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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교학회 논문

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18.10.24|조회수98 목록 댓글 0

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이 치 억*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高峯의 반론으로 본 退溪 四端
七情論의 특성
Ⅲ. 七情의 의미와 범주
Ⅳ. 四端의 純善함
Ⅴ. 맺음말


<국문 요약>
일반적으로 退溪 사상의 특성이 리의 능동성, 특히 사단칠정론에서 理發을
주장한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퇴계-고봉의 사단칠정왕복서
에 드러난 퇴계 사단칠정론의 독창성은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에 분속한 것
에 있고, 그 중에서 리발을 제창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발을 떼어낸 데
있다고 보여진다. 이는 주자학에 정통했던 고봉의 반론을 통해서도 알 수 있
는데, 사단칠정왕복서에서 高峯이 문제 삼은 것은 리발이 아니라 오히려 기발
에 있는 것이다. 퇴계가 기발을 따로 분리해 낸 것은 물론 기발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리발인 사단의 순선함을 드러내고 확보하려는 데 그 의도가 있다. 퇴
계의 논리에 따르면 도덕적 감정이라고 해서 모두 사단이라고 할 수 없으며,
칠정도 충분히 도덕적 감정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단과
칠정은 본질적으로 다른 감정임을 주장한다. 즉 사단과 칠정의 분계점은 선과
악, 내지는 도덕-비도덕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 심연의 본연적 감정인가, 자기
중심의 기질적 감정인가 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퇴계는 자기중심적 감정은
그것이 아무리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칠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본
다. 본 논문은 리의 능동성, 리발-기발이라고 하는 理氣論의 무게를 최대한 내
려놓고 퇴계의 논리에 따라 그가 상정한 사단과 칠정의 범주와 의미를 살펴
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94 儒敎思想硏究 第45輯


주제어: 퇴계, 고봉, 사단, 칠정, 리발, 기발, 사단의 순선함


Ⅰ. 들어가는 말
우연한 계기로부터 발단된 것이기는 하지만1) 退溪 李滉(1501~1570)과
高峯 奇大升(1527~1572)사이의 사단칠정논변은 한국유학사에 큰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조선시대 수많은 사단칠정 관련 논변의 발
화점이 되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현대 연구자들이 퇴계의 사단칠정론을 연구할 때 가장 주의
를 기울이는 부분은 理發이며, 리발이야말로 퇴계 사단칠정론의 핵심을
드러내 주는 표현이라고 한다. 나아가 리발을 리의 능동성의 문제로 접
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퇴계사상의 독창성이 리의 능동성을 주장한
데 있고, 리발은 심성론 상의 리의 능동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최근 몇몇 연구자가 리발이 리의 능동성의 문제가 아니라
는 주장을 펴 놓은 바 있다. 문석윤 선생은 理發과 理動은 리의 능동성
의 문제가 아니며, 퇴계는 理到에 이르러 리의 능동성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고 하였고,2) 이승환 선생은 리발리동리도
를 한 데 묶어서 ‘리의 능동성’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리발기발에 사
용된 리기 개념은 마음 안에서 리적 성향과 기적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
고, ‘發’자는 운동의 의미가 아니라 심리적 속성의 실현 또는 예화라고


1) 秋巒 鄭之雲(1509~1561)이 만든 天命圖를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된 퇴계는
추만을 직접 찾아가 천명도 의 수정을 권고하고 그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추만의 천명도 (舊圖)에 있던 ‘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의 구절
을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로 수정했다. 이 천명도 가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널리 유포되면서 당시의 신진관료이자 학자였던 高峯 奇大升(1527~1572)에게
전파되었고, 고봉이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눈 설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장장 8년여 간의 사단칠정논변이 시작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 문석윤, 退溪에서 理發과 理動, 理到의 의미에 대하여 , 퇴계학보 제110집,
2001,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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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3) 이 두 논문은 공히 적어도 리발은 리의 능동성으로 해석할 수 없
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율곡이 리의 무위성을 근거로 퇴계의 리발을 문제 삼은 이후, 리발과
리의 능동성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논변의 원초로 돌
아가서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논변 자체에 주목하는 한, 사실 리의 능
동성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논변의 당사자인 퇴계와 고봉의 문
제의식은 인간의 감정이라고 하는 심리현상에서 나타나는 선악의 문제
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 리의 능동성의 여부에 있었던 것
은 아니었기 때문이다.4) 또 리발-기발이라는 것도 그 선악의 문제를 밝
히는 과정에서 당시의 세계관이었던 리기론적 방법이 사용됨으로써 나
타난 방편적 용어일 뿐이고, 어디까지나 중점은 사단과 칠정,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물론 사단칠정의 리기론적 해석을 공리공담으로 치부한다거나 기존
의 연구 성과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퇴계-고봉의 사단칠
정논변 자체가 사단칠정의 리기론적 해석이기 때문에 리기론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모순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단, 리기론에 중점
을 둔 연구는 기존에 많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본 논문에서는 리의 능동
성, 리발-기발이라고 하는 리기론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퇴계의 논리
에 따라 그가 상정한 사단과 칠정의 범주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사단과 칠정의 범주를 명확히 함에 따라 퇴계가 말한 사단=순선의 의
미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3) 이승환, 퇴계 리발설의 수반론적 해명 , 동양철학 제34집. 2010, 193~194쪽.
4) 그렇다고 리의 능동성 문제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자는 것은 아니다. 사칠논변
에서 훨씬 후일의 일이기는 하지만 퇴계는 분명 體用으로 리의 능동성의 문제
를 언급하고 있다.(“蓋無情意云云, 本然之體, 能發能生, 至妙之用也.” 答李公浩
問目 70세) 단, 理發을 리의 능동성의 문제로 접근해서 해결할 수 있으려면,
사변적 분석뿐만 아니라 논자 스스로 理를 眞知妙解하려는 체험적 노력이 동
반되어야 할 것이라 통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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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高峯의 반론으로 본 退溪 四端七情論의 특성
많은 현대의 연구자들이 퇴계 사단칠정론의 특성으로 理發을 주장한
것을 꼽지만, 퇴계-고봉의 사단칠정왕복서에서는 리발의 문제는 심각하
게 제기되지 않는다.5) 정을 성이 발한 것으로 보는 성리학자들에게 ‘理
發’이라는 표현은 문제될 것이 없음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고봉도 누
차에 걸쳐 리발을 말한다.6)
성이 막 발하는데 기가 작용하지 않아 본연의 선이 곧바로 이루어진 것이 바
로 맹자가 말한 사단이며, 이것은 진실로 순수하게 천리가 발한 것입니다.7)


5) 고봉이 주자의 리 無情意無計度無造作의 명제를 근거로 퇴계의 리발을 부정
한 것은 한번 등장한다. “지금 리와 기가 각각 발용함이 있어서 그 발함이 또
서로 끌어당김이 있다고 한다면, 리는 정의와 계탁과 조작이 있는 것이 되고
맙니다. 또 리와 기가 마치 두 사람처럼 하나의 마음속에 들어 있으면서 번갈
아 용사하여 서로 首從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도리를 세움에 털끝만
한 어긋남도 있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여기에 어긋남이 있다면 어긋남이
없는 곳이 없게 됩니다.[今曰互有發用, 而其發又相須, 則理卻是有情意有計度有
造作矣. 又似理氣二者, 如兩人然, 分據一心之內, 迭出用事, 而互爲首從也. 此是
道理築底處, 有不可以毫釐差者. 於此有差, 無所不差矣.(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下, 高峯答退溪再論四端七情書)]” 이 내용은 왕복논변의 거의 말미에 해당
하는 신유년(1561) 1월의 편지 중에서도 본론이 아닌, 別紙의 가장 마지막 부
분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비판의 주안점은 ‘互有發用’에 있는 것이
지 理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봉의 이 언급이 리발 자체를 부정한 것
이면 이보다 앞서 언급한 수많은 내용들과 모순이 된다.
6) 남지만 선생은 리발기발에 사용되는 ‘發’자를 세 가지 맥락으로 분석한다. 근
원에서 나온다는 의미의 發源, 움직인다는 의미의 發動, 드러난다는 의미의
發顯이 그것이라고 하면서 고봉이 사용하는 의미의 發을 분석한 바 있다. 고
봉의 이론에서는, 발원의 측면에서는 사단과 칠정이 모두 ‘理發’이고, 발동의
측면에서는 ‘理氣共發’이며, 발현의 측면에서는 중절한 칠정인 사단은 ‘理發’,
非四端은 ‘氣發’이 된다고 한다. 남지만, 퇴계 호발설의 ‘七情氣發’에 대한 고
봉의 비판과 수용 , 동양철학 제33집, 2010, 49~53쪽.
7)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上, 高峯上退溪四端七情說 : “蓋性之乍發, 氣不用
事, 本然之善, 得以直遂者, 正孟子所謂四端者也. 此固純是天理所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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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리기가 묘합한 가운데 나아가 전적으로 리에서 발하여 선하지 않음
이 없는 것을 가리켜 말했으니 사단이 이것입니다. 자사는 리기가 묘합한 가운
데 나아가 혼륜해서 말했으니, 리기를 겸하고 선악이 있는 정으로서 칠정이 이
것입니다.8)
고봉은 또 “사단은 리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
함에 리가 타는 것이다.[四則理發而氣隨之, 七則氣發而理乘之]”라고 한
퇴계의 명제에 만족하지 못하고, “정이 발하는 것은, 혹은 리가 동함에
기가 갖추어지고, 혹은 기가 감응하는 데 리가 탄다.[情之發也, 或理動而
氣俱, 或氣感而理乘.]”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理動을 말하는 고봉에게 리
발은 문제가 될 것이 없음은 당연하다.9)
고봉이 시종 일관되게 문제 삼는 것은 퇴계가 사단칠정을 리와 기로
분속한 것 자체에 있다. 고봉은 사단과 칠정의 다른 이름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만 자사와 맹자가 가리켜 말한 것이 같지 않기 때문에 사단․칠정의 구별
이 있을 뿐, 칠정 밖에 달리 사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만약 사단은 리
에서 발하여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을 기에서 발하여 선과 악이 있다고 하신
다면, 이것은 리와 기를 판연히 두 가지 실체로 보는 것입니다. 칠정은 성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되고 사단은 기를 타지 않는 것이 됩니다.10)


8)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上, 高峯答退溪論四端七情書 : “孟子就理氣妙合之
中, 專指其發於理而無不善者言之, 四端是也. 子思就理氣妙合之中而渾淪言之,
則情固兼理氣有善惡矣, 七情是也.”
9) 고봉이 퇴계의 리발을 문제 삼지 않았음을 밝혀주고 있는 논문으로는 문석윤,
퇴계에서 리발과 리동, 리도의 의미에 대하여 , 퇴계학보 제110집, 2001.
및 남지만, 퇴계 호발설의 ‘七情氣發’에 대한 고봉의 비판과 수용 , 동양철
학 제33집, 2010. 참조.
10)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上, 高峯上退溪四端七情說 : “但子思孟子所就以言
之者不同, 故有四端七情之別耳, 非七情之外復有四端也. 今若以爲四端發於理
而無不善, 七情發於氣而有善惡, 則是理與氣判而爲兩物也, 是七情不出於性, 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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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에 분속하는 퇴계의 설은 마치 두 가지의 정과
두 가지의 선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어서11) 후학들을 그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12) 요컨대 고봉의 퇴계설 비판의 핵심은
사단칠정의 對擧互言과 分理氣 자체에 있는 것이다.
왕복서가 적지 않은 분량이고 그 내용도 복잡다단하게 얽혀있기는 하
지만, 요약하자면 퇴계의 이론 전개는 크게 다음과 같은 두 방면으로 귀
결된다. 첫째, 사단과 칠정은 그 근원과 내용이 다른 감정으로서 사단은
리에 칠정은 기에 분속할 수 있다는 것. 둘째,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그
것이 理氣不相離의 주자학적 원칙을 위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
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전자이고, 후자는 고봉의 반박에 대한 변론으로
서 전자에 대한 보충설명에 해당한다. 이는 퇴계의 논변서 전체에 관통
되는 패턴이지만, 여기에서 일일이 살펴볼 필요는 없고 다만 사단과 칠
정의 리기론적 정의의 추이만 짚어보도록 한다.
①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
之發]13)
② 사단이 발함은 순수한 리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함은
기를 겸했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四端之發, 純理故無不善, 七情之發, 兼氣
故有善惡.]14)
③ 사단은 리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함에 리가 타는
것이다.[四則理發而氣隨之, 七則氣發而理乘之.]15)


四端不乘於氣也.”
11) 같은 곳 : “蓋以四端七情, 對擧互言, 而揭之於圖, 或謂之無不善, 或謂之有善
惡, 則人之見之也, 疑若有兩情, 且雖不疑於兩情, 而亦疑其情中有二善, 一發於
理, 一發於氣者, 爲未當也.”
12) 같은 곳 : “若後學見之, 指其已定之形, 而分理與氣二者, 別而論之, 則其爲悞
人, 不亦旣甚矣乎?”
13) 天命圖상의 표현이다.
14) 退溪先生文集 卷16, 與奇明彦[大升○己未] (15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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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은 ①에 대해 “리를 판연히 두 실체로 보는 것이 되어, 칠정은 성
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되고 사단은 기를 타지 않는 것”16)이라 비판한
다. ②에 대해서는 “‘사단이 발함은 순수한 리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
이 없고, 칠정의 발함은 기를 겸했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라고 고치신
것은 앞의 설 보다는 조금 낫기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여전히 못마땅하
게 여겨집니다.”17)라고 한다. “칠정 밖에 따로 사단이 있는 것이 아니
라”18)는 이유에서이다. 또 퇴계가 ③의 명제를 설명하면서 “사람의 일신
은 리와 기가 합하여 생긴 것이므로 이 둘이 서로 발용함이 있고 또 서
로 필요로 함이 있다. 호발하기 때문에 각각 주가 되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서로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함께 그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라
고 한 것을 가리켜 “실로 병통이 생긴 근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점19)에서 고봉의 퇴계 비판의 핵심은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에 분속한
것에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퇴계가 理氣相須, 理氣不相離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차례 표현을 바꾸어도 고봉이
긍정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이와 같이 고봉이 첫째로 반박한 것은 리기분속설 자체이지만, 그 중
에서도 비판의 강도가 더 컸던 부분은 ‘리발’이 아니라 ‘기발’이다.20) 고


15)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二書] (1560년).
16) 주 10) 참조.
17)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上, 高峯上退溪四端七情說 : “若又以四端之發, 純
理故無不善, 七情之發, 兼氣故有善惡者而改之, 則雖似稍勝於前說, 而愚意亦
恐未安.”
18) 같은 곳 : “非七情之外復有四端也.”
19)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下, 高峯答退溪再論四端七情書 : “人之一身, 理與
氣合而生. 故二者互有發用, 而其發又相須也. 互發則各有所主, 可知. 相須則互
在其中, 可知云云者, 實乃受病之原, 不可不深察也.”
20) 문석윤 선생은 “고봉이 문제로 삼은 것은 리의 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문제로 삼은 것은 오히려 칠정을 오로지 기발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
다.”라고 하여 고봉의 퇴계비판이 리발보다 기발에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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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 말한다.


이른바 사단이 리의 발이란 것은 전적으로 리만을 말하는 것이지만, 칠정이
기의 발이라고 하는 것은 리와 기를 합해서 말한 것입니다. 리의 발이라는 것은
진실로 바꿀 수 없는 말이지만, 기의 발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기만을 가리킨 것
이 아닙니다.21)


또 퇴계의 사단칠정 所從來異說22) 중에서 고봉이 극력 부정한 부분도
사단의 소종래가 아닌 칠정의 소종래이다. 고봉은 칠정도 사단과 마찬
가지로 인의예지의 성에서 발한 것이라고 한다.23) 퇴계가 칠정을 “외물
이 그 형기에 접촉하여 내면에서 움직여서, 대상에 따라 나온다.”24)라고
한 데 대하여, 고봉은 好學論의 원문에 근거하여 “대상에 따라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속에서 움직여서 나오는 것”25)이라고 지적한다.
칠정 또한 인의예지가 발한 감정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요컨대, 고봉의 퇴계 비판의 큰 줄기는 사단칠정을 리와 기에 분속하
는 것 자체에 있고, 칠정을 기발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불가함을 말한
것은 큰 줄기에서 나온 작은 가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문석윤, 퇴계에서 리발과 리동, 리도의 의미에 대하여 , 퇴계학보 제110
집, 2001, 175~176쪽 참조.
21)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上, 高峯答退溪論四端七情書 “所謂四端是理之發
者, 專指理言, 所謂七情是氣之發者, 以理與氣雜而言之者也. 而是理之發云者,
固不可易, 是氣之發云者, 非專指氣也.”
22) “惻隱羞惡辭讓是非, 何從而發乎? 發於仁義禮智之性焉爾. 喜怒哀懼愛惡欲, 何
從而發乎? 外物觸其形而動於中, 緣境而出焉爾.”를 가리킨다.
23)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上, 高峯答退溪論四端七情書 : “愚謂四端固發於仁
義禮智之性, 而七情亦發於仁義禮智之性也.”
24) 이 구절은 퇴계가 칠정의 소종래를 밝히기 위해 伊川의 顔子所好何學論에
서 인용한 것이다. 원문은 “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 其中動而七情出焉”로 되
어 있고, “緣境而出焉爾”라고 한 것은 퇴계의 창작이다.
25)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上, 高峯答退溪論四端七情書 : “雖似緣境而出, 而
實則由中以出也.”
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101


고봉의 학자적 진실성과 성리학적 역량을 믿는다면, 퇴계의 사단칠정
론 중 고봉이 우려하고 비판한 점을 중심으로 퇴계사상의 독창성을 간
취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퇴계의 독창성은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에
나누어 본 것이고, 리발과 기발 중에서 리발이 아니라 오히려 기발인 칠
정을 나누고 떼어낸 데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Ⅲ. 七情의 의미와 범주
퇴계가 극력 사단과 칠정의 분리를 주장했지만, 고봉의 혼륜의 관점
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퇴계는 이전의 칠정의 개념은 대개 혼륜의 차
원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禮記樂記의 ‘性之欲’, 中
庸의 ‘喜怒哀樂’, 伊川의 好學論에서의 ‘喜怒哀樂愛惡欲’ 등은 사단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인간의 감정을 통칭한다는 것이다.26) 칠
정이 발하는 것도 인의예지의 性에서 기원하는 것이므로27) “혼륜해서
말한다면 칠정이 리와 기를 겸하고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28) 퇴
계는 칠정을 한편으로는 감정의 전체로, 또 한편으로는 리발인 사단과
대비되는 기발의 감정, 말하자면 渾淪과 分開라는 두 차원으로 이해하
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분개의 차원에서 말하는 칠정이다. 그렇다면 퇴
계에 있어서 사단과 확연히 구분되는 칠정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학
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바와 같이 사단-도덕감정, 칠정-일반감정이
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사단과 칠정을 도덕감정과 일반감정으로 구분


26) 退溪先生文集 卷37, 答李平叔 : “故如樂記中庸好學論中, 皆包四端在其中,
渾淪而爲說.”
27) 退溪先生文集 卷11, 答李仲久 : “七情之發, 雖不可謂不由於五性, 然與四
端之發, 對擧而言, 則四端主於理而氣隨之, 七情主於氣而理乘之.”
28)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二書] : “蓋渾淪而言, 則七情
兼理氣, 不待多言而明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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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은 리발을 리의 능동성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
우 일반화된 현상이고, 이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제출되어 있기는 하거
니와29) 직접 퇴계의 논리로 따져보아도 칠정을 일반감정에만 한정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고봉은 묻는다.
① 孟子가 기뻐서 잠을 자지 못한 것은 기쁨이고, 舜임금이 四凶을 죽인 것
은 노함이고, 孔子가 顔淵의 죽음에 애통하게 곡한 것은 슬픔이고, 閔子․子
路․冉有․子貢이 옆에서 모실 적에 공자가 즐거워 한 것은 즐거움입니다. 이
것이 리의 본체가 아닌 건가요? ② 또 보통사람들도 天理가 발현될 때가 있는
데, 부모․친척을 만나면 흔연히 기쁘고 남의 죽음이나 아픔을 보면 측은히 슬
퍼지는 것도 리의 본체가 아닌 건가요?30)
①은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聖人의 희노애락이다. ②는 일반사람의 감
정이지만 孝의 덕목과 관련된 감정이거나 타인의 아픔을 공유할 줄 아
는 감정, 즉 공감이다. 특히 舜의 분노는 義에 가깝고, 남의 죽음이나 아
픔에 공감하는 것은 측은지심에 가깝다. 즉 충분히 도덕적 감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봉은 성인의 일반적 감정과 일반인의 선한 감정을 모
두 天理의 발현으로 보고 이것을 사단과 동일한 도덕적 감정이 아닌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퇴계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맹자의 기쁨, 순의 노함, 공자의 슬픔과 즐거움은 기가 리를 따라서 발하여
털끝만큼도 막힘이 없는 것이라 리의 본체는 온전합니다. 보통 사람이 부모를
29)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학자에 의해 심도 있게 다루어진 바 있다. 이찬 선생
은 사단-칠정을 도덕감정-일반감정, 가치-사실, 의미-현실의 영역에 배속시키
는 도식적 구분을 비판하면서, 사단칠정이 공히 가치와 사실이 혼융된 것이
며 칠정 또한 도덕과 무관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이찬, 四端七情


再考, 퇴계학보 125집, 2009, 54~70쪽. 참조.
30)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上, 高峯答退溪論四端七情書 : “孟子之喜而不寐,
喜也. 舜之誅四凶, 怒也, 孔子之哭之慟, 哀也. 閔子子路冉有子貢侍側而子樂,
樂也. 玆豈非理之本體耶? 且如尋常人亦自有天理發見時節, 如見其父母親戚,
則欣然而喜, 見人死喪疾痛, 則惻然而哀, 又豈非理之本體耶?”
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103




보고 기뻐하는 것과 喪을 당하여 슬퍼하는 것도 기가 리를 따라 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리의 본체 또한 순전할 수는 없습니다. 이로
써 논하자면, 칠정이 비록 기의 발함이지만 어디 리의 본체를 해치는 것이 있겠
습니까?31)
퇴계는 聖人의 온전한 감정이나 일반사람의 도덕적 감정이라 할지라
도 그것이 기가 발한 것인 한, 칠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도덕에 합치하는, 즉 “리의 본체를 해치지 않는” 감정이라고 해서
모두 사단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륜의 관점에 서 있는 고봉이 이와 같은 대답에 수긍할 리는
만무하다. 다시 고봉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감히 묻겠습니다. 喜怒哀樂이 발해서 중절한 것이 리에서 발한 것입니까, 기
에서 발한 것입니까? 발하여 중절해서 선하지 않음이 없는 선과, 사단의 선이
같습니까, 다릅니까?”32)
이에 대해 퇴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비록 기에서 발한 것이기는 하지만, 리가 타서 주가 되는 것이므로 그 선은
같습니다.33)


기가 리를 따라서 발하는 것을 리가 발한 것으로 여긴다면, 기를 리로 오인


31)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二書] : “孟子之喜, 舜之怒, 孔
子之哀與樂, 氣之順理而發, 無一毫有碍, 故理之本體渾全. 常人之見親而喜, 臨
喪而哀, 亦是氣順理之發, 但因其氣不能齊, 故理之本體亦不能純全. 以此論之,
雖以七情爲氣之發, 亦何害於理之本體耶?”
32)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下, 高峯答退溪再論四端七情書 : “敢問. 喜怒哀樂
之發而中節者, 爲發於理耶? 爲發於氣耶? 而發而中節, 無往不善之善, 與四端之
善, 同歟異歟?”
33) 退溪先生文集 卷17, 與奇明彦[壬戌] : “雖發於氣, 而理乘之爲主, 故其善同
也.”
104 儒敎思想硏究 第45輯


하는 병통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34)


비록 善이라고 하는 결과로서의 가치가 같더라도 사단과 칠정은 여전
히 서로 범주가 다른 감정이다. 똑같은 도덕적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리
가 발한 사단과 기가 발한 칠정은 같을 수 없다는 점을 퇴계는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단-칠정을 도덕감정-일반감정의 도식으로 규정하려 한다면 퇴계의
이와 같은 이론은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도덕-일반감정의 도식은 오히
려 고봉의 이론에 적합한 것이다. 고봉의 이론대로 감정이 둘이 아니라
면 도덕감정-일반감정 역시 두 가지가 아닐 것이고, 칠정이라고 하는 일
반적인 감정들 중에서 도덕적이고 절도에 맞은 것을 사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 ― 특히 진화심리학 ― 에서는 감정이 개체의 생존에 필수
적인 것이며,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심리
현상으로서 그 표현방법도 유사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인간을 포
함한 포유류는 분노를 나타낼 때 입을 벌리고 이빨을 드러내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사람에게 있어서든 동물에게 있어서든 분노는 나를 위협하
는 상대에게 경고장을 날리는 것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이다. 두
려움도 마찬가지로 위협을 피함으로써 동물이 자기를 보호하는 데 필요
한 감정이다.35)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방어기제뿐만 아니라 食色의 욕
구[欲], 기쁨[喜]이나 아낌[愛],36) 쾌락[樂]과 같은 긍정적 감정들 또한 생


34) 같은 곳 : “以氣順理而發爲理之發, 則是未免認氣爲理之病.”
35) 이훈구, 감정심리학 , 이너북스, 2010. 29~30쪽 참조.
36) 愛는 어떤 대상을 아끼는 마음이다. 논자는 愛를 사랑이라기보다는 論語
八佾17장(子貢欲去告朔之餼羊, 子曰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의 의미처
럼 ‘아낌’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愛를 ‘사랑’으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그 사랑 또한
아낌의 감정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단서를 달지 않고, 단지
‘사랑’이라고 번역해버린다면 인간 본연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인 ‘仁’과 개
념의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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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종족의 영속에 필요한 기본적인 감정이다. 개체의 생명유지와 종
족보존에 도움이 되는 일을 접하게 되면 즐겁고 기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퇴계가 현대의 심리학적 관점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퇴계가 말
하는 기발이 위와 같은 심리학의 이론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
르겠지만, 상당히 유사한 면은 있다고 생각된다. 퇴계가 칠정을 氣에 귀
속시키면서 그 소종래를 仁義禮智의 性에 두지 않고, “외물이 그 형체에
접촉하여 내면에서 움직여 대상에 따라 나온다.”37)라고 했던 것을 상기
해보자. 그렇다면 퇴계가 사단칠정론에서 가리키는 氣는 곧 氣質이며,
그것은 형이하적 개체성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개체성이란 자기중심
성이란 말과 다르지 않다. 즉, 전체와 분리된 개체로서의 ‘나’를 지칭하
는 것이다. 그 감정은 ‘나’를 위협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나 분노이고,
‘내’가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감정이며, ‘나’와 가까운 어떤 사람이나 물
건의 상실에 대한 슬픔인 것이다.
‘나’의 개체성 내지는 자기중심성에서 발한 감정이라고 해서 모두 악
하다는 것은 아니다.38) 퇴계는 기발의 감정도 ― 쉽게 악으로 흐를 수 있
기 때문에 ‘지켜봄[察]’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지만 ― 본래는 선한 감정
이라고 한다.39) 경우에 따라서는 사단과 다를 바 없는 순수한 선함을 드


37)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一書] : “外物觸其形而動於中,
緣境而出焉爾”
38) 논자는 다음과 같은 두 방면으로 도덕적인 칠정의 구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고 생각한다. 첫째, 개체의 생존을 추구하는 감정과 공동체 내지는 전체의
생존에 유리한 감정이 일치될 경우 얼마든지 도덕적 감정처럼 보일 수 있다.
이는 우연한 일치이다. 둘째, ‘나’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상당한
도덕감정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나’의 정체성이 개인에 국한되지 않
고 가족이나 친족소속된 사회국가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때의 ‘나’의 외
연은 개체에 국한되지 않고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의 범위만큼 넓어진다. 이
러한 것들이 愛族愛鄕愛社愛國心과 같은 도덕감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도덕감정 역시 자기중심적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기발의 감정
은 자기중심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39)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二書] : “七情本善, 而易流於
惡, 故其發而中節者, 乃謂之和, 一有之而不能察, 則心已不得其正矣.” 김기현
106 儒敎思想硏究 第45輯


러낼 때도 있다. 앞서 살펴본 “기가 리를 따라 발한 것이지만 리가 主가
된 감정”이 그것이다. 聖人의 경우는 기질이 맑고 순수하기 때문에 기발
인 칠정이라도 그 자체로 선하며, 천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나타나서 리
발인 사단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한편 일반인의 경우는 기질의 탁
함으로 인해 악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다. 칠정의 선과 악은 기질의 청탁
여부와 그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질의 맑음은 자기중심적 감정이
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도덕적 중절을 보장해 줄 것이다. 반면 기질의
탁하고 잡박한 사람의 자기중심적 감정은 악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선이든 악이든 기에서 발한 한, 칠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본다면 사단과 칠정의 분기점은 도덕적 중절과 부중절의 여부
가 아니라, ‘나’라고 하는 개인의 기질, 자기중심성의 개입 여부에 있는
것이다.


Ⅳ. 四端의 純善함
퇴계의 논리에 따른다면 칠정을 일반감정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단도 두루뭉수리하게 도덕감정이라고 해서는 그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히 이와 같이 분류한다면 퇴계가 가장 경계하는
바, “기를 리로 오인하고”, “인욕을 천리고 여기는 병통에 떨어질 우
려”40)가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七情本善’의 ‘善’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선은 본래 도덕적인 의
미 이전에 ‘좋다’는 뜻을 그 개념의 핵심에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어떤 사물 또는 사태의 좋은 상태를 형용, 규정하는 말인 것이다. 도덕적인
선도 사실 이의 외연에 다름 아니다. …… 칠정이 본래는 좋은 것이다. 이때
칠정의 ‘좋음’은 인위에 의해 덧씌워지지 않은 원초적자연적 감정을 긍정하
는 의사를 함축한다.” 김기현, 퇴계의 사단칠정론 , 사단칠정론 , 서광사,
1992, 57쪽. 논자도 이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도덕적인 선과 생명의 상
태로서의 선은 일원적인 것이다.


40)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一書] : “駸駸然入於以氣論性
之蔽, 而墮於認人欲作天理之患矣”
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107


사단은 맹자가 언급한 대로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을 가리킨다. 그런
데 기왕 칠정이 단지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감정
의 전체를 가리킨 것이라면 사단 또한 네 가지 감정을 지칭한다기보다
는 리가 발한 순선한 감정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감정이라야 사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먼저 孟子 公
孫丑上의 孺子入井之事를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살펴보자.


사람은 누구나 차마 남을 해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 지금 갑자기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두렵고 측은한 마
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것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 교제를 하려는 목적에서도 아
니고, 향당과 붕우들에게 칭찬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린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싫어서도 아니다. 이로써 본다면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사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 사람에게 이 사단이 있는 것은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41)


남의 불행이나 위급한 상황을 접하고 깜짝 놀라 측은지심이 드는 것
은, ‘나’의 명예나 이익을 위한 마음에서도 아니고, ‘내’가 받을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 의도나 계산, 즉 자기중심성이 배제
된 순수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치 사지가 있는 것과 같이 자연스
럽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따지고 들어가 보
면, 그러한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 또한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 험
한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또 그래서 내 감정이 상하고 싶지 않은 ― 일종
의 자기위안적인 동기가 무의식 속에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42) 만일 그


41) 孟子 公孫丑上 6장.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 所以謂人皆有不忍人
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
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108 儒敎思想硏究 第45輯


렇다고 한다면 사단 또한 자기중심적인 감정이게 된다. 이에 대한 맹자
의 대답은 들을 수 없지만 다음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면 의문이 풀릴
것 같다. 성현창 선생의 다시 생각해 보는 주자학 이라는 논문에 소개
된 내용이다.43)


2006년, 이수현 씨가 사망한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이수현 씨가 다녔던 학교
를 다니는 유학생 신현구 씨가 이번에는 여대생을 구조했다. 한편 2005년 서울
의 한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한 김대현 군은 착지한지 두 번
만에 갔다 아이를 안고 두 번 만에 돌아오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인다. 2007년 9
월 8일에 방송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마음을 움직이는 시간, 0.3초의
기적’에서 방영된 그들의 인터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현구 : 본 순간 몸이 먼저 갔습니다. 무대에서 그 배우한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것처럼 옆에는 까맣고 그 사람만 보였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 라면박스와 같았습니다.


질 문 : 주위사람들이 박수쳐 줄 것인가, 칭찬해 줄 것인가를 생각했습니까?


김대현 : 아니요. 다른 곳은 안 보이고 제 발 디딜 곳과 어린아이가 있는 곳
만 보였어요. 엄청나게 가벼웠어요.


이는 실제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의 발출을 몸소 경험한 사람의 생
생한 증언이다. 여기에 ‘나’라고 하는 기질적 계산은 끼어들 여지가 없
다. 즉 ‘내’가 받을 칭찬에 대한 기대나 비난에 대한 우려는 물론이고,
‘내’ 감정이 상하고 싶지 않다는 자기중심적 성격조차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외부 세계는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위험에 처한 그 대상밖에
없다. 그 대상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상황에서는 외부 환경이나 대상
과 단절된 객체로서의 ‘내’가 아닌 대상과 하나된 ‘존재’만이 있는 것이
다. 이들은 일순간 동안이지만 외부와 단절된 객체로서의 ‘나’가 아닌
인간의 본래적 모습인 하나됨의 상태를 경험했던 것이다.44)


42) 논자는 이러한 감정을 ‘자기위안적 측은지심’이라 부르고자 한다.
43) 성현창, 다시 생각해 보는 주자학 , 유교사상연구 제36집, 2009, 18쪽.
44) 나대용, 理氣互發說의 理氣融合構造에 관한 연구 ,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109


程明道가 천지만물과 하나되는 것을 仁이라고 했듯이,45) 하나됨의 상
태란 바로 仁에 다름 아니다. 仁은 인간의 본래성이고 본연의 모습이다.
맹자는 측은지심을 곧 仁이라 했고46) 퇴계는 사단을 인의예지의 성이
뚜렷하게 내면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단서라고 했다.47)48)
그렇다면 퇴계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자기위안적 측은지심은 사단
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감정을 퇴계는 ‘理發氣隨’가 아닌 ‘氣之
順理而發’, 즉 중절한 칠정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미
나와 대상이 이분화 되어있고, ‘나’라고 하는 기의 작용이 主가 되어 있
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을 리가 발한 사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감정을
혼륜해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퇴계가 그토록 기를 리
로 오인하거나 기로 성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이유이다.
퇴계가 상정한 칠정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만 촉발될 수 있을뿐더
러, 그것이 상대적49)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와 상대되는 인의예지


2009, 24~25쪽. 참조. 나대용 선생은 “사단은 仁義禮智의 性에서 直發하는
것”이며, 그것은 “일체의 외부세계의 분별이 사라지고 대상과 내가 하나 되
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대상과 내가 하나되는 상태’를 ‘본래
세계’라고 지칭한다.
45) 二程遺書 卷2上 : “仁者, 以天地萬物為一體, 莫非己也”
46) 孟子告子 上 : “惻隱之心仁也.”
47)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一書] : “仁義禮智之性, 粹然
在中, 而四者其端緖也.”
48) 사단의 감정을 알기 위해서 굳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은 아님
은 물론이다. 사단이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만을 배타적으로 지칭한다고 믿
는 학자는 없을 것이다. 사단이란 본성의 선함, 인의예지가 수연히 내 안에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단서’들 가운데 몇 가지에 불과한 것이다.
맹자가 측은지심을 예로 든 것은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 감정보다 사람들에
게 이해각인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公孫丑上 6장의 廳者가 누구였는
지 알 수는 없지만, 만일 顔淵과 같은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측은
지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예를 들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49) 슬픔분노증오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 없이는 기쁨즐거움안도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 논자는 ‘상대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110 儒敎思想硏究 第45輯


의 성에서 발하는 사단은 본연적 감정이라고 지칭할 만하다. 애초에 퇴
계가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누어 보면서 “정에 사단과 칠정의 구
분이 있는 것이 성에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다름이 있는 것과 같다.”50)
고 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퇴계에게 있어서 사
단은 본연지성에서 발한 본연의 감정이고 칠정은 기질지성에서 발한 기
질의 감정인 것이다.51) 퇴계가 사단을 말하면서 누차 純善을 강조한 이
유가 여기에 있다.
사단이 발하는 것은 순수한 리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다.52)


자사가 말하는 天命의 性, 맹자가 말하는 性善의 性, 이 두 性자가 가리키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리기가 부여된 가운데에서 이 리의 원두본원처를 가리
켜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가리키는 바가 기에 있지 않고 리에 있기 때문
에 純善하여 악함이 없는 것입니다.53)


사단의 정은 리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니 저절로 純善하여 악함이 없습
니다.54)


사단은 본연의 감정으로서 저절로 순선한 것이므로 그것은 理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봉과의 논변에서 기발을 양보할 수 없던 것은 바로


50)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一書] : “情之有四端七情之分,
猶性之有本性氣稟之異也.”
51) 본연기질지성과 사단칠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견해는 나대용, 理氣互發說의 理氣融合構造
에 관한 연구 ,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2009에서 볼 수 있다.
52)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一書] : “四端之發, 純理故無
不善.”
53) 같은 곳 : “子思所謂天命之性, 孟子所謂性善之性, 此二性字所指而言者, 何在
乎? 將非就理氣賦與之中, 而指此理原頭本然處言之乎? 由其所指者在理不在氣,
故可謂之純善無惡耳.”
54) 聖學十圖 第六心統性情圖 : “四端之情, 理發而氣隨之, 自純善無惡,”
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111


이 사단=순선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퇴계는 이러한 사단의 실현은 결코 도덕적 엘리트들에게만 국한된 것
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라 긍정한다. 사단의 감정은 기질이
청명한 聖人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퇴계는 말한다.


맑고 순수한 기를 부여받은 사람은 上智가 되고 …… 맑으면서도 잡박하고
탁하면서도 순수한 기를 부여받은 사람은 中人이 되고 …… 탁하고 잡박한 기
를 부여받은 사람은 下愚가 된다. 그러나 리와 기는 서로를 끌어당겨 없는 곳이
없으니 비록 上智의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형기에서 발하는 것이 없을 수 없다.
리의 소재는 上智라고 해서 더 넘치지 않고, 下愚라 해서 모자라지 않다. 그러
므로 비록 下愚의 마음이라 하더라도 천리의 본연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
질의 아름다움은 上智라 하더라도 뽐낼 것이 못되고, 天理의 근본은 下愚라 하
더라도 마땅히 스스로 다해야 할 것이다.55)


기질의 청탁으로 인한 타고난 재주에 관계없이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본연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긍정이 있다.
끝으로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나눈 것이 사단칠정을 이원적 감정으로
나누기 위함이 아님은 언급해 두어야겠다. 퇴계의 의도는 사단이 중심
이 되어야만 칠정이 조화롭게 발현될 수 있음을 밝히려 했던 것이다. 이
것이 사단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러기 위해서 사단에 리발이
라는 설명을 붙여 따로 떼어놓고 보아야 했던 것이다. 聖學十圖 제6심
통성정도는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의 性에서 나와 사단이 중심
이 되어 하나의 정으로 이어지는 그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임을 퇴
계는 말하고 있다.


55) 退溪先生續集 卷8, 天命圖說 : “稟得其淸且粹者爲上智, …… 稟得其淸而
駁濁而粹者爲中人, …… 稟得其濁且駁者爲下愚, …… 雖然, 理氣相須, 無乎不
在, 則雖上智之心, 不能無形氣之所發; 理之所在, 不以智豐, 不以愚嗇, 則雖
在下愚之心, 不得無天理之本然. 故氣質之美, 上智之所不敢自恃者也; 天理之
本, 下愚之所當自盡者也.”
112 儒敎思想硏究 第45輯


Ⅴ. 맺음말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단지 도덕에 합치하는 감정과 그렇지 않은 감
정으로 분류하지 않고, 사단을 인간 내면의 본연성이 그대로 드러난 순
선한 감정으로, 칠정을 자기중심성이 개입된 감정으로서, 기질의 청탁,
내지는 우연한 계기로 선악이 갈라지는 감정으로 분류했다.
논자가 이해하는 한, 퇴계가 사단칠정론에서 말하고 싶었던 키워드는
사실 ‘理發’이 아니라 ‘純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고봉의 끊임없는 반박
과 理氣不相離의 주자학적 원칙을 위배할 소지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누어 본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사단의 순선함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단칠정
론의 리기론적 설명은 바로 사단이 순선한 인간 본연의 감정임을 논증
하는 과정이었다.
유학의 본지는 인간이 본래적으로 타고난 性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는
데 있다. 그것이 中庸 首章의 종지요, 性卽理의 선언이 주장하는 바요,
萬物一體爲仁, 天人合一天人無間56)의 의미다. 퇴계는 리발의 감정인 사
단의 드러나야만 그 본지가 실현됨을 주장한다. 그가 리를 대략 알 것이
아니라, 眞知妙解할 것57)을 절절히 강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6) 天人無間이라는 용어는 원래 二程遺書에 나오는 明道의 말이다. 그러나 중
국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고, 牧隱 李穡이 그 사상을 강조한 이래 한국유
학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이기동 선생은 한국유학의 가장 큰 특징이 하늘과
인간이 간극 없이 하나라고 하는 天人無間의 사상에 있다고 한다. 天人無間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기동, 李穡 : 한국성리학의 원천 , 성균관대학교출
판부, 2005, 79~94쪽 참조.
57) 退溪先生文集 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二書] 別紙: “일찍이 옛날과
지금의 사람들의 학문과 도술에 차이가 있는 까닭을 생각해 보니, 단지 理자
가 알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른바 理자가 알기어렵다는 것은 대략 아
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진지묘해하여 궁극처에 이르는 것을 어렵다
고 하는 것이다. [蓋嘗深思古今人學問道術之所以差者, 只爲理字難知故耳. 所
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113


그것은 또한 인간에게는 누구나 기질의 청탁여부에 관계없이 순선한
본연의 감정이 있으며 그것은 누구나가 실현할 수 있다고 하는 인간존
재 자체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자 긍정이다. 퇴계가 사단을 리발로 설명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존재의 본연에 대한 긍정의 의미까지도 내함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리기론적 해석을 최대한 배제하고 ― 물론 전적으로 리기론
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나 ― 퇴계의 사단칠정론에서 사단과 칠정,
그리고 사단의 순선함의 의미를 살펴보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 연
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명확한 리기론적 접근 또한 아울러 이루어져야
할 것이므로, 후일의 연구를 기약해 본다.


▣ 투고일: 11.9.14 심사일: 11.9.16 심사완료일: 11.9.28


<참고 문헌>
退溪先生文集
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
論語
孟子
中庸
二程集
朱子語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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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사연구회 편, 조선유학의 개념들 , 예문서원, 2002.
이기동, 李穡 : 한국성리학의 원천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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謂理字難知者, 非略知之爲難, 眞知妙解, 到十分處爲難耳.]”
114 儒敎思想硏究 第45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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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 四七論에서 四端의 純善함에 대하여 115
<Abstract>
A Study on Pure good of Four Beginning in Toegye’s Four Seven Debate
/ Lee, Chi-eok
In general, the specific character of Toegye’s Thought is known for spontaneity of li
(理), namely ‘issuance of li’(li-fa 理發) which he argued in Four Seven debate.
However, creativeness of Four Seven debate completed from separating and distributing
Four Beginnings and Seven Feelings respectively to li(理) and qi(氣) preferably parting
‘issuance of qi’ rather than parting ‘issuance of li’.As a matter of fact, what became a
controversy by Gobong in Letters of Four Seven debate was ‘issuance of qi’, not
‘issuance of li’. Toegye separated ‘issuance of qi’, not for its significance; he intended
to reveal and assure ‘Purity of Four Beginnings’. According to Toegye’s argument, all
moral feelings are not necessarily Four Beginnings whereas Seven Feelings are possibly
all moral feelings. He indicated Four Beginnings and Seven Feelings are naturally
different feelings. More precisely, the boundary of Four Beginnings and Seven Feelings
is not good and evil, or moral and immoral feelings, it is rather feelings of human
nature or feelings of egocentric temperament since Toegye considered that egocentric
feelings with all its morality always categorized in Seven feeling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ocus on categories and meanings of Four Beginning and Seven Feelings
according to Toegye’s argument, excluding a heavy dispute of ‘activeness of li’,
‘issuance of li’, and ‘issuance of qi’ as possible.
Key words : Toegye, Gobong, Four Beginning, Seven Feelings, issuance of li(li-fa),
issuance of qi(qi-fa), Pure good of Four Beg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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