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정의론과 여성주의:아이리스 영의 경우를 중심으로
김 원 식*1)
[논문개요]
이 글의 목적은 ‘여성주의(feminism)’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기존의 정의론에 대
해서 제기되고 있는 도전들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찰해보고, 이에 기초하여
여성주의와 정의론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모색하는 데에 있다.
정의론과 여성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이글에서는 미국
의 대표적 여성주의자인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의 작업에 초점을 맞추
어서 정의론과 여성주의 사이의 관계를 고찰한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내용은 정의
에 관한 기존의 분배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 지배와 억압이라는 범주에 대한 분석
그리고 이에 기초한 차이의 정치의 개념을 살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의 작업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주의와 규범적 보편주의 사이의 불화가 아니라 공존이라는 사실을 제시한
다. 여성주의적 개입과 비판을 포용해낼 수 있을 때, 정의 담론은 비로소 그 보편
주의적 생명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여성주의 역시 보편주의와의 대립
을 넘어 보편주의와의 화해를 모색할 수 있을 때 스스로의 입장에 대한 궁극적 정
당화가 가능할 것이다.
주제어 : 정의론, 여성주의, 아이리스 영, 지배와 억압, 차이의 정치
* 국가안보전략연구소INSS 연구위원
24 사회와 철학 제24집
1. 서 론
사회정의는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여전히 사회적 저항과 비판의 핵심
어휘로 기능하고 있다. 현존하는 사회적 부정의를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 역사적인 변화에 따라서 사회정의의 내용, 당사자의 범위, 방법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역시 급속한 지구화 과정 속에서 기존 정의 담론들에 대해
서 다양한 도전들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정의의 내용과 관련하여서는 기
존의 분배 정의와 구별되는 다양한 인정(recognition) 요구들이 정치적으
로 부상하고 있으며, 정의의 주체, 당사자의 범위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국
민국가 단위의 시민권을 넘어서 정의의 당사자를 확대하고자 하는 시도들
이 이어지고 있고,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정의의 규준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에 관한 논의 역시 확대되고 있다.1)
이 글에서는 ‘여성주의(feminism)’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기존 정의론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도전들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여성운동은 서구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그간
커다란 기여를 해왔다. 그간 여성운동은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비롯하여
사회생활 전반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각종 사회 부정의를 고발하고 이를
시정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화 과정
의 중요한 한 축으로 기여해 온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교적인 가족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생활은 물론
가정생활에서도 역시 많은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이다.
이 글에서는 정의론과 여성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검토를 위해 미국
1) 기존 정의론의 내용, 주체, 방법에 관한 도전의 구체적 내용들에 대해서는 낸시
프레이저, 김원식 옮김, 지구화 시대의 정의, 그린비, 2010 참조.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25
의 대표적 여성주의자인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의 작업에 초
점을 맞추어서 정의론과 여성주의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고자 한다. 2006
년 57세의 나이로 사망한 영은 그녀를 국제적으로 부상시켜준 그녀의 주
저라고 할 수 있는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를 비롯하여 그녀의 유작인 정의의 책임(Responsibility of
Justice)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여성주의 시각에 기초하여 사회정의
문제에 천착하여 왔다.2)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그녀의 작업은 정의론에
대한 여성주의적 개입의 방식과 그 함의를 검토해 볼 수 있는 훌륭한 사례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글은 영의 논의를 사례로 삼아 기존 정의론을 개
선, 발전시키는 데 여성주의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과연 무엇인지, 사
회정의와 여성주의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찰해보도록 한다.
2. 분배 패러다임 비판
정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적 저항과 비판을 위
한 핵심 어휘로 기능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양한 사회 부정의를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시
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핵서 정의가 곧 행복한 삶, 좋은
삶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의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선호
(preference)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며, 단지 한 사회가 이러
한 선호나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적 조건들을 얼마나
구비하고 있는가와 관련될 뿐이기 때문이다(JPD, p.37). 다시 말해 사회
2) Iris Marion Young,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아래에서 이 책은 JPD로 약기한다),
Responsibility of Jus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26 사회와 철학 제24집
정의란 그 구성원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제
도적 조건들과 관련될 뿐이다. 현대적 조건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방식과
문화의 불가피한 다원성 그리고 인간본성이나 삶의 방식에 대한 특정한 규
정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 배제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선에 대한 정의 개념
의 우선성이라는 원칙은 여전히 고수되어야만 한다(JPD, p.35).3)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정의 개념 그 자체가 아니라 기존의 정의 담론들이
특정한 패러다임, 구체적으로 지목하자면 ‘분배 패러다임(the distributive
paradigm)’에 구속되고 지배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부정의들을 축소 혹은
간과하며 그 결과 실천적인 사회적 저항들과 무관한 담론으로 치부되어 버
리고 있다는 데에 있다. 정의를 물질적 재화의 공정한 분배의 문제로 환원
하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부정의들을 축소하고 은폐하게 되며, 이로 인해
물질적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를 넘어서는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을 제기하
는 사회운동들과의 실천적 연관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영의 진단 혹은 평가가 오늘날 분배 불평등 문제가 가지는
사회적 심각성을 부정하거나 분배 문제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서 중요
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점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영은 분배 문제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배 불평등 문제의 사회적 심각성이야말로 분
배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부상하게 되는 핵심적 배경이 되었다는 점 역시
지적하고 있다.4) 그간 분배 패러다임이 지배권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한 사
회 내부는 물론 지구적 차원에서도 빈부 격차와 빈곤 문제가 매우 심각했
3) 영은 찰스 테일러, 마이클 샌델 등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 정의 개념의
일면성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편이지만 정의 개념을 선한
삶의 문제와 혼합하려는 데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 정의 개념의 우선성을 고수
하고자 한다(JPD, pp.34-35).
4) 낸시 프레이저에 따르면 기존의 정의 담론들은 케인스주의적-베스트팔렌적 틀
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틀은 정의 담론을 국민국가 단
위의 분배 문제로 제약하는 효과를 갖는다. 낸시 프레이저, 앞의 책, p.29 이
하 참조.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27
기 때문이다(JPD, p.19). 그러나 문제는 불평등 분배를 극복하는 것이
사회정의 실현에서 여전히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회정의 문제 전반을 분배 문제로 축소 혹은 환원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JPD, p.15).
분배 패러다임이란 정의를 물질적 재화나 수입 혹은 지위 등을 공정하
게 분배하는 문제로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의미한다. 이러한 틀 속에서 사
회정의는 공정한 분배와 정확히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와 같이 사회
정의를 공정한 분배의 문제로 보는 견해는 마르크스는 물론 롤즈, 드워킨
등 오늘날의 대표적인 정의론자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다.5) 물
론 이들은 공정한 분배의 대상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데에 대해서는 서로
매우 상이한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롤즈가 자유, 권리, 수입이나 부 혹
은 자존감과 같이 합리적인 모든 행위자들이 요구하는 기본 재화(primary
goods)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고, 드워킨이 재산과 같은 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주로 강조하는 반면에 마르크스는 기존 사회 체제 내에서 이루어지
는 소득과 부의 분배를 넘어 생산수단 자체를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6)
분배 패러다임에서 정의로운 분배의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물질적인 재
화들로 간주되지만 경우에 따라 권리, 기회, 권력 등과 같은 비물질적 재
화들 역시 공정한 분배의 대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영에 따르면, 이와
같은 분배 패러다임이 가지는 결정적인 한계는 개인들 사이의 물질적 자원
5) 영은 이외에도 분배 패러다임에 구속되어 논의를 진행하는 인물들로 W. G.
Runciman, Bruce Ackerman, William Galston 등을 꼽고 있으며, 자유
주의적 논의를 비판하는 David Miller도 여전히 분배 패러다임에 구속되어 있
고, 마르크스주의자인 Edward Nell과 Onora O'Neill, Kai Nielsen 역시
분배 중심의 정의관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JPD, pp.
16-17).
6) 존 롤즈, 황경식 옮김, 정의론, 이학사, 2003, 로널드 드워킨, 염수균 옮김, 자유주의적 평등, 한길사, 2005,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진우
옮김, 공산당 선언, 책세상, 2002.
28 사회와 철학 제24집
의 분배 문제에만 주로 집중함으로써 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나 제도
적 맥락을 무시하고 그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제시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결국에는 분배 불평등과 구별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 부정의들을 간과하
게 된다는 것이다(JPD, p.15).7) 때문에 그녀는 분배 대신에 ‘지배와 억
압’의 개념을 사회정의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을 새롭게 제안
하고 있다(JPD, p.3).
분배 패러다임에서 간과되고 있는 사회구조나 제도적 맥락 중에서 영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의사결정의 구조와 절차’, ‘노동 분업’, ‘문화’라
는 세 가지 범주들이다. 분배 패러다임에서 정의는 주로 주어진 재화를 개
인들 사이에 공정하게 분배하는 문제로만 고찰되고 있으며, 이는 이러한
분배의 전제가 되고 있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맥락들을 은폐하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는 예를 들어 국가의 예산 투입이나 기
업의 의사결정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재화의 분배는 물론 사회구성원
들의 삶 전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의 주체
나 절차와 관련된 문제는 물질적 자원의 결과적 분배에만 집중하는 분배
패러다임을 통해서는 접근하기 어렵다. 때문에 영은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와 절차를 정의의 중요한 요소이자 조건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JPD, p.23).
다음으로 특정한 형태의 노동 분업 역시 불평등한 분배에 큰 영향을 미
치고 있다. 노동 분업의 문제가 단지 주어진 직종이나 직업들 사이의 공정
한 할당의 문제로 간주된다면, 이 역시 일종의 분배 정의 문제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나 해석의 차원의
경우는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관련된 문제가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사 노동이나 돌봄 노동을 여성적인 것으로 해석
7)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영의 비판에 응답하는 시도로는 Roger Paden, “Democracy
and distribution”, Social Theory and Practice, Vol. 24, No. 3 참조.
그에 따르면, 영은 분배 패러다임과 자유주의를 동일시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녀의 논의는 현행 자유주의가 가지는 일부
한계를 보여줄 뿐 자유주의 그 자체를 거부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29
하고 평가하는 경우가 그 전형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사 노동
은 그것이 사회적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활동임에도 불구하
고 사회적 대가가 지불될 필요가 없는 사적인 활동으로 해석되고 평가되
며, 돌봄 노동이 주로 여성적인 것으로 해석되면서 해당 직종에는 여성이
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그 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대우도 매우 열악
한 상황이다. 이와 같이 특정한 노동에 대한 사회적 해석과 평가 방식이
불평등 분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배 패러다임은 이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의 경우는 상징, 의미, 습관 등과 관련된 매우 폭넓고
일반적인 영역을 지시하고 있다. 특정한 집단에게 부과되는 상징적 의미는
예를 들어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
의 사회적 지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는 물질적 재화의 분배에
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종, 성, 취향 등에 대한
지배적 해석 틀은 표준적인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열등하거나 비정상적
인 존재로 규정하는 일종의 문화적 제국주의 상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JPD, p.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재화의 분배에만 집중함으로써 분
배 패러다임은 이러한 문화적 차원의 고유한 기능을 해명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제도적 맥락들이 물질적 재화의 분배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배 패러다임은 이러한 제도적 맥락
을 간과하거나 은폐한다는 데에 그 근본적 제한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제도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부정의의 문제, 즉 지배와 억압의 문제
를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 분배 패러다임에 대한 영의 비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추가적으로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이러한 제도적
부정의들이 주로 ‘집단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결정 절
차, 노동 분업, 문화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지배와 억압은 일반적으
로 개인적 삶의 차원이 아니라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의 차원과 주로 관련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은 분배 패러다임이 주로 개인들 사이의 정의로운
분배만을 문제 삼는 반면에 지배와 억압이라는 개념 틀에서는 집단의 차이
30 사회와 철학 제24집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
하고 있다(JPD, p.4). 명백한 집단의 차이,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결국 현실적 지배와 억압을 은폐하는 것
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분배 패러다임에 대한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예를 들어 권리, 기
회, 권력 등과 같은 비물질적 재화 일반을 공정한 분배 대상의 목록에 포
함시킴으로써 그 틀을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이 보기에 이러
한 대응은 분배 패러다임이 가지는 한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낼 뿐이다.
왜냐하면 권리, 기회, 권력 등은 분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물들이 아님
에도 불구하고 분배 패러다임은 이들을 물화(物化)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리, 기회, 권력 등은 분배의 대상이 되는 사물
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관계나 규칙이다. 그러나 분배 패러다임은 모든
것을 개인의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으로 인해 구체적인 사회적 행위의
맥락을 간과하고 그것들을 일종의 소유 대상으로 환원하게 된다.
예를 들어 권리나 기회의 경우는 그것을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해서 직
접적인 물질적 재화의 재분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공정한 권리와 기회
의 부여는 누군가의 재화를 다른 사람에게 이전할 필요 없이 단지 그들에
게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권리는 사물이 아
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해주는 제도적 규칙일 뿐이며, 기회 역시
일종의 사회적인 자격 부여일 뿐이다(JPD, p.25). 권력의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권력 역시 개인의 소유물 혹은 사물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 물질적 자원
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권력은 그러한 자원과는 구별되는 사회적
관계로 보아야 한다(JPD, p.31). 권력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지배-피지
배 관계 속에 존재하며 이러한 지배-피지배 관계는 사회 전반에 폭넓게 구
조화 되어 있다.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은 더 이상 실질적인 권력이 될 수
없는 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권력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소유하는 사
물이 아니라 사회적인 지배-복종 관계의 산물일 뿐이다.
결국 현재 정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분배 패러다임의 한계는 정의를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31
개인들 사이의 물질적 자원의 공정한 분배로만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인 사
회 부정의를 야기하는 다양한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맥락들을 인식하고 평
가하는 데서 실패한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배 패러다임은 정의를
개인들 사이의 공정한 분배의 문제로 국한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집단의 차이와 차별을 은폐하며, 물화될 수 없는 사회적 관계들을 소유대
상으로 물화하고, 분배의 사회적 과정은 무시한 채 단지 그 결과에만 주목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JPD, p.8). 먼저 개인들 사이의 공정한 분배에
만 주목하는 것은 여성이나 소수자의 경우처럼 집단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지배나 억압의 문제를 은폐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들을 소유와 분
배의 대상으로 물화하는 것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사회적 관계의
차원을 왜곡한다. 마지막으로 분배 패러다임은 단지 분배의 결과에만 주목
함으로써 그러한 분배 결과를 야기하게 된 사회적 제도적 맥락들을 간과하
게 된다.
분배 패러다임이 가지는 이러한 제한성을 넘어서 다차원적이고 포괄적
인 사회 부정의들을 종합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 영은 지배와 억압의 범주
를 자신의 정의론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지배와 억압의 다양한 차원
들에 주목할 때, 우리는 현실의 포괄적 부정의 구조를 파악하고 나아가서
는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 문제의 경우에서도 분배 패러다임이 가지는 이와 같은
제한성은 명확하게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분배 패러다임은 정의의 문제
를 개인들 사이의 분배 불평등이라는 문제로 국한시킴으로써 여성이라는
집단이 겪고 있는 명백한 사회적 부정의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여성적 정체성을 갖는다는 이
유만으로 분배 부정의는 물론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사회적 부
정의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문제를 단지 개
인들 사이의 물질적 재화의 분배로만 이해하는 분배 패러다임은 여성에게
고유한 다양한 형태의 지배와 억압을 올바로 포착하지 못한다.
32 사회와 철학 제24집
3. 지배와 억압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정의는 모두가 동등하게 좋은 삶을 살아가
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서는 첫째,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행사하고 자신의 경험을 표현
할 수 있어야 하며, 둘째, 자신의 행동과 행동의 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영에 따르면, 자기 개발이라는
첫 번째 조건을 제약하는 것이 바로 억압(oppression)이며, 자기 결정이
라는 두 번째 조건을 제약하는 것이 바로 지배(domination)다(JPD, p.
37). 따라서 사회적 부정의를 해명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자기 개발과 자
기 결정을 제약하는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요인들을 밝히는 것, 즉 억압과
지배의 요인들을 밝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존의 분배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에서 영은 특
히 세 범주들, 즉 의사소통 구조와 절차, 노동 분업, 문화를 강조하고 있
다. 기존의 분배 패러다임이 분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 세 측면들을 올
바로 분석하지 못하거나 간과해왔다는 것이다. 영이 제시하는 지배와 억압
의 범주 역시 이 세 범주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먼저 의사결정 구조 및 절차의 측면과 관련하여 영이 지적하고 있는 것
이 바로 사회적 지배의 문제다. 영은 의사결정 절차에서 특정 집단이 배제
되는 것이 분배 불평등은 물론 그 집단의 삶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다고 지적하였다. 이와 같이 자신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절차에서 배제되는 것이 바로 사회적 지배며, 이는 당사자들의 자기 결정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한다.
다음으로 억압은 노동 분업 및 문화의 측면과 관련된다. 특정한 방식의
노동 분업 구조로 인해 특정한 집단이 착취당하고, 주변화 되며, 무력화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곧 그 대상 집단이 자기 개발을 도모하
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바로 사회적
억압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의 영역에서도 지배 집단의 문화를 정상적,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33
표준적인 것으로 강요하거나 심지어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통
해 노골적 폭력을 초래하는 결과가 야기되기도 한다. 이 역시 해당 집단의
자기 개발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사회적 억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두고자 하는 것은 영이 주목하고 있는 지배와
억압은 주로 집단적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사회를 단지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체로 보지 않는다. 자아는 사회적 과정들의 산물일 뿐
결코 그 기원이 아니다(JPD, p.45). 개인은 사회 속에서 태어나며 개인의
정체성도 그가 속한 집단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인정은 그
의 긍정적 자기실현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가 속한 집
단이 억압 받는 경우 개인 역시 긍정적으로 자기를 실현하기 어렵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집단의 현실성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이며, 이는 결국 현존하는 지배와 억압을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영은 현존하는 집단적 차원의 지배와 억압을 지속
적으로 염두에 두면서 그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1) 지배
지배란 당사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들을 배
제함으로써 자기 결정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 지배는 정치 영역을 넘어서 경제, 문화 등 사회생활의 전 영역에서 발견
될 수 있다. 먼저 정치 영역에서는 특정 집단의 의지가 정치적으로 대표될
수 없고 대표되지 않는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경제 영역에서도 투자
결정이나 기업의 이전 및 폐업 결정과 같이 피고용자들이나 지역 주민들에
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경제적 의사결정이 관련자들의 그 어떤 참여도 없
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뿐만 아니라 문화 영역에서도 다양한 소수
자 집단은 주류 문화가 설정한 틀 속에서 아무런 발언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사회성원 대다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
는 결정들이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 사회적 지배가 야
34 사회와 철학 제24집
기할 수 있는 문제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지배 형태들 중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은 아마도 경제적 지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자나 투자 기관, 기
업의 경영자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투자나 기업 이전 및 폐업과 같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의사결정의 권리를 철저
히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8) 물론 우리는 문화 영역에서
도 이러한 사회적 지배 현상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육 영
역에서는 교육 관료나 교육 기관 운영자들이 교육 내용이나 평가 방식과
같이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대한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9)
이러한 사회적 지배 현상과 관련하여 영은 특히 복지국가의 탈정치화
및 강화되는 관료주의적 지배가 가지는 문제점에 주목하고 있다.10) 복지
국가의 등장을 배경으로 하여 시민들은 국가에 대해 마치 시장에서의 소비
자와도 같이 물질적 급부만을 요구하게 되며, 이는 결국 정치적 이슈들을
중립적 국가가 주도하는 재분배의 문제로 환원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
고 이는 결국 국가 행정 관료의 기술적-전문적 권위를 강화시키고 사회적
이슈들의 정치적 성격을 탈색시키게 되며, 그 결과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
는 더욱 어렵게 된다(JPD, p.72).
또한 이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분배 패러다임 부상의 사회적 배경이 되
기도 한다(JPD, p.74). 국가가 중립적 분배의 주체로 간주되며 그것의
의사결정 과정이 탈정치화 되고,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제도적 맥
락들이 간과 되면서, 이제 사회정의는 동질적인 시민들 사이에서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앞서 지적한 바와
8) Iris Marion Young, “Taking the Basic Structure Seriously”, Perspectives
on Politics, vol. 4, no. 1, 2006, p.94.
9) 같은 곳 참조.
10) 영은 기존의 복지정책 실행 방식이 사회적 지배와 억압을 강화한다고 비판하
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오늘날
의 상황에서는 복지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JPD, p.70).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35
같이 이는 다양한 사회적 지배와 억압을 은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분배
패러다임은 현존하는 집단의 고유한 차이와 차별을 무시하는 동일성의 정
치를 강화함으로써 결국 다양한 소수자 집단의 인정과 참여 요구를 은폐하
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게 된다.
복지국가 체제는 이미 하버마스가 그의 ‘생활세계 식민화’ 테제를 통해서
잘 지적한 바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초래하기도 한다(JPD, p.
79).11) 복지의 확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료주의적 통제가 보
다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전문화 되고 관료화 된 질서 및 규칙
에 의해 우리의 삶이 지배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전통적이고 자발적
인 삶의 일상적인 영역들이 이제 돈과 권력을 매체로 하는 관료주의적 체
계의 명령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제기하는 요구들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지배를 극복하고 기존의 제도나 관
행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회복하는 데에 있다(JPD, p.83). 오늘날의 새
로운 사회운동들은 사회적 삶의 전 영역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의
사소통 구조와 절차를 민주화 하여 관료적 지배 상태를 극복하고자 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영은 기존의 분배 패러다
임이 간과하고 있는 사회적 지배의 문제를 주제화 하였으며, 나아가서 지
배를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에서의 배제로 폭넓게 정의함으로써 정치 영역
을 넘어서 다양한 사회 영역들에 존재하는 사회적 지배 현상을 폭넓게 분
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사회적 지배의 강
화가 복지국가의 탈정치화 및 동일성 논리의 강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
으며, 이로 인해 현존하는 집단적 배제와 차별이 은폐되고 있음도 보여주
고 있다.
11) 연구모임 사회비판과 대안 엮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 사월의 책,
2012의 6장 참조.
36 사회와 철학 제24집
(2) 억압
지배에 대한 분석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천적인
사회운동의 요구들이 암묵적으로 담고 있는 주장들을 명료화하고 체계화하
는 방식으로 사회적 억압의 양상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JPD, p.40). 영에 따르면,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야 말로 오늘날
사회운동의 핵심적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의 담론들은 이러한 사회
적 억압들에 대체로 주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억압은 주로 자유 민주주
의의 적들, 즉 공산주의 혹은 권위주의 체제를 지시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8혁명 이후 일상적인 규범, 습관, 상
징들이 가지는 다양한 억압적 기능들은, 대표적으로는 푸코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오늘날 집중적인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JPD, p.41).
영은 현존하는 억압을 다섯 가지 범주를 통해서, 즉 착취, 주변화, 무력
화, 문화적 제국주의, 폭력을 통해서 분석하고 있다. 이중 착취, 주변화,
무력화는 주로 앞서 언급했던 노동 분업과 관련되며 문화적 제국주의와 폭
력은 앞서 언급한 문화의 측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들 각각은 모
두가 분배 부정의를 수반하거나 야기하지만, 이들 모두는 단순한 분배 부
정의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성을 갖는다(JPD, p.40).
여기서 논의되는 사회적 억압들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억압의 주체
가 행사하는 의도적인 억압이라기보다는 구조적 현상으로서의 억압을 의미
한다. 이는 사회적 억압이 주로 무의식적인 일상생활을 통해 발생하며 때
문에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억압의 주체로 지목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
한다.12)
노동 분업과 관련된 착취, 주변화, 무력화 중 착취(exploitation)는 한
12) 영의 저서 정의의 책임(Responsibility of Justice)은 이와 같이 직접적으
로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의의 책임
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37
사회 집단의 노동의 결과물이 지속적으로 다른 집단에게 이전되는 상황을
의미한다(JPD, p.49). 이러한 착취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와는 구별되는
형태의 착취관계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여성의 가사 노동과
성적 노동의 산물이 지속적으로 남성들에게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
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는 자본에 의한 일반적 착취와 더불어
여성이라는 집단에 고유한 착취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JPD, p.51). 이
러한 착취 관계는 구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재분배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사회 변화가 요구
된다.
다음으로는 실질적으로 당사자들 자신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주변화(marginalization)가 존재한다. 주변화의 대상은 주로 인종적인
집단들이며 그들은 노동 시장 자체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서
이들은 사회적 삶 전반에 대한 참여에서도 철저히 배제되며 그로 인해 결
국에는 심각한 물질적 결여 상태에 처하게 된다. 복지 국가를 통해 이렇게
주변화 된 집단들의 경제생활이 일부 개선될 수는 있겠지만, 그 경우에도
이들은 여전히 중요한 영역들에서는 참여에서 배제되고, 스스로의 요구를
주체적으로 제기할 권리도 박탈당한 상태에 처해있다(JPD, p.54).
무권력(powerlessness)은 위계적 노동 분업 구조 하에서 하위직, 단순
직들이 겪게 되는 자율성 및 창조성의 상실과 관련된다. 위계적 노동 분업
구조 속에서 하위직, 단순직의 경우는 스스로의 노동 방식을 스스로 결정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관련된 중요한 결정 과정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이
들은 노동 과정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지도 못하
고 기술적 전문성을 개발하지도 못하게 된다(JPD, p.56). 이 역시 특정
한 방식의 노동 분업 구조로 인해 야기되는 자기 개발의 장애물이라는 의
미에서 중요한 억압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로 문화적 측면과 관련되는 억압중 문화적 제국주의
(cultural imperialism)는 지배 집단의 문화와 규범을 보편적인 것으로,
정상적인 것으로 강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JPD, p.59). 대부분의 지배
38 사회와 철학 제24집
집단이 무반성적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
서 이러한 문화적 제국주의 역시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인 것
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수자들은 항상 지배적인 문화를 통해 스
스로를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되며, 이로 인해 지배 문화와 종속 문화에 의
해서 동시에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중 의식(double consciousness)’ 상태
에 처하게 된다(JPD, p.60).
마지막으로 영은 폭력(violence) 역시 그것이 사회 구조적인 성격을 가
지는 한에서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나 범죄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억압으
로 간주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성, 외국인 노동자 등 특정 집
단이 빈번하게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체계적인 성격을 가지는 사회적 부정의의 문제
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JPD, p.62).
사회적 지배와 억압은 일반적으로 중첩되며, 통상 억압은 지배를 포함하
거나 수반한다. 일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은 스스로 동의한 적도 없는
타인들이 설정한 규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배와 억압을 직접적으로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계적
지배 구조 속에서도 억압 없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
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JPD, p.38). 예를 들어 복지 자본주의 사회에
서 의사결정 절차에 대한 참여는 축소되고 지배 권력은 소수의 기술 관료
들에 의해 독점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억압의 대
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어떤 형태의 사회적 억압도 경험하
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 역시 기술 관료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지배받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13)
13) Amy Allen, “Power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Oppression,
Empowerment, and Transnational Justice”, Hypatia, vol 23. no. 3,
2008, p.161.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39
4. 차이의 정치와 도시의 삶
이제 현존하는 사회적 부정의, 즉 지배와 억압에 대한 지금까지의 분석
에 기초하여 영이 제시하고 있는 대안적 실천의 방향은 무엇인지 살펴보도
록 하자. 영에게 정의의 개념은 정치의 개념과 그 범위가 일치한다(JPD,
p.9). 따라서 정치의 과제는 모든 사회적 삶의 영역에 존재하는 사회적
부정의, 즉 지배와 억압을 극복하고 모든 사회 성원들의 자기 개발과 자기
지배를 보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존하는 사회적 지배와 억압에 대한 모든 요구는 언제나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정치란 모든 사회적 갈등이 등장하고 해소되는 포괄적 장이며,
그런 한에서 지배와 억압에 대한 모든 저항과 비판은 결국 정치적 요구,
즉 민주화의 요구로 집약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관련된 모든 공적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공적인 자기 결정, 자기 지배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을 그 목
표로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민주적 참여는 단지 제도 정치에 대한
참여를 넘어서 생산 영역은 물론 사회적 삶의 전 영역에 대한 포괄적 참여
를 의미한다(JPD, p.91). 앞서 살펴보았던 노동 분업 및 문화의 측면과
관련된 사회적 억압들을 해소하는 것 역시 오로지 억압 받는 주체들의 적
극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그 자
체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라는 의미에서 사회 정의의 한 요소일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지배와 억압을 극복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한다
(JPD, p.91).
‘차이의 정치(Politics of difference)’는 이러한 포괄적 의미에서의 참
여를 강조하는 민주주의 정치가 오늘날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
다.14)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분배 패러다임 나아가서는 그에 기초한 기
14) 영의 차이의 정치에 대해 소개한 글로는 이상화, “페미니즘과 차이의 정치학”,
철학문화연구소 편, 철학과 현실, 통권 제38호, 1998 참조.
40 사회와 철학 제24집
존의 자유주의적 논의들은 현존하는 집단적 차원의 지배와 억압을 무시하
고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차이의 정치는 그간 은폐되어 온 이러한 집단적
차원의 지배와 억압에 대해서, 현존하는 집단들의 이질성, 다원성, 차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주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5) 현존하는 집단들의 이
질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지배 집단 중심의 보편성과 일반성만을 강조하는
동일성의 정치는 현존하는 사회적 지배와 억압을 강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
이다.
차이의 정치는 기존 도덕 이론이 추구해 온 공정성(Impartiality)의 이
상이 오히려 현존하는 차이들을 억압한다고 지적하면서, 먼저 ‘공중(the
public)’의 개념을 집단적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시킬 것을
요구한다(JPD, p.97). 다원적인 도덕적 주체들을 하나의 주체로 환원하
지 말고 도덕적 주체들의 집단적 이질성(Heterogeneity)과 차이를 수용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이 현존하는 집단들 사이의 차이가 변화
불가능한 실체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보지는 않는다. 집단의 차이는 다른
집단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
들 사이의 차이는 명확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를 무시하고 간과하
는 경우 현실적 지배와 억압이 은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적 공중의 동질성에 기초한 일반 의지의 상정은 신체와 감성을 가
진 개인과 집단의 차이를 배제하게 될 수밖에 없다(JPD, p.109). 동질적
시민의 이념은 일반의지를 공유할 수 없거나 그것의 분열을 초래하는 차이
나는 존재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16) 이러한 배제는 예를 들어 공적인
15) 억압받는 여성의 차이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영의 전략과는 달리 주디스 버
틀러의 경우는 여성이라는 범주 자체를 해체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왜냐하
면 여성이라는 동질적인 집단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배제, 예를 들어
동성애자들에 대한 배제를 함축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옮김,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및 김정란, “젠더 정체성은 왜
억압적인가? 버틀러(Judith Butler)의 젠더 해체의 필요성”, 한국여성철학
제 6권, 2006 참조. 조희원은 이러한 논쟁을 염두에 두면서 여성 개념의 다
원화를 주장한다. 조희원, “여성과 차이: 여성, 여성들, 여성 개념의 다원화”, 한국정치학회보, 제40집, 제3호, 2006 참조.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41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의 구별에서도 잘 드러난다. 감성과 여성성이 지
배하는 가족의 영역은 그것이 사적인 영역으로 규정되는 경우 국가의 공적
인 영역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이야 말로 공적인 삶 나아가
서는 사회의 재생산을 위한 필수적 영역이며, 공과 사의 이분법이 사실상
명확하게 규정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특정한 삶의 영역을 자
의적으로 탈정치화하여 공론의 장에서 배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동질적인 공중에 기초한 공정성의 이상은 국가의 중립성을
전제로 한 분배 패러다임 등장의 배경이 되고, 나아가서는 그러한 국가의
관료적이고 위계적인 의사결정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 까지 수행
하게 된다(JPD, p.112).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이나는 존
재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대표될 수 있는 진정한 참여가 구조적으로 보장되
어야만 한다(JPD, p.116).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집단’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질적 공중의 이념이 촉진될 필요가 있다
(JPD, p.119).
영에 따르면 이질적 공중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치적 원칙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 그 누구도, 그 어떤 행위도, 개인적 삶의 그 어떤
측면도 사적인 것으로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그 어떤 사회적 제도
나 관행도 공적 토론이나 표현의 대상에서 선험적으로 배제될 수는 없다
(JPD, p.120).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 역시 그 어떤 사회적 관습이나 행동들도 공적 토론, 표현, 집단적 선
택의 주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차이의 정치는
삶의 모든 영역에 존재하는 차이, 그로 인한 지배와 억압의 문제를 주제화
함으로써 사회정의의 폭과 범위를 확장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차이의 정치가 지향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녀가 제시하는 ‘도시의 삶(city life) 개념이다. 이 개념을 통해 그
녀는 차이가 공존하는 대안적인 사회 관계에 대한 하나의 상을 제시함으
16) Iris Marion Young, “Polity and Group Difference: A Critique of the
Ideal of Universal Citizenship”, Ethics, vol. 99, no. 2, 1989, p.253.
42 사회와 철학 제24집
로써 사회 변혁에 대한 희망과 상상력을 고무하고자 한다(JPD, p.226).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시의 삶은 현존하는 부정의한 형태 그대로의 도시적
삶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일종의 규범적 목표와도
같은 것이다.
영이 도시를 강조하는 이유는 지방 단위의 소규모 공동체 차원의 자결
권을 강조하면서 소규모 공동체를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입장들에 맞
서기 위해서다. 공동체의 이상들은 푸코가 루소주의의 꿈이라고 명명한
바, 즉 조화와 합의에 기초한 투명한 사회에 대한 열망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JPD, p.229).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의 이념은 그 내적 폐쇄성과 단
일성이라는 제한성으로 인해 공동체 내부와 외부의 타자들에 대한 배제를
동시에 수반할 수밖에 없다.17) 뿐만 아니라 이러한 소규모 공동체들은 그
공동체들을 가로지르는 대규모의 복합적인 사회적 부정의들에 대해서는 대
처하기가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JPD, p.250).
도시의 삶은 적어도 오늘날 선진 산업사회의 경우는 이미 주어져 있는
불가피한 조건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JPD, p.237). 영
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도시의 삶을 공동체의 이념 나아가서는 기존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규범적 이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거기서 도시인들은 단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다양한 자발적 사회
관계 속에 참여하는 존재이며 한 도시에 대한 공동의 귀속감 역시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서로의 차이를 배제하거나 억압하
지 않고 공존한다.
영에 따르면, 도시의 삶이라는 이상이 가지는 매력은 다음과 같다(JPD,
pp.238-241). 첫째, 도시의 삶은 차이를 배제하지 않는 사회적 분화
(social differenciation without exclusion)를 가능하게 해준다. 도시
17) 영에 따르면, 공동체의 이상이 가지는 이러한 배제 효과는 예를 들어 인종차
별적인 보수주의의 경우뿐만 아니라 사회변혁을 도모하는 급진적인 정치조직
에서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급진적 조직 내부의 공동체 지향성 역시 그 폐쇄
성으로 인해 잠재적 구성원들을 배제하고 이로 인해 조직 자체의 위축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이다(JPD, p.235).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43
의 삶은 그 익명성을 통해서 그 내부의 다양한 차이들을 허용하고 촉진한다.
둘째, 도시의 삶은 우리에게 흥겨움과 흥분을 제고하는 다양성(variety)을
선사한다. 셋째, 도시의 삶은 낯선 타자에 대한 끌림이라는 넓은 의미에서
의 에로티시즘(eroticism)을 제공한다. 도시의 삶에는 폐쇄적 공동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타자들의 매력이 충만하다. 넷째, 도시의 삶은 다
양한 집단들에 열려 있는 공개성(publicity)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공
개성은 그 단어의 본래 의미에 충실하게 서로 다른 주체들이 누구나 참여
하여 발언하고 서로의 발언을 경청하는 이질적인 동시에 열려 있는 공간을
지시한다. 이러한 도시의 공중이야 말로 차이의 정치가 전제하는 이질적이
고 다원적인 공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삶의 이상은 현대화된 대도시의 삶이라는 불가피한 조건 속에서
이질적인 타자들 사이의 공존을 지향하며, 영은 이러한 규범적 이상을 통
해서 오늘날의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입각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대안적 사회에 대한 희망과 상상력을 촉진하고자 한다.
5. 평가
이제 여성주의 시각에 입각하여 진행된 기존 정의론에 대한 영의 개입
이 기여한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선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영의 여성
주의적 개입은 정의에 관한 기존의 분배 패러다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제한성을 잘 보여주었으며, 나아가서는 분배 패러다임이 간과하고 있는 근
본적 사회 부정의, 즉 지배와 억압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
였다. 나아가서 차이의 정치 개념을 통해 현존하는 사회적 지배와 억압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여를 가능하게 해 준 근본 동력은 바로 여성 나아
가서는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부정의에 대한 실천적 관심에 입각하
여, 바로 그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정의 문제에 접근하려는 영의 태도였다고
44 사회와 철학 제24집
할 수 있다. 영에게 시급한 문제,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문제는 추상적인
정의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나아가서는 소수자 일반이 겪고
있는 부정의를 분석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그녀는 기존의 정의론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그녀의 접근법은 그녀가 충실히 따르고자 하는 비판이론
전통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녀는 규범적 반성은 항상 주어진 역사
적 현실 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회이론이 없는 규범적 반
성은 추상적이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즉 비판이론 일반의 근본
적 태도를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JPD, p.5). 비판이론 전통에 따르면
모든 비판은 추상적 규범이나 원리가 아니라 당사자들 자신의 내재적 요구
에 기초하고 있어야만 한다.18) 영은 이러한 비판이론의 원칙에 입각하여,
여성 나아가서는 다양한 소수자 집단이 제기하는 요구들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기존의 분배 패러다임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
들을 효과적으로 해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그녀는 분배 투쟁 혹은 계급 정치의 차원과는 구별되는 인정
투쟁의 새로운 부상에 주목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서는 지배와 억압의 개
념을 통해서 이러한 인정 투쟁들을 야기하는 다양한 사회 부정의들을 분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이 제시하고 있는 지배와 억압의 개념은 여성을
비롯하여 다양한 소수자 집단들이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부
정의들을 해명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기존 정의 담론들은 구체적인 현
실적 맥락을 간과한 채 추상적 정의 원칙을 정당화 하는 데에만 몰두함으
로써,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질적인 집단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겪고 있
는 구체적인 사회 부정의들을 간과하여 왔다. 영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별 받는 집단과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사회 부정의들에 주목함으로써 현
존하는 사회 부정의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해명할 수 있는 틀을
18) 비판이론에서 ‘내재적 초월’ 개념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서는 Nancy Fraser
and Axel Honneth, Redistribution or Recognition: A Political-
Philosophical Exchange, Verso 2003, pp.241-244 참조.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45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이 제시하는 지배와 억압의 개념은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 노동 분업,
문화라는 복합적 차원들에 주목함으로써 분배 부정의로 환원될 수 없는 다
양한 복합적 사회 부정의의 차원들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부정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집단의 차이를
은폐하지 말고 그 집단적 이질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차이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차이의 정치는 오늘날 정치의 주체인 공중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에 주목하고, 공과 사의 이분법에 내장되어 있는
남성중심주의적 편견을 비판하면서, 지배받고 억압받는 소수자 집단들의
권리가 보호되고 신장되는 민주주의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정
한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와 같이 여성주의에 입각한 영의 논의는 기존 정의론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 부정의들에 새롭게 주목하게 해주고 있으며, 기존 정
의론이 가지는 남성중심주의적 한계들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분배 불평
등에 대한 저항과 더불어 인정 투쟁을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다차원적인 정
의론을 제시하는 것이 오늘날 정의론과 관련된 중요한 과제라고 볼 때, 영
의 논의는 분배 정의로 환원되지 않는 인정 투쟁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석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정의론을 보완할 수 있는 방향을 적확
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19) 만일 우리가 영의 작업에 대
한 이와 같은 평가를 좀 더 일반화 할 수 있다면, 정의론에 대한 여성주의
의 기여는 여성이라는 집단이 겪고 있는 고유한 사회 부정의의 차원을 해
명함으로써 남성중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존 정의론의 논의 폭을 넓히
는 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20)
19) 지구화 과정이 분배 정의를 넘어서는 다차원적 정의론 구상을 요구하고 있다
는 논점에 대해서는 졸고, “비판이론과 정의(正義): 다차원적 정의론의 모색”, 법철학연구, 제14권, 제2호, 2011 참조.
20) 이러한 평가는 여성주의가 정의의 원리를 대체할 새로운 윤리적 원칙에 기초
해야 한다거나 여성주의는 자유주의적 권리 담론과는 결별해야만 한다는 식의
급진적 해석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너스바움에에 따르면 오늘날 큰 영향
46 사회와 철학 제24집
이제 마지막으로 영의 논의가 가지는 한계 혹은 문제점에 대해 간략히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째, 영은 여성 나아가서는 소수자 집단이 겪는 사회적 지배와 억압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을 제공하였으며, 이들이 분배 불평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올바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적 차원
에서 심화되고 있는 분배 불평등 문제는 단지 문화적 지배나 억압을 통해
서만은 해명될 수 없는 고유한 경제적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
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영은 오늘날 분배 불평등을 야기하는 경제적이
고 구조적인 차원에 대한 분석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녀
가 규범적 반성의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이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는 있지만, 분배 불평등을 야기하는 경제적 차원에 대한 사회이론적 접근
을 방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이 지적하는 지배와 억압의 문제가 경제
적 분배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분배의 문제가
문화적 지배와 억압의 문제로 단적으로 환원될 수도 없다. 만일 이러한 평
가가 가능하다면, 영의 작업이 오늘날 심화되고 있는 분배 불평등의 원인
분석과 대안 제시에서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
다.21)
력을 가지고 있는 다수의 여성주의자들은 권리와 정의 개념을 강조하는 자유
주의 전통을 여성의 발전을 가로막는 적대적인 입장으로 간주하고 있다(Sex
and Social Justice. p.56). 그러나 권리와 정의의 실현은 오늘날도 여전히
여성운동의 현실적 요구들이며, 특히 전 지구적 범위에서 볼 때, 이는 가장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녀는 오히려 여성주의가 제기하는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권리와 정의에 기초한 자유주의 전통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주의적 비판이 유력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권리나 정의와 같은 핵심적 가치들을 포기하지 말고 고수할 필요가
있다(Sex and Social Justice. p.71). Martha C. Nussbaum, Sex and
Social Jus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21) 프레이저는 영이 분배보다 정체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분류하
고 있다. Nancy Fraser and Axel Honneth, Redistribution or Recognition:
A Political-Philosophical Exchange, p.15.
정의론과 여성주의(김원식) 47
둘째, 영의 견해는 은폐된 집단의 차이를 강조한 나머지 차이나는 집단
들의 권리 요구에 대한 정당화의 문제에서는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
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는 집단의 요구들이 모두 그 자체로 정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차이나는 집단의 요구들을 평가할 수 있는 규범적 기
준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기준을 보편화 가능한 정의의
요구를 통해서 확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규범적 보편주의가 집단의 차이를 무시한다고 비판하는 영의 지적은 분
명 수용되어야만 한다. 만일 그것이 특수를 보편으로 위장하는 문화적 제
국주의를 함축하거나 현존하는 집단의 차이를 무시하는 경우에는 특히나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보편주의가 반드시 이러한 비난을 받을 이유
는 없을 것이며, 나아가서 영의 비판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보편주의
를 전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 자신이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의
참여를 요구하고 그들을 포용한다는 의미에서의 보편성(universality)과
차이를 배제하는 일반성으로서의 보편성(universality as generality)이
구별될 수 있다면, 진정한 보편성에 기초한 보편주의는 여전히 비판과 정
당화의 최종심급으로 자리매김 되어야만 할 것이다.22) 그리고 이를 통해
서만 우리는 존중되어야만 할 차이의 경계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영이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집단의 차이는 그것이 우리들의 삶의 정
체성의 일부라는 점에서 부정할 수도 없고 또 부정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
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존중되어야 하는 것도, 그것이 그 자
체로 독립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보편주의의 요
구를 충족시키는 한에서만 존중받을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주의와 규범적 보편주의 사이의
불화가 아니라 공존이라고 판단된다. 여성주의적 개입과 비판을 포용해낼
수 있을 때, 정의 담론은 비로소 그 보편주의적 생명력을 제대로 발휘할
22) 이러한 구별은 JPD, p.105 그리고 상세한 논의는 Iris Marion Young,
“Polity and Group Difference: A Critique of the Ideal of Universal
Citizenship” 참조.
48 사회와 철학 제24집
수 있을 것이며, 여성주의 역시 보편주의와의 대립을 넘어 보편주의와의
화해를 모색할 수 있을 때만 스스로의 입장에 대한 궁극적 정당화가 가능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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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사회와 철학 제24집
Theory of Justice and Feminism: The Case of Iris Young
Kim, Woen-Sick
【Abstract】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the challenges to existing theory
of justice through the prism of feminism and to suggest a desirable
relation between theory of justice and feminism.
This thesis treated the works of Iris Marion Young, one of the main
feminists, to examine the relation between theory of justice and feminism.
Here the main themes were the critique of distributive paradigm of
justice, the analysis of the concept of domination and oppression, and
the examination of the concept of the politics of difference.
Finally, I argued, it is not conflict but cooperation between theory
of justice and feminism that we need today. When the discourse of
justice can include feminist intervention and critique, it will be able to
recover its vitality. When feminism can cooperate with normative
universalism, it will be able to secure the foundation to justify its
normative standpoint.
Key words: theory of justice, feminism, Iris Marion Young,
domination and oppression, politics of difference
논문접수일: 2012년 9월 5일 논문심사일: 2012년 10월 2일 게재확정일: 2012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