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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해설

이광수 작품집 -한국 이광수(李光洙, 1892-1950)

작성자낙민|작성시간16.11.25|조회수797 목록 댓글 0

이광수 작품집

저자 이광수(, 1892-1950)
국가 한국
분야 소설
해설자 김종회(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광수의 문학 세계

춘원 이광수가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크고 중요해 기념비적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그를 대상으로 한 논의는 그 어떤 작가보다 많으며, 그의 출세작이자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라 평가받고 있는 ≪무정≫은 발표된 지 9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독자들로부터 애독되고 있다.
이광수는 소설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분명 문제적 작가다. 그는 개화기 세대의 계몽사상가로서 민족의식을 주창하고 숙명론에 물든 인생관의 탈피와 자유연애주의의 신장을 계도하는 한편,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과 관념 편향의 오랜 관습을 타파했다. 따라서 그는 우리 문학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며, 또한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를 최상급의 작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평가받을 만한 점을 다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 흔히 목도할 수 있는 성격, 즉 구성상의 일관성 결여라든지 치명적인 단처로 비판되는 역사의식의 실종 및 개인적 윤리와 사회적 윤리의 혼동 등의 결함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결함은 그가 이전의 고전소설과는 달리 새로운 소설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으로 자연스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근시안적 오판에 의거한 친일적인 문필활동과 행적은 이러한 관용의 평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이 친일 행각이며, 이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의 두 갈래로 엇갈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그가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국 근대 장편소설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무정≫의 문학적 의의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춘원의 장편소설 ≪무정≫은 당시 총독부 기관지이며 유일한 국한문 신문이었던 <매일신보>에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총 126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이 작품은 6월 28일부터 7월 말까지의 약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전 소설들이 대개 주인공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했던 것과 달리 ≪무정≫은 한 달 가량의 시간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소설들과 변별점을 지닐 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개인의 운명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대 소설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이형식, 박영채, 김선형이라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랑 문제와 자아 각성의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다. 이광수에게 있어서 ‘사랑’은 단순히 서사적 모티브라기보다 그 자체로서 계몽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이광수가 끊임없이 주창하고 있는 ‘자유연애’는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이자 근대성의 핵심이었고,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계몽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의 이 같은 ‘자유연애’ 사상은 관습적인 결혼이나 연애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과히 혁신적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이러한 사상은 하나의 계몽운동이자 인본주의의 주창으로 볼 수 있으며, ≪무정≫에 나타나는 형식과 영채, 형식과 선형의 사랑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형식과 영채는 어린 시절 영채의 아버지이자 형식의 은사인 박응진이 정해준 서로의 배필로 구식 사랑을 보여주고, 형식과 선형은 선형의 아버지 김 장로가 영향을 많이 미치긴 했지만 젊은 두 남녀가 서로를 배필로 결정한 신식 사랑을 보여준다. 이는 ≪무정≫ 식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한문식’, 후자는 ‘영문식’ 사랑이다. 형식은 결국 ‘영문식’ 사랑을 선택하는데, 영채가 사라지게 됨으로써 형식이 선형을 선택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유연애’ 사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형식이 선형에게 “션형 씨는 저를 사랑함닛가?”라고 묻고 사랑이 없는 약혼은 무효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광수의 ‘자유연애’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광수가 ≪무정≫을 통해 ‘자유연애’ 사상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은 자아에 대한 각성이다. 그가 이 작품에서 ‘자유연애’를 강조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을 구시대의 윤리적ㆍ관습적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다면, 이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자아 찾기 혹은 자기 발견이다. ≪무정≫은 이형식과 박영채라는 두 인물의 개인적 삶을 통해 이들이 각자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자기 발견의 과정을 보여준다. 자아에 대한 인식 및 각성이 근대적인 인물이 갖추어야 할 속성이라면, 이 두 인물은 그러한 속성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이형식은 ‘자아 찾기’의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처음부터 자아를 인식하고 있는 인물로 보이며, 박영채라는 인물이 오히려 그 과정을 보다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형식이 작품 말미에서 영채, 선형, 병욱 등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나 각성된 자기 인식을 통해 어떠한 문제를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것은 거의 없다. 형식의 경우 누군가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거나 운 좋게 상황을 모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박영채는 자신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기생이 되고, 정절을 빼앗기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선택하고 이후 외국 유학을 결정하기까지의 모습은 자기 발견을 통해 근대적 인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형식보다 박영채가 보다 더 입체적 인물로, 근대소설 속 인물에 부합된다 하겠다.

≪무정≫은 이러한 근대적인 인물을 창조해 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이광수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순 한글로 씌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이 작품에서는 순 한글 문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한자를 사용할 경우 괄호 안에 넣어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 국한문 혼용체로 씌어진 그전의 작품들과 변별된다. 또한 이광수의 문장은 고대 소설 투의 문장에서 벗어나 종결어미 ‘−다’를 쓰거나 현재 진행형, 과거형 등을 정확하게 사용하면서 세련된 언문일치의 문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무정≫은 이형식, 김선형, 김병욱 등과 같은 인텔리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당시 민중의식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고, 관념적이고 이상주의적으로 계몽사상을 주창함으로써 대중과 동떨어져 있다는 결함도 지니고 있다.
흔히 이광수는 장편작가로 평가된다. 그러다보니 그의 단편은 장편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단편의 수에 비해 장편이 더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편들보다 장편들이 미학적 성취도가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초기 단편들이 신소설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뿐더러 습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백철의 비평이나 이광수 스스로 자신의 단편을 아직 불완전하고 미숙한 작품이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평가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단편 역시 당시로서는 선구적이었으며 가장 현대적이고 참신한 문장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편소설이 많지 않았던 시대에 그 정도의 소설 형식을 취했다는 점만으로도 선구자적인 공적이 아닐 수 없다.
1917년 6월 <청춘> 8호에 발표된 단편 <소년의 비애>는 ≪무정≫과 같은 해에 발표된 작품으로, ≪무정≫에 나타난 구시대적 사랑 및 결혼에 대한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종매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문호가 아끼고 사랑하던 난수의 결혼 문제에 접근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문호는 종매들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 난수가 제일 뛰어났고 문호는 그런 난수를 귀애하였다. 그래서 문호는 난수를 공부시키고 싶어 했지만, 난수의 아버지는 “계집애가 공부는 해서 무엇”하냐며 난수 나이 십육 세가 되자 부호의 자제와 약혼시킨다. 그런데 그 자제가 천치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문호는 난수의 아버지에게 간하여 파혼할 것을 제안하지만 난수의 아버지는 양반 체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결국 혼인날 신랑을 맞은 사람들은 소문대로 신랑이 천치임에 크게 실망하고, 문호는 난수에게 도망갈 것을 권하지만 난수 역시 이를 거절하고 천치 신랑에게 가버림으로써 문호가 크게 낙담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무정≫과 달리 국한문 혼용체로 씌어졌으며 ≪무정≫에 비해 소설적 구성이나 문장이 미숙하고 거칠뿐더러 주제도 선명하지 못하다. 하지만 ≪무정≫에서 ‘자유연애’ 사상을 통해 계몽주의 사상을 보여주려 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조혼의 악습을 문제 삼음으로써 당시 혼인 제도나 사회의 인습과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작가의 계몽주의 정신이 짙게 배어난다. 뿐만 아니라 ≪무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신교육의 필요성 역시 이 작품에서도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또한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소년 시절에 그의 종매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사실을 소설화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을 체험할 당시 이광수는 얼굴도 모르는 채 부모의 결정에 따라 혼인해야만 하는 당시 결혼 풍습과 한 사람의 삶보다 양반의 체면치레가 더 중요했던 당시 풍속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저항감이 <소년의 비애>, ≪무정≫ 등의 작품을 잉태하게 했음은 물론이며, 이광수가 그의 많은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숙명론적 인생관으로부터의 탈피나 조혼 타파 혹은 관습적 결혼 문제 등에 대한 비판을 배태하게 하였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 시기 이광수의 사상이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소설적 형상화에 있어서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일 뿐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 묘사가 미숙해 소설로써의 미학성은 미흡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 당시로서는 권선징악적이고 줄거리 위주의 신소설적 성격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세계를 다루려 했다는 점에서 가히 선구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참조어
무정, 소년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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