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시선[ 李賀 詩選 ]
| 저자 | 이하(李賀, 790-816) |
|---|---|
| 국가 | 중국 |
| 분야 | 시 |
| 해설자 | 이규일(영동대학교 중국어중국통상학과 전임강사) |
이하(李賀)는 중국 시의 황금기인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안사의 난(755∼763)이 끝나고 국운이 쇠락하기 시작한 시기인데 일반적으로 이때를 중당이라고 부른다. 중당이라는 명칭은 당나라를 초당, 성당, 중당, 만당의 네 시기로 나누는 분기법에서 유래했다. 초당 시기에 유미적이고 황제의 구미에 맞는 시풍이 유행한 후 성당에서는 맹호연, 왕유, 고적, 이백, 두보 등 기라성 같은 대시인들이 활약하면서 친근하고 진솔한 감성을 노래하는 시들이 대거 창작되었다.
그러나 당나라 최대의 전란인 안사의 난을 거치면서 국토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의 생활도 힘겨워지면서 중당 시기에는 이성적이고 현실 비판적인 사회시가 많이 등장한다. 중당 시기의 유명한 시인은 원백시파의 원진과 백거이, 한맹시파의 한유, 맹교 등이 있다. 원백시파의 대표 시인 백거이가 쉽고 통속적인 표현을 선호했던 것에 비해 한맹시파의 대표 시인 한유는 어렵고 기괴한 표현을 선호했다. 감정의 표현이나 묘사가 일상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려운 글자를 즐겨 사용했고, 이가 빠지거나 코를 고는 일까지 시의 소재로 삼았다. 이하는 한유와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으며 시 창작의 특색에서도 한유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이하를 한맹시파의 마지막 주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이하의 화려한 색채미나 유미주의적인 창작 경향은 만당의 시풍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하 시의 특징은 크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하 시의 내용은 사회의 현실과 정치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다. <맹호행(猛虎行)>이나 <안문태수의 노래(雁門太守行)>와 같은 작품은 당시 번진(藩鎭) 세력이 중앙 정권에 대항하면서 잦은 전란이 발생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옥 캐는 늙은이(老夫采玉歌)>나 <느낀 바를 풍자함−하나(感諷五首 其一)>와 같은 작품들은 백성들을 수탈하는 관리들의 횡포를 생생하게 풍자하고 있다. 또 많은 시에서 귀족 자제들의 사치와 문란한 생활을 묘사한 것도 일생을 가난하고 힘없이 살았던 자신의 입장에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들이 모두 같은 스타일로 쓰이지 않았다는 점도 주의할 만하다.
<안문태수의 노래>는 글자의 선택에 있어 매우 세심한 공력을 들인 작품으로 문자 자체의 미감이 매우 뛰어난 문인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옥 캐는 늙은이>나 <느낀 바를 풍자함−하나>는 청중을 앞에 두고 말하는 사람처럼 친근하고 평범한 말투를 구사하면서 필요에 따라 대화체를 사용하기도 하고 인물의 심리나 행동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하는 등 민간 가요의 풍격을 재현하고 있다. 이 점은 이하가 시의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시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성들을 심도 있게 추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하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휘의 선택, 표현의 독창성에 매우 공력을 기울인 시인이다. 이하 이전의 중국 시인들을 보면 평범하고 일상적인 어휘들로 자신의 체험과 감정의 전달에 주력한 시인이 있는 반면 언어와 문자의 미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의 구조와 수사에 주력한 시인들도 있다. 이하의 시는 인공적인 미감에 가깝다.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했다가 나중에 고치고 다듬어 한 편의 시로 완성했다는 일화를 보면 그의 창작 방식을 알 수 있다. 즉흥적으로 단숨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스타일이 아니라 더 뛰어난 표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고치고 다듬는 방식이다. ‘퇴고’라는 말이 있다. 승려이자 시인이었던 가도가 “새는 물가 나무에 잠들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라는 시구를 생각하고 민다[推]는 표현이 좋을지 두드린다[敲] 표현이 좋을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한유의 행차를 만나서 두드린다[敲]는 표현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이후 글자의 표현에 대해 깊이 고심하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부르게 되었다.
가도나 한유나 모두 한맹시파 계열의 시인들이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생활 언어를 지양하고 뛰어난 예술적 표현을 추구하기 위해 고민하는 ‘고음(苦吟)’의 창작 방식이다. 이하 역시 그러하다. <가을이 오다(秋來)>에서 가을의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어스름 등불 아래 귀뚜라미 차가운 울음 하얗게 울린다(衰燈絡緯啼寒素)”고 표현한 구절을 보면 귀뚜라미 소리를 차갑다는 말과 하얗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러한 기법으로 인해 독자들은 귀뚜라미 소리를 연상하면서 차갑고 하얀 이미지가 주는 다양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희미한 등불 아래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시각으로, 청각으로, 촉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찬비에 혼령들은 이 가엾은 서생을 조문한다(雨冷香魂吊書客)”는 구절은 벗이 없어 혼령들의 위로를 받는다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위로가 아니라 죽은 이를 조문할 때 사용하는 조(吊) 자를 사용하여 시인의 고독과 절망을 공포에 닿을 정도로 몰아가고 있다. 병적인 심리 상태에서 표현된 말이기도 하지만, 한 글자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증폭을 추구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빙의 공후인(李憑箜篌引)>에서 음악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여러 기괴한 묘사들, 예를 들면 “돌은 깨지고 놀란 하늘은 가을비를 내린다”거나 “늙은 물고기 물결 위로 펄쩍이고 야윈 용은 춤춘다”는 등의 구절들 역시 언어의 미감에 대한 이하의 집요한 추구를 보여준다. 이하에게 평이한 생활 언어의 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의 일반적인 규칙을 비트는 이러한 기법들은 이하의 독특한 문체로 평가받으며 ‘장길체(長吉體)’라고 불리게 된다. 그가 당시에 유행하던 근체시(近體詩)를 피하고 주로 고시(古詩)나 악부(樂府)의 문체로 시를 쓴 점도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의 개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하 시풍의 또 다른 독특함은 그의 시에 담겨 있는 기이하고 신비한 환상의 세계다. 이하의 시에는 천상 세계의 신선과 선녀, 또는 달 속의 토끼나 두꺼비가 많이 등장한다. <천상에서 부르는 노래(天上謠)>나 <꿈속 천상에 올라(夢天)>는 천상에서 바라본 인간 세상의 모습이 시의 중심 내용이다. 단순히 천상 세계를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 자신이 직접 천상에 올라 인생의 허무함과 세월의 무상함을 전한다. 도사나 무녀가 신에게 제사 지내는 내용의 시도 있다.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제사의 과정은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이하는 신이 강림하여 음식을 흠향하고 갖가지 귀신들이 반응하는 모습까지 눈으로 보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하가 묘사하는 선계의 모습은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한데 그의 기괴한 언어 구사까지 가미되어 더욱 환상적이고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뿐 아니라 역사 속의 일을 시 속에 차용할 때에도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소재를 선호했다. 예를 들면 한 무제가 장생불로를 기원하면서 만들었던 신선 동상의 이야기는 이하 이전의 시인들도 언급한 바 있지만 주로 역사의 흥망성쇠를 말하기 위해 인용되었다. 하지만 이하는 마치 만물에 정령이 있음을 믿는 사람처럼 동상이 황제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묘사했다. “하늘도 감정이 있다면 늙으리라”라는 표현은 동상에게 감정을 부여하고 그 감정에 자신이 몰입하고 동화되지 않았다면 얻기 힘든 구절일 것이다.
또 소소소라는 여인을 시 속에서 자주 언급하는데 소소소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죽은 옛날 기생의 이름이다. 하필 불운하게 죽은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도 이하의 취향이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하는 <소소소의 묘>에서 이 여인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썼다. 그런데 이 여인을 말하기 위한 모티브로 이하는 그녀의 무덤을 선택했다. 사랑은 사람의 일이지만 죽음을 매개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물고 이승과 저승의 구분을 혼란하게 한다. 이하의 정신은 늘 몽환적인 세계를 떠돌고 있었나 보다. 밤에 바라보는 들판에는 어김없이 귀신불이 떠다니고 하늘에는 은하수가 마치 정말 강물인 것처럼 물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이하에게 시간은 수레에 실린 해와 달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활짝 핀 꽃을 보면서 꽃이 웃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하가 이러한 초현실적 세계를 대하는 시각은 단순한 감정이입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27년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한없는 절망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심리 상태가 험괴한 표현이 유행하던 당시의 풍조와 맞물리면서 기이하고 독특한 미감을 형성하지 않았을까. 현실 세계의 바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그 속에서 만족을 얻으려 했던 시인의 천재성은 매혹적인 절망의 꽃을 자신만의 고독한 세계 속에 심었다.
이하의 시가 중국문학사에서 개척한 독자적인 영역은 인생의 비애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이하를 시귀(詩鬼)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단적으로 이하의 시에는 ‘사(死)’ 자가 20번 이상 사용되었고 ‘노(老)’ 자도 50번 이상 사용되었다. 이하의 시에 표현된 서정 자아의 형상은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의 모습과 시간의 흐름을 두려워하는 쇠약한 정신의 청년이다. 이 두 가지 형상은 상반된 모습으로 이하의 마음속에 공존한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만큼 현실에서 받아야 하는 고통이 컸을 것이다. 천상과 영혼의 세계를 동경했던 것도, 저무는 청춘을 슬퍼했던 것도, 행락을 즐기는 소년들을 조롱했던 것도 실현될 수 없는 욕망 때문이었던 것을 우리는 안다. 병약한 신체로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두려워했기에 그가 표현한 시간은 중국 문학사의 유례없는 현상이 되었다. 물리학적으로 시간은 물질이지만 인식론적인 측면에서는 인간의 체험 속에 존재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이하의 많은 시가 시간 자체를 주제로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시간을 대하는 중국 문인들의 일반적인 태도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자신의 노쇠를 한탄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생명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인식하여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철학자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이하는 용의 다리를 잘라 살을 씹어 아침과 밤이 다시 순환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한다.(<고된 낮은 짧아(苦晝短)>) 목숨을 걸고 태양과 경주했던 신화 속의 거인처럼 질주하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저주하면서 생명의 영원을 갈구했다. 또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유한한 생명을 대비시키기도 하고, 영원히 순환하는 시간 앞에서 무기력하게 체념하기도 한다. 신선 세계의 황홀함을 동경하면서도 이하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다가오는 생명의 영멸을 예감하면서 불안과 초조에 흔들렸다. 이하 시의 허무와 염세적인 정서는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숙명으로부터 온다. 이 허무와 염세적인 정서는 이하 시의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또 하나의 재료다. <술을 올리다(將進酒)>에서 쓴 것처럼 붉은 비처럼 쏟아지는 복숭아꽃 잎은 저무는 이하의 가엾은 청춘이기도 하고 쇠약한 생명이 추구했던 매혹적인 예술 정신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하 시선 [李賀 詩選] (고전해설ZIP, 2009. 5. 10., 지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