석하고 적용하였느냐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아울러 <용비어천가>에 대한 조선조 당대의 논의가 분석 과정에 올바
로 반영되었는지의 여부 역시 중요하다. 세종대의 작품을 오늘날의 시각
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긴요한 분석이 될 수 있지
만, 당대의 관점에서 이 작품이 어떻게 향유되었는지가 고려되지 않는
한, 그 타당성의 정도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용비어
천가>는 세종대에 지어지고 인간(印刊)되었을 뿐 아니라 그 연행의 절차
도 모두 이때에 제정되었으므로 당대의 향유․해석 방식은 <용비어천
가>의 제작 방식과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다.
「선초악장의 완성형: <용비어천가>」, 선초악장문학연구, 숭실대 출판부, 1990, 212
쪽; 조선조 악장의 문예 미학, 민속원, 2005, 212쪽.
11) 【⑴ 起詞: 1장(天命에 依한 開國 頌詠) / ⑵ 承詞: 2~109장(王業艱難) [① 序: 2장(王
業의 深遠) - ② 1차歌詠: 3~16장(天命에 의한 개국, 肇基의 深遠) (ⓐ 목조: 3장 -
ⓑ 익조: 4~6장 - ⓒ 도조: 7장 - ⓓ 환조: 8장 - ⓔ 태조: 9~14장 - ⓕ 小結: 15~16장)
- ③ 2차歌詠: 17~109장(天佑, 六祖의 聖德, 武德, 武功) (ⓐ 목조: 17~18장 - ⓑ 익조:
19~21장 - ⓒ 도조: 22~23장 - ⓓ 환조: 24~26장 - ⓔ 태조: 27~89장 - ⓕ 태종․태종비:
90~109장)] / ⑶ 轉詞: 110~124장(後代王 規戒) [① 3차歌詠: 110~124장(六祖의
王業艱難 및 聖德 不忘戒) (ⓐ 四祖肇基艱難不忘戒: 110~111장 - ⓑ 太祖聖德不忘戒: 11
2~120장 - ⓒ 太宗聖德不忘戒: 121~124장)] / ⑷ 結詞: 125장(天命開國, 王業艱難, 敬天
勤民)】 김문기, 「<용비어천가>의 구조」, 국어교육연구 9집, 경북대 사범대, 1977,
64쪽.
180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서 이하 2장에서는 <용비어천가>의 구성에
관계되는 여러 준거들을 항목별로 하나씩 검토한 후, 3장에서 그 결과를
종합하여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과 층위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2. 구성 분석의 준거와 검증
<용비어천가>의 구성을 분석하기 위한 준거들은 여러 가지로 제시될
수 있고, 선행 연구들에서 이미 공통적으로 적용해 온 지표들도 적지
않으나, 비록 상식화된 사항일지라도 근저부터 다시 점검해 감으로써
작품의 구도를 합당하게 도출해 내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1) 시형(詩形)
시형은 가장 일차적으로 검토될 수 있는 준거이다. 국문가사이든 한문
가사이든 시형을 분류하는 기준은 다시 두 가지 단계로 설정된다. 우선,
각 장이 몇 개의 행(行)으로 구성되는지, 그리고 각 행이 몇 개의 구(句)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서는 원문에
표시된 권점(圈點)이 구의 개수를 세는 지표로 활용된다.12)
이러한 두 기준에 따라 먼저 국문가사를 가늠하면, 명확히 세 개의
형태가 나타난다. 즉, 제1장은 1행 3구이며, 제2~124장은 각 행 4구로
이루어진 2행, 제125장은 3행으로 파악되는 8구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
이다. 이처럼 <용비어천가>의 시행이 1, 2, 3행으로 확장되면서 전개되는
12) 권점의 기능과 의미에 대해서는 김대행, 「용비어천가의 권점에 대하여」, 국어교육
49집,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84, 111-128쪽; 성기옥, 「용비어천가의 문학적 성격」,
진단학회 편, 한국고전 심포지엄 4집, 일조각, 1994, 153-190쪽 등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81
의미에 대해서는 ‘천(天)․지(地)․인(人)’의 조화를 나타내는 철학적 원
리로 설명된 바 있기도 하고,13) <용비어천가>가 처음 제작될 당시 전체
장의 수가 123개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정황에 따라 시행 역시 그에
맞게 1, 2, 3행으로 확대되어 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하였다.14)
어떠한 경우이든 1~3행으로 달라지는 행수는 작품을 분단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다음으로 한문가사에서도 국문가사와 유사한 양상이 발견된다. 국문
가사와 한문가사가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만큼, 양자의
시형 분단은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다. 다만 외형에 있어서 한문가
사는 국문가사보다 한 가지 더 많은 네 가지 사례로 파악된다. 즉, 제1장
은 ‘5-5-4’언으로 이루어진 3구 1행, 제2~109장은 각 4언 4구의 2행,
제110~124장은 각 5언 3구의 2행으로 구성되며, 마지막 제125장은
‘7-4-4’언, ‘4-4-4-4’언, ‘6-4-4’언으로 이루어진 10구 3행을 취한다. 국문
가사에서는 제2~109장과 외형상 동일했던 제110~124장 부분이 한문가
사에서는 5언 3구의 연첩으로 독립된 것이다.
결국 시형에 따라서 작품을 분단할 때 국문가사의 경우는,
◉ 【1장】 - 【2~124장】 - 【125장】
한문가사의 경우는,
◉ 【1장】 - 【2~109장】 - 【110~124장】 - 【125장】
13)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2, 4판, 지식산업사, 2005, 276쪽.
14) 김사엽, 앞의 책, 126-128쪽.
182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과 같은 형태로 작품의 구도가 나타나게 된다.
2) 대우(對偶)
시형이 완전히 형식적인 구분 지표라면, 하나의 장을 이루는 행과 행
사이의 관계, 특히 통사구조나 대우(對偶) 관계 등과 같은 문법론적 특성
은 시형을 이차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준거가 된다.
먼저 국문가사의 경우, 각 장이 2행으로 구성된 제2~124장 사이에서
몇 가지 예외를 추출할 수 있다. 즉, 제2~124장은 대체로 선사(先詞)와
차사(次詞)가 통사상 같은 구조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86~89
장과 제110~124장 사이에서 뚜렷한 예외가 발견된다.
이 가운데 후자는 익히 알려진 부분으로서, 이른바 ‘무망장(毋忘章)’
또는 ‘물망장(勿忘章)’이라 불리는 장들인데, 선사에서 평서형[‘~니’]이
나 설의형[‘~리’]으로 앞서 나온 조종(祖宗)의 사적을 정리한 후, 차사에
서는 이를 받아 일률적으로 ‘이 들 닛디 마쇼셔’라는 규계(規戒)를
사왕(嗣王)들에게 진달(進達)한다. 때문에 선사와 차사가 의미와 통사
두 측면에서 모두 불균등한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날 거 도 好生之德이실 부러 저히샤 살아 자시니
頤指如意샤 罰人刑人제 이 들 닛디 마쇼셔
<용비어천가> 제115장
多助之至실 野人도 一誠이어니 國人 들 어느 다 리
님 德 일시면 親戚도 叛니 이 들 닛디 마쇼셔
<용비어천가> 제118장
또한 제86~89장의 경우에도 통사구조가 어긋난다. 이 부분은 대우가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83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행과 행 사이의 구분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선사의 서술을 차사에 그대로 잇대고 있기까지 하다.
여슷 놀이 디며 다 가마괴 디고 빗근 남 라 나마시니
石壁에 수멧던 녜뉫글 아니라도 하 들 뉘 모리
<용비어천가> 제86장
우흿 대믈 소로 티시며 싸호 한쇼 두 소내 자시며
리예 딜 년즈시 치시니 聖人 神力을 어 다 리
<용비어천가> 제87장
따라서 제86~89장과 제110~124장은 비록 2행으로 구성되고 각 행이
권점에 의해 사분된다는 점에서는 제2장~109장과 시형이 같지만, 대개
정대(正對)와 사대(事對)의 대우를 갖추어 전개되는 여타 부분과는 짜임
이 확연히 다르므로 따로 구분해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문가사 또한 국문가사와 양상이 유사하다. 제2~109장 부분은 국문
가사와 마찬가지로 선사와 차사가 대개 대우를 이루는데, 다만 국문가사
에서도 문제시되었던 제86~89장에서는 압운만 되었을 뿐 선사와 차사
사이에 대우가 뚜렷하지 않고 연속된 서술이 이루어진다.
한편, 국문가사에서는 제2~109장과 외형상 같으면서도 시행의 통사
상으로만 차이를 보였던 무망장(제110~124장) 부분이 한문가사에서는
5언 3구의 연첩 형태로 처음부터 독립되어 있어서 분단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결국 통사구조나 대우에 따라 작품을 분단할 경우, 먼저 국문가사는,
◉ 【1장】 - 【[2~85장] - [86~89장] - [90~109장] - [110~124장]】 - 【125장】
184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한문가사는,
◉ 【1장】 - 【[2~85장] - [86~89장] - [90~109장]】 - 【110~124장】 - 【125장】
과 같은 형태의 구도를 도출할 수 있다.15)
3) 악곡상의 실연(實演) 여부
다음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사항은 악곡상의 실연 여부이다. <용
비어천가>는 처음부터 악곡에 올려 연주할 것을 전제로 제작한 작품이므
로 작품이 실제 어떠한 형태로 연주되었는지를 살핀다면, 당대인들이
파악하고 있던 <용비어천가>의 구성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용비어천가>의 연행 양상을 가늠케 하는 자료는 세종실록에서 발
견된다. 세종실록 권140~145 「악보」에 따르면, <용비어천가>는 <봉
래의(鳳來儀)> 정재(呈才)로 구성되어 연행되었으며, 정재의 중간에 노
래를 부를 때 한문가사는 <여민락(與民樂)> 악곡에, 국문가사는 <치화평
(致和平)>과 <취풍형(醉豊亨)> 악곡에 각각 올려 부르도록 되어 있다.16)
이 중 <여민락>은 제작 당초부터 한문가사 제1~4, 125장만을 올려
부르도록 규정되었으므로 「악보」에도 역시 이들 다섯 개 장만이 수록된
반면, <치화평>과 <취풍형>은 125개 장 전체를 부르도록 지어졌고 정간
보(井間譜)에도 국문가사가 모두 기재되었다. 하지만 125개 장에 달하는
많은 분량의 가사를 모두 가창하기에는 시간상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일부 가사만을 연행하였는데, 이러한 방침에 따라 실제로는 <치화평>(하
15) ‘【 】’는 일차적 구분 표지이고, ‘[ ]’는 ‘【 】’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차적 세부 구분
표지이다. 이하에서도 같다.
16) <용비어천가> 악곡의 제정 과정에 대해서는 김승우, 앞의 책, 161-170쪽 참조.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85
(下))은 제1~16과 125장, <취풍형>은 제1~8과 125장만을 불렀던 것이
다.17)
이처럼 <용비어천가>의 가사, 특히 국문가사의 경우에 연행에 채택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구분하여 다루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
점이 또한 작품 전체의 구도를 가늠하는 데에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제16장과 제8장 뒤에 그 전후를 가르는 모종의 결절이 존재한다고 짐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할 때, <용비어천가>는 악곡상의 실연 여부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먼저 <치화평>(하)의 경우는,
◉ 【1~16장】 - 【17~124장】 - 【125장】
<취풍형>의 경우는,
◉ 【1~8장】 - 【9~124장】 - 【125장】
과 같은 형태의 구도가 도출된다.
4) 악곡상의 분단과 순환
악곡상의 실연 여부와 더불어 악곡과 관련하여 <용비어천가>의 구조
를 분석하는 데 단서가 되는 또 다른 사항은 악곡에 나타나는 분단 표지
와 순환 마디이다.
17) <치화평>은 다시 (상), (중), (하)로 나뉘며, 이중 실제 연주되는 것은 <치화평>(하)이
다. (이혜구 역주, 세종장헌대왕실록 22: 악보 1, 재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1,
282쪽.)
186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앞서 언급한 대로 <치화평>(하) 악보에는 <용비어천가>의 국문가사
125개 장이 모두 표기되어 있으며, 각 장을 부른 뒤에는 모두 일정 시간을
쉬도록 반드시 여음(餘音)이 개재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정 장
뒤에는 여느 부분의 여음보다 두 배 긴 휴지를 두는 대여음(大餘音)이
발견되는데, 제2, 14, 26, 89, 109, 124장 뒤에 놓인 모두 여섯 차례의
대여음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부분에 대여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음을
기준으로 그 앞뒤 장들 사이의 층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현시하기 위한
조치로 파악된다. 즉, 여음에 의한 구분은 <용비어천가>에 관한 세종대
의 해석 방식을 직접적으로 시사하는 단서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치화평>(하)의 분단 표지만큼 긴요하지는 않으나, <취풍형> 악
보에 나타나는 특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취풍형>은 같은 음률이
순환되는 형태로 지어졌는데, 제3〜124장의 122개 장을 여섯 개 장 단위
로 돌려가면서 같은 음률을 반복했던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일면 기계적인 반복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적어도 제26장까지의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단정할 수만도 없다. 6개
장 단위의 순환 구조에 따라 제8, 14, 20, 26장에서 하나의 순환 마디가
마무리되는데, 앞서 다룬 악곡상의 실연 여부나 뒤에 다루어질 인물과
사적 등의 지표와 견주어 보면, 이 부분들에서 흔히 단락이 분절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풍형>에서 굳이 6개 장 단위
의 순환을 마련했던 것도 6개 장 단위에 따라 내용이나 층위가 분단되는
양상을 일정 정도 반영한 결과로 파악해 볼 여지가 있다.
이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치화평> 악곡상의 대여음 표지와 <취풍형>
악곡상의 순환 마디에 따라 작품을 분절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치화평>의 경우는,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87
◉ 【1장~2장】 - 【3~14장】 - 【15~26장】 - 【27~89장】 - 【90~109장】 - 【11
0~124장】 - 【125장】
<취풍형>의 경우는,
◉ 【1~2장】 - 【3~8장】 - 【9~14장】 - 【15~20장】 - 【21~26장】 - (…) 6장
단위 (…) - 【111~116장】 - 【117~122장】 - 【123~124장】 - 【125장】18)
과 같은 형태로 정리된다.
5) 인물과 사적
앞서 살핀 요소들은 주로 형식적인 측면에 치중된 것이었으나, 위의
사항들과 맞물리면서 <용비어천가>의 구조를 좀 더 밀도 있게 분석해
갈 수 있도록 하는 단서는 역시 내용상의 특성에서 발견된다. 즉, 작품
속에 실제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느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데, 그 가운
데에서도 핵심이 되는 사항은 개별 장들에서 다루어진 인물의 내역이다.
<용비어천가>가 당초부터 ‘육룡(六龍)’의 사적을 중심으로 제작된 작품
인 만큼, 각 인물의 사적이 군집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할 때 중요한
시사점이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와 태조(太祖), 태종(太
宗) 가운데 앞의 추존 사조(四祖)는 개별 인물로서의 의미보다는 왕실의
선조라는 집합적 의미가 강하므로 ‘사조’로 함께 묶어 판단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 <용비어천가>에 등장하는 조종(祖宗)의 군집은 10
18) 제일 마지막 순환 단위는 미처 마무리되지 못하고 123~124장의 두 개 장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용비어천가>가 애초 123개 장으로 지어졌으리라는 추정을
뒷받침하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김승우, 앞의 책, 186-206쪽 참조.
188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여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즉, 제1, 2장에는 특정 인물이 나타나지 않다가, 제3~8장의 여섯 장에
서 사조의 사적이 서술되며, 다음 여섯 장인 9~14장에 태조의 사적이
제시된다. 한편, 조선왕조의 창업이 필연적인 일이었다는 의미를 전달하
는 15~16장에서는 뚜렷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다.
제17장부터는 다시 같은 인물의 사적이 반복되면서 상세화되는 특성
이 발견된다. 제17~26장에서 사조, 제27~89장에서는 태조의 사적이 다
시 등장하며, 앞서는 빠져 있던 태종의 사적이 제90~107장에 이르러
비로소 나타난다. 이로써 육룡의 사적은 모두 한 차례 이상씩 다루어지는
셈이 되는데, 태종의 사적에 잇대어 제108~109장에서는 태종의 비(妃)
이자 세종의 모후(母后)인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의 사적이 간략하나
마 부기되어 있어서, 육룡 이외의 사적이 게재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
다. 원경왕후의 사적은 넓게 보아 태종의 사적에 포함하여 파악할 수
있지만, 해당 장의 기조가 명백히 원경왕후의 행동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
서는 태종의 것과 구분하여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110장 이하는 이미 앞에서 서술된 조종의 사적을 끌어와 선
사에 요약하고, 차사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후대 임금에 대한 규계[‘계왕
훈(戒王訓)’]를 전달하는 부분으로서 선사에 제시된 사적을 기준으로 다
시 인물의 분단을 가늠할 수 있다. 제110~111장은 사조, 제112~118장
은 태조의 사적을 끌어와 계왕훈을 진달한 것이며, 제119~124장에는
태조와 태종의 사적이 복합되어 있다. 즉, 제119장은 태조와 태종의 사적
을 함께 제시하였고, 제120장은 태조, 제121장은 태종, 제122장은 다시
태조, 제123~124장은 또 다시 태종의 사적으로 이어진다. 끝으로 제125
장에서는 특정 인물의 사적 없이 포괄적인 서술로 작품을 맺는다.
한편, <용비어천가>의 중심은 물론 차사에 나오는 조종들의 사적에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89
놓이기는 하지만, 이와 대를 이루는 선사의 ‘고성(古聖)’의 사적도 고려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기옥이 제안한 것과 같은 명백한 의미의 ‘순차적
진행 원리’가 간취되지는 않더라도 조종의 사적이 대개 단락별로 인물의
시간적 순서에 따른 배열을 보이는 반면, 고성들의 사적은 매우 혼란하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선사의 사적에서 특별한 질서를 찾기는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응집력 있게 사적을 배열한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즉,
제3~14장의 선사에서는 주(周)의 태왕(大王) 고공단보(古公亶父)로부터
계력(季歷), 문왕(文王), 무왕(武王)에 이르는 주나라 선조들의 덕망과 업
적이 하나의 군집을 이루어 나타난다. 이 부분은 또한 목조에서 태조까지
조선조 선대 임금의 사적이 한 차례 순환을 마무리 짓는 곳이기도 하므
로, 주와 조선의 사례가 12개장에 걸쳐 연속적으로 병치되었던 것이다.
반면, 제15~109장에서는 주로 중국 역대 제왕들의 사적이 시간 순서
에 관계없이 서술되고 있어서 앞부분과 뚜렷이 변별된다. 때로 한(漢)
고조(高祖)나 당(唐) 태종(太宗) 등의 사적이 수 개 장에서 한꺼번에 다루
어진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제3~14장에서와 같은 응집력을
지니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선후 장들과의 연계 역시 미약하다.
다만 이 가운데에서도 몇몇 특이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선
제67~68장은 제왕이 아닌 신하의 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元) 세조
(世祖) 쿠빌라이칸의 명을 받은 중서우승상(中書右丞相) 백안(伯顔)이 남
송(南宋)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천우(天佑)를 입어 병력을 보전할 수 있었
다는 일화로서, 크게 보아 원 세조가 천명을 얻었다는 의미로 포괄될
수 있기는 해도, 사적 자체는 완연히 백안의 것이어서 예외적인 사례로
인정된다. 아울러 제108~109장에서도 역시 제왕이 아닌 주 후비(后妃)
와 고려 신혜왕후(神惠王后)의 사적이 나타난다. 이 두 장의 차사에서는
190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모두 원경왕후의 일화를 다루었기에, 왕후의 사적과 대비되는 옛 인물을
찾는 과정에서 역시 역대 왕후들의 사적이 제시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욱 독특한 경우는 제86~89장 부분에서 발견된다.
이 네 개 장에서는 선사에 줄곧 제시되어 왔던 고성의 사적이 없고, 태조
의 사적이 선사와 차사 모두에 걸쳐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의에 의거하여 먼저 조선 조종의 사적을 기준으로 할 때에는,
◉ 【1장~2장】 - 【3~8장】 - 【9~14장】 - 【15~16장】 - 【17~26장】 - 【27~89
장】 - 【[90~107장] - [108~109장]】 - 【110~111장】 - 【112~118장】 - 【119장】
- 【120장】 - 【121장】 - 【122장】 - 【123~124장】 - 【125장】
역대 고성의 사적을 기준으로 할 때에는,
◉ 【1장~2장】 - 【3~14장】 - 【[15~66장] - [67~68장] - [69~85장]】 - 【86~
89장】 - 【[90~107장] - [108~109장]】 - 【110~124장】 - 【125장】
과 같이 작품이 분단된다.
3. 용비어천가의 구성과 층위
위에서 검토한 여러 사항들을 평가하고 종합하는 작업은 매우 복잡하
고도 다단한 문제들을 포함한다. <용비어천가>의 단락을 구분하는 데
소용될 수 있는 상기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과연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유의미한 분석 지표로 활용하고 또 다른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91
부분은 단순한 기계적 분단으로 처리할지 등을 일일이 가늠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상 <용비어천가>의 구성을 분석했던 종래 여러 연구들에서 견해가
엇갈렸던 것도 이러한 지표들 가운데 일면만을 활용했거나 복수의 지표
를 적용했을지라도 개개의 비중을 평가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선행 연구들에서 다루어졌던 지표들을 면밀히 다시 검토
하고 여기에 새로운 요소들을 추가함으로써 실상에 보다 가까운 구도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각 지표들이 제각각의 모습을 보이기보
다는 상당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나타나는 만큼 이 같은 지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 가는 것이 생산적이다.
그러한 논의의 결과를 우선 제시하면, <용비어천가>는 ㉠1~2장, ㉡3~
8장, ㉢9~14장, ㉣15~16장, ㉤17~26장, ㉥27~89장, ㉦90~109장, ㉧11
0~114장, ㉨115~124장, ㉩125장의 총 열 개 부분으로 분단되며, 이 가운
데 ㉠은 그 안에서 다시 1장과 2장으로, ㉥은 27~85장과 86~89장으로,
㉦은 90~107장과 108~109장으로 더 잘게 나눌 수 있다. 각 단락을 구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1~2장은 두 개의 장이 일면 변별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동질
성을 지니고 있기도 해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후자
쪽에 비중을 두어 두 장을 한데 묶어서 작품 전체의 서사로 파악하는
편이 보다 합리적이다.
두 장의 특성과 역할이 구분된다고 보았던 종래 논자들의 근거는 무엇
보다도 시형에 있어서 제1장은 1행, 제2장은 2행이라는 점이었고, 이는
물론 유효한 단서임이 분명하다. 아울러 시형이 다른 만큼 각 장을 올려
부르는 악곡의 선율 또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표층적 단서들로써 제1장과 2장을 가르기 어려운 이유
192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는 두 장을 묶어 주는 지표들 역시 적지 않게 발견된다는 점 때문이다.
먼저 두 장은 모두 특정 인물의 사적 없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으
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1장은 물론 2장까지도 본격적인 이야기를
준비하는 서사의 성격을 띤다.
이는 제1, 2장에 부기된 해설에 각각 “이 장은 우리나라의 왕업이 일어
난 것이 모두 천명의 도움이라는 것을 총체적으로 서술하면서 먼저 그
노래를 지은 까닭을 말했다.[此章總敍, 我朝王業之興, 皆由天命之佑, 先
述其所以作歌之意也.]와 “이 장은 자연물에 비유하여 왕업이 쌓인 것이
깊고도 멀다는 것을 읊었다.[此章托物爲喩, 以詠王業積累之深長也.]”라
고 한 점에서도 드러난다.19) 제1장에서는 ‘천명(天命)’, 2장에서는 누대
에 걸친 왕업의 ‘심장(深長)’함을 주요한 강조점으로 제시하였는데, ‘천
명’과 ‘누인(累仁)’은 제3장부터 전개될 내용을 포괄하는 양축의 핵심
개념으로서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만 빠져도 작품 전반의 기조를 설명하기
가 어렵다. 때문에 두 장을 합쳐서 서사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강화되
는 것이다.
또한 음악적으로도 제2장은 1장과 긴밀하게 연계되기도 한다. 1장과
2장은 시형도 다르고 선율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음악적으로 둘이 묶여
하나의 단위를 형성하는 반면, 제2장과 3장은 시형이 동일함에도 불구하
고 <치화평>과 <취평형> 모두 전혀 다른 선율로 부르도록 되어 있어서
특기할 만하다.20) 이는 제2장과 3장 사이에 단층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
19) 용비어천가 권1, 1b-2a쪽.
20) 이혜구 역주, 앞의 책, 288-289쪽. 때문에 이혜구는 <치화평>의 경우 제1~2장이
1단, 제3~124장이 2단, 제125장이 3단이 된다고 분석하였다. 한편, 제1, 2장 사이에도
여음이 있으나, 이때의 여음은 2, 3장 사이의 대여음보다 그 휴지가 작은 중여음(中餘
音)일 뿐 아니라 <봉황음(鳳凰吟)>의 경우에도 중여음이 있더라도 한데 엮어 한 단위
로 파악되는 사례가 있는 만큼 제1, 2장은 연속된 선율로 묶여 있음이 명백하게 드러난
다고 보았다. (같은 곳.)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93
하는 유력한 단서가 되는데, 더구나 <치화평>(하) 악보에는 제2장 뒤에
대여음을 두어 제3장 이하와 명백히 구분을 지어 놓고 있기도 해서 이
부분의 결절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제1장을 작품 전체의 총서, 제2장을 본사의 서사로 설정하
거나, 제2장을 제3~16장의 서사로 편입하는 방식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제1, 2장이 음악적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과 제2장 뒤에
개재된 대여음의 존재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또한 근본적 의미에서 서는
결과 짝을 이룰 때에만 완정하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양자 사이
의 비중 역시 일정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작품의 구도가 자연스러워진다.
위와 같은 설정 방식들에서는 제2장의 서와 대가 되는 별도의 결을 찾을
수 없거나, 결이 무망장(제110~124장) 전체로 규정됨으로써 서에 비해
결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난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주로 시형의 특성에 이끌려 제1, 2장 사이를 분단하기보다는
장의 의미와 세종 당대부터 정해진 연행상의 특성, 작품 전반의 균형감
등을 반영하여 제1, 2장을 서사로 함께 묶어낸 후 제2, 3장 사이를 구분하
는 편이 보다 온당한 방식으로 파악될 수 있다.
다음으로 ㉡3~8장을 하나의 단위로 추출하는 데에는 여러 근거가 일
치한다. 우선 이 부분은 사조의 사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제9장부터
나오는 태조의 사적과 구분된다. 또한 <취풍형> 악곡을 제8장까지만 실
연토록 되어 있는 것도 이처럼 8장까지에서 하나의 단락이 끝나기 때문
임이 명백할 뿐 아니라 6개 장 단위로 반복되는 <취풍형>의 선율 역시
제8장 뒤에서 첫 순환이 완료되기도 한다.21) 이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이
기보다는 의미 분절에 맞게 당초부터 6장 단위의 순환 마디를 도입했기
21) 결국 <취풍형>을 실연할 경우에는 각 장을 모두 다른 선율로 부르게 되는 셈이다.
제3장에서 8장까지 순환 마디를 한 번만 부르고 그 이하 124장까지는 모두 생략하기
때문이다.
194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9~14장과 ㉣15~16장 부분은 다소 복잡하다. 먼저 9~14장만
을 하나의 단위로 묶는 방식은 여러 측면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우선
<치화평>의 제14장 뒤에 대여음이 나오는 것으로부터 그 근거가 마련되
며, <취풍형> 악곡의 6개장 단위 반복이 제14장에서 두번째 순환을 마무
리한다는 점에서도 역시 여기까지 단락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확충된
다. 더불어 인물이나 사적에 있어서도 9~14장 사이는 태조의 사적만으
로 이루어져 있고, 선사 또한 주 왕실의 세계(世系)만을 다루고 있다는
일관성이 드러난다.
이처럼 9~14장이 하나의 뚜렷한 군집을 형성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15~16장까지 한데 연관지어 살피는 것은 <치화평> 악곡에 1~16장과
125장만을 실연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치화평> 악곡에
서 제14장 뒤에 대여음을 두어 분단 표지를 해 놓은 것과 16장까지만
실연하도록 규정한 것 가운데 어느 쪽의 중요도를 보다 높게 보아야 할지
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으나, 전자 쪽을 좀 더 참작하여 9~14장과 15~16
장을 별도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揚子江南 리샤 使者 보내신 七代之王 뉘 마리가
公州ㅣ 江南 저샤 子孫 치신 九變之局이 사 디리가
揚子江南 忌且遣使 七代之王 誰能禦止
公州江南 畏且訓嗣 九變之局 豈是人意
<용비어천가> 제15장
逃亡애 命을 미드며 놀애예 일훔 미드니 英主알 내내 붓그리리
올모려 님금 오시며 姓 야 員이 오니 오나래 내내 리
恃命於逃 信名於謳 英主之前 曷勝其羞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95
欲遷以幸 擇姓以尹 當今之日 曷勝其哂
<용비어천가> 제16장
제15장의 경우 선사에서는, 진(秦) 시황(始皇)이 금릉(金陵)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사자(使者)를 보내 금릉의 산을 파내어
개천으로 만들고 지명도 ‘말릉(秣陵)’으로 바꾸기까지 했지만, 후일 금릉
에 도읍한 오(吳)․진(晉)․송(宋)․제(齊)․양(梁)․진(陣)․명(明) 칠대
조의 창업을 막지는 못했다는 사적이 제시된다. 같은 방식으로 차사에서
는, 고려 태조가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바깥’의 백제(百濟)
지역을 경계하여 사왕(嗣王)들에게 이 지역 인사를 등용하지 말라고 당
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주이씨인 이성계의 조선조 창업을 막을 수 없었
다고 서술한다.
또한 제16장의 선사에서는 수(隋)의 이밀(李密)이 ‘도리(桃李)의 아들이
왕이 된다.’는 민요가 떠돌자 자기가 장차 임금이 되리라 여겼다가 후일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영주(英主)’]을 만나본 이후에 태종이 임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옛 기대를 부끄러워했다는 사적이 다루어지며,
차사에서는 고려 숙종(肅宗) 때 김위제(金謂磾)가 신지(神誌)와 도선(道詵)
의 도참설(圖讖說)에 의거하여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청했고 역시 도참의
설에 따라 이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한양부윤(漢陽府尹)을 삼았는데, 이는
장차 이씨 왕조가 새롭게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이루어진 일로서
오늘날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내용을 시화하였다.
이처럼 15~16장은 도참의 설을 원용하여 조선왕조 창업의 기운을 찬
양한 부분으로서, 줄곧 주 왕실의 세계로 이어져 왔던 제3~14장의 선사
와 달리 돌연 진과 수로 시대가 넘나들고 있으며, 차사에서는 특정인의
사적 없이 왕조 창업의 당위성을 서술하고 있다. 아울러 문장의 종결법에
196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있어서도 제3~14장까지는 모두 ‘-니’ 또는 ‘-니다’의 서술형 종결어미
가 일관되게 나왔던 데 비해 15~16장에서는 ‘-리가’와 ‘-리’로 다양화
되고 이러한 다양성은 제17장 이후로도 이어진다. 따라서 제15~16장은
앞의 내용과 변별되는 대목이면서 뒤에 나오게 될 내용을 예비하는 역할
도 한다는 측면에서 ‘전환부’라 이름 붙일 수 있다.
한편, ㉤17~26장은, 3~8장에서 다루어졌던 사조의 사적이 다시 좀
더 상세화․구체화되는 부분으로서 <치화평>의 대여음, <취풍형>의 순
환 마디 등에 의해서도 분단되므로 명확히 하나의 단락으로 설정할 수
있다.
㉥27~89장에서는 태조의 사적이 반복적으로 서술된다. <치화평>의
대여음, 인물의 등장 양상 등에 의해 이 부분이 분단된다. 무려 60여
개 장에 걸친 긴 단락인데, 그만큼 태조의 사적이 작품의 중심에 놓인다
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27~89장 안에서도 사적이나 시행
의 짜임에 있어서 뚜렷이 이례적인 사례가 발견된다.
마 사 과 도 입과 눈과 遮陽ㄱ 세 쥐 녜도 잇더신가
굿븐 모 이시니 聖人神武ㅣ 엇더시니
麋脊四十 與賊口目 遮陽三鼠 其在于昔
維伏之雉 必令驚飛 聖人神武 固如何其
<용비어천가> 제88장
솘바 닐굽과 이 나모와 투구 세 사리 녜도 잇더신가
東門밧긔 독소리 것그니 聖人神功이 엇더시니
松子維七 與彼枯木 兜牟三箭 又在于昔
東門之外 矮松立折 聖人神功 其又何若
<용비어천가> 제89장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97
예컨대 제86~89장의 경우 선사에 고성의 사적이 없으며, 선사․차사
모두 태조의 사적으로만 전개된다. 시형에서도 두 행 사이의 대우가 뚜렷
하지 않고 잇달아 서술이 전개되므로 제27~89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묶
되 그 안에서 다시 제86~89장을 소분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
다. 여기에서는 무한히 늘어날 수 있는 태조의 사적을 일면 폐쇄하면서도
또한 그 나름대로 확장의 성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기체가(景幾體歌)
에 상당하는 시형을 묘미 있게 활용하였다.22)
한편, ㉦의 제90~109장 부분에서는 비로소 태종의 사적이 등장한다.
태종의 사적은 앞서 제시된 바가 없으므로 이 부분에서 총괄적인 서술과
세부적인 서술이 한데 묶여 나타나는데, 그 주제도 태종 개인의 명망과
자질로부터 천명의 확인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제시된다. 다만, 마지막
제108~109장은 태종이 아닌 원경왕후의 사적이며, 선사에서도 주 후비
와 고려 태조 비의 사적이 대(對)로 설정되었으므로 선사와 차사 모두에
서 예외적 사례로 지목될 만하다. 원경왕후의 사적은 크게 보아 태종의
사적으로 포괄되기는 하나, 행동의 주체가 뚜렷이 원경왕후로 나타난다
는 점에서, 또한 원경왕후의 사적이 태종 사적의 다른 부분에는 섞여
22) 최근 이 부분을 경기체가의 형식으로 재구하여 파악한 논의가 제출된 바 있다: “의미
상으로 보면 27~85장의 태조 관련 서술들은 경기체가 전대절․후소절의 전반부에
병렬적으로 나열되는 사물․행위․관념 부분, 곧 교술적 부분에 해당될 수 있다. 27~
85장은 태조에 관한 각종 사적들을 최대한 상세히 제시하는 데 할애되고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그러한 확장의 국면을 일면 차단하면서 앞서 나온 교술적 내용들을 영탄적
수사로써 최종적으로 수렴하는 단계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확장의 국면을 폐쇄
하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태조의 영웅적 면모는 이루 다 언급하기 어려
울 만큼 무한정하다는 주지도 유지해야 하는 탓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88, 89장에서는
태조의 단편 사적들이 짧은 어구 속에 다시금 촉급하게 집약되어 나오는데, 이는 이미
서술된 것 이외에도 태조의 자질과 명망을 드러내는 사적은 얼마든지 더 제시될 수
있다는 어감을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김승우, 「세종대의 경기체가 시형에 대한
연구: 경기체가의 시상 및 어법의 활용 양상」, 한민족문화연구 44집, 한민족문화학회,
2013, 121쪽.)
198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있지 않다가 끝 두 장에 잇달아 나온다는 점에서도 원경왕후를 따로 제시
하고자 했던 제작자들의 의도가 간취된다. 따라서 제90~109장을 한데
묶되, 제108~109장을 소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110~124장 부분은 여러 측면에서 우선 명확한 분단을 이룬다. 시형
가운데 한문가사의 형태가 전후 부분과 달리 5언 3구의 연첩으로 되어
있고, 국문가사의 선사와 차사 사이에 대우 없이 차사의 종결이 ‘이 들
닛디 마라쇼셔’로 일관된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또한 <치화평>의 대
여음이 제109장 뒤와 제124장 뒤에 놓임으로써 이 부분을 구분하고 있기
도 하다.
따라서 제110~124장을 하나로 묶어 내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으나,
그 안에서 더 잘게 분단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인물과 사적의 출현 양상으로는 110~111장이 사조, 이어지는 112~118
장까지가 태조의 사적을 끌어와서 후왕을 규계하는 내용이지만, 그 뒷부
분은 태조와 태종의 사적이 교차되거나 또는 두 인물의 사적이 동시에
상기되기도 하는 등 혼란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인물과 사적의 지표로써 ‘사조→태조→태종’의 순서로 하위분류하기에
는 무리가 따르며, 실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굳이 하위분류를 한다면 인물보다는 오히려 내용의 층위에 따른 방식
이 유효하다. 누구의 사적을 바탕으로 규계를 전달했느냐의 분류법, 즉
선사에 위주를 둔 분류법보다는 후왕에게 경계하려 했던 내용이 무엇이
었느냐에 따른 분류, 즉 차사에 중점을 둔 분류가 더욱 설득력을 지니리
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육조(六祖)들의 사적을
정합적, 순차적으로 정리하거나 나열하는 것이기보다는 각 장들에 담아
전하려 했던 경계의 내용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입장에 섰던 종래의 논자로는 김선아와 김흥규가 있는데, 먼저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199
김선아는 제110~114장을 ‘육체적 안일을 경계’, 제115~119장을 ‘왕자
지덕(王者之德)을 훈계’, 제120~124장을 ‘왕자치국(王者治國)의 도를 제
시’로 하는 삼단 체계로 파악하였고,23) 김흥규는 제110~114장은 ‘부귀
와 안락에 매몰되지 않는 도덕적 긴장을 요망’하는 부분으로, 그 이하는
‘정치적 위기와 패망에 관한 경고들’로 각각 의미상의 층차를 두어 설명
한 바 있다.24) 두 논자 모두 뒤로 갈수록 의미가 강화되며 114장 뒤에서
일단 한 차례 결락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 공통된다.
그러나 제115~119장과 제120~124장을 또 다시 구분하는 것이 타당
한지는 의문인데, 실상 두 부분은 모두 장차 닥칠지 모를 위기 상황에
선왕들의 전례에 따라 현명하게 처신하라는 규계를 사왕들에게 전달하
는 부분으로서 동질성을 지닌다. 김선아의 경우 전자보다 후자의 경계지
사가 더욱 확대된 형태를 띠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왕자지덕’과 ‘왕자치
국’으로 구분하였지만, 양자의 변별점이 모호할 뿐더러 다섯 장씩 나누
어 무망장을 삼분하려는 무리마저도 발견된다. 따라서 무망장 부분은
김흥규의 견해처럼 ㉧110~114장과 ㉨115~124장만으로 양분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끝으로 ㉩125장은 한 장이 하나의 단락으로 파악된다. 국문․한문가사
의 형태가 여타의 것과 우선 다르고,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을
막론하고 125장만을 뒷부분에서는 모두 채택하여 쓰며, 선율에 있어서도
독립되기 때문이다. 또한 <치화평> 악곡상 제124장 뒤에 대여음이 오는
것이나, 인물과 사적의 측면에서 125장에는 특정인의 사적이 나오지 않
는 점, 문장의 종결법에 있어서 특화되어 있는 점 등도 모두 125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분단하는 근거가 된다.
23) 김선아, 앞의 논문, 50쪽.
24) 김흥규, 「선초 악장의 천명론적 상상력과 정치의식」, 한국시가연구 7집, 한국시가학
회, 2000, 142-145쪽.
200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다만, 제125장의 말미에 규계의 내용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이 장이 110~124장의 무망장들과 연계될 여지도 있다.25) 특히 최항(崔
恒)은 「발(跋)」에서 <용비어천가>를 “규계지의로 끝맺는다[終之以規戒
之義]”라고 언술하였기 때문에 무망장들과 제125장이 한데 엮여 작품을
종결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26) 그러나 무망장과 125장은
규계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를 뿐 아니라, 125장의 세 행[천세장(千世章),
자자장(子子章), 오호장(嗚呼章)]이 각각 1~2장, 3~109장, 110~124장
의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는 분석에 따르더라도27) 이 장은 작품 전체를
종결하는 독립된 결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결론
이상에서 시형, 대우, 악곡상의 실연 여부, 악곡상의 분단과 순환, 인물
과 사적 등 <용비어천가>의 구성에 관계된 여러 준거들을 분석 및 검토
한 후, 이를 종합하여 작품 전체의 구성을 앞부분부터 차례로 살핌으로써
<용비어천가> 내부의 층위가 어떠한 방식으로 분단되고 또한 각 층위들
이 어떻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장편을 이루게 되는지 논의하였다.
25) “님금하 아쇼셔 洛水예 山行 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가” 부분이 특히 그러하다.
여기에서는 후대 임금이 ‘님금하’라는 돈호로 직접 호명될 뿐 아니라 국가의 패망을
상기하는 내용까지 현시되고 있다.
26) 최항은 「발」에서 “을축년에 의정부우찬성 신 권제, 우참찬 신 정인지, 공조참판 신
안지 등이 歌詩 125장을 지어 바치니, 모두 사실에 의거하여 사(詞)를 지었고, 옛 것에서
주워 모아 지금에 비의하였으며, 되풀이하여 부연․진술하였고, 경계하는 뜻으로 끝을
맺었습니다.[歲乙丑, 議政府右贊成臣權踶, 右参贊臣鄭麟趾, 工曹參判臣安止等, 製
爲歌詩一百二十五章以進, 皆據事撰詞, 摭古擬今, 反覆敷陳, 而終之以規戒之義焉.]”
라고 작품 전체의 구성을 설명하였다. (「龍飛御天歌跋」, 용비어천가, 1a~1b쪽.)
27) 조규익, 앞의 책(2005), 211-212쪽.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201
본론의 내용을 요약하여 도시하면 <용비어천가>의 구조는 아래와 같
이 서사, 본사, 결사의 삼단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 본사가 다시 서․
본․결로 삼분되는 형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서사 : 제1~2장
본사 : 제3~124장
△ 서 : 제3~16장
․사조 (제3~8장)
․태조 (제9~14장)
․전환부 (제15~16장)
△ 본 : 제17~109장
․사조 (제17~26장)
․태조 (제27~89장) (※ 86~89장: 확장․폐쇄부)
․태종 (제90~109장) (※ 108~109장: 원경왕후 사적)
△ 결 : 제110~124장
․도덕적 긴장에 대한 권고 (제110~114장)
․정치적 위기에 대한 경고 (제115~124장)
결사 : 제125장
각 장의 차사에 다루어진 조종의 사적에 따라 본사의 서와 본에서는
그 안에서 또 다시 일정한 순차가 나타나며, 서의 말미인 제15~16장,
본 가운데 각각 태조와 태종 사적의 마지막 부분인 제86~89장 및 제10
8~109장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형식이나 인물이 제시되면서 앞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거나 전환하는 형상을 띤다. 한편, 본사의 결에서는 조종의
순차를 일정 정도는 고려하되, 그보다는 사왕들에게 전달하는 교훈적
내용을 우선시하여 두 층위의 규계를 잇달아 제시한다. 이러한 본사를
202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서사인 제1~2장과 결사인 제125장이 전후로 감싸면서 작품 전체의 내용
을 예고하고 끝맺는 구성을 취하였던 것이다.
<용비어천가>의 구성이 대단히 번만해서 그 흐름이 쉽게 간취되지
않는다는 평가는 이미 조선전기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제출되어
왔다. 조종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사왕을 향한 경계를 드러내고, 조선의
건국사를 다루되 중국사와의 연계를 현시하려는가 하면, 가창 텍스트이
지만 문학적으로도 완정한 형식을 갖추어 작품을 제진하려던 여러 복합
적인 지향이 엇걸리면서 이처럼 다단한 작품이 산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용비어천가>에서는 그러한 중층적 의도를 한
작품 안에 모두 담아내어야 하고 또한 담아낼 수 있다는 제작자들의 의지
내지 자신감이 묻어나기도 한다. 다종의 요소들을 어떻게든 균형감 있게
배치해 보려는 모색이 여러 부면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때로 그러한
시도가 과히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회의적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겠으나,
그처럼 불완전한 결과물을 통해서라도 이 작품을 짓는 데 간여된 본래적
지향들을 되짚어 보아야 할 필요성은 다분하다. 따라서 본고에서 이루어
진 검토는 일차적으로는 <용비어천가>의 구성과 층위를 구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작품의 제작 목적을 가늠하는 데에도 긴요하게 소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나가고자 한다.28)
28) 특히, 각 단락 사이에 호응과 변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의 문제, 작품이 실제 연행되
는 구체적인 양상, 당초 제례악장으로 제작된 이 작품이 추후 회례악장으로 용도가
확대된 이유 등에 관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시도하게 될 것이다.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203
[참고문헌]
1. 자료
용비어천가.
세종실록.
세조실록.
2. 논저
김기동, 국문학개론, 태학사, 1981, 164쪽.
김대행, 「용비어천가의 권점에 대하여」, 국어교육 49집,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84,
111-128쪽.
김문기, 「<용비어천가>의 구조」, 국어교육연구 9, 경북대 사범대, 1977, 64쪽.
김사엽, 이조시대의 가요연구, 대양출판사, 1956, 126-128, 182쪽.
김선아, 「용비어천가 연구: 서사시적 구조분석과 신화적 성격」, 숙명여대 박사학위논
문, 1985, 29쪽.
김승우, 용비어천가의 성립과 수용, 보고사, 2012, 13-28, 161-170, 186-206쪽.
김승우, 「세종대의 경기체가 시형에 대한 연구: 경기체가의 시상 및 어법의 활용 양상」,
한민족문화연구 44집, 한민족문화학회, 2013, 121쪽.
김윤경, 「용비어천가에 나타난 옛말의 변천」, 동방학지 4집, 연세대 국학연구원,
1959, 206쪽.
김학성, 「<용비어천가>의 짜임새와 시적 묘미」, 국어국문학 126호, 국어국문학회,
2000, 178쪽.
박찬수, 「용비어천가 연구」, 충남대 석사학위논문, 1994, 94쪽.
성기옥, 「용비어천가의 서사적 짜임」, 백영 정병욱선생 환갑기념논총 간행위원회 편,
백영 정병욱선생 환갑기념논총, 신구문화사, 1982, 421-424쪽.
성기옥, 「용비어천가의 문학적 성격」, 진단학회 편, 한국고전 심포지엄 4집, 일조
각, 1994, 153-190쪽.
심경호, 「<용비어천가> 小論」, 백영 정병욱선생 10주기추모논문집 간행위원회 편, ꡔ한
국고전시가작품론ꡕ, 집문당, 1992, 411-424쪽.
양태순, 「<용비어천가>의 짜임과 율격」, 한국고전시가의 종합적 고찰, 민속원,
2003, 385-388쪽.
이혜구 역주, 세종장헌대왕실록 22: 악보 1, 재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1, 282,
288-289쪽.
204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장덕순, 한국문학사, 5판, 동화문화사, 1987, 163쪽.
조규익, 「선초악장의 완성형: <용비어천가>」, 선초악장문학연구, 숭실대 출판부,
1990, 212쪽.
조규익, 「왕조의 꿈, 그 과거․현재․미래: <용비어천가>」, 조선조 악장의 문예 미학
, 민속원, 2005, 211-212쪽.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2, 4판, 지식산업사, 2005, 276쪽.
조윤제, 조선시가사강, 동광당서점, 1937, 178쪽.
조윤제, 한국문학사, 탐구당, 1963, 127쪽.
Lee, Peter H., 김성연 역, 용비어천가의 비평적 해석, 태학사, 1998, 64쪽.
Lee, Peter H., “Early Chosǒn eulogies,” A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Ed. Peter
H. Lee,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2003, pp.152-153.
용비어천가의 단락과 구성에 대한 연구 205
[Abstract]
A Study on the Paragraphs and Passages of Yongbieocheonga
Kim, Seung-u
*
29)
This article aims to look into the whole structure of Yongbieocheonga by
analysing the forms of verses, the aspects of antithesis, the execution of the
musical composition, the cycles and divisions of the piece of music, the
characters, and the historic events quoted in each verse.
Yongbieocheonga is divided into three parts containing ‘introduction’, ‘main
subject’, and ‘conclusion’, in which the main subject can be spilt again into
‘introduction’, ‘main subject’, and ‘conclusion’. That is, the one hundred twenty
five verses of Yongbieocheonga has ten paragraphs following ⓐ1st-2nd verses,
ⓑ3rd-8th verses, ⓒ9th-14th verses, ⓓ15th-16th verses, ⓔ17th-26th verses, ⓕ
27th-89th verses, ⓖ90th-109th verses, ⓗ110th-114th verses, ⓘ115th-124th
verses, and ⓙ125th verse. In these ten paragraphs, ⓐ corresponds the introduction
while ⓑ-ⓘ are the main subject, and ⓙ is the conclusion. Among ⓑ-ⓘ, each
of ⓑ-ⓓ, ⓔ-ⓖ, and ⓗ-ⓘ in order is applicable to the introduction, main subject,
and conclusion of the main subject of the whole work. Especially, the two parts
of ⓑ-ⓓ and ⓔ-ⓖ are described in regular sequence according to the order of
the kings while 15th-16th, 86th-89th, and 108th-109th verses summarize or
convert the preceeding contents by presenting different verse forms or characters.
Meanwhile, paragraph ⓘ cautions descending kings against being idle or cruel
in two stages.
Many people have remarked from the fifteenth century downward that the
structure of Yongbieocheonga is too complicated to be comprehended. In fact, the
writers of the work had complex intentions of praising the forefathers of the
dynasty and warning descendant kings at the same time, of describing the
founding chronicles of Joseon dynasty comparing with Chinese history, and of
* Assistant Professor, Dept. of Korean Education, Jeonju University / email:
nakimsw@hanmail.net
206 Journal of Korean Culture 28 / 2015.01.31
writing exemplary odes even equivalent to classical poems. Nonetheless, the
writers must have been confident that they could fully accomplish their purposes.
Actually, they managed to compose such a complete work as Yongbieocheonga
after due consideration.
Key words : Yongbieocheonga, Akjang, Paragraph, Passage, Yeominrak, Chihwa
pyeong, Chwipunghyeong
논문접수일: 2014. 12. 16.
심사완료일: 2015. 01. 15.
게재확정일: 2015. 0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