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1)2)이 승 환**
<목 차>
Ⅰ. 주자의 ‘횡설’과 ‘수설’
Ⅱ. ‘횡설’에 입각한 우계의 문제제기
Ⅲ. ‘수설’에 입각한 율곡의 응답
Ⅳ. ‘횡설’에 입각한 우계의 재반론
Ⅴ. ‘수설’에 입각한 율곡의 퇴계 비판
Ⅵ. 우계의 최종입장: 여전히 ‘횡설’
Ⅶ. 횡설·수설과 조선유학의 분기
<국문 요약>
이 논문에서는 우계율곡
간의 성리 논쟁은 ‘기호 배치방식’의 차이에서 빚
어진 소통오류였음을 밝히고, 우율
논쟁의 과정에서 돌출된 율곡의 퇴계 비
판 또한 ‘기호 배치방식’의 차이에서 빚어진 오해였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주
자의 理氣論은 ‘횡설’과 ‘수설’의 두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횡설’은 갈등
관계에 놓인 두 가지 속성(또는 성향)을 좌·우로 벌여놓고 대비적으로 설명하
려는 기호 배치방식이고, ‘수설’은 형이상의 ‘원리’가 형이하의 ‘재료’에 타고
서 共變하는 존재론적 기제를 乘伴 관계로 설명하려는 기호 배치방식이다. 퇴
계·우계는 ‘횡설’의 프레임에 입각하여 ‘리’(도덕성향)와 ‘기’(욕구성향) 간의
갈등관계를 도덕심리학적 성향 이원론으로 설명하였지만, 고봉·율곡은 ‘수설’
의 프레임에 입각하여 형이상의 원리(즉 ‘리’)가 형이하의 재료(즉 ‘기’)에 타
고서 공변하는 존재론적 기제를 승반론으로 설명하였다. ‘횡설’과 ‘수설’이라
는 프레임의 차이는 조선유학을 합치할 수 없이 두 갈래로 나뉘게 하는 원인
* 이 연구는 2011학년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특별연구비에 의하여 수행되었음
(This research project was supported by Korea University Grant 2011).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교수.
6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율곡의 퇴계·우계에 대한 비판이 프레임(semiotic
frame)의 차이에서 비롯된 미스커뮤니케이션(miscommunication)
이었음을 밝히
고자 한다.
주제어 : 주자, 퇴계, 고봉, 율곡, 우계, 성향, 승반(수반), 횡설, 수설
I. 주자의 ‘횡설’과 ‘수설’
주자의 理氣論은 ‘기호 배치방식’으로 볼 때, 橫說과 竪說이라는 두
가지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고에서는 ‘기호 배치방식’을 프레임
(semiotic frame)이라는 개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횡설’은
‘리’(도덕성향)와 ‘기’(욕구성향)를 갈등관계에 놓인 두 가지 속성으로 파
악하고, 이 두 개념을 좌·우로 벌여놓고 도덕심리학적 대비관계 또는 가
치론적 승부관계로 설명하려는 기호 배치방식이다. 주자는 사단과 칠정
의 연원을 각기 ‘리’(도덕성향)와 ‘기’(욕구성향)로 파악하는 한편1), 도심
과 인심의 연원을 각기 ‘도의지성’(도덕성향)과 ‘형기지성’(욕구성향)으로
파악한 바 있다.2) 사단·칠정 또는 도심·인심이라는 심리적 사건의 연원
을 각기 ‘리’와 ‘기’ 또는 ‘도의지성’과 ‘형기지성’이라는 두 성향으로 파
악한다는 점에서 주자의 설명은 ‘도덕심리학적 성향 이원론’(moral
psychological dispositional dualism)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기호 배치방식
으로 볼 때 전형적인 ‘횡설’(horizontal frame)에 해당한다.3)
이와 대조적으로, ‘수설’(vertical frame)은 좌우로 배치했던 ‘리’ 서랍과
‘기’ 서랍을 상·하로 재배치(rearrange)
한 것이다. 기호서랍을 좌·우에서
1) 朱子語類 卷83, “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
2) 朱熹集 卷55, 答李守約14 “ 孟子, 口之於味章, 言人之性命有此二端: 自
口之嗜味以至四體之嗜安逸, 形氣之性, 君子有弗性焉; 自仁之於父子以至聖人之
於天道, 道義之性, 君子性之. 猶舜所謂人心道心之在人, 特要精別而力行之耳.”
3) 이승환, 퇴계의 ‘횡설’과 고봉의 ‘수설’ , 퇴계학보 제131집, 2012 참조.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7
상·하로 재배치함으로 말미암아 ‘기’ 개념에는 중요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횡설’의 프레임에서 ‘기’는 ‘리’(도덕성향)와 대비되는 욕구성향을
의미했지만, ‘수설’에서 ‘기’는 ‘리’를 싣거나(載) 태워주는(乘) 존재론적
토대(ontological base)의 의미로 변환된다. 즉 ‘기’는 욕구성향(appetitive
disposition)의 의미가 아니라 ‘성’(즉 ‘리’)을 싣고 있는 (또는 ‘성’이 타고
있는) ‘재료’(matter)의 의미로 전환된다. [주자는 ‘성’을 싣고 있는 승반
기초를 氣, 氣機, 氣質, 形氣, 所乘之機 등의 다양한 개념으로 설정한 바
있다.]4) 또한 ‘횡설’에서 ‘리’는 사람이 가진 도덕성향(즉 道義之性 또는
義理之性)을 의미했지만, ‘수설’에서는 사람과 사물을 망라한 모든 존재
물에 깃든 ‘원리’(metaphysical principle)를 뜻하게 된다. ‘리’와 ‘기’는 ‘횡
설’과 ‘수설’이라는 상이한 프레임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5)
리·기의 관계를 파악할 때 퇴계는 ‘횡설’의 프레임에 입각한 탓에 고
봉의 ‘수설’과 합치할 수 없었으며, 율곡은 ‘수설’의 프레임에 입각한 탓
에 우계의 ‘횡설’과 화합할 수 없었다. 조선유학에서 理氣 논쟁은 비단
대립하는 양대 학파사이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심지어 같은 학파
내에서, 그리고 나아가서는 학파와 아무 상관도 없는 개별 학자 사이에
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었다. 논쟁자들은 상대방이 어떤 프레임에 입각
하여 주장을 펼치는지 인지하지 못하였고, 각자가 채택한 프레임의 차
이는 학파나 학맥을 불문하고 논쟁 당사자들을 오해와 불통으로 치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같은 학파 내에서도 이기론을 두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진 것은 논쟁 참여자들이 채택했던 프레임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6) 이 글의 목적은 율곡의 퇴계·우계에 대한 비판이 ‘기호 배치
4) 주자 승반론(乘伴論)에서 승반기초를 의미하는 다양한 개념에 대해서는 이승
환, 퇴계 리발(理發)설의 수반론적 해명 , 동양철학 제34집(2010)을 참조하
시오.
5) 이승환, 퇴계의 ‘횡설’과 고봉의 ‘수설’ , 퇴계학보 제131집, 2012 참조.
6) 이승환, 남당의 승반론(乘伴論)과 수설(竪說) , 철학연구 제45집, 20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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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는데 있다.
Ⅱ. ‘횡설’에 입각한 우계의 문제제기
퇴계가 세상을 떠나고 2년 뒤, 우계는 율곡에게 편지를 보내 사단·칠
정 및 도심·인심에 관한 자신의 이해가 맞는지 자문을 구한 바 있다.
1572년 한 해 동안 모두 아홉 차례의 서신을 통해 진행된 이 문답을 牛
栗 논쟁이라고 부른다.7) 우계의 문제의식은 고봉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출발한다. 퇴계와의 논쟁에서 고봉은 ‘사단’과 ‘칠정’을 둘로 나눌 수 없
다고 했지만, 우계 자신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도
심과 인심이 각기 ‘리’와 ‘기’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듯, ‘사단’과 ‘칠정’
또한 각기 ‘리’와 ‘기’에서 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의식에서 우계는 도심·인심 그리고 사단·칠정의 연원을 각기 ‘리’와 ‘기’
로 소급해서 파악하는 퇴계의 견해를 지지한다.
인심·도심이 발함에, 그 연원에는 ‘리’를 주로 하거나 ‘기’를 주로 한 것의 다
름이 있습니다. 성현의 가르침은 모두 두 가지로 설명해주신 것이니, 지금 사
단·칠정을 圖로 표시하여 “리에서 발한 것(發於理), ‘기’에서 발한 것(發於氣)”이
라한들 안될 것이 무엇입니까? ‘리’와 ‘기’가 서로 번갈아가며 발하는 것은 천
하의 정해진 이치이니 퇴계 선생의 견해 또한 절로 정당한 것이겠지요. 내 생각
으로는 사단과 칠정을 대비적으로 거론한다면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라고 하면 좋을 것 같소.8)
위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우계는 퇴계의 성향 이원론을 지지하는 것은
7) 우계가 쓴 편지 중 3, 7, 8, 9 書는 전해지지 않으므로 율곡의 답서를 통해 그
의 견해를 대강 엿볼 수 있다.
8) 牛溪集 卷4, 簡牘一 別紙. “人心道心之發, 其所從來固有主氣主理之不同
(中略) 聖賢宗旨皆作兩下說, 則今爲四端七情之圖而曰: 發於理發於氣, 有何
不可乎? 理與氣之互發, 乃爲天下之定理, 而退翁所見, 亦自正當耶. (中略) 愚意
以爲四七對擧而言, 則謂之四發於理, 七發於氣, 可也.”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9
물론이고, 아예 퇴계가 추만의 천명도 를 수정해주기 이전의 단계로 거
슬러 올라가,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四端發於理), 칠정은 ‘기’에서 발한
다(七情發於氣).”라는 최초 명제를 선호한다. ‘리’를 도덕성향으로 보고
‘기’는 이와 대비되는 ‘욕구성향’으로 보아, 이 두 성향이 각기 ‘사단’과
‘칠정’의 연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리’(도덕성향)와 ‘기’(욕구성향)를
갈등관계에 놓인 두 가지 심리적 속성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우계의 프
레임은 기호 배치방식으로 볼 때 전형적인 ‘횡설’(horizontal arrangement of
signs)에 해당한다.
Ⅲ. ‘수설’에 입각한 율곡의 응답
우계의 이해방식에 율곡은 동의하지 않는다. 우계가 ‘횡설’ 프레임에
입각하여 논의를 펼치는데 반해, 율곡은 ‘수설’(vertical arrangement of
signs)에 입각하여 리·기의 관계를 乘伴 관계로 파악한다. 물리계 안에서
실제로 운동·정지하는 것은 재료인 ‘기’이고, ‘리’는 여기에 타고 있는
형이상의 원리이다. ‘리’는 ‘기’의 운동에 실려서 발하는 까닭에, ‘리’가
발하기 위해서는 승반기초인 ‘기’를 필요로 한다. 다른 한편으로, 재료
(즉 ‘기’)의 운동이 무질서한 혼란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원리(즉
‘리’)를 필요로 한다. ‘리’의 발현과 ‘기’의 운동은 동시적이기 때문에,
‘리’가 혼자서 발한다고 하거나 ‘기’가 혼자서 발한다고 하는 주장은 성
립할 수 없다. 퇴계의 理發·氣發설은 물론이고 우계의 發於理·發於氣라
는 주장은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율곡은 승반론에 입각하여 우
계에게 이렇게 반박한다.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는 所以는 ‘리’입니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
고, ‘리’가 아니면 발할 바가 없게 됩니다. (위 스물 세 글자는 성인이 다시 나
와도 이 말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리’와 ‘기’는 선·후도 없으며 분리되거나
섞이지도 않아서 “서로 번갈아가며 발한다.”(互發)고 할 수 없습니다. [역주: 여
10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기서 互 자는 동사인 發 앞에 오는 부사어로서, ‘서로 번갈아가며’(交互)의 의미
로 해석하는 것이 순통하다.]9)
위 글에 보이는 것처럼, 율곡이 이해하는 ‘리’의 ‘기’에 대한 관계는
승반관계이다. 사단·칠정이라 불리는 심리적 사건은 승반기초인 ‘기’에
‘리’가 타고서(氣發理乘) 실현된 결과물이다. 율곡은 사단·칠정과 같은
심리적 사건뿐 아니라, 존재계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사건은 “‘기’의 動
靜에 ‘리’가 타고서 실현된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心)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요 천지의 조화도 “기가 운동·
변화함에 ‘리’가 올라타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음·양이
동·정함에 太極이 올라타고 있는 것이니, 무엇이 앞서고 무엇이 뒤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퇴계의] “‘리’가 발함에 ‘기’가 따른다.”(理發氣隨)라는 주장에는
분명히 先과 後가 있으니, 어찌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지의 운
동변화는 사람 마음이 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만약 천지의 운동변화에 ‘리’
혼자서 변화하거나(理化) ‘기’ 혼자서 변화하는 경우(氣化)가 있다면 사람의 마
음에도 당연히 ‘理發’과 ‘氣發’이 있겠지만, 천지에는 理化와 氣化의 구별이 없
으니, 사람의 마음에 어찌 理發과 氣發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의 마음
이 천지의 조화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10)
율곡은 사단·칠정과 같은 심리적 사건뿐 아니라 존재계 안에서 일어
나는 모든 사건은 “기가 발함에 ‘리’가 타고서”(氣發理乘) 실현된 것이라
9)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壬申. “大抵發之者, 氣也, 所以發者, 理也. 非氣則
不能發, 非理則無所發. (發之以下二十三字, 聖人復起, 不易斯言.) 無先後, 無離
合, 不可謂互發也.”
10)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壬申. “非特人心爲然, 天地之化, 無非氣化而理乘
之也. 是故, 陰陽動靜而太極乘之, 此則非有先後之可言也. 若理發氣隨之說,
則分明有先後矣, 此豈非害理乎? 天地之化, 卽吾心之發也. 天地之化, 若有理
化者氣化者, 則吾心亦當有理發者氣發者矣. 天地旣無理化氣化之
殊, 則吾心安得有理發氣發之異乎? 若曰吾心異於天地之化, 則非愚之所知
也.”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11
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은 심리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의 구별없이, 존
재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승반 구도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일반
존재론’(general ontology)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우계의 관점은 사단(도덕
감정)과 칠정(일반감정)의 동기적 연원을 도덕성향과 욕구성향으로 나누
어서 고찰한다는 점에서 ‘인간’이라는 특정한 유(類)에 초점을 맞춘 성향
윤리학(dispositional ethics)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두 사람의
차이를 總論과 專論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총론’은 총체적 설명(general
explanation)이라는 뜻이고, ‘전론’은 전문적 설명(special explanation)이라는
뜻이다. 다소 소략한 해설이기는 하지만 지당한 말이다.11)]
율곡에 의하면, 승반자인 ‘리’는 승반기초인 ‘기’에 타고서 所以然으로
서 기능한다. ‘기’는 ‘리’를 실어주는 재료로서 자체 내에 동력을 가지고
있다. ‘기’의 운동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은 ‘리’이다. [물리학에서 사
용하는 벡터(vector)라는 용어는 ‘방향’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유용
한 단어이다. 벡터는 ‘방향’을 가지고 있는 운동의 크기를 가리키고, ‘방
향’이 없는 운동의 크기만을 가리킬 때는 스칼라(scalar)라고 부른다. 수식
에서 벡터는 유향선분(방향을 나타내는 선분, 즉 화살표)으로 표시된다.]
‘기’가 방향을 가지지 않은 순수 동력 즉 스칼라에 해당한다면, “리가
‘기’에 타고 있는 상태”는 방향과 동력을 함께 가진 벡터에 비유될 수
있다. 여기서 ‘리’는 ‘기’의 운동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유향선분(즉 화
살표)에 해당한다. 성리학에서 ‘성’(즉 ‘리’)는 이처럼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directedness)는 점에서 지향적(intentional)이라고 할 수 있다.
승반자인 ‘리’는 승반기초인 ‘기’와 떨어질 수도 없고 섞일 수도 없다.
존재론적 의존의 원칙과 환원불가능의 원칙이 바로 이것이다. 율곡이
보기에 우계의 “發於理, 發於氣”라는 주장은 ‘의존의 원칙’에 위배된다.
‘리’와 ‘기’가 제각기 발한다는 우계의 견해에 율곡은 도저히 동의할 수
11) 與猶堂全書第1集, 詩文集 第12卷, 理發氣發辨一. “退溪曰: 四端理發而
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 栗谷曰: 四端七情, 皆氣發而理乘之. (中略) 其所指
有專有總.”
12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가 없다. 존재계의 모든 사건이 그러하듯이, 사단·칠정은 “기가 발함에
‘리’가 타고서”(氣發理乘) 실현된 결과물일 따름이다. 이러한 결과물은
그냥 ‘감정 일반’(emotions in general)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둘로 나눌 필요가 없다. 구태여 나눈다면, ‘사단’이란 ‘칠정’ 가운데서 선
한 것만 발라내어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이처럼 율곡은 사단·칠정과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일원론적 관점을 견지하지만, 인심·도심에 대해서
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리’와 ‘기’는 선·후도 없으며 분리되거나 섞이지도 않아서, 서로 번갈아가면
서 발한다(互發)고 할 수 없습니다. 인심·도심은 하나는 ‘형기’를 위하여, 다른
하나는 ‘도의’를 위하여 발합니다. 근원은 비록 하나지만 흘러나와서 갈라지니
둘로 나누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단·칠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단은 칠정 가운데서 선한 것만 발라낸 것이고, 칠정은 사단을 아울러서 말한
것입니다.12)
인심·도심과 관련해서 율곡은 이렇게 말한다. “혹은 ‘형기’를 위하여
(或爲形氣) 혹은 ‘도의’를 위하여(或爲道義) 발한다. 비록 근원은 하나지
만 흘러나와서 갈라지니 둘로 나누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단·칠정은
이와 다르다.” 하지만 사단·칠정의 논의구조가 인심·도심의 논의구조와
다르다는 율곡의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형기’를 위해 또는 ‘도의’를 위
해 발했다는 표현은 인심·도심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말이다.
레 미제라블 에서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빵을
훔쳤소?” 장발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서’(pour)
훔쳤습니다.” 장발장의 대답에서 ‘~을 위해서’(pour)라는 표현은 행위의
12)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壬申. “大抵發之者, 氣也, 所以發者, 理也. 非氣
則不能發, 非理則無所發. (發之以下二十三字, 聖人復起, 不易斯言.) 無先後, 無
離合, 不可謂互發也. 但人心道心, 則或爲形氣, 或爲道義, 其原雖一, 而其流旣
岐, 固不可不分兩邊說下矣. 若四端七情, 則有不然者, 四端是七情之善一邊也,
七情是四端之摠會者也.”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13
‘이유’ 또는 ‘동기’를 뜻한다. 장발장이 굶주리는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훔쳤듯이, ‘인심’은 ‘형기’ 즉 몸뚱아리를 위해서 발하는 것이다. 그
리고 ‘도심’은 물론 ‘도의’ 즉 공동체의 도덕규범을 위해서 발하는 것이
다. 이처럼 ‘~을 위해서’라는 말은 한 사건의 이유 또는 동기를 설명해
주는 말이다.
주자는 「中庸章句序」에서 “사람의 마음은 하나이지만, 혹은 형기의
사사로움(形氣之私)에서 생겨나고, 혹은 하늘이 명한 ‘성’의 올바름(性命
之正)에서 연원하기도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13) 그는 또 문인 李守約
에게 준 편지에서, 인심의 연원을 몸뚱아리를 보존하기 위한 욕구성향
(形氣之性)으로 보는 한편, 도심의 연원을 도덕성향(道義之性)으로 설명
하기도 하였다.14) 주자의 “혹은 ~에서 생겨나고”(或生於)라는 표현과
“혹은 ~에서 연원하고”(或原於)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처소
격 조사 어(於) 자를 사용하여 인심·도심의 발생 연원을 사람이 가진 두
가지 성향으로 소급하여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율곡은 이 문장을 인심·도심의 연원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하
는 대신, ‘氣發理乘’의 결과물인 심리적 사건을 그 (외재적) 지향대상에
따라 둘로 분류한 것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자
의 이른 바 ‘혹은 ~에서 생겨나고’(或生於) ‘혹은 ~에서 연원한다’(或原
於)라는 말은 마음이 ‘이미 발한 것’(旣發)을 보고 입론한 것입니다. 근원
은 하나지만 흘러나와서 갈라지므로 둘로 나누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15)라고 부연한다. 분명히 금방 ‘형기를 위해서’ 그리고 ‘도의
13) 「中庸章句序」. “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則以其或
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14) 朱熹集 卷55, 「答李守約14」. “孟子, 「口之於味」章, 言人之性命有此二端:
自口之嗜味以至四體之嗜安逸, 形氣之性, 君子有弗性焉; 自仁之於父子以至聖
人之於天道, 道義之性, 君子性之. 猶舜所謂人心道心之在人, 特要精別而力行
之耳.”
15)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壬申」. “其所謂或原或生者, 見其旣發而立論矣.
(中略) 其原雖一, 而其流旣岐, 固不可不分兩邊說下矣.”
14 儒敎思想文化硏究第48輯
를 위해서’라고 두 가지 이유를 말해 놓고서, 다시 “근원은 하나지만 흘
러나와서 갈라지므로 둘로 나누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율곡은 부
연한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인심·도심은 그 연원(즉 두 가지 성향)에
따른 분류명칭이 아니라, ‘氣發理乘’의 결과물인 심리적 사건을 그 (외재
적) 지향대상(intentional object)에 따라 둘로 분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인심·도심의 연원(origin)에 관한 주자의 설명을 결과주의적으로 해
석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의 결과주의적 관점과 달리, 우계의 관심은 시종일관 동기주의적
이다. 인심·도심의 연원을 둘로 말할 수 있다면, 왜 사단·칠정의 경우에
는 둘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인가? 도심·인심이 각기 도의와 형기를 ‘위해
서’ 발한 것이라면, 사단·칠정 또한 각기 도의와 형기를 ‘위해서’ 발했다
고 말해야 일관적이지 않은가? 우계가 보기에 율곡은 ‘비일관성의 오
류’(fallacy of inconsistency)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일관성의 문제는 뒤에
서 다시 따지기로 하고, 일단 율곡이 파악하는 인심·도심과 사단·칠정의
차이를 추론형식으로 정리해보자. 그에 의하면, 칠정의 사단에 대한 관
계는 포함관계이지만, 도심과 인심의 관계는 배타관계이다. 먼저 칠정과
사단을 포함관계로 이해하는 율곡의 관점을 추론형식으로 정리하면 다
음과 같다.
감정은 ‘리’가 ‘기’의 동정에 타고서 실현된 것이다.
모든 감정은 ‘칠정’이다.
‘사단’은 감정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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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七包四)
위 추론에서 볼 수 있듯이, 율곡이 이해하는 칠정의 사단에 대한 관계
는 포함(inclusion) 관계이다. 이제 인심·도심에 대한 율곡의 관점을 추론
형식으로 정리해보자.16)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15
인심은 ‘형기’를 위해 발한 것이고, 도심은 ‘도의’를 위해 발한 것이다.
‘형기’를 위한 것은 ‘도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도의’를 위한 것은 ‘형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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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심은 도심이 아니고, 도심은 인심이 아니다.
위 논증에서 볼 수 있듯이, 율곡이 보는 인심과 도심은 서로 배타적
(exclusive)이다. [하지만 율곡은 1582년 선조의 명에 의해 지은 人心道心
圖說에서 “칠정은 인심·도심과 선·악을 총괄하는 이름이다.”라고 적고
있다.17) 존재론적 승반론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면 결국 “사단칠정·인심
도심을 포함한 모든 심리적 사건은 ‘리’가 ‘기’를 타고 실현된 결과물이
다.”라는 단일 명제로 귀결하기 마련이다. 마침내 일관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Ⅳ. ‘횡설’에 입각한 우계의 재반론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의 논의구조가 다르다는 율곡의 주장에 우계는
수긍하지 않는다. “고봉과 형씨(율곡)의 설명은 칼로 무 자른 것처럼 분
명한 듯하지만, 이치상으로 수긍하기 어렵습니다.”18) 우계도 율곡의 논
리가 어쩐지 삐거덕거린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는 율곡에게 이렇게
재반문한다. “인심·도심이 각기 ‘형기’와 ‘도의’에서 발한 것이라면, 사단
과 칠정도 각기 ‘리’와 ‘기’에서 연원했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19)
16)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壬申. “蓋人心道心, 相對立名. 旣曰道心, 則非人
心, 旣曰人心, 則非道心. 故可作兩邊說下矣.”
17) 栗谷全書 卷14, 人心道心圖說. “七情卽人心道心善惡之摠名也.”
18) 牛溪集 卷4, 第二書. “如高峯事兄之說, 非不明白直截, 而或疑道理有如此
耳.”
19) 牛溪集 卷4, 第二書. “高峯四七說曰: 論人心道心則或可如此說, 若四端七
情則恐不得如此說. 愚意以爲, 論人心道心可如此說, 則論四端七情亦可如此說
也. 如何而不得如此說耶? 此處願賜解釋歸一之論, 至祝至祝.”
16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그는 반복해서 묻는다. “性을 ‘리’를 주로 하여 말한 것(主理)과 ‘기’를
주로 하여 말 한 것(主氣)으로 나눌 수 있다면, [‘성’의 실현태인] 감정
또한 ‘리’를 주로 한 것과 ‘기’를 주로 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
겠습니까?”20) 우계의 반론은 타당하다. 율곡의 주장에 일관성이 결여되
어 있음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는 사단·칠정과 도심·인심의 연원
을 각기 ‘리’와 ‘기’에 귀속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퇴계와 마찬가지로 성
향 이원론을 견지한다. 기호 배치방식으로 본다면 당연히 ‘횡설’이다.
V. ‘수설’에 입각한 율곡의 퇴계 비판
우계가 퇴계의 편에 서서 성향 이원론을 계속해서 주장하자, 율곡은
평소 퇴계에게 느끼고 있던 못마땅함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퇴계의 “리가 발함에 ‘기’가 따른다.”(理發氣隨)라는 주장은 분명히 리·기에
선·후가 있다는 말이니 어찌 논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소? “리에서 발한다.”
라는 말은 “성이 발해서 정이 된다.”(性發爲情)라는 말과 같지만, 만약 “리가 발
함에 ‘기’가 따른다.”고 한다면, 처음 발할 때는 ‘기’가 간여하지 않다가 ‘리’가
발한 후에야 ‘기’가 따라서 발하는 꼴이 되니 어찌 그럴 리가 있겠소? 퇴계는
설명이 상세하기는 하나 의미가 분명치 않아서 반복해서 곱씹어 보아도 끝내
적실한 맛이 없소. 주자의 “발어리, 발어기”라는 설을 확대하여 수많은 갈등을
일으켰으니, 매번 글을 읽을 때마다 개탄하지 않을 수 없소. 참으로 옥의 티라
고 생각되오.21)
20) 牛溪集 卷4, 第二書. “愚以爲, 於性亦有主理主氣之分言, 則於發於情也, 何
以無主理主氣之異乎? 此處亦願賜一轉語, 幸甚.”
21)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壬申. “若理發氣隨之說, 則分明有先後矣. 此豈非
害理乎? (中略) 且所謂發於理者, 猶曰性發爲情也. 若曰理發氣隨, 則是纔發之
初, 氣無干涉, 而旣發之後, 乃隨而發也, 此豈理耶? (中略) 退溪則辨說雖詳, 而
義理不明, 反覆咀嚼, 卒無的實之滋味. (中略) 而以朱子發於理發於氣之說, 主張
而伸長之, 做出許多葛藤. 每讀之, 未嘗不慨嘆, 以爲正見之一累也.”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17
율곡은 심지어 ‘개탄’이라는 말을 쓰면서까지 퇴계에 대한 못마땅함
을 토로한다. 승반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理發氣隨’라는 명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승반자인 ‘리’는 승반기
초인 ‘기’의 동정에 실려 ‘동시’에 실현되므로, 둘은 시간적 선·후 관계
로 표시될 수 없다. 기수가 말에 타고 달리는 것을 보고, 기수가 말보다
앞서 달린다고 하거나 말이 기수를 뒤따라 달린다고 하면 이는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일이다. [런던에 가면 볼 수 있는 이층버스의 경우도 마
찬가지다. 한 대의 버스가 다른 한 대의 버스에 실려서 (또는 타고서) 가
고 있는데, 위 버스가 아래 버스보다 앞서 달린다고 하거나, 아래 버스
가 위 버스를 뒤따라 달린다고 하면 말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다. 퇴율
간의 갈등은 ‘횡설’과 ‘수설’ 간의 소통오류였음을 여실하게 알 수 있
다.]
율곡이 퇴계의 理發氣隨 명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氣發
理乘’ 한 명제만을 취해서 자기의 입론으로 삼는 것은 ‘수설’ 프레임에
입각한 승반론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기발리승’의 승반
론적 구도는 인간의 심성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형이상의 원리인
‘리’가 승반기초인 ‘기’에 타고서 발현하듯이, 사람의 ‘성’(즉 ‘리’) 또한
승반기초인 ‘심’(즉 ‘기’)에 타고서 ‘정’으로 실현된다.22) 이처럼 ‘수설’의
구도에서 ‘기’는 승반자인 ‘리’를 실어주는 승반기초를 뜻하는데 비해,
‘횡설’의 구도에서는 자기 몸뚱아리를 보존하고자 하는 ‘욕구성
향’(appetitive disposition)을 의미한다. 또한 ‘수설’의 구도에서 ‘리’는 형이
하의 세계에 내재한 형이상의 원리를 뜻하는데 비해, ‘횡설’의 구도에서
는 사람에게 갖추어진 도덕성향(moral disposition) 즉 義理之性 또는 道義
22) 栗谷全書 卷12, 答安應休天瑞. “一本之理, 理之體也; 萬殊之理, 理之用也.
理何以有萬殊乎? 氣之不齊, 故乘氣流行, 乃有萬殊也. 理何以流行乎? 氣之流行
也, 理乘其機故也. 故朱子曰: 太極者, 本然之妙也; 動靜者, 所乘之機也. 理本
無爲, 而乘氣流行, 變化萬端, 雖流行變化, 而其無爲之體, 則固自若也. (中略)
所以乘是氣機者, 乃理也. 大抵有形有爲而有動有靜者, 氣也. 無形無爲而在動
在靜者, 理也. (中略) 性, 理也; 心, 氣也. (中略) 夫理, 必寓氣; 氣, 必載理.”
18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之性을 뜻한다.
율곡이 理發을 부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승반론의 구도에
서 볼 때, ‘리’는 형이상의 원리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발할 수 없다.
‘리’는 오직 재료인 ‘기’의 운동에 실려서 실현될 수 있을 뿐이다. 율곡
이 發이라는 술어를 ‘기’ 자에만 적용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
럼 퇴계와 율곡이 사용하는 ‘리’ 자와 ‘기’ 자의 의미는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따라서 發 자의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퇴계는 發이라는
글자를 ‘리’의 실현(realization) 또는 발현(manifestation)의 의미로 사용하는
데 비해, 율곡은 운동(motion)의 의미로 이해한다.] 둘 사이의 논의가 미
끄러지면서 빗나갈 수밖에 없다.
퇴계와 율곡이 사용하는 ‘리’ 자와 ‘기’ 자의 의미층위가 서로 다르다
는 사실을 처음으로 명료하게 간파해낸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그는
퇴계와 율곡의 차이를 언어분석의 관점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퇴계와
율곡이 말한 ‘리’ 자와 ‘기’ 자는 글자의 형태는 같지만 글자의 의미는
판이하게 다르다. 퇴계가 논한 ‘리’와 ‘기’는 전적으로 사람의 性情에 대
해 입설한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율곡이 논한 ‘리’와 ‘기’는 천지 만
물을 총괄해서 입설한 것으로, 그의 ‘리’는 無形으로 만물의 이유(Reason)
를 뜻하고 ‘기’는 有形으로 존재물의 ‘몸뚱아리 材質’을 뜻한다.”23) 다산
은 퇴계와 율곡이 채택했던 기호 배치방식이 각기 ‘횡설’과 ‘수설’에 해
당한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사용하는 ‘리’ 자와 ‘기’
자의 의미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지적해냈다. ‘리’ 자와
‘기’ 자가 가진 다의성(polysemy)에 대해 미처 주의하지 못했던 다른 성리
학자들과 비교할 때, 다산은 언어분석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였다고 보인다. [다산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연구자들 가운데 리·
23) 與猶堂全書 第1集, 詩文集 第12卷, 理發氣發辨二. “其云理字氣字, 字形
雖同, 字義判異. 蓋退溪所論理氣, 專就吾人性情上立說. (中略) 栗谷所論理氣,
總括天地萬物而立說. 理者無形的也, 物之所由然也, 氣者有形的也, 物之體質
也.”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19
기 등의 낱글자가 가진 중의성에 주목하는 연구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몇 해 전 오늘의 동양사상 지면을 통해 근 3년에 걸쳐 전개된 현대판
이기논쟁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산이 세상을
떠난지 벌써 170여년이 넘었건만, 다산의 언어분석 방법론을 뛰어넘기
는커녕 오히려 이에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는 학계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율곡은 사단·칠정의 연원을 ‘리’(도덕성향)와 ‘기’(욕구성향)로 나누어
서 고찰하는 퇴계의 관점은 ‘성’을 둘로 여기는 일이며, 주자의 본지에
서 어긋난 것이라고 비판한다. 우리는 앞에서 주자가 도덕심리학적 성
향론을 전개할 때는 ‘횡설’의 프레임에 입각하여 ‘리’(도덕성향)와 ‘기’
(욕구성향)를 대비관계로 파악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주자는 사단·칠
정의 연원에 대해 고찰할 때, ‘사단’(도덕감정)은 ‘리’(도덕성향)가 발한
것으로, 그리고 칠정(자연감정)은 ‘기’(욕구성향)가 발한 것으로 설명한
바 있다. 또 주자는 인심·도심의 연원을 고찰할 때, ‘인심’은 ‘형기지성’
이 발한 것으로 그리고 ‘도심’은 ‘도의지성’이 발한 것으로 설명했던 것
을 이미 살펴보았다.24)
하지만 율곡은 사람의 성향을 둘로 나누어 대비적 각도에서 파악하는
‘횡설’의 프레임은 주자의 본래 사상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만약 주자
가 정말로 ‘리’와 ‘기’가 번갈아가며 발하는 것(互發)으로 여기고 서로
대립해서 발출한다고 보았다면, 이는 주자 역시 잘못 안 것입니다. 어떻
게 주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25) 율곡은 주자 성리학을 구성하는 ‘횡
설’과 ‘수설’의 프레임 중 ‘수설’(승반론)만이 주자의 본래 사상이라고 보
고 ‘횡설’(도덕심리학적 성향 이원론)은 주자의 본래 사상이 아니라고 주
장한다. 만약 정말 주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주자는 주자라고 불릴 자격
이 없다는 것이다.
24) 각주 1)과 2) 참조.
25)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 “若朱子眞以爲, 理氣互有發用, 相對各出, 則是
朱子亦誤也, 何以爲朱子乎?”
20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성’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는 주자의 관점은 주자어류 와 주자대
전 에 명명백백하게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考證이나 문헌비
판(text critique)도 없이 주자의 본래 사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은 ‘논
점선취의 오류’(petitio principi)를 범하는 일이다. 이는 증명되어야 할 사
항을 미리 기정사실로 간주하고서, 이를 전제로 삼아 유사한 결론을 도
출해내는 오류를 말한다. ‘수설’뿐 아니라 ‘횡설’ 역시 분명히 주자의 것
임에도 불구하고, ‘횡설’은 마치 주자의 것이 아닌 것처럼 간주하고서,
이러한 증명되지 않은 전제에 입각해서 퇴계의 ‘횡설’이 주자에게서 어
긋났다고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의 주장을 논증형식으로 재구성하
면 다음과 같다.
(대전제) 주자의 성리설은 옳다.
(소전제1) 주자는 ‘성’을 ‘리’와 ‘기’로 나눈 적이 없다.
(소전제2) 퇴계는 ‘성’을 ‘리’와 ‘기’로 나누고 있다.
---------------------------------------------------------------------------
(결론) 퇴계는 주자의 성리설에서 어긋났다.
율곡의 논증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바로 소전제(1)이다. 주자는 주
자어류 에서 사단·칠정의 연원을 ‘리’와 ‘기’로 나누어 설명했으며, 주
자대전 에서는 인심·도심의 연원을 ‘형기지성’과 ‘도의지성’으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 주자는 분명히 사단·칠정 및 도심·인심이라는 심리적
사건의 연원을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누어서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
서 율곡의 소전제(1) “주자는 ‘성’을 ‘리’와 ‘기’로 나누어 본 적이 없다.”
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이로부터 도출된 결론 즉 “퇴계는 주자에게
서 어긋났다.”라는 주장 또한 참이 아니다.
‘수설’ 프레임에 입각한 율곡의 승반론에서 ‘기’는 ‘리’를 실어주는 승
반기초(즉 존재론적 토대)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횡설’ 프레임에 입
각한 퇴계의 도덕심리학적 성향 이원론에서 ‘기’는 ‘리’(도덕성향)과 대
비되는 욕구성향(형기지성)의 의미를 지닌다. 두 사람이 리·기를 배치하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21
는 프레임이 다른 관계로, 두 사람이 사용하는 ‘기’ 자의 의미 또한 달라
질 수밖에 없다. 서로 사용하는 ‘기’ 자의 의미가 다른 탓으로 두 사람의
견해는 끝내 합치될 수 없었다.
[율곡의 후예 수암 권상하는 ‘기’를 形氣와 心氣로 구분한다. 율곡의
氣發理乘 명제에 나오는 ‘기’ 자는 승반기초인 心氣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목구비의 욕구를 가리키는 形氣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6) 수
암의 제자 남당 한원진 역시 스승과 마찬가지로 ‘기’를 ‘형기’와 ‘심기’
로 구분한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특히 퇴계의 경우)은 ‘형기’를 ‘심기’
로 오인함으로 말미암아 理發·氣發이라는 이원론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본다.27) ‘기’ 자에 내포된 중의성을 간파해냈다는 점에서 수암과 남당의
통찰력은 상찬해줄만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수설’의 프레
임만을 ‘참’으로 여긴 탓으로 ‘기’를 승반기초인 ‘심기’로 이해하는데 그
치고 말았다. 만약 퇴계처럼 ‘기’를 ‘형기’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도덕심
리학적 성향이원론이 성립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
다. 아쉬운 일이다. 문턱 가까이 가기는 했지만, 문에 들어설 생각은 전
혀 안한 채 되돌아 나와 버린 것이다. 黨色 때문이었을까?]
율곡은 승반론의 구도에 입각하여 퇴계의 성향 이원론을 비판하고 성
향 일원론을 주장한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성’은 본연지성 하
나로서, 인·의·예·지·신의 五性이 바로 그 것이라는 것이다.
‘성’이란 ‘리’와 ‘기’를 합한 것입니다. ‘리’가 ‘기’에 깃든 연후에 ‘성’이 되는
것이니, 아직 형질에 깃들지 않았을 때는 마땅히 ‘리’라고 말해야지 ‘성’이라고
26) 寒水齋集 卷13, 答崔成仲. “氣發之氣, 指心也. 形氣二字, 指耳目口鼻也.
形氣之氣, 氣發之氣, 似不可合而言之.”
27) 南塘集 卷30, 人心道心說. “後之學者, 未究乎朱子之本旨, 而只牽於名目之
不一, 皆以人心道心分屬理氣, 而遂謂朱子之旨本如是, 轉相襲謬, 可勝歎哉! 竊
究其分屬之由, 則亦不過以形氣二字, 認作心上氣看故也. 旣以此形氣認作心上
氣, 則不得不以人心屬之氣發, 而道心屬之理發也. 其所以誤認者, 亦只爲氣之
一字所纏縛而動不得也, 殊不知氣者形之始也, 命者性之原也. 耳目口體之形,
固不可謂氣也, 而非氣則形無所始.”
22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해서는 안 됩니다. 형질 가운데서 ‘리’만 따로 가리켜서 말하면 본연지성이니,
본연지성은 ‘기’와 섞일 수 없습니다. 자사와 맹자께서는 본연지성을 말씀하셨
고, 정자와 장자께서는 기질지성을 말씀했지만, 실상은 하나의 ‘성’으로 주안점
을 두어 말한 것이 다를 뿐입니다. 지금 주안점을 두어 말한 뜻을 알지 못하고
끝내 두 가지 ‘성’이 있다고 여긴다면 이치를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이
이미 하나인데 ‘정’에 ‘리발’과 ‘기발’의 다름이 있다고 여긴다면 과연 ‘성’을 안
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28)
율곡에 의하면 본연지성은 승반자인 ‘리’만을 가리켜서 부르는 이름
이고, 기질지성은 승반자인 ‘리’가 승반기초인 ‘기’에 올라탄 이후에 붙
이는 이름이다. 다시 말해서 ‘기발리승’의 승반론적 구도에서 승반자인
‘리’만 가리키면(單指) 그 것이 본연지성이고, 승반기초인 ‘기’까지 겸해
서 가리키면(兼指) 그 것이 바로 기질지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둘로 나누어서 각기 ‘사단’과 ‘칠정’의 연원이
된다고 여기는 퇴계의 주장은 ‘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율곡의 승반론(수설)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리’ (單指) ⇨ 본연지성
----(乘)---- (兼指) ⇨ 기질지성 ⇨ 감정일반(七包四)
‘기’
(율곡의 ‘수설’: 존재론적 승반론)
율곡은 승반론에 입각하여 퇴계의 성향 이원론을 이렇게 비판한다.
“퇴계의 주장은 마치 본연지성은 동쪽에 있고 기질지성은 서쪽에 있어
28)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율곡5서) . “性者, 理氣之合也. 蓋理在氣中, 然後
爲性. 若不在形質之中, 則當謂之理, 不當謂之性也. 但就形質中, 單指其理而言
之, 則本然之性也. 本然之性, 不可雜以氣也. 子思孟子, 言其本然之性, 程子張
子, 言其氣質之性, 其實一性, 而所主而言者不同. 今不知其所主之意, 遂以爲二
性, 則可謂知理乎? 性旣一而乃以爲情, 有理發氣發之殊, 則可謂知性乎?”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23
서, 동쪽에서 나오는 것을 도심이라하고 서쪽에서 나오는 것을 인심이
라 말하는 것과 같으니, 이게 이치에 맞는 소리인가?”29) 또 비판한다.
“만약에 사단과 칠정을 두 갈래로 나눈다면, ‘성’도 본연지성과 기질지
성으로 나뉘어 두 가지가 될 것이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30)
‘동’과 ‘서’라는 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율곡은 퇴계의 기본구도가 ‘횡
설’임을 어렴풋이 인지하고는 있다. 동·서는 공간지각의 관점에서 보면
좌·우와 마찬가지로 ‘횡설’의 프레임에 속한다. 율곡은 퇴계의 프레임이
‘리’와 ‘기’를 횡으로 벌여놓고 대비적인 각도에서 파악하는 ‘횡설’임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이러한 프레임은 주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긴다. 고봉과 마찬가지로, 율곡은 ‘수설’이야말로 주
자 성리학에 부합하는 정통 이기론이며, ‘횡설’은 주자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Ⅵ. 우계의 최종입장: 여전히 ‘횡설’
율곡의 강력한 퇴계 비판에, 우계는 자기 역시 퇴계에게 문제가 있다
고 본다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퇴계의 互發說은 道를 아는 자가 보
아도 오히려 잘못 이해할까 우려되는데, 모르는 자가 읽으면 사람을 더
욱 오해에 빠뜨리게 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사단·칠정을 리·
기로 나누고, ‘리발’과 ‘기발’을 서로 따르고(隨) 타는(乘) 관계로 나눈 것
은 말뜻도 순조롭지도 않거니와 논리도 온당치 못합니다. 이것이 제가
퇴계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입니다.”31) 우계는 자신도 퇴계의 理
29) 栗谷全書 卷10, 答成浩原壬申. “若如退溪之說, 則本然之性在東, 氣質之性
在西, 自東而出者謂之道心, 自西而出者謂之人心, 此豈理耶? 若曰性一, 則又將
以爲自性而出者, 謂之道心, 無性而自出者, 謂之人心, 此亦理耶?”
30) 栗谷全書 卷12, 答安應休. “若必以七情四端分二邊, 則人性之本然與氣質,
亦分爲二性矣, 安有是理矣?”
31) 牛溪集 卷4, 第六書. “退溪互發之說, 知道者見之, 猶憂其錯會, 不知者讀
之, 則其誤人不少矣. 況四七理氣之分位, 兩發隨乘之分段, 言意不順, 名理未穩,
24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發氣隨 명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따를 隨 자는 ‘리’와
‘기’의 관계를 시간적 선·후 관계로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에 온당치 못
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계는 율곡의 주장을 받아들여, ‘리’와 ‘기’
는 동시에 발한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수설’(승반론)의
프레임을 이해하고 수용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계가 먼저 세상을 떠난 율곡을 哭하면서 한 말을
참조해볼 필요가 있다. “율곡은 도체의 커다란 근원을 꿰뚫어 보셨다.
이른 바 천지의 조화에는 두 가지 근본이 없다는 것 , 사람의 마음이
발동함에 두 가지 근원이 없다는 것 , ‘리’와 ‘기’는 서로 번갈아가며
발할 수 없다는 것 등의 말씀은 진정 나의 스승이라고 할 만하다.”32)
조문에서 우계는 리·기의 동시적 발동을 주장하는 율곡의 입장에는 동
의를 표하지만, 승반론의 핵심요소인 ‘공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는 ‘수설’ 프레임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우계는 ‘리’와 ‘기’의 동시적 발동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도덕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여전히 감정의 동기적 연원을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주
장한다.
감정발생의 연원에는 ‘리’를 주로 한 것(主理)과 ‘기’를 주로 한 것(主氣)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분명 이와 같다면, 이는 “말이 사람의 뜻을 따르거나”, “사람
이 말 가는 대로 맡겨두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말이지, 아직 감정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두 가지 근원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감정이 막 발생할 때, ‘리’에
서 연원하거나 ‘기’에서 연원함이 있다는 것이지, ‘리’가 발함에 ‘기’가 뒤따르
고 ‘기’가 발한 다음에 ‘리’가 올라탄다는 뜻은 아닙니다. ‘리’와 ‘기’는 동시적
으로 발하지만, 그 핵심적인 연원에 나아가서 ‘리’를 주로 한 것(主理)과 ‘기’를
此渾之所以不喜者也.”
32) 牛溪年譜 卷1(1584年1月條). “哭栗谷先生. 先生慟曰: 栗谷於道體, 洞見大原.
所謂天地之化無二本, 人心之發無二原, 理氣不可謂互發者, 此等說話, 眞是吾
師.”
우계의 ‘횡설’과 율곡의 ‘수설’: 율곡의 퇴계 비판을 겸해서 논함 25
‘리’(도덕성향) ‘기’(욕구성향)
주로 한 것(主氣)을 나누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33)
우계의 최종 입장은 이렇다. “리와 ‘기’는 동시에 발하지만, 그 동기적
연원에 나아가서 본다면 ‘리’를 주로 한 것(主理)과 ‘기’를 주로 한 것(主
氣)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계의 결론은 절충적이다. 존
재론적으로는 ‘리’와 ‘기’의 동시적 발동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심리학적
으로는 성향 이원론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제 그의 입장을 그림으로 표
시하면 아래와 같다.
사단·도심 칠정·인심
(우계의 최종입장: 횡설)
Ⅶ. 횡설·수설과 조선유학의 분기
이상에서 우리는 율곡의 퇴계·우계에 대한 비판이 기호 배치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봉과 율곡은 ‘리’와 ‘기’를 상·
하로 배치하여 ‘수설’을 펼쳤던 반면, 퇴계와 우계는 이 두 기호를 좌·우
로 배치하여 ‘횡설’을 전개하였다 고봉·율곡 그리고 퇴계·우계뿐아니라,
후대의 성리학자들 또한 ‘횡설’과 ‘수설’의 프레임을 두고서 격돌했다.
리·기의 관계를 ‘횡설’로 볼 것인가 아니면 ‘수설’로 볼 것인가 하는 기
본입장의 차이는 논쟁이 끝내 합치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게 하는
33) 牛溪集 卷4, 第六書. “情之發處, 有主理主氣兩箇意思. 分明是如此, 則馬隨
人意, 人信馬足之說也. 非未發之前, 有兩箇意思也. 於纔發之際, 有原於理生於
氣者耳. 非理發而氣隨其後, 氣發而理乘其第二也. 乃理氣一發, 而人就其重處
言之, 謂之主理主氣也.”
26 儒敎思想文化硏究 第48輯
계기가 되었다. 논쟁 참여자들은 오직 자신의 프레임에 입각하여 주장
을 펼쳤을 뿐 상대방이 어떤 프레임에 입각하여 주장을 펴는지 알아차
리지 못했다. 상대방의 프레임에 대한 몰이해는 오해와 불통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었고, 오해와 불통은 다시금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
로 이어지게 되었다.
나중에는 대립하는 학파끼리가 아니라, 심지어 같은 학파의 구성원끼
리도 논쟁을 벌이며 반목과 불화를 겪어야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었다. 절친한 道友 사이였던 율곡과 우계의 경우도 그러했지만, 같은 율
곡계열에 속한 외암과 남당 또한 각기 채택했던 기호 배치방식이 달랐
던 관계로 논쟁과 불화를 피할 수 없었다. 남당은 리·기 관련 기호들을
상·하로 배치하여 존재론적 승반관계(수설)로 파악했던 반면, 외암은 가
치론의 관점에서 ‘순선’(‘리’ 계열)과 ‘가선·가악’(‘기’ 계열)으로 분류하
여 대비관계(횡설)로 파악하였다. 노론이 湖論과 洛論으로 분화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34)
또 학파적 대립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華西와 艮齋 역시 리·기의 배
치 방식을 두고 다투었다. 화서는 ‘리’와 ‘기’를 갈등관계에 놓인 두 가
지 속성으로 보고 ‘횡설’에 입각하여 주장을 펼쳤던 반면, 간재는 ‘리’가
‘기’에 타고 있는 승반 관계로 파악하고 ‘수설’에 입각하여 화서를 공격
하였다. 프레임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와 불통 그리고 갈등과 반목은
조선이 문을 닫는 그 날까지 계속되었다. [한주학파와 간재학파 사이의
心說논쟁 또한 ‘횡설’과 ‘수설’이라는 프레임의 차이 때문에 빚어진 소
통오류로서, 두 학파 사이의 끈질긴 논쟁은 심지어 일제 강점기가 끝난
직후까지 계속되었다.35)]
‘횡설’과 ‘수설’은 단지 퇴계와 율곡의 차이뿐 아니라, 조선 유학사에
34) 이에 대해서는 이승환, 남당 승반론과 수설 , 철학연구 제45집(2012)을 참
조하시오.
35) 한주 이진상의 손자 이기원(李基元)이 간재의 심설(心說)을 비판한 寒洲心卽
理說田艮齋條辨辨이라는 글은 해방이후인 1948년에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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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철된 다양한 성리 논쟁을 명료하게 해명해주는 보편적 이론 틀이다.
이제 조선 유학사를 갈등과 반목으로 치닫게 한 구조적 요인 즉 ‘횡설’
과 ‘수설’의 프레임을 밝혀냄으로써, 4백년이 넘도록 미궁에 빠져있던
철학적 수수께끼는 드디어 답을 찾게 되었다. 만약 지하에 있는 율곡이
자신의 퇴계에 대한 불만이 프레임의 차이에서 비롯된 소통오류
(mis-communication)였음을 알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퇴계에게 달려가 사
죄의 절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사백여 년 간 갈등과 반목으로 치달았던
두 학파의 후예들 역시 지난날의 오해에 미안해하며 서로 어깨를 부둥
켜안을지 모를 일이다.36)
▣ 투고일: 12.4.30 심사일: 12.6.12 심사완료일: 12.6.19
<참고문헌>
朱熹集
朱子語類
退溪集
兩先生往復書
南冥集
高峯集
牛溪集
栗谷全書
寒水齋集
南塘集
與猶堂全書
艮齋集
36) 이승환, 성리학의 기호 배치방식과 조선유학의 분기 , 한국동양철학회 제
149회 정례발표회 자료집 (2012.5.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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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西集
三洲集
이승환, 「퇴계 리발(理發)설의 수반론적 해명」, 동양철학 제34집, 2010.
이승환, 「朱熹理氣論的兩種模式及朝鮮儒學之分岐」, 儒學論壇 國際學術會
議資料集」(北京: 人民大, 2011年 12月 3日)
이승환, 「남당의 승반론(乘伴論)과 수설(竪說)」, 철학연구 , 제45집, 2012.
이승환, 「퇴계의 ‘횡설’과 고봉의 ‘수설’」, 퇴계학보 제131집, 2012.
이승환, 「주자의 ‘횡설’과 ‘수설’」, 동양철학 제37집, 2012.
* 참고문헌을 보강하라는 심사위원의 질책이 있었지만, 본 논문의 내용과
부합하는 선행연구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필자 자신의 관련논문만
열거하게 되었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기존 연구 가운데 인설·대설에
관한 연구로는 고 이상은 선생의 「사칠논변과 대설·인설의 의의」 아세
아연구 제16집(1973)이 있고, 횡설·수설에 관한 연구로는 고 유명종 교
수의 「퇴계의 횡설과 수설」 퇴계학보 제68집(1990)이 있으나, 본 논문
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으므로 각주에 명기하지 않았다. 행여 필자의 오
만과 무례로 비쳐질 것 같아 附記하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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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Different Semiotic Frames of Toegye and Yulgok / Lee, Seunghwan
This paper aims at clarifying the reason why Wugye and Yulgok diverged into two
different views regarding human dispositions and emotions from a viewpoint of semiotic
frames. Zhu Xi's theory of li and qi is composed of two different semiotic frames: one,
horizontal arrangement of li and qi; the other, vertical arrangement of li and qi. While
the horizontal frame is applied to describe the ambivalent relationship between li(that is
moral dispositions) and qi(that is amoral dispositions), the vertical frame is applied to
explain the ontological relationship in which li(that is the principle) supervenes upon
qi(that is the matter). While Toegye and Wugye, by adopting the horizontal frame,
tried to depict the ambivalent relationship between li(that is moral dispositions) and
qi(that is amoral dispositions); Yulgok, by adopting the vertical frame, tried to explain
the ontological relationship in which li(that is the principle) supervenes upon qi(that is
the matter). The unexpected divergence of two frames splitted Joseon NeoConfucian
scholars into two antagonistic groups. In this paper, the author, by illuminating two
different semiotic frames that Wugye and Yulgok adopts respectively, tried to explain
the reason why Joseon Neo-Confucian scholars diverged into two antagonistic schools.
Key words : Zhu Xi, Toegye, Kobong, Wugye, Yulgok, disposition, supervenience,
covariance, semiotic fra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