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전
[ 龍門傳 ]| 저자 | 작자 미상 |
|---|---|
| 국가 | 한국 |
| 분야 | 소설 |
| 해설자 | 신해진(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소대성전>의 속편인 <용문전>이 지닌 특징과 그 변주
<소대성전>은 명나라 때 주인공 소대성이 어려서부터 고난을 겪다가 위기에 빠진 천자를 구한 공으로 왕이 되고, 고난을 겪던 시절에 혼약한 이채봉을 왕비로 맞아들여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이처럼 단순한 줄거리의 <소대성전>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었음은 이옥(李鈺, 1760∼1813)의 <언패(諺稗)>에서의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전기수(傳奇叟)>에서, 이 작품이 조선 후기에 언문 소설을 읽어 주는 것을 업으로 삼아 돈을 벌었던 강독사(講讀師)들의 주요 레퍼토리의 하나였음을 밝히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또한 정조 18년(1794) 대마도 역관 오다 이쿠고로(小田幾五郞, 1754∼1831)의 ≪상서기문(象胥記聞)≫의 조선 소설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용문전>이 그러한 <소대성전>의 속편임은 분명하다. 완판본 <소대성전>의 말미에 “니 뒤말은 하권 <용문젼>을 사다 보소서”라고 명시된 것을 보면, <용문전>은 <소대성전>이 이미 두꺼운 독자층을 형성한 뒤, 그 흥행과 후광에 기대어 지어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대성전>과 <용문전>이 합본되어 있는 점, <용문전> 서두에 소대성과 관련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게다가 <소대성전>의 등장인물과 그 자손들이 <용문전>에 등장해 사건을 전개해 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용문전>이 <소대성전>의 속편이라고 해서 전작(前作)의 구성 체계나 작품 의도를 꼭 그대로 이어받은 것만은 아니다. 주인공이 <소대성전>에서는 뜻밖의 재난이나 위기에 의해 부모와 분리되지만, <용문전>에서는 자발적 선택에 의해 부모와 분리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용문전>은 대부분의 영웅소설이 이유야 어떻든 기성세대가 물려준 가문의 몰락이라는 결핍적 요소를 신세대인 자식 세대에서 극복하고 가문의 영광을 회복해 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대개의 영웅소설에서 주인공은 어렸을 때 가문의 몰락으로 버려지는 등 양육ㆍ구출자를 만나기 전까지 극심한 고난을 겪지만, <용문전>은 주인공인 용문의 개인적 고난이 심각하게 서사화되어 있지 않다. 용문의 부친이 물려준 결핍적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영웅으로서의 시련도, 결연 과정에서의 혼사 장애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용문전>에서의 1차 싸움은 ‘선과 악의 혼합 세력’과 ‘선만의 세력’의 싸움이어서 승패를 결정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로운데, 이는 ‘선과 악의 혼합 세력’의 일원이었던 용문이 임금답지 못한 임금을 섬기지 않을 수도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결국 용문은 어진 성군인 명나라 천자를 만난 뒤의 2차 싸움에서 자신이 이탈한 ‘악만의 세력’을 징치함으로써 대업을 이루고 있다. 소위 ‘불사이군(不事二君)’과 ‘택군지현(擇君之賢)’ 사이에서, 물론 중국을 구심점으로 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도에 기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절대적 가치관에서 상대적 가치관으로의 변모가 드러나고 있다.
또한 <용문전> 말미에서 명국의 2세대들과 호국의 3세대들의 대립이 어떻게 전개될지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어 <용문전> 이후의 연작을 예비한 점은, 단지 동일한 제목 하에서가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대하소설의 생산 가능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따라서 <용문전>은 <소대성전>의 속편 또는 하권으로서만 살펴서는 아니 될 것이며, 그 변주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용문전>의 줄거리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완판 38장본 <용문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① 명나라 때 소대성이 북호(北胡)와 서선우(西單于)를 평정하고 노(魯)나라 제후왕(諸侯王)이 되었다. 그런데 멸망한 지 15년도 아니 되어 호왕과 서선우의 아들들이 일어나 부모의 원수인 노왕(魯王) 소대성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이때 호국(胡國) 강변에 사는 용훈 부부가 늦도록 자식이 없음을 한탄해 태항산(太行山) 천축사(天竺寺)에 가서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 어느 날 용훈의 아내 관씨 부인이, ‘천상의 신장(神將)이 득죄해 옥황상제로부터 세상에 내쳐져서 찾아왔다’는 내용의 태몽을 꾸고 잉태한다. 아이를 출산하고 보니, 용의 기상이요, 범의 머리며 곰의 등이요, 용의 허리며 잔나비 팔이요, 소리가 웅장하고 기골이 장대한 남아였다. 이에 용훈이 아이의 이름을 ‘용문’이라 하고, 자를 ‘벽력’이라 했다. 용문이 자라면서 경서(經書)보다 병법 놀이를 좋아하니, 용훈도 기뻐한다.
② 연화(蓮花)선생이 천기(天機)를 보고 호국 땅에 영웅이 태어난 것을 알고서 호국 강변으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만난 ‘오달유’로부터 용문이 있는 곳을 듣고 찾아간다. 연화선생이 7∼8년이면 세상에 용문의 이름을 떨치게 할 것이라며 용훈을 설득해, 용문을 연화산에 데려와서 8년간 천문지리(天文地理)와 육도삼략(六韜三略) 등을 가르친다. 술법(術法)을 다 가르친 연화선생은 용문에게 “아름다운 재주를 세상에 베풀고 어진 성군(聖君)을 만나 대업을 이루라”고 이르며 하산시킨다.
③ 하산한 용문은 어느 날 강변을 걷다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적토마(赤兔馬)를, 또 다른 곳에서 벽도관(碧桃冠)을 쓰고 청룡포(靑龍袍)를 입은 동자(童子)가 지시한 석함(石函) 안에 있던 갑옷과 투구 그리고 용천검(龍泉劍)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용문은 부모님께 곧 영웅이 할거(割據)하는 큰 싸움판이 벌어질 것이라며, 천하를 평정해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칠 기회이니 집을 떠나겠다고 아뢰자, 용훈 부부도 마지못해 허락한다.
④ 호왕과 오국(五國)의 군왕이 서로 합세해 명제(明帝)와 소대성을 쳐서 선왕의 원수를 갚으려고 기병했는데, 문득 천관도사가 호진(胡陣)에 찾아와서 호왕에게 용문을 찾아 선봉장(先鋒將)을 삼으라고 권한다. 호왕이 용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자, 용문이 호진으로 와서 호군을 정비한다. 반면, 영보산 청룡사 노승이 노왕 소대성을 찾아가서 호왕의 일당이 합세해 침략할 것임을 알려 주자, 대성이 호적을 막고자 출병하면서 천자에게 이 사실을 아뢰니, 천자가 설영두와 심회양을 선봉장으로 보낸다. 이들을 합세시켜 연화관에 먼저 도착한 노왕이 연화산에 있는 연화선생을 찾아가 예의를 갖추어 도움을 청하자, 연화선생은 장략과 검술이 뛰어난 손자와 함께 명나라의 군진에 참여한다. 명나라 천자가 연화선생을 맞아 위공으로 삼고 명군을 정비한다.
⑤ 이리하여 명군과 호군이 접전하는데, 대성과 용문이 서로 겨루나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날이 저물자 호진에서 군사를 거두어 일단 물러난다. 물러난 대성이 “지난날에는 손쉽게 호왕과 서선우를 베었지만, 이번 용문만은 쉽게 베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죽을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다행스럽게도 때마침 호진에서 군사를 거두어 살아났다”고 말한다.
⑥ 이에, 연화선생이 동산에 올라서 재(齋)를 올리며 용문이 마음을 바꾸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그리고 연화선생은 심회양을 오룡산에 매복케 하고, 또 한편으로 설영두를 기림이란 수풀에 매복케 해서 용문이 그곳에 오면 자신의 편지를 전하게 한다. 한편, 용문은 접전하며 대성이 천하를 평정할 기상을 지닌 것을 알게 되자, 호왕의 그릇이 작은 것에 실망하고 경솔히 호왕에게 투신한 것을 자탄한다. 그렇지만 명군을 야습하기 위해 서선왕 중달과 함께 기림이란 수풀에 이르렀다가, 연화선생에게 수학했던 동문생으로 가장한 설영두로부터 연화선생의 친필 서한을 전해 받는다. 편지를 전해 받은 용문은 연화선생 문하에서 설영두와 서로 만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의심을 갖지만, 설영두의 설명을 듣고서 의심을 거둔다. 그리고 전해 받은 편지에서 명나라 천자를 섬기라는 연화선생의 회유에, 용문은 호국 백성으로서 그 임금을 해할 수는 없다면서 초야에 묻히고자 한다. 설영두가 이런 용문을 설득한다. 그러자 용문이 연화선생에게 전할 답장을 설영두에게 주며, 자신이 산중으로 피할 것인데 그때 호국 도성을 치라고 일러 준다. 그리하여 심회양이 호국을 기습해 도성을 빼앗는다. 용문도 밤을 이용해 명국에 들어가 투항했지만 초야에 묻히기를 고집하는데, 그런 용문을 연화선생과 노왕 소대성이 설복해 명진(明陣)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는 장중한 의식 속에서, 천자로부터 ‘대명국 대사마 대장군’에 임명된다.
⑦ 호왕은 용문이 명나라에 투항한 것을 알고,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서선왕 중달을 선봉장으로 삼고 서적왕 호척을 좌장군으로 삼아 명나라를 공격한다. 이때 대명국 대사마 대장군이 된 용문은 설영두를 선봉장으로 삼아 황천강 가에 매복해 있다가 호적이 오면 습격해 강물 속으로 몰아넣으라고 이르고, 심회양에게는 월출산에 복병했다가 호적이 들이닥치면 일시에 북을 치며 소리 지르면서 짓치라 이르고, 수경과 설만태에게는 천관산 앞에 있는 만수천의 상류를 모래 포대로 막고 있다가 호적이 그 물을 건너려 하면 일시에 트라 이르고, 또 한 장수에게는 천관산의 소양목이란 곳에서 화약과 염초를 준비해 복병했다가 호적이 본진에서 대패해 들거든 일시에 불을 지르라고 이른다.
⑧ 한편, 호왕은 용문의 아버지 용훈을 잡아다가 용문이 돌아오도록 편지를 쓰라고 한다. 그러나 용훈은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음은 임금부터 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라며 영천수가 가까우면 자신의 귀를 씻고자 한다면서 호왕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지만 호왕은 용문의 후환이 두려워 용훈을 상객(上客) 대접을 하며 구석진 곳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천관도사가 용훈의 필적을 위조해 편지를 써서 화살에 꽂아 용문에게 보낸다. 용문이 이 편지를 보고 근심하자, 연화선생이 편지가 위조되었음을 알려 준다.
⑨ 이튿날, 용문이 엄신갑을 입고 황룡 투구를 쓰고 용천검과 삼백 근 철퇴를 들고 적토마를 타고 적진으로 달려드니 호국 장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다, 노왕이 후면을 쳐들어가자 호국의 주검이 태산 같았다. 호왕은 선왕의 아들 두 형제를 거느리고 월출산으로 달아났으나, 명군이 복병하고 있다가 시석(矢石)으로 치는지라 어찌어찌해 활인암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렇지만 호왕은 그곳에 있는 노승으로부터, 익성이었던 자신이 명나라 천자가 된 자미성을 해하려 했으므로 동해의 광덕왕 셋째 아들인 노왕 소대성에게 죽을 운명임을 알게 된다. 결국 호왕이 있는 곳을 알고 찾으러 온 소대성에게 호왕은 죽음을 맞는다. 한편, 용문은 천관도사를 찾는다. 천관도사는 호군을 데리고 천관산에 들었다가 명군이 화약과 염초로 불을 지르자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함께 살아남은 호군들과 만수천을 건너는데 또 명군이 태백 여울목을 일시에 터놓자 호군은 다 죽고 천관도사만 살아남는다. 그러나 뒤쫓아 온 용문에게 잡혀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용문은 공중으로부터 죽이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서 천관도사의 등에다 ‘호국 대역부도 천관도사’라고만 쓰고 놓아준다.
⑩ 천자가 연화선생을 위공 겸 좌승상에 봉하고, 용문은 병마도 총독 겸 대사마 대장군에다 걸령후를 삼고, 용훈을 호국 제후왕에 봉하고, 설영두를 장사왕에 봉하고, 심회양을 영천왕에 봉하고, 노왕은 일목왕을 겸하게 했다. 시국은 태평성대여서 격양가를 일삼는다.
⑪ 한편, 호국이 멸망하는 가운데 선왕의 손자 호백이 있었는데, 조부 형제와 아버지 삼 형제의 원수 갚기만을 생각했다. 또한 서선우의 손자 삼 형제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검각산의 도인으로부터 술법을 배운다. 반면, 노왕 소대성의 아들 칠 형제도 소대성의 훈계를 받들며 황석공의 병서와 육도삼략을 숙독했다. 마침 노왕에게는 계춘이란 딸이 있었는데, 용문과 결혼시킨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기골이 장대하니, 천자가 ‘천하 대도독 총병대장군 용골’이라 했다. 천하를 평정할 만한 용맹을 지닌 이 아이가 10세가 되었을 때, 노왕은 70세로 운명한다. 아들 칠 형제와 용문 부부가 애통해하고, 천자가 친히 호상해 여릉에 장사 지내는 것으로 결구(結構)되어 있다.
<용문전>의 서사적 골격 양상
앞서 소개한 줄거리의 ①을 보면, 작품의 서두에 <소대성전>의 등장인물과 그 자손들이 사건 전개의 주요한 축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른바 명국(明國)과 호국(胡國) 간의 대립이, <소대성전>에서는 1세대의 인물이라 해야 할 소대성에 의해 해소된 것으로 보였지만 <용문전>에서는 패배했던 호국의 2세대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때에 호국의 용훈 부부가 태항산 천축사에 가서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빈 후, 옥황상제에게 득죄해 인간계에 적강하게 된 존재인 천상의 신장(神將)을 잉태할 것임을 암시하는 태몽을 통해 용문이 출생한 것은, 비범한 인물이 기자치성(祈子致誠)에 의해 태어나는 영웅소설의 탄생 대목과 통한다. 뿐만 아니라, 용문이 태어났을 때의 형상과 그가 자라면서 경서보다 병법 놀이를 좋아했다는 점도 여느 영웅소설에서 나타나는, 주인공이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드러내는 대목과 통한다.
그러나 ②에서 용문이 ‘부모와 분리’된다는 측면에서는 <소대성전>과 유사하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뜻밖의 재난이나 위기에 부딪쳐 시련을 겪는 것이 아니라, 천기를 보고 영웅의 탄생을 알고서 호국 땅으로 찾아간 연화선생이 용문을 연화산에 데려오고자 했기 때문이다. 곧, 연화선생은 7∼8년이면 세상에 용문의 이름을 떨치게 할 것이라며 용훈을 설득해 용문을 연화산에 데려가서 천문지리와 육도삼략을 가르친다. 이로써 용문은 비범한 능력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병법과 도술까지도 익힌 인물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른 영웅소설에서는 도승(道僧)이 어떤 계기에 의해 버려진 주인공을 구출해 적대 세력과 맞설 수 있는 능력을 연마시키는 데 비해, 연화선생은 천기를 살피다 호국 땅에 영웅이 탄생한 것을 알고 직접 찾아가 제자로 삼는다는 점이다.
③은 용문이 비범한 능력을 지녔고, 병법과 도술까지 모두 익힌 영웅적 인물이 갖추어야 할 적토마, 갑옷과 투구, 용천검 등을 차례로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리하여 영웅이 할거하는 큰 싸움판이 벌어질 쯤 용문은 천하를 평정해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겠다며 집을 떠난다. 곧, 출장입상(出將入相)의 포부를 펼쳐 보려는 용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부모와 분리’된다는 점이 <소대성전>과 또한 다르다.
④는 <소대성전>에서 소대성에 의해 해소된 것으로 보였던 명국과 호국의 대립이 마침내 호국의 2세대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호국은 천관도사의 권유로 용문을 선봉장으로 합세시켜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진을 가다듬고 기병하는 한편, 명국은 청룡사 노승이 소대성을 찾아가 호국의 침략 사실을 알려 줌으로써 군진을 정비하게 된다. 소대성은 곧바로 천자에게 이 사실을 아뢰고, 연화선생을 찾아가 명나라 군진에 참여케 한다. 작품에는 양국이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 다시 말해 연화선생을 모시는 과정과 용문을 참여시키는 과정이, 군담(軍談) 부분보다도 더 장황하게 서술되어 있다.
⑤를 보면 이렇게 전열을 정비한 양국이 끝내 싸움을 하게 되는데, 이 전쟁은 상대를 멸망으로 이르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영웅소설의 군담과는 다르다. 곧, 이 1차 싸움은 중원의 국가인 명나라가 직면한 위기를 해소하는 데에 기여하지 않는다. 이 싸움은 ‘악(惡)’과 ‘선(善)’의 싸움이 될 수 없었다. 용문이 호국에 있는 한, 그것은 ‘선과 악의 혼합 세력’과 ‘선만의 세력’의 싸움이 된다. 그래서 비록 이 싸움에서 명국에서는 임회덕과 석윤, 호국에서는 기려왕 호철 등이 전사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용문과 소대성이 한번 겨루면서 서로를 탐색하는 기능의 싸움에 주안점이 주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용문과 소대성이 서로 겨루는 가운데, 용문은 호왕의 그릇은 작고 소대성의 기상은 천하를 평정할 만한 것임을 알아보았고, 명국의 군진으로 돌아온 소대성도 “용문만은 쉽게 벨 수 없었고 오히려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때마침 호국이 군사를 거두는 바람에 살아났다”고 하는 데서 확인된다. 좀 더 세밀히 살피면, 이 싸움은 용문을 명국의 군진에 참여케 하도록 회유하려는 근본적 동기에 예속되어 있었던 셈이다.
⑥은 연화선생이 설영두에게 자신의 편지를 용문에게 전하도록 하는 대목이다. 연화선생의 친필 서한은 용문에게 명나라 천자를 섬기라는 내용의 편지인데, 용문은 호국 백성으로 그 임금을 해할 수 없다며 일단 거절한다. 그런데 작품의 서두 부분에서 용문이 연화선생에게 천문지리와 육도삼략을 모두 익히고 하산할 때, 연화선생이 용문에게 “아름다운 재주를 세상에 베풀고 어진 성군을 만나 대업을 이루라”고 했던 당부의 말이 이 대목에 이르러 복선 기능을 담당한다. 용문에게 임금답지 못한 임금을 섬기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 할 것이냐, 어진 성군을 만나 대업을 이루는 ‘택군지현(擇君之賢)’을 발휘할 것이냐, 그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결국 용문은 어진 성군으로서 명나라 천자를 선택함으로써 천자로부터 ‘대명국 대사마 대장군’에 임명된다. ④에서 호국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용문을 선봉장으로 삼는 대목이 장황하게 묘사되었지만 그 인물이 종국에는 명나라를 섬기고 있는 만큼, 그 장황한 묘사는 철저하리만큼 중국을 구심점으로 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입장에서 작품 내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⑦은 용문을 잃은 호왕이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명나라를 공격하려는 장면이다. 이를 철저하게 대비하는 용문의 모습은 용문이 그의 선택에 추호도 흔들림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선택이 ‘악’이 아니라 ‘선’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⑧이다. 즉 호왕이 용문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용문의 아버지 용훈을 잡아다가 편지를 쓰라고 강제하지만, 용훈은 조금도 굽힘이 없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음은 임금부터 위반하기 때문이다”며 “영천수가 가까우면 자신의 귀를 씻고자 한다”고 하는 대목에서 철저히 뒷받침되고 있다. 이제, 이 대목에 이르러 ‘선’과 ‘악’은 판연히 구획되는지라, 명국과 호국은 서로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⑨는 용문이 선봉장이 되고 소대성이 후군장이 된 명군이 호군을 파죽지세로 섬멸하는 대목이다. 호왕은 쫓기다가 활인암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있는 노승으로부터 익성이었던 자신이 명나라 천자가 된 자미성을 해하려 했으므로 동해의 광덕왕 셋째 아들인 소대성에게 죽을 운명임을 알게 되고, 실제로 소대성에게 죽는다. 이 대목은 영웅소설의 기저에 깔린 하늘에 의한 예정된 운명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는 것이자, 권선징악에 입각한 철저한 응징이다. 용문도 천관도사를 사로잡아 죽이려 하는데, 공중으로부터 죽이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 천관도사의 등에다 ‘호국 대역부도 천관도사’라 쓰고 놓아준다.
⑩은 ①에서 ⑨까지 논공행상을 벌이는 일종의 후일담이다. 일반적으로는 이 대목에서 작품은 결구된다. 그런데 <용문전>은 ⑪ 대목이 있어 이채롭다. 호국의 3세대들이 조부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검각산의 도인으로부터 술법을 배우는가 하면, 소대성의 2세대들은 황석공의 병서와 육도삼략을 숙독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용문은 소대성의 딸 계춘과 결혼해 용골을 낳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호국 3세대들과 명국의 2세대들 간의 대립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용문전> 이후에도 새로운 제명의 작품이 생산될 것임이 예고된 것이다. 작가는 일종의 연작을 생각했으나, 결국 <용문전> 이후의 작품은 생산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