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명 작품집
저자 | 이북명(李北鳴, 19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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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한국 |
분야 | 소설 |
해설자 | 이정선(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
193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북명은 구체적인 현장성을 담지 못했던 여타의 지식인 카프 작가들과 달리, ‘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의 직공 생활을 바탕으로 열악한 작업 환경과 산업재해 문제,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등을 현실성 있게 표현해 ‘조선 최초의 노동자 작가’로 불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남측에서는 1980년대의 노동 문학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남측 작가들의 노동 소설과 이북명의 공장 체험 소설들이 함께 논의되기도 했다.
이북명의 공장 배경 소설들은 열악한 작업 현장을 그리다 보니 그러한 억압적 노동을 강요하는 자본가와의 대립 구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그의 소설 속에서는 자본가뿐 아니라 그 자본가의 논리를 현장에서 관철시키는 하급 관리인 감독도 일본인이기 때문에, 당시 식민지 노동자의 현실이 계급 모순과 함께 민족 모순이라는 이중 모순의 질곡 속에 놓여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북명은 초기의 공장 소설을 거쳐 도시 빈민과 소시민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일제 말에는 친일적 요소가 나타나는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다시 초기의 공장 소설과 연계된 작품을 쓰는데, 이때는 당시의 북측의 사회 상황에 맞춰 수령을 중심으로 한 당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북명의 초기 공장 소설인 <질소비료공장>(1932), <암모니아 탕크>(1932), <여공>(1933), <민보의 생활표>(1935)와, 이와는 조금 다른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답싸리>(1937), 그리고 친일적 요소를 보이는 <빙원>(1942) 등을 통해 해방 이전의 이북명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질소비료공장>1)은 한설야의 추천으로 <조선일보>에 실리기 시작했지만, 단 2회(1932. 5. 29, 31) 연재 만에 게재 금지를 당하고 만 작품이다. 이북명은 3년여 간의 ‘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 시간의 짬을 이용해 이 소설을 창작했지만, 이 때문에 공장에서 쫓겨나고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이후에 이 작품은 일본의 좌익 계통 문학잡지 <문학평론>에 <초진(初陣)>이란 제목으로 번역, 전재되었다(1935. 5).2) 그 후 이 작품의 원본은 잃어버리고 <초진>을 번역해 북측에서 다시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질소비료공장>의 모습이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3)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직공 채용 시험은 8~9명의 경쟁자를 물리쳐야만 합격할 수 있다. 이 공장의 직공인 문길은 이 공장에 오기 전에 촌 씨름판에서 총각상을 받기도 한 건장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공기가 빠진 고무공처럼 탄력을 잃’은 육체에 괴로운 기침이 끊이지를 않는다. 그래도 혹시라도 일자리를 잃게 될까 봐 병원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노동은 신성하다.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는 신이 복을 내려준다”는 명구를 철석같이 믿고 열심히 일한 결과다. 문길은 몸이 너무나 괴로워도 하루를 쉬면 온 식구가 하루를 굶어야 한다는 사실에 이를 악물고 버틴다. 철식이나 상호 등이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꾸려보려 애쓰지만 문길은 쉽게 동조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던 공장 병원 의사가 춘기 신체검사에서 문길에게 노동 부적격자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문길은 건강을 이유로 해고된다. 문길처럼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하루아침에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50명이나 된다. 철식이와 상호 등은 ‘해고반대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문길은 여기에 힘을 보탠다. 많은 노동자들의 힘을 모으고자 ‘삐라’를 돌리는데, 이 사건으로 문길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붙들려 갔다가 모진 고문을 받고 결국 사망하고 만다.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하나의 시발점으로 해서 그의 장례식 날 대규모의 ‘메이데이’ 시위를 벌인다. 문길의 상여는 동료 노동자들의 시위와 노래 속에 묘지를 향해 나아간다.
발표 당시에 이 작품은 실제 체험을 통한 현실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카프 작가들의 여타 작품들이 지니는 관념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극찬받기도 하고(박승극), 반대로 체험에 갇혀 있다는 점(윤고종), “정치적 수준이 모두 저하하다”(김남천)는 점 등의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노동자들의 암울한 삶을 그리지만 첨예한 계급모순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현실 체험을 바탕으로 비료가 생산되는 공정과 열악한 작업 환경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그 생생한 현장감, 현실감은 당시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 모순이나 그것을 떨치고자 의식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어서는 노동자의 모습이 형상화되지 않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노동 소설이 보여주었던 추상성과 도식성을 극복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다가 폐환이라는 직업병을 얻게 된 문길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 대한 증오를 품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유약한 모습이지만, 이는 작은 친목회 조직조차 허가되지 않아 개개인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황 속에 놓인 당시 노동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질소비료공장>을 비롯해 이북명의 공장 체험 소설들은 산업재해의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암모니아 탕크>(1932)는 <질소비료공장>이 일제에 의해 연재가 중단된 이후 처음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역시 산업재해를 다루고 있다. 일본인 감독은 암모니아 냄새나 탄산가스 등이 폐에 이롭다는 기만적인 말을 하며 별다른 보호 장비도 없이 위험한 노동 현장으로 노동자들을 내몬다. 감독의 말을 믿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결국 질식해 쓰러지는 등 매일 2, 3명의 부상자가 속출한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쓰러지자 노동자들이 분노를 나타내는데, 이에 대해서 ‘분노한 노동자들의 반응이 단순히 감정적이고 순간적인 분노의 폭발로 생기는 차원에서 끝’나고 있으며, ‘의식의 각성, 조직적인 실천을 준비하는 노동자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짧은 삽화 정도의 이 소설이 갖는 한계’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여공>(1933) 역시 질소비료공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여자 노동자를 중심인물로 내세운 점이 특이하다. 여성이 비료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생산된 비료를 포대에 담아 정리하는 것이다. 이는 <질소비료공장>이나 <암모니아 탕크>에서 그려진 작업에 비해 위험성은 적은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본의 착취는 존재한다. 도급제를 통해서 작업량이 부당하게 계속 늘어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때리고 여성 노동자를 성희롱하는 일본인 감독의 모습은 자본의 횡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노동자들이 도급제 내용을 현실화할 것과 일본인 감독을 징계할 것을 요구하는 단체 행동을 벌이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정희’가 일본인 감독의 성희롱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모습은, 그 개인의 굳은 성품 때문인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작품의 결말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건대, 자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나온 대처라고 볼 수도 있다.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힘겹게 사는 입장에서 공장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면 일본인 감독의 감언이설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정희와 창수, 나벌과 봉식 등 남녀 노동자들 간의 연애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소설의 재미도 더하려니와 노동자들의 연대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일련의 공장 체험 소설들에서는 이중의 대립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즉,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계급 대립 외에도 당시의 자본가가 일제라는 점에서 민족 대립도 드러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남측에서 활발했던 노동 문학의 논의에서는 정치적인 의식을 소유한 선진 노동자의 형상이나, 조직적인 투쟁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한 기준에서 보자면 이북명의 작품들은 노동자의 전망을 보여주기에는 미흡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망을 보여준다는 미명 아래 현실을 벗어나는 작품을 그리는 것보다는 정직하다고 하겠다.
<민보의 생활표>(1935)는 주인공이 공장에서 일한다는 점에서는 앞서의 작품들과 동일하지만, 공장 안의 열악한 작업 환경보다는 공장 밖 노동자의 일상생활의 비참함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주인공 민보는 한 달 급료 24원 95전으로 처자식과 고향의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다. 힘겨운 야근까지 빠지지 않고 일해도 매달 빚을 질 수밖에 없는 민보에게 있어서, 일감이 줄어 야근이 줄게 된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이다. 누더기 옷을 입고 사는 아내에게 옷 한 벌을 사줄 수도 없고, 술 한 잔도 마음 편히 사 마실 수 없는 그의 황폐한 삶은 구체적인 ‘생활표(지출 명세서)’ 제시로 실감 나게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는 땅 주인으로부터 일할 사람이 없으니 소작권을 떼겠다는 위협을 받는다. 결국 민보는 공장을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고향에서의 삶이 소작농의 삶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미 그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공장으로 향했다가 실패하고 돌아간다는 점에서 민보의 귀농은 암울하기만 하다. 땅에서도 공장에서도 삶의 활로가 보이지 않는 당시 노동자 농민의 삶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북명은 두 번의 투옥 이후 공장 체험을 형상화하는 것을 자제하게 된다. 이후에는 노동자 이외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한다. <답싸리>(1937)는 S제방 밑에 자리 잡은 빈민촌에 사는 도시 빈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 방천을 갈아 답싸리(댑싸리)와 호박 모를 심는 억척스러운 호룡 영감과 그의 아들이 일하는 백화점의 주인의 삶이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도시를 배경으로 빈부의 격차가 이미 심해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1958년에 북측에서 간행된 ≪리북명 단편선집≫에는 이 작품이 결말이 바뀌어 있다. 발표 당시에는, 호룡 영감의 아들 경덕이가 아버지를 물었던 백화점 주인집 개를 아버지가 잡숫도록 유인해 온 뒤, 집을 나가 헤매다가 주인집 아들에게 잡히는 것으로 끝이 나 있다. 그러나 북측 간행본에는 집을 나간 뒤 며칠 만에 경덕이 돌아와서는, 비료공장에 취직했다면서 공장 쪽으로 이사하자고 한다. 아마도 공업화가 이뤄지고 있던 북측의 당대 상황에 발맞추어 주인공의 삶을 좀 더 희망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의식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북명의 일제 말기의 작품들은 또 다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일제의 강력한 사상 통제나 탄압 때문에 많은 문인들이 문학을 포기하거나 관념론적인 미학에 빠지거나 혹은 친일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북명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빙원>(1942)은 C수력발전소 사무소 기계계에 입사한 최호가 S저수지 제이 언제 일수문 개조 공사를 맡는 이야기다. 혹한의 날씨에 빙상 수송법을 이용해 공사에 필요한 철제 재료들을 운반하는 내용 중에, ‘일심 정력으로 국가를 위한 건설에 참가’하려 하고, “충후의 국민인 여러분은 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용감한 장졸들의 마음을 본받어서 ‘나’라는 것을 버리고 이번 이 공사에 일심 합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며 일꾼들을 독려하는 주인공의 모습 등에서 친일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에 대해 “생산 대중의 노력이 국가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친일적 경향은 극히 우발적”으로 드러날 뿐이고, “기본적으로 생산 대중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이 그 저변에 깔려 있고 그들의 생활이 작품의 주된 대상”이라며 ‘임기응변식의 위장 친일’로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병약한 몸으로 여러 가지 약에 의존하면서 기술자의 역량을 발휘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고자 하는 주인공에 서사가 집중되어 있으며, 그의 인식이 ‘충후의 국민’임에 대해 일말의 갈등이 없기 때문에 친일의 논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해방 이후 이북명은 북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하는데, 남측에서는 이북명의 해방 이후의 작품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다. 단편 <로동 일가>(1947), 장편 ≪당의 아들≫(1961), ≪등대≫(1975) 등의 해방 이후 작품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노동 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인민경제계획이나 천리마운동, 김일성 중심의 당파성 구현 등 북측의 당대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북한 문학사의 전개 과정에 그대로 대응되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각주
- 1) 흔히 이 작품은 이북명의 등단작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1958년에 북측에서 간행된 ≪리북명 단편선집≫ 말미에 ‘후기를 대신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실려 있는 <공장은 나의 작가 수업의 대학이였다>라는 이북명 자신의 글에 따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질소비료공장> 이전에도 발표한 글이 없지 않지만, “훌륭한 스승의 지도에 고무되면서 공장의 기계 옆에서 고된 로동의 짬을 리용하여 창작한” 이 작품을 자신이나 카프의 선배 작가들 그리고 독자들도 자신의 처녀작으로 인정한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의 등단작 개념과는 좀 차이가 있으므로 <질소비료공장> 이전에 발표한 작품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비로소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이것이 ‘이북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첫 번째 작품이기는 하다.
- 2) 이 작품은 중국에서도 1936년 3월에 <역문>이란 잡지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 3)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선일보>에는 단 2회만이 게재되었을 뿐이므로, 여기서 밝히는 작품의 줄거리는 일본 잡지에 실렸던 <초진>을 번역해 1957년에 북측에서 출간된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김재용에 의하면 <초진>보다 북측에서 간행된 작품이 묘사에 있어 더 상세하고 구체적이라고 한다(<‘질소비료공장’에 대하여>, <한국문학>, 1989년, 11월호 참고). <조선일보> 판과 북측 판 사이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변화가 있다. ‘문호’는 ‘문길’로, ‘철호’는 ‘철식’으로 바뀌어 있다.
- 참조어
- 질소비료공장, 암모니아 탕크, 여공, 민보의 생활표, 답싸리, 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