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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홍콩 3대 도박 영화

작성자낙민|작성시간16.11.28|조회수741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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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홍콩 3대 도박 영화

 

도박.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소재임이 틀림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박이란 것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때론 매혹적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겐 [타짜]라는 작품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고 생각보다 본격 도박 영화가 적은 할리우드의 경우엔 [스팅] 같은 작품이 떠오르네요. 80~90년대를 주름 잡았던 홍콩 영화의 경우엔 어떨까요? 동양의 경우 그 도박이라는 것이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영화화 하기 쉬운 소재였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 홍콩영화의 전성기에 보았던 세 편의 도박 영화는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 세 편의 영화는 스릴러로 묶기엔 무리가 있는 작품들입니다. 다만 기본 큰 줄기에서 보면 스릴러적 구성에 각각 추구하는 장르를 녹여낸 작품인데 한편 한편 뜯어 보면서 비교하는 즐거움이 클 것 같네요. 다시 보면서 조금은 촌스럽고 예전과 같은 감흥은 아니었지만, 영화 자체와 배우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요즘의 그 어떤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글ㅣ 비됴알바  구성ㅣ 네이버 영화

 

 

[지존무상](至尊無上, Casino Raiders)

감독: 왕정, 향화승 | 주연: 유덕화, 알란 탐, 관지림 | 국내 개봉: 89년 11월 11일

 

 

아마도 홍콩 도박 영화의 모든 도화점은 [지존무상]이 아닌가 합니다. 당시엔 [영웅본색]을 위시해서 [첩혈쌍웅]까지 홍콩 느와르의 최정점을 찍고 있었습니다. 홍콩 기준으로 86년 [영웅본색]의 흥행 수익이 가장 좋았으며 이후론 87년 [영웅본색2]와 89년 [첩혈쌍웅]으로 어느 정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는데요. 당시 주윤발의 느와르와 성룡의 코믹 액션, 그리고 [미스터 부] 시리즈로 대변되는 코미디 영화가 극장가를 삼분하고 있었지요.

 

그런 와중에 등장한 [지존무상]은 좀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느와르 장르 속에서 총과 주먹보다 도박과 카드를 앞세운 이 작품은 [영웅본색]의 또 다른 변형 작품과 같았습니다. 당시엔 국내에선 아직 영화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유덕화의 인지도를 확실히 굳혀준 작품이었으니 실제로 그를 위한 영화나 다름없었지요. 근데 이 영화를 잘 살펴보면 제대로 도박하는 장면은 거의 후반부 하이라이트가 되어서야 선보입니다. [타짜]와 같은 작품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던 것은 진지한 승부 이외에 소소한 승부를 포함하여 전시한 탓인데 비해 "아시아 제일 손"을 연기한 유덕화의 화려한 도박 실력은 그저 대사로 전달되는 점이 다소 아쉽겠네요. 물론 카드 기술이 종종 선보이지만 기가 막힌 승부의 묘미를 보여주지 못한 채 퇴장하고 맙니다.

 

그런데 포커만이 도박은 아니죠. 영화 속에서 유덕화가 보여주는 몇몇 선택의 기로들은 도박보다 더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특히나 후반부 독약이 든 술잔을 골라야 하는 얄궂은 운명에 처했을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백미였지요. 이 영화 속의 승부 혹은 선택의 순간들은 모두 남성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기가 막힌 반전들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남자들의 우정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유덕화의 모습들은 [영웅본색]의 주윤발만큼이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힘이 있었지요.

 

[도신 - 정전자](賭神, God of Gambler)

감독: 왕정 | 주연: 주윤발, 유덕화, 왕조현, 장민 | 국내 개봉: 89년 12월 23일

 

 

국내 개봉명은 [정전자]이고 홍콩 원제는 [도신]입니다. 속편들도 [도신]이란 이름으로 개봉했으니 [도신]으로 표기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홍콩 현지에선 [지존무상]과 약 3개월 차로 개봉하여 흥행에선 압승하였습니다. 개봉 당시 홍콩 역대 흥행 2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요. [지존무상]의 왕정이 내놓은 또 하나의 도박 영화인데 개봉 시차가 3개월인 걸 보면 [지존무상]의 성공으로 정말 뚝딱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아직 그 인기가 올라오기 이전인데 이렇게 나란히 도박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그 당시의 홍콩영화의 제작환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리얼리티에 기반했던 [지존무상]에 비해 [도신 - 정전자]의 경우는 다소 판타지와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영화 자체는 [지존무상]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지존무상]이 느와르였다면 [도신 - 정전자]는 무협 혹은 히어로 무비의 정서라 하겠습니다. 영화 초반 주사위 도박 장면을 보면 이 영화의 성격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도박판은 그야말로 강호입니다. 무림의 고수들이 충돌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격식을 갖추며 연합을 제안하기도 하지요. 주사위 하나를 부숴 버리는 정말 생각하지 못한 장면이 연출될 때는 정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상상이 가능한가 싶었네요.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정말 이것을 무협영화로 대입한다면 강호의 초고수가 기억을 잃어버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깊은 산속에 은둔하다가 결정적인 복수를 위해 움직인다는 내용으로 병치해봐도 전혀 무리가 없는 내용이니까요. 영어와 한문 제목에서 보이는 듯 거의 신이라고 칭할 정도이니 이에 걸맞은 인물은 주윤발 밖에 없었을 겁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순수한 아이의 모습 모두 양면을 그려낼 수 있는 인물이 주윤발 밖에 떠오르지 않은데 눈빛과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건 [영웅본색]의 소마가 도박을 하는 것과 똑 같은 느낌이랄까요? [지존무상]이 도박의 정식 대결과 같다면 [도신 - 정전자]는 치열한 두뇌 싸움과 배신과 술수가 난무하는 전쟁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성](賭聖, All for the Winner)

감독: 원규, 유진위 | 주연: 주성치, 오맹달, 장민 | 국내 개봉: 90년 11월 17일

 

 

이건 명백한 [도신 - 정전자]에 대한 오마쥬이자 비틀기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주성치의 완벽한 대박 작품 [도성]은 도박 영화에 코미디와 초능력이란 키워드를 삽입하여 완성한 당시엔 볼 수 없는 형식의 영화였지요. 우리가 기억하는 코미디는 [미스터 부] 시리즈와 [최가박당] 정도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성룡의 코믹함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도성]은 역대 처음으로 홍콩 달러로 4천만 불을 넘은 역대 1위에 등극하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는데요.

 

그러나 국내엔 확실한 주연배우가 없었던 탓에 국내 흥행에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행여 진지한 도박 영화인 줄 알았다가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 없는 코미디에 관객이 발길을 돌린 탓일까요? 사실 [사랑과 영혼]과 [다이 하드 2]에 묻혀 아예 사라져버린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히어로 무비에 맞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능력은 있으나 활용법을 모르던 중국인이 홍콩에 와서 도박을 경험하고 또한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내용으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도성]을 다시 보고 있으니 예전 기억보다 상당히 얌전합니다. 이후의 주성치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그 더티함이나 황당함은 참으로 평범한 수준인데요. 그러나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의 충격은 그야말로 엄청 났습니다. 감독이나 배우도 다른 [도성]은 [지존무상]이나 [도신 - 정전자] 하고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주로 무술 영화에서 돋보였던 두 감독이 이런 영화를 찍을 줄은 몰랐지만 은근히 액션씬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액션에 대한 애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소룡을 꿈꾸었던 주성치기에 이 작품보다 그의 날렵한 무술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제대로 시작된 주성치 사단의 황금 콤비 오맹달, 장민, 오군려 등의 초창기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 흥행성적

 

세 작품의 국내 흥행 순위는 정확히 홍콩에서의 성적과 반비례 합니다. [지존무상]은 서울 개봉관으로는 단성사에서만 개봉하여 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대적인 흥행 성공을 거둡니다. 이어 [도신 - 정전자]는 아세아, 연흥극장 등에서 상영하여 31만 명을 기록하였지요. [도신 - 정전자]가 개봉한 12월 23일 이후 1월까지는 두 영화가 동시에 극장에 걸린 셈이 됩니다. 이에 반해 [도성]은 피카디리에서 개봉하여 4주 동안 2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쳐 1년 사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네요. 홍콩의 경우 [도성]은 당시 역대 기록을 세웠으며, [도신 - 정전자]는 개봉 당시 역대 2위 기록이었습니다. [지존무상]은 두 작품에 비해선 조금 떨어지지만 그 해 개봉작 중에서 5위권을 기록하였네요. 다른 건 몰라도 혹시 [도성]을 피카디리에서 보신 분이라면 대단한 홍콩영화 팬이었을 것 같습니다.

 

* 주연배우

 

당시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홍콩 영화계를 주름 잡는 3인방이라면 성룡, 주성치, 주윤발이었습니다. [도신 - 정전자] 개봉 당시 이미 주윤발은 톱스타였으며, 유덕화는 영화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지요. 주성치는 거의 신인에 가까운 배우나 다름 없었고요. 그런 면에서 주윤발은 그의 인기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멜로와 액션, 코미디와 심지어 도박 영화에도 모두 능함을 보여 주었고, 유덕화는 [열혈남아]에 출연했지만 국내 흥행 실패로 인해 아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 영화로 완전히 스타덤에 오릅니다. 주성치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신데렐라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이 영화 이후 모든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는 최고 전성기의 시발점이었습니다.

 

* 여배우

 

 

도박 영화인 탓인지 세 영화엔 아름다운 여배우가 출연하는데요. [지존무상]엔 익숙한 얼굴인 관지림, [도신 - 정전자]에서 왕조현, 그리고 [도성]에선 주성치의 연인으로 장민이 등장합니다. 관지림과 왕조현은 이미 스타의 반열이었는데, 장민은 주성치로 인해 국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했습니다.

 

* 연결고리

 

 

세 작품은 배우로서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지존무상]에 출연했던 유덕화와 일본인 악역을 맡았던 용방 그리고 알란 탐을 후원한 향화강은 나란히 [도신 - 정전자]에도 출연합니다. 사실 [지존무상]의 공동 감독이었던 향화승이 [도신 - 정전자]의 제작자로 나섰기 때문으로 보이는군요. 용방이란 배우는 어찌나 똑같은 악역으로 등장하는지 [도신 - 정전자]에서도 참으로 악랄하게 등장합니다. 여기 등장한 향화강은 향화승과 형제랍니다. 그리고 [도신 - 정전자]에 출연한 오맹달과 장민은 [도성]에도 출연하는 연결고리가 생기네요.

 

* 인상적인 소품

 

 

세 영화엔 인상적인 소품이 등장합니다. [지존무상]에는 유덕화의 동전이, [도신 - 정전자]에서는 주윤발이 끊임없이 먹던 초콜릿이 등장하고 [도성]에서는 뭐라고 할까……손수건이라고 할까요? 땀을 비오듯 흘리는 주성치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 손수건이죠. 모두 도박을 하지만 카드 이외에 주로 손에서 떠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 후속편

 

당시 국내 개봉한 [지존무상] 시리즈와 [도성]은 여러 모로 뒤죽박죽 되었습니다. 특히나 국내는 [지존무상]의 흥행이 가장 좋았기 때문에 [지존계상]과 [지존무상 2 - 영패천하]의 오리지널 속편 논란도 있었고 유덕화와 주성치가 출연한 [도협]은 [지존무상]과는 별개인 [도신 - 정전자]와 [도성]의 결합 작품으로 보는 게 맞겠지요. [도신 - 정전자]는 이후에 [도신 2]로 정식개봉하고 주윤발의 화려한 복귀를 알리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화기소림]이 있었습니다)

 

* 반전

 

세 편의 영화가 여러 가지로 사랑 받는 이유가 있겠지만 주연배우들의 매력과 더불어 반전의 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존무상]에서는 사랑을 담보로 우정의 복수를 계획하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등장합니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기막힌 반전에 탄복했던 기억이 아주 생생합니다. [도신 - 정전자]의 반전은 사실 뒤통수를 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당시엔 충격적이었습니다. 뻔히 보이는 패배의 늪을 과연 도신은 어떻게 신출귀몰하게 빠져 나올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아주 명쾌했으니까요. 적어도 결말은 허무맹랑 하지 않은 아주 과학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도성]의 반전은 정말 머리가 멍해지는 어처구니 없는 반전에 박수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비디오로 보면서 이 영화의 즐거움에 방안을 데굴데굴 뒹굴었던 기억마저 생생하네요.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보통 인간의 욕망을 그린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홍콩 영화의 주요한 세 도박 영화를 보면 주로 악당들이 그런 욕망을 표출하고 있으며 이에 반해 주인공들은 우정과 사랑, 신뢰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욕망을 넘어선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고 매력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타짜]란 영화에서 주인공인 고니보다 영화 자체에 더욱 열광했던 것은 주인공 고니는 욕망과 우정, 사랑 모두를 보여준 아주 사실적인 인간에 가까웠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홍콩 도박 영화 속 인물들은 종종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지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지존이란 수식어와 도신이란 단어를 국내 관객에게 각인시켰던 90년 전후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질 않습니다. 비록 히트한 영화를 자가복제 하면서 쇠락해버린 홍콩 영화지만 당시엔 아시아 영화 문화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년 시절을 홍콩영화와 함께 했기 때문에 지금 후세의 평가와는 별개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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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낙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11.28 옛날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길을 찾지 못해 정신 없이 중국 시리즈에 빠졌을 때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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