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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표현하는 상징들
안녕하세요? 영화블로거 루트입니다. 지난 글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대한 상징 해석을 좋게 읽어주신 분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여러 멜로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영화를 보다 흥미롭게 즐기시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ㅣ 루트 구성ㅣ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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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축학개론] "망가진 녹슨 대문"
승민(엄태웅)은 자신을 찾아 온 첫사랑 서연(한가인)을 알아보지 못한 척을 하네요.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는 자신의 첫사랑을 X년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거절하고, 그녀가 강남사는 부자 선배를 택했다 오해하고 있거든요.
20살의 사랑에 서투른 승민은 말 끝마다 돈돈거리며, 사소한 것조차 버리지 못해 기어이 냉장고를 채우는 순대국집 어머니가 창피했습니다. 또한 그녀가 강남으로 떠나버리고 자신만 "정릉"에 남겨졌다는 점, 그녀가 비웃어버린 "GEUSS" 옷이나 입는 자신이 부끄러웠죠. 그런 자격지심에 휘청거리는 그녀에게 추근거리는 돈 많고, 인기 많은 강남사는 선배를 보고서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숨기며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조건을 따져 남자를 고르는 X년이라고 치부하며 첫사랑을 끝낸 것이죠.
그렇게 실패한 첫사랑은 아직까지 승민에게 큰 상처로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가 굳이 정릉(=강북)과 어머니(=가난)로부터 멀찍이 떠나 외국으로 떠나기 위해서 진심으로 마음을 담았다고 보기 어려운 여자와 결혼을 준비하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15년 만에 만나 부자동네사는 의사 사모님이라서 좋겠다고 가시를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네요.
망가진 녹슨 대문은 바로 그 일그러진 상처를 상징합니다. 자신이 미워, 가난이 미워, 어머니가 미워 홧김에 발길질로 고장내 버린 대문이죠. 그리고 15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을 좋아했었다는 서연의 고백을 듣고서 뒤틀렸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뒤로 하고 집 밖에 나왔다가, 울음을 터뜨리며 그 망가진 녹슨 대문을 그제서야 원래대로 돌려보려고 하네요.
그렇게 서연의 뒤늦은 고백에 승민은 오랜 오해를 풀고 마음에 얼룩졌던 사랑의 상처를 걷어냈으니, 자신의 삐뚤어졌던 선택(어머니, 결혼)들을 돌아보게 되겠군요. 첫사랑의 질긴 아픔에서 이제야 벗어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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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축학개론] "제주도 서연의 집"
20살의 그 시절. 승민은 넌지시 서연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그 인기 많은 선배를 좋아하냐고요. 이에 대해서 나한테 관심도 없다며 어정쩡한 답변을 해주었지요. 과연 서연은 그 선배를 정말 좋아했던 것일까요? 제가 그 답을 내려보자면, 호감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단, 중요한 것은 그 호감이 연애감정으로서가 아니라 배경에 대한 동경이었다 볼 수 있겠네요.
아마도 서울로 유학 온 제주도 섬소녀인 그녀는 일찌감치 세상이 서로를 가로지르는 벽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전공한 피아노가 부잣집 공주님들이 많은 학과인 것이 영향이 있었겠지요. 마치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한강처럼, 건너기 힘든 경계선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자신도 그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겠다 마음먹었네요. 그래서 피아노라는 꿈이 아니라, 현실적인 성공을 위해 아나운서가 되겠다 말하고, 굳이 정릉을 떠나서 지하 단칸방이더라도 강남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20살! 이제는 순수하게 피아노를 좋아하는 제주도 소녀가 아니라, 상류층 세상을 꿈꾸는 서울 아가씨로 변해가는 무렵이었네요.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승민이 질문을 던질 때! 그녀는 선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가 속한 "강남이라는 세상"에 들어가길 원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서연이 유일하게 현실이 아니라 순수로 마음에 품었던 것이 바로 "승민"이겠네요. 그래서 그녀에게 그가 첫사랑인 것이고, 아나운서로, 의사의 아내로 자신을 잃어버리고 그저 현실(성공)만을 좇다가 "매운탕 같은 인생"으로 끝내 무너지고서 다시 일어서기 위한 마음의 디딤돌을 찾다보니 그게 순수한 감정으로 품었던 승민이었던 것입니다.
제주도 집은 그런 서연의 내면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폐가로 변해버린 집은 20살 이후로 현실을 좇느라 페허가 되어버린 제주도 섬소녀로서 자신의 정체성이지요. 그리고 승민을 만나 집이 재건축 되듯이, 조금씩 자신을 회복하고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그만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같은 상징적인 의미이겠네요. 승민이 돌려주는 CD에 그녀는 무너졌던 삶을 다시 살아갈 큰 위안을 얻었겠지요. 이제는 피아노를 좋아하는 섬소녀인 본래 자신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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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애의 온도] "롤러코스터"
헤어진 이후에 오히려 더 뜨겁게 불붙었다가, 다시금 이별에 다다른 커플. 그 출렁이는 연애의 감정을 마치 화장기없는 민낯처럼 꾸밈없이 담아낸 사랑영화 [연애의 온도]입니다.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게 되는 징글징글한(?) 연애를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꼭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은 아니죠. 이 사랑을 끝까지 부여잡자니 오히려 서로를 외롭게 힘들게 할 것이 뻔하기에, 지쳐버린 나머지 놓아주는 것에 가깝네요. 그렇게 요동치는 연애의 온도에 마음 데이고, 마음 시리다 지친 보통의 97%는 대개 완전히 끝을 맺습니다. 해봐야 뻔하다는 두려움에 더 이상 남은 사랑을 구태여 또 달구지 않는 것이죠.
딱 그 이별의 순간. 동희와 장영은 무섭지만 재밌을 것 같다면서 "롤러코스터"에 올라탑니다. 바로 해피엔딩을 암시한 사랑의 롤러코스터죠. 사랑처럼 뜨겁게 차갑게(=오르락 내리락) 요동치고, 사랑마냥 무섭기에 차라리 피하고도 싶지만. 결국에 함께 올라탔기에, 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짜릿함과 즐거움입니다. 이처럼 [연애의 온도]는 3%의 확률을 따지지 말고, 무섭더라도 사랑해보라 격려를 합니다. 사랑을 두고서 확률을 따지는 것은, 용기없는 선택의 변명이라고 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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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 아내의 모든 것] "지진"
확실히 정인(임수정)의 모습은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화장실까지 따라붙으며 기어이 야채 주스를 먹이고, 끊기가 무섭게 다시 또 전화해서 각종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지요. 이해하기 힘든 과한 행동들. 그녀는 왜 그럴까요?
아마도 불안해서일 것입니다. 그 균열의 시작은 실패해버린 임신이었겠군요. 그 문제로부터 회피를 택한 부부의 사이는 세월을 타고 야금야금 틈이 벌어져갔고. 그것을 느끼는 그녀의 애달픈 마음이 삐뚤게 표출되는 중이네요. 남편이 숨막힐 정도로 쉼 없이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것은 실은 그 불안함을 걷어내달라는 간절한 요청입니다. "우리 사이는 문제없이 좋아. 그것을 확신하도록 증명해줘!"라고 외치는 중입니다. 그것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두현(이선균)인지라,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네요. 그렇다고 그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책망하긴 어렵습니다. 사실 누구나 비슷하거든요. 이혼을 앞둔 때의 두현에서 보듯이, 외로워진 이들은 쉽게 삐뚤어지니까요.
"지진"은 바로 그렇게 흔들리는 두 부부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불안하고 무서운 그리고 외로운 마음이겠고요. 흔들리는 사랑(=지진) 앞에서는 누구나 겁쟁이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지진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둘은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는 서로의 외로움을 돌봐 줄 수 있을테니, 더 이상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하고 포근한 사랑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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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러브픽션] "겨털"
사실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겨털"이 직접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일종의 "맥거핀"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다만 [러브픽션] 속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보자면, 꽤 중요한 사랑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열렬한 구애가 성과를 거두고 본격적인 연애가 무르익은 직후. 여자는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데, 짓궂은 사랑의 아이러니는 이때쯤 남자가 주춤거리게 만듭니다. 남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여자를 꼼꼼히 따져보기 시작하는 거죠. 가까워지기 전 꿈꾸던 이상향 속 그녀가 아니라, 실제로 겪게 된 현실 속 그녀에게 익숙해질수록 과거의 남자라든가, 예상 밖의 겨털처럼 떨떠름한 이물질을 솎아 내며, 사랑을 반문하느라 엉거주춤거리게 만듭니다. 처음엔 괜찮다고 태연하게 웃어 넘기지만, 사람이란 동물이 간사해서 점점 걸림돌로 작용하는거죠.
누가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에게 희진처럼 무성한 "겨털"이 있다고 믿겠어요. 바로 남자가 여자에게서 느끼게 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통칭하는 것이 "겨털"이겠습니다. "자신의 여자"에 대해서 자신이 품은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서 온전히 그녀로 받아들일 때, 바로 남자가 "진짜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이라 말하는 남정네의 사랑보고서 [러브픽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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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봄날은 간다] "라면"
상우(유지태)가 자신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은수(이영애)는 그를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금세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하네요. 상우는 충분히 믿을만한 좋은 남자임에도 그녀는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녀의 이혼 경험이 그 원인이지 않나 추측 됩니다. 사랑이라 굳게 믿었으나, 부질없이 남으로 헤어지고 나서 겁이 많아진 여자는 더 이상 남자를 마음 깊이 허락하지 못하나 봅니다. 선을 그어 놓고서 상처입을 부담없이 자신의 외로움만을 달래는 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죠.
바로 그런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라면"입니다. 든든한 밥 한 끼 대신에 10분이면 뚝딱 완성되어서 끼니를 때울 수 있듯이, 사랑으로 채워야 하는 자리를 가벼운 연애로 대신 때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낀 상우이기에 자기가 라면이냐며 화를 내는 것이네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명대사에 대한 답.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이미 변해있네요. 살다보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인 사랑을 하게 되나 봅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채워졌던 상우의 짧은 봄날이 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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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만추] "귀걸이 알레르기"
영화는 교도소를 나온 애나(탕웨이)의 여정을 쏟으며 흘러갑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바쁘게 인사를 건네고, 주방으로, 손자 곁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붙이며 바쁘게 그녀의 곁에서 벗어나네요. 이런저런 말소리가 집 안을 채우지만, 온통 그들의 문제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군요.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할 뿐, 그 안에서도 애나는 혼자네요. 심지어 오랜만에 마주한 사랑조차 철저히 그녀를 외면합니다. 마치 세상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덩그러니 머물러 있습니다.
옷을 사 입고, 귀걸이까지 하면서 그녀는 조금 힘을 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날카롭게 죄수번호와 위치를 묻는 교도소의 전화가 다시 그녀를 현실로 추락시키네요. 그 다음에 바로 나타나는 것이, 귀걸이 알레르기 입니다. 그 귀를 간지럽히는 알레르기가 애나에게 "당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속삭이네요. 그렇게 세상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임에도 애써 떨쳐내려는 애나의 고독을 간지럽히는 것이 "귀걸이 알레르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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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멜로영화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했던 요소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이런 상징들을 파악하고 나름대로 해석을 붙이며 영화를 감상해보시는 것도 영화라는 작품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꼭 하나의 정확한 정답이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감독의 의도는 분명 따로 있겠지만, 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게 혹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신선하게, 각자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받아들이고 정리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특정 작품을 비로소 자신의 영화로 만나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쪼록 보다 좋은 영화와의 만남을 돕는 글이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