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철학 연구회 논문집
사회와 철학 제26 집 2013. 10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1)
김 미 덕**
[논문개요]
최근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이성과 감성의 이항대립을 비판하고 감성의 문제에
관심이 증가하면서, 공감, 연민, 사랑, 소통 등의 언술이 공동체와 교육의 대안적
사유로 회자되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언술들이 감상주의적으로 읽히면서 립서비
스 차원이나 종교적 규범으로 읽히는 경향을 경계하고, 공감이 매우 행하기 힘든
사회적 실천이라는 자각, 이유,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를 살
펴본다.
공감이 어려운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개인의 품성, 무관심, 고통을 낳는 사
회적 요인에 대한 미인지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이 글은 우마 나라얀이 지적하고
있는, 피억압자가 겪는 억압과 부당함의 ‘감정적 반응’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는 사
실을 주목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감이 실행하기 어려운 사회적 실천이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회의하지는 않으며 정반대로 매우 긴급한 사회적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이를 위한 한 방법으로 감정이입, 역지사지, 동일시를 넘어서는(혹은 포함하
는) 탈동일시를 제안한다.
탈동일시는 1990년대 중반 이래 호세 무노즈, 릴라 페르난데스, 로즈메리 헨네
시, 호세 메디다 등의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논자에 따라 맥락, 수위, 주장이
다르지만 정체성이 핵심적 자원이며 주변부 집단의 저항 전략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탈동일시는 기존의 이데올로기 및 주류 정체성에 동일시하거나 그에 대한 반
*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인문사회 연구역량강화사업비)으
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1-413-H00001).
** 이화여자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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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시의 형태 양자를 비판하고, 그들의 이분법적 대립항 자체를 벗어난 존재론적
혹은 저항적 양식을 뜻한다. 정체성 정치와 변혁의 문제를 고민한 헨네스와 페르난
데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탈동일시 주체는 소수자 정체성을 저항의 준
거점으로 삼지 않는다. 탈동일시 주체는 특정 정체성 자체가 아닌 역사적으로 구성
된 경험에 대한 분석 능력을 강조하고, 성별, 인종, 계급 등과 같은 사회적․외피
적 정체성과 자아의 분리를 주장한다. 더 나아가 보편적 자아로서의 영적 자아로의
변화도 염두하고 있다. 이 영적 자아는 신비주의적 가치라기보다 에고 중심의 자아
에 대한 집착을 탈피한 일상적, 윤리적 실천 을 뜻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실천하기
도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이와 같은 변혁 이 실천되었을 때만이 장기적․제도적 사
회변화의 가능성 또한 도모할 수 있다고 본다.
주제어: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 비판적 담론, 영적 자아
1. 서론: 공감 문제가 제기되는 배경
정치폭력, 인종학살, 차별과 같은 사회문제를 다루는 대학의 인문사회과
학 강좌에서 학생들의 반응에는 일정한 유형이 있다(Dorsey 2002,
Macdonald and Sánchez-Casaleds 2002). 예를 들면 미국의 대학 강
좌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어떤 백인 학생들은 노예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당황스러워하고 노예제가 과거의 일이
며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무관심을 보인다. 또 흑인에 대한 막연한 연민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반면 흑인 학생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당성을
담보한다는 우월 의식을 보인다(Dorsey 2002). 양성 차별을 다루는 여성
주의 강좌에서도 이러한 반응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남학생은 (가시적․비
가시적으로 편재하는) 가부장적 차별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불편함을 느끼
거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양성 평등이 진일보되었다고 생각하고 역차별을
겪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흑인 학생들처럼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성별 차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19
이에서 기인한 불편함을 더욱 잘 느끼고 있으며,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주
의에 대한 참 지식을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
들에서 나타나듯이 학생들의 반응은 자신의 ‘입장,’ 다시 말해 성별, 인종,
국적, 계급과 같은 사회적 정체성에 기반하여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특권 그룹은 주변부적 사회그룹이 겪는 일상
적․제도적 차별에 대해 당황을 넘어선 인식과 이해가 가능할까? 자신의
특권에 대한 자각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대체로 특
권 그룹은 자신이 주변부적 지위에 처하게 될 때 주변부 사회그룹이 겪는
부당함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가능성이 커지는데(Moraga and Anzaldúa
1983), 그 경우에도 공감(compassion)이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갖는
가?
이 글은 공감과 정체성의 연관성을 살피면서 ‘타자․타 집단의 고통과
억압에 대한 공감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살피고자 한다.1) 기
1) 이 글에서 필자가 염두에 둔 공감과 고통의 개념을 정리하고자 한다. 두 개념
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합의하기가 무척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먼저
공감은 동감, 동정, 연민, 자비 등의 개념으로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공감은
영어 sympathy로서 감정을 공유한다는 뜻인데 compassion 또한 공감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동감은 empathy로 같이 느낀다는 뜻이며 연민은 pity로 가
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언어학적으로 양자의 불균형적 권력 관계가 내포된 개
념은 아닌데, 사회적으로 타자를 불쌍하게 여기고 시혜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
을 내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필자가 의도한 공감은 영어로 compassion이
며 의미는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는 의미를 넘어선 ‘자비(慈悲)’를 뜻한다. “자비
는 타자의 고통을 같이 느낀다는 것으로, 불교의 ‘kanura’라는 용어인데 이는
이롭지 않은 것과 고통으로부터 존재들을 구제하려는 열망”(이중표 2005,
594)을 뜻하기 때문에 타자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포함하고 있다.
즉 이 글에서 공감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정적 공유와 사회적 불공정함에 대
한 인지뿐만 아니라 고통을 제거하려는 노력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불교연구에
서 compassion이 대체로 ‘자비’로 번역되고 필자 또한 선호하지만, 사회 맥락
을 고려하여 기존에 sympathy로 번역되는 ‘공감’을 선택하였다.
고통 또한 합의하기가 무척 어려운 개념 중 하나로서 합의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고통은 가난, 사고, 육체적 질병, 차별 등을 포함하여 비가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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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연구에서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문제는 주로 종교와 윤리
문제로 설명되어 왔다. 각 종교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자비, 사랑, 공감
등은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로 논의되고 있다. 또한 사회 재생산을 위해,
즉 타자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졌을 때 조화로운 공동체가 이루어진다는
맥락에서 강조되어왔다. 그리고 이 글의 문제의식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운동 차원에서도 논의된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소속감
(belongingness)은 주변부 사회그룹의 인식론적․물리적 특징이고 외부
로부터의 공감이 그 그룹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가능케 하는 핵심적 자원
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문제가 ‘감상주의’(sentimentalism)
로 왜곡되고 공감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채 규범적 주장으
로 논의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 글은 공감이 당위적이고 추상적인 개
념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정체성과 관련된 ‘사회적 실천’이라는 전제로
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공감이 왜, 얼마나 어려운가를 현실적으로 인지하
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공감은 대중적으로 회자되는
만큼 그렇게 쉽게 실천되는 개념이 아니다. 감상적 동정심은 갖기 쉽지만
주변부 사회집단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둔 공감과 경쟁 관계에 있는 타자
에 대한 공감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제도적․일상적 수준에서 빈번하게 목
격되는 폭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타자에 대한 공감이 어려운 데는 무수한 요인들이 동시에 작동한다. 개
인의 성품, 부당함이 발생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개인적․제도적 무지, 자
신과 이해관계가 없다는 무관심으로부터 공유 자체가 어려운 고통 자체의
속성도 있다(파머 2002, Graeber 2004). 각 요인마다 방대한 작업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 중에서 미경험자․외부자는 피억압자가 겪는 억압이
낳는 ‘감정적 상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려는데, 공감이 어려
․가시적, 물리적․심리적, 장기적․일시적, 구조적․미시적 형태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글은 고통의 강도, 내용, 형태, 그것에 대한 해석 등의 문
제보다 고통의 형태가 무엇이든 그것이 갖는 불공정함으로 인해 수난자가 억울
함이라는 감정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21
운 중요한 이유들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기 때문이다. 한편 공감이 실천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인
식은 공감의 실천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실천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낳는다. 필자는 공감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지
레 포기해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밝힐 것이다. 정반대로 당위나
규범이 아닌 긴급하고 중요한 사회적 실천이라는 점 또한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 연구에서 논의되는 상상력, 감정이입, 역지사지, 동일시의
논리가 아닌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정체성을 벗어나는 동시에 새로운 자
아를 구성하는 탈동일시(탈정체화, disidentification)를 한 방법으로 제
시하려고 한다(Fermandes 2003, Hennessy 1993, 2000, Alárcon
1990).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공감이 왜 어려운가를 살핀다.
바로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공감이 어려운 데는 많은 요인이 있지만 이 글
에서는 주변부 집단이 겪는 억압과 수난의 느낌, 즉 감정적 상태를 이해하
지 못함으로써 야기되는 소외 문제를 다룰 것이다. 3장에서는 정체성에 기
반을 둔 공감의 한계와 문제점을 살핀다.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살피면서
특권과 안전을 제공하는 정체성을 벗어난 탈동일시를 주장한다. 탈동일시
에 대한 기존 연구를 검토하면서 내용과 함의를 살필 것이다. 4장은 결론
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정리하여 이 글은 억압과 고통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어
떻게 공감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살피고 있다. 공감, 연민, 이해, 사랑과
같은 언어들이 감상적으로 읽히면서 그 가치가 립서비스에 머무는 경향을
비판하려고 한다. 그리고 감정이입이나 동일시는 공감의 한 과정은 될지
언정 궁극적 형태는 되지 않고 역설로 들리는 탈동일시를 설명하고자 한
다. 공감에 대한 감상주의적 이해를 벗어나 부당함의 사회적 속성을 이해
하고, 자신의 외적 정체성(성별, 인종, 국적, 계급, 학력 등)으로 자아를
국한하지 않는 탈동일시를 통해 윤리적․일상적 실천의 가능성을 살피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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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감의 어려움에 대한 현실적 인식
2000년대 중반 이래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공감, 도덕교육 등의
언술을 중심으로 감성과 타자의 고통에 대한 문제가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윤리교육, 종교, 정치철학을 다루는 연구자들이 논의하였는데 두드
러진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감성 문제가 이성 중심의 사유 세계에
대한 비판 속에서 제기된 것인데, 감성이 사람의 인식과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공감과 도덕 등의 언술이 일종의 상식이
자 규범으로서 개인과 공동체의 윤리 강령으로 언급된다. 여러 사회 문제
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타자를 이해하고 도덕적 실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
이다. 셋째, 종교 분야에서 논의되는 것인데, 불교의 자비, 유교의 측은지
심과 충서, 개신교의 산상수훈, 서구 사상에서 논의되는 공감이 실제로
일맥상통한다는 주장이다. 넷째, 공감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에서 감정이입, 역지사지, 몰입(engrossment; 감정이입을 넘어 다른 사
람과 함께 보고 느끼는 감수를 포함), 동일시2) 등이 대표적인 방법으로
2) 예컨대 안옥선의 연구에서 생태학자 네스(A. Naess)의 동일시 개념이 소개되
었다. 안옥선은 네스의 동일시(idenfication)와 불교의 동체자비(同體慈悲)를
비교하면서, 양자의 실천에서 자리와 이타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자아실현과 해
탈이라는 최고선을 달성하는 한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Naess 1985, 안옥선
2007, 230에서 재인용). “(네스의) 동일시는 자신의 정체성이 아닌 타 정체성
으로의 동일시를 뜻하는 것인데… 개체적인 작은 자아가 자신 속에 다른 존재
들을 포섭해 감으로써 혹은 자신을 타 존재에로 확장시켜 감으로써, 생태적 자
아가 되어 가고 최종적으로는 큰 자아가 되어 궁극 목표인 자아실현에 이르게
되는 방법이다. 이러한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서 자아는 개체적, 이기적, 고립
적, 원자적 자아에서 관계적, 이타적, 상호 의존적, 전일적 자아로 변형된다.
동일시의 속성은 자발적이다. 더 나아가 동일시는 느낌, 정서 혹은 감정상의
동일시로 귀결된다. 전일론적 존재론의 인지에 근거한 동일시는 인지적 측면에
서 이해될 수 있지만, 동일시는 최종적으로는 정서적인 것이다”(안옥선 2007,
230).
이와 같은 정서적 특성 때문에 동일시를 통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더 나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23
제시된다(김용환 2003, 이진희 2008, 민은경 2008, 이상진 2011, 이
승훈 2012).
기존 연구에서 공감에 대한 주장은 당위적․긍정적 그리고 실천 가능하
다는 전제가 있다. 그리고 타자에 대한 이해나 공감은 자비, 감정이입,
측은지심, 역지사지, 동일시 등의 언술로 표현되고 있는데, 표현이 다르
더라도 언술들의 핵심을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
교에서의 도덕적 가치와 공감에 대한 긍정적 합의가 현실에서는 립서비스
차원에서 머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 가치나 ‘과정이 생략된’
당위가 전제된 공감은, 한편에서는 ‘현실에서 실천하기 어렵다는 회의’와
무책임이 내포되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낭만적인 서사로 폄하되는 경향
이 있다.
공감의 내용과 실천 가능성을 고민한 대표적인 연구자가 정치사상가 마
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다. 공감에 대한 중요한 논문으로
1996년에 발표한 “공감: 기본적인 사회적 감정(Compassion: the Basic
Social Emotion)”이 있다. 공감이 왜 중요한 문제인가를 철학적 관점에
서 살피고 있는데, 이성과의 관계를 설명한 후 공감이 중요한 이유를 다음
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 공감은 철학 전통에서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
는 중심적인 가교이다. 공감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 개
인 이익보다 타자의 이익을 살피는 한 방법이다. 둘째, 공감은 흔히 비이
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제로 이성과 평가가 개입하는 중요한 감정이
다. 셋째, 공감은 타자의 복지에 대한 일종의 사고․추론이라고 할 수 있
다(Nussbaum 1996, 26). 따라서 누수바움은 공감을 “타자가 느끼는 고
통에 대한 감정이자 타자의 복지가 부재하다는 것에 대한 감정”으로 정의
했다. 그리고 공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상황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
다. 1) 고통과 피해가 사소하지 않고 심각할 때, 2) 그 피해가 마땅히 받아
아가서는 보살피는 행위를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종교적 수위와 공감의
당위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발성, 공감 등이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한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에 규범으로 읽히며 사회적 실천으로 이해되지 않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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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할 응보가 아닌 억울한 경우일 때, 3) 마지막으로 그러한 상황이 자신에
게도 닥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할 때 공감을 느낀다고 했다(Nussbaum
2003, 14-15, 1996, 31).
누수바움의 설명에서 공감이 직관이나 비이성적인 쓸모없는 감정이 아
니라 사고, 판단 및 사회적 감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 때문에 최
근 감성 개념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
다.3) 그러나 우리는 규모가 크고 명백히 억울한 상황에도 공감을 통한 지
지가 부재한 반증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치스의 유
태인 대학살 시 독일인의 무관심(유태인 정책에 대한 지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판단에서 나오는 무관
심)(Kalyvas 2006)이나 서론에서 언급한, 대학 강의에서 맞닥뜨리게 되
는 학생들의 반감과 부인, 무관심, 당황, 사과의 어조를 포함한 감상주의
등에서도 억울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누수바움의 공감을 위한 세 번째 요건, 타인에게 발생하는
상황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력을 동원한 이해는 감정이입, 역지
사지, 몰입, 감응 등의 언술로 회자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그러한 방법
으로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막상 고통과 억압을 자신이 경험했을 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4) 게다가 공감의 내용이 자신의 우위와 안
3)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이 공감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먼저 이성․합리성 대 감성
의 이분법을 비판하고 감성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김용환 2003, 민은경
2008, 이진희 2008, 오인용 2005, Goodwin and Jasper 2003, Lutz and
Abu-Lughod 1990). 또한 심리학, 사회학, 정신학에서 주로 다루어지고 있는
데 감성을 육체와 느낌으로 환원하여 해석하는 본질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
를 역사화, 맥락화하는 작업을 수행하기도 한다(Lutz and Abu-Lughod 1990).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감성의 정치에 대한 논의는, 동서양 철학자들의 도덕
과 감정론에 대한 고찰(오인용 2005, 김용환 2003), 공감의 원리에 대한 논
의를 통한 윤리와 도덕교육에 대한 강조가 주류를 이룬다(민은경 2008, 이진
희 2008).
4) 박완서의 단편소설 「사람의 일기」(1999)에는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지만 자신
이 직접 불행을 겪었을 때 느끼는 극단적 절망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현실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25
도가 설정된 상태에서 느끼는 타자에 대한 동정인 경우 또한 드물지 않아,
‘불행에 대한 공감’은 쉽지만 타인의 행운과 기쁨에는 얼마나 동감하기 힘
든가 하는 문제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다. 양성이 경쟁 구도에 있지 않을
때 남성은 여성에게 호의적이거나 관대할 수 있으나 막상 동등한 능력으로
경쟁 구도에 진입할 때 성을 기준으로 한 차별이 작동하고(김미덕 2012),
동성일지라도 경쟁자로 느끼는 이에게 가하는 질투, 시기 등의 부정한 감
정은 많은 일상적․제도적 폭력을 양산한다.
필자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문제가 인간의 선천적 선한 의지나
종교적․도덕적 가치로 이해되면서 이 행위가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가를
망각하게 만든다고 본다. 따라서 공감은 복잡한 층위의 사회적․의식적 노
력이자 실천이며(3장), 공감이 왜, 어떻게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지,’ 혹은
‘얼마나 배신의 가능성이 높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잘 나와 있다. 두 사건이 주축이 된다. 작가인 여자 주인공의 친구가 자신
의 딸이 전망이 없는 운동권 예비 사윗감과의 결혼에 대해 하소연하고 그나
마 소양이 있는 작가인 자신에게 와서 지지를 바란다. 이에 주인공은 별다른
의견을 표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 솔직한
심정은 어떤 입장에서고 비켜나 있고 싶은 거였다. 비열한 짓인 줄은 아나 명
확한 의견을 가진 자리는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비열의 속성인 거짓을
들키지 않으려고 요령껏 어물쩍거렸다. 친구가 외로움을 덜고 갔는지 더 큰
외로움을 안고 갔는지 헤아릴 겨를도 없었다. 행여 영향을 끼칠 말이나 책임
질 말을 했을까 봐 돌이켜보면서 문득 자신에 대해 매우 비위가 상했다”
(262). 또 한 사건은 자신의 막내딸의 교통사고이다. 병원에서 환자들과 조
금씩 회복해 가는 딸을 보면서 주인공은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작가로서
자신이 다루어 온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 짓눌리고 학대받고 신음하는 사람들
에 대한 관심이 다만 이야기를 꾸미기 위한 관심이었다는 것, 관심만 있고 사
랑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이란 소설뿐 아니라 같잖은
우월감의 소재일 뿐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황홀하도록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느끼는 위안과 행복감보다는 덜 황홀했다.
… 딸에게 일어난 재난을 통해 주님의 은총을 깨달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
었다. 내 이웃 사랑의 허위를 폭로당한 것이었다. 이웃 사랑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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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학자인 우마 나라얀(Uma Narayan)이 이 문제를 정확하게
포착하였다. 나라얀의 문제의식은 주변부 사회그룹에 공감해야 한다는 당
위를 전제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여성 내부의 (인종, 계급, 민족 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연대의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왜 사회정의에 관심 있는
이들이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더 깊은 상처를 주고 연대를 어렵게 하는지
고민했다(Narayan 1988). 그녀는 사회적 약자에 관심 있는 운동가나 연
구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의 원인은, 피억압자들이 느끼는 억압과 고통이
가하는 ‘감정’의 공유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공감이 어려운 이
유는, 피억압자가 억압적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적 반응(emotional
response)’으로서의 인식론적 특권을 갖기 때문이라고 했다(Narayan
1988, 38). 역사적으로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감정의 중요성은 잘 논의되
지 않았는데, 정치폭력의 문제를 다룰 때도 수난자가 겪는 억울함, 불공정
함에 대한 분노 등으로 표현되는 ‘감정의 결’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체
로 폭력이 낳는 가시적이고 즉자적인 결과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나라얀은 억압과 수난의 경험자를 내부인(insider, 경험자)으로, 이를 이
해하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이들을 외부인(outsider, 미
경험자)으로 구분한다. 외부인은 일반인이 아니라 (정체성의 차이에 기반
을 둔 구조적) 억압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회적 약자에 공감하고 연
대하려는 이들을 칭하며, 이들이 비교 대상이 된 까닭은 사회적 약자에 공
감하고 고통을 약화시키고자 애쓰는 이들이 내부인에게 더욱 큰 배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억압을 ‘느끼지는’ 않지만 이해하려고 하는 미경험자가 어
떠한 방식으로 타자의 억압을 이해하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피억압자에게 공감하는 외부인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겪지 않을지
라도 지적․감정적으로 반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내부자가 느끼는 감정적
반응들이 그들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피해자는 가해
자에 대한 분노, 깊은 모욕, 그 사건에 의해 ‘짓밟힌 느낌,’ 가해자가 귀속된
전체 집단에 대한 증오, 그런 태도를 낳고 지속시키는 역사에 대한 분노,
복수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기력에 대한 수치,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과의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27
강한 연대 의식, 가해자의 우둔함에 동정마저 느낀다. 2) 외부인은 노골적
이지 않고 교묘한 방식으로 행해지는 억압을 인식하지 못한다. 직접 겪지
않고 억압을 배우는 외부인은 그것을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방식과 수준에서
이해한다. 3) 억압을 새로운 맥락에서 보는 것을 실패하거나 연결되어 있는
억압을 이해하지 못한다. 외부인은 억압이 존재하는 광범위하고 평범한 맥
락을 잘 알고 있지만, 새롭거나 익숙지 않은 현상에서 억압을 보았을 때 그
것이 억압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Narayan 1988, 38-40, 강조는
원문).
이러한 차이 속에서 경험자는 피억압자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억압의
정도와 교묘한 형태의 차별을 외부인보다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억압
의 극단을 경험하지 않은 미경험자는 수난자에게 가해진 억압과 부당함의
효과를 온전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억압을 제거하려는 정의를 실현
하는 데도 실패한다고 주장하였다.
언급된 고통의 느낌들을 짚어 보면 수난자에게 공감하기가 얼마나 어
려운가를 절감할 수 있다. “분노, 모욕감, 가해자가 속한 전체 집단에 대
한 증오, 복수심, 당장 복수하지 못하는 무기력, 수치감, 가해자의 우매
함에 대한 동정.” 덧붙이자면 수난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거나
피해자가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라는 주변으로부터의 2차 피해, 위로받지
못하는 절망, 가해자가 정당하게 처벌받지 않는 구조에 대한 분노, 가해
자의 변명과 합리화에 대한 혐오감, 그 혐오감에 수난자마저 부패되는
느낌도 포함한다. 그리고 폭력 행위 자체는 순간적일지라도 폭력의 효과
는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일상생활에서 재구성되는 것을 염두
에 둔다면(Das 2007) 타자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얼마나 어려
운가를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경험자의 감정적 구성에 공감하지 못
하는 외부인은 “수난자의 감정적 반응을 어리석고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무시하거나, 경험자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감정적 반응을 도구적으로 활
용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Narayan 1988, 41). 그리고 이와 같은 외
부적 시선의 대중적인 연쇄반응들이, 결국 자신은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328 사회와 철학 제26집
안도감을 느끼도록 하고 고통의 해결을 개인의 문제로 사사화하는 데 일
조한다.
필자는 이렇게 실천하기 어려운 공감, 배려, 연대 등의 언술들이 규범적
으로 회자되면서 그것의 중요성이 역설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을 막기 위해,
‘공감이 얼마나 실천하기가 어려운가를 바로 인식하는 것’이 타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문제를 위한 현실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이 실천하
기 어렵다는 판단이 공감이 기여하는 사회적 역할과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
거나, 실천이 어렵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 볼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공감을 실천하기 위해 이 행위가 회자되는
만큼 그렇게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판단이, 오히려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3. 정체성과 탈동일시
앞 장에서 공감과 타자에 대한 이해가 일상생활에서 제도적 수준에 이
르기까지 쉽지 않은 실천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감상주의의 함정에 빠지
기 쉬운 데다 동일시, 감정이입, 역지사지가 아무리 그 논리를 정교화 하
더라도 나라얀(1988)이 제기한 감성의 문제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
고 이를 포기하거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필자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문제는 ‘내가 누구이며 나와 타인을 어떻게 대
하는가’ 라는 ‘정체성’의 문제가 핵심이라는 것과 이를 위해 정체성에 기인
한 배제와 특권을 벗어나는 탈동일시5)를 제안하고자 한다. 공감, 정체성,
5) 기존 연구에서 탈동일시는 ‘탈정체화’나 ‘비동일시’로 번역되어 왔다. 이 글에서
는 탈동일시로 번역했고 인용어를 옮길 때 탈정체화를 그대로 사용했다. 탈정
체화라고 번역하는 것이 특정 정체성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그대로 전하고 있
기 때문에 언어의 측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도 큰 무리는 없다. 그럼에도 정체성
으로부터의 탈피와 함께 어떤 대상(새로운 자아)으로의 변화를 담고 있으므로,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29
탈동일시를 둘러싼 논의는 개인 수위에서의 정체성, 사회운동, 그리고 나
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추상수위가 높은 질문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데, 개념과 논리, 이론의 핵심인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1) 개념과 논리
‘탈동일시하다’는 영어로 ‘disidentify’이며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특징을
규정짓는 정체성에서 벗어난다는 뜻으로서 정체성 문제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타자, 특정 대상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다(identification),
반동일시하다(counter-identification) 라는 용례로 사용된다. 따라서 심
리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동일시한다는 것은 “주체가 타자의 어떤 양
상, 특징, 속성에 동화하려는 심리적 과정이고, 타자가 어떤 모델을 제공
한 이후에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동일시의 일련의 과
정에 의해 개인의 성격이 주조되고 구체화된다”(Muñoz 1999, 7). 탈동
일시는 이 과정의 실패 혹은 거부를 뜻한다.
탈동일시에 대한 논의 계보를 살펴보면,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연구자이자 언어학자인 미셸 페쇠(Michel Pêcheux)의
「Language, Semantics, and Ideology」(1983)에 탈동일시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알튀세르(1971)의 지배 이데올로
기의 호명에 대한 세 주체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는 좋은
주체로서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동화하는 이들이다. 다음으로, 나쁜 주체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동일시․동화를 거부한다. 그리고
탈동일시 주체는 구조적 변화를 염두에 두지만 동시에 저항의 일상적 투쟁
을 위해, 지배 이데올로기의 압력에 굴하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고 내부로
부터 문화적 논리를 변화시키려는 대항 전략을 구사한다(Muñoz 1999,
양자를 모두 표현하기 위해 탈동일시를 선택했다.
330 사회와 철학 제26집
11). 탈동일시 주체는 반동일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반동일시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의 동화․동질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저항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저항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나쁜 주체가 자신을
호명하는 주체가 아니라고 ‘반응함으로써’(‘호명하는 X가 아니다’), 즉 호명
의 프레임을 통해 자아를 형성함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를 실제로 재생산하
기 때문이다. 반동일시 전략은 자아를 자신의 특정한 부분의 정체성으로 규
정함으로써, 정체성에서 기인하는 구분과 위계 자체를 재생산하는 문제가 있
다는 것이다(Muñoz 1999). 탈동일시는 이러한 연쇄적인 고리를 거부하는
제3의 반응이다. 이를 보다 대중화시킨 이가, 저서 「Disidentifications」
(1999)을 쓴 문화이론가 호세 에스테반 무노즈(José Esteban Muñoz)
이다. 그는 인종과 성적 측면에서 소수자(주로 유색 퀴어인)인 행위예술
가, 문화인, 활동가들이 지배 담론과 협상하면서 자신들의 소수자성을 통
해 사회와 소통하고 변혁을 실천하는 문화양식을 설명하였다. 무노즈에게
“탈동일시는 끊임없이 규범적 시민권의 환상(phantasm)에 순응하지 않는
혐오 주체들의 존재를 지우고 벌하려는 주류 공적 영역과 협상하기 위해,
소수 주체가 실천하는 생존 전략이다(Muñoz 1999, 4). 구체적으로 이론
적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개념적으로) 탈동일시한다는 것
은 자아와 자신의 삶의 서사를 일구는 것이다. … 동일시로부터 나오는 어
떤 것을 골라서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모호하고 부끄러운 요
소들을 일부러 버리는 것도 아니다. (주변부) 정체성의 해로운 요소들을
버리지 않은 채 이러한 에너지를 재작업하는 것이다. … 따라서 탈동일시
는 주류의 코드를 부수는 것 이상의 단계인데, 지배 문화에 의해 무력화된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재현하는 실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다”(Muñoz 1999, 12-31). 부정적으로 호명된 정체성을 거부하거나 그렇
다고 주류에 동화하지도 않으면서 창조적으로 작업하는 것인데, 대체로 혼
성적(hybrid)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용이하고 실천 가능한 작업으로 설명
하고 있다. 사회에서 주어진 호명 자체가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고 혼성적
존재 자체로 인한 새로움의 창조가 현실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동일시의 ‘논리’를 잘 드러난 예가, 시카나 여성주의자 노마 알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31
라콘(Norma Alárcon)의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영어권이나 한국 사
회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이해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다. 1990년
대 이래 흑인, 제3세계 페미니스트들이 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동일시 전략’
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여성과 남성의 다름을 기반으로 하여 보편인
남성과 동일한 권리와 평등을 누림으로써 특수인 여성이 남성으로의 동일
시 욕구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폄하되었던 여성
적 가치가 더욱 우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동일시 전략(급진적/문화적
페미니즘)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지적했다. 정반대의 전략임에도 불구
하고 두 입장 모두 남성을 보편으로 설정하고 있고 차이 자체가 자연화된
가부장제를 재생산한다. 그리고 알라콘은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이 두 전략을 벗어난 탈동일시 전략으로서 제3세계 페미니즘을 염두하였
다(Alárcon 1990).6)
탈동일시는 연구자에 따라 내용, 맥락, 수위가 다르다. 어떤 연구자는
6) 알라콘은 젠더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들과 독립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하
면서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동일시에 기반을 둔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 ‘탈동일
시’의 중요성을 시사했다(Alárcon 1990). 그녀는 이를 ‘다름 속의 정체성들
(identities in difference)’로 요약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정리한 이가 쉘라
산도발(Chela Sandoval)이다. 그녀는 ‘피억압자의 저항의식’ 개념을 중심으로
여성주의 이론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성했다. 첫째 기존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은 동등한 권리로의 저항 의식으로, 둘째 사회주의, 마르크시스트 페미니즘은
혁명적 전략으로 규정하고 기존 이데올로기로의 동화, 동질화의 욕구가 없이
사회변혁을 통한 다름을 확인하는 전략이라고 하였다. 셋째, 우월주의로서, 피
억압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보다 더욱 가치 있는 것으
로 재규정하는 것을 뜻하고(급진적/문화적 페미니즘의 예), 넷째는 분리주의로
서 지배질서와의 통합을 추구하지도 않지만 혁명적 변혁을 추구하지도 않는 전
략을 뜻하고 말 그대로 주류와의 분리 전략을 취한다. 마지막으로 차이의 전략
인데, 이는 정치적 기술로서 위에서 언급한 모든 전략의 유동성을 고려한다는
것이다(Sandoval 2000, 김미덕 2011, 184-185). 산도발은 여성주의 담론
을 피억압자의 저항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기존 주류 여성주의
패러다임의 동일시와 반동일시 전략을 탈피하였다.
332 사회와 철학 제26집
제3의 정체성의 형태로서 사회에서 부여한 주변부적 정체성을 긍정적, 창
조적으로 재작업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Muñoz 1999), 어떤 연구자는
(성별, 계급, 민족, 인종 등의) 사회적 정체성에서 자아 개념을 분리시켜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참 자아는 사회적 정
체성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외피적 정체성이 자아
를 구성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Fernandes 2003). 이러한
분리 작업과, 후술하고 있는 특정 정체성과 무관하게 부당함에 대한 인지
및 분석 능력이 사회변화의 가능성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Fernandes
2003, Hennessy 1993, 2000, 랑시에르 2004). 그러나 탈동일시를 어
느 수위에서 논의하고 있든, 모두 정체성과 사회변혁의 전략과 연관되어
있다.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정체성, 공감, 변혁의 문제인데 마르
크시스트 여성주의 이론가 로즈메리 헨네시(Rosmary Hennessy), 정치
학자 릴라 페르란데스(Leela Fernandes)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
국 인문학에서는 진은영(2010)이 탈정체화로 번역하여 이를 시론적으로
언급하였다. 진은영 연구의 주제어는 소통으로서, 자아와 타자의 소통의
가능성을 주장하면서 탈정체화의 문제를 결론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다. 탈
정체화가 핵심어는 아니지만 정체성의 정치적 한계를 지적하고 탈정체화의
의의를 잘 지적하고 있다.7) 이 연구자들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탈동일시의
특징과 함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7) 진은영은, 소통은 타자성 형상의 해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체성 정치로부
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탈정체화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고 결
론 부분에 탈정체화의 한 예로서, 이 글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자크 랑시에르
(2004)의 연구를 들고 있다. 다만 기존의 정체성에서 탈주하는 것이 어떤 의
미이며 어떤 과정에 의한 것인가를 설명하지 않는다.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33
2) 정체성 정치의 한계와 탈동일시 주체
언급했듯이 탈동일시의 기본 개념과 핵심은 정체성이다. 그리고 정체성
이 공감과 사회변혁 문제에서 중요한 이유는 동일한 경험과 정체성, 이를
바탕으로 한 연대를 통해 공감과 소수자 사회운동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
이다. 정체성은 논자에 따라 개념이 다양하지만 대개 개인을 특징짓는 사
회적․내적 기준이자 안전망으로서 성별, 인종, 국적, 계급 등을 포함한다.
무엇보다도 정체성은 자연화된 개념으로 이해된다. 정체성 자체의 역사성,
유동성, 다층성이 논의되고 있지만(Hall 1996) 본질적이고 고정된 것이
라는 이해가 여전히 대중적이다. 예컨대 가족은 생물학적 특징뿐만 아니라
정치적 특성으로 인해 가족 형태의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가족 내부의 위계 등이 포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규
정 자체가 이미 불변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된다(Medina 2003).8)
기본적으로 정체성 문제가 가시적이고 중요한 까닭은, 이것이 소속․무
소속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물질적․심리적 보호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
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성
별, 계급, 가족, 출신학교, 출신지역, 사회적 지위, 국적, 특정 집단에의
소속과 소속감, 그것이 사회생활에 미치는 효과를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따라서 주류 집단은 소수 집단을 동화시키려하고, 소수 집단은 정체
성을 통해 집단의식을 구성하여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의 자원으로
활용하려고 한다(Fernandes 2003). 즉 헤게모니 질서에 주어진 사회적
호명에 특권적 그룹은 동일시를 통해(백인은 백인다움, 남성은 남성다움
등으로) 특권을 재생산하려 하고, 주변부 그룹은 반동일시 전략(흑인은 흑
8) 구체적으로 메디나(Media 2003)에 의하면 가족은 생물학적인 그룹인 동시에
정치적 그룹이다. 당연히 생물학적 요인은 중요한 특성임에 틀림없지만 입양,
동거, 모계가족, 모가장 등의 가족의 복수적 형태들을 통해 그것의 정치적 성
격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일단 가족 구성원이 되면 내부의 갈등과 차이가 간
과되는데, 가정에서의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비위계적 관계들 또한 가족이 자
연화된 동질적 그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예라고 설명한다.
334 사회와 철학 제26집
인다움, 여성은 여성다움)을 통해 차별과 특권을 비판한다.
이러한 속성을 배경으로 한 정체성 정치는 한국사회에서 1990년대 이
래 인권운동, 차이의 인정, 다양성 등의 언술을 화두로 소수자 인권운동을
대변해왔다. 그런데 곧 다음과 같은 비판들에 직면했다. 첫째, 소수 정체
성 집단의 다양성 때문에 근본적 응집력이 있는 연대운동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근거가 인종, 성별, 민족, 계급 등의 정체성인데, 이
정체성에 바탕을 둔 운동은 ‘보편적’이지 않고 특정 소수의 이익을 반영한
다는 비판과 함께 그러한 정체성의 기준이 끝없이 나열된다면 어떻게 연대
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상대주의 문제가 제기되었다(김미덕 2011). 둘
째, 정체성 정치는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요구가 아닌 ‘문화적 요구’라거나
사회문제를 집단과 제도가 아닌 개인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다. 여성
주의운동, 동성애운동, 환경운동 등의 대표적인 정체성 정치가 정치적․집
단적․보편적이라기보다 소수 집단의 ‘문화운동’이라는 것이다(Fernandes
2003). 이는 노동운동이 보편화, 남성화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러
한 해석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정체성 정치가 정치
적 판단에서라기보다는 ‘분노’로 이해되면서, 소수자와 수난자의 고통이 일
종의 사회적 덕으로 간주되고(Brown 1996) 고통 받지 않는 사람들을 비
난하는 방식으로 고통이 특권화되어 왔다. 정체성 정치는 물리적 차별을
분석하는 정치적 해석에서가 아니라, 기존 지배 담론과 구조를 비판하는
단순한 반사적 작용으로서 주류 집단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형벌의 형태’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Hennessy 1993). 이러한 비판들은 수위가 다르지
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
탈동일시 논의를 통해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비판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들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동시에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주변부 사회그룹의 인정 투쟁이 단순히 문화적인 것이며 사사로운 것
인가. 이는 구조적, 제도적, 물질적인 억압의 속성을 간과하고(Fernandes
2003) 마치 상부구조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변부 사회그룹이 직면한 억
압의 속성을 탈구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근본적이고 중요한 억압과 폭력
이 따로 존재하고 사소하고 부차적인 억압과 폭력이 따로 있는 듯한 착각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35
을 불러일으킨다. 정체성 정치가 해석과 분석이 없는 분노로 읽히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감정적이고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경시하려는 의도가 있다. 다만 그 정당한 분노를 분석으로 설명
하지 않으면 규범적 주장에 불과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이는 후술
하고 있는 헨네시의 비판적 담론(critical discourse)으로서의 여성주의
에 대한 이해를 점검하면서 보충하고자 한다. 이처럼 정체성 정치는 동일
정체성 그룹의 연대의 문제, 공감의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탈동일시 논의가 출발한다. 첫째, 탈동일시 주체는 헤
게모니 질서에 대한 저항의 준거점을 자신의 소수자적 정체성에서 찾지 않
는다. 정체성은 일개인의 삶과 그 삶들이 모인 공동체를 작동시키는 중요
한 원리로서 공존과 더불어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주변부적 사회
그룹뿐만 아니라 특권적 사회그룹도 이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긴장을 만든
다. 탈동일시 주체는 정체성 정치가 갖는 사회적, 역사적 함의(저항성과
정당성)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한계 또한 인지하고 있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운동들이, 단기적인 정치적․물질적 성과를 얻는 데
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불가피하게 암묵적으로나 명시적으로 적대적 구
별(oppositional distinction)에 기반한 ‘동일시의 형태’에 의존하고 있다
고 지적한다. 즉 정체성 정치를 통해 사회정의를 고민하는 이들은 특권 집
단이 생산하는 경계와 배제를 비판하지만 자신을 배제의 대상으로 규정함
으로써 기존 헤게모니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에 근거한 억
압과 차별을 비판하고자 하는 이들이 문제 삼는 배타성을 근거로 하기 때
문에, 단기적으로 정치적 동원의 대상이 되어 요구가 성취되었다 할지라도
장기적인 사회정의 실현을 염두에 두었을 때에는 그 운동이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없다(Pêcheux 1983, Fernandes 2003). 더불어 소수 그룹 내부
에 존재하는 다양성 및 위계의 문제는 정체성 정치가 갖는 또 다른 문제점
이다. 다시 여성주의의 예를 들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주
의 의식을 필연적으로 갖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차이를 통한 위계 문제가
여성이라는 공통의 거대 범주 속에서 평면화될 수 없다. 외부로 향한 가부
장제에 대한 비판 때문에 여성들 내부에서의 위계와 긴장이 비가시화되는
336 사회와 철학 제26집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중요하게 생각되지도 않는다(김미덕 2011,
Medina 2003).
둘째, 구체적으로 탈동일시를 통한 공감과 연대는 어떠한 형태인가. 필
자는 이를 두 수위에서 설명하는데 하나는 폭력과 억압으로 나타나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분석의 측면과 자아 개념의 재해석을 통한 윤리적 실천의
측면이다. 앞에서 정체성에 기반한 사회운동을 분석이 아닌 분노와 감정의
문제로 폄하 혹은 활용하면서 정체성 정치가 갖는 사회경제적 배제와 차별
을 무화시키는 경향을 비판했는데, 이 분석의 측면은 그에 대한 한 대안이
기도 한다. 여성주의 학자인 헨네시가 여성주의 시각이 단순히 분노로 읽
히거나 여성만의 여성주의로 해석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탈동일시 주체는
‘고통과 억압이 구성되는 역사적 체계’를 질문하고 분석하는 것이라고 주장
한 바 있다(Pêcheux 1983, Hennessy 1993, 30에서 재인용). 그녀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주의 의식을 갖는다는 본질주의적 개념을 문제제기하
고, 여성주의는 과거의 의식 고양(consciousness raising)과 유사한 반
헤게모니 담론으로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라고 주
장하였다.
탈동일화된 주체는 집단 정체성이 아니라 이론적 프레임워크와 목적을 생
산하는 반헤게모니 집단 주체의 위치(position)를 통해 주장한다. 이때 장
소(주체의 위치)는 경험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과정에서 나오는 ‘위치의 연결
시스템(articulated system of position)이다’(알튀세르 1976). (예컨대)
여성주의 관점을 가진 집단 주체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집단의 정체성에
서 나온 정치가 아니라) 비판적 담론 혹은 분석의 산물이다. 이는 구조화된
차이 체계의 역사성을 폭로함으로써 … 개인과 집단 정체성을 넘어서는 분석
을 하는 것이다. … 반헤게모니 이데올로기 비판의 집단의 주체는 사회적 상상
력과 정치경제적 구조의 재조정을 요청하는 담론으로부터 나온다(Hennessy
1993, 30).
헨네시는 배타성과 이분법이 재생산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역사적․사회적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37
으로 구성되는 경험을 바탕으로, 집단 정체성을 넘어서는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주의를 본질주의적 개념으로부터 분석과 (주관적) 과학
의 개념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여성주의의 비판적 담론’의
의의는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정체성 변수를 통한
소수자 운동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헨네시의 인식에
는, 분석과 본질화된 개념인 여성이라는 범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
어 있다. 여성주의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라고 정의
한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 페미니스트로서의 주체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
것이 그렇게 용이한 작업인가 하는 질문을 낳는다. 인종차별 문제에서 문제
제기 자체가 백인에 대한 비판이고, 여성주의 문제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남성에 대한 비판이 되기 쉬운 상황에서, 어떻게 일개인 남성과 일
개인 백인에 대한 공격이 아닌 제도적․비제도적 인종차별과 물질적․사회
경제적 가부장적 차별에 대한 비판을 설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
된다.
정치학자 페르난데스는 이 지점으로부터, 운동이자 개념으로서 탈동일시
를 활용하고 있다. 그녀는 앞에서 살펴본 정체성 정치가 갖는 한계를 지적
하고 탈동일시를 두 수위에서 사유하고 있다. 한 수위는 대중적인 사회적
정체성과 자아의 분리이며, 또 다른 수위는 보다 본질적인 차원으로서 영
적인 수위에서의 탈동일시된 자아로의 변화를 주장한다. 그녀의 문제의식
은 교수자로서, 사회정의를 고민하는 학자로서 어떻게 정체성에 기반을 둔
긴장과 특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정체성을 벗어난 연대를 도
모할 것인가이다. 따라서 ‘정체성에 바탕을 둔 모든 특권과 배척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탈동일시에 근거한 정치적 실천’을 제안한다.
탈동일시를 향한 운동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공력이 들어가는 여행
이다. 이는 다양한 형태의 권력, 특권, 안전함의 느낌, 그리고 자기 이익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집착의 결들을 끝없이 버리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
적 정체성이라 여겨온 인종, 국가, 계급, 민족, 성, 카스트 젠더 그리고 종
교와 같은 것들이다. 정체성들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이중의 과정을 필요로
338 사회와 철학 제26집
한다. 한 수준에서 이러한 정체성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개인적 특권을 포함
하여 정체성의 실제 결과들(특권과 이익)을 도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 수준에서 외부적으로 강제되고 자기가 규정해 놓은 정체성으로부터 자
아 개념을 떼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모순적인 과정처럼 들리지만 내
가 믿는 바로, 이것이 권력, 특권, 정체성의 실제 문제들을 도전하고 뛰어넘
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Fernandes 2003, 32-33).
페르난데스는 미국의 다문화 교육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인종차별을 논할 때 백인학생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저항하지 않고 인종차
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흑인학생은 흑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참 지식
을 안다고 주장하는 방어적 태도를 경계하기 위해, 그들의 개인적 삶과 공
동체에 불러일으키는 특권과 소외를 동시에 마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의 특권이 그들 삶의 가장 친밀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는 사실을 분석하고 책임지기 위해, 반드시 자신의 특권으로부터 탈동일시
를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이와 특권과 같은 쟁점에 처음 노출된 학생
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물리적’ 특권을 부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정체성을 동일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매우 인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인종적 특권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백인 학생들을 위한
한 전략은, 스스로를 백인이라는 헤게모닉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 자아를 인
식하면서 미국 현대 사회에서 백인됨과 관련된 권력과 특권의 사회적, 경제
적 형태를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Fernandes
2003, 33).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 정책의 부정적 효과에 비판하고자 하
는 미국인들은, 헤게모니 미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신
을 탈동일시 할 수 있어야 미국 정책에 대한 판단과 분석이 가능하다
(Fernandes 2003, 32-7). 이렇게 사회적 정체성과 자아를 분리시키고,
비판적 담론 능력이 가능한 탈동일시를 통해 죄책감, 저항, (자신이 소수
자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갖고 있다는) 진실에 대한 허구적 자부심을 피할
수 있다. 이 논의를,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고전적이지
만 어려운 질문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여성주의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39
집단의 정체성이 중요한 변수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이며 보편
적이지 않은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판적 담론을 적용해보면 남
성 또한 여성주의자로의 변화의 가능성이 부재한 것이 아니다.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자각, 그리고 그 조건으로 인해 특권이 존재하다는 자각이 여
성주의 의식 고양의 기본적인 과정이다(Aliunas 2011). 이러한 탈동일시
논리는 다른 예에서도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Jacques Rancière)가 이 탈동일시를 통해 1961년 10월 알제리 식민지
해방투쟁에 동조한 프랑스 지식인의 정치적 주체화 과정을 설명하였다. 당
시 야만적인 방식으로 진압된 알제리 시위 과정에서 정치적 주체화가 발생
했는데 다음의 세 과정을 거쳤다고 분석한다. 첫째 프랑스 국가(진압 경
찰)로부터의 탈정체화로서 타자가 고정해 놓은 정체성을 거부하기, (기존
의) 어떤 자기와 단절하기, 둘째, 타자에게 전달하는 증명, 어떤 (방)해로
정의되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증명(공동체의 부정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으
로 이해된다), 셋째, 불가능한 동일시로서 우리(프랑스 지식인)가 동시에
동일시 할 수 없는 타자(알제리인)와 동일시하는 것이다(랑시에르 2004,
223-224).
이 모든 예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정체성에 기반을 둔 운동의 주체가
동일한 처지에서가 아니라 동일한 비판의식/비판적 담론을 형성했을 때 주
체들의 연대가 가능하며, 동일 정체성 그룹 내부의 동질성의 환상으로부터
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정체성, 경험과 자아의 분리는 쉬
운 과정이 아니다. 예컨대 남성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라고 자기규정을
했을 때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동일한 정체성에서 기인하여 수월하게
형성된 연대감 보다는 회의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스스로 한계가
있다는 자각도 한다(Alilunas 2011). 그럼에도 그 노력이 개입될 때 최
소한의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페르난데스가 주장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탈동일시 주체는 추상수위
가 높지만 가장 근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사회적 정체성과 자아를
분리한다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대안적 상이 무엇인가 또한 고민하고 있
다. 그녀에게 탈동일시는 정체성에서 자아를 분리시키는 과정인 동시에
340 사회와 철학 제26집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는 노력’으로서, 영적 자아로의 변화이자 특권에 대
한 문제의식이 내재된 윤리적 실천이다. 그녀는 자아를 영적인 결(몸, 마
음, 영혼)로 규정하고 이 영적 자아는 모든 개인에게 귀속된 보편적인 개
념(‘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세계를 깨달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존재
의 연결성, 상호의존성을 염두하고 있다. 또한 영혼, 영적 자아라는 개념
이 물리적 세계 및 물질성과 괴리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영성이라는 개
념이 종교적인, 혹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물질성이 거세된 채 규범
으로 활용되어왔기 때문이다.9)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페르난데스는 탈
동일시된 자아를 이해하기 위해서 ‘영혼은 정체성의 한계 안에서 제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영성의 바로 이러
한 보편적 특성 때문에 제한적인 사회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연대의 한
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조하건대 페르난데스는 정체성 정치가
갖는 효과를 간과하지도, 그리고 영적 자아로의 변혁이 저절로 사회변혁을
이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만약 사회로부터의 인정, 성공, 우
월감과 같은 에고(ego) 추동의 동일시를 도전하는, 영적 자아로의 변혁이
9) 한국사회에서 영성이라는 개념은 주로 종교적 차원에서 이해되고 있다. 페르난
데스도 이 점을 무척 우려하고 있으며, 필자 또한 이 개념이 종교와 관계가 있
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영성은 존재 유지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몸, 마음, 영혼(사람의 정기, 에너
지)을 뜻한다. 달라이 라마의 사상을 분석하고 있는 황용식(2006)의 글에, 영
성(spirituality)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어원을 밝히
고 있다. 이는 이 글에서 표현하는, 그리고 페르난데스가 설명하고 있는 영적
자아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개념사적 어원으로
서, spirituality는 공기, 호흡, 생명을 뜻하는 spiruts에서 파생하였고, 프랑
스어 espirit는 영어의 spirit, 독일어의 geist로서 한국어로는 ‘정기’에 가깝다
는 이정우의 지적(2004)이 있다. 그리고 황용식 자신은 달라이 라마의
spirituality를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정신성으로 번역하면서 이 개념이
자신과 타자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인간 정신과 그러한 품성들과 관련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황용식 2006, 211-213). 이러한 개념적,
문화적 이해는 영성이라는 개념을 필연적으로 종교적 차원으로 이해하는 방식
을 넘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41
일상생활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사회변혁은 불가능하다고 보았
다. 그녀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형태의 불평등과 지배 형태 중
에서 권력에 대한 개인적 집착(attachment)은 가장 변화시키기가 어렵
다. “모든 형태의 변혁정치는, 정치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스스로가 얼마나
계몽되었다고 생각하든 간에,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권력과 (주류 집단,
혹은 헤게모니로의) 동일시에 대한 에고 중심의 행동을 추동하는 자신들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Fernandes 2003, 45). 따라서 이를 실천하는 탈동
일시 주체는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한가운데 있어도, 어느 누구와도 반대
에 서 있지 않다는 중요한 주장을 하고 있다.
페르난데스의 주장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탈동일시 주체로의 변화는 사
회정의를 고민하는 활동가와 연구진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외
부의 권력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변화시키고자 하는 권력 구조에 자신이
공모하는 현실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탈동일시로의 실천은 외적 사회
정체성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예컨대 사회로부터의 인정, 지적․이데올
로기적 우월감과 같은 에고 중심의 집착 또한 버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Fernandes 2003, 35). 그런데 사회정의를 고민하는 이들은 대체로 외
부로부터의 비난과 장애에 직면하면서, 자신의 지식과 헌신을 개성에 ‘본
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사회로부터 받는 많은 비난과 비판이
소수자성으로 인한 우월감을 초래하기가 쉽고 사회정의에 헌신한다는 ‘낭
만화된 자기 이미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Fernandes 2003,
35, 40). 그것의 결과는 지식과 정의가 자아 개념과 관계되는 동일시 과
정을 거치는데, 이때 동일시는 매우 쉽게 조직과 아젠다를 장악하고, 명
성, 지위, 지도자의 위치 등을 포함한 물질적 이익과도 관계된다. 따라서
탈동일시의 노력은 정직하고, 겸손하고, 때로는 불편한 자기 인정으로부
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쉬운 과정이 아니다. 이와 같이 페르
난데스는 특권적 지위에 있는 이들의 탈동일시 문제보다 사회운동을 고민
하는 ‘반사적 특권 의식’이 매우 위험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임을 잘 지적
하고 있다. 특권이 낳는 제도적․일상적 수위에서의 위선과 폭력뿐만 아
니라 그 특권을 비판하는 주변부 집단 또한 반사적 특권의식을 갖기 쉽
342 사회와 철학 제26집
고, 내부에서의 위계와 차별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에 더욱 위선적이고 교
묘한 형태의 폭력을 재생산한다. 앞에서 나라얀이 지적한 외부자의 반응
들은 바로 이러한 영적 변혁에서의 실패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페르난데스의 탈동일시 주체는 종교적 차원이나 신비주의로 읽힐
수 있는데, 이는 유토피아적 개념이 아니라 마하트마 간디(Gandhi)의 다
음의 실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혁자는 그가 개혁시키려는 그 사람과 친숙해질 수가 없다. 참된 우의란
혼과 하나 됨인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 같다. 오직
같은 성격 사이에서만 우정은 온전히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고 또 오래갈
수 있다. 친구는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구 사이에는 개혁의
여지는 거의 없다. 나는 모든 배타적인 친밀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
이란 선보다는 악을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
님(원 번역서에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홀로 남아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온 세계를 제 친구로 삼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간디 2001, 78).
어렸을 때 친구와의 관계를 고민하며 적은 부분으로 선보다는 악을 훨
씬 더 쉽게 흉내 내기 쉽다는 뜻인데, 배타를 전제로 하는 친밀성 등의 일
체의 동일시를 부인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
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탈동일시라는 언어를 쓰고 있지 않지만 정체성
의 원리가 배타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 배타성의 극복만이
일개인의 수준에서뿐만이 아니라 사회정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짚고 있다. 탈동일시를 구현하고 있는 자아, “개혁자는 그가 개혁시키려는
그 사람과 친숙해 질 수가 없다,” “하느님과 친구가 되려는 사람은 홀로 남
아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온 세계를 제 친구로 삼아야 한다”는 탈동일시
의 논리와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언술 자체로는 배타적인 사회관계
로 읽히는데, 제한적 정체성으로 구성된 자아 및 ‘우리 의식’으로 인한 단
결과 결속감은 외부자에게 불안과 배타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며
장기적 비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사한 맥락에서, 최근 신영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43
복(2012)은 한 강연회에서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똘레랑스
(tolerance: 관용)와 공존의 화(和)는 변화할 화(化)로 변화할 필요가 있
다고 언급했다. 똘레랑스가 갖는 낭만적 서사에 대한 비판인데, 기존의 똘
레랑스는 공존의 화를 주장하지만 이는 소수자의 차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타자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변화에 대한
초점’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신영복 2012). 신영복 또한 탈동일시 개념
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맥을 같이 하고, 기존 연구에서 차이의 존중이나
연대라는 주장이 갖는 한계를 잘 지적하고 있다. 즉 주류 집단이 주장하는
차이의 존중과 연대는 자신의 특권에 대한 점검과 성찰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존 이데올로기와 위계적 제도 재생산에 대한 비판에는 한계가 있
다. 문성훈(2005) 또한 인정투쟁에 대해 유사한 지적을 했다: “사회적 인
정 질서는 개인에게 성공적 자기실현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복종을 유도하
며, 여기에서 전제된 특정한 가치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사회적 인정에서
배제하는 무시의 질서”이다.
정체성은 일상생활과 제도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직․간접
적으로 규정한다. 개인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크고 작은 정체성들로
지배와 권력을 (재)생산하고 특권, 배제, 차별을 끊임없이 만들어 간다.
자신과 자신의 인종, 자국의 순수성을 확보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타
자/타 인종/타국을 무화시키거나 소수자로 만드는 ‘약탈적 정체성
(predatory identity)’(아파두라이 2011), 혹은 ‘자기 존재의 배타적 강
화’(신영복 2012)를 통해 물리적․심리적 이득을 취하고 생존한다. 정체
성 정치가 특수한 집단의 불만이기 때문에 보편적이지 않고 문화적 수위에
머문다는 비판은, 정치경제적 불평등을 사사화하고 추상화시키는 전략이므
로 부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변
혁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정체성의 정치는, 소수자를 인정하고 주변
부 집단의 소수성 자체가 작동하는 역학을 살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수
대 다수의 배타성과 구분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벗어나고자 하
는 것이 탈동일시 전략으로서, 이는 ‘나는 흑인이다,’ ‘나는 여성이다,’ ‘나
는 노동계급이다’ 등과 같은 주변부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언술의 한계를
344 사회와 철학 제26집
잘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 정치에 대한 한계가 파악되더라도 특권 집단과 주변부
집단 모두 정체성을 내려놓기 쉽지 않다. 전자의 경우 자신의 특권을 사
회 구조적 속성 속에서 파악하기보다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후자의 경우
는 소수자 정체성을 바탕으로 연대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체
성은 성별, 인종, 국적, 학력, 지연 등으로 이해되고 자신을 구성하는 본
질적인 요소로 여기면서, 양쪽 모두 그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다. 그리고
‘소수자를 인정하자’는 상식으로 들리는 언술이 권력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현실에서 탈동일시 주체는 존재양식과
자기 재현방식이 낯설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소외를 당하기 쉬운데, 이
들은 주류에 동화되지 않고 반사적 저항을 하지도 않으면서 두 방식을 조
절하고 협상하기 때문에 ‘소속과 정체성으로의 선택을 강요받거나 배척당
한다.’ 친밀성을 가정한 그룹의 안전망 혹은 정반대의 배타성이 사회를 작
동시키는 주류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동일시 주체의 실천은 드물
기는 하지만 부재한 것이 아니고, 상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실천이 드물다고 하여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더더
욱 아니다.
탈동일시 전략은 자아, 나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탈동일시 주체들의 연대 속에서 비로소 비위계적이고 평
등한 연대가 가능하다고 본다. 탈동일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정체성에 기반을 둔 특권과 배제를 버리는 것이다. 자아와 정체성
이 혼동되고 구분이 모호한 것도 사실이지만 “정체성은 특별한 사물이나
사람을 설명하는 일련의 특징을 말한다. 한편 자아는 사회적 관계들의 복
잡한 메트릭스에서 여러 층위의 정체성들을 통해 사회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된 감정, 생각, 태도를 갖는 물리적․심리적 존재를 뜻한다”(Monroe
2004, 212). 따라서 탈동일시에서 정체성을 벗어난다는 것은 성별, 나이,
국적, 계급, 학력 등의 정체성이라는 ‘잠정적인 안전망’에 호소할 필요가
없으며, 그 안전망을 벗어나서 새롭게 창조해야 할 자아는 ‘일상적으로 윤
리적 실천을 하는 영적 자아’이다(Fernandes 2003). 강조하지만 이는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45
결코 쉬운 실천이 아니다. 실제로 “강제된(귀속적인) 정체성의 형태가 의
문시될 때 그 효과는 인지적 충격일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쇼크이기도 하
다. 이 익숙한 근거를 흔든다는 것은 공포, 분노, 좌절을 불러일으킨다”
(Hennessy 1993, 299). 그럼에도 페르난데스가 잘 지적한 것처럼, 만
약 이러한 영적 자아의 보편성에 기반한 존재와 세계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이해와 탈동일시 자아로의 변혁이 기초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사회변혁의
비전도 단기적이며 한계가 있다.
정리하면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정체성, 타자에 대한 이해․공감, 사
회변화는 동체자비, 공감을 위한 타자와의 동일시의 감정의 수준과 개인의
수준에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사회과학계의 경우 문화이론, 사회
운동, 여성주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류의 이데올로기와 문화에
동질화하려고도, 그에 대해 반사적으로 탈피하려 하지 않는 제3의 저항 양
식으로서 사회적 정체성이 생산하는 경계와 배타를 넘어섬으로써 타자와의
연대와 조화가 가능한 담론이 탈동일시이다. 필자는 감정이입, 동일시 등
으로 나와 타자의 구분이 없는 전일적 자아로의 변형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타자로의 공감’(Monroe 2004)까지 확
대되는 탈동일시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더불어 관계적, 이타적, 상호의존
성에 대한 도덕적 강박이 자신이 귀속된 정체성에 국한됨으로써 사회적․
개인적 수준에서 얼마나 많은 억압과 차별을 양산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
다고 주장한다.
4. 요약과 결론
이 글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어떻게 가능한가, 정체성을 달리
하는 타자의 경험은 공감이 불가능한가 하는 일련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최근 감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공감, 배려, 소통 등의 언술이 부각되
었다. 그런데 그 용어들이 제기된 의도와는 달리 종교적 차원에서 회자
346 사회와 철학 제26집
되거나 립서비스 차원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한편에서는 공감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폄하와 무관심을 양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당위적 주장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주창자의 도덕적 권위를 내세우는 것으로 끝나곤
한다.
필자는 공감의 문제가 규범적으로만 읽히고 부당한 억압과 수난에 처
한 이들에게 공감과 동정하는 고상한 인간애가 드물다는 현실에 주목하
였다. 공감은 자신의 특권에 안도하고 동정으로 둔갑하거나 도덕적 우월
감인 위선 혹은 감상주의에 머물기도 한다. 수난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궤변이나 수난을 가하는 자가 갖고 있다고 여기는 지배력을 동
경하는 경향도 있다. 공감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이해와 관계없다는
무관심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서 나오는 특권에서 비롯된 무자각에 이
르기까지 다양한데, 이 글에서는 이를 관통하고 있는 한 원인으로서, 우
마 나라얀(1988)의 주장에 동의하여 미경험자는 고통과 억압에 대한 감
정적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미경험자는 부당함에
대한 억울함, 가해자의 우매함과 무지(특권 의식과 지배력으로부터 나오
는 무지와 무례) (Graeber 2004, 72-75)에 대한 분노와 같은 감정적
요소들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설명은 자신의 정체성이 타자
에 대한 태도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알려 주는데, 자신의 정체성
에 근거한 이해와 공감 및 도덕적 행동은 일관성을 보인다(Monroe
2004). 그 정체성이 부당함을 겪는 이들 또한 예컨대 ‘나와 같은 사람’이
라는 보편적 인간으로의 이해로 확대될 때 도덕적 행동/이타적 행동이
나오지만(Monroe 2004), 보통 자아를 지탱하는 성별, 인종, 계급, 국
적 등의 사회적 정체성은 배제와 구분을 만듦으로써 이러한 실천을 어렵
게 한다.
공감이 실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윤리적 언술을 사치로
치부하는 현실에 대해 무기력하게 대처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도덕
적, 종교적 수위에서보다는 나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정체성 문
제를 바탕으로 하되 대중적으로 논의되는 감정이입, 역지사지, 동일시가
아닌 탈동일시를 제안하였다.
공감, 정체성,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김미덕) 347
논자에 따라 초점이 다르지만 탈동일시는 소수의 사회그룹의 존재 양식이
자 저항 양식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기존의 지배 담론과 실천에 대해 동
일시하거나 반동일시 하지 않는 주변부 사회그룹의 저항 전략으로 이해된
다. 다시 말해 배제와 구분을 결정하는 정체성을 벗어나거나(Fernandes
2003, Hennessy 1993) 혹은 긍․부정에 대한 평가 없이 자신의 소외
된 정체성을 재창조하면서, 주류로의 동일시나 주류에 대한 반사적 저항
을 넘나들어 협상하는 제3의 존재양식을 뜻한다(Muñoz 1999). 탈동일
시는 알튀세르 연구자이자 언어학자인 페쇠, 문화 이론가 무노즈, 마르크
시스트 여성주의자 헨네시, 정치학자 페르난데스, 철학자 메디나 등이 다
양한 수위에서 주장하였다. 필자는 정체성 정치와 변혁 문제를 고민한
헨네시와 페르난데스의 탈동일시 전략에 깊게 공감하고 이들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두 가지 특징이 대두되는데, 하나는 저항의 근거
가 정체성 자체가 아니라 정체성을 규정하는 역사구조에 대한 분석(헨네
시의 표현으로 비판적 담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특권과 사회적
안전망이 되는 정체성을 탈피하여 새로운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분석을 통해 정체성에 대한 구속감 없이 부정적인 헤게모니를 비판할 수
있다. 미국인이라는 법적 시민권과 미국인 됨을 구분하여 부정적인 미국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다는 페르난데스의 예가 있다. 그리고 새로
운 자아는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정체성에 자아를 국한하지 않는 형태
로, 종교적 개념이라기보다 일상에서 행하는 영적 자아로의 변혁을 위한
(통한) 윤리적 실천을 뜻한다. 특히, 타자에 대한 공감의 과정에서 소수
자로서의 반사적 특권 또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는 사회
정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인데, 대중적인 인식과 달리 이들
또한 자신의 주변부적 상황 때문에 방어적인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 쉽
기 때문이다.
공감을 위해 탈동일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역설과 모순으로 들린다.
사회운동의 수준에서이든 일개인의 수준에서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
정이입, 역지사지 등의 동일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러한 과정은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피억압자가 처한 공
348 사회와 철학 제26집
유하기 어려운 감정의 문제 등을 이유로 공감과 동일시 작업 자체가 결코
쉬운 실천이 아니다. 그렇다고 탈동일시 개념이 공감 자체를 부정하는 것
이 아니고, 반대로 억압과 차별에 대한 구조적 인식과 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위한 한 방법으로서 자신의 사회적 안정망으로서의 정체성을 벗어
나 자아와 외피적 정체성을 분리시키고, 특권과 안전함으로 나타나는 구조
적 억압과 차별에 대한 자신의 공모 여부를 파악하자는 것이다. 소통,
공감, 배려, 자비, 연대 등을 말할 수 있고 활자로도 쓸 수 있지만, 그렇
게 흔하고 수월하게 언급될 수 있는 언술들이 아니다. 자기낭만화나 자기
현시에 빠지지 않고 외피적 정체성을 벗어나는 일상적 실천이 어렵다는 것
을 환기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고민하는 공동체에서 윤리적 언술이 과잉되
면서 실천을 회의하는 무책임이 양산되는 효과를 줄이는 한 요건은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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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Mi-Duk
【Abstract】
I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 the interest in emotion has been
intensified with a critique of the dichotomy between reason and emotion.
Compassion, empathy, love and communication are being suggested as
alternative discourse and thoughts for a better society. In spite of the
widespread acknowledgement of the noble value of those terms, they
have also been seen as divorced from practical application. There are
many reasons of difficulty in practicing compassion. individual personality,
non-recognition of the structural nature of suffering, ignorance, indifference
to others, the essential impossibility of understanding suffering and
the plurality of identities. Drawing on feminist thinker Uma Narayan.
I demonstrate the key reason is that outsiders doesn't share the
subtle emotional responses to violence and oppression inflicted on
marginal social groups.
Based on the realization of how hard we can feel compassion toward
others/underprivileged social groups, I suggest a disidentification strategy
for a way to practice compassion, which is different from empathy, love,
and identification. The concept of disidentification has been suggested
by some scholars such as José Esteban Muñoz, Rosemary Hennessy,
Leela Fernandes, and Josè Media in U.S. academia since mid-1990s.
Disidentification refers to a third way of resistance or survival strategies
the minority subject practices, which is beyond identification and countersidentification
to mainstream ideology․society. Drawing on Hennessy
354 사회와 철학 제26집
and Fernandes, I focus on two levels of disidentification in terms of
compassion. First, it needs a critical discourse to better understand
underprivileged social, historical experiences and positions. Second, we
need to separate a spiritual self and socially given, superficial identities
such as sex, nation, class, and caste. It includes the need to engage
in a continual process of self examination ad self-transformation in
Fernandes’s term. Of course, it is difficult to practice such a process.
However, it is a process that overcome the opposition and privilege
which identity politics assumed, and promote compassionate practice
for long-term and institutional social transformation.
Key words: Compassion, Identity, Disidentification, Critical Discourse,
Spiritual Self
논문접수일: 2013년 9월 16일 논문심사일: 2013년 9월 27일 게재확정일: 2013년 10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