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회와 철학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1)

작성자낙민|작성시간17.01.14|조회수443 목록 댓글 0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


문 성 훈**

 


[논문개요]
오늘날 확산 일로에 있는 폭력 현상을 볼 때 이에 대한 실천적 개입을 위한 이
론적 연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폭력에 관한 지금까지의 이론적 논
의를 살펴보면 이러한 작업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폭력 현상
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즉 최근 폭력 연구자들은 물리적 폭력
뿐만이 아니라 심리적 폭력, 실존적 폭력, 정체성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
등 다양한 폭력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다양한 폭력 현상들을 포괄할 수 있
는 폭력 개념이 무엇이며, 또한 다양한 폭력 개념들은 어떻게 통일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거의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1990년대부터 악셀 호네트
에 의해 정립되기 시작한 ‘인정이론’은 폭력과 관련된 이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
는 적절한 개념 틀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그의 인정이론은 폭력을 개인의 정체성
훼손 현상으로 이해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나타난 다양한 폭력 현상을
개념적으로 포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왜 폭력이 규범적으로 비판될 수 있는지,
그리고 폭력 없는 사회란 어떤 사회를 말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전망 역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첫째, 폭력 연구의
고전으로 알려진 요한 갈퉁의 폭력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둘째, 시대
사적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의 유형이 어떤 것인지를 밝힐 것이
다. 그리고 셋째, 인정이론적으로 재구성된 폭력 개념이 무엇인지를 서술하고, 끝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
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KRF-2008-327-A00163)
** 서울여자대학교 바롬교양대학 현대철학 담당 조교수
64 사회와 철학 제20호

 

으로 이것이 전제하고 있는 폭력 비판의 규범적 토대와 이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폭력 없는 사회에 대한 이념적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주제어: 폭력, 인정이론, 정체성, 폭력 없는 사회

 

1. 들어가는 말
지난 2008년 촛불집회, 그리고 2009년 용산참사에서 첨예하게 부각되
었듯이 오늘날 각종 시위 현장에서는 여전히 폭력이 쟁점이 되고 있다. 시
위의 폭력성이 문제인가, 아니면 진압의 폭력성이 문제인가? 폭력 진압이
폭력 시위를 유발한 것인가, 아니면 폭력 시위가 폭력 진압을 유발한 것인
가? 그런데 시위대의 폭력을 문제 삼든, 아니면 국민을 무시하는 정권 담
당자들의 폭력을 문제 삼든 폭력을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양측 모두 일치한
다. 아마도 이렇게 폭력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양측 모두가 폭력이란 뭔
가 잘못된 것, 다시 말해 불법적이고, 부당하고, 부도덕한 행동이라는 소
박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비단 시위 현장만이 아니라 폭력과 연관해서 현대 사회를 바라
본다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리고 너무나 엄청난 폭력을 경험했고, 또
여전히 그 위험성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세기를 보자.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체제 하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국지전들.
더구나 이 과정 속에서 개발된 대량학살 무기들. 단지 몇몇 사람들이, 혹
은 몇몇 국가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멸
할 수 있는 가공할 폭력적 상황 속에서 살고 있지 않았던가! 이런 점에서
에릭 홉스봄이 우리 시대를 ‘폭력의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난 친 일이
아니다.1)

 

1) 에릭 홉스봄, 폭력의 시대, 2008 민음사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65

 

더구나 20세기가 잉태한 최근의 상황은 어떠한가? 냉전체제가 종식되었
지만 세계평화는 찾아오지 않았고, 많은 제도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폭력
없는 사회는 도래하지 않았다. 거시적으로 볼 때 냉전 종식이후 이른바 정
의의 이름하에 새로운 전쟁이 도발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확산되는
가 하면, 세계화 시대가 도래 했지만 전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는커녕 인종, 종교, 문화적 대립,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폭력적 갈
등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가중되고 있다. 또한 미시적으로 볼 때 신체적
폭력, 성 폭력, 언어 폭력, 가정 폭력, 학교 폭력, 사이버 폭력, 국가 폭
력, 아동 폭력, 여성 폭력, 노인 폭력, 장애인 폭력, 외국인 폭력 등 수많
은 폭력 관련 용어가 난무하듯 오늘날 우리는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
한 사회적 관계에서, 그리고 다양한 대상에게 자행되는 수많은 유형의 폭
력 앞에서 일상적 생활마저 위협받는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 만연된 폭력 현상을 염두에 둔다면 누구도 이에 대
한 이론적 연구나 실천적 개입이 절실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 핵심적 중요성을 갖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일 것이다.
즉 다양한 폭력 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폭력 개념을 정립할 뿐만 아니라,
폭력 현상을 비판할 수 있는 규범적 토대를 밝히고, 끝으로 폭력 없는 대
안적 사회상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에 대답
할 수 있을 때 비록 이론적 차원이지만 폭력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제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도 그 목표를 설정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에 관한 지금까지의 이론적 논의를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폭력 현상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나듯
이 오늘날 폭력을 단지 구타, 감금, 성폭행 등 신체 대한 위해 행위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2) 왜냐하면 욕설, 악플, 타인의 가치나 능력
2) 본 논문을 위해 2009년 서울여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하였
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으로 요약된다.
66 사회와 철학 제20호

 

을 무시하는 발언이나 대우 역시 폭력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
고 시위 진압에서 나타나는 공권력 행사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에 반하는
정책, 국민의 기본권 무시 역시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으로는 본다는
점에서 폭력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강제력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런 점은 이론적 영역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폭력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폭력 현상 역시 단지 물리적 폭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폭력, 실존적 폭력, 정체성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
적 폭력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다양한 폭력 현상
들을 포괄할 수 있는 폭력 개념이 무엇이며, 또한 다양한 폭력 개념들은
어떻게 통일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거의 논의조차 되고 있
지 않다. 이렇게 폭력 개념이 모호해지면 폭력을 비판할 수 있는 규범적
토대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폭력 없는 사회란 어떤 사회를 말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접근 역시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폭력 개념이 모호
한 만큼 비판의 대상이 되는 폭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폭력 없는 사회란
어떤 폭력이 사라진 사회를 말하는지 역시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
에서 최근 폭력 연구에서는 폭력 현상이 단지 신체 파괴행위로 축소될 뿐
만 아니라, 폭력에 대한 비판과 극복 보다는 폭력 행사 과정에 대한 가치
중립적 분석과 서술에 집중하는 탈규범적 폭력 연구라는 새로운 흐름도 등
장하고 있다.3)
․신체에 대한 폭행뿐만 아니라, 무시나 모욕 행위 역시 폭력으로 본다.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 원칙에 대한 부정 역시 폭력으로 본다.
․여성이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폭력은 여성의 능력에 대한 무시와 여성을 성
적 대상으로 삼는 행동이다.
․폭력 경험은 공포감보다 모욕감이나 자존심 훼손을 안겨주고, 폭력 행위자에
대한 울분은 단지 복수심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과 받고 싶은 욕구와도
연결된다.

 

3) 페터 임부슈는 폭력의 원인 규명과 극복 방안에 몰두하는 전통적 폭력 연구와
구별하여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폭력 연구의 혁신적 흐름으로 규정한다. Peter
Imbusch, “Mainstreamer versus Innovateure der Gewaltforschung.
Eine kuriose Debatte”, in: Wihlen Heitmeyer/Hans-Georg Soeffner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67

 

1990년대부터 악셀 호네트에 의해 정립되기 시작한 ‘인정이론’은 폭력과
관련된 이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 틀을 제공한다. 왜냐하
면 그의 인정이론은 폭력을 개인의 정체성 훼손 현상으로 이해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나타난 다양한 폭력 현상을 개념적으로 포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왜 폭력이 규범적으로 비판될 수 있는지, 그리고 폭력
없는 사회란 어떤 사회를 말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전망 역시 제시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첫째, 이론적 차원에서 요한
갈퉁의 고전적 폭력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1). 둘째, 시대사
적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의 유형이 어떤 것인지를 밝
힐 것이다 (2). 그리고 셋째, 인정이론적으로 재구성된 폭력 개념이 무엇
인지를 서술하고 (3), 끝으로 이것이 전제하고 있는 폭력 비판의 규범적
토대와 이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폭력 없는 사회에 대한 이념적 전망을 제
시할 것이다 (4).

 

2. 갈퉁의 폭력 개념과 두 가지 삶의 유형에 대한 폭력
한국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폭력이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
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넓은 뜻으로는 무
기로 억누르는 힘”을 뜻하며,4) 대한민국 형법에서는 타인의 신체에 상해
를 입히는 행위나, 협박하는 행위와 함께 타인을 감금하는 행위, 주거 침
입 행위, 기물 파손 행위도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5) 이러한 두 가지 규
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폭력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을

 

(hg.), Gewalt, Ffm. 2004.
4) 표준국어대사전, www.korean.go.kr (국립국어원)
5) 형법, 260,276, 283, 319, 366조. www.law.go.kr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68 사회와 철학 제20호

 

뿐만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일반
적인 폭력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즉 폭력이란 물리적 수단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힘이며, 폭력 행위란 이를 통해 의도적으로 타인의 신체나 신체의
연장인 소유물을 훼손하는 것, 내지 훼손을 암시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
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폭력 개념이 오늘날 자행되는 다양한 폭력 현상
을 포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리적 폭력 개념은
폭력 현상의 다양성에 비해 협소하기까지 하다. 이런 점에서 폭력 연구에
서는 물리적 폭력 개념을 넘어 폭력 개념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전형적인 예가 요한 갈퉁(Johann Galtung)의 이론적 입장이다.
평화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사회학자 갈퉁은 평화의 반대를
단지 전쟁이 아니라 폭력 없는 상태로 정의함으로써 폭력 연구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람이다. 물론 그의 업적은 무엇보다도 폭력 연구
와 평화 연구를 결합시킨데 있지만 개인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
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양한 폭력 현상을 구별한 것은 폭력 연구에 있어
서 고전이 되고 있다.
갈퉁에 따르면 폭력이란 근본적으로 인간의 실제적 삶이 잠재적으로 가
능한 것보다 협소해지도록 만드는 외적 영향력을 말한다.6) 즉 폭력이란
신체 훼손 행위 이상이며, 잠재적으로 가능한 삶과 현실적 삶 사이에 괴리
를 일으키게 하는 모든 요소가 폭력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괴
리현상이 불가피한 경우 그것은 폭력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잠재적 가능성
과 현실성 사이의 괴리가 극복 가능함에도 외부의 영향 때문에 발생할 때
이는 폭력으로 간주된다.
갈퉁은 인간의 삶을 특히 삶에 필요한 욕구 실현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그가 주목하는 욕구란 생존, 복지, 정체성, 자유의 욕구이다. 우선

 

6) 갈퉁의 폭력 개념에 대한 설명은: Johan Galtung, Strukturelle Gewalt,
Hamburg 1975, 특히 I장 ; ders., Frieden mit friedlichen Mitteln,
Münster 2007, 특히 IV장 1절 참조 (한국어판: 요한 갈퉁,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들녘 2000).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69

 

생존 욕구란 살아남으려는 본능적 욕구 자체를 말하며, 복지 욕구는 생존
을 위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려는
요구, 정체성 욕구는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되려는 욕구, 끝으로 자유의
욕구란 아무런 방해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려는 욕구를 말한다. 따
라서 폭력이란 이런 욕구의 실현 가능성을 제한하거나 방해함으로써 실제
적 욕구 실현을 잠재적으로 가능했던 것 보다 협소하게 만드는 현상들을
말한다. 갈퉁은 이러한 현상에 죽음, 빈곤, 불구, 소외, 억압에서부터 착
취, 그리고 이에 대해 저항하기 위한 의식 형성과 대중 동원을 방해하는
다양한 사회적 메커니즘 등도 포함시키고 있다.
이렇게 갈퉁은 다양한 폭력 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일반적 폭력 개념을
정립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폭력의 유형 역시 구별한다. 갈퉁이 말하
는 폭력의 첫 번째 유형은 개인적 폭력이다. 이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자행되는 폭력으로서 자신의 신체나 도구를 이용하여 때리고, 자르고, 찌
르고, 태우고, 독을 쓰거나, 폭발시키는 식으로 타인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개인적 폭력은 타인
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를 무력
하게 만드는 행위 역시 포함한다. 여기에는 공기, 물, 음식 등과 같은 투
입 요소를 차단하거나, 신체적 활동이나 정신적 활동과 같은 산출 요소를
위축시키거나 방해하는 행위가 있다.
두 번째 유형의 폭력은 구조적 폭력이다. 이는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억
압과 같이 사회 구조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을 말하며, 근본적으로 한 사회
의 차별적 권력 분배로 표현되는 사회적 불평등에 기인한다. 갈퉁에 따르
면 이러한 불평등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서열화하는 직선적 서열질서,
개인적 상호작용의 방식을 하나의 방식으로만 고정시킴으로써 다른 가능성
을 배제하는 상호작용방식, 한 상호작용 망에서 높은 서열에 위치할수록
사회 전체의 상호작용 망에서 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하는 서열과 지
위간의 상호 결합, 다양한 상호작용 망을 동일한 구조로 만드는 상호작용
체계간의 융합, 한 상호 작용 체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다른 체
계에서도 높은 지위를 갖는 지위의 정합성, 한 상호작용 체계에서 가장 높
70 사회와 철학 제20호

 

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한 단계 높은 체계에서 이 상호작용 체계를 대표하
게 되는 상호작용 단계간의 융합 등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유지되며, 이
를 통해 구조적 폭력이 발생한다.
세 번째 유형의 폭력은 문화적 폭력이다. 이는 개인적 혹은 구조적 폭력
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는 문화의 상징적 측면들로서 여기서는 종교, 이데
올로기, 언어, 예술, 경험 및 형식 과학 등이 그 기능을 할 수 있다. 갈퉁
에 따르면 문화적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특정한 대상에게 자행되는 폭력
을 수용 가능한 것으로 만들거나, 이를 은폐함으로써 인식하지 못하게 하
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개인적 폭력이 하나의 사건이라면, 구조적 폭력은
하나의 과정으로, 그리고 문화적 폭력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변화하
는 문화의 근본적 측면이라는 점에서 거의 불변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
다. 즉 이를 지층에 비유한다면 가장 밑바닥에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문화
적 폭력의 흐름이 있고, 이를 토대로 구조적 폭력이라는 반복적 운동의 지
층이 있고, 최상층에는 육안으로도 경험할 수 있는 인간 상호간에 자행되
는 직접적 폭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갈퉁은 폭력을 개인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으로 구별할 뿐
만 아니라, 이들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적 폭력에서부터 구조적 폭력을 거쳐 직접적 폭력으로 나아가는 인과
적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는 우리를 착취나 억압을 정상적이고 자연
스러운 것으로 보거나, 혹은 이를 (특히 착취를) 전혀 지각하지 못하도록
설교하고 교육하고 경고하고 자극하고 둔감하게 만든다. 그 결과 구조화된
강철 새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직접적 폭력과 이 새장의 기능을 그대로 유
지하기 위한 대항 폭력이 발생한다.”7)
갈퉁의 폭력 개념은 물리적 수단을 통한 신체 훼손이라는 일상적 폭력
개념을 넘어서 광범위한 사회 현상을 폭력 개념 하에 포괄함으로서 폭력
연구의 지평을 사회 연구로 확대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의 폭력 유형 구분

 

7) Johan Galtung, Frieden mit friedlichen Mitteln, Münster 2007, 349
쪽.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71

 

은 사실 폭력의 가해 주체를 구별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서 특히 폭력의
결과에 주목한 여타의 폭력 개념과 비교해 볼 때 폭력의 다양성을 일반화
하기에 충분한 것도 아니며, 폭력 현상을 전체 과정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다. 더구나 갈퉁은 폭력 개념을 설정하면
서 특히 이를 삶에 필요한 네 가지 욕구에 대한 훼손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폭력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네 가지 유형의 폭력, 즉 생존 훼손, 복지 훼
손, 정체성 훼손, 자유 훼손과 같은 폭력 유형을 구별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러한 구별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만을 기준으로 폭력의 유형
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에 흡사 가해자의 차이만 존재할 뿐, 어떤 가해자든
공통적으로 네 가지 욕구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폭력을 행사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갈퉁이 가해 주체에 따라 폭력
유형을 구별한 것은 오히려 다양한 폭력 유형에 대한 엄밀한 이해를 저해
하고 있으며, 이는 특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점으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갈퉁이 말한 개인적 폭력은 타인의 실제적 삶을 잠재적으로 가능
한 것보다 협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명 폭력이지만, 이러한 결과를 낳
을 수 있는 직접적 원인은 개인적 폭력이 사실 상 타인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물리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갈퉁은 개인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을
구별하면서 이를 직접적 폭력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즉 폭력의 행위자가
직접 존재하는 경우가 개인적 폭력이고, 구조적 폭력은 폭력을 야기하지만
구체적 행위자는 없는 경우를 말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적 폭력
은 사실 물리적 수단을 통해 의도적으로 타인의 신체나 신체의 연장인 소
유물을 훼손하는 것을 말하며, 물리적 수단을 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협
박 등을 통해 훼손을 암시하는 행위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피해자는 삶의 실현이 방해받거나 위축될 수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물리적 폭력이 직접적으로 복지 욕구 충족을 방해한다든지, 정체
성 욕구나 자유의 욕구 충족을 가능했던 것보다 협소하게 만든다고 주장하
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개인의 복지 수준이나 정체성 형성, 내지 자유의
정도는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퉁이 말하
72 사회와 철학 제20호

 

는 삶의 네 가지 욕구와 관련해서 볼 때 개인적 폭력이 네 가지 욕구 전체
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개인적 폭력은 갈퉁이 말하는 다른
유형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네 가지 삶의 욕구 전체를 저해하지만 단지 그
주체가 개인이라는 점에서 이들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갈퉁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사회적 구조를 일종의 폭력으로
보면서 이것이 개인의 현실적 삶을 협소하게 만들고 삶의 유지에 필수적인
욕구 실현을 저해한다고 이해하지만, 이러한 폭력이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억압을 넘어서 개인의 생명에 위해를 가한다든지 정체성 실현을 훼손한다
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적 착취의 결과인 빈곤이 결국 생존 위협이라는 또
다른 결과를 야기할 수는 있어도 사회적 구조가 직접적으로 생명을 훼손하
는 것은 아니며, 정치적 억압 역시 경제적 착취 구조를 존속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개인의 생명 훼손을 목표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
구나 정체성 실현의 훼손은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억압과는 구별될 수 있
는 문화적 차원의 문제라고 본다면 구조적 폭력이 이러한 훼손 현상을 모
두 포괄할 수는 없다. 또한 갈퉁의 구별대로 개인적 폭력을 직접적 폭력으
로, 구조적 폭력을 간접적 폭력으로 이해한다면 사실 개인적 폭력이란 신
체에 대한 직접적 훼손, 내지 직접적 훼손에 대한 암시를 통해 삶의 실현
을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것이고, 구조적 폭력이란 삶의 조건을 열악하게
만들면서 삶의 실현을 간접적으로 훼손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셋째, 갈퉁은 문화적 폭력을 개인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상징적 자원으로 규정함으로서 문화적 폭력은 삶의 실현을 직접적으로 훼
손하든, 아니면 간접적으로 훼손하든 이와는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서술하
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사실 갈퉁이 말하는 폭력이란 개인적 폭력과 구조
적 폭력을 말할 뿐이며, 이것이 전제하는 삶이란 생명 유지와 동일하다. 즉
갈퉁에게는 생물학적 생명의 존속이 삶으로 이해되고 있고, 폭력이란 이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훼손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갈퉁이
말하는 정체성 욕구와 이를 실현하려는 자유의 욕구를 전제한다면 분명 이
를 훼손하는 폭력이 있을 수 있고, 이것이 갈퉁이 말하는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억압과 구별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문화를 매개로 한 폭력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73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화적 폭력은 단지 폭력의 정당화 메커니즘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개인의 삶의 실현을 훼손하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된 삶이란 생물학적 생명의 존속, 즉 자기보존으로서
의 삶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체성이란 특정한 가치체계를 전제한 인간의
자기의식 속에서 형성될 수 있으며, 이는 바로 문화라는 상징적 차원과 연
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인간이 자신의 삶을 단순한 생명
의 존속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 무언가 가치나 의미가 있는 것
으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 왜냐하면 개인적 정체성이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면,
사실 이는 인간이 본능적 생존의 지평을 넘어설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
라서 갈퉁이 삶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규정한 네 가지 욕구는 서로
다른 삶의 이해를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생존과 복지의 욕구가 전제
하는 인간의 삶이 생명의 존속이라면, 정체성과 자유의 욕구가 전제하는
인간의 삶은 자기의식이 매개된 자기실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훼
손이 아니라, 정체성 실현의 훼손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물리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과 구별되는 또 다른 유형의 폭력이어야 한다.
인간 존재 사이에 잠재된 근원적 폭력을 말하는 실존주의적 입장은 정
체성과 관련된 폭력을 개념화할 수 있게 한다. 즉 사르트르에 따르면 존재
는 의식의 유무에 따라 즉자 존재와 대자 존재로 나눌 수 있으며, 사물은
전자에, 인간은 후자에 속한다.8) 그리고 의식적 존재인 인간은 그 주체에
따라 나와 타자로 구별되며, 이 둘 사이에 근원적 폭력이 잠재되어 있다.
왜냐하면 의식이란 바로 무엇에 대한 의식이며, 이 무엇에 대해 정립적 태
도를 취함으로써 의식의 대상이 되는 사물뿐만 아니라, 타인 역시 객체화
시키기 때문이다. 즉 나는 나의 의식의 주체로서 내 주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이제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된다. 따라서 나

 

8) 이하 사르트르의 실존적 폭력 개념에 대한 설명은, 변광배,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살림 2005, 제 2부; 메를로 퐁티, 휴머니즘과 폭력, 문
학과 지성사 2004, 2부 1장 참조.
74 사회와 철학 제20호

 

와 또 하나의 의식 주체인 타인과의 만남은 바로 이렇게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형성하는 의미 구성 주체간의 만남이다. 그러나 내가 이 만남을 통
해 타인이 나를 의식하고 있음을 경험할 때, 이 경험은 내가 더 이상 세계
의 의미 구성 주체가 아니라, 타인의 의미 구성 속의 한 대상으로 객체화
되는 경험이며, 나의 세계가 해체되고 내가 타인의 세계의 일부로 전락해
버리는 경험이다. 따라서 각각의 의식 주체가 세계의 의미 구성 주체로 남
기 위해서는 타인을 자신의 세계의 일부로 묶어두어야 하며, 이런 점에서
인간 상호간에는 근원적으로 폭력이 발생한다. 즉 인간은 의미 구성 주체
로서 자신이 구성한 타인의 정체성을 절대화함으로써 타인의 자기의식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은 타인의 의미 구성 대상
으로 전락하게 되고, 자신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체성도 붕
괴함으로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존적 폭력은 사실 불가피한 것이다. 인간이 의식의 주체로 존
재하는 한 사물뿐만 아니라, 타인 역시 의미구성의 대상이며, 이 때문에
타인의 자기의식이 부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 형이상적 사
고 지평에서 의미 구성 주체라는 초월적 주체관은 유지되기 어렵다. 이러
한 근대적 주체관은 이미 개인에 앞서 존재하는 문화적 의미체계를 통해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9) 그러나 의미 구성 주체라는 실존주의적 주체
관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해도 인간 존재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자
기의식 훼손이라는 폭력 개념 역시 무의미해 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
인의 의미구성 행위의 조건이 되는 문화적 의미체계를 전제한다면 이제 문
화라는 것이 자기의식 훼손의 가능 조건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문제되는 문화적 의미체계의 핵심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하면서 정상은 사회에 포함시키고, 비
정상은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상징적 질서를 말한다.10) 즉 모든 사회는 누

 

9) 악셀 호네트, 탈중심적 자율성, 현대적 주체비판의 도덕철학적 귀결 , 정의의
타자, 나남 2010.
10) 게르투르트 눈너 빈클러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입장에 의거하여 이를 문화적
폭력으로 규정한다. Gertrud Nunner-Winkler, “Überlegungen zum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75

 

구를 정상적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상징적 질서를 전제하
며, 이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분류할 뿐만 아니라, 개인을 사
회에서 배제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문화적 폭력이 행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서이다. 물론 이러한 폭력은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억압으로 환원될 수 없다. 비록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 경제
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을 수는 있지만 사회적 배제 자체는
착취나 억압을 야기하는 정치 경제 질서와 구별되는 문화적 질서의 산물이
며, 이는 착취와 억압으로부터도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
시 말해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 즉 한 사회의 정상적 구성원으로 인정되
지 못한 사람은 사회 속에서 아무런 지위를 갖지 못하며, 따라서 사회적으
로 볼 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분류하고, 배제하는 문화적 폭력은 그 기준이 되는 상징적 질서가 일종의
사회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실존적 폭력과 구별되지만,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절대화함으로써 타인의 자기의식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유형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아마르티아 센이 말하는 정체성과 연관된 폭력 역시 개인을 분류하는
상징적 질서에 따른 것이다.11) 특히 그가 주목하는 것은 개인이 갖고 있
는 다양한 차원의 정체성을 무시한 채 이를 단 하나의 정체성에 귀속시키
는 지배적 분류 체계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인종, 민족, 국적, 성별, 학
력, 직업, 종교, 정치관, 성적 취향 등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으
며, 이에 상응하여 다양한 집단에 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 개인의
정체성을 그가 가지고 있는 종교라는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단일화시키고,
이 사람을 오직 이에 상응한 집단에 속한 것으로 규정한다면, 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여타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자기의식을
훼손한 것이다. 또한 개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비정상을 사회에

 


Gewaltbegriff”, in: Wilhelm Heitmeyer/Hans-Georg Soeffner (hg.),
Gewalt, Ffm. 2004
11) 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바이북스 2009, 특히 1장 참조.
76 사회와 철학 제20호

 

서 배제한다면, 이 역시 사실은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 중 어
느 하나를 절대화시키고, 이를 통해 그의 정체성을 단일화시킬 때 가능하
다. 예를 들어 반유태주의는 인간을 민족이라는 단일 정체성에 귀속시킨
것이며, 인종차별주의는 인간을 인종이라는 단일 정체성에, 성적 소수자에
대한 비정상 취급은 이들을 성적 취향이라는 단일 정체성에 귀속시키기 때
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어느 한 개인이 단지 유태인일 뿐만 아니
라 인간이라는 것, 어느 한 개인이 흑인일 뿐만 아니라 같은 나라 국민일
수 있고, 어느 한 개인이 동성애자일 뿐만 아니라 나의 친구요 동료라는
정체성이 부정된다.
이렇듯 단일 정체성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그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부정일뿐만 아니라 타인을 나의 대립적 존재로 타자
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즉 나는 분명 타인과 다르지만, 또한 같기도
하다. 나는 여성과 다른 남성이지만, 그녀와 동일한 한국 국민일 수 있으
며, 나는 그녀와 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만, 그녀와 동일한 인간이다. 그러
나 개인이 단일 정체성에 따라 규정된다면 내가 남성인 한 여성은 나와 같
은 존재일 수 없다. 여성은 영원한 타자이다. 이렇게 동일자와 타자가 규
정되고 이것이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방식으로 분류된다면 이제 타자는 나
에게 적대적 존재가 된다. 즉 내가 정상이라면 그는 비정상이고, 내가 권
리 향유 주체가 된다면, 그는 권리 차별의 대상이 되고, 내가 사회 내에
지위를 갖는다면, 그는 사회 내에서 아무런 지위도 갖지 말아야 한다. 왜
냐하면 타자는 동일자에 대한 반대이며, 부정이란 점에서 동일자가 존속하
기 위해서는 타자가 부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폭력, 즉 타자의 자기의식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현상을 물리적 폭력, 내지 구조적 폭력과 마찬가지로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는 폭력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파악할
때 분명해 질 것이다. 첫 번째 단계는 일종의 심리적 상처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즉 물리적 폭력을 당한 사람이 신체적 고통을 경험하고, 구조적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생존의 어려움을 겪는다면 정체성 부정을 경험한 사
람은 심리적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적 폭력 역시 타인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77

 

에 대한 훼손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이른바 심리적 폭력에 비견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심리적 폭력이 협박을 통한 강압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실 상 물리적 강제력 행사를 암시하면서 특정 행위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물리적 폭력에 속하기 때
문이다. 심리적 폭력 개념이란 눈너-빈클러가 학교 폭력에 관한 연구에 의
거하여 설명하고 있듯이 비 물리적 수단을 통해 타인에게 심리적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말하며, 이는 특히 모욕이나 욕, 또는 불쾌감을 주는 공격
적 언어나 몸짓 등을 통해 야기되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힘의 불균형 상태
에 있을 때 더욱 강화된다.12) 이러한 심리적 폭력 개념을 문화적 폭력 현
상에 적용한다면 이는 개인의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심
리적 상처를 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심리적 상처가 개인의 삶에 야기하는 결과는 무
엇일까? 분명 이는 신체가 훼손되거나 불구가 되고, 내지 삶의 조건이 현
저하게 열악해짐으로써 자기 보존적 삶이 훼손되거나 불가능해 지는 것과
는 다른 것이다. 물론 문화적 폭력을 겪는 사람들이 열악한 생존 조건에
놓이게 됨으로써 생존의 위협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물리적 폭력의 대상
의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심리적 상처란 개인의 자기의식 훼손 때문에 야
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상처로 인한 것은 자기의식을 삶 속에서 현실화
시키는 것, 즉 자아 실현적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신적 죽음, 내지 정
신적 불구 상태일 것이다. 예를 들어 타인을 인종적 이유로 열등한 존재로
평가하거나 그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피해자가 열등감이나 자기비하 등 부
정적 자기의식을 갖게 되고 따라서 적극적으로 자아실현에 나설 수 없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12) Gertrud Nunner-Winkler, “Überlegungen zum Gewaltbegriff”, in:
Wilhelm Heitmeyer/Hans-Georg Soeffner (hg.), Gewalt, Ffm. 2004
78 사회와 철학 제20호

 

3. 폭력과 현대 사회
갈퉁이 구별한 세 가지 유형의 폭력, 즉 개인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이렇게 신체, 생존조건, 자기의식에 대한 훼손 현상으로 재해석한다면 폭
력이란 단지 삶의 훼손 현상이 아니라, 두 가지 유형의 서로 다른 삶의 훼
손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기 보존적 삶과 자기 실현적 삶에 대한
훼손이 그것이다. 따라서 신체와 생존조건과 관련된 폭력은 전자에 해당하
며, 개인의 자기의식과 관련된 폭력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과연 이
두 가지 훼손 현상은 서로 독립적인 것일까? 따라서 폭력 개념은 두 가지
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리고 이 두 가지 개념 하에서 신체에
대한 폭력, 생존조건에 대한 폭력, 그리고 자기의식에 대한 폭력이 각기
병렬적으로 유형화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세 가지 유형의 폭력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될 수 있다면 사실 두 가지 유형의 삶에 대한 폭력을 각각
독립적 형태의 폭력으로 개념화할 필요는 없다.
눈너-빈클러에 따르면 심리적 폭력과 물리적 폭력 사이의 결정적 차이
는 행위의 상호성에 있다.13) 즉 물리적 폭력이란 가해자의 일방적 행위를
통해 일어나지만, 심리적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해자의 공격적 언어나 몸짓이 피해자에게
폭력적으로 경험되지 않는다면 심리적 폭력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록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 하더라도, 피
해자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친밀성을 표현한 것을 모
욕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적 폭력이 상대방의 반응 여하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성을 전제하고, 물리적 폭력은 가해자의 행위만으로
도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왜냐하면 물리적 폭력
역시 상호성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

 

13) Gertrud Nunner-Winkler, “Überlegungen zum Gewaltbegriff”, in:
Wilhelm Heitmeyer/Hans-Georg Soeffner (hg.), Gewalt, Ffm. 2004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79

 

려면 우선 물리적 폭력이 야기한 결과, 즉 피해자의 경험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밝혀져야 한다.
조프스키에 따르면 물리적 폭력을 당한 사람은 신체적 고통을 느끼며,
이것이 폭력 피해자의 핵심 경험이다.14) 그리고 이 고통의 경험은 여타의
감각적 경험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감각적 경험이란 항상 개념
적으로 매개된 것이지만 신체적 고통은 아무런 개념적 매개 없이도 가능한
직접적이고 순수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즉 신체적 고통은 배고픔이나 공포
처럼 무엇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판단과 해석이 필요 없으
며, 따라서 신체적 고통은 감각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고통이 신체적 감각 그 자체일 뿐일까? 만약 그렇다면 물
리적 폭력에 의한 신체적 고통이나 사고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나 사실 차
이가 없으며, 타인에 의해 가해진 물리적 폭력과 자해 행위도 구별될 수
없으며, 폭력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폭력을 저질렀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구
별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게 된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볼 때 신체적 고통을
주는 것은 모두 다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 피해자의 경험에서 이
런 구별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자신의 신체적 고통에 대한 해석을
전제하며, 따라서 물리적 폭력 역시 가해자의 일방적 행위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의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폭력 피해자가 겪는 고통이 과연 신체적 고통뿐이겠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폭력 경험이 개념적으로 매개된 것이요, 해석된 것이라는 점은 분
명하다. 폭력 행위란 가해자와 피해자를 전제하며 이는 광범위한 사회적
상호 작용 망 속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폭력은 사회적 상호작
용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성원 간의 상호 기대와 충족이라는 일반적 질서
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매개된 자기 경험 역시 왜곡시킨다. 즉
폭력은 단지 신체적 고통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는 자신의
신체가 아무런 보호 없이 타인의 의지에 내맡겨져 버린다는 체험이며, 이
를 통해 해당 당사자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획득한 자기 신체의 불가침성

 

14) 볼프강 조르스키, 폭력 사회, 푸른숲 2010. 111쪽.
80 사회와 철학 제20호

 

에 의식, 그리고 이에 대한 자주적 사용 권한에 대한 의식이 부정됨을 경
험할 뿐만 아니라, 이를 존중받고자 하는 일반적 기대 역시 부정됨을 경험
한다는 것이다.15) 이렇게 물리적 폭력 경험과 심리적 폭력 경험이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이란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통
적으로 자기의식과 이를 존중받고자 하는 일반적 기대의 훼손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사실 이 두 가지 폭력은 서로 다른 삶에 대한 표상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식이 매개된 자아 실현적 삶이라는 공통된 삶
의 표상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활 조건과 관련된 폭력, 즉 갈퉁이 말하는 구조적 폭
력도 과연 자기실현적 삶과 무관한 것일까? 구조적 폭력 역시 심리적 폭
력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이 역시 자아 실현적 삶에 대한 훼손 현상의
하나로 포섭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착
취나 정치적 억압을 통해 당사자들이 겪는 경험의 핵심이 과연 무엇인가를
밝힘으로써 대답될 수 있다. 즉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억압은 단지 생존을
위협할 만큼 삶의 조건이 열악하게 되는 경험일까? 아니면 여기에도 심리
적 상처가 개입되는 것일까? 사실 여기서도 자기의식의 훼손을 이야기하
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분명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억압이
삶의 조건을 열악하게 만들고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에
대한 사회적 저항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저항 주체의 자기의식과 연
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에 대한 노동
자들의 투쟁에서 그 동기가 되는 것은 노동계급의 형성에 대한 E. P. 톰
슨의 기념비적 연구에서도 드러나듯이 단지 열악한 노동조건이 아니라, 이
들이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자기의식의 훼손 경험이다. 이는 한국 노동운
동의 역사에 대한 구해근의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16) 즉 노동

 


15)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동녘 1996. 조프스키 역시 절망, 자신감의 파괴
등을 폭력 경험의 후유증으로 들고 있지만 이는 신체적 고통이 야기한 결과이
지, 폭력 경험과 결합된 자기의식의 훼손이 낳은 결과는 아니다. 볼프강 조르
스키, 폭력 사회, 푸른숲 2010, 91-116쪽.
16) 구해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작과 비평사 2002.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81

 

자들이 투쟁에 나서게 된 것은 이들에게 울분과 한을 갖게 한 내적 경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는 전태일의 외
침처럼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경험한 것은 자신들도 인간이
라는, 더 나아가 자신들도 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주체라는 소박한 자기의
식이 철저히 훼손되고 있다는 경험이며, 이는 사실 심리적 죽음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절박한 것이었다.17)
이렇게 생존 조건을 훼손하는 폭력 현상 역시 개인의 자기의식 훼손과
관련이 있다면 신체에 대한 폭력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단지 자기 보존적
삶이 아니라, 자기의식이 매개된 자아 실현적 삶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사실로부터 다음과 같은 귀결점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즉 갈퉁이 지적하듯이 폭력이 개인의 실제적 삶을 가능한 것보다
협소하게 만드는 외적 강제라면, 여기서 전제된 삶이란 단지 생명 존속이
아니라, 자기의식이 매개된 자아실현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외적 강제가 신체를 훼손하거나 생존 조건을 열악하게 만들거나, 자
기의식을 훼손한다 하더라도 이는 각각 특정한 자기의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폭력이란 타인의 자기의식을 훼손하는 외적 강
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결국 개인의 자아실현이 방해받게 된다.
그런데 왜 폭력이 일상적으로는 사전적 규정에서도 나타나듯이 신체를
훼손하는 물리적 폭력으로 이해되고 있을까? 폭력에 대한 이러한 협소한
규정이 확산되는 사회적 원인이 있는 것일까? 소렐이 지적하고 있듯이 현
대 산업사회 등장 이후 일어난 범죄 의식의 변화는 이런 질문에 대해 시사
하는 바가 크다.18) 소렐에 따르면 오늘날 금융 손실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는 쉽게 회복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신체
적 훼손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지
능범죄를 흉악범죄보다 훨씬 덜 위험한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17) 이에 대해서는: 문성훈, 노동운동의 이념적 자기반성을 위하여-1987년 노동
자 대투쟁은 인정투쟁이다! , 시대와 철학, 16권 3호 (2005 가을).
18) 조르주 소렐, 폭력에 대한 성찰, 나남 2007. 특히 제6장.
82 사회와 철학 제20호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금융사기는 사형 선고를 받을 만큼 중범죄에 해당하
는 사건이었음에도 오늘날 우리는 금융사기의 제왕들이 계속 유쾌한 삶을
즐기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
서는 지능범죄에 대해 놀랄 만큼 관용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서 오늘날에는 지능 범죄보다는 신체를 훼손하는 폭력이 흉악범으로 취급
되고 있으며, 모든 법전들은 폭력에 대한 대비책을 담고 있고, 폭력을 누
그러뜨리려는 목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폭력 행위는 거의 본능
적으로 야만적 행위로 간주된다.
하지만 소렐이 농민들의 습속을 연구한 폴 뷔로에 의거하여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산업사회 이전에는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농민들이 단검을 차
고 다녔으며, 이들 간의 다툼으로 칼부림이 일어나더라도 흔히 증거부족으
로 마무리 되곤 했다. 이들은 비록 폭력적이긴 했지만 정직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이들 사이에 일어난 칼부림은 보다 문명화되었다고
알려진 사회의 타락보다 더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현대
산업사회 이전까지만 해도 사적 복수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루어졌으며,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비록 잔혹한 폭력이 난무했지만 사람들은 오
늘날의 비속한 이기주의에 따라 거짓과 위선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정직,
성실, 정의를 강조하는 습속을 지니며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물리적 폭력을 야만으로 규정하고 중범죄로 다루는 것은
현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가 특
히 물리적 폭력에 민감하고 이를 금지시키는데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노
력을 경주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무엇보다도 현대 국가에
서 첨예화된 폭력 독점으로 설명될 수 있다.19)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국가는 국민들이 자연 상태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모든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며, 또한 국
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사용하는 폭력은 정당성을 갖는다. 사
실 국가가 폭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사람들이 국가를 두려워하지도

 

19) 이하의 설명은: 공진성, 폭력, 책세상 2009년, 특히 제2장 참조.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83

 


않으며, 국가에 복종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지 않음
으로써 국가 이외의 존재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면 나 역
시 폭력을 포기하고 국가에 복종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국가는 근본적으
로 사적 폭력, 내지 정당성 없는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이것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두 가지 유형의 폭력이다. 즉 내부의 사적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경찰력과 외부의 부당한 폭력을 방지하지 위한 상비
군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폭력을 물리적 폭력으로 보는 관점이 일상
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의 정당성이 바로 인간의
생명에 가해지는 폭력을 방지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
에서 물리적 폭력이 다 폭력인 것은 아니다. 국가가 행사하는 물리적 폭력
은 권력이 되며, 사적 폭력, 내지 정당성 없는 폭력만이 폭력이 되기 때문
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폭력은 범법행위로 축소되며, 폭력을 통
해 훼손되는 것은 사실상 개인의 생명이 아니라, 현존하는 법적 질서이
다.20) 따라서 현대 국가에서 국가의 정당성과 법적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는 폭력이 바로 물리적 폭력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개인의 자기
보존을 위한 폭력의 포기는 국가의 자기보존을 위한 폭력의 독점으로 변형
된다.
이런 점에서 신체를 훼손하는 물리적 폭력은 사실 현대적 유형의 폭력
은 아니다. 물리적 폭력은 항상 존재했지만 현대 국가의 폭력 독점으로 인
해 현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물리적 폭력에 민감해졌을 뿐이다. 이에
반해 자기의식의 훼손을 통해 자아 실현적 삶에 가해지는 폭력은 현대 사
회 자체에 그 확대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호네트가 지적하고 있듯이 청
년 헤겔에 근원을 두고 있는 인간학적 가정에 따르면 인간 상호 간에는 서
로에게 심리적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21) 왜냐하면

 

20) Uta Müller-Koch, “Gewalt und Körperlichkeit-Eine philosophische
Perspektive”, in: Julia Dietrich/Uta Müller-Koch (hg.) Ethik und
Ästhetik der Gewalt, Paderborn 2006
21) 악셀 호네트,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사이에서-인정 도덕에 대한 스케치 ,
84 사회와 철학 제20호

 

인간의 자아정체성 형성은 타인의 긍정적 태도나 반응을 통해 형성된 실천
적 자기의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기대하지만, 이것이 충족되지 못할 때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긍정적 관계를 갖기 어려워진
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 사이에는 항상 실천적 자기의식이 훼손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렇게 일반적 인간관계를 전제한 인간학적 가정을 넘어서 현대 사회
등장과 함께 형성된 인간관계의 기본적 토대에 주목한다면 인간 상호간에
내재되어 있는 상호 훼손 가능성이 특히 현대적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
다. 찰스 테일러가 설명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 사회이다.22)
왜냐하면 인간은 항상 존재했지만 인간이 개인으로 존재하게 된 것은 현대
에 이르러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상하 차등적
인 신분질서의 붕괴에 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신분질서
내에서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나 역할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신분질서가 붕괴되었다는 것은 이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사
회적 질서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은 그
개인만의 본래적 특성을 통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개인의 정체성은 이미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개인의 자아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 부정될 수 있
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엄밀하게 말하면 개인적 정체성이란 사회적 상호작용 망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제 개인의 정체성은 항상 인정의 문제
를 동반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정체성 훼손 현상의
기본적 토대이다. 결국 전통사회에서는 정체성이나 인정이 문제될 필요도
없이 인간의 정체성은 이미 사회적으로 결정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 개인

 

정의의 타자, 나남 2010
22) 이하의 설명은: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 사회, 이학사 2001, 제5장 참
조.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85

 


적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인정될 수도 부정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개인은 항
상 인정의 좌절로 인한 심리적 상처의 위험성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폭력에 대한 갈퉁의 고전적 연구에서 도출할 수 있는 생명, 삶
의 조건, 자기의식에 대한 훼손 현상을 폭력 현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를
자기 보존적 삶과 자아 실현적 삶에 대한 훼손으로 이원화시키지 않고, 이
른바 인간 상호간의 훼손 가능성이라는 현대적 조건 하에서 개념화하는 것
이 가능할까?

 

4. 인정이론적 폭력 개념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은 인간 상호간에 내재되어 있는 훼손 가능성에
근거하여 타인에 대한 인정을 인간 상호간의 도덕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공적 자아실현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개인의
정체성 형성은 타인의 반응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항상 자아
실현적 삶의 훼손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
한 타인의 부정적 반응을 경험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식을
갖기 쉬우며, 이러한 조건 하에서는 성공적 자아실현이 불가능해지기 때문
이다. 이에 반해 개인은 타인의 긍정적 반응을 경험할 때 자기 자신에 대
해서도 긍정적 의식을 가질 수 있으며, 타인의 보장과 자신감 하에 성공적
자아실현에 이를 수 있다. 도덕이 개인의 삶을 타인의 훼손으로부터 보호
하기 위한 보호 장치로서의 기능을 갖는다면 이제 타인에 대한 인정은 인
간 상호간의 도덕적 의무이자 개인의 성공적 자아실현 조건이 된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의식은 물론 성공적 자아실현, 그리고 궁
극적으로는 행복한 삶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적 관점은 비록 호네트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폭력 현상
을 개인의 자기의식, 내지 자아정체성 훼손 현상으로 이해하고, 다양한 정
체성 차원에 따라 폭력 유형을 구별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을 제공한다. 즉
86 사회와 철학 제20호

 

인간이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자신은 누구이며, 누구이어야 하고,
또한 누구이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이러한 자아정체성을 실현하려는 존재라면, 이제 폭력이
란 개인의 정체성을 훼손함으로써 성공적 자아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신체에 대한 물리적 폭
행 역시 이러한 폭력 개념에 포섭될 수 있는 이유는, 물리적 폭행이 타인
의 신체적 정체성을 훼손함으로써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생존
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는데 저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
개념이 물리적 폭력 개념과 동일시 될 수 없는 이유는 개인의 정체성이 단
지 신체적 정체성으로 축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정체성
은 보다 다양한 차원을 지니며, 이에 상응하여 폭력 현상 역시 보다 다양
한 영역에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개인의 정체성 차원은 개념적 종차 방법에 따라 세 가지 차원으로
구별된다. 즉 개인은 신체적 존재로서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신체적 존재
로서의 자아정체성은 개인의 정체성 중 가장 기본적 차원에 해당한다. 그
러나 개인은 또한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인간이며, 따라서 인간만이 갖
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개인은 사리판단 능력이 있는 이성적 존재라는
점에서 여타의 생명체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은 바로 인간이라
는 점에서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이성적 존재로서의 자아정체성
차원을 갖는다. 그리고 개인은 이성적 존재라는 보편성 때문에 다른 개인
과 구별되지 않지만, 개성을 지닌 특수한 존재라는 점에서 다른 개인과 구
별된다. 따라서 개성적 존재로서의 자아정체성은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
는 셋 번째 차원이 된다. 이렇게 개인의 정체성을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
한다면, 이에 대한 훼손 현상인 폭력 현상 역시 다양화될 수 있으며, 역으
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폭력 현상을 정체성 훼손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포괄해 낼 수 있다.23)

 

23) 이하의 설명은: 문성훈, 인정윤리의 개념적 구조 , 현대철학연구소 편, 이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87

 

첫째, 신체적 정체성에 대한 훼손 행위로는 구타, 감금, 고문, 살인, 성
폭력 등 타인의 신체를 장악함으로써 그가 자유롭게 자신의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송두리 채 빼앗는 행위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정
체성 훼손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이를 통해 타인과의 정서적 유대
관계를 통해 형성된 긍정적 자기의식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즉 개인은 타
인의 정서적 배려나 보살핌, 혹은 사랑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신체를 자주
적으로 움직이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형성하게 되
며, 이를 토대로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신체에 대한 폭
력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지에 자신이
불가항력적으로 내맡겨짐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신체적 자주성을 상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세계와의 관계
역시 상실하게 된다.
둘째, 이성적 정체성에 대한 훼손 행위로는 공동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성적 존재로서의 지위를 부정하거나 이성적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
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으며, 이는 특히 모든 사람이 향유하고 있
는 보편적 권리를 유보, 박탈하거나, 그 실질적 실현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해당 개인은 이성적 존재라는 타인과의 동
등성을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정체성 훼손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이를 통해 해당 개인은 자신이 타인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제도적 질서에 참여하고 있다는 믿음, 더 나아가 자신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사리판단 능력을 갖고 있다는 자기 존중의식이 훼
손되기 때문이다.
셋째, 개성적 정체성에 대한 훼손 행위로는 타인의 특성이나 취향, 생활
방식 등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이를 열등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을 들 수
있으며, 이는 특히 특정인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배제하는
데서 나타난다. 즉 어떤 사람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동성연애자나 성
전환자라는 이유로, 그리고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를 이유로 공동체에서

 


성의 다양한 목소리, 철학과 현실사 2009 참조.
88 사회와 철학 제20호

 


배제하거나 주변화시키는 행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정체성
훼손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이를 통해 해당 개인은 자기 자신 역
시 공동체 내에서 가치 있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자기의식을 훼손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폭력 개념을 개인의 긍정적 자기의식을 파괴함으로써 정체성 실
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훼손현상으로 규정한다면, 단지 물리적 폭력뿐만 아
니라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폭력 개념 하에 포괄할 수
있고, 갈퉁의 구별한 세 가지 폭력 유형 역시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갈퉁이 생명에 대한 직접적 훼손 행위로 규정한 개인적 폭력은 신
체적 정체성 훼손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물리적 폭력이란 분명 신체에 위
해를 가하면서 신체 현상에 장애를 일으키고, 이를 통해 생존에 위해를 가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신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구성
원 간의 기대와 충족이라는 일반적 상호작용 망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인간관계에 내재해 있는 정체성 훼손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심리적 상처와 고통을 수반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체적 정체
성에 대한 훼손이란 규정은 물리적 폭력을 단지 신체적 고통으로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심리적 고통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적 대안이 된다.
둘째, 갈퉁이 말한 사회적 불평등을 통해 야기되는 구조적 폭력은 이성
적 정체성 훼손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구조적 폭력은 경제적 착취나 정치
적 억압을 통해 개인의 생존 조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이런 현상
은 사실 상 제도적 질서 내에서 사회구성원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권리
의 훼손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권리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권리는 자유권적 기본권, 참정권적 기
본권, 그리고 사회 복지권으로 확대되었으며, 이는 한 개인이 자신의 합리
적 판단능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형성할 뿐만 아
니라, 동시에 자신도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자기의식을 갖게 한
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를 훼손한다는 것은 단지 생존 조건을 열악하게 하
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개인의 긍정적 자기의식을 파괴한다. 이런 점
에서 이성적 정체성 훼손이라는 규정은 구조적 폭력 경험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89

 

자기 의식적 계기를 포착할 수 있는 개념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갈퉁이 말하는 문화적 폭력은 개성적 정체성 훼손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갈퉁은 문화적 폭력을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 자체가 아니라,
개인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상징적 차원으로만 보고 있
지만 개인의 삶을 생명 보존이 이니라, 자아실현으로 이해한다면 사실 문
화적 상징 질서 역시 이를 훼손하는 폭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현존하
는 문화적 상징질서가 특정한 인간상을 절대화한다면 이와 다른 정체성을
소유한 사람들은 단지 생존 위협이나 사회적 불평등뿐만이 아니라, 사회
자체에서 배제되는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배제가 생존
위협이나 생존 조건의 열악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여기에 내재된 자기의
식 훼손 현상에 주목한다면 이는 다른 유형의 폭력이다. 즉 개인은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개성이 공동체 내에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
는 긍정적 자기의식이 파괴되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성적
정체성 훼손이라는 규정은 갈퉁이 말하는 구조적 폭력의 개념적 한계를 극
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5. 폭력 비판의 규범적 토대와 폭력 없는 사회
이렇게 폭력 개념을 인정이론적으로 재구성한다면 이는 갈퉁의 고전적
폭력 개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현대적 조건에서
토대를 두고 있는 특징적 폭력 현상을 개념적으로 포착하는데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인정이론적 폭력 개념이 현대 사회에 만연된 폭
력 현상을 연구하는데 적절한 개념 틀이 되려면 단지 개념적 차원을 넘어
서 폭력 현상을 비판할 수 있는 규범적 척도뿐만 아니라. 폭력 없는 대안
적 사회에 대한 이론적 전망 역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
하다면 사실 인정이론적 폭력 개념은 아무런 실천적 의미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정이론적 폭력 개념이 전제하는 폭력 비판의 규범적
90 사회와 철학 제20호

 

토대는 무엇이고, 이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 즉 비폭력 사회
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폭력에 대한 비판이 전제하고 있는 규범적 척도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연권적 정당화이다. 즉 인간
이 천부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사용하는 폭력은 자연
적 권리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관점은 비록 정당방위라는 형태로 존속
하고 있지만 사적 폭력이 금지되고 국가에 의한 폭력 독점이 첨예화된 현
대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24) 둘째, 국가에 의한 폭력 독점을 전제한다
면 폭력은 정당한 폭력과 정당성 없는 폭력으로 구별되며, 그 기준은 바로
합법성이다. 즉 현존하는 법적 질서에 합당한 폭력은 정당성을 갖지만 그
렇지 못한 것은 법적 제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사적 폭력은 사실 상 불법적인 것이며, 국가만이 폭력
을, 그것도 정당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25)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현존
하는 법적 질서가 부당한 경우, 따라서 이에 근거하여 행사되는 국가 폭력
역시 부당한 경우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아무런 규범적 토대도 제공할 수
없다. 셋째, 현존하는 법적 질서를 넘어서 폭력을 비판할 수 있는 규범적
토대는 목적-수단 관계이다.26) 즉 폭력 사용은 그 사용 목적이 무엇이냐

 

24) 정당방위 논리는 오히려 국가 간의 관계에서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마이클 월쩌의 이론처럼 단지 타국의 공격에 대한 방어 전쟁이 아
니라, 개인의 권리와 자결권이 훼손될 경우 이를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
할 수 있다는 논리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Mayer, Peter, Gewalt
gegen Gewalt-Gewalt vor Gewalt, in: Julia Dietrich/Uta Müller-
Koch (hg.) Ethik und Ästhetik der Gewalt, Paderborn 2006
25) 국가의 폭력 독점에 대해서는, 앤서니 기든스, 민족국가와 폭력, 삼지원
1993
26)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폭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폭력의 근절이
아니라, 올바른 목적을 위한 폭력 사용을 주장한다. 그에게는 인간에 의한 인
간의 착취, 전쟁, 퇴폐가 사라진 미래, 인간이 인간에 대해 최고 존재가 되는
미래, 즉 인간적인 미래를 위해 사용되는 폭력은 정당하다: 모리스 메를로-퐁
티, 휴머니즘과 폭력, 문학과 지성사 2004, 19/146쪽; 이와 유사하게 조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91

 

에 따라 정당화될 수도 있고, 부당한 것으로 비판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합법성에 따른 폭력 비판과 달리 현존하는 법적 질서에 대
한 현상유지가 아니라 변혁적 비판을 가능하게 하지만 여기서 폭력 자체
대한 규범적 평가는 폭력이 사용되는 목적에 대한 평가로 대체된다.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 관점은 엄밀히 말하면 폭력을 비판할 수 있는
규범적 척도를 제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관점에서 폭력 자체
는 사실 상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자기보존을 위해 사용되느냐, 아니면 법적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사용하느냐, 아니면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되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따
라서 이런 목적을 괄호를 친다면 폭력 자체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규범
적으로 정당한 것도 부당한 것도 아니다.
이에 반해 인정이론적 폭력 개념은 폭력 비판의 외재적 척도가 아니라
내재적 척도를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인정이론은 특정
한 도덕관을 전제하고 있다. 즉 도덕이란 인간 상호 간에 내재되어 있는
훼손 가능성으로부터 개인의 삶을 보호함으로써 성공적 자아실현을 가능하
게 하는 일종의 보호 장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현상은 그것이 신체적 정체성이나, 이성적 정체성, 혹은 개성적 정체성 중
어느 것을 겨냥한 것이든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으며, 역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개인이 긍정적 자기의식 하에 적극적으로
자아실현에 이르게 하는 사회적 조건은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이러한
기능적 도덕관을 전제한다면 비록 폭력이 자기보존을 위해, 아니면 합법성
이라는 명분하에, 혹은 이른바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면 규범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 비판에서 도출될 수 있는 비폭력 상태란 어떤 것

 


르주 소렐은 폭력을 통한 사회주의 혁명에 현대를 구원한다는 지고한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 조르주 소렐, 폭력에 대한 성찰, 나남 2007, 352쪽; 사
르트르는 파농과 연관하여 인간이 자신을 재창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한다: 장 폴 사르트르, 1961년판 서문 , 프란츠 파농, 대
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그린비 2004, 40쪽.
92 사회와 철학 제20호

 


일까? 그것은 분명 폭력 없는 상태, 즉 폭력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지만,
이는 개인의 정체성 훼손이 방지되는 소극적 상태를 말할 뿐, 보다 적극적
의미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실현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
라서 비폭력 평화 상태를 적극적 의미에서 개인의 자아실현이 보장된 상태
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상
태이다. 왜냐하면 개인은 타인의 인정을 경험할 때 자기 자신을 긍정할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 차원에서 자신 있게 자기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이런 점에서 비폭력 상태란 세 가지 차원에서 개인적 정체성이 인정
됨으로써 해당 당사자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삶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고, 이성적 존재로서의 사리판단 능력과 개성
적 존재로서의 고유한 특성과 취향 등을 실현할 수 있는 상태 말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자아실현 상태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을 묻는
다면 이제 비폭력 상태란 비폭력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 이념의 문제
로 발전한다. 즉 어떤 이념에 따라 사회가 구성될 때 모든 개인들이 성공
적 자아실현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
은 개인의 정체성 차원을 세 가지로 구분하듯이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
첫째, 신체적 존재로서 개인이 지니고 있는 삶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
기 위한 사회적 조건은 근본적으로 국민의 적정생활을 보장하려는 사회복
지제도나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사회구성원을 보호하려는 인도주의적
정책을 통해 마련될 수 있다. 둘째, 이성적 존재로서 개인이 지니고 있는
사리판단능력은 무엇보다도 정치 경제적 영역에서 각 개인을 동등한 의사
결정주체로 인정하는 경제제도와 정치제도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즉 경
제 민주화나 참여민주주의가 그 대표적 이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셋째,
개성적 존재로서 개인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나 취향이 실현될 수 있는 사
회적 조건은 삶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사회구성원은 정체성을 평가하는 단일한 기준 때문에 사
회적 평가절하와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93

 


6. 나가는 말
이렇게 볼 때 비폭력 상태란 각 개인이 세 가지 차원에서 성공적 자아
실현에 이르는 것을 말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비폭력 사회란 결국 사회
복지 및 인도주의 정책, 정치 경제적 민주주의, 삶의 다양성 보장이라는
세 가지 사회 이념과 결부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폭력 개
념에 대한 인정이론적 재구성이 이렇게 폭력 비판의 내재적 척도를 전제할
뿐만 아니라, 비폭력 사회에 대한 이념적 전망 역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론적 장점을 갖지만, 그 한계가 무엇인지도 분명하다. 즉 인정이론은 개인
의 성공적 자아실현을 폭력 비판과 폭력 없는 사회를 위한 규범적 토대로
제시하지만 이러한 사회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직
면하면 이제 이론적 난제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인정이론은 이른바 인정투
쟁을 통한 사회적 인정의 확대를 추구한다. 또한 인정투쟁은 타인의 파괴
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을 확대함으로써 개인의 성공적
자아실현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투
쟁이 타인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면 이에 대한 인정이론적 정당화는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인정투쟁이 범하지 말아야 할 타인의 파괴란 과연 무엇일
까? 이는 인정이론이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놓은 문제이다.

 


참고문헌
김용대, 폭력과 인권-소렐, 아렌트, 벤야민에서의 폭력의 문제 , 민주주
의와 인권 4권/1호 (2004),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공진성, 폭력, 책세상 2009년
구해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작과 비평사 2002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만음사 2009
94 사회와 철학 제20호
문성훈, 노동운동의 이념적 자기반성을 위하여-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인정투쟁이다! , 시대와 철학, 16
권 3호 (2005 가을)
, 인정윤리의 개념적 구조 , 현대철학연구소 편, 이성의 다양한
목소리, 철학과 현실사 2009
모리스 메를로-퐁티, 휴머니즘과 폭력, 문학과 지성사 2004
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바이북스 2009
변광배,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살림 2005
볼프강 조르스키, 폭력 사회, 푸른숲 2010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동녘 1996
,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사이에서 - 인정 도덕에 대한 스케
치 , 정의의 타자, 나남 2010
, 탈중심적 자율성, 현대적 주체비판의 도덕철학적 귀결 , 정
의의 타자, 나남 2010
앤서니 기든스, 민족국가와 폭력, 삼지원 1993
에릭 홉스봄, 폭력의 시대, 민음사 2008
조르주 소렐, 폭력에 대한 성찰, 나남 2007
장 폴 사르트르, 1961년판 서문 , 프란츠 파농,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
들, 그린비 2004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 사회, 이학사 2001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이후 2003
Galtung, Johan, Strukturelle Gewalt, Hamburg 1975
, Frieden mit friedlichen Mitteln, Münster 2007 (한국어
판: 요한 갈퉁,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들녘 2000)
Herms, Eilert, Gewalt und Freiheit, in: Julia Dietrich/Uta
Müller-Koch (hg.) Ethik und Ästhetik der Gewalt,
Paderborn 2006
Hüttermann, Jörg, Dichte Beschreibung oder Ursachenforschung
der Gewalt?, n: Wihlen Heitmeyer/Hans-Georg Soeffner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문성훈) 95
(hg.), Gewalt, Ffm. 2004
Imbusch, Peter, “Mainstreamer versus Innovateure der Gewaltforschung.
Eine kuriose Debatte”, in: Wihlen Heitmeyer/Hans-Georg
Soeffner (hg.), Gewalt, Ffm. 2004
Mayer, Peter, Gewalt gegen Gewalt-Gewalt vor Gewalt, in: Julia
Dietrich/Uta Müller-Koch (hg.) Ethik und Ästhetik der
Gewalt, Paderborn 2006
Müller-Koch, Uta, “Gewalt und Körperlichkeit-Eine philosophische
Perspektive”, in: Julia Dietrich/Uta Müller-Koch (hg.)
Ethik und Ästhetik der Gewalt, Paderborn 2006
Nunner-Winkler, Gertrud, “Überlegungen zum Gewaltbegriff”,
in: Wilhelm Heitmeyer/Hans-Georg Soeffner (hg.), Gewalt,
Ffm. 2004
96 사회와 철학 제20호
The Reconstruction of Violence-Concept
according to the Theory of Recognition
Moon, Sung-Hoon
【Abstract】
Nowadays the phenomenon of violence make it important, theoretical
researches for practical intervention. But it is very difficult, because
conceptual understanding of violence is vague. The theoretical researches
concentrate on a variety of violence. But it is not discussed, which
concept of violence is suitable for encompassing various violences and
it's unified understanding. The recognition-theory that Axel Honneth
has established since the 1990s offers the suitable concept for the
solving the theoretical problems of violence. Because it offers the theoretical
vision that makes it possible, to encompass various violences and to
explain how the violence is normative to criticise and what means the
society without violence. In this article I try to justify this position in
four steps. Firstly I examine critically Johan Galtung's classical concept
of violence. Secondly I explain which form of violence is rooted in the
modern society. Thirdly I describe the concept of violence that is
reconstructed through the theory of recognition. Finally according to
this reconstruction I offer the normative foundation of violence-critic
and the theoretical vision for the society without violence.
Key words: violence, theory of recognition, identity,
society without violence
논문접수일: 2010년 7월 17일 논문심사일: 2010년 9월 15일 게재확정일: 2010년 10월 9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