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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철학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17.03.19|조회수1,377 목록 댓글 0

사회와 철학 연구회 논문집
사회와 철학 제26 집 2013. 10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1)

 

이 상 형**

 

[논문개요]
2011년 다원주의에 대한 실패 규정 후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들에 대한
논쟁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지금까지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이론적 근거들인
자유주의적 원칙이 사회통합을 약화시켰다는 반성에 기인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에 근거한 자유주의적 원칙과 그로부터 발생한 다원주의는 자유주의의 보편적 원칙
과 관용의 가치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고
려하지 못한 자유주의는 오늘날 공동체주의에 의해 비판받고 있다. 세계화 속에서
분열과 갈등이 첨예해지는 오늘날 자유주의적 원칙과 관용은 사회통합과 안정의 위
기를 불러올 뿐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자유주의적 원칙의 비판을 통해 새로
운 사회구성 원리를 모색하는 공동체주의는 하나의 반성점이 될 수 있다. 그들에 따
르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수행하는 상이한 가치관들의 상호인정투쟁이 공동체의 문
화를 형성하며 자신의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거
부할 수 없는 다원주의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 모형이 될 수 있
다. 따라서 논자는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공동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차이
에 대한 인정과 성공적 인정투쟁을 위한 규범을 모색한다. 관용뿐만 아니라 ‘우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정의 정치학은 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규범적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공동체주의적 윤리학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사회통합의
과정을 하나의 문화의 우위에 기반한 소수의 억압으로서의 통합이 아니라 소수와

 

*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NRF-2011-35C-2011-2-A00152].
** 경북대학교
90 사회와 철학 제26집

 

다수의 정당한 인정투쟁에 기반한 사회통합의 과정으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분류: 윤리학, 정치사회철학
주 제 어: 다원주의, 다문화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관용, 우정, 인정

 

1. 서 론
2010년 이후 서구 유럽에서 다문화주의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즉 다양
성의 공존을 강조한 다문화주의를 실패로 규정짓고 ‘통합’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는 2010년 10월 16일 다문화사회
건설시도는 실패하였으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다
문화구상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총리는
2011년 2월 5일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국제 안보회의에서 지난 30년의
영국 다문화주의는 젊은 무슬림들을 극단주의에 쉽게 빠지도록 만들었으며
따라서 지금에는 소극적인 관용(passive tolerance)이 아니라 더욱 적극
적이고 힘 있는 자유주의(active, muscular liberalism)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또한 “이민자들의 정체성에 대
해 너무 걱정한 나머지 그들을 받아들인 국가의 정체성을 소홀히 했다.”고
말했다.1) 이와 같은 유럽 정상들의 발언은 사회통합을 위해 차이와 다양
성의 공존이 아니라 사회의 공통된 가치가 중요함을 의미한다. 우리 공동
체의 구성원이 되고 싶으면 우리의 가치를 따르라는 것이다. 이는 곧 다름
을 인정하며 관용과 타협을 통한 자유주의적 사회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가치를 지키겠으며 다양성과 다문화주의의 가면을 벗어던지겠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정신의 대표적인 형태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언어를 통

 

1) 2011년 2월 15일 경향신문 참조. 이상형, 「선 윤리는 어떻게 가능한가?」, 주
25 재인용.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91

 

한 문화적인 통합이다. 영국은 현재 이주자의 영어 사용 의무화를 위해 학
교에서 영국 문화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메르켈은 이주민들에게 독일어를
배우는 등 사회통합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를 다원주의 또는 다문화주의로 특징지우며 이 다원주의를 유지하
기 위해 노력하는 자유주의적 전통은 이제 변화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자
유주의적 가치가 더 확대될 때 다문화주의의 문제는 극복될 수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다원주의가 무엇이며 다원주의의 문제점으로부
터 그 극복방안을 고찰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현대 정치사상과 사회구성원리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길에 대한 모색에 있
기에 경험관찰적 연구조사방법보다는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연구방법을 취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에 대한 이런 논의가 하나의 공허한 토
론이 되지 않기 위해 현실에 기반한 이념을 모색할 것이다. 또한 광범위한
연구주제로 인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대상을 제한할 것이다. 먼저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자유주의적 사상의 전통에서 오늘날 가치다원주
의를 대변하는 절차주의적 윤리이론과 그에 따른 가치관을 살필 것이다.
왜냐하면 가치 다원주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다원주의에서 갈등의 문제
를 해결하고자 한 서구의 대표적 철학자는 자유주의 전통에 기반한 롤스와
하버마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원주의에서 갈등 해결을 위한 보편적 도
덕원칙을 찾음으로써 그를 통해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만약 다원주의의 실패가 이런
공동생활을 위한 도덕법칙의 현실화의 어려움 때문이라면 또는 올바른 도
덕법칙의 발견의 문제라면 우리는 여전히 자유주의적 전통 위에서 관용과
타협을 통해 다원주의의 부분적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보편규칙의 도덕성을 통
해 사회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절차윤리학으로는 다원주의의 실패에 대한
원인과 그 해결을 모색할 수 없다는 것이 논자의 견해이다. 왜냐하면 가치
와 문화 충돌의 문제는 보편타당한 절차와 개인의 관용에만 기대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롤스와 하버마스의 관점에 따르면 가치의 문제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실현의 문제이기에 상호 타당성을 주장할 수 없으며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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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규제하기 위한 도덕적 문제로 간주될 수 없다. 따라서 가치의
다원성은 사적영역에 제한되고 도덕은 공적영역에서 규칙정당화의 문제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 또는 가치에 대한 표상과 그 충돌이 단
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의 문제일 때
그리고 도덕규칙과 규범 자체가 이미 가치의 표현이라고 생각될 때 이 가치
다원주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 간의 관용과 타협이 아니라 상호인정의 공적
인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가치에 대한 상호인정투쟁을 통해
사회규범이 성립되며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 하에서만 현
대 다원주의의 문제점과 그 해결이 올바르게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2. 다원주의, 다문화주의란?
2-1. 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 대한 개념규정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원주의에 대한 개념규정이 필요
하다. 다원주의는 다양성과 차이를 주제로 삼듯이 그 의미 또한 다양하게 쓰
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우리는 다원주의를 하나의 사
실로 인정한다. 사실로서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문화, 가치, 생
활방식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다원성 또는 다양성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롤스
가 ‘다원주의의 현실’이라고 부른 사실적 다원주의를 21세기 우리는 현대의
중요한 특징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반해 이념적 다원주의 또한 존재한다. 현
대 민주주의에서 특성상 현대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원주의적
형태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무페가 민주주의를 규정하며 말하는 ‘경합적 다원
주의(agonistic Pluralism)’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이념의 관
계가 그러하듯 이 경합적 다원주의는 사실적 다원주의를 근거로 민주주의의
정당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경합하는 것을 인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페는 다원주의를 “어떤 것이 좋은 삶인가라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93

 

는 문제에 대한 실체적 사고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2)
사실적 다원주의이든 이념적 다원주의이든 원래 다원주의라는 말은 일원
론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세계의 근원이 하나라는 생각 또는 하
나의 가치가 하나의 공동체에 가장 우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원주의는 반
대한다. 정치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다원주의에 의하면 사회는 여러 이익
집단이나 결사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기보다
는 다양한 집단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민주적으로 운영되거나 운영되
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다원주의가 생활 곳곳에 스며들
어 다원화라는 특징을 만들고 있다.3) 따라서 다원화는 오늘날 진리와 가치,
사회적인 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의 단일한 기준을
거부하고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사상과 태도를 폭넓게 가리킨다.
그러나 이런 다원주의는 특히 윤리적 영역과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필연적
으로 하나의 문제를 일으킨다. 도덕적, 정치적 영역에서 실제적으로 경험하
는 다원성은 그 자체 우리의 경험을 형성하고 이 경험은 결국 보편적 의무
그리고 나아가 하나의 안정된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일으킨
다. 즉 사실로서 경험하게 된 합리적 불일치는 쉽게 상대주의적 가치와 태
도를 확산시키며 이는 가치의 다양성을 경험하는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충돌
은 예전이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가치기준에 따라 해결되는 반면에, 오늘
날 다원주의에서는 하나가 맞고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둘 다 맞을 수
있는 합리적 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가치관의 혼란
을 가져오며 사회적으로 하나의 결정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다원주의에서
는 ‘어떤 것도 좋다’라는 결론에 이르거나 올바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
무주의에 이를 수도 있다.4) 이런 문제인식에 직면해 각기 내적 정합성과

 

2) 샹탈 무페, 민주주의의 역설 , 2006, 37쪽.
3) 철학적 논의의 장에서 다원성 또는 다원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양진, 「다
원성과 다원주의: 신체화된 경험과 다원주의의 제약」, 154쪽을 참조.
4) 이상화에 따르면 다원주의는 하나의 분과 안에 다양한 이론이 그리고 하나의
문제에 대해 상반된 여러 대답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상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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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을 지니면서도 서로 합일되지 않는 가치 체계들에서 비롯되는 가치
다원성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다문화주의’ 또한 다원주의에서 비롯된 하나의 유형이다. 문화는 일반적
으로 “인종지학적(ethnograohic) 측면에서 특정한 민속 풍습, 습관과 의식
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5) 따라서 한 특정집단이 공유하는 문화
는 그 집단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더불어 그 집단 구성원의 정
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하나의 공동체를 규정하는 표준적 문화
가 존재하며 이를 벗어난 구성원은 배제되거나 차별되어 동화의 대상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다원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세계화와 이민의 증가로 인
해 다인종, 다민족국가에서 다문화주의가 경험되고 있다. 이런 다문화주의는
주로 이민자의 적응에 관련하여 언급되지만, 어떤 나라들에서는 소수집단에
까지 폭넓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다원주의만큼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문화주의 지지자들은 대개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며
이는 결국 여성, 게이, 레즈비언, 장애자 등과 같은 소수자 집단들의 정체성
인정에 대한 요구로 이어져 현대 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의와 일치하지만, 어떠한 이론과 대답이 무조건 통용됨을 인정하지 않는 점에
서 상대주의와 다르다고 말한다. 이상화, 「다원주의에 대한 메타 철학적 방어」,
114쪽. 선우현은 한국 사회의 다원주의적 현실을 분석하며 다원주의가 소극적,
보완적 이념으로 기능할 경우에는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지만 적극적, 대
체적 이념으로 작용할 때는 사회의 퇴보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한
다. 강한 다원주의는 상대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분열과 퇴보를 야
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으로서의 보편성’과 그것에 기초한 보편주
의가 우선되어야 하며 다원주의에 기초한 ‘차이에 대한 배려’가 보완적 원리로
수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른 입장
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서는 결코 차이에 대한 인정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차이에 대한 억압과 배제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 논자의 입장이다. 왜냐
하면 절차적 정당성으로서의 보편성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으로서가 아니
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규제하는 형식적 그물망이라면 결코 우리의 실질적 차이는
고려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우현, 「다원주의는 사회적 진보의 징표인가?」,
40-47쪽 참조.
5) 윌 킴리카, 현대정치철학의 이해 , 주 22, 517쪽.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95

 

따라서 다문화주의가 문화에 의한 정체성 형성의 문제로까지 적용될 경우
다문화주의 또한 다양한 인종, 문화, 소수자의 문제까지 포괄한 현대의 많은
문제와 관련 맺게 된다. 한 집단 내에서 이런 다문화를 경험하는 현대사회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소수자집단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문
화적 차이를 수용하는 문제에 점점 더 직면하고 있다. 이것이 종종 ‘다문화주
의’의 도전으로 불리고 있으며6), 서론에서 등장한 유럽사회의 위기 또한 이
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원주의의 문제와 더불어 한 공동체 내에 다양
한 문화와 그에 근거한 다양한 집단들의 요구는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통합과
안정을 위협한다. 따라서 다양성과 차이에 기반한 다원주의나 상이한 정체성
형성의 기반으로 작용하는 다문화주의는 하나의 공동체가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될 수 있는가라는 현대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2-2. 다원주의의 원천
현대 사회를 규정하는 하나의 특징인 다원주의는 서구 자유주의적 사회
구성제도의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사상을 기초
지운 근대 자유주의는 집단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유란 각 개인에게 속하는 것으로 간섭과 강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자유의 권리를 실현하는 것은 결국 모든 개인이 자신
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행복을 추구하고 자기 방식대로 자기 목표와 삶
을 설계하고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자유
주의는 봉건주의가 개인들의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기회를 집단적 귀속성
에 입각하여 규정하였던 방식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게 되었다.7) 따라
서 자유주의에서 개인 각자의 자유는 존중되고 보호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자유에 기반한 다양한 개인의 가치관은 일원론적인 사고와 생활방식을 거
6) 윌 킴리카, 다문화주의시민권 , 19쪽 참조.
7) 윌 킴리카, 다문화주의 시민권 , 71쪽 참조.
96 사회와 철학 제26집
부하고 다원주의로 흐르게 된다.8) 좋은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가능하
며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자유주의로부터 다원주의가 귀결된다는 것은 동시에 자유주의가
다원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삶의 궁극적 이상이나 삶의 방식이 하나 이상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의 자유는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차이를 배제하고 억압한다
는 것은 곧 나의 가치, 사상, 표현에 대한 억압일 수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
는 일반적으로 다원주의를 전제하며 다원주의는 자유주의로부터 귀결되는
것이다. 이런 자유관에 따라 다원주의는 실체적이고 공유가능한 공동선이라
는 전망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자유에 기반한 다원주의의 가능근거
를 모색한다. 따라서 롤스의 관심은 좋은 삶에 대한 관점들이 서로 갈등하
며 다양하게 존재하는 근대적 조건에서 자유주의적 전통을 계승한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는 곧 다원주의 또는 다문화주의에서
어떻게 한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즉 합당하지만
양립 불가능한, 종교적이고 철학적이며 도덕적 교리들로 뿌리 깊이 나뉜 자
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안정적이고 정당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이다.9)
따라서 롤스는 합당한 다원주의를 자유제도의 불가피한 결과로 이해하고 그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질서원리를 찾고자 한다.
이에 반해 오늘날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사회구성모델을
제시하고자 하는 공동체주의는 다원주의에 맞지 않는 사상으로 인식된다.
자유주의적 전통이 제공하는 민주적 질서의 정당성 문제를 제기한 공동체
주의는 때로 공화주의와 결합하여 공동선과 공동가치를 강조함으로써 개인
의 권리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중립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거시
8) 허라금 역시 가치 다원주의에 근대의 자율적 인간관이 전제되어 있음을 주장한
다. 허라금, 「다원주의 윤리와 윤리 다원주의의 경계에서」, 49쪽.
9)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 218쪽 참조. 롤스에게 이 문제는 다음과 같
이 정식화된다. “합당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리들로 심각하게 분열된 자
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간에, 정의롭고 안정된 사회를 상당기간 유지시키는 것
이 어떻게 가능한가?” 존 롤스, 정치적 자유주의 , 4쪽.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97
적 관점에서 볼 때 다원주의의 원천인 자유주의는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
는 반면에 공동체를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는 다원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
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미시적 관점에서 볼 때 상황은 달라진다. 공동체주
의는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함으로써 침식되는 공동체의 가치와 문화를 보
호하는데 집중함으로써 소수자 집단의 권리에 대한 요구와 관계 맺게 된
다. 이로부터 다문화주의의 옹호자들은 공동체주의에서 자신의 사상의 기
반을 찾는다. 찰스 테일러는 다문화주의의 입장에서 캐나다 내 소수민족인
퀘벡주의 언어와 문화를 옹호하고자 한다.10) 다문화주의의 옹호는 자유주
의에 대한 공동체주의 비판의 지지를 포함하고, 동시에 소수자 권리의 보
장이 공동체적 심성을 가진 소수자 집단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침투로
부터 보호해 주다는 견해를 함유하고 있다.11) 따라서 모든 개인과 집단의
고유한 정체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공동체주의는 차이와 타자에 대한 인정
을 포함하는 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옹호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발생하는 문제
들을 이곳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진 않을 것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
의의 비판과 그로 인한 자유주의의 대응은 개인과 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파악할 때 더 좋은 삶과 사회에 접근할 수 있을지에 논의의 방향이 맞춰져
있다. 최대한 행복한 사회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의 문제와 달리 이곳
에서의 주요한 관심사는 이 입장들이 다원주의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
10) 공동체주의는 다양한 이론적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들의 개인주의
적 인간관과 추상적, 형식적 윤리관을 비판하며 공동선과 공동체의 가치를 중
시하는 관점을 공유한다. 따라서 찰스 테일러,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
클 왈쩌, 마이클 샌들 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자들은 개인과 공동체의 연
관성 및 옮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 공동선 등을 강조한다. 박구용에 따르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전사회적 개인과 공동체의 산물로서 개인’, ‘자율적
개인들의 합리적 협정과 선행적인 사회적 구속들의 반성적 현재화’, ‘평등한
권리의 이념과 상호적 연대성의 이상’, ‘모든 개인의 존엄에 대한 똑같은 존중
과 일반적 복지의 장려’라는 대립쌍 개념으로 특징지워진다. 박구용, 우리 안
의 타자 , 99-100쪽.
11) 윌 킴리카, 현대정치철학의 이해 , 468-9쪽 참조.
98 사회와 철학 제26집
가이다. 이때 양 진영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 공동체 내의 다양한 관
심과 가치관이 장려되면서 동시에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이다. 자유주의
적 원칙에 따라 모든 공동체에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강제해야 하는가
또는 공동체주의와 결합된 다문화주의의 원칙에 따라 소수자집단의 문화와
전통,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가 등의 대안이 제시될 수 있다. 이때 논자는
건강한 다원주의라는 목적에서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서 새롭게
이해된 공동체주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3. 자유주의에서의 다원주의
3-1. 다원주의의 가능근거 : 보편주의적 규범
다원주의가 하나의 사실로 경험되고 그것의 가치가 인정될 때 다원주의
의 가능근거는 마련되어야 한다. 다원주의의 원천이 자유주의에 있다면 그
것의 가능근거 또한 자유주의에 내재되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
적 전통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양성과 다원성이 발휘되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 사회구성체가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게 된
다. 이를 위해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원칙이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삶의 공통적 기반으
로서의 사회의 존속과 안정은 공동의 원칙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서로 다르며 갈등하는 합리적인 좋은 삶에 대한 표상을 가진 사람들이 받
아들일 수 있는 것은 원칙들로 한정된 공통의 도덕성이다.’12)
그러나 문제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대립하기까지 하는 다양성과 차
이가 서로 합리적인 근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근대의 자유주의적 원
칙이 보편성을 강조함으로써 각 개인이나 공동체의 실질적인 차이에 눈감
12)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 219쪽 참조.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99
으며 보편적 권리획득에 노력했다면 이제 차이에 민감한 보편성에 대한 탐
구가 현대 자유주의자들의 윤리적 이상이다. 따라서 각자 서로 다른 목적
과 의도를 가진 개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사회구성 원칙에 대한 탐구, 즉
합리적으로 불일치하는 다양한 개인들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원칙에 대한
탐구가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된다. 그러나 우월한 삶의 형식을 확인
하고 정치적 삶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는 철학은 다원주의와 양립할 수 없
다. 따라서 그들은 다양성과 보편성 두 마리 토끼를 쫓기 위해 우리의 생
활영역을 구분하게 된다. 다양성은 개인적 차원에서 가능하며 보편성을 위
한 합의는 공적인 영역에서 가능하게 된다. 개인들은 사적인 영역에서 각
자의 가치관과 좋음에 따라 자유롭게 생활하며 공적인 영역에서 이 사적인
자유를 공존하게 해 줄 하나의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하버마스와 롤스가 공유하고 있는 이런 좋음의 다양성과 옮음의 원칙에
대한 구별은 결국 자유주의에서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서 작용
한다. 좋음에 대한 옮음의 우선성으로 표현되는 이런 절차윤리학의 관점은
결국 좋은 삶에 대한 다양한 표상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공통된 정의의 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가 말하는 정
의는 ‘좋은 것에 대한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적 결사체
에서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구체화하는 핵심적 도덕성을’ 구성하는
것이다.13) 다원적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정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어떤 좋은 삶에 대한 표상도 허용될 수 있다. 따라서 좋음에 대한 옮음
의 우선성은 이 옮음이 좋은 삶에 대한 한계를 그어주는 테두리, 제한원칙
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옮음의 원칙이나 정의의 원칙들은
가치있는 만족들의 한계를 설정하며 무엇이 각자에게 있어서 합리적인 가
치관인가에 대한 제한을 부여한다.”14) 따라서 국가 정당성의 기반은 공유
된 정의감이지, 공통된 가치관이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좋은 삶에 관한
특정한 원칙을 공적으로 채택하길 요구하거나 배제하지 않고도, 정의 원칙
13) 샹탈 무페, 민주주의의 역설 , 44쪽 참조.
14) 존 롤스, 사회정의론 , 52쪽.
100 사회와 철학 제26집
들에 대한 공적 채택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유지하기를 갈구한다.15) 자
유주의 사회에서 다원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생활방식
과 가치관들이 국가의 중립성을 바탕으로 공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적영역의 규제와 사적영역에서의 자율은 몇 가지 문제를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 첫째, 보편주의적 원칙은 어쩔 수 없이 강한 추상
적 형식주의를 띨 수밖에 없다. 합리적 불일치자들은 내용에 대해서는 서
로 합의할 수 없다. 단지 그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절차에만 동의할 수
있을 뿐이다. 절차적 정의만이 보편적인 합의의 대상이다. “순수 절차적
정의가 성립하는 경우에는 올바른 결과에 대한 독립적인 기준이 없으며 그
대신에 바르고 공정한 절차가 있어서 그 절차만 제대로 따르면 내용에 상
관없이 그 결과도 마찬가지로 바르고 공정하게 된다.”16) 하버마스에게 실
천적 담론은 “정당화된 규범의 산출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립하
고 있지만 문제점이 있어 가설적으로 고려되고 있는 규범들의 타당성 검사
에 기여하는 절차”인 것이다.17) 모든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원칙은 결
국 삶의 구체적 형식과 조건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아주 얇은 것
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얇은 원칙을 통해서 형성된 연대감은
우리 모두가 단지 인간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것뿐이다. 이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감은 불가피하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의와 연대성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하버마스는 정의와 연대성을 도덕
의 동일한 원천으로 확립하고자 하나, 그의 담론원칙에 참여할 수 있는 사
람은 언어능력과 행위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장된다. 이런 사람
들의 의사소통공동체에서 가능한 합의는 담론 참여자들의 구체적인 지역,
신분, 언어, 문화를 초월할 때 가능하다. 비록 다원주의 시대에서 하버마
15) 윌 킴리카,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 353쪽.
16) 존 롤스, 사회정의론 , 106쪽. 이런 근거에서 선우현은 다원주의가 그 선결
조건으로서 보편주의적 원칙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한 보편성의 토
대 위에서 사회의 안정적 유지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선우
현, 「다원주의는 사회적 진보의 징표인가?」, 49쪽.
17) 위르겐 하버마스, 담론윤리의 해명 , 44-45쪽.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01
스가 차이에 민감한 보편을 주장하고자 하나 상이한 가치관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초월해야만 한다.
둘째 현대 유럽사회의 위기는 정의의 원칙에 대한 불일치의 위기가 아
니라 정체성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주민 노동자, 소수
자 집단에 대한 국가의 정의원칙에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정
의원칙이 특수한 집단이나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을 무시한 무차별적인 정
의라는 것이다. 소수자들이 정의의 원칙을 공유함을 통해 보호될 수 있다
는 것은 형식적 자유와 평등에 불과하다. 공유된 정의의 원칙만으로는 소
수자 집단의 특별한 권리를 보호하기에 무능력하다.18) 자유주의는 인간을
문화와 역사, 전통을 통해 형성된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기보다 이 모
든 것과 분리된 보편적 개인으로만 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런 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한 킴리카는 현실적 대안으로 언어와 문화 등을 공유한
시민권을 통해 다인종문화적 권리와 대표권을 요구하는 이민자들과 불리한
수혜자 집단들의 요구가 자유주의적 원칙들과 양립할 수 있음을 주장한
다.19) 그러나 이때 보편적 원칙과 양립가능한 소수자들의 요구는 이미 자
유주의적 원칙으로 걸러진 말일 뿐이다. 그가 간과한 것은 자유주의적 원
칙들 자체가 공유된 정체성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은 결국
무엇에 대한 자유이며 어떤 평등일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자가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도 이미 특수한 공동체의 전통과 가치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
이기에 인정투쟁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현대 자유주의의 사회체제에서 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에 대한 대응방안
은 명백하다. 킴리카 또한 인정하듯이,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인권’에 대한
18) 예를 들어 오랫동안 차별받고 억압받은 소수자집단에게 자유와 평등의 보편주
의적 원칙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실질적인 차별은 극복되지 않는다.
정미라 또한 말하듯이 “동등한 권리만이 문제가 되는 정치적 상황에서는 여성
이 지닌 고유성이 억압으로, 따라서 차별이 될 소지를 필연적으로 함축한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여성의 문제뿐 아니라 흑인이나 장애인 등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야기된다.” 정미라, 「문화다원주의와 인정윤리학」, 주 33.
19) 윌 킴리카, 다문화주의 시민권 , 387-400쪽 참조.
102 사회와 철학 제26집
새로운 강조가 소수자집단권리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다. 취
약한 집단들을 지정된 집단의 구성원을 위한 특별한 권리를 통해 직접적으
로 보호하기보다는, 집단적 구성원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개인들에게 기본
적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를 보장한다면 문화적 소수자집단들이 간접적
으로 보호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하였다.”20) 그러나 공적인 영역에서 권
리와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 타인들의 욕구에 대한 배려와 관심보다 우선적
이고 우월한 것으로 간주됨으로써 구체적인 타자는 윤리적 정치적 공간에
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유주의자가 기대하는 것은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적 정서뿐이다. 자유주의자
가 주장하는 관용은 보편주의적 도덕원칙과 함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사
적인 공간에서 구체적인 타자를 만나는 하나의 방식이다.
3-2. 자유주의적 가치 : 관용
자유주의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구별을 통해 하나의 다원적인 공동
체를 유지 발전시키고자 한다. 개인의 자유에 맡겨진 사적영역과 보편주의
적 원칙에 의해 규율되는 공적영역의 구별은 자유주의가 다원주의에 대처
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자유주의의 전제에 따르면 가치충돌과
연대의 문제는 사적영역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치관과 문
화, 종교의 영역이 사적영역에 위치한다면 다양성과 차이로 특징지워지는
사적영역에서의 충돌과 갈등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용은 자유
주의와 역사상, 개념상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사적영역에서 차이와 타자의
문제에 대처하는 자유주의의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어 왔다.
서구에서의 관용은 종교적 관용에서부터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구
교와 신교 간의 끝없는 전쟁은 안정적인 공동체를 위해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관용을 기초지웠다. 이로부터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관용의 원칙을
20) 앞3의 책, 5쪽.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03
신념이 다른 집단들 간에 서로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집단에게
또 개인들 간에 서로 다른 신념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 또는 가치로 여겼
다. 따라서 나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자유주의는
타인의 신념 또한 존중하기를 요구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부터 관용은 인간
삶의 가치와 목적에까지 확장되었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동일한 자유를 요구하는 보편주의적 원칙은 모든 사람들의 차이를 동등하
게 다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구성원들이 삶에서 부딪히는 차이로
부터 오는 갈등은 이 자유주의적 평등의 형식주의로 해결되지 않는다. 따
라서 가치, 문화, 종교 등에 중립을 요구하는 자유주의는 가치, 문화, 종
교의 다양성에서 오는 차이를 대하는 방식으로 관용을 요구하게 된다.21)
그러나 관용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이 항상 구체적으로 결정되
지 않기에 그 의미와 실천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관용은 권리나
의무 또는 법적 강제로 규정되기보다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덕으로
인식되며, 정치적, 사회적 의미로 이해되기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덕으로 인식되게 된다. 그러나 첫째 관용이 개인적 차원에서라도 정체성의
문제에 관련될수록 관용의 문제는 커져간다. 일반적으로 사적영역에서 나와
다른 생활방식의 사람,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을 관용으로
대한다는 것은 그냥 그와 그의 생활방식을 용인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나
와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공동체의 공동선을 구성하는 동료로 인정하기보다
단지 나와 다른 사람일 뿐이다.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가 무엇을 하
든 상관없다는 태도가 증가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개인주의와 결합해 타
21) 장은주 역시 다문화적인 조건에서 다른 문화와 종교, 신념체계와 가치관에 대
한 관용만큼 중요한 덕목은 없다고 말한다. 즉 관용은 다문화적인 상황의 시
민적 덕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불관용에 대한 불관용의 원칙과 사회적
역관계에서 힘센 쪽이 약한 쪽을 편의상 또는 지배 전략상 용인하는 것도 관
용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올바른 관용을 이야기하기 위해 다시
인권과 같은 보편주의적 장치가 필연적 전제임을 주장한다. 장은주, 「문화다
원주의와 보편주의」, 102-104쪽. 그러나 이는 다원주의 시대에 보편주의적
윤리학이 필요함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원주의가 가능하기 위해 이를 전제해
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104 사회와 철학 제26집
인은 낯선 존재이며 나의 이익에 도움이 되거나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는 타인을 나와 같은 삶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동료가 아니라 단지 수단으
로 또는 물적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 둘째 관용은 정체성 문제에 관련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인 면에서도 다문화적 조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힘센 쪽이 약한 쪽을 편의상 또는 지배 전략상
용인하는 것도 관용이 될 수 있다. 이때의 관용은 단순히 불쾌함을 유발하
거나 나와 다른 것을 참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관용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관용을 베푸는 이들에 비해 열등하고 주변적이며 비정상적인 이들로
표지하는 일인 동시에, 상대가 관용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될 경우 부과
할 수 있는 폭력 행위를 사전에 정당화하는 기제이다.”22)
따라서 관용에 기반한 자유주의의 다원주의에 대한 대응은 “이 담론이
본질화된 정체성에 문제 제기하기보다는 정체성을 한층 더 자연화하며, 나
아가 차이 자체를 적대 행위와 혐오감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본다는 데 있
다 … 오늘날 관용은 차이를 그저 묵인하면서 이를 향한 적대 행위를 줄이
고, 모든 차이를 절대적으로 동등하게 존중하는 동시에, 기존의 지배와 우
월성을 안전하게 보존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23) 따라서 자유주의에
의해 강조되는 관용의 가치는 정치적으로 모든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야 한
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항상 이 문화와 종교들이 자유주의의 가치에 순응
22) 웬디 브라운, 관용 , 38쪽.
23) 앞의 책, 8쪽. 브라운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이러한 관용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
이 추구하는) ‘관용의 승리’라는 이름하에 찬양되었고, 이어서 오바마가 자신
의 취임식 기도를 동성애에 반대해 온 복음주의 목사와 동성애자 가톨릭 신부
에게 동시에 맡긴 것 역시, ‘관용의 표현’이란 이름으로 옹호되었다. 첫 번째
사례에서 사람들이 관용의 이름으로 흑인의 종속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흑인들은 이 승리를 관용한 백인들의 미국에 다시 종속된다. 두
번째 사례는 편견의 관용과 동성애자를 향한 관용을 동등하게 취급하면서, 시
민권에 관한 복잡한 정치적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두
사례 모두에서 관용은 불평등, 배제, 갈등을 탈정치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웬
디 브라운, 관용 , 8-9쪽.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05
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자유주의의 제한 안에 들어온 문화와 종교들은
승인받게 되고 정체성이 약화되며 기존의 권력관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
다. 이런 의미에서의 관용은 특수한 권력 담론으로 작동하여 갈등을 줄이
고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한다는 목표를 넘어서 강자와 약자를 기존의 질서
에 따라 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정치적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기제로서 작동하는 관용은 결국 자유주의를 보호하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
다. 이 관용을 통해서는 차이가 드러나고 차이의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노
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차이를 덮어두는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관용은
다원주의와 다문화주의에 내재하는 불안감을 덮어두는 것이지 결코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서로를 관용으로 만난다는 것은 우리가 함께 공동
체를 구성하며 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을 단지 용인하는 태도일 뿐이다. 그렇기에 관용의 대상이 우
리 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위협적인 요소로 바뀔 때 그들은 더 이상 관용
의 대상이 아니라 동화나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럽 사회가 이주민
이나 소수집단들에게 자국의 문화와 언어,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을 관용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협하는 적대적 대상으로 보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지배 방식은 불안과 위험
을 숨겨둔 평화일 뿐이다. 잠재된 위험은 힘의 관계가 불안정하게 될 때
언제든지 공동체의 통합을 위협할 수 있다.
4. 공동체주의에서의 다원주의
다원주의의 문제는 다원성으로 귀결되는 다양한 집단, 특히 소수자 집단
의 권리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이다. 자유주의적 원칙과 가치는 모든
개인들의 형식적 자유와 권리만을 인정하기에 소수자 집단이 요구하는 실
질적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무페는 “사적 이익들이 자유
롭게 작동한 결과에서 일반적 이익이 나오며 자유로운 토론의 기초 위에서
106 사회와 철학 제26집
하나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믿음은
자유주의를 정치적 현상에 무지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24) 그렇다면 자
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공동체주의로 눈길을 돌릴 수 없을
까?25) 자유주의적 가치가 다원주의를 성립하기 위한 근거였지만 다원주의
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사회질서체제로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는 지금
‘차이의 인정’을 주장하는 공동체주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다
문화적 조건에서 복합적 평등을 주장하는 왈쩌와 차이의 정치를 주장하는
테일러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문화주의의 옹호자인 테
일러는 인정의 정치학을 통해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하나의 안정적인 공동
체를 형성하는 길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공동체주
의를 통해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길은 자유주의를 수정, 보완하는
것이기 보다 공동체주의로의 인식전환, 방향전환을 요청하는 것이다. 다원성
과 차이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출발하는 윤리는 이의 인정을 통해 우리가 정
체성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결국 보편적 의무에 가까워진다고 말한
다. 보편성은 어떤 이성적 구성물이거나 이상적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가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
이다. 따라서 공동체주의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구분에 의거해 각각 다
른 윤리적 명령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영역이 상호구성적이라고 생
각한다. 다원주의에서 차이는 각 개인의 가치관과 관심, 집단적 속성 등 다
양한 면에서 발생하며 이 차이와 특수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결
국 특수한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의 인정으로 귀결된다. 이 인정의 과정에서
24)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 195쪽.
25) 허라금 역시 다원주의에서 자유주의 윤리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덕 윤리를 말하고자 한다. 즉 그녀에 따르면 우리가 추구하는 통약불가능한
이상들이 있으며, 우리의 평가적 태도 역시 다양하며, 그것을 개념화하는 방
식이나 사회적 실행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 합의의 관점과는 다
른 지점에서 접근하는 다원주의 윤리학을 발전시킬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덕 윤리가 현대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는 아직 물음으로 남겨 놓고 있다. 허라금, 「다원주의 윤리와 윤리 다원주의
의 경계에서」.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07
개인과 사회에 대한 윤리적 의무와 명령이 정당화될 수 있다.
따라서 논자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의 비판을 수용하며 동시에 계
승, 발전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공동체를 말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다원적
공동체가 가능한 자유주의적 공동체의 이념을 형성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공동체주의가 먼저 무엇인지 말해져야 한다. 일반적
으로 공동체주의의 두 갈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첫 번째 주장은 자유주
의에 반대하는 공동체주의라 할 수 있다. 이는 집단보다 개인의 자유와 권
리를 우선시하는 것에 반대하여 전통과 관습이 개인을 구성한다는 것을 우
선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다원주의는 자유주의와 개
인주의적 자율성으로 인해 공동체의 문화와 전통, 관습을 침식하여 공동체
주의적 공동선을 형성하고 보호하는데 어려움을 갖게 한다고 주장한다. 따
라서 이 공동체주의는 근대화와 세계화가 수반하는 다원주의, 자율성과 양
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과 문화적 다양성은 불가피하며
근대성의 바람직한 특성이라고 인정하는 공동체주의의 입장도 있다. 이는
전통과 문화, 관습을 반성할 능력을 가진 개인을 인정하면서도 이 다양성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가능할지를 고민한다. 따라서 이는 자유와 연
대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기 위한 길을 모색한다. 이 후자의 입장을 논자는
‘자유주의적 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4-1. 다원주의의 가능근거 : 공동체주의의 규범
그렇다면 이런 새로운 공동체주의가 가능하기 위한 근거는 무엇인가?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가 안정되게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유와 연대를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하나의 제안은 공유된 가치들에 의
해 사회적 화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근대 민주국가의 시민들은 좋은 삶
의 특정한 개념을 공유하고 있지 않지만, 특정한 정치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따라서 롤스는 정의의 개념을 공유할 때 질서정연한 사회를 구성할
108 사회와 철학 제26집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공유된 가치에 의해 사회적 화합이 실현될 수도
있지만, ‘두 민족 집단들이 동일한 가치들 또는 정의의 원칙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두 개의 분리된 국가로 남아있기(또는 나눠지기)보
다, 그들이 함께 해야 (또는 현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어떤 강한 이
유도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킴리카는 말한다.26) 또한 가치 공유를 강조할
경우 우리는 어떤 경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다양한 경쟁적인 이념들이 대립하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
는 길은 우리가 동일한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하나의 국가 구성원이라는
공유된 정체성의 개념으로 가능하다. 우리가 서로 모순적이고 적대적이기
까지 한 이념과 계급관계에 놓여 있더라도 결국 이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동일한 아파트, 같은 촌과 도시, 같은 국가에서 살고 있으며 이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구성원임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의 전제이다.
일반적으로 중립적인 국가는 공유된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공유된
소속감을 침해한다. 중립국가에서 시민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국가의 요구
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한계 내에서 스스로를 개인으로 자각한
다. 그러나 이런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서로 단절된 것으로 개인이 어떻게
개인이 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빠져있다. 개인이 공동체
와의 연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것이 다시 자신의 공동체를 형
성하는 조건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한 집단을 형성하는 공동의 정체성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 바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에
서 발생하는 인정과정인 것이다. 이 인정과정에서 우리는 개인의 독자성을
인식하고 실현하는 것과 더불어 공동체의 정체성을 공유하게 된다.
찰스 테일러가 말하듯이 인정에 대한 욕구는 인간에게 본성적인 것이
다.27) 그가 말하는 인정의 정치학은 인간의 정체성이 주체와 객체 양자
26) 윌 킴리카,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 387쪽.
27) Ch. Taylor, Multikulturalismus und die Politik der Anerkennung,
15쪽. 인정개념은 피히테와 헤겔로부터 유래하여 오늘날 찰스 테일러와 악셀
호네트에 의해 주체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구성원리를 위한 핵심개념으로 주목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09
간에 ‘대화적으로’ 진행되는 상호 인정의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을 전
제한다.28)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의 확립은 언제나 다른 사람과의 인정과
불인정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근대 이전시기에 대부분의 공동체에서 개
인들은 이미 사회적 범주의 조건 속에서 형성되며 인정되어 이 인정의 관
계가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삶의 의미와 존재이유는 이미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탈형이상학적 조건에서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고독한 주체의 판단근거가 불확실해짐으로써 상호주관성이 진, 선, 미의
기준으로 등장한다. 이때 상호주관성은 주체 간의 담론, 대화에 의해 발생
한다. 언어, 대화의 기능이 무엇인지는 다양하게 해명될 수 있지만 오늘날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대화를 통해 ‘의미’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우
리의 삶은 의미를 찾고, 의미를 구성하며 그에 따라 살고자 하는 노력일
수 있다. 이때 의미 구성적 대화는 상호인정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오늘날 인정이 문제시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의미가 왜곡되고 장애를 겪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사회적 관계까지 왜곡되어 사회제도자체가
정당한 인정, 불인정의 관계가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를 형성하
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29)
사회적 관계에서의 인정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30) 첫 번째 인정
받고 있다. 테일러는 현대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인 다문화주의에서 인정의
정치학을 통해 차이에 대해 배려를 강조한다. 호네트는 사회발전원리의 규범
성을 인정개념에서 찾고 있다.
28) 앞의 책, 22쪽 참조.
29) 오늘날 다문화사회의 위기는 개인의 인정에 대한 노력이 좌절될 수 있는 사회
적 관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책, 24쪽 참조. “현대에서 문제가 되
는 것은 인정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이런 요구가 실패할 수 있다는 조건들이
다. 바로 이 점이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요구되
는 근거이다.”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 사회 , 67쪽.
30) 찰스 테일러는 이 두 가지 인정을 동등한 인정의 정치와 차이의 정치로 구별
한다. 그에 따르면 차이의 정치가 비록 동등한 인정을 목표로 하는 보편적 존
엄의 정치로부터 발생했지만 동등한 인정의 정치학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보편적인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에 차이의 인정은 개인이나 집단의 특수한 정
110 사회와 철학 제26집
은 동일한 것은 동일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모든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동등한 보편주의적 인정은 이 인정을 위한 노
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시민권, 투표권 등으로
전개되는 인정을 위한 투쟁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것은 동등하게 대우받아
야 한다는 요구이다. 따라서 이 주장은 일반적으로 보편주의적 권리에 대
한 주장과 그 권리의 획득으로 이어진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적 정치체제
에서 이런 요구는 평등한 자유를 요구하는 보편주의적 정치로 귀결된다.
두 번째 인정은 차이는 차이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요구는
최근 다원주의와 결합한 차이의 정치학에서 강조되고 있다. 이 견해에 따
르면 모든 인간과 집단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인정을
요구하며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의 특수한 정체성의 인정에 대한 요구를 원
한다. 이 요구가 인정되지 않을 때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은 왜곡되며 단순
히 다수나 지배집단에 의해 동화될 뿐이다. 오늘날 소수민족이나 인종, 종
교집단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 예를 들어 장애자 권익운동,
여성운동,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은 그들의 정체성이 왜곡된 역사에 대한
반발이며 보편 속에서 잊혀진 그들의 특수성에 대한 인정의 요구에 대한
결과이다. 따라서 이 인정의 정치학은 특수성을 우리가 자각하고 배양하기
를 목표로 한다. 그리고 그 특수성이 주체와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될 때
훨씬 더 이 인정의 정치학은 강한 요구로 드러난다.
이 두 번째 인정에 대한 요구에 따르면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동등
한 것에 대한 동등한 인정은 보편주의적 권리에 대한 요구로 귀결되고 이
를 통해서는 결코 차이에 대한 고려가 발생할 수 없다. 보편주의는 형식화
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형식주의에는 현실의 구체성을 파악할 기회가 많지
않다. 특히 정체성이 형성되는 집단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착취와 배제,
주변화, 기회박탈 등은 보편주의적 권리의 개념으로 파악하기 힘들다.31)
체성이 인정되기를 요구한다. Ch. Taylor, Multikulturalismus und die
Politik der Anerkennung, 28쪽.
31) 1998년 독일에서 이슬람 문화권의 여교사가 공립학교에서 히잡을 쓰고 수업을
하여 면직되었다. 주정부는 그 당시 독일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는 논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11
왜냐하면 개인의 구체적 차이가 배제된 합의는 그것이 선험적 형식이든 가
상상황을 통해 정당화되든 형식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형성된 보편성
은 차이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억압을 낳을 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는 구체성에 근거한 보편성의 확보와 정당화가 있어야 한다. 즉 동일한 것
을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는 자유주의의 주장도 서구 사회의 특수성이 가진
가치가 인정된 것일 뿐이다.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자의 인권 또
한 전통적인 서구 사회의 가치관이 인정된 결과이다.32)
그렇다면 결국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미의 인정개념은 하나의 인정개념
으로 귀결된다. 개인은 자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인정을 요구하며 인정투
쟁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은 형성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개인과 개인이 만
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이 만나 개인과 집단이
형성되고 발전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배와 해방을 경험하며
상호주관적으로 구속력 있는 판단을 형성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자신과
집단의 인격체가 훼손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인권을 요구하기도 한다.
인권은 그러므로 각자의 정체성에 필수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정체성
훼손을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인 것이다. 이는 이성적 존재가 이성으
로부터 도출한 보편적 형식적 권리라기보다 각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정
리로 그 교사를 해고하였고, 주법원에서도 이를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2003
년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를 각 주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판결했다.
물론 이 문제는 종교의 자유와 공직에서의 중립성 의무라는 상이한 가치관의
충돌로 볼 수도 있으며 이슬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보편주의적 권리와 의
무의 충돌로 볼 수도 있다. 보편성에 대한 강조는 보편적인 이념이 가진 해방
적 힘에도 불구하고 차이에 대한 배제, 즉 개인의 고유한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다. 테일러가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보편주의적 정치가
지닌 해방적인 힘이 억압적 폭력으로 변하는 지점이다. 정미라 역시 이 부분
을 강조하고 있다. 정미라, 「문화다원주의와 인정윤리학」, 223쪽 참조.
32) 이와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마이클 왈쩌의 얇은 도덕(최소한의 도덕)과 두꺼
운 도덕(최대의 도덕)에 대한 해명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보편
주의적 규범이라 부를 수 있는 얇은 도덕은 결국 두꺼운 도덕에서 기원하며
그 도덕들이 만나 상호 인정투쟁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Michael Walzer,
Thick and Thin, 2-19쪽 참조.
112 사회와 철학 제26집
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하나의 가치로 보아야 한다.
즉 인권은 보편주의적 도덕 관점을 통해 정당화되거나 그것의 보편적 적용
을 요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에서 인정을 요구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구체적 인간으로부터 발생한
하나의 가치인 것이다. 인권이 보편적일 수 있는 이유는 서로 다른 집단들
이 서로 만나며 인정투쟁을 거쳐 인권의 개념에 합의해 왔기 때문이다. 이
차이의 인정을 통해 결국 동등한 것은 동등하게 차이는 차이로 인정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인정의 관계가 도구화될 때 우리의 사회적 관계는 왜곡된다.
즉 인정하는 주체와 인정받는 대상 사이에 한쪽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과
힘이 작동할 때 지배와 억압은 고착화되며 사회통합과 안정은 잠재적인 위
협에 노출된다. 따라서 인정투쟁이 올바른 상호인정이 되기 위해 규범성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요청이다.33) 인정의 정치학이 상호인정의 윤리가 되
기 위해 인정개념에 규범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윤리적인 인정의
정치학은 결국 ‘어떤 타자나 집단의 정체성 그리고 그에 따르는 삶의 유형
이나 사고방식이 가지는 나름의 가치와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고자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34) 그리고 그를 통해 인정의 정치학이 목표로 하는 것
은 차별과 배제를 극복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율적 해방과 동시에 공동체
의 발전과 안정이다.
33) 따라서 사회구성원리로서의 인정투쟁을 지지하는 호네트 또한 올바른 인정투쟁
을 위한 규범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주관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정의 형태는 사랑, 권리, 연대의 세 가지이며 이를 통해 상호인정
이라는 상호주관적 상태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인정의 계기에서 올바른 인정
을 위해 모두가 따라야 하는 상호인정 상태를 전제하는 것은 다시 그 전제에
대한 정당화과정이 필요하다. 즉 어떤 사랑, 권리, 연대가 필요하며 그 사랑,
권리, 연대가 어떻게 될 때 상호인정이 가능한지의 정당화가 필요하게 된다.
34) 송재룡, 「다문화주의와 인정의 정치학, 그리고 그 너머」, 90쪽.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13
4-2. 공동체주의의 가치 : 우정
인정의 정치학 또는 차이의 인정이 자아와 공동체의 관계를 해명해 주
더라도 규범성의 부족은 결국 기존의 힘의 관계에 따른 인정의 관계만을
승인해 보수주의를 강화할 뿐이라는 우려가 발생한다. 이는 윤리적 비인지
주의와 결합하여 무엇이든지 인정가능하다는 견해를 낳을 수 있다. 즉 “상
대방의 입장이 진리일 수 있다는 추정 아래 상대방의 견해와 주장을 존중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상대방을 타도와 제거의 대상으로 보는 근본주의
적 입장까지 수용하고 인정해주어야 하는가는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 없
다.”35) 인정의 정치학이 상대주의로 흘러 다른 문화와 가치 모두를 인정
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 회의주의로 귀결되거나 공동체의 안정 자체를 위
협할 수 있다. 따라서 테일러는 인정의 정치학이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것
이 아니라 각각의 문화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모든 문화에 내재한 고유한 가치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모든 문화에 동일
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규범성이 도출되지는 않는 것이다.’36)
그러나 모든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이런 다원주의적 태도가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 즉 다양한 이해갈등이 충돌하고 사회적 갈등이 증
폭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문화
와 공동체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율성이 어떻게 다원주의적
태도와 조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자율성을 보장하는 다원
주의적 태도가 상호인정을 통해 하나의 안정된 공동체를 만드는 길이 필요
하다. 따라서 인정이 상호인정이 되고 인정투쟁이 공동체의 보존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 하나의 규범, 즉 ‘우정’이 필요함을 제안한다. 왜냐하
면 인정투쟁이 자아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통합을 분열시키지 않기 위해 인
정투쟁에 공동체주의적 가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37) 즉 이 인정투쟁이
35) Ch. Taylor, Multikulturalismus und die Politik der Anerkennung,
52쪽.
36) 정미라, 「문화다원주의와 인정윤리학」, 226쪽 참조.
37) 호네트는 인정투쟁 6장 이하에서 인정의 거부나 불인정으로 발생하는 인정투
114 사회와 철학 제26집
갈등과 분열, 그리고 결국 우리의 파괴로 이르지 않기 위해 인정투쟁의 대
상에 대한 어떤 가치지향적 관점이 필요하다. 상대방도 나와 동일한 조건
에서 살고자 하는 한 우리는 인정투쟁의 대상이 나와 함께 잘 살고자 하는
우리의 하나라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투쟁의 조건이기도 한 이런
전제는 우리를 인정대상에 대해 우정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관용이 어떤 힘의 우위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적 배려라면 우정
은 동등한 관계에 서 있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함축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에게서 볼 수 있는 우정의 형태가 이를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상의
형태로서의 우정을 윤리적 이상으로 고양시켰다. 단지 좋은 사람들만이 완
전한 의미에서의 우정을 나눌 수 있으며 그런 우정의 형태에서만 덕은 완전
히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우정은 ‘선하고
덕에 있어 서로 닮은 사람들의’ 우정이다.38) 이는 완전한 우정을 말하는 것
으로 자기의 친구를 위해서 그에게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 간의 우정인
것이다. 이와는 달리 ‘상대방의 유용성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우정’ 또한 존재한다. 이는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어떤 좋은 것 때문에 맺게
되는 우정으로 유용성이 다하면 그 우정의 관계도 일반적으로 끝이 난다.
또한 ‘쾌락이나 즐거움 때문에 맺게 되는 우정’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또한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쾌락이 다할 때 그 우정 또한 끝나게 된다. 따라서
유용성과 즐거움 때문에 맺게 되는 우정은 그 대상이 제한적이며 지속적이
지 못하다. 폴리스에서는 정치적 삶이 곧 인간 본성을 실현하는 삶이기에
정치적 삶을 완성할 수 있는 우정은 첫 번째 형태일 뿐이다. 자신이 선하고
타인도 선하기를 바라는 관계만이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어 폴리스의 발전
을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삶의 이상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폴리스에서 우정은 정치적 삶의 중요한 형태로 인정받았지만
그 후 오랜 기간 친구 사이의 우정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철학적, 윤리적
쟁의 유형을 설명하고 있다. 세 가지 인정유형에 따라 불인정은 폭행, 권리의
부정, 가치의 부정을 발생시키며 결국 주체에 대한 도덕적 훼손을 발생시킨다.
38)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 234쪽 참조.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15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39) 이성을 강조하는 근대 주체성의 시대에 윤리적
의무를 형성하는 것은 보편적 박애나 이성에 따른 보편적 명령일 수밖에
없다. 자유와 인권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기에 정당화될 수 있으며 따
라서 개인사이의 관계를 대변하는 우정은 공적인 영역에서 빠질 수밖에 없
었다. 근대 이후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별은 강화되고 우정은 단
지 사적인 관계에서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 남았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적
인 영역은 평등한 이성적 존재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이하며
불평등한 시민들로 구성된다. 자유주의자들이 가정하듯이 공적영역에서 만
나는 주체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에 따라 지배와 복
종의 논리에 좌우된다. 따라서 경제적인 가치가 공적인 영역을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경계한 이해관계에 따른 우정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공적인 영역에서 만나는 상대방은 나에게 이익이 될 때
가까워지고 손해가 될 때 멀어진다. 사적인 영역에서 만나는 친구를 선의
관점에서 바라보듯이 공적인 영역에서 인정의 대상 또한 선의 관점으로 바
라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적영역에서 이런 우정의 공동체가 형성되기 위해 먼저 자아와 공동체
의 관계에 대한 해명이 우선되어야 한다. 공동체주의의 해명에 따르면 공
동체는 주체의 사적, 공적 영역과 정치적, 경제적 영역이 상호영향을 주고
받으며 형성된 공간이다. 이때 인간의 상호관계가 정치적 공적 영역에서
비경제적인 균등화로 나타나는 것이 우정이다. 정치적 영역에서 개인들은
동등하게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친구가 된다. 공동체의 정체성은 인정
투쟁을 통해 형성되며 이때 우리는 타인을 동등한 친구로 인정하게 되고
결국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나와 타인의 좋은 삶을 지향해야 한다. 타자 또
한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좋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
정할 경우 우리 모두는 결국 동일한 공동체에서 자신을 형성하고 실현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따라서 인정이 상호인정이 되기 위해 인정대상을 우정의
39) Neera Kapur Badhwar, “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Friendship”,
in: Neera Kapur Badhwar (ed.), Friendship-A philosophical Reader,
1-2쪽 참조.
116 사회와 철학 제26집
관점으로 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상대방을 이해관계의 충돌로만 파악할 때
결국 자신과 공동체의 운명은 보장될 수 없다.
둘째 서로의 선을 지향하는 사적인 우정의 관계가 공적영역에서도 가능하
기 위해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적 영역에서 우정은 각 친구들이 함께 공
동체를 형성하며 공동체의 선을 만든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등장한
다. 민주주의적 질서 안에서 시민들은 상호간을 하나의 동등한 동료로서 이
해하며 합의에 이를 수 있는 파트너로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
들 서로를 단지 투표 권리자나 이해당사자일뿐 아니라 같은 공동체의 전통과
가치에 따라 동일한 운명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우정을 회복
하는 것은 또한 민주주의적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적인
영역이 단지 경제적 이해관계에 지배되지 않으며 평등하고 공정한 자유와 권
리의 바탕하에 서로의 합의를 통해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민주주의로
이해한다면, 덕으로서의 우정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가치뿐
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의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정치공동체는 개인
의 사적이해에 기반한 일종의 계약관계가 아니라 공동가치, 공동선에 기반한
공감적 유대의 공동체이다. 우정의 정치학을 통해 올바른 인정투쟁이 가능하
며 자유와 연대성의 조화를 위한 공동체가 가능할 수 있다.
5. 자유주의적 공동체
자유나 정의와 연대를 결합하고자 하는 노력은 공동체의 현실에 기반해
서만 올바른 해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보편주의
적 원칙이나 정의는 구체적 타자에 민감할 수 없기에 사회통합을 위한 감
각을 발전시킬 수 없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의해 국가와 공동체의 동
질성과 통합이 위협될 때 자유주의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그때 서론에
서 언급했듯이 유럽 사회가 선택한 방법은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주류가
가지는 가치의 강조였다. 소수자나 타자가 주류에 동화됨으로써 하나의 공
다원주의의 성공과 실패 : 자유주의적 공동체(이상형) 117
동체는 통합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통합은 다수의 소수에 대한
동화에의 요청이다. 자신에게 동화됨으로써 타자와 나는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근대 서구사회가 되풀이 해온 소수와 타자에 대한 폭력
일 수 있다. 진정한 연대는 상호인정과 그 상호인정을 가능하게 하는 ‘우
리 공동체’라는 의식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같은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
원으로써 타자가 선하게 될 때 우리 공동체 또한 건강하게 되며 결국 나조
차 좋은 삶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연대를 통한 사회통합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생활하며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으며 공유하기를 지속
하려는 욕구를 가져야 한다. 이는 서로를 같은 공동체에 있는 동료 시민들
로 인정하며 그들과 함께 나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음을 자각할
때 가능하다. 내가 비록 타인과 다른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만 공유된 소속감과 공유된 일체감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우정으로
대하여 연대성과 자유, 정의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연대성이 공유된 정의로부터 가능하다는 자유주의자들이 사회통합에 어
려움을 갖는다면, 연대로부터 단순히 우리가 올바른 길을 찾아 갈수 있다
는 주장 또한 낭만적이다. 따라서 현대 공동체주의자들은 연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규범성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원칙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구성원리라기 보다 이제는 인정의 정치를
위한 원칙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인정투쟁에서 인정 당사자들을 동일한 운
명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유의 원칙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주체의 권리란 주관적 의지가 스스로 타당한 것으로 인정한 것만
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권리이며, 행위의 정당함과 부당함, 좋음과 나
쁨을 판명할 수 있는 권리이다. 따라서 헤겔이 완성된 형태로 제시하는 인
륜성은 ‘이성적이라고 통찰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권리’를 가진 주체가 형성하는 공동체인 것이다.40) 따라서
이런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자유주의적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41) 인정
40) 헤겔, 법철학강요 , &132.
41) 마이클 왈쩌 또한 이념적으로 자유주의적 공동체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118 사회와 철학 제26집
투쟁이 자유의 원칙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자신과 공동체의 정
체성을 형성하고 공동체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유 또한 우리의 인정투쟁의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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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적으로 고양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통합적 공동체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공화주의가 정치적 참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시민공
화주의도 이러한 공동체주의의 일종이 됩니다. 전통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나
루소가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이와는 다른 또 하
나의 공동체주의는 다원주의적 공동체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
동체주의는 정치 공동체 전체가 아니라 그 하위 공동체인 민족적, 종교적, 문
화적, 지역적 공동체 등 지방 공동체의 다양성을 고취시키는 입장입니다. 이
러한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은 다양한 공동체들에 특유한 방식으로 복합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공동체주의가 바로 제 자신의 입장
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주의 사회의 배경에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가 자리잡고
있으며, 국가는 이러한 다양한 지방적 공동체들 사이에서 완전히 중립적인 것
이 아니더라도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유주의적 공동체를 유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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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ccess or Failure of Pluralism :
Liberal Community
Lee, Sang-Hyung
【Abstract】
This paper is concerned with issues of ‘pluralism’ and ‘multiculturalism.
The purpose of paper is also to explore the resources available to
communitarism to meet challenge of pluralism. Liberalism has traditionally
offered itself as the best solution to the challenge of pluralism. Communitarians
criticize idea of Liberalism, the liberal ideal of the person as free and
equal, the liberal culture of choice based on individual autonomy, liberal
individualism, the priority of the right over the good, and liberal neutrality,
because of the crisis of multiculturalism. Taylor has elaborated ’politics
of recognition’ in terms of the cultural-linguistic and liberal-communitarian
frameworks. As a result, it is the argument of this paper that a politics
of recognition might be a more realistic alternative as a political strategy
for pluralism.
Key words : Pluralism, Multiculturalism, Liberalism, Communitarism,
Friendship
논문접수일: 2013년 8월 31일 논문심사일: 2013년 9월 27일 게재확정일: 2013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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