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영화해설

영화해설/역사에 휩쓸린 인물을 다룬 영화 / 비정성시[ 悲情城市 ]

작성자낙민|작성시간16.06.10|조회수301 목록 댓글 0

비정성시

[ ]
요약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대만은 역사적 격변을 맞게 된다. 이 영화는 이 시기를 보내는 한 가문이 겪는 비극을 그린 시대물이다. 임아록의 네 아들은 성격과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거나 미쳐버린다.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 허우샤오시엔의 대표작으로 1947년 발생한 2·28사건을 다룬다. 가족사와 대만 역사를 교차시킨 수작이다.
 

출처 : 네이버영화 원본보기

제작연도 1989
감독 허우샤오시엔
출연 양조위, 오의방, 신수분, 진송용
관련 서비스 네이버영화 상세정보 바로가기

시놉시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전해지는 라디오 뉴스가 들리는 가운데 한 아이가 태어난다. 대만이 51년간의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는 날, 임아록 가문은 장손을 얻는 경사까지 겹쳐 두배의 기쁨을 누린다.

임아록은 네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사를 하는 첫째 문웅과 셋째 문량은 상하이조직의 권유로 쌀과 설탕 밀수에 손을 댄다. 의사인 둘째 문상은 일본군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인 넷째 문청은 선량한 인물로 사진관에서 일한다. 문청은 친구인 지식인 청년 관영이 도모하는 반정부 활동을 지원하며 자신도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한다.

1947년 대륙인과 대만인이 충돌하는 2·28사건이 발생하고 관영은 대정부 투쟁을 위해 대북으로 떠나게 된다.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권의 부패는 날로 심해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국민들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문웅과 문량은 일제에 협력했던 전력 때문에 고발당해 체포된다. 문웅은 석방되지만 조직싸움에 휘말려 칼을 맞고 사망한다. 문량도 석방되나 미쳐버리고 다시는 제정신을 찾지 못한다.

소식이 끊겼던 둘째 문상은 결국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고 가족들은 그의 유언이 적힌 천 조각을 받게 된다. 가족들의 비극에 절망하고 시국에 환멸을 느낀 문청은 반정부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관영은 문청에게 생업에 충실하라고 조언하며 동생 관미를 부탁한다. 간호사인 관미는 오래전부터 오빠 친구인 문청을 좋아해왔다. 문청은 관미와 결혼하고 관영이 속한 단체에 비밀리에 자금을 대주며 생활한다. 문청과 관미 부부는 아들을 낳고 짧은 행복을 누리지만, 관영의 조직이 검거되고 문청까지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간다.

작품해설

1. 영화의 역사적 배경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대만의 2·28사건은 국민당 정부의 부패로 인한 국민의 분노에서 비롯됐다.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는 식량이나 실업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관리들은 처벌을 피해갔다. 뇌물을 받고 마약 밀수를 눈감아주는 일은 물론 관직도 매매되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국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국민당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던 중 1947년 2·28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밀수담배를 파는 여인이 전매청 관리에게 맞아 사망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전매청 직원은 밀수담배를 파는 여인의 돈과 담배를 몰수했고 매달리는 여인을 폭행하여 죽게 한다. 이에 분노한 대만인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공권력이 투입되어 시위대 중 한명이 사망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대만의 지식인들은 대북으로 모여들고 대규모 반정부 투쟁이 시작된다. 2·28사건의 비공식적인 희생자 집계는 3만~4만명으로 추정된다.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보니 대만인과 대륙인 사이의 감정적인 싸움으로 비화되고 이 과정에서 양쪽 다 억울하게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도 대만에는 이 사건으로 인한 상처가 남아 있다.

〈비정성시〉는 한쪽의 시각에 치우치기보다 이런 역사적인 상황에 희생되는 개인을 가슴 아픈 시선으로 바라본다. 문청이 관영과 함께 대북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갈 때 대만 청년 무리는 대륙인을 색출한다. 말을 못하는 문청이 아무 대답을 못하자 대륙인이라 오해한 청년들은 낫과 작대기로 그를 죽이려 한다. 다행히 관영이 와서 오해는 풀렸지만 이데올로기가 분별력 없이 작동할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일본에 대한 영화의 시선도 단순하지 않다. 관영과 관미는 함께 공부한 일본인 친구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우정을 나눈다. 패전 뒤 고향 일본으로 쫓기듯 돌아가게 된 정자는 관미를 찾아와 자신의 기모노를 전해준다. 언제 피습될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떠나는 정자를 보여주는 화면에는 연민이 흐른다. 대만인이든 일본인이든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되었을 때 누구나 역사와 이데올로기에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미가 정자 남매와 우정을 나누었던 시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일본의 탐미적인 정서를 묘사한다. 지식인인 관영과 관미 남매는 일본적인 센티멘털리즘을 비판하지 않고 근대적인 낭만으로 받아들인다.

대만 근대사의 비극을 다룬 〈비정성시〉의 역사의식이 단순하고 직선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도그마에 빠졌을 때 역사는 위태로워지며 개인은 역사의 제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비정성시〉는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역사를 사유할 것을 권유하는 영화다.

2. 감독과 영화적 기법

비정성시 본문 이미지 1

출처 : 네이버영화

1947년 출생한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대륙에서 태어났지만 대만에서 성장한다. 허우샤오시엔 가족은 1948년 대만으로 이주하였는데 잠시 머물다 돌아가려던 계획과 달리 영원히 귀향하지 못했다. 마치 우리의 이산가족과 같은 아픔을 갖게 된 허우샤오시엔의 부모와 할머니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다.

감독의 가족사와 자전적인 이야기는 그의 초기작 〈펑꾸이에서 온 소년〉(1983), 〈동동의 여름방학〉(1984), 〈동년왕사〉(1985), 〈연연풍진〉(1986) 등에 반영되어 있다. 대만국립예술전문학교를 졸업한 감독은 본래 배우를 꿈꾸었으나 그쪽으로 길이 보이지 않자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된다. 허우샤오시엔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베이 스토리〉(1985) 등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니 배우의 꿈도 이룬 셈이다.

1980년 〈귀여운 여인〉으로 데뷔한 이후 허우샤오시엔은 에드워드 양 감독과 대만 뉴웨이브 운동을 주도한다. “카메라를 든 역사가”가 되기를 바란 허우샤오시엔은 대만 근대사를 그린 삼부작 〈비정성시〉(1989), 〈희몽인생〉(1993), 〈호남호녀〉(1995)를 완성하여 개인과 역사의 관계를 고찰한다. 대만 뉴웨이브는 1990년대 리안과 차이밍량 감독으로 이어지게 된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레퍼런스가 있는데 〈바람이 나를 데려다 주리라〉(2010) 같은 다큐가 여기 해당한다. 이 다큐는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오래 작업한 촬영감독 마크 리에 관한 영화다. 허우샤오시엔은 거장 감독들의 영화세계를 조명한 토드 매카시의 다큐 〈맨 오브 시네마〉(2007)에도 등장한다. 칸영화제는 60주년을 기념하여 역대 주요 상 수상 감독들이 영화관에 대한 자신의 추억을 회고하는 〈그들 각자의 영화관〉(2008)을 만들었는데 허우샤오시엔도 여기에 참여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카메라와 피사체를 멀리 두는 롱숏과 화면을 끊지 않고 길게 보여주는 롱테이크 촬영방식을 자주 쓰고 있다. 〈비정성시〉는 이러한 감독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영화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감독의 가치관, 주제의식이 스타일을 통해 구현된다.

이 스타일은 감독이 개입하여 관객의 평가를 유도하기보다 역사적 사건과 거리를 두는 화면을 보며 관객이 역사에 대해 보다 심사숙고하고 다양한 관점을 두루 살피게 돕는다. 2·28사건이 발생한 뒤 관미가 일하는 병원에 부상자가 실려오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져 병원 입구를 관찰하는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은 채 병원 출입구와 복도에서 현관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한다. 부상당한 청년이 들것에 실려 병원 안으로 옮겨지는 장면이다. 막대기를 높이 든 성난 청년들이나 차분히 환자를 이동시키는 병원 직원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다.

똑같은 화면이 뒤에 다시 나오는데 이번에는 출산을 앞둔 관미를 부축하고 병원으로 들어서는 문청을 보여준다. 역시 멀리서 부부가 다가오는 모습을 움직임 없이 바라보는 카메라는 기쁜 일이지만 감정을 자제하고 그저 바라본다.

3. 주제

비정성시 본문 이미지 2

출처 : 네이버영화

영화의 주인공인 문청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나 대만의 민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부패한 정권에 탄압받고 착취당하지만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한 채 억눌려 살아온 대만 민중의 처지가 문청과 같다. 모진 풍파를 묵묵히 견딘 문청은 임아록의 네 아들 중 가장 무난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청마저 당국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모습은 행복한 결말을 용납하지 않는 정치 현실의 비정함을 증명한다.

영화의 마지막, 임아록은 유일하게 남은 셋째 아들 문량과 식사를 한다. 성한 아들은 모두 죽거나 행방불명되고 미쳐버린 문량만 남았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대만 근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주제 아래 또 다른 해석이 들어 있는 장면이다. 임아록과 셋째 문량, 장손이 둘러앉은 식탁 풍경은 아무리 혹독한 시련이 주어져도 민중은 살아남는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벙어리인 문청이 나누는 필담을 자막으로 전달하는 화면은 무성영화의 관습을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문청이 나누는 대화는 관객에게 자막으로 전달된다. 〈비정성시〉는 유성영화지만 자막을 사용해서 무성영화의 장점을 되살려내고 있다. 관객은 문청이 나누는 대화를 소리가 아니라 글로 보면서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문청의 필담만이 아니라 관영의 동지가 남긴 유언, 둘째 형이 남긴 유서 내용도 자막으로 보인다. 관영의 동지는 총살당하면서 “태어나며 조국을 이별했고 죽어서 조국에 갑니다. 생사는 하늘에 달린 것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긴다. 문청의 둘째 형은 자녀에게 남긴 유서에 “너희들은 삶을 중요시해라. 아버지는 죄가 없다”라고 썼다.

이런 말들은 자막으로 제시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보다 인상적으로 그 내용을 음미하게 만들며 영화의 주제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낳는다. 이들의 유언은 애국충정을 구현하려는 근대 대만 지식인의 고뇌를 표현하면서 삶은 역사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지속된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이다.

〈비정성시〉의 중간중간에는 자연의 풍광을 담은 화면이 인서트되는데, 이들 장면에서 널리 멀리 바라보는 카메라는 일견 무심하게 대만의 자연을 담고 있다. 인간과 역사의 부침은 속절없지만 유구한 세월 한자리를 지킨 자연의 힘과 관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을 담는 시선은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대만의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와 같다. 짧고 단편적으로 역사적 판단을 내리지 말 것이며 객관적 진실은 쉽게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

임문청(양조위) : 임아록의 넷째 아들로 8살에 벙어리가 된다. 직업은 사진사로 책을 좋아하고 강직하고 선량한 인물이다. 반정부 투쟁을 하는 친구 관영의 여동생 관미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지만 결국 체포되어 행방불명된다.

오관영(오의방) : 문청의 친구로 지식인 청년이다. 산 속으로 들어가 반정부 활동을 한다.

오관미(신수분) : 관영의 여동생으로 간호사다. 문청을 좋아해 그와 결혼한다.

임문웅(진송용) : 문청의 큰형으로 다혈질이다. 장남으로서 책임감이 강하지만 폭력 조직 싸움에 희생된다.

명장면 명대사

문청과 관미가 독일 가곡 〈로렐라이 언덕〉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이 장면은 〈비정성시〉 전체 중 가장 서정적이다. 문청의 친구이자 관미의 오빠 관영은 지식인 청년들과 국민당 정권의 비리에 대해 규탄하고 군사 쿠데타를 역설한다. 말을 못해 대화에 낄 수 없는 문청은 이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는 조용히 뒤로 빠진다. 그리고 턴테이블에 음반을 거는데 〈로렐라이 언덕〉의 연주곡이다.

문청을 좋아하는 관미는 문청이 사용하는 필담용 메모지에 노래의 유래에 대해 적어준다. 이 곡은 독일에서 전해지는 명곡으로, 라인 강에 사는 귀신의 노래 소리에 홀린 뱃사람들이 암초에 부딪혀 죽었다는 전설을 담은 곡이라고 알려준다.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 남녀가 함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교감하는 모습은 목소리 높여 시국을 개탄하는 옆자리 청년들과 대조적인 면을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은 아름답지만 매우 슬프다. 듣지 못하는 문청은 사실 아무 소리 없는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며, 관미가 전해주는 노래 내용도 영화의 스토리처럼 불행한 이야기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다가올 비극을 예고하는 것이다.

관련정보

수상

• 1989년 제4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 1989년 제26회 금마장영화제 감독상, 남우주연상

음악

독일 가곡 〈로렐라이 언덕〉
〈비정성시〉 중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에 흐르는 음악이다. 이후 다가올 비극을 예고한다.

연관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 1970년대 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벌인 IRA 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라잉 게임〉(1992) :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단체 IRA에 인질로 잡힌 영국 흑인 병사가 처한 딜레마를 다룬 영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