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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교학회 논문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張載와 二程형제의 철학을 중심으로─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18.11.11|조회수49 목록 댓글 0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
─張載와 二程형제의 철학을 중심으로─


李 賢 仙
(서울대 철학과 강사)


Ⅰ. 들어가는 말
Ⅱ. 氣 철학에서 마음[心]과 도덕 실천
Ⅲ. 理 철학에서 본성과 감응의 문제
Ⅳ. 나가는 말
86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7輯 / 2014年 9月


<국문요약>
이 논문은 張載와 二程형제를 중심으로 신유학 도덕 실천론과 그 근거로서
마음[心], 즉 인간 의식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조망한 것이다. 장재의 氣중심 철
학과 이정 형제의 理중심의 철학은 우리의 의식이 어떤 상태일 때라야 도덕적
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사태에 반응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견해를 달리 한
다. 그들은 모두 유학에서 도덕의 근거이자 총체로 이해되는 ‘仁’의 실현을 목표
로 삼는다. 그러나 장재는 이 ‘인’을 기의 본래적 양상인 ‘비어있음[虛]’에 근거지
우고, 이정 형제와 주희는 무한한 ‘생성[生]’의 리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본체론적 차이는 도덕 실천을 위한 인간 의식[心]에 대한 관점
차이로 이어진다. 장재의 기 중심 철학은 ‘비고 고요한’ 본래적 의식 상태에 도
달할 때라야 도덕 실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음을 비우는
수양과 객관적 도덕 규범으로서 예를 학습하고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인
간의 주체적 도덕 능력보다 객관적 도덕 질서가 도덕 실천의 근거가 된다고 보
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이정 형제의 리 중심 철학은 본성의 발현을 체험할 수 있
는 현행 의식 이외에 별도의 본래적 의식 상태를 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 입
장에서 본성은 주체의 도덕적 능력[德]으로 간주되며, 사태 속에서 이 도덕 능력
을 유지․보존할 수 있는 통일된 의식을 요구한다. 그것은 대상의 자극에 대한
주체적인 반응을 위해 하나로 집중된 의식을 의미한다. 도덕 행위 주체의 입장
에서 말하자면, 전자의 관점이 외부의 도덕 기준을 수용하는 수동적 입장이라면,
후자는 내적 능력을 계발하고 발휘하는 능동적 입장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마음[心], 도덕실천, 장재, 이정 형제, 비어있음[虛], 생성[生], 內感, 眞知
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87


Ⅰ. 들어가는 말
중국사상사에서 宋代신유학의 등장은 도덕 철학적의 관점에서 하나의 획기
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단지 선진시대의 유학의 부흥을 의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교 및 불교의 이론을 지양․종합하는 과정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대 이전 漢․唐代의 유학에서 개인의 도덕 실천은 공동체의 도덕적 요구에 부
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당 유학의 도덕 실천론은 대체로 순자의
성악설에 그 연원을 둔 것으로 인간의 도덕 행위가 공동체가 제시하는 도덕 준
칙에 순응함으로써 성립된다는 것이었다. 즉 성악설이 인간 본성의 악함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적 경향성을 이기적 욕망의 추구로 파악하는 한에
서 그것이 악으로 귀결됨을 의미한다면, 이와 유사한 입장은 송대 이전 시기까
지 압도적이었다.1) 다른 한편으로 당․송대를 걸쳐 사상적 주도권을 장악한 불
교(특히 선불교)는 외부 객관 세계를 인간의 주관적 자의식과 분별의식에 의해
조성된 幻影에 불과하며, 도덕적 선악시비 역시 집착이 만들어 낸 妄想일 뿐이
라고 본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도덕 준칙이 행위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다만 의식상의 전회 즉 ‘깨달음’을 통해 인간 스스로 모두 부처의 본성을 회복하
여 이에 근거한 사태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질 때 부처다운 (도덕) 행위가 이루어
진다고 본다.
송대 신유학의 주된 관심은 이 두 가지 입장을 통합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
해 신유학자들은 세계[天]와 인간[人], 내면[內]과 외부[外], 사물[物]과 나[我]가


1) 대표적으로 다음의 세 입장을 들 수 있다.
1) 揚雄은 본성을 선악이 혼재한 것이라고 하면서, 선과 악의 가능성을 모두 가진 것이라고
본다.(法言, 「修身」)
1) 王充은 본성이 선한 사람도 있고 본성이 악한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선한 사람은 교육
을 통해서 악한 사람은 처벌을 통해서 제재할 수 있다고 한다.(論衡, 「率性」)
1) 韓愈는 본성을 善, 中, 惡의 세 등급으로 나누고, 이 중 中의 경우만 선이나 악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韓昌黎集, 「原性」)
1) 이러한 관점들은 세부적 내용에 있어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性을
氣(血氣)와 관련지어 설명함으로써 이를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자연적 경향성과
동치시킨다는 점과 당위로 제시된 외적 규범 혹은 공동체적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도덕
적 선으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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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관념을 제시한다. 그들은 이 세계가 유기체적 전체 즉 ‘모
든 존재가 하나의 몸[萬物一體]’라는 관념을 공유한다. 다시 말해 세계의 모든
존재는 하나의 몸처럼 유기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으므로, 주관 외부의 객관
존재 역시 궁극적으로는 ‘나’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이 관념은
도덕 실천을 가능케 하는 전제로서 출발점이 되며, 또한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목표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인간은 도덕의 가능성을 자신의 본성으로 가진 존재
로 재정립된다. 신유학자들에게 맹자는 이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의 성
선설은 도덕 실천의 근거를 주관 내면의 본성 차원에 위치지우면서 이를 통해
정치적 교화의 가능성, 나아가 세계와의 합일까지 이르는 담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일체’의 관념 속에서 이처럼 주관 내면과 객관 세계를 도덕적으로 정초
하는 사유는 본성 차원의 자연적 경향성과 공동체적 요구로서 도덕적 당위를 조
화시켜야 할 과제를 떠맡는다. 순자 이후 본성에 대한 지배적 관점은 인간의 자
연적 경향성이 사회의 인위적 제어가 없다면 악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이 관점
은 인간의 본성과 공동체적 요구가 근본적으로 상충한다고 보면서, 禮로 대표되
는 객관적 사회 규준에 대한 학습과 내면화를 통해 인간의 자연적 경향성을 극
복해야한다고 본다. 그러나 맹자의 노선을 따르는 신유학자들의 입장은 도덕적
본성을 자연적 경향성과 일치시키는 한편, 당위로 제시되는 도덕 준칙 역시 자
연적 질서로 간주함으로써 인간 본성과 공동체적 요구의 근본적 일치를 주장한
다. 다시 말해, 도덕은 인간이나 세계 모두에 관철되어 있으며, 인간의 존립과
세계의 운행은 모두 여기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도덕은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따른 요구로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있어 그 본
연으로서 ‘자연스러움(spontaneity)’으로 제시된다. 이로부터 인간의 도덕성은 자연
일반[天]에서 유래하는 본성(nature)으로 간주되며, 이는 행위 반응에 있어 자연스
러운 경향성(spontaneous tendency)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도덕 실천은 그러한 ‘자
연스러움’을 실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2) 이러한 자연스러운 도덕 실천은 인간의


2) 그래함은 ‘자연스러움(spontaneity)’을 도가적 사유와 연관시켜 파악하면서도, 이를 도덕적
행위 양식과 연결시킴으로써 정이와 주희가 이전 시대와 구분되는 윤리적 사고의 출발
점을 이룬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북송대 신유학자들이 공유한 하나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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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인 계산과 사유의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외부 대상 혹은 사태에 대한
즉각적인 행위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도덕 실천은
도덕 주체의 내적 의식 상태, 즉 자연스러운 도덕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내적 조
건의 마련이 관건이 된다.
이 논문에서 살펴 볼 장재와 이정 형제와 같은 초기 신유학자들은 위의 관점
을 공유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을 실현할 인간 내면의 의식이 어떠해야하는가라
는 점에서 상이한 입장을 드러낸다. 그들은 도덕 실천과 관련된 이 ‘자연스러움’
을 어디에 근거지울 것인가, 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
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근거한 것인
가 아니면 외부 세계의 자연스러운 운행에 근거한 것인가? 내적 본성을 온전히
실현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가 아니면 외적 자연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가? 송대 신유학자들 가운데 내적 본성에 강조점을 두는 입장은 이정 형
제에서 주희에 이르는 이른바 ‘理’ 중심의 철학에서, 그리고 외부 세계의 자연적
질서에 강조점을 두는 입장은 장재와 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는 ‘氣’ 중심의 철
학에서 두드러진다.
이 두 입장은 인간과 세계가 동일한 구조와 운동 양상[天人合一]을 가지고 있
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신유학의 이론 체계를 구성하는 두 근본 개념, 즉 리와
기는 이 전제 속에서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를 통해 신유학자들은 객관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한편, 이와 유비적으로 파악
되는 인간 의식[心]의 구조와 운용을 논의한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의식 속에
자연 세계의 질서가 ‘본성’으로서 내재되어 있으며, 이 본성에 대한 자각이 곧
객관 세계와의 합일로 이끈다고 본다. 장재는 이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을 ‘天地
之性’으로 설명하며, 이정 형제는 그것을 우주적 생명을 이어받은 측면에 주목하
여 설명한다[生之謂性]. 그러나 이처럼 세계와 합일을 가능케 하는 본성에 대한


통적 윤리관으로 보이며, 정이와 주희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 다만 그래함
이 강조하는 바: 알아라!”라는 주지주의적 도덕실천론은 확실히 이전 시대의 윤리관 및
장재 중심의 기철학적 관점과 구별되는 정이와 주희 철학의 특징적 면모라고 할 수 있
다. (A.C.Graham: What Was New in the Ch’eng-Chu Theory of Human Nature”, Chu Hsi and
Neo-Confucianism, ed. Wing-tsit Ch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6,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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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은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가진다. 이것은 ‘천인합일’ 혹은 ‘만물일체’로 표현
되는 이상적 경지란 어떠한 것이며, 우리의 의식을 통해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양자가 상이한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 실천과 연관 지어
볼 때,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어떤 상태일 때라야 도덕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사태에 반응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글은 송대 신유학의 형성과 이후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張載
(1020~1077)와 二程형제(程顥, 1032~1085; 程頤, 1033~1107)를 중심으로, 그들의
기 중심의 철학과 리 중심의 철학에서 나타나는 도덕 실천의 방법론적 차이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들은 모두 도덕 실천이 공통적으로 인간 의식의 자연스러운
반응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의 본체론 상의 근본적 차이는 도덕 실
천의 근거로 제시되는 마음 이론의 차이로 이어지며, 여기에서 도덕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반응이 어떻게 이끌어지는가에 대한 관점 차이가 드러난다. 이 글에
서는 이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 도덕 실천의 근거가 되는 의식[心]의 문제를 중
심으로 기 철학과 리 철학의 관점 차이를 살펴보고, 나아가 이 차이로 인한 상이
한 수양 공부의 내용을 고찰하도록 하겠다.
Ⅱ. 氣 철학에서 마음[心]과 도덕 실천
1. 氣의 본래적 상태와 작용; ‘비어있음[虛]’과 ‘神’
먼저 장재에 의해 정립된 ‘氣’ 중심의 철학의 입장을 살펴보자. 그는 세계와 인
간이 모두 동일한 ‘기’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조와 운동․변화의 양
상에 있어서도 동일하다고 본다.3) 그의 기일원론적 관점은 모든 존재가 ‘기’라는
단일한 질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모임과 흩어짐[聚散]’의 상태 차이에 따
라 ‘太虛’와 ‘客形’의 두 가지 존재 양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4) 태허는 기가 흩어
3) 正蒙, 「誠明」14: 明天人之本無二.
3) 이하 正蒙, 經學理窟, 「張子語錄」의 원전표시는 ‘책명, 「편명」 항목순서’를 나타내며, 「橫渠易說」(「易說」로 약칭)의 경우는 편명과 張載集(1978)의 쪽수를 표시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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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가장 희박해진 상태이며, 객형은 기가 모여 구체적 형체를 지닌 사물로 드러난
상태이다. 여기에서 전자는 가장 비어서 맑고 고요한 기의 본래적 상태로서 무형
의 본체를 가리키며, 후자는 채워져 있어 탁하고 요동치는 기의 현상적 상태로서
유형의 사물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장재의 논의는 ‘기’가 세계의 유일한 실재로서
현상과 본체, 무형과 유형을 통괄하는 연속적 통일자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唯氣論의 관점은 세계의 운행을 기의 상태 변화, 즉 모임과 흩어짐의
과정으로 설명하며, 기를 벗어난 별도의 초월적 운동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세계의 운행은 태허에서 객형으로 그리고 다시 태허로 돌아가는 순환적
방식을 따른다. 여기에서 무형의 본래적 기인 ‘태허’는 무한하고 영원한 것인 반
면, 유형의 현상적 기인 ‘객형’은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이는 현상 존재 곧
객형이 무형의 태허 본체에서 유래하여 다시 태허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
다. 다시 말해, 일시적 현상 존재는 태허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 잡다하고 차별
적 양상은 다만 태허의 일시적 변용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태허는 자체로 무한
한 운동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현상 존재를 산출하는 본체이다. 따라서 앞서 순
환적 구조로 파악된 기 운동은 이제 태허 본체의 자기 운동 과정으로 재정립된
다. 기의 자발적 운동이란 곧 태허의 운동이며, 현상 사물의 존재와 변화 역시
이 기 본체의 운동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기의 운동을 ‘태
허’에 귀속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본체로서 태허는 자기 이외의 원인자
를 가지지 않으며, 기의 가장 비어있고 고요한 상태[虛靜]에서 유추되어 정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장재는 이 비어있는 기 본체의 ‘비어있음’은 자체
로 ‘神’의 작용을 드러낸다고 한다.5) 이러한 ‘신’은 맑고 비어있음에 근거한 기
본체의 感應능력을 의미한다.6) 이를 통해 기의 자기 운동 즉 세계의 운동과 변
4) 正蒙, 「太和」2: 太虛無形, 氣之本體, 其聚其散, 變化之客形爾.
5) 正蒙, 「乾稱」2: 氣之性本虛而神. / 「太和」9: 太虛爲淸, 淸則無礙, 無礙故神.
5) 동일한 내용이 「太和」1, 淸通而不可象爲神.과 「太和」10: 凡氣淸則通, 昏則壅, 淸極則神.에
도 보인다.
6) 일반적으로 ‘感’은 자극을, ‘應’은 반응을 가리킨다. 하지만 ‘感’은 감응 과정을 통틀어 가
리키는 경우도 빈번하다. 또 우리말의 ‘느끼다’로 번역할 때처럼, 외부 사물에 ‘자극받은’
주체의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神’을 감응과 연관시키는 장재의 문장은 다음을 참조.
6) 正蒙, 「乾稱」15: 氣有陰陽, 屈伸相感之無窮, 故神之應也無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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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현상 존재의 산출을 설명한다.
만물의 형체와 모습은 神의 부산물이다.7)
세계의 운동은 神이 고무한 것이다. 神은 운동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운동은
모두 神이 그렇게 한 것이다.8)
장재의 관점에서 인간은 그 본성[性]에 있어 태허와 객형의 대비와 마찬가지
로 두 가지 상태, 天地之性과 氣質之性을 가진 존재로 파악된다. ‘천지지성’은 말
그대로 세계의 본성 즉 기로 구성된 세계 전체가 공유한 기의 본성으로, 태허의
본래적 속성을 가리킨다. ‘기질지성’은 개체로서 인간이 우연적이고 일시적으로
가지게 되는 기질적 속성으로, 강함과 부드러움[剛柔], 맑음과 탁함[淸濁], 급박
함과 느긋함[緩急] 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현상 존재가 태허의 자기 운동 과정
에서 일시적으로 현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기질지성은 기의 모임[聚]으로
형성된 일시적․우연적 속성에 불과할 뿐이므로 천지지성만이 인간의 진정한
본성으로 간주된다.9) 인간 본성으로서 천지지성은 곧 기 본연의 ‘태허’와 동일한
속성을 가진다. 장재는 이것을 기의 본래적 속성으로서 “본래 비어있으면서도
神의 작용을 하는 것”10)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기의 본래적 상태와 그것이 가진
작용은 인간의 본성, 즉 의식[心]의 본래적 상태 및 작용과 동일한 것이다.11) 나
아가 장재는 이러한 기의 ‘비어있고 신의 작용을 하는’ 본래적 속성이 도덕의 총
체이자 근거인 ‘仁’의 근원이라고 본다.12) 이는 인간의 도덕적 의식이 곧 기의
본래적 상태와 작용에서 드러난다는 점을 암시한다.
6) 正蒙, 「太和」12: 神者, 太虛妙應之目.
7) 正蒙, 「太和」21: 萬物形色, 神之糟粕.
8) 橫渠易說, 「繫辭上」: 天下之動, 神鼓之也, 神則主於動, 故天下之動, 皆神爲之也.(張載集,
205쪽.)
9) 正蒙, 「誠明」22: 形而後有氣質之性, 善反之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
10) 正蒙, 「乾稱」2: 氣之性本虛而神.
11) 張子語錄中55: 太虛者天之實也. 萬物取足於太虛, 人亦出於太虛, 太虛者心之實也.
12) 張子語錄中57: 虛者, 仁之原. / 張子語錄中61: 虛則生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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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상적 의식과 본래적 의식
기 중심의 철학적 관점에서 ‘心’은 순전히 기로 파악된다.13) 이 때문에 장재는
‘심’에 태허의 본성, 즉 천지지성이 담지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
‘심’은 태허가 외부를 가지지 않는 ‘一者’인 것과 달리 개체적 차원에 속하는 것
으로 외부 대상과 접촉 속에서 다양한 개별 반응 양상으로서 의도, 사려, 집착
등을 산출한다. 이 점에서 심은 개별 존재가 저마다 다른 기질지성을 드러내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심’은 두 가지 차원이 결합된 인간 내면을 나타낸
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태허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속성을 지닌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개체로서 외부 대상과 관계하는 차원이다. 장재는 이를 “性과 知覺의 결
합”14)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성’은 천지지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기 본연의
“비어있으면서도 神의 작용”을 가지고 있는 본래적 의식 차원을 나타내며, 이와
구별되는 ‘지각’은 감각 작용[聞見]을 통해 외부 대상과 감응하는 현실적 의식 차
원을 가리킨다. 이 두 개념은 모두 감응 작용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신’은 태허 본체의 감응으로서 비어있고 고요한[虛靜] 기 본연의 상태에
의거한 반응으로서 본래적 의식을 나타낸다면, ‘지각’은 외부 대상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현상적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먼저 ‘지각’을 통해 형성되는 현상적 의식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자. ‘지각’은
외부 대상을 감각하고 그에 대한 인식을 형성함으로써 감정과 행위를 일으키는
감응의 과정을 함축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음’이라고 부르는 현상적 의식
차원이 이것이다. ‘지각’으로 인한 ‘마음’의 형성에서 결정적인 것은 외부 대상의
자극[感]이다. 그래서 장재는 “인간은 본래 마음이 없지만, 사물로 인해 마음이
있게 된다”15)고 말한다. 이렇게 외부 대상과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의식은 일시
13) 그것은 다른 신체 기관과 달리, 본체인 ‘태허’와 유사한 모습을 가진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한다. 즉 ‘심’은 비어있으면서 음양의 대립 작용을 통해 만물을 형성하는 기
본체와 유사하게 인간의 몸 가운데 ‘가장 비어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수축(음)과
팽창(양)의 대립적 운동을 한다.
14) 正蒙, 「太和」11: 合性與知覺, 有心之名.
15) 張子語錄下28: 人本無心, 因物爲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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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우연적 의식[客感]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취산을 반복하며 변화
하는 대상(객형)과 관계하는 의식은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한 앎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얻는 일시적 감각 정보에 근거한 앎을 형성할 뿐이기 때
문이다. 그것은 사물에 대한 편견 혹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또한 이렇게 외부 자
극에 의해 형성된 ‘마음’은 ‘외부가 있는 마음[有外之心]’이며, 그것은 대상과 주
체의 분리가 전제된 개별 의식을 가리킨다. 이렇게 주관과 객관의 분리된 채 외
부 대상의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지각’의 과정이 반복되면 자의식[我]을 형성한
다. 그리고 자의식이 일단 형성된 후에는 객관 대상을 주관적 의식 차원에서 자
의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하는 데로 귀결된다.16)
외부 대상과의 자극-반응에서 성립되는 ‘지각’과 달리, ‘신’은 마음이 기 본연
의 ‘태허’와 동일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의 감응을 나타낸다. 이 본래적 상태의
마음은 곧 태허 본체와 동일한 마음으로 세계 전체와 하나된 의식을 의미한다.
이 하나된 의식은 안과 밖[內外], 나와 대상에 대한 구분을 가지지 않는다. 이 속
에서 ‘신’은 어떠한 자극에 대해서도 ‘즉각적으로’ 通하는 반응으로 나타난다.17)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이기 때문에 神하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사지는 모두 하나이기 때문에 어
떤 것을 감촉했을 때 느끼지 못함이 없으며, 마음이 감촉한 곳에 이르도록 한 후에 느
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자극을 받으면 그에 따라 통한다”: 가지 않아도 이르고, 서
두르지 않아도 빠르다”라고 말한 이유이다.18)
세계와 하나된 의식은 외부를 가지지 않으며, 모든 존재를 나의 몸과 같이 여
16) 장재는 특히 불교가 이처럼 주관적 인식에 함몰되어 결국 객관 대상을 환영이라고 몰
고 간다고 비판한다.
16) 正蒙, 「太和」5: 浮屠以山河大地爲見病之說.
16) 正蒙, 「大心」16: 釋氏妄意天性而不知範圍天用, 反以六根之微因緣天地. 明不能盡, 則誣
天地日月爲幻妄, 蔽其用於一身之小.
17) 橫渠易說, 「繫辭上」: 易言感而遂通者, 蓋語神也.(張載集, p.201)
17) 神의 감응 작용에 대해서는 이현선, 「장재 철학에서 ‘神’개념과 마음의 문제」, 철학연
구102집, 철학연구회, 2013, 8~11쪽 참조.
18) 橫渠易說, 「繫辭上」: 一故神. 譬之人身, 四體皆一物, 故觸之而無不覺, 不待心使至此而
後覺也. 此所謂“感而遂通”: 不行而至, 不疾而速”也.(張載集, 200쪽.)
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95
기는 의식이다. 따라서 이에 근거한 ‘신’의 반응은 우리의 마음이 손과 발의 자
극에 대해 그러하듯, 즉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자극을 주는 대상을
지각하고, 그에 대한 인식과 사유를 거쳐 나오는 반응이 아니다.19) 장재는 이러
한 신을 ‘하늘의 능력[天德]’으로서 비어있으면서도 도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며,
사려나 총명함으로 구할 수 없다고 한다.20) 이 점에서 ‘신’이 작용하는 본래적
의식은 대상과 관계하는 일반적 의미의 인간 의식[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
이다. 그것은 마음을 가지지 않는, 無心한 ‘하늘’의 경지를 나타낸다.
이러한 장재의 관점에서 ‘신’은 인간이 자기의식의 주체인 한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는 ‘신을 궁구하는 일’[窮神]이 인간의 인식과 사유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부여받은 능력이 왕성해져[德盛] 저절로 “하늘과 하나가 되는
[與天爲一]”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21) 이와 같이 “하늘과 하나 되는”
의식, 곧 세계 전체를 ‘나’로 여기는 의식은 주관적 차원이 아니라 철저히 객관
적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 장재는 주관적 의식 과정의
배제를 통해서, 즉 인간이 의식 ‘주체’로서의 지위를 버림으로써 객관적이고 전
체적인 의식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식은 주관과 객관이 합일된 고요하
고 안정된 본래적 의식이라고 본다.22)
3. 하나된 마음에서 禮의 실현
장재는 의식의 주관적 작용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의식이 객관 대상을 올바
로 반영할 수 있다고 보며, 이로써 ‘신’에 근거한 감응이 가능하다고 본다. 여기
19) 經學理窟, 「義理」35: 學者言不能識得盡, 多相違戾, 是爲無天德, 今顰眉以思, 已失其心
也. 蓋心本至神, 如此則已將不神害其至神矣.
20) 正蒙, 「乾稱」14: 大率天之爲德, 虛而善應, 其應非思廬聰明可求, 故謂之神.
21) 正蒙, 「神化」11: 易謂「窮神知化」, 乃德盛人熟之致, 非智力能强也.
21) 「神化」16: 窮神知化, 與天爲一, 豈有我所能勉哉? 乃德盛而自致爾.
21) 「神化」17: 窮神知化, 乃養盛自致, 非思勉之能强, 故崇德而外, 君子未或致知也.
22) 經學理窟, 「學大原」下19: 人當平物我, 合內外, 如是以身鑒物便偏見, 以天理中鑒則人與
己皆見, 猶持鏡在此, 但可鑒彼, 於己莫能見也, 以鏡居中則盡照. 只爲天理常在, 身與物均
見, 則自不私, 己亦是一物, 人常脫去己身則自明. (이현선, 앞의 논문, 14~17쪽 참조.)
96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7輯 / 2014年 9月
에서 관건은 ‘지각’을 통해 형성된 주관적 현상 의식을 어떻게 객관적 의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이것은 주관과 객관을 모두 동일하게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의식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나’를 세계 전체와 동일시할 것을 요구하는
그의 관점은 한편으로 자의식[我]을 제거하는 수양을 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계에 내재된 객관적 질서를 전적으로 내면화시키는 공부를 요구한다. 이러
한 요구는 모두 인간의 기질적 습속으로 고착화된 주관적 의식의 활동을 중지시
키는 과정, 즉 ‘마음 비우기[虛心]’의 수양을 의미한다.
그의 관점에서,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주관적․개체적 상태를 벗어
나 세계 전체와 하나되는 ‘큰 마음[大心]’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세계 전체를 조
망하는 의식에 이르면 외물은 더 이상 욕망이나 집착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23)
또한 인간은 주관적 인식에 함몰되어 객관 세계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오류[妄]에서 벗어나, 세계의 질서와 변화에 순조롭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성인과 동일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장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는 의식이 없어진[無我] 이후에 [마음이] 커진다. 커져서 본성을 완성한[成性]
이후에 성인이 된다. 하늘의 능력과 동일한 성인의 위상은 지각으로 도달할 수 없으
므로 ‘神’이라고 한다.24)
마음을 비움으로써 ‘큰 마음’에 이르는 것은 의식이 개별적이고 주관적 차원
에서 전체적이고 객관적 차원으로 상승하는 것을 의미한다.25) 이러한 세계 전체
와 합일된 객관적 의식의 확보는 주관적 자의식을 제거하는 노력만으로는 부족
하다.26) 이와 더불어 장재는 객관 세계의 운행 질서를 자신의 행위 방식과 일치
시키는 내면화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禮’에 대한 학습과 이를 준수
23) 張子語錄中62: 虛心則無外以爲累.
24) 正蒙, 「神化」15: 無我而後大, 大成性而後聖, 聖位天德不可致知謂神.
25) 正蒙, 「大心」1: 大其心, 則能體天下之物, 物有未體, 則心爲有外. 世人之心, 止於聞見之
狹; 聖人盡性, 不以見聞梏其心, 其視天下, 無一物非我.
26) 자의식을 없앰으로써 자연스러운 행위가 가능하다는 관점은 도가 철학에서 쉽게 발견
할 수 있고, 불교 역시 ‘無我’의 의식 경계가 세계의 眞相을 드러낸다는 관점을 가진다.
유학의 입장에서 이러한 관점들은 도덕 실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개인적 차원의 해탈
에 불과하다고 본다.
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97
하는 도덕 실천의 요구로 이어진다.
기 철학의 관점에서 ‘예’는 단순히 인간관계의 윤리적 규범 혹은 행위 양식만
을 가리키지 않으며, 태허에 근거하여 형성된 만물의 위계질서 및 법칙[天序/天
秩]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27) 이 우주적 질서로서 예는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객관적 理28)이다. 일상 세계에서 도덕적 규범 혹은 행위 양식으로서 예는 이 우
주적 질서가 인간 사회에 구현된 것이다. 따라서 예에 대한 학습 즉 ‘窮理’ 공부
는 구체적인 예의 조목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인간관계[人倫] 속에 실현
된 객관적 우주 질서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장재에게서 이 ‘궁리’ 공부와 ‘허심’ 수양은 상호 병행되는 공부이다. ‘허심’의 수양
은 주관적 욕망과 집착을 자제토록 하는데, 이는 ‘예’로 주어진 외적 도덕규범을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예에 대한 탐구를 의미하는 ‘궁리’는 우주적 객관 질서이
자 인간에게 도덕 준칙으로 제시되는 ‘예’를 내면화하도록 하여, 주관적 의도나 편견
을 제어하는 허심에 도움을 준다. 이 때문에 그는 “예를 배우는 것이 급선무”29)라고
하며, 이를 통해 마음은 ‘벗어나 깨끗해져[脫灑], 안정되게 지킬 수 있다’30)고 말한다.
이와 같은 장재의 관점에서 도덕 실천이란, 외적 도덕규범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 수용하여 준수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그에게서 도덕 실천이
란 결국 주관적 자의식이 탈각된 상태에서 객관적 도덕 준칙을 내면화함으로써
구체적인 사태 속에서 그러한 도덕 준칙에 입각한 행위 반응이 즉각적이고도 자
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건은 도덕규범이 곧 우주적 질서이자
‘나’의 본래적인 행위 양식이라는, 세계 전체와 하나된 의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이 하나된 의식 속에서 도덕규범에 부합하는 행위의 실현은 세계의
운행 방식을 곧 나의 행위 방식으로 삼아 세계의 본성을 실현한 것[成性]이다.31)
27) 經學理窟, 「禮樂」20: 禮亦有不須變者, 如天敍天秩, 如何可變! 禮不必皆出於人, 至如無
人, 天地之禮自然而有, 何假於人? 天之生物便有尊卑大小之象, 人順之而已, 此所以爲禮也.
28) 張子語錄下5: 蓋禮者理也. 須是學窮理.
29) 經學理窟, 「學大原上」1: 學者且須觀禮, 蓋禮者滋養人德性, 又使人有常業, 守得定, 又可學便
可行, 又可集得義. 養浩然之氣須是集義, 集義然後可以得浩然之氣. 嚴正剛大, 必須得上下達.
30) 張子語錄下15: 某所以使學者先學禮者, 只爲學禮則便除去了世俗一副當習熟纏繞. 譬之
延蔓之物, 解纏繞即上去, 上去即是理明矣, 又何求! 苟能除去了一副當世習, 便自然脫灑
也. 又學禮則可以守得定.
98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7輯 / 2014年 9月
Ⅲ. 理 철학에서 본성과 감응의 문제
1. 도덕 실천의 근거로서 理와 生
이정 형제와 주희에 의해 제기된 ‘리’ 중심 철학은 세계를 구성하는 진정한 실
재는 ‘리’이며 ‘기’는 현상 존재를 구성하는 질료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는 기의
자발적 운동으로 세계의 운행을 설명할 수 없으며,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기의
운동 양상은 ‘리’에 의해 규정지어진 것이라는 관점이다. 다시 말해, 세계의 운행
은 리에 따르는 운동으로 현상 사물의 존재 및 변화 양상은 모두 리에 근거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그들은 리와 기를 ‘형이상’과 ‘형이하’의 구도로 설명하면서
각각 본체와 현상을 가리킨다고 본다. 형이상의 본체로서 리는 기의 상태 차이
를 나타내는 무형과 유형의 구도로 지시할 수 없는 개념이다.32) 그것은 기의 운
동, 즉 현상 세계의 변화를 추동하는 ‘원리(所以, principle)’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형이상의 ‘리’는 형이하의 ‘기’와 분리된 별도의 독립적 실
재를 가리키지는 않는다.33) 그것은 기의 운행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현상 존재의
산출 및 잡다한 변화 양상들은 곧 리의 자기실현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리는 기를 매개로 자신을 드러나며, 기가 없이 단독으로 발현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리는 형이상의 본체이면서 동시에 형이하의 현상 속에 내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형이하의 현상 존재에 내재한 ‘리’는 그것의 존재 및 운동 양상의 원
리로서 관철된다. 그것은 기의 움직임과 고요함[動靜], 맑음과 탁함[淸濁], 비어있
음과 채워짐[虛實]과 같은 현상적 상태 차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
한 다양한 변화와 양상을 주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상적 기의 다양한 모습
은 리에 따라 그러한 것이므로, 그것이 리의 발현을 제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31) 經學理窟, 「氣質」2: 但學至於成性, 則氣無由勝, 孟子謂「氣壹則動志」, 動猶言移易, 若
志壹亦能動氣, 必學至於如天則能成性.
32) 河南程氏遺書11-10: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若如或者以淸虛一大爲天道, 則
乃以器言而非道也.(이하 河南程氏遺書는 遺書로 약칭. 11-10은 11권의 10번째 항목
을 나타냄)
33) 遺書1-15: 形而上爲道, 形而下爲器, 須著如此說. 器亦道, 道亦器.
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99
이정 형제는 이러한 리를 우주론 차원에서 ‘生’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여
기에서 ‘생’은 ‘생겨남’(생성), ‘살아있음’(생명), ‘자라남’(생장)의 의미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들은 세계의 운행을 기의 취산 운동에 의한 순환이 아니라 무한한
‘생성’의 리가 실현되는 과정[生生]으로 파악한다. 즉 세계의 운행은 무한한 생성
의 리가 발현하는 과정이며, 현상 사물의 존재와 변화 역시 그러한 리가 드러난
것이다.34) 그들이 보기에, 이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그
것은 자신의 리에 따라 스스로 사물들을 생성하여, 생명을 부여하고, 생장시키는
본체이다. 이정 형제와 주희는 생명이 움트는 봄의 의지[春意]를 통해 모든 존재
들에게 실현된 이 생성의 우주적 리를 볼 것35)을 요구하며, 현상적으로 ‘생’의
작용이 극도로 미미한 상태(ex. 冬至)에서 도리어 ‘생’을 실현하고자 하는 세계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36)
현상 존재로서 인간은 이러한 리를 이어받아 자신의 본성으로 삼는다. 인간의
‘생명 활동’은 이 우주적 생명력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정 형제는 “生
之謂性”이라는 告子의 말을 다른 의미로 긍정한다. 그들은 ‘生’을 고자가 생각한
것처럼 식욕과 색욕의 차원이 아니라, 우주적 생명이라는 의미에서 리로 받아들
이며, 그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주장한다.37) 그들은 이러한 우주적 생명력이 바로
‘仁’이며, 모든 개별 존재는 ‘인’을 자신의 존재 원리로 부여받아 삶을 유지한다
고 본다. 주희는 ‘인’을 세계가 사물을 생성하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이라고 한
다.38) 이에 따르면, ‘인’의 실현은 일차적으로 이렇게 세계로부터 물려받은 자신
의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여 발현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다른 존재를 존중하고
34) 遺書2上-110: 告子云「生之謂性」則可. 凡天地所生之物, 須是謂之性. ․․․ ‘成性存存, 道義
之門’, 亦是萬物各有成性存存, 亦是生生不已之意. 天只是以生爲道.
35) 遺書2上-109: ‘生生之謂易’, 是天之所以爲道也. 天只是以生爲道, 繼此生理者, 卽是善也.
善便有一箇元底意思. 「元者善之長」, 萬物皆有春意, 便是‘繼之者善也’.
36) 복괘(復卦, ䷗)는 冬至를 상징하며, ‘양’의 기가 다 소진된 후에 다시 생성되는 처음의 모습
을 상징화한 것이다. 정이는 이를 통해 통해 ‘생생’의 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不息]
을 지적하고 있다. (遺書18-83: 人說‘復其見天地之心’, 皆以謂至靜能見天地之心, 非也. 復
之卦下面一畫, 便是動也, 安得謂之靜? 自古儒者皆言靜見天地之心, 唯某言動而見天地之心.)
37) 遺書1-56, 2上-110, 3-56, 18-103을 참조.
38) 「仁說」: 天地以生物爲心者也. 而人物之生, 又各得夫天地之心以爲心者也.(朱熹集卷67,
3542쪽.)
100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7輯 / 2014年 9月
배려하는 사랑의 실천, 곧 도덕성의 실현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생명의 보존과 발현을 위한 능력 즉 德을 구비한 것으로, 仁․義․禮․智라는
도덕적 능력으로 표현된다.
2. 內感 ; 본성의 감응
이정 형제와 주희의 리 중심의 철학은 ‘본성이 곧 리[性卽理]’라고 관점과 ‘마
음은 본성이 발현하여 감정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통괄하고 주재한다[心統性情]’
는 관점을 공유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곧 형이상의 본체인 리이며, 그것이 의
식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러한 본성은 우
주적 생명력으로서 仁을 부여받은 것이며, 인간에게 그것은 도덕성의 근거가 된
다. 정호는 이에 따라 ‘도가 곧 본성이다’라고 하면서, ‘본성’을 인간에게 부여된
‘하늘의 능력[天德]’으로서 ‘완전하고 자족적인 것’이라고 한다.39) 다른 한편으로
이정은 본성이 ‘생명 활동[生]’과 연관된 것인 이상 ‘기’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
다는 점을 강조한다.40) 이는 그들에게서 본성이 기와 결합된 현상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들이 논의하는 본성은 장재처럼 기질적 차
원이 배제된 ‘천지지성’이나 ‘神’과는 달리, 현상 존재에 내재된 리의 차원을 가
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정 형제는 본성을 개별 존재의 성향이나 욕망이 아니라 ‘능력’의 차원에 주
목한다. 정호는 물의 비유를 통해 물의 ‘맑음’이 곧 물의 본성이라고 한다. 물은
아무리 탁한 경우에도 스스로 맑아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물이 물인 것은
그 맑음과 탁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맑아질 수 있는 ‘능력’ 때
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의 선함[性善] 역시 기의 영향에 의해 과․불급의
불선한 양상을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선의 ‘능력’을 가진 인간 본
성의 훼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41) 이와 같이 본성을 도덕적 능력으로 보는 관
39) 遺書1-1: 道卽性也. 若道外尋性, 性外尋道, 便不是. 聖賢論天德, 蓋謂自家元是天然完全
自足之物.
40) 遺書1-56: ‘生之謂性’, 性卽氣, 氣卽性, 生之謂也.
40) 遺書6-20: 論性, 不論氣, 不備; 論氣, 不論性, 不明.
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101
점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주체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이정 형제는 본성 곧 리가 인간 의식[心]의 본체로서 자극과 반응[感應]의 근
거가 된다고 본다.42) 이는 우리의 의식이 본성에 근거하여 활동하며, 대상과의
접촉에 있어 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제멋대로 대상에 대해 제각각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
적인 반응 형식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맹자가 말한 우물에 빠지려는 갓
난아이의 비유이다. 갓난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목격한 순간, 인간은 보편
적으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반응으로 가지게 된다. 이 도덕적 반응은 우리의
의식이 리를 따르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이지, 갓난아이로 표상되는 외부 대상이
원인이 되어 나온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측은지심은 비록 대상과의 만남에서
촉발된 것이지만, 대상에 대한 사유나 고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도덕 형
식을 갖춘 본성에 따라 드러난 의식의 반응이다. 따라서 이러한 반응은 외부적
원천(대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적 근거(본성)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
이는 이를 ‘내적 자극[內感]’이라고 표현한다.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지만’[寂然不動] 만물이 빽빽한 숲처럼 이미 갖추어져 있다.
‘자극을 받아 마침내 통하는’[感而遂通]데 있어, 자극은 다만 내부의 자극[內感]이다.
외부에서 어떤 것이 와서 이것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43)
이러한 ‘내적 자극’은 감정[情]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반응 양상이 외부 대상이
아닌 본성[性]에 근거한 내면의 의식 활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외부 대상이 내면의 자극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반응의 원천일 수
는 없다고 한다.44) 주희는 이러한 이정 형제의 관점을 ‘심통성정’의 구도로 설명
한다. 그것은 의식의 본체가 본성이며, 그 작용이 감정임을 나타낸다. 즉 대상과
41) 遺書1-1: 所以能使如舊者, 蓋爲自家本質元是完足之物.
42) 遺書2下-32: 心所感通者, 只是理也.
43) 遺書15-87: ‘寂然不動’, 萬物森然已具在; 「感而遂通」, 感則只是自內感. 不是外面將一件
物來感於此也.
44) 遺書18-91: 問: 喜怒出於性否? 曰: 固是. 纔有生識, 便有性, 有性便有情. 無性安得情?
又問: 喜怒出於外, 如何? 曰: 非出於外. 感於外而發於中也.
102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7輯 / 2014年 9月
접촉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대상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본체인 본성의 발현
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퇴계 이황의 사단칠정론에서 보다 명시적으로 확인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四端은 본성인 리의 발현으로 드러난 감정이며, 七情은 외
물과의 접촉에 의한 감각적 반응으로 나타난 감정이라고 구분하고 있다.45)
3. 앎[知]과 도덕의식
이와 같은 리 철학의 관점은 의식[心]이 외물의 자극 유무와 관계없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 대상과의 접촉 이전에 선험적으로 그에 대한 도덕적 반응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46) 리 철학의 입장에서 이러한 선험적 능력은 사
물 혹은 사태의 도덕적 옳고 그름[是非]에 대한 분별 능력으로서 ‘앎[知]’과 관련
된다. 이러한 ‘앎’의 능력은 종종 거울이 사물을 분명하게 비추는 것에 비유된다.
여기에 걸려 있는 거울에 비유해보자. 그것은 사물을 반드시 비추는데, 거울이 사물
에 가서 비추는 것도 아니고, 사물이 거울로 들어 온 것도 아니다. 대체로 사람의 비
고 밝은[虛明] 마음은 선을 반드시 먼저 알고, 불선도 반드시 먼저 안다. 자극받은 바
가 있으면 반드시 반응함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리이다.47)
정이가 보기에, 마음은 외물을 쫓아가지도 외물을 그 속에 담아두지도 않으면
서, 그것의 선악을 분명하게 반영한다. 마음은 거울처럼 대상을 분명하게 비추는
[照]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상과 접촉에서 마음은 그것의 선악을
비추어 그에 따라 반응하는 능력을 가진다. 이것은 마음속에 선과 악이 있어 대
상의 자극에 따라 각각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있는 선과 악을 그것을 분
별하는 마음의 능력을 통해 각각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도덕적 분별 능
45) 退溪集卷16, 「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一書」: 惻隱羞惡辭讓是非, 何從而發乎? 發於仁義
禮智之性焉爾. 喜怒哀懼愛惡欲, 何從而發乎? 外物觸其形而動於中, 緣境而出焉爾. 四端之
發, 孟子旣謂之心, 則心固理氣之合也.
46) 遺書2上-51: 良能良知, 皆無所由, 乃出於天, 不繫於人.
47) 遺書18-182: 譬如懸鏡於此, 有物必照, 非鏡往照物, 亦非物來入鏡也. 大抵人心虛明, 善
則必先知之, 不善必先知之. 有所感必有所應, 自然之理也.
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103
력으로서 ‘앎[知]’은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리로서, 인간 본성 차원의
‘智’를 가리킨다.
이처럼 ‘앎’은 대상과의 감응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자극
에 대한 반응의 양상을 결정한다. 이와 관련해서, 정이가 제시한 다음의 유명한
일화를 살펴보자.
진정한 앎[眞知]과 일상적인 앎[常知]은 다르다. 예전에 호랑이에게 상해를 당한 적
이 있는 한 농부를 본 일이 있다. 어떤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고 있다고 말하자
대중들은 모두 놀라고 당황스러워 했는데, 유독 그 농부의 안색과 행동은 대중들과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앎이 아니다. 진정한 앎은 이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옳지 않은 일인
지 알면서도 그러한 일을 한다면 이 역시 진정한 앎이 아니다. 진정한 앎이라면 결코
그러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48)
일견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는 자연적 사실과 ‘옳지 않은 일은 하면 안 된
다’는 도덕적 당위를 이처럼 비유적으로라도 동일선 상에서 논의하는 것은 논리
적으로 정당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신유학의 입장에서 이는 모두 의식상의
반응을 불러일으켜 특정한 태도나 행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지지 않
는다. 신유학자들에게 호랑이가 주는 두려움과 옳지 않은 일을 했을 때의 부끄
러움은 모두 구분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49)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인용
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정이는 농부와 대중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다’는 말에 서로 다른 반응을 내
는 것은 그들의 앎이 상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진정한 앎
과 일상적 앎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 농부의 앎은 그가 호랑이
에게 상해를 당해본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서 대중의 앎과 차이를 가진
다. 체험에 근거한 앎, 호랑이의 두려움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48) 遺書2上-24: 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 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
動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
49) A.C.Graham: What Was New in the Ch’eng-Chu Theory of Human Nature”, Chu Hsi and
Neo-Confucianism, ed. Wing-tsit Ch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6, pp.139~14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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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식의 차이를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점에서 이정 형제는 리에 대한
경험적 체득을 강조한다.50) 그러나 이러한 경험적 앎을 곧바로 도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진정한 앎’으로 유추하기는 곤란해 보인다. 호랑이에게 상해를 당하
는 일과 달리, 도덕적 사태를 경험하는 일은 훨씬 보편적이다. ‘옳지 않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앎은 단지 명령으로서만이 아니라, 일상적 경험을 통해 보통
사람들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앎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적 당위에 대해 경험적
앎을 가지고 있다고 반드시 도덕적 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위의 ‘진
정한 앎’과 ‘일상적 앎’의 구분을 전적으로 경험 유무의 차이로만 이해하는 것은
요점을 놓친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정이가 진정한 앎의 표식으로 ‘안색과 행동의 차이’를 제시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색과 행동은 외부 대상의 자극에 대해 내적 의식 상
태가 표출된 외적 표현이다. 내면의 상태가 필연적으로 외부로 표현된다는 것은
신유학에서 상식적으로 인정된다.51)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농부의 반응이 대중과 달랐던 이유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호랑이에 대한 두
려움이 즉각적으로 그의 의식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즉 두려움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통일된 의식이 그러한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마찬가
지로 숱한 도덕적 사태에 대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옳지 않은 일인지 알면서도
하는 것은 체험적 앎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옳음에 대한 앎이 의식을 완전히 주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외부 사태에 대한 경험은 이러한 ‘앎’을 자극하
고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필요하지만, 주체 내면의 의식이 그것으로 가
득찬 ‘하나된 상태’에 이르러야 ‘진정한 앎’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진정한 앎,
즉 하나된 의식 속에서 비로소 도덕적으로 자연스러운 반응이 도출된다.
이정 형제와 주희에게 있어, 하나된 의식은 이처럼 ‘앎’이 의식을 가득 채워
주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도덕적 분별 능력으로서 ‘앎[知]’이 의식을 주
도하는 상태이며, 곧 의식이 본성 즉 리로 가득 찬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
로 의식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상태[主一無適]”, 즉 敬이다.
50) 遺書11-68: 學要在自得. / 遺書25-6: 學莫貴於自得, 得非外也, 故曰自得.
51) 大學6: 誠於中, 形於外.
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105
이는 다시 의식이 하나로 집중된 ‘경’의 상태에서 ‘앎’의 능력이 가장 고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 갓난아이는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니, 그의 의도와 기호는 사람이 알 수 없는 것
이다. 그 어머니라도 반드시 알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의도를 오인하는데 이르지는 않
으니 어째서인가?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愛]하며 공경[敬]하기 때문이다.52)
리 철학의 관점에서 도덕 실천을 위한 공부는 이러한 ‘경’의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것은 외부 대상과 접촉여부와 관련 없이 자신의 도덕적 본
성[性]이 의식에 가득 차도록 하는 공부, 곧 리를 의식의 주체로서 확립하는 공부
이다. 리가 자기의식의 주인으로 확립되면, 대상에 대한 대응은 자신의 본성을 발
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사물 혹은 사태에 내재한 리에 부합하는 것이 된다.53)
이러한 ‘경’ 공부는 표면적으로 두 가지 차원을 가진다. 이정 형제 이후 신유
학은 의식[心]을 대상과의 접촉을 기준으로 둘로 구분하여 표현한다. 그것은 ‘未
發’과 ‘已發’, 즉 대상과 접촉 이전의 고요한[靜] 의식과 접촉 이후의 유동하는
[動] 의식이다. ‘대상과의 접촉’에 대해 먼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물
혹은 사태가 의식에 자극[感]으로 떠오르는가의 여부와 관계된다. 우리의 의식은
접하는 외부 대상을 모두 자극으로 삼지 않는다. 또한 외부와 직접적 접촉이 없
더라도 자극으로 떠오르는 대상이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
나면서도 혹은 크게 TV를 켜 놓은 상태에서도 의식은 고요할 수 있고, 반대로
눈을 감고 정좌한 상태라 할지라도 의식은 요동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미
발’은 자극을 주는 어떠한 대상도 없는 의식 그 자체로, ‘이발’은 대상에 대해 의
식이 지향하고 있는 상태로 다시 정의할 수 있다. 리 철학의 관점에서 미발은 곧
바로 ‘본성’과 동치 되며, 이발은 대상에 대한 의식 상태로서 ‘감정’을 가리킨다.
경 공부가 의식상에서 리의 주재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는 본성을
유지ㆍ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미발 공부라고 부른다면 이러한 의미에
52) 遺書2上-26: 今夫赤子未能言, 其志意嗜欲人所未知, 其母必不能知之, 然不至誤認其意
者, 何也? 誠心愛敬而已. 若使愛敬其民如其赤子, 何錯繆之有?
53) 敬의 의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실정에 따라 그에 합당하게 대응하는 것을 정호는 ‘物來
而順應’으로, 정이는 ‘物各付物’이라고 표현한다.
106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7輯 / 2014年 9月
서이다. 하지만 경 공부는 직접적으로 미발의 의식 상태, 즉 靜이나 中의 의식에
도달하는 공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본성’은 특정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
니기 때문이다. 이정 형제나 주희에 따르면, 본성은 인간의 근본적 도덕 경향성
을 가리키며, 형이상의 본체인 리가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씨앗
처럼 우리의 의식의 토양 속에 심어진 것이다. 따라서 본성을 유지ㆍ보존한다는
것은 씨앗이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가꾸는 일이다. 다시 말해 경 공
부는 도덕적 본성이 스스로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의식을 정비하는 것을 의미한
다. 이들은 이를 ‘涵養[물주고 기름]’ 공부라고 한다. 이러한 경 공부는 비고 고요
한[虛靜] 의식을 이상적 상태로 추구하는 기 철학의 공부와는 달리, 본성의 자연
스러운 발현을 위한 의식의 활동 속에서 진행된다.
Ⅳ. 나가는 말
장재의 기 중심 철학과 이정 형제 및 주희의 리 중심의 철학은 모두 유학에서
도덕의 근거이자 총체로 이해되는 ‘仁’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그것은 한편으
로 인간이라면 자연히 가지는 ‘인간다움’을 의미한다는 점54)에서 인간의 본성으
로 여겨지며, 다른 한편으로 나와 다른 존재를 하나로 여기는 도덕의식으로 간
주된다. 그러나 장재는 이를 기의 본래적 양상인 ‘비어있음[虛]’에 근거지우고,
이정 형제와 주희는 무한한 ‘생성[生]’의 리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본체론적 차이는 도덕 실천을 위한 인간 의식[心]에 대한 관점 차이로 이
어진다.
앞서 살펴본 두 관점의 차이는, 보통 사람들의 현상적 의식에 대한 시각 차이
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 중심의 입장은 본래적 의식과 현상적 의식의 구분 위에
서 현상적 의식은 대상과 자아의 분별에 의거하여 감각적 지각에 의해 형성된다
고 본다. 그것은 욕망과 편견에 사로잡힌 의식으로서 본래적 의식이 아니며 지
양․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반면, 리 중심의 입장은 현상적 의식은 비록 욕망과
54) 孟子, 「盡心下」16: 仁也者, 人也.
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107
편견에 오염되고 왜곡된 것일지라도, 그것은 도덕적 본성의 근본적 훼손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본연의 도덕의식과 별개로 치부할 수 없다고 본다. 정
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현상적 의식에서 지속적인 본성의 발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ex. 측은지심). 따라서 만약 본성을 유지․보존하여 이 일상의 의
식을 주도한다면 그것이 곧바로 도덕의식이 된다. ‘앎[知]’에 대한 그들의 관점
차이는 이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장재의 입장에서 ‘앎’은 대상의 자극과
이에 대한 감각적 반응이 누적되어 형성되는 것으로, ‘비고 고요한’ 본래적 의식
에 도달하는 데 장애가 된다. 그러나 이정 형제 및 주희의 입장에서 ‘앎’은 오히
려 본성 차원의 도덕적 분별 능력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상의 자극을 분별하는
내적 기제로서 본성의 올바른 반응(혹은 발현)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본체론 및 심성론의 관점 차이는 어떠한 의식 상태에서 도덕실천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상이한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신유학자들
이 도덕 실천 행위와 관련해서 공유하고 있는 즉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행위 반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장재의 기 중심 철학은
‘비고 고요한’ 본래적 의식 상태에 도달할 때라야 도덕 실천이 가능하다는 입장
이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음을 비우는 수양과 객관적 도덕 규범으로서 예를 학습
하고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인간의 주체적 도덕 능력보다 객관적 도덕 질
서가 도덕 실천의 근거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이정 형제 및 주희의
리 중심 철학은 본성의 발현을 체험할 수 있는 현행 의식 이외에 별도의 본래적
의식 상태를 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 입장에서 본성은 주체의 도덕적 능력
[德]으로 간주되며, 이를 사태 속에서 유지․보존할 수 있는 통일된 의식을 요구
한다. 그것은 대상의 자극에 대해 주체적인 반응을 위한 집중된 의식을 의미한
다. 도덕 주체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전자의 관점에서 도덕 주체는 외부의 도덕
기준을 수용하는 수동적 입장에 처한다면, 후자는 도덕 주체의 내적 능력을 계
발하고 발휘하는 능동적 입장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 이 논문은 저자가 2014년 8월 20일에 투고하였고, 9월 8일에 편집위원회가 심사위원
을 선정하였고, 9월 20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였으며, 9월 21일에 편집위원회가 게
재를 결정하였음.
108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7輯 / 2014年 9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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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賢仙 / 新儒學에서 마음과 도덕실천ㆍ109
<Abstract>
Mind and Moral practice in Neo-confucianism
- Focus on the philosophy of Zhang-Zai(張載) and Cheng Brothers(二程)
Lee, Hyun-Sun
With focus on the Zhang-Zai(張載) and Cheng Brothers(二程; 程顥 & 程頤), this thesis
is looking after the different perspectives about 'Mind(心)' in other words a consciousness of
human being with its basic ground placed on theory of moral practice in Neo-Confucianism.
Zhang-Zai's Qi(氣) philosophy and Cheng Brothers’ Li(理) philosophy have differently viewed
the issue when a human being is morally good and natural in responding to a certain
situation. For both of them, the ultimate goal to be accomplished is realization of
benevolence(仁) which is represented as a basic factor of morality in Confucianism. However,
what make those two different is found that Zhang-Zai’s philosophy is based on ‘Emptiness
(虛)’ as it’s origin whereas Cheng Brothers and Zhu-xi(朱熹)’s philosophy is based on infinite
‘Creation(生)’ as it’s origin of formation. Such an ontological difference brought about the
different viewpoints on a mind of human being in taking morality into practice. Zhang-Zai's
Qi(氣) philosophy keep a stance that the moral practice is possibly done when the
consciousness of human being reach to the state of emptiness and serenity in mind. For this,
he also expresses concern about learning and practicing Li(禮) to empty mind and putting it
into practice on a self-discipline and a moral code basis. It means that a moral practice is an
objective to a systematical moral order than the independent capacity of human morality. In
contrast with this, Cheng Brothers’ Li(理) philosophy claim that aside from current state of
mind which discern the revelation of one’ nature(性), there is no extra original state of mind
to be assumed. In viewing issues from this angle, human nature is considered as the
subjective moral capacity, and they demand this capacity to be maintained and preserved in
any situation by unified consciousness. It is the composure(敬) that means a concentrated
consciousness in order to respond subjectively in case the stimulus was processed. To be
address on a moral activity, the former view is making a passive stance in adopting external
regulation of morality, the latter one is rather keeping an active stance in developing and
demonstrating an internal capacity.
Keywords: Mind(心), moral practice, Zhang-Zai, Cheng brothers, Emptiness(虛), Creation
(生), inner-stimulus(內感), true knowledge(眞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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