兄弟共犯。兄宥弟悅。根由姦淫。實因被打。
唐津民邵昌務兄弟。殺梁命右。〇檢案闕。 判付曰。唐津縣殺獄罪人邵昌務獄事段。變出姻婭。犯在弟昆。訊推已過十年。査案不啻屢次。曩因審理之日。乃有換定之擧是如乎。到今獄案已具。不必續續輕議。而昌務之拳踢牽痛。其妻不識也。棒打嘔血。阿奴편001亦言之。 臣謹按。先朝好生之德。每於兩犯之案。換其正犯。旣換之後。其以次犯。升爲正犯者。亦蒙酌處。畢竟兩活而後已。此默運之微權也。邵昌務先以次犯發配。旋以正犯還囚。此天下之逆境也。聖人於此。默觀其所爲。若使昌務切切然訴其冤。縷縷然辨其實。則眞不免死。特以感恩知德。有兄弟爭死之意。故處分如此。凡在縲絏者。宜知此義。
수종의 판별(15)
형제가 같이 범하였다. 형이 용서되자 아우가 기뻐하였다. 원인은 간음이었으나 사인은 구타였다.
당진(唐津) 주민 소창무(邵昌務) 형제가 양명우(梁命右)를 살사하였다.
검안(檢案)은 찾을 수 없다.
판부(判付)에 이르기를, 당진현(唐津縣)의 살인죄인 소창무 사건은 인아(姻婭-사돈으로 연결된 사이) 사이에 발생하였고 형제가 범행한 일로서 조사하기 이미 10년이 지났으며 심리(審理)하기 한 두 차례가 아니었다. 지난번 심리하던 날, 환정(換定-수범(首犯)을 바꾸어 결정함)하는 일이 있었으며 지금 사건이 결정되었으니 굳이 계속하여 부경(傅輕)을 논의할 것은 없다. 창무의 주먹과 발길질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 아내는 모르고 잇으며 몽둥이에 맞아 피를 토하였다는 사실을 아로(阿奴)도 말하였으나 발길질에 곧 죽게된 것은 몽둥이를 맞음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것이며 또한 몽둥이를 맞아 다죽어가는 목숨이 주먹과 발길질에 더욱 악화된 것이나 아닌지. 이 주은(朱殷)의 행위를 들어 살인사건을 단정(斷定)함에 있어 도계(道啓)가 이와 같이 상세하고 조언(曹讞-당해 조(曹), 곧 형조의 심리)도 이와 같이 정확하긴 하나 조가(朝家)에서 십분 심극(審克-충분히 심리함)하는 도리에 비추어 볼 때 칠분(七分)의 의문이 없지 아니하다. 또 창무(昌務)의 공술(供述)에, 형 창현(昌賢)이 살아서 옥문(獄門)을 나서는 것을 만행(萬幸)으로 여기고 자신의 생사는 고려에 넣을 것이 없다 하였으니 곧 이에서 도의(道義)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더구나 북쪽으로 유배(流配)하였다가 곧 남쪽으로 끌어다가 가두었으며 또 여러 차례 질곡(桎梏)을 가하였고 오랜동안 갇히어 있었으니 그 죄의 만에 하나라도 응징(膺懲)이 되었을 것이다. 자사(藉使-가사) 창무가 정범(正犯)임이 분명하고, 창현(昌賢)이 공범(共犯)인 경우, 창현은 살고 창무는 죽는다면 '가족이 공범한 경우에 존장(尊長)에게만 법을 적용한다'는 규정에도 어긋난다. 앞뒤를 참작하여 '유경(惟輕-의심스런 죄는 가볍게 한다)'에 돌리면 막힌 것은 소통(疏通)하여 조화(調和)로 유도하는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 것이므로 창무에게 일차의 형장(刑杖)을 가하여 정배하게 하라 하였다.
신(臣)은 삼가 상고하여 보면, 선조(先朝)의 호생지덕(好生之德-왕의 인애(仁愛)로 살상()을 않으려는 마음)으로, 두 범인이 관련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그 정범(正犯)을 바꾸었으며, 바꾼 뒤에는 차범(次犯)을 정범으로 하고 작처(酌處-죄의 경중을 참작하여 처리함)하게 하여 마침내 두 사람 모두를 살리게 하였으니 이는 암묵(暗默)한 가운데 법을 운용(運用)하는 은미(隱微)한 권한(權限)입니다. 소창무는 먼저 차범으로 정배(定配)하고, 곧 정범으로 하여서 도로 가두었으니 이는 천하의 역경(逆境-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성인(聖人)이 이에 그 행위를 암묵한 가운데 관찰하여 창무로 하여금 간절하게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 하나하나 그 진실을 밝히게 한다면 죽음에서 모면될 수 없다 하더라도 특히 은혜를 느끼고 덕(德)을 알아서 형제간에 서로 죽겠다고 다투는 뜻이 있다는 점에서 처분(處分)이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누설(縲絏-묶이어 갇힘)에 있는 자로서는 마땅히 이 뜻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출처] [408] 祥刑追議二 首從之別十五|작성자 새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