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려 성종의 12목 설치

작성자낙민|작성시간15.10.17|조회수388 목록 댓글 0
성종의 12목 설치

 

 

무자(戊子)에 처음으로 12목(牧)을 설치하고 조(詔)를 내리기를, “하늘은 높고 크며 해와 달과 별을 나누어 밝음을 나타내고 땅은 두껍고 그 끝이 없으며 산천을 벌려 기운을 퍼트렸도다. 바라건대 하늘 아래 만물은 모두 다 삶을 즐기고 땅을 밟는 무리는 모두 본성을 따라 살게 하기를 바란다. 한 사람이라도 죄를 짓는 것을 보면 마음에서 매우 그 허물을 슬퍼하고 백성들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들으면 마음 속 깊이 스스로를 책망한다.

비록 몸은 궁궐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백성에게 두루 미쳐 있다. 밤늦게 먹고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입으며 항상 충성스런 말을 구하며 낮은 곳의 목소리를 듣고 먼 곳을 보는 데 어질고 착한 이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이에 지방 수령들의 공적을 의지하고 백성들이 바라는 바에 부응하고자 우서(虞書)12목(牧)을 본받아 시행하고 주나라가 800년을 이어갔던 것처럼 우리의 국운도 연장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고려사』권3, 「세가」3 성종 2년 2월 무자

 

 

戊子, 始置十二牧, 詔曰, 天高爲大, 分象緯以著明, 地厚無彊, 列山川而播氣. 庶望首天之類, 咸悉樂生, 足地之流, 無不遂姓. 見一夫之冒罪, 則意甚泣辜, 聞百姓之居貧, 則情深責己.

雖身居宮禁, 而心遍蒸黎. 旰食宵衣每求啓沃, 聽卑視遠, 冀籍賢良. 爰憑方伯之功, 允協閭閻之望, 効虞書之十二牧, 延周祚之八百年.

『高麗史』卷3, 「世家」3 成宗 2年 二月 戊子

 

 

이 사료는 983년(성종 2년)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인 성종이 전국 12개 주에 외관 주목(州牧)을 파견하여, 호족 세력을 누르고 중앙의 명령을 지방에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행정 체제를 마련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최승로는 지방 제도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는 일시에 외관을 보내지 못할지라도 10여 주현에 관리 한 명을 두고 그 관에 각각 2~3원(員)을 두어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지방 호족의 가옥까지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었다. 성종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12목이 설치된 지역은 양주•광주•충주•청주•공주•진주•상주•전주•나주•승주•해주•황주로 통일신라 시대부터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주목이 파견된 지 4개월 후에는 공공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각 지역의 관청에 조세를 받는 토지인 공해전을 지급하였다. 지급된 범위는 주와 부에 속한 관리뿐 아니라 군현의 호장부곡의 장에도 미쳤을 정도로 작은 지역까지 중앙의 통제 아래 두고자 하였다.

공해전이 지급된 뒤에는 주•부•군•현의 직제를 개편하고 향리제를 마련하였다. 고려 초기에 호족 세력이 강했던 지역에서는 당대등(堂大等)을 수반으로 하면서 실무 하위 기구로 병부(兵部)와 창부(倉部)를 두어 자기 세력 아래 여러 지역을 지배하였다. 이는 지방 세력의 독자적인 권력 기반이었다. 이러한 당대등의 직제를 호장•부호장으로 바꾸고 병부•창부 등의 부서명은 사병(司兵)•사창(司倉)으로 개편하였다. 이는 중앙의 병부•창부보다 하위 직제임을 명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995년(성종 14년) 지방 제도를 개편하여 12목에 절도사를 두었다. 이는 단순한 명칭의 변경이 아닌 군사적인 면을 크게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북방 지역에 대한 군사적인 성격이 강한 방어 체제로의 개편이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전국을 10개 지역으로 나누고 10도(道)제를 실시하였다. 각 지역에 도제찰사가 파견된 것도 아니고 단순한 순찰 구획에 불과해 행정 구획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지만,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제였다.

10도제와 함께 주현 제도가 실시되었다. 주현 제도는 주군현제에서 군을 없애고 행정조직을 간소화한 것이다. 이로써 명령 체계를 더욱 단순화함과 동시에 인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을 바탕으로 성종은 유교적 중앙집권화를 이루어 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