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
윤 형 식*1)
[논문개요]
김상준은 조선 후기 공론정치를 유교적 공론장으로 파악하면서 이를 유교적 근
대의 한 증거로 제시한다. 이 글은 조선 후기 공론정치를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론
장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유교적 근대의 증거로 제시
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분석하여 그 핵심 내용을 다음과 같
이 정리한다. 공론장은 이념형적인 일반 개념이 아니라 서구 근대의 산물로서 서구
근대와 분리 불가능하며 전제하는 바가 많은 역사적 개념이다. 그것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관철에 대한 규범적 기대와 자유주의 정치문화 그리고 사회적 갈등의 민
주적 해소를 보장하는 민주적 법치국가를 전제한다. 나아가 공론장은 일반적 이해
가능성을 그 본질적 특징으로 가지며, 공중의 공급원이자 공론장의 의제가 감지되
고 발굴되는 자율적인 사적 영역을 상보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끝으로 공론장은
오늘날에도 그 존속 여부가 우려될 정도로 본질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이 취약성은
공론장 개념을 형식적으로 유사한 임의의 역사적 상황에 적용시킬 수 없다는 점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준다. 이렇게 밝혀낸 하버마스 공론장 개념의 핵심 내용을 바탕
으로 이 글은 유교적 공론은 실체론적 개념으로서 하버마스가 상정하는 형식적 공
론 개념과는 다르며, 현실의 정치투쟁에서 헤게모니 쟁취를 위한 하나의 실천적 수
단 개념의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붕당정
* 한양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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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내지 공론정치는 − 어쩌면 그것이 가질 세계사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 하버
마스의 공론장 개념의 적용이 불가함을 밝힌다.
주제분류 : 사회철학, 정치철학, 역사철학
주 제 어 : 하버마스, 공론, 공론장, 유교, 근대
1. 공론장과 유교적 근대 - 문제 제기
한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는 그의 역작 양반 의 결론을 전통과 근대
에 대한 성찰로 마무리하고 있다. 전통적인 것이 근대에 들어서면서 해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게 사회 전체에 침투하여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로 하여금 이러한 결론을 내리도록 한 것은 18세
기 이후 시작되는 조선사회 전체의 양반 지향화 현상이다. 이 현상은 19
세기 들어 향리층만이 아니라 민중들도 이 양반되기 운동에 뛰어듦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되는데 이러한 사회변동을 통해 우리가 한국의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주자학적 유교전통이 전사회적으로 침투되었다. 즉 현대에 살아
있는 한국의 유교전통이란 물론 조선시대 오백년이란 오랜 시간을 걸쳐 이
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유교적인 예가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게 된 것은
18, 19세기의 일”이다.1)
미야지마에 따르면 이러한 조선 사회의 전면적 유교화는 17세기 경 성
립된 소농사회를 바탕으로 한다. “중국에서는 송대에서 명대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에 서서히 [중략]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후기에, 일본에서는 도쿠
가와(德川)시대 전기−1603년부터 18세기 초까지의 약 100년간−에” 성
1) 미야지마 히로시, 양반 , p. 33.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23
립된 소농사회는 “주자학이 만들어지고 한국과 일본에 수용되는 것과 거의
병행해서 나타난 현상”인데2), 이 현상은 동아시아 역사의 분수령이라 할
정도로 심대한 사회구조적 대변동을 초래했으며 이 “대변동에 비한다면 전
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변화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라고 한다.3)
여기서 전근대니 근대니 하는 구분은 물론 서구역사의 근대 개념을 기준으
로 말한 것이다.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전개하던 당시의 미야지마는 아직
유교적 근대론을 입론할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동아시아 소농사회와
주자학이 결합함으로써 명대 이후 중국을 필두로 동아시아에 유교적 근대
가 성립했다는 미야지마의 유교적 근대론은 ‘주희 사상의 근대성 및 명․
청대 중국사회와의 공명관계’를 확인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제출되었다. 이
때 미야지마가 주목한 것 중의 하나가 서구와는 다른 명․청대 중국 법의
존재양식인데, 바로 ‘모두가 인정하는 하나의 올바름’, 곧 ‘천하의 공론’으
로서의 법 개념이다.4) 그리고 이것은 주자가 정립한 “천하의 모든 사람들
이 한결같이 하는 말[萬口一辭]” 내지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옳다’고
여기는 것[天下之所同是者]”이라는 공론 개념5)의 법적 구현일 터이다. 미
야지마는 중국적 내지 유교적 근대의 특질로 본 이 보편주의적 공론의 추
구라는 법의 존재양식과 공론장을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유교적 공론 개념을 바탕으로 공론장을 조선 후기 유교적 근대의 증거
로 적극 호출한 것은 김상준이다. 궁극에는 도저한 근대예찬론으로 읽히는
중층근대론을 제시한 저서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에서 김상준은 미야지마
의 소농사회론과 조선 후기 양반지향화 현상 등을 주요 논거로 하여 조선
후기 유교근대론을 펼친다. 김상준에 의하면 “하버마스가 말하는 근대적
공론장(public sphere)의 핵심은 봉건 궁정이 독점하던 공공적 권위를
2)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 pp. 50-51.
3) 앞의 책, p. 72.
4) 앞의 책, pp. 336-338 참조.
5) 박현모, 「정조시대의 公論 연구」, 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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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조직화된 궁정 밖의 여론세력이 분점하여, 이 여론집단의 공론이
국가정책의 향방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 데 있다[중략]. 이러한 의미의 근
대형 공론장이 최초로 출현했던 곳은 명백하게 유럽이 아니라 송대 중국이
었다.”6) 그리고 송대에 출현했던 이 초기 근대 유교 공론장의 수준을 크
게 뛰어넘는 근대적 수준의 유교적 공론장이 탄생한 곳은 17세기 조선이
며, 예송을 통해 유교적 공론장이 크게 성장함으로써 “유교적 전국정치
(national politics)와 유교적 국민국가(nation state)가 태동”했다는7)
것이다. 비록 유교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서구 근대에 의
해 동시대 혹은 그 이후 성취될 것들이 이미 17세기 조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유교적 근대론의 적실성 여부를 논하지 않을 것이다. 탄탄
한 사료 연구를 바탕으로 전개하는 미야지마의 동아시아 소농사회론과 유
교적 근대론이 동아시아의 근세사가 갖는 특수성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성
찰을 촉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 김상준의 중층근대론은 근
대 개념을 규범화하고 결국에는 그것이 어떤 근대이든 간에 근대를 긍정적
으로만 바라보는 한계를 노정함으로써 근대론으로서의 설득력은 약하지만
동아시아 유교문명에 대한 독창적이고 풍부한 이론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
다는 점에서 역시 진지한 고찰을 요한다. 유교적 근대론의 적실성을 따져
보는 작업은 동아시아 근세사에 대한 그간의 주요 연구 성과와 서구 근대
및 근대성 개념/이론에 대한 방대한 논의의 검토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은 미야지마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전통과 근
대의 관계를 적극 성찰하는 일이다. 근대의 충격 속에 오히려 전통이 되살
아나고 강화되는 현상은 서구적 근대화와 그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경험을
6) 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 p. 191.
7) 앞의 책, p. 413.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25
하고 있는 지금 비록 그 발현 양상은 다를지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기피되어야 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떤 전통을 되살리고 강화하는 일은 그것이 갖는 역사적, 사회적 의
미와 영향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학문적 적실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
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벤야민 말대로 과거는 “꽃들이 머리를
태양 쪽으로 향하듯이 은밀한 종류의 향일성(向日性)에 힘입어 [중략] 바
로 역사의 하늘에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향하려고”8) 애쓰는 법이기 때문
이다. 과학과 학문의 외양을 띤 이데올로기가 초래하는 폐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유교적 근대론을 검토하는 작업은 다른 기회로 미루고 이 글은 유교적
근대론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로 제시된 유교적 공론장 개념의 적실성
여부만을 검토하고자 한다. 김상준의 유교적 공론장 개념은 그것이 하버마
스가 제시한 ‘근대적 공론장’으로 제시됨으로써 근대성을 확보하는 방식으
로 도입되었다. 문제는 저 유교적 공론장이 과연 하버마스가 제시하고 있
는 공론장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를 보이기 위해 우선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의 핵심이 봉건 궁정이 독점하던 공공적 권위를 궁
정 밖의 여론세력이 분점하여 이 여론집단의 공론이 국가정책의 향방에 영
향을 주는 데 있다는 김상준의 이해가 과연 타당한지도 드러날 것이다. 그
런 뒤 이를 바탕으로 유교의 공론 및 공론정치 개념이 공론장과는 관련이
없는 특수한 역사적 개념이자 현상이었음을 보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유
교의 공론정치를 (유교적) 근대의 한 증거로 제시하는 일은 적어도 하버마
스의 공론장 개념을 동원하는 것으로는 난망하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8)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p.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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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
공론장은 하버마스의 외펜틀리히카이트Öffentlichkeit 개념의 번역어이
다.9) 이 독일어 낱말은 개념사적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10) 하
지만 원래 공公, 공공성, 공개성 그리고 공중과 여론 등을 의미하던 이 낱
말에 공론장 개념을 부여한 것은 하버마스다. 다시 말해 공론장 개념과 관
련하여서는 적어도 그 저작권이 분명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이
개념을 사용한다면 하버마스의 개념을 전제하거나 아니면 하버마스의 개념
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의 공론장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형성하
는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고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2.1 공론장 - 서구 근대의 산물
하버마스가 공론장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것은 1962년 출간된 그의 교
수자격학위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 을 통해서였다. 이 책의 부제 “부르
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가 말해주듯이 하버마스는 당시부터 공
9) 이 개념은 공공영역 혹은 공론영역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대세는 이미 공
론장으로 굳어졌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공론장과 관련된 하버마스의 본격적인
저서가 공론장의 구조변동 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것이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
다. 이 책의 우리말 역자가 정당하게 정리하고 있듯이 하버마스의 경우 공공영
역이란 용어는 국가 내지 공권력의 영역을 가리키는 개념들의 번역어로 사용하
는 것이 적절하다. (하버마스, 한승완 역, 공론장의 구조변동 , 역자 서문 및
p. 13 이하 주 참조.)
10) 외펜틀리히카이트에 대한 개념사적 연구로는 Lucian Hölscher, “Öffentlichkeit”
참조.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27
론장을 서구 근대가 만들어낸 하나의 민주적 성과물로 바라보았다. 1961
년에 쓰인 이 책의 초판 서문에서 하버마스는 공론장 분석이 왜 방법론적
으로 사회학적이면서 동시에 역사학적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
하면서 “우리는 ‘부르주아 공론장’을 시대 유형적 범주로 파악한다. 그것은
유럽의 중세 전성기에 출현한 ‘부르주아 사회’의 독특한 발전사로부터 분리
될 수 없으며, 이념형으로 일반화하여 임의의 역사적 상황의 형식적으로
동일한 형세에 적용시킬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11) 하버마스의 이러한
인식은 이후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입론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이론으로서
논의이론적 민주주의 정치 및 법 이론을 개진하면서 공론장 이론을 체계화
한 사실성과 타당성 (1992)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공론장은 근대서
양사회가 이룩해낸 진화의 산물로서 이를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이 아
주 많은, 그렇기에 있음직하지 않은 산물이다.”12)
하버마스가 이렇게 공론장 생성의 역사적 성격을 강조하는 이유는 공론
장의 작동을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많고, 이 전제들이 모두 서구 근
대에 생성되었다는 것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1996년 5월 한국을 방문했
을 때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론장의 전제에 대해 다음과 같
이 답변한 바 있다. 그때 질문의 요지는 시민사회와 공론장의 활성화를
통해 인간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주장이라면 그 주장이 서구
가 아닌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어느 정도 유효성을 갖는 것인가 하는 것
이었다.
“공론장은 적어도 세 가지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이것을 통해 우
리가 자유롭게 토론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에 대한 규범적 기대가 있어야
하구요. 두 번째는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정치문화가 보장되
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적인 제반 원칙에 부응하
11)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 pp. 57-58.
12) 하버마스, 「민주주의는 아직도 인식적 차원을 갖는가?」, 아, 유럽 , p.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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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갈등해소 절차를 요구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노조결성의 자유와 노조활
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기업수준만이 아니라 전국적 수준에서 이것
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이러한 일련의
조건 위에서 공론의 장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만일 이러한
조건이 한국사회에 갖추어지지 못했다면, 그래도 이 쟁점을 비폭력적으로
주장하고 실현하기 위해 싸워야 할 장은 역시 공론의 장이 아니겠습니까?
공론의 장은 결국 정당한 요구를 개진하는 도전의 장입니다.”13)
이 답변은 기자회견장에서 즉석으로 행한 것이기 때문에 학문적 엄밀성
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답변에서 우리가 간파할 수 있는 것
은 적어도 하버마스가 서구 근대가 성취한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사회적 관
철, 즉 합리화된 생활세계와 민주주의 법치국가를 공론장의 전제조건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하버마스에 의하면 근대화는 생활
세계와 체계의 분리를 관철시킨다. 의사소통적으로 구조화된 생활세계는
자본주의의 성장 및 그에 따른 체계 복잡성의 증가로 인해 화폐와 행정권
력이라는 탈언어화된 상호작용매체들을 통해 조절되는 체계에 의해 부단히
침윤 당한다. 하버마스가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라고 칭하는 이
현상은 사회질서의 정통성 창출과 관련하여 볼 때 민주주의의 축소 내지는
상실을 의미한다. 이 식민화에 대항하는 방어기제, 즉 민주주의를 이루어
내고 지켜내는 핵심기제로 하버마스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앞 인용에서 “정
당한 요구를 개진하는 도전의 장”이라고 말한 정치적 공론장이며, 이 공론장
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시민사회이다. 이때 시민사회Zivilgesellschaft
는 역사적으로 공론장을 탄생시킨 근대적 의미의 부르주아 사회가 아니다.
하버마스가 여러 군데서 거듭 강조하고 있다시피 부르주아 사회는 헤겔과
맑스에 의해 정의되었던 바와 같이 노동, 자본, 재화시장을 통해 조정되는
경제영역을 포함하는 반면, 시민사회는 이러한 경제영역과는 무관하고 “그
13) 하버마스, 「하버마스 교수와의 인터뷰」, 사실성과 타당성 , p. 655.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29
제도적 핵심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자유의지에 기초하는 비국가적이고
비경제적인 연결망과 자발적 결사체들이다. 이들을 통하여 공론장의 의사
소통 구조가 생활세계의 구성요소 중의 하나인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된
다.”14)
시민사회의 핵심인 이 비국가적이고 비경제적인 연결망과 자발적 결사
체들을 바로 정치적 공론장을 주도하는 ‘여론세력’ 내지 ‘여론집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공론장을 통해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
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이 봉건 궁정이 독점하던 공공적 권위를 분
점하지는 않는다. 물론 여기서 공공적 권위라는 말과 분점이라는 말은 매
우 모호하다. (아마도 오쏘리티authority의 번역어일) 권위가 분점될 성
질의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여기서 공공적 권위를 공적 권력으로 행사될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분점의 대상은 공적 권력일
것이다. 하지만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의 특징은 시민사회의 자기제한,
즉 합리화된 생활세계에 뿌리박은 시민사회적 공론장의 행위자들은 오지
영향력만을 획득할 수 있을 뿐이며, 정치적 권력을 획득할 수는 없다는 점
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민사회의 자기제한 이론은 맑스주의
적 혁명론이 “행정권력의 비정통적 독립화와 정통성을 갖는 국가권력, 특
히 민주적 법치국가 제도를 차별화하지 않고 모두 정복하고 파괴해야 할
것으로 입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적 법치국
가 이념을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배척하여 공산당이 독점한 행정권력의 독
재로 귀결한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공화주의적
인 국가권력 회수전략은 해방된 생활형태를 창출하기는커녕 사적 영역까지
도 정치 사회적으로 일색화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자율적 공론장마저 파괴
14) 하버마스, 사실성과 타당성 , p. 486.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 시민사회 “개념
의 유행은 무엇보다 국가사회주의 사회 출신의 반체제 인사들이 정치적 공론장의
전체주의적 파괴에 대해 가했던 비판에 힘입은 것이다.”(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
변동 , p. 52)
130 사회와 철학 제26집
해 버린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주장이다.”15) 이 시민사회의 자기제한은 서
구 근대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이론적 성찰이지만 동시
에 시민사회와 공론장의 본질적 규정이기도 하다.
부르주아 사회의 성립과 공론장의 출현에 대한 하버마스의 역사적 서
술 역시 봉건 궁정이 독점했던 공공적 권위를 −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
엇이든 간에 − 새로운 여론세력이 분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론장은 서구에서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성립한 부르주아 사회의 여론 형성 구조로 등장한다. 역사적
으로 ‘사회’는 근대의 산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사적 영역인 오이코스
Oikos, 즉 가부장이 사적으로 지배하는 가정의 대표자인 자유민 남성들을
성원으로 하는 공동체로서 공적 영역인 폴리스가 있었을 뿐, 국가와 사회
의 분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16) 그러나 폴리스적 공공영역은 분명 공적
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을 바탕으로 성립될 수 있는 것인 반면, 중세 봉
건사회는 사회 전체가 토지를 매개로 한 일종의 피라미드형의 중층적 권력
관계로 조직되면서 저 공/사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중
세에 외펜틀리히카이트란 어떤 사회적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중층
적으로 존재했던 통치권의 공개적 과시를 지칭하는 것으로 하버마스는 이
를 과시적 공공성repräsentative Öffentlichkeit이라 부르면서, 근대 이
후 성립한 부르주아 공론장과 구분한다.17) 봉건 궁정이 독점한 것은 통치
권과 이를 과시하는 과시적 공공성이었다. 사실 이것도 독점한 것은 아니
었다. 봉건 궁정은 실상 교회와 제후들과 봉건귀족들과 이것을 분점하였
15) 졸고, 「토의민주주의와 시민사회」, p. 230.
16) 아리스토텔레스의 ‘zoon politikon’이 ‘사회적 동물’로도 또 ‘정치적 동물’로도
번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버마스는 이것을 “공적 공간에 존재하는 동물
(im öffentlichen Raum existierendes Tier)”로 해석한다. (Habermas,
Zwischen Naturalismus und Religion, p. 17.)
17)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 제1장 참조.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31
다. 아직 출현하지도 않은 공론장의 행위주체들이 봉건 궁정과 분점할 권
력이나 권위는 있을 수 없다.
2.2. 공론장의 일반적 이해가능성
하버마스에 의하면 공론장은 제도로도, 조직으로도 개념화될 수 없으며
대외적 개방성 때문에 체계로도 개념화될 수 없다. “공론장을 기술하는 최
선의 길은 내용과 태도표명의 소통을 위한, 따라서 의견들의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로 기술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사소통 흐름들이 걸러지고 종합되
어 주제별로 묶인 공적 의견[공론/여론]의 더미로 집약된다.”18) 이와 같
이 고도로 추상적인 규정을 맥락을 배제한 채 접하게 되면 공론장은 마치
이념형적 개념처럼 의사소통의 흐름이 존재하고 공론이 집약되는 곳이면
모두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이해된다. 물론 이와 같은 추상적 규정만을 가
지고 공론장 개념을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추상적 규정도
‘의견들의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면 곧바로 하버마스
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그 배경으로 호출하게 된다. 그리하여 원칙적으로
오직 보다 나은 논변의 설득력과 합의창출력에만 의존하여 문제가 되는 사
안에 대한 합리적 의견형성이 이루어짐으로써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관철되
는 의견들의 소통의 네트워크라는 의사소통행위이론적 규정에 이르게 된
다. 즉 신분이나 지위, 부와 같은 사회적 권력 혹은 공권력 등에 의한 어
떠한 강제도 없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상황이 전제되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앞의 기자회견에서 공론장의 전제 중 하나로 제시한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관철에 대한 규범적 기대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이 의사소통적 합리성 규정과 더불어 공론장의 또
18) 하버마스, 사실성과 타당성 , p. 479. [ ] 안은 논자의 보충.
132 사회와 철학 제26집
다른 특징으로 일반적 이해가능성을 제시한다. 앞의 인용문에 이어서 하버
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생활세계 전체가 그렇듯이 공론장도 의사
소통행위를 통해 재생산되며, 이 의사소통행위를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연언어에 대한 숙달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까 공론장은 일상적인 의사소
통적 실천의 일반적인 이해가능성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다.”19)
오늘날 공적인 사안으로 떠오르거나 공론장의 의제로 부상하는 많은 사회
문제들을 보면 분명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안들이 대부분이다. 근대화의 진
전에 따른 사회적 분화의 심화는 사회적 문제해결의 전문성을 더욱 더 요
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일반적 이해
가능성을 그 중요한 특징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근본적으로 공론장에서 관
철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 다시 말해 공론장의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 때
문이다. 설득과 합의 창출은 근본적으로 상호이해를 전제하며 상호이해는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과 반론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강제한다. 공론
장은 문제가 되는 사안과 그 해결 방안들이 아무리 복잡하고 전문적인 논
의를 요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치적 결정을 요하는 한 일반인이 이해 가
능하게끔 일상 언어로 번역하도록 강제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무엇
보다 시민사회는 특정 사안에 대한 엘리트 집단의 전문적 견해에 대해 공
공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항하는 대안
적 전문의견을 내놓고 논점을 일상언어로 옮길 수 있는 적극적인 활동가들
을 공급한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보다 근본적인 확신을 바탕으로 공론장의
일반적 이해가능성 테제를 내세운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
는 사안의 경우 그것이 [일상언어로] 번역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전문
적인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전문가들이 작업한 대안들이 보다 광범
위한 공론장에서도 합리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번역될 수 없
는, 그렇게 전문적인 정치적 문제란 없다. 민주주의에서 전문성의 정치적
19) 앞의 책, 같은 곳.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33
특권이란 있을 수 없다.”20)
이러한 하버마스의 주장은 규범적이고 또 일견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으
로 보일 수 있다. 당장 사안이 전문적이고 복잡하여 논의에 일반인의 접근
이 어려운 수많은 경우를 떠올리며 하버마스의 낙관주의를 비웃을 수 있
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주장은 사안의 전문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전
문성의 정치적 특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 정치적 사안이 되는
경우 어떤 견해나 해결방안이 전문적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상 없다는 것이다. 해당 사안이 공적 사안으로
부상되어 비교적 제대로 작동하는 공론장의 논의대상이 되는 한, 문제의
핵심은 일반인이 이해 가능한 형태로 번역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공론장은 근본적으로 영향력을 둘러싼 싸움터이고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사용이 필수적이다. 어떤 사안이 전문
성을 이유로 전문가들의 손에만 맡겨지는 것은 그 사안이 전문적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을 정치적 의제로 제기하는 데에 방해요인이 작용하거나 공공
의 관심과 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그 사안이 공론장에 진입하지 못하기 때
문이다. 이유선은 공중은 존재하지 않기에 공적 의사결정은 결국 전문가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공중 부재론을 비판하면서 “공중은 존재하거나 존재
하지 않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조직해내느냐의 문
제와 관련된 개념”이라고 지적한다.21) 참여자적 관점에서 제기된 이 타당
20) Habermas, Die Normalität einer Berliner Republik, p. 143. [ ] 안
은 논자의 보충.
21) 이유선,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가능성」, p. 58. 공공성과 관련하여 개인의 사
적 삶이 중요하다는 이유선의 지적은 온전한 사적 영역과 공론장의 역사적․
구조적 연관관계를 강조하는 하버마스의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 다만 공공성
에 관한 논의에서 진리의 물음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이유선의 주장은 좀 더
섬세한 구분을 바탕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공공성에 관한 논의에서 어떤
실체적 진리관이 전제되고 추구되는 것은 분명 배제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공공성 논의에서 그것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진리이든 사회적 유용
134 사회와 철학 제26집
한 지적이 전제하는 민주적 파토스는 당연히 하버마스도 공유한다. 다만
하버마스는 이와 같은 공중의 조직, 즉 제대로 작동하는 공론장의 형성은
아쉽게도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의지에 의해 간단하게 좌우되지 않으며,
그래서 공론장은 전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즉 “자율적 공론장이 가
능하려면 이 공론장이 시민사회적 결사체들 속에 사회적으로 정박해야 하
며, 자유로운 정치문화와 사회화 유형 속에 배태되어 있어야 한다. 요컨대
그것은 그것에 부응하는 합리화된 생활세계에 의존한다.”22) 즉 민주주의의
결핍 내지 불완전함이 전문가 지배체제Expertokratie의 원인인 것이다.
하버마스는 전문성의 정치적 특권 문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대중의 관
심 및 능력 부족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일견 낙관주의적인 견해를 펼친다.
비교적 긴 시각에서 볼 때 대중은 “정치적 주제들에 대해, 비록 대체로 무
의식적인 과정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성적으로 입장을
정리한다”는 것이다.23)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인터넷이 공론장의 지배적
싸움터로 등장한 오늘날의 복잡사회에서 대중은 자신들의 관심사안에 대한
정보 획득과 의견 표명에 상당히 적극적이고 공론에 참여할 기회와 가능성
도 많아진 한편, 오히려 관심과 주의력이 분산되고 전반적으로 공공의 사
성이든 간에 그것을 판단할 최종심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목적을 굳이
사회적 유용성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일단 의사소통적 합리성
의 관철에 대한 규범적 기대가 충족될 수 있다면 그 목적의 성격을 어떻게 규
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심각한 주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공적 사안과
관련하여 무엇이 진리인지 혹은 사회적으로 [더] 유용한지를 알아낼 수 있는
길은 바로 공적 논의, 즉 공론장을 통하는 것이라는 점의 인정 여부는 심각성
을 갖는다. 그리고 그렇게 알아낸 것을 진리라고 부른다고 해서 공공성의 사
유화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기준이 오용되면 공론장의
논의를 불필요하게 한정하는 역기능을 가질 수 있다.
22) 하버마스, 사실성과 타당성 , p. 477. 위 인용문은 한국어판 번역문에 논자
가 약간의 변형을 가하였음.
23) 하버마스, 「민주주의는 아직도 인식적 차원을 갖는가?」, p. 209.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35
안에 대해 무관심하며 정보에도 어둡고 인식능력도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상호 모순되는 관찰과 보고들 앞에서 하버마스의 저 견해는 분명
낙관적이고 나이브하게 보인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공론장의 추상적 성격과 비대칭적 구조, 즉 공론장에 참여하는 이들 간의
단순 상호작용의 결여와 발화자 및 수신자 역할의 상호성 결여(무대 위의
배우와 관객으로의 분리 현상)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저 규
범적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공론장의 독특한 성찰적 성격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론이라고 부각된 의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입장을 취
할 수 있기에 공론장의 추상적 성격과 비대칭적 구조는 그 자체로는 공론
장이 ‘성찰된 공론’을 만들어내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하버마스
의 생각이다. 이때 “성찰된 공론이란, 하나의 중요한 주제와 관련되어 있
고, 주어진 정보에 비추어 충분히 중요하지만 통상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사
안에 대해 행해진 현재 가장 설득력 있고 가장 잘 논증된 해석들을 표출해
주는, 찬성과 반대에 따라 그 비중이 매겨진 한 쌍의 상반된, 그러나 대체
로 조리 있는 의견들을 의미한다.”24) 물론 오늘날 이러한 성찰된 공론의
형성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자율적인
매체 시스템의 상대적 독립성이고, 둘째 시민사회와 매체의존적 의사소통
간의 올바른 피드백이 그것이다. 이 글의 주제상 이 문제를 여기서 더 상
론할 수는 없다.25)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공론장의 일반적 이해가능성
테제가 성찰된 공론의 가능성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론으로 제시되
는 의견들을 창출하고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대체로 엘리트와 전문가들이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찰된 공론이 가능한 것은 바로 공론장이 일반적
이해가능성을 그 본질적 특징으로 갖기 때문이다.
24) 하버마스, 앞의 글, p. 202.
25) 이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하버마스, 앞의 글, pp. 194-218 참조.
136 사회와 철학 제26집
2.3. 공론장과 사적 영역의 상보적 관계
공론장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과
전문가들 그리고 저널리스트들이 참여하지만 공론장이 사회적 갈등의 공명
판으로서 민주적 의견 및 의지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익
명의 공중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중은 그저 다수의 인간
대중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공론장은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만, 동시에 공간성 메타포가 말해주듯이 공론장 참여를 위해서는 바로 이
공간으로의 입장이라는 행위가 요구된다. 그런데 이 공적 의사소통의 네트
워크, 즉 공론장으로 입장하여 공론장을 공론장으로서 지탱하는 이 공중은
그 구성원이 되기 위해 일정한 자격요건이 필요하며, 어느 시대, 어느 사
회에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기원을 갖는다. 공중으로 참여
하기 위한 자격요건은 바로 사적 영역에서 사적 자율성을 체득하고 영위하
는 시민이며, 그 역사적 기원은 근대 유럽에서 공중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
들로서 이들이 바로 부르주아 공론장을 형성해내었다. 즉 공론장의 담지자
인 공중을 공급하는 수원水源이 바로 사적 영역인 것이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 에 따르면 국가별로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대략 1세기 간 부르주아적 공론장이 본
격적으로 형성되고 기능하다가 19세기 말부터 점차 해체 과정에 들어간
다. 하버마스는 이를 자유주의적 공론장 모델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는 이
부르주아 공론장의 성립을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분
석을 통해 역사적으로 재구성한다. 그 핵심은 물론 부르주아 사회를 구성
하는 사적 개인들이 공중으로 결집하여 부르주아 공론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구조적으로는 사적인 것이지만 공적 중요성을 갖는 상품교환과 사회
적 노동의 영역과 관련한 교류Verkehr의 일반규칙에 관해 공권력에 대항
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킨다는 기본구도이다.
그런데 하버마스의 분석에서 독특한 것은 친밀영역Intimsphäre인 핵가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37
족의 내부공간의 역할과 문예적 공론장의 구실이다. 하버마스는 핵가족의
내부공간에서 현실과는 비록 달랐지만 ‘이념적으로’ 개인의 주체성이, 즉
“자발적이며, 자유로운 개인들에 의해 성립되고 아무런 강제 없이 유지되
는 [중략] 배우자 쌍방의 지속적 사랑공동체에 근거하고 [중략] 교양 있는
인격성을 특징짓는, 특정한 목적에 구애받지 않는 모든 능력의 발전을 보
장하는 것처럼”26) 보이는 부르주아 가족이 탄생하고, 이 자발성, 사랑공동
체, 교양이라는 세 계기가 바로 ‘휴머니티’ 개념으로 결합되어 부르주아적
인본주의 사상의 씨앗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이 핵가족적 친밀성 영역
의 확장이자 보완으로서 나타난 것이 바로 부르주아적 공중의 영역인데,
이 공중은 영국의 커피하우스, 프랑스의 살롱, 독일의 만찬회와 같은 초기
제도들로부터 성장해서 신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결속된 공중이다. “그리
고 이로써 핵가족이라는 친밀한 원천을 갖는 주체성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과 의사소통하는 문예적 논의의 공론장이 형성”되는데27), 이 문예적
공론장으로부터 정치적 공론장이 형성되어 나왔다는 것이 또 다른 하버마
스의 핵심주장이다.
정치적 공론장의 기원을 문예적 공론장에서 찾음으로써 하버마스가 부
각하고 싶은 점은 부르주아 공론장의 투쟁적 성격과 규범적 지향성이다.
사실 정치적 공론장은 공권력에 대항하여 사적 교환경제 영역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서는 사적 개인들이 결집한 공중으로 성립하는 것인데,
이때 이 사적 개인들은 이미 문예적 공론장에서 휴머니티에 기반한 자율적
주체성을 경험한 투사들이다. 이들이 정치적 공론장에서 공권력을 구성하
는 군주 주권의 추밀성樞密性 원리에 대항하여 공개성 원리를 관철시키고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법규범의 성립을, 즉 법치국가의 성립을 추동한 것이
다. 나아가 문예적 공론장에서 보다 나은 논변의 진리 탐지적 힘을 경험한
26)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 pp. 121-122.
27) 하버마스, 앞의 책, p. 127.
138 사회와 철학 제26집
이들은 정치적 공론장에서 공개적 논의를 통해 형성된 공론이 진리와 정의
를 담보하는 합리성을 갖는다는 확신을 관철함으로써 지배의 정당성의 기
반을 확실하게 공론장에 기속羈束시킨다.
다른 한편 문예적 공론장의 참여자이자 정치적 공론장의 참여자인 공중
의 구성원은 재화와 사람을 소유한 소유자(가부장적 가장)인 동시에 또한
평등한 인간 중 하나이다. 즉 부르주아이자 인간이다. 이후 “발전된 부르
주아 공론장은 공중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이 행하는 두 가지 역할, 소유
자의 역할과 인간 자체라는 역할의 허구적 동일성에 기초”하게28) 되는데,
이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성립기에 부르주아의 정치적 해방을 ‘인간적’ 해방
과 동일시하면서 역사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하지만 제3신분의 계급분화
가 이루어지게 되면 부르주아 공론장의 해체를 추동하는 변증법적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생각이다.
자유주의 법치국가의 성립은 부르주아 사회가 완전한 사적 영역으로 성
립하면서 그 이해관계에 상응하게 국가권력을 조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는
데 여기서 공론장이 바로 그 조직원리로 기능한다. 즉 국가의 정통성 창출
의 근원이자 인민주권의 발현통로인 것이다. 그런데 법치, 즉 “법의 지배
는 지배 일반의 해체를 지향한다. 정치적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사적 영역
에 대한 정치적 보장조차도 지배의 형태를 띠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전
형적인 부르주아 이념이다. 부르주아적 법치국가 이념, 즉 가능한 한 빈틈
없이 여론에 의해 정당성을 획득하는 규범화 체계에 모든 국가활동을 기속
하는 것은 이미 지배도구 일반으로서의 국가의 철폐를 목적으로 하고 있
다.”29) 하지만 문제는 이 이념이 기반하고 있는 사회적 토대가 결코 지배
의 철폐를 허용할 수 없는 자본주의 계급사회라는 데 있다. 그리하여 실제
로 부르주아 법치국가가 접어든 길은 지배의 철폐라는 이념의 길이 아니라
28) 하버마스, 앞의 책, p. 133.
29) 하버마스, 앞의 책, p. 167. 위 인용문은 한국어판 번역문에 논자가 약간의
변형을 가하였음.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39
부르주아 공론장의 해체였다고 하버마스는 주장한다.
공론장의 구조변동 에서 확인한 정치적 공론장의 역사적 출처에 대한
생각은 이후 의사소통행위이론 에서 이론적으로 공론장과 부르주아 사적
영역의 형성을 체계와 생활세계의 분리에 대한 생활세계의 특징적 반응으
로 입론하게 만든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통합된 행위영역들은
경제와 행정처럼 체계논리에 따라 통합된 행위영역들에 대하여 사적 영역
과 공론장 형태로 형성된다. 이 두 가지는 상보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사
적 영역의 제도적 핵을 이루는 것은 생산의 기능으로부터 벗어나서 사회화
의 과제에 전문화된 핵가족이다.”30) 물론 핵가족에 대한 하버마스의 이
규정은 정확히 ‘휴머니티’ 개념의 발상지이자 사적 자율성의 함양 장소이며
문예적 공론장의 원천이 된 18세기 서구 부르주아 핵가족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다음 절에서 살펴보겠지만 가족은 부르주아 공론장의 해체와 함께
그 기능이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화의 영역으로서 핵가족은 여전히
생활세계의 핵심으로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체득하는 주요한 학습장이다.
하버마스가 공론장과 사적 영역의 상보적 관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사적
자율성의 역사적 기원 때문만은 아니다. 저 18세기 부르주아 핵가족이 해
체된 이후에도 사적 영역은 여전히 공론장의 작동에 핵심 역할을 한다. 바
로 나중에 공적 사안으로 제기될 사회적 문제상황들이 감지되고 표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공론장은 생활사의 차원에서 공명을 일으킨 사회적 문
제상황에 대한 사적 가공처리로부터 자극과 추진을 끌어오기 때문이다.”31)
하버마스는 공론장과 사적 영역의 상보적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 것인가를
보이기 위해 전체주의적인 국가사회주의 사회를 예로 든다. 이 사회에서는
“행정적 개입과 상시적 감독으로 가족과 학교, 코뮨, 이웃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만남의 의사소통적 구조는 산산조각이 난다. 중층적 규제와 법적
30)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 , 제2권, p. 495.
31) 하버마스, 사실성과 타당성 , p. 485.
140 사회와 철학 제26집
보장의 부재로 특징지어지는 영역에서 연대적 생활관계가 파괴되고 시민적
발의와 독자적 활동이 불구화되는 과정과 나란히 사회적 집단들과 결사체,
네트워크가 붕괴하고, 사회적 정체성의 주입과 와해가 일어나며, 자발적인
공적 의사소통은 질식상태에 빠진다. 그리하여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공적
상호이해관계와 사적 상호이해관계 모두에서 동시에 파괴된다.”32) 하버마
스가 자유주의 정치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사적 자율성이 침
해받아 사적 영역이 해체되면 공론장도 질식사하기 때문이다.
2.4. 공론장의 취약성
“공론장은 근대서양사회가 이룩해낸 진화의 산물로서 이를 위해서는 전
제되어야 할 것이 아주 많은, 그렇기에 있음직하지 않은 산물이다.” 앞에
서 이미 인용했던 하버마스의 말이다. 그런데 하버마스가 이 말을 하는 이
유는 공론장이 근대 서구의 성취물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시키려는 것이 아
니라 바로 공론장의 취약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말에 이어 하버마
스는 바로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토로한다. “공론장의 발생지에서도 우리
는 공론장이 과연 계속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 하지
만 이 복잡하고 취약한 의사소통구조가 붕괴된다면 근대사회의 수준 높은
정치적 자기이해의 −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자율적 결사로서의 법치
국가적 민주주의의 − 주요한 사회적 토대도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33)
하버마스로 하여금 이러한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도록 계기를 제공한 현
상은 바로 1) 자율적인 매체 시스템의 상대적 독립성이 침해되는 경우와
2) 시민사회와 매체의존적 의사소통 간의 피드백이 교란되거나 부재하는
32) 하버마스, 앞의 책, p. 489.
33) 하버마스, 「민주주의는 아직도 인식적 차원을 갖는가?」, p. 218.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41
경우이다. 두 번째 현상의 원인은 공중의 분산과 파편화 그리고 시장에 의
한 공론장의 식민화이고, 첫 번째 현상의 원인은 매체 시스템의 불완전한
기능분화와 탈분화이다. 전후 이탈리아의 국가독점적 방송체계가 방송의
정치적 의존성을 초래하였는데 이런 상황이 매체를 장악한 베를루스코니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이루었다. 바로 매
체 시스템의 불완전한 기능분화가 낳은 폐해다. 2000년 3월 미국의 이라
크 침공 당시 부시 행정부가 행했던 전쟁 팔아먹기에 미국 언론이 무비판
적으로 맹종한 것과 같은 현상은 매체 시스템의 일시적 탈분화가 낳은 위
험성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예이다.34) 하버마스 말대로 공
론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취약하며 그것을 위협하는 요인과 층위도 다양
하다.
그런데 이러한 공론장의 취약성은 적어도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구조변
동’이란 관점에서 고찰한 근대 부르주아 공론장의 해체 현상 이후 공론장
에 내재하는 본질적 속성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부르주아 휴머니즘의 급진
성은 지배 일반의 철폐라는 이념적 실현이 아니라 그 정치투쟁의 조직원
리, 즉 무기였던 부르주아 공론장을 해체하여 공론장을 형해화하는 길로
나아갔다는 것이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고찰하는 하버마스의 핵심 테제인
데, 바로 이 변동 이후의 공론장이 처하게 되는 상황은 실상 오늘날까지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1968년 유럽의 학생운동으로 표출된
서구 자본주의 산업사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움직임이 신사회운동으로
전세계적 파급력을 갖게 되면서 부르주아 시민사회와는 개념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의 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공론장에 활
기를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새로운 공론장의 구
조변동을 운위할 정도의 질적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
34) 이와 같은 정치적 의사소통의 병리적 현상들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하버마스,
앞의 글, p. 210 이하 참조.
142 사회와 철학 제26집
버마스가 공론장의 취약성을 우려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공론장
의 구성과 움직임을 보기 위해서라도 저 부르주아 공론장이 걸은 해체의
길은 무엇이었으며 공론장의 구조변동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것
은 중요하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1873년부터 시작된 대불황 이래로 소위 자유주의
시대는 종말을 맞게 되고 서구의 각국 정부들은 점차 간섭주의를 추진하게
된다. 이 변화는 부르주아 공론장이 기반하는 국가와 사회의 분리가 더 이
상 유지되지 않고 공권력이 사적 개인들의 교류에 간섭하는 국가의 점진적
사회화와, 동시에 사회적 권력이 공적 권위를 갖는 관할권을 획득하는 사
회의 국가화 경향을 초래한다. 즉 공적 영역과 사적 분야가 상호 교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자본의 집중화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노동조합의 활
성화로 인한 국가와 사회의 상호교착 현상이 그 대표적 예가 될 터인데,
이러한 현상은 공적인 것도 아니고 사적인 것도 아닌 중간 형태의 영역의
형성을 낳는다. 하버마스는 이 영역을 재정치화된 사회영역repolitisierte
Sozialsphäre이라 칭하는데, 이것은 바로 이른바 사회법적 규범의 도입을
강제함으로써 사회복지국가의 등장을 낳는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자유주의적 공론장 모델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전제
한 가부장적 소생산자들 간의 동등한 교환 영역으로서의 사적 영역이 급격
히 해체되면서 나타난 것이라는 게 하버마스의 분석이다. 이전에 사적 영
역이었던 사회적 노동의 영역은 점차 공적 성격을 띠게 되는 반면, 대부분
노동자인 사적 개인들의 가족은 사회적 노동의 영역에서 생산적 기능을 상
실하고 오로지 소비적 기능만을 담당하게 된다. 이로써 사회영역과 친밀영
역의 양극화가 초래되는데, 이때 가족은 “경제적 임무로부터 벗어나는 것
에 비례하여 인격적 내면화의 힘도 상실”하게 된다.35) 이제 가족은 더 이
상 주체성과 휴머니티의 함양 공간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여가활동 공
35)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 p. 263.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43
간으로 변질되고, 이성의 공적 사용을 위해 교육된 교양계층을 잃은 문예적
공론장도 붕괴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로써 공중의 성격도 문화를 논하는
공중에서 문화를 소비하는 공중으로, 즉 대중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문예적 공론장의 붕괴로 공중은 비공공적으로 논의하는 소수의 전문가
들과 공공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소비대중으로 분열된다. 이것은 공론장
의 사회적 구조변동에 따른 정치적 기능변화와 관련된다. 과거 공론장은
국가와 사회를 매개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지만 이제 그 기능은 “이익단체처
럼 사적 영역으로부터 형성되었거나 정당처럼 공론장으로부터 형성되어 이
제 국가기구와 공동으로 권력행사와 권력균형을 내적으로 운영하는 제도들
로 이행하였다. 여기서 이들 제도는 자립화된 대중매체를 통해 예속화된
공중에게서 동의나 최소한 묵인을 얻으려 노력한다.”36) 공론장의 정치적
기능변화는 무엇보다 언론매체의 구조변동, 특히 상업화에 기초한다. 하버
마스에 의하면 신문의 상업화는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1830년대에 거의
동시적으로 시작되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대중매체
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신문에서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라디오,
영화 및 텔레비전에서 경제적, 기술적, 조직적 집중이 이루어짐에 따라 대
중매체는 사회적 권력복합체로 발전하였다. 과거 신문은 공중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의 논의를 다만 중계하고 강화하였던 반면, 이제 이 논의는 역
으로 대중매체에 의해 먼저 틀지어진다. 그리하여 이제 공론장은 대중매체
를 매개로 한 사적 이해관계의 유입 앞에서 그 비판적 기능이 위협받게 된
다. 한편으로 대중매체는 공론장을 직접적으로 광고의 매체로 전환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기업, 이익단체, 정당, 노조 등등 사회의 각 조직들의 간접
적인 여론관리 매체로 기능하게 만든다.
여론관리, 즉 홍보는 대체적으로 통지에 그 목적을 둔 광고와는 달리 공
론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합의 내지 효과를 만들어내
36) 하버마스, 앞의 책, pp. 288-289.
144 사회와 철학 제26집
려 한다는 점에서 공개성 원리의 심대한 기능변화를 초래한다. “과거 공개
성은 정치적 지배를 공공적 논의 앞에 발가벗기는 것을 뜻했다. 이제 공개
성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호의적 반응을 총합한다. 부르주아 공론장은
홍보활동에 의해 조형됨에 따라 다시금 봉건적 특성을 띠게 된다. ‘공급자’
가 동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고객 앞에서 과시적 지출을 행하는 것이다.
공개성은 과거에 과시적 공공성이 부여했던 그런 인격적 명망과 초자연적
권위라는 아우라를 모방한다.”37) 이런 현상을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재봉
건화’라고 부르면서 국가도 이에 예외가 아님을 지적한다. “사기업이 그들
고객에게 소비를 결정하도록 할 때 국민이라는 의식을 암시적으로 불어넣
기 때문에, 국가는 국민들에게 마치 소비자에게 하듯 ‘말을 걸어야만’ 한
다. 이로써 공권력도 역시 공개성을 얻으려고 애쓰게 된다.”38) 공론장의
재봉건화로 공중은 이제 공적 논의의 주체가 아니라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박수부대로 전락한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권력행사와 권력조정의 과정은
사적인 경영조직, 이익단체, 정당, 공공행정 사이에서 공론장을 거치지 않
고 직접 이루어지게 된다.
공론장의 사회적 구조변동과 그에 따른 정치적 기능변화에 대한 하버마
스의 서술은, 하버마스 스스로 자인하고 있듯이39), 실상 매우 비관적이
다. 공론장의 구조변동 에서 공론장의 재봉건화로 인한 민주주의의 후퇴
를 저지할 방법으로 하버마스가 제안했던 것은 국가 기구만이 아니라 국가
37) 하버마스, 앞의 책, p. 309. 위 인용문은 한국어판 번역문에 논자가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임.
38) 하버마스, 앞의 책, pp. 309-310. 위 인용문은 한국어판 번역문에 논자가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임.
39) 하버마스는 1990년 공론장의 구조변동 신판 서문에서 이러한 비관적 시각
이 당시 아도르노의 대중문화이론 등의 영향 속에서 대중의 저항능력과 비판
적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데서 비롯된 단견이라고 스스로 비판하고 있다. 하버
마스, 앞의 책, p. 33 이하 참조.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45
와 관련하여 행위하는 모든 조직들 내부의 공론장을 그 내부의 조직화된
공중이 비판적 공론장으로 활성화하여 대중매체에 의해 지배된 외부 공론
장의 수동성과 무력함을 깨부수고 일반 공중과의 새로운 의사소통 연관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즉 국가와 기업 등의 내부 공론장에서 민주주의 수호
에 대한 희망을 찾은 것이다. 이 입장은 나중에 의사소통행위이론의 입론
과 함께 폐기된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체계 내 민주화 시도
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기능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대신 하
버마스가 새롭게 찾아낸 희망은 일상적 의사소통의 실천에 담겨있는 이성
의 잠재력, 즉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다. 상업화한 대중매체에 의해 지배되
고 끊임없는 재봉건화의 위험에 처한 공론장은 여전히 취약하지만 생활세
계 일반의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공론장의 일반적 이해가능성 그리고 부르
주아 공론장을 통해 쟁취한 자유주의 정치문화와 민주적 법치국가 덕분에
그 유토피아적 힘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서구사회만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희망에도 불구하고 근대 부르주아 공론장의 해체 이후 도래
한 공론장의 조건은 공론장의 취약성을 일깨우는 하버마스의 우려를 정당
화한다. 19세기 말 이후의 역사는 오히려 하버마스의 저 비관적인 서술보
다도 더 비관적이었기에 말이다. 파시즘의 발호가 그 유일한 예가 아니라
는 데에 저 비관주의가 더욱 타당성을 획득한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잠
재력은 하버마스의 기대보다 더 취약한 것으로 보이며, 그러기에 오늘날에
도 공론장은 하버마스가 고백한 것보다도 더 있을 법하지 않은 유토피아인
것처럼 보인다. 하버마스가 제시한 전제들이 얼마나 까다로운 전제들인지
다시 한 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146 사회와 철학 제26집
3. 유교적 공론 개념과 공론장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의 까다로운 전제들을 살펴보고 그 취약성까지
인식하고 나면 유교적 공론장을 운위하는 것이 얼마나 큰 학문적 거증擧證
의 부담을 요구하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교
적 공론장을 상정하고 입론하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그만큼
주자학적 공론 및 공론정치의 이념이 매력적이고, 특히 이를 바탕으로 조
선 후기에 나타났던 붕당정치의 정치사적 특수성이 현저하기 때문일 것이
다. 하버마스의 외펜틀리히카이트 개념이 하필 이 주자학적 공론 개념에서
유래한 말을 원용하여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주자학적 공론 개념이 저 외
펜틀리히카이트 개념과 공유하는 일정한 초견적初見的 친연성 때문일 것이
다. 공적인 것과 관련하여 논의를 통해 시비를 가려 정책방향을 결정한다
고 해석될 수 있는 공론정치의 이념이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유교적 공론
개념과 공론을 무기로 한 17세기 조선의 붕당정치에서 − 유교적이라는
한정적 수식어를 붙인다하더라도 − 공론장의 형성과 작동을 확인하는 것
은 난망하다는 것이 논자의 생각이다. 조선 후기 붕당정치는 역사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정치적 행위양식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근대적 공
론장 정치가 아니라는 점 또한 너무도 분명하다.
3.1. 유교적 공론 개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에 등장하는 공론은 외펜틀리헤 마이눙öffentliche
Meinung의 번역어이다. 이 말은 통상 여론이라 번역되는데 그것이 정치
적 중요성을 갖는 공공의 사안과 관련된 여론일 경우 공론이라 옮기는 것
이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과 잘 조응하기 때문에 공론이라고도 번역된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47
하버마스가 생각하는 여론 내지 “공론이란 광범위한 공중이 취한 찬반의
입장표명들의 집적을 각기 지각하는 바에 따라 관련 당파들이 직관적으로
그 비중을 평가하는, 논란이 되는 주제들과 제안들로 이루어진 군집
(Syndrome, 群集)을 의미한다.”40) 물론 이 정의는 자신의 공론장 이론
을 배경으로 하여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 유교적 공론 개념은 이렇게 형식
적으로 규정된 하버마스의 여론 개념과는 전적으로 상이한 개념이다.
박현모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 이나 개인문집들에서 공론이란 말이 빈
번히 사용되고 있지만 지칭하는 내용이 워낙 다양하고 가변적이어서 개념
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상익의 분석에 의거하여 유교
적 공론 개념을 보다 정교하게 정의내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유교에서 논의되는 정치적 지배의 정당성의 근거는 크게 천명과 민심 그리
고 공론으로 대표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천명은 그것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인식론적 문제와 그것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존재론적 문제를 가지고 있고, 또한 민심은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항상 정
당한 것만은 아니라는 반성과 자각이 생기면서 공론이 정치적 지배의 정당
성의 근거로 부상하게 되었다. 천명에 따르면서도 민심에 부합하는 공론이
존재하고 확인 가능하다면 최상의 정당성의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희가 공론을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萬口一辭]”로 정
의하고 이를 “천리에 따르고 인심에 부합하여 천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옳
다고 여기는” 국시國是와 연관지어 시비론적 공론을 입론한 것도 바로 저
이론적 연관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조선시대 주자학적
공론정치의 이론적 틀이 된 것은 물론이다.41)
40) 하버마스, 「민주주의는 아직도 인식적 차원을 갖는가?」, p. 200.
41) 이희주는 주자학적 공론 개념에 기반한 조선 초기 공론정치에서의 공론의 존
재양식을 유덕자 군주의 “성덕의 보필”이라고 규정한다. 물론 통치층의 계서적
사고관이 점차 해체되어 가면서 공론의 존재양식이 성덕의 보필에서 점차 군
주의 통치권이 천의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형태로 전환하는 양
148 사회와 철학 제26집
그런데 주희의 시비론적 공론 개념은 여전히 천명과 관련된 인식론적이
고 존재론적인 문제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궁극적 기준
이 문제가 될 때 주희가 기준으로 내세울 것은 천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박현모는 주희의 공론관에 대한 이이의 수정에서 이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한다. 이이는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옳다’고 여기
는 것[天下之所同是者]”이란 주자의 국시에 대한 정의를 수정하여 “사람의
마음이 모두 ‘그렇다’라고 여기는 것[人心之所同然者]”을 공론이라 정의한
다. 이이의 이 정의에서 박현모가 주목하는 것은 토론과 타협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다. 이이의 정의는 공론이란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어떤 실체
가 아니라 토론과 대화를 통해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미결정의 어떤 것으로
서 공론 형성의 과정에 주목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른바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공식적 논의라는 절차적 공론 개념이 정립된 것이다.42)
이이의 공론 정의에서 절차적 공론 개념을 이끌어내는 박현모의 작업은
상당히 그럴듯한 해석학적 성과로 보이지만 과연 이이가 실체론적 공론관
을 탈피했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박현모 스스로 자신의 해석에 반하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이가 공론을 정의하면서 민심이라 하지 않고 인심人心
이라 한 것은 바로 공론의 주체를 사림士林으로 본 것인데, “조선조에서
사림은 유교적 학식과 덕망을 갖춘 사람으로서, 어떤 일에 당면했을 때 천
리와 민심에 근거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존재였다. [중략] 말하자면
상도 나타나지만 이희주의 논지를 보면 두 존재양식이 중층적으로 공존했다는
것이 사태에 부합하는 규정인 듯하다. (이희주, 「조선초기의 공론정치」, pp.
5-23 참조.) 하지만 이희주가 구분하는 이 두 존재양식은 모두 천의를 기준
으로 하는 실체론적 공론관이라는 점에서 주자학적 공론 개념의 틀 안에 머무
는 것이다. 이희주의 논지를 따르더라도 군주의 통치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행한 저 신하들은 자신들이 이를 통해 진정한 성덕의 보필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기이해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42) 이상의 두 문단의 서술은 박현모, 「정조시대의 公論 연구」, pp. 97-101에서
자유롭게 인용하여 정리한 것임.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49
士林은 ‘말이 없는 하늘의 뜻’과 ‘일관되어 보이지 않는’ 민심을 헤아려서
각자의 말을 하는 정치의 주체였으며, 정치적 책임을 맡은 자는 사람들의
말 안에서 공정한 판단기준을 찾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것이 조
선조의 정치적 조건이었다.”43) 천리를 아는 사대부들이 정치의 주체라는
생각의 근저에는 실체론적 공론관이 깔려있다. 조선 후기 붕당정치의 현실
속에서 사림이 공론의 주체라는 생각은 불가피하게 어느 붕당이 옳은가라
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고, 천리를 기준으로 한 시비론적 공론관이 부활하
게 된다.44) 이희주의 말대로 “조선 후기의 붕당정치나 당쟁이 천리의 관
념을 매개로 하여, 어느 쪽이 더 천리에 부합하는가 하는 집단간의 의견으
로, 나아가 이것이 정사(正邪)의 논쟁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것”은 우연
한 일이 아니다.45)
설사 이이의 공론관이 절차적 개념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후 조선의
현실 정치에서 실현되지 못한 이념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
다. 조선조를 지배했던 공론관은 주희가 제시했던 시비론적 공론관이었다.
그리고 “성리학의 공론 개념은 서구와 같은 영역적 개념이 아니라 그 자체
가 이미 궁극적 정당성을 가지는 정치적 원리로서의 천리天理를 전제로 하
43) 박현모, 앞의 글, p. 100.
44) 붕당을 옹호하면서 이이는 “붕당에 관한 설이 어느 시대라고 없었겠습니까만
그 취지는 다만 군자의 당인지 소인의 당인지를 잘 분별하라는 것일 뿐이었습
니다.”라고 말한다. ( 선조수정실록 , 5년 7월 1일 갑신. 여기서는 남지만, 「朋
黨. 성리학 시대의 정치 주체」, pp. 569-570에서 재인용.) 물론 이것은 사
론士論들을 잘 비교하고 살펴서 선택할 것을 군주에게 권하는 방식이기에 토
론을 통해 옳은 것을 찾으라는 절차적 공론 개념과 상반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선택의 주체는 군주이다. 유덕자 군주의 선택은 바
로 천리의 반영이라는 실체론적 공론관을 전제하지 않으면 군주의 선택권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성덕의 보필’로서의 공론의 존재양식은 이이에게서도
예외가 아니다.
45) 이희주, 「조선초기의 공론정치」, p. 21.
150 사회와 철학 제26집
여 이 천리에 따라 정치를 운용하는 하위범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즉 성
리학에서의 정치의 개념은 그 자체가 곧 천리의 정치이고 천리의 정치를
이루는 방법이 공론정치이다.”46) 이 천리를 전제로 한 시비론적 공론관에
따른 공론정치는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론장과는 무관하다. 이유선은 공공
성에 대한 논의에서 진리의 문제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바로 이
주자학적 공(론)관을 예로 들고 있다.47) 공공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접근
을 배제해야 한다고 이유선이 역설하는 이유는 하버마스 식으로 표현하자
면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관철에 대한 규범적 기대라는 공론장의 전제조건
이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유교적 공론 개념은 이 전제조건을 충
족하지 못한다.
3.2. 유교적 공론 개념의 현실정치적 기능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에서 공론은 공론장의 작동을 통해 생성되는 결
과물이다. 공론은 이 결과물을 기술하는 서술적 개념이다. 물론 생성된 공
론에 대해 공중이 다시금 입장을 취함으로써 성찰된 공론이 생성되어 나오
는 과정 속에서 ‘이것이 공론이다’라는 주장이 공론장에 제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론을 표방하는 의견도 원칙적으로 공론장에서 다시 그 타
당성이 의사소통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의견 중의 하나일 뿐이다. 공론이
공론으로 채택되는 최종적 행위는 공론장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통상
정치적 체계의 중심부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 중심부에서의 공론 채택도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이 공론장의 공론과 다를 경우 이 문제는 다시
공론장으로 투입된다.
46) 이재룡, 「조선 후기 붕당정치의 역사적 의의」, p. 150.
47) 이유선,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가능성」, pp. 60-61 참조.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51
조선 후기 붕당정치에서 ‘공론’은 일차적으로 이론적인 서술 개념이라
기보다는 정치투쟁에 투입되는 실천적인 수단 개념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합의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왕조에서 어떤 조치를 정
당화하거나 반대할 때 공론을 그 근거로 주장하곤 했다.”48) 여기서 합
의체적 성격이란 조선의 정치체제가 절대군주체제가 아니라 사대부 관료
들 간의 합의를 국정운영의 근본 원칙으로 삼은 관인지배체제라는 특수
한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특수한 성격은 조선 후기
사림이 집권하고 붕당정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이이의 붕당 긍정론은 자신의 당을 군자의 당이라 하고 상대 당을 소인
의 당이라 몰아붙이는 군자소인론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제 합의가 아니
라 분별과 배제의 논리가 주가 되게 된다. “의리와 시비에 있어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은 그를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당파를 소인으로 규정하고
배척하게 되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점 때문에 군자소인론은 일당독재
론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49) 박현모가 이이의 공론관에서 보았던
토론과 타협의 가능성은 이런 곳에서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시비론적
공론관이 상정하는 공론의 주체가 분열되면 천리를 반영한 ‘공론’의 점령
을 둘러싼 공론정치는 생사를 건 정치투쟁으로 전화될 수밖에 없다. 공
론의 표방은 현실정치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당파싸움의 핵심수단
이 된다.
김상준은 17세기 조선의 유교적 공론장의 출발을 1659년의 기해예송에
서 찾는다. 그 이후 정조 재위시의 영남만인소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의
붕당정치는 무엇이 공론이냐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어느 당파가
주도권을 잡느냐를 두고 벌어진 헤게모니 쟁탈전이었다. 기해예송에 대한
김상준 자신의 서술을 보아도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당파간의 생사를 건
48) 박현모, 「정조시대의 公論 연구」, p. 96.
49) 남지만, 「朋黨. 성리학 시대의 정치 주체」, p. 572.
152 사회와 철학 제26집
투쟁만이 보일 뿐, 군주주권의 내파內破는 보이지 않는다.50) 붕당정치를
거치며 내파된 것은 오히려 사림의 정치적 입지였고 결과는 군주주권에 기
생하는 세도정치의 출현이었다. 정조 16년의 두 차례에 걸친 영남만인소
를 분석한 후 박현모는 그것이 왕권 강화를 꾀하는 정조의 정치적 목적에
영남 남인이 동원되고 이용되었을 뿐 공론의 절차적 측면에서 보거나 결과
적 차원에서 볼 때 남인의 만인소 사건은 적절치 못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고 결론을 내린다.51) 정조 재위 말기 일어난 노론의 문묘종사 운동에 대
해서도 박현모는 “다분히 당파적 동기에서 설정된 명분[自作義理]의 관철
운동, 즉 공론의 이름을 빌어서 노론의 당론을 관철시키려는 정치운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하고 있다.52) 조선 후기 붕당정치에
서 공론장적 성격을 찾아보려 해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조선 후기 ‘온 나라가 양반되기’ 현상에서 서구 근대의 자유주의적 정치
문화를 낳은 사적 영역의 출현에 상응하는 사회적 변동을 찾아보기란 난망
하다. 재조 사대부와 향촌의 엘리트 사림을 주체로 하여 벌어진 붕당정치
에서 공론장의 일반적 이해가능성 원칙이 관철되었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
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공론정치의 주요 수단이었던 상소문은 가장 고급
하고 난해한 한문 텍스트이다. 붕당정치 시대 공론의 의제로 떠오른 것들
을 보아도 유교적 공론장을 운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다. 자율적인 사적 영역으로 분화된 생활세계와 공론장의 일반적 이해가능
성의 조건이 결여된 상황에서 일반 백성이 처한 사회적 문제상황들이 공론
의 의제로 떠오를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건 사실 당연하다.53) 결론적으로
50) 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 pp. 444-453 참조.
51) 박현모, 「정조시대의 公論 연구」, pp. 110-113 참조.
52) 박현모, 앞의 글, p. 115.
53) 김상준은 17세기 조선의 유교적 공론 네트워크가 가졌던 정보 회전의 폭과
속도가 당시 유럽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았음을 당시 유교적 공론장의 주요
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설사 당시 그랬었다고 할지라도 정보 회전의 폭과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53
김상준이 유교적 공론장의 출현과 유교적 국민국가의 등장을 확인하는 조
선 후기 “붕당정치란 주자학적 세계관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이념집단을 형
성하여 공도公道에 바탕을 둔 공론정치公論政治를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집
단의사를 집약한 당론을 매개로 현실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시도한 특
수한 정치 형태이다.”54)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특수성의 역사적 의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특수성이 그 자체로 갖는 역사적 의미와 그
세계사적 위상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시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다
만 그것이 꼭 서구의 근대를 기준으로 그것에 상응하는 무엇을 동아시아
역사에서 찾아내는 방식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선 후기 공론정치와 관련하여 그 역사적 의미와 위상을 따져보는 데
는 오히려 근대 이전 유럽의 역사 연구에 동원되는 개념들을 참조하는 것
이 더 적실한 것 같다. 홍용진은 14세기 전반기 프랑스에서 벌어진 정치
공동체의 주도권 투쟁에서의 정치 담론들을 공공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이 아니라 부르디외의 ‘장’ 개념을 원용한 ‘정치 장’
개념을 제안한다. 이 중세시기를 설명하는 데 부르디외의 ‘장’ 개념이 하버
마스의 공론장 개념보다 더 적실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버마스의 공론
장 개념은 역사적 실체가 있는 근대 부르주아 사회를 분석대상으로 삼아
정립되었다는 점과 “합리적 의사소통의 조정과 조화를 강조하여 정치적 투
쟁과 갈등을 지적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부적절한 반면, 부르디외의 ‘장’
개념은 베버의 이념형을 발전시킨 것으로서 역사적 실체성을 거부하기 때
문에 연구자의 문제의식 속에서 구성된 발견적 방법으로서 유효하며, 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효과와 투쟁, 갈등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이
다.55) 조선 후기 공론정치도 오히려 이와 같은 ‘정치 장’의 개념으로 접근
속도는 공론장의 논거가 되지 못한다. 공론장의 취약성에 관한 서술에서 보았
듯이 정보회전의 폭과 속도를 현격하게 증대시킨 대중매체의 발전이 공론장에
오히려 역기능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54) 이재룡, 「조선 후기 붕당정치의 역사적 의의」, p. 154.
154 사회와 철학 제26집
하면서 그 특수성을 고찰해보는 것이 더 적실하지 않을까?
4. 맺는 말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원용한 유교적 공론장이 조선 후기 유교적
근대의 증거로 호출되는 것이 불가하다는 점을 더 상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론장의 전제조건들과 유교적 공론 개념 및 조
선 후기 붕당정치를 단순히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역사적 과잉해석에 대한 경각심을 호소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
다. 전통과 근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오늘날 수행되는 역사적 해석작업
자체에도 긴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권상우는 동북아 시민사회를 정립하는 데 주자학적 공론
개념이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상언어에 내재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관철에서 공론의 정당성을 찾는 하버마스와 달리 주
자학은 언어의 논리구조의 정당성을 ‘의로움’에서 찾는다고 주장하면서 사
대부들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 내지 공평함을 갖기 때문에 공공
영역에서의 주도세력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주자학에서는 공론
을 결코 현대 민주주의정치에서와 같이 의견의 다수를 공론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 논의가 도덕적 정당성을 지닌 여론만을 공론으로 인정”하며, 이런
“주자학적 공론은 동북아의 정서에 부합될 뿐만이 아니라 서구의 시민사회
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56) 주자학적 공론이 현대 민주주의정
치의 공론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하면서 서구 시민사회와 유사한 측면이
55) 홍용진, 「14세기 전반기 프랑스의 정치현실과 공공성」, pp. 47-48.
56) 권상우, 「동북아 시민사회 정립을 위한 주자학적 公論 탐색」, p. 55와 p.
66.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55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과연 오늘날 사대부에 해당하는 이가
누구이며, 어떤 논의의 도덕적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동북
아의 정서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물음은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이
유선이 우려하는 공공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접근과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군사독재를 경험한 한국에서, 그리고 아시아적 가치라는 미명 하에 공공연
히 독재와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옹호되고 있는 아시아에서 이러한 역사해
석이 가질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교의 ‘재
발견’은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언제든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으로 역사의 하늘에 새로운 태양이
기대되고 예상되는 지금, 이러한 경각심은 단순한 요청의 대상이 아니라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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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과 유교적 공론(윤형식) 157
Habermas's Concept of the Public Sphere and
the Gongnon of the Neo-Confucianism
Yun, Hyong-Sik
【Abstract】
SangJun Kim regards in his book Sweat of Mencius, Blood of the
Sacred Kings the Gongnon politics of the late Joseon dynasty as a
Confucian public sphere and presents it as an evidence for the socalled
Confucian modernity. This paper tries to show that it is not
appropriate to define the Gongnon politics of the aforementioned period
as the public sphere presented by J. Habermas and that it is therefore
not acceptable to present it as an evidence for the Confucian modernity.
For this purpose the main contents of Habermas's concept of the
public sphere will be presented at first as follows. His concept of the
public sphere is not a general concept like a Weberian Idealtypus, but
a historical concept which is not detachable from its origin, the modern
Western Europe and therefore has many presuppositions to be satisfied
for its realization. It presupposes above all a normative expectation of
the realization of the communicative rationality, the liberal political
culture and the democratic Rechtsstaat which guarantees the democratic
modes of solving the social conflicts. Furthermore it is set on the general
understandability of the everyday practices of communication and
requires an autonomous private sphere complementarily which supplies
158 사회와 철학 제26집
the members of the public and where the would-be issues of the public
sphere are noticed and articulated at first. Finally the public sphere is
so vulnerable in its essence that it is worried even today in the Western
Europe about its sustainability. The vulnerability of the public sphere
shows emphatically that Habermas's concept of the public sphere
should not be applied to any historical circumstances resembling some
appearances of the Western European bourgeois public sphere.
Based upon this analysis of the main contents of Habermas's concept
of the public sphere it will be showed that the neo-Confucian concept
of Gongnon as a substantialist one differs from the formal concept of
the public opinion supposed by J. Habermas and that it stands out as
a rather practical means of political struggles for the hegemony in the
Realpolitik. It follows from this comparative analysis that Habermas's
concept of the public sphere is not applicable to the Confucian faction
politics or Gongnon politics of the late Joseon dynasty.
Subjects : Social Philosophy, Political Philosophy, Philosophy of
History
Key words : Habermas, Gongnon, Public Opinion, Public Sphere,
Neo-Confucianism, the Modern
논문접수일: 2013년 9월 9일 논문심사일: 2013년 9월 27일 게재확정일: 2013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