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김 한 종*
연 구 논 문
1. 머리말
2.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
3. 한국근대사 교육내용의 재구성
4. 비판적 사고와 근대사 교육
5. 맺음말
1. 머리말
한국근대사를 배우는 학생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은 어디일
까?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920~30년대 무장독립투쟁은 그 대표적
인 부분의 하나일 것이다. 교과서에는 독립군 부대와 독립운동 단체의
이름이 적잖이 나온다. 이름도 비슷한 많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고,
나뉘었다가 통합하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이 부분 서
술을 일부 보면 다음과 같다.
1920년대 중반부터 독립군은 독립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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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힘을 합쳐 나갔다. 그 결과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등 세 개의 독립
군 정부가 성립되었다. … 3부는 통합운동을 전개하여 1920년대 말 국민
부와 혁신의회의 두 세력으로 재편되었다. 국민부는 조선혁명당을 결성
하고 그 아래 조선혁명군을 두어 남만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북만주에
서는 혁신의회가 해체된 이후 지청천, 신숙 등이 한국독립당을 결성했고,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한국독립군을 조직하여 항전하였다.1)
이 교과서는 이에 앞서 1920년대 초 대한독립군, 국민회군, 군무도독부
군의 연합부대가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
서와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연합부대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는 사실을 서술하였다. 이밖에 중광단, 대한독립군단 등의
이름도 나온다.2) 1930년대 이후에는 또 다른 한국독립당, 민족혁명당, 민
족혁명당, 조선의용대, 한국광복군 등의 단체 이름과 활동을 소개한다.3)
무장독립투쟁은 일제하 독립운동의 중요한 노선 중 하나로 근래 많은
연구성과가 쌓이고 있다. 교과서 서술이 자세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많은 독립운동 단체의 나열은 교사로 하여금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고민하게 하며, 학생을 ‘질리게’ 만든다. 이를 의식해 교과
서는 여러 자료를 활용하거나 운동의 흐름을 도식화하여 제시하는 등 학
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힘쓴다. 그런데도 학습부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 결과 자세한 서술 내용은 무장독립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하거
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공부하기 어렵다는 부담감을 늘리는
역효과를 낳는다.
더구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독립운동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배우면서도,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
를 제공하지 않는다. 독립운동의 사실만을 자세히 가르쳤을 뿐, 그것이
한국근현대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배워야 하는지 학생들이 생각
1) 한철호 외, 고등학교 한국사, 미래엔, 2014, 288쪽.
2) 위의 책, 286~287쪽.
3) 위의 책, 296~297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47
하고 내면화하게 하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는 독립운동사 공
부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다.
독립운동사를 사례로 들었지만, 이와 같은 문제점은 한국근대사 교육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한국근대사 교육의 여러 문제들은 복합적으로 얽
혀 나타난다. 많은 사실을 망라하여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도 그 역사적 의미는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부터, 근현대사를 보는 관
점이나 역사인식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학생들은 한국근
대사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주요 사실들이 독립 이후 한국
현대사로 어떻게 이어져 현재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한국근대사 교육을 둘러싼 쟁점들을 검토하고, 이를 해결
하기 위한 학교 역사교육의 과제와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근현대사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의 폭이 넓어지면서 1980년대 이후 학교 역사
교육에서 근대사 교육이 강화되고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그렇지만 근
현대사 인식과 교과서 서술을 둘러싸고 불거진 사회적 논란이 현대사에
집중되면서, 정작 근대사 교육을 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활발히
논의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교과서에 근대사 서술이 자세해지거나 한국
사 교육에서 근대사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교사나 학생에게는 오히려 부
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한국근대사 교육을 둘러싼 몇 가
지 쟁점을 정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물론 이
런 쟁점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있
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근대사 교육의 문제점과 이를 둘러싼 논
의를 검토하기 위해 편의상 각각의 문제들을 나누어 살피기로 한다. 이
글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국근대사 교육에 대한 대안의 성격을 가진
다. 다만 구체적인 교수요목이나 수업안보다는 한국근대사 교육의 방향
을 제안하는데 중점을 둔다. 한국근대사 교수요목은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구체적인 수업안을 마련하거나 실천하는 것은 학
교현장에서 교실수업을 담당하는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48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2.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
1) 세계사적 맥락의 한국근대사 이해
교육과정의 학습내용이나 교과서 서술에서 한국근대사는 으레 당시 세
계정세를 서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제국주의의 성립과 세계정책이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근대사 교육
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이미 1992년에 고시된 제6차 교육과정부터 일반
화되었다. 제6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의 문호개방부터 일제 식민 지
배 이전까지를 다루는 단원인 ‘근대사회의 전개’에서는 학습내용의 방향을
“19세기 후반 이후 전개된 근대화를 위한 노력과 동시에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대응해 나가는 과정을 파악하게 하고,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대
내·외적 시련을 인식하도록 한다.”고 제시한다. 또한 첫 번째 주제와 내
용요소는 ‘(가) 근대 사회로의 진전 - 제국주의, 국제 관계의 확대, 개화사
상, 개항, 위정척사운동, 근대화 운동’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현재 학교
역사교육에 적용되고 있는 2009개정교육과정의 근대사 부분에서도 비슷
하다. “이 시기 서구 열강의 팽창에 따른 동아시아 삼국의 대응 과정을 바
탕으로 … 또한 동아시아 국제 정세 변화를 바탕으로…(고등학교 ‘한국사’,
영역 및 학습내용 성취기준)” 민족운동을 이해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한국근대사 교육이 세계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국사의
변화를 이해하도록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근대 이후 동아시아의
역사는 서구 각국들의 상호관계, 동아시아 국가 간의 상호관계에 의해 다층
적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자민족 중심주의에
입각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것이
상호 간의 국제관계나 정체성 형성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4)
4) 강만길, 「동아시아 근현대사 전개와 역사인식」, 강만길 외, 근대 동아시아 역사인
식 비교, 선인, 2004, 12~13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49
교과서 서술이나 역사수업에서는 서구 국가들이 제국주의화해서 아시
아나 아프리카를 침략하고 식민지를 확대하였다는 사실을 다룬다. 그리
고 그 일환으로 동아시아에도 ‘침략적 접근’을 했다고 인식한다. 서구 상
선들이 통상을 요구했다는 사실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전개 과정, 그
리고 조선이 미국 및 유럽 국가들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였다는 사실을
제국주의의 조선 침탈 과정으로 학습한다. 그러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
의 동아시아 정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후 근대사의 전개에
서는 세계적 상황과의 연계가 사라진 채 한반도에서 청나라와 일본, 러
시아와 일본의 각축 등 동아시아 지역과의 관계로만 접근한다. 그나마
일본, 청, 러시아가 어떤 한반도 정책을 취했는지는 서술하지만, 이를 이
들 국가가 취한 세계전략이나 동북아시아 정책과 제대로 연결시키지는
않고 있다. 한반도 안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한정하여 한국근대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근대사의 전개과정에 커다란 영향
을 미친 외압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 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사는 외압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물론 외압의 방식이나 강도가 한국근대사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
장 중요한 요인인지는 많은 논란이 있다. 그렇지만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사의 상황 속에서 한국근대사를 이해하는 데는 중
요한 요인이다. 조선은 서구 열강보다는 일본이나 중국의 외압을 받았다.
중국과의 사이에 존재했던 전근대적 질서인 조공체제의 유제(遺制)와 서
구 열강과 조약을 맺음으로써 성립하는 근대적 국제관계가 병존하는 양
절체제(兩截體制)에 놓이게 되었다.5) 이 문제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한·중·일 삼국이 어떻게 해서 결과적으로 식민지·반식민지·제
국주의라는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
이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과 한국사를 중심으로 한 일국사적
접근 방식은 학생들로 하여금 한국근대사 인식의 폭을 좁게 만들었다.
5) 하원호, 「근대사회 성격론」, 한국사연구회 편, 새로운 한국사의 길잡이, 지식산업
사, 2008, 14~15쪽.
150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세계사적 맥락에서 한국근대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과정뿐
아니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학교 역사교육에
서 세계사와 한국근대사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연구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사 교과서는 세계사를 그저 한국근대사의
배경으로만 설정하기도 하고, 세계사와 한국사를 병렬적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세계사적 배경’을 의식해 세계사 내용을 단순히 한국사보다 먼저
배열하여 인과적 연계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6) 물론 교과서 구성의 이
런 차이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근대사를 보는 시각이나 세
계사와 연계방식은 저자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런 차이가 한국근대사 교육에 대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은 데서 생겨
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2) 틀에 박힌 근대사 체계와 학습
한국사 교육에서 근대사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특히 제7차 교
육과정에서는 선택과목이기는 하지만 ‘한국근·현대사’가 독립과목이 되
었으며, 이 중 문호개방부터 1945년 독립에 이르는 근대사의 비중이 2/3
를 차지함으로써 근대사 교육이 강화되었다. 그렇지만 한국근대사 인식
체계는 1970년대와 별다른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학교 역사교육은 내용
체계와 학습방법의 면에서 모두 고정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는 한국근대사 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사 교과서나 개설서는 개항부터 국권피탈 시기까지는 ‘제국주의의
침탈과 민족운동의 전개’로, 일제통치 시기는 일본의 식민지 수탈과 독립
운동이라는 도식으로 이해한다. 또한 개항부터 국권피탈까지 민족운동의
흐름을 위정척사운동, 개화운동, 민중운동의 세 갈래로 서술한다. 이 중
19세기 중반 이후 위정척사운동의 전개 과정은 통상 반대 → 개항과 수
6) 김태웅, 국사교육의 편제와 한국근대사 탐구, 선인, 2014, 92~99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51
교 반대 → 개화 시책 비판 → 의병항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개화운동
은 문호개방과 서구 문물의 도입 주장 → 개화정책의 추진 → 갑신정변
→ 갑오개혁 → 독립협회 → 애국계몽운동으로 이어진다.7) 역사교사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이 시기 학습내용은 머릿속에 잘 정리되
어 있다. 일제통치기 역사의 전개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일제의 식민통치
정책은 무단통치(1910년대) → ‘문화정치’(3·1운동 이후~1930년대 중반)
→ 민족말살 정책(1930년대 후반~1945년)의 세 단계로 나뉜다. 1910년대
민족운동은 비밀결사 조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1920~30년대 국외
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 봉오동 전투 → 청산리 대
첩 → 자유시 참변 → 3부의 성립 → 3부 통합운동 → 국민부와 혁신의회
로 도식화되어 있다. 3·1운동 이후 국내의 민족운동도 기본적으로 물산
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 신간회 운동 → 문맹퇴치 운동으로 정
리된다. 이 밖에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 항일운동이 개별 사건으로
추가된다. 이처럼 고정된 근대사 내용체계는 역사의 흐름을 정리하고 체
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한국사 이해와 역사적 사고
의 폭을 좁히게 된다.
이와 같은 한국근대사 이해의 틀은 해방 이후 축적된 한국사 연구 성
과가 학교교육에 반영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부터 자리 잡기 시작하
여, 1970년대 후반 교육과정과 국정 국사교과서의 내용체계로 뿌리를 내
렸다. 1969년 이기백 등이 교육부에 제출한 국사교육보고서에서는 근대
사 서술의 첫 번째 목표로 근대국가의 수립을 한국사의 내적 발전과정으
로 다룰 것과, 제국주의 침략과 이에 대한 민족의 항쟁을 명확히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8)
7) 김한종, 「한국근현대사의 연구성과와 교과서 서술」, 정기문 외, 역사학의 성과와
역사교육의 방향, 책과함께, 2013, 280~281쪽.
8) “중세체제의 해체와 근대국가의 수립을 우리나라의 내적발전과정에서 다룰 것이며,
이와 관련하여 제국주의의 침략과 이에 대한 우리 민족의 항쟁을 근대민족주의의 성
립과정에서 전개하여 근대민족국가 수립의 경위를 선명히 한다.” 이기백·이우성·
한우근·김용섭, 중·고등학교 국사교육을 위한 기본방향, 문교부보고서, 1969.
152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박정희 정부는 1974년 국사교과서를 전면적으로 국정화하면서 ‘민족적
주체사관’의 확립을 내세워 역사인식을 통일하고자 했다. 1979년 개정된
국정 국사교과서에서는 의병항쟁을 비롯한 근대 민족운동과 일제하 독립
운동 서술이 크게 늘어났다. 같은 국정 국사교과서인데도 1979년 교과서
가 1974년 교과서보다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서술이 강화된 것은, 관련 연
구의 진전과 함께 민족주체의식을 내세운 박정희 정부가 대외항쟁사를 중
시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국민학교용 국사, 실업계 고등학교용 국
사, 독본용 역사교재인 시련과 극복 등이 모두 사라지고 ‘국사’라는 한
종으로 통일됨에 따라 그 내용이 흡수된 것도 하나의 요인이었다. 1979년
간행된 국정 국사교과서의 근대사 내용구성을 보면 <표 1>과 같다.
중학교 국사 고등학교 국사
중단원 소단원 중단원 소단원
근대화의
시련과
자주운동
1. 흥선 대원군의 정치
와 개화·척사운동
2. 동학 혁명 운동과 제
도의 개혁
3. 자주 국가 운동의 전
개
4. 민족의 자각과 근대
문화
민족의
각성과 근대
문화의 수용
1. 대원군의 개혁정치와
쇄국정책
2. 개화·척사운동
3. 동학농민혁명운동
4. 근대 문물의 수용
5.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6. 민족수난의 시작
7.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의
항전
일제의 침략과
줄기찬 독립
투쟁
1. 한말의 주권 수호 운
동
2. 일제 침략하의 민족
의 수난
3. 민족의 독립 투쟁
4. 민족의 문화 운동
민족의
독립운동과
민족문화의
수호
1. 일제의 식민지 정책
2. 독립운동의 방향과 3·1
운동
3. 민족운동의 성장
4. 일제의 민족성 말살정
책과 민족문화의 수호
<표 1> 1979년판 중학교와 고등학교 국사 근대사 단원 구성
<표 1>에 나타난 1979년 국사교과서의 단원구성은 크게 보아 오늘날까
지 지속되고 있다. 이후 한국근대사 연구의 진전에 따라 개별적인 사건
이나 구체적 사실에 대한 서술은 달라졌지만, 근대사 내용체계는 그대로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53
유지되었다.
이와 같은 근대사 체계에 대해 학계 일부에서는 오직 ‘수탈과 저항’의
틀을 따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주로 경제사학계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관
점을 받아들이는 서양사 전공자들의 비판이지만, 한국사 전공자 중 일부
도 여기에 동조한다. 그렇지만 이들 사이에도 비판의 논리가 동일한 것
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근대사를 전공하는 한 연구자는 기존의 역사
교육이나 서술이 일제의 수탈을 과도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조선후기 내
재적 발전이나 식민지 한국 사회의 대응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고 우려한
다. 특히 식민지적 근대화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다양한 대응과, 이
과정에서 부딪치는 식민지적 기제와 작동방식, 한국경제의 복잡한 구조
와 변화 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9) 한국 근대의 보편성
과 특수성을 고려하여 새로운 근대의 지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식민지적
근대성’ 주장도 한국근대사 체계의 이런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다.10) 수탈과 저항만을 강조하다 보면 근대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구성원의 삶과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아서 식민지나 반식민지가 경험을 겪은
나라들에서는 서구와는 달리, 자국을 침탈한 제국주의의 성격과 그에 대
한 대응이 근대사의 성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반론도 강하다.
여기에는 ‘수탈과 저항’이라는 틀이 여전히 한국 근대사를 설명하는 효과
적인 틀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제국주의의 침탈과 민족운동의 틀로 한국근대사
를 이해하면서도, 정작 민족운동의 목표가 무엇이며 어떤 사회를 지향했
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동학농민운동은 한국근대사에서도 매우
비중있게 다루지만, 이를 배우더라도 농민군이 어떤 사회를 지향했는지
9) 정연태, 한국 근대화 식민지 근대화 논쟁 –장기근대사론을 제기하며-, 푸른역사,
2011, 76~77쪽.
10) 신기욱·마이클 로빈슨/도면회(옮김),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삼인, 2006. 식민지
조선사회의 근대적 성격에 대한 논의는 다음의 책을 참조. 윤해동 외(편), 근대를
다시 읽는다 1·2 -한국 근대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 역사비평사, 2006.
154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독립협회가 대중의 자주독립정신을 높이기에 힘
썼다거나 대한제국이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취했다는 사실은
설명하지만, 개혁운동이 목표로 했던 국가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
렵다.
도식화된 내용 구성은 학생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뿐 아니
라 역사 흐름까지 암기의 대상으로 만든다. 실제로 학생들은 시험에 대
비하여 개항 이후 민족운동의 흐름이나 1920~30년대 국외 독립운동의 전
개 과정을 정리하여 외운다. 역사적 사실의 기억이 아닌 역사적 사고를
강조하는 수업 방안도 이런 틀에 영향을 받아서 도식화된다. 예를 들어
서구 열강의 압박과 조선의 문호개방을 학습할 때 학생들은 ‘개화와 척
사’라는 대립적 관점에서 역사적 판단을 해야 한다.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라 2016년 3월에 간행된 초등학교 사회 6-1 교과서에는 박규수의 주
장과 최익현의 상소문을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어떤 관점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활동이 들어 있다.11) 이런 활동은
역사적 사실을 무조건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하는 방
안으로 수업에서 자주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는 학생들의 판단을 문호개
방에 대한 찬성과 반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제한한다. 박규수와 최익
현 같이 서양과의 통상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견해를 자료
로 제시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문호개방에 대한 찬반을 묻는 활동은 초
등 교과서뿐 아니라 중학교 역사교과서나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도
나온다.12) 정형화된 교수학습 방법이어서 초·중·고등학생의 차이를 고
려하지 않고 동일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의병항쟁과 애국
계몽운동의 관점을 비교한다든지, 일제하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외교론과
실력양성론, 무장독립투쟁의 관점을 비교, 평가하게 하는 방식도 마찬가
지이다.
11) 사회6-1, 교육부, 2016, 60~61쪽.
12) 이문기 외, 중학교 역사 2, 두산동아, 2013, 14쪽 ; 주진오 외, 중학교 역사 2, 천
재교육, 2013, 17쪽 ; 권희영 외, 고등학교 한국사, 2014, 169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55
3) 한국근대사 연구성과와 역사교육
해방 이후 근현대사 교육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졌다. 1980년대
중반 사회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가 활성화되어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다. 근대사 연구도 이전보
다 훨씬 활발해져 양적, 질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전까지 사실상 금기
시되던 주제들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고 깊이 있는 다양한 성과들이 나왔
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여 한국사 연구성과가 교과서에 어느 정도 반영
되었는지 밝히는 것은 역사교육 연구의 주된 방향 중 하나였다. 그래서
교과서 서술내용을 분석하여 학계의 연구와 비교하는 작업이 간헐적으
로 진행되어 왔다.13) 이들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역사학의 성과들이 학
교 역사교육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1990년대
에 접어들면서 근대사 연구 성과들이 교과서에 어느 정도 반영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의병항쟁 등의 서술에서 새로운 연
구성과가 들어갔으며, 일제하 사회주의계 민족운동이나 농민·노동운동
의 서술이 보완되었다. 머리말에서 소개한 일제하 무장독립투쟁도 그 중
하나이다. 특히 2003년부터 사용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와 이후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들이 근현대사 중심으로 구성되어 근대사 내용
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더해졌으며, 다양한 자료들이 들어갔다.
1990년대 이후 많이 바뀐 근대사 내용 중 근대사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근대 민족운동의 흐름, 식민지 조선사회의 성격, 민족해방운동 등을 들
수 있다.14) 이런 주제들에 대한 교과서 서술이나 교실수업 내용들이 서
로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사실이나 역사 흐름은 대체로 비슷
13) 대표적으로는 역사교육연구회가 진행한 다음의 공동 연구를 들 수 있다. ‘한국근대
사 연구와 국사교육’, 역사교육 47, 1990. 이 공동연구에서는 근대사 연구성과를
국사교과서가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를 ‘개항기 자본주의·제국주의 침략’, ‘한국
근대 변혁운동’, ‘한국 근대 민중운동’, ‘일제통치기 사회경제 연구’, ‘한국 근대 민족
해방운동’이라는 5가지 주제에 걸쳐 검토하였다.
14) 김한종, 「한국근현대사의 연구성과와 교과서 서술」, 278쪽.
156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하다. 다만 근대사 연구성과의 반영 정도나 저자의 역사적 사실 평가와
인과 관계 이해 등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동학농민운동이 일
어나게 된 배경으로 1892, 93년에 일어난 농민봉기를 서술할 것인지 여부
나, 의병항쟁의 시기구분과 성격은 교과서에 따라서 차이를 보인다.15)
2011년 간행된 고등학교 한국사의 경우, 일부 교과서는 동학농민운동 직
전에 일어난 민란의 동향을 적극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과
서들은 농민봉기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포·접 등 동학조직이 동학
농민운동에서 한 역할을 언급하기 위해 농민봉기를 언급했다. 분산적이
었던 농민운동이 동학조직을 통해 연결되고, 이것이 동학농민운동으로
확대되었다는 논리이다.16) 이런 차이는 2014년에 간행된 역사교과서도
마찬가지이다.
동학농민운동과 이후에 전개된 민족·민중운동의 관계도 교과서에 따
라서 차이를 보인다. 동학농민군이 항일의병 및 활빈당과 같은 민중운동
으로 연결되었다고 서술한 교과서가 있는 반면, 항일의병운동으로 이어
졌다는 내용만 있는 교과서도 있다. 이후 민족운동과의 관련성을 언급하
지 않은 교과서도 있다17). 똑같이 의병항쟁 및 민중운동과의 연계성을
제시하지만, 어느 편에 비중을 두는가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가장
많은 학생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엔컬쳐와 비상교육 교과서는
모두 동학농민군의 잔여세력이 항일 의병투쟁과 민중운동으로 이어졌다
고 서술한다. 그러나 미래엔컬쳐 교과서는 항일의병과의 연계성에 비중
을 둔 반면, 비상교육 교과서는 활빈당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18) 미래엔컬쳐 교과서는 반침략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비상교육
15) 위의 글, 283~288쪽.
16) 위의 글, 284~285쪽.
17) 미래엔, 비상교육, 리베르스쿨은 동학농민운동이 항일의병과 활빈당 등 민중항쟁으
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이에 반해 두산동아, 지학사, 천재교육, 교학사 교과서는
항일의병과의 연계성만 제시한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동학농민운동과 이후 민족
운동의 연계성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18) 한철호 외, 고등학교 한국사, 미래엔컬쳐, 2011, 158쪽 ; 도면회 외, 고등학교 한국
사, 비상교육, 2011, 174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57
교과서는 반침략을 인정하면서도 계급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
로 평가된다.19) 이러한 서술은 저자가 같거나 같은 출판사에서 이전에
간행된 교과서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한국사 연구성과의 반영과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점은, 동일한 역사적
사실이 집필기준이나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달라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이 집강소의 강령으로 삼았다는 ‘폐정
개혁안 12개조’ 신뢰성 문제이다. 잘 알려졌듯이 ‘폐정개혁안 12개조’는
오지영이 쓴 동학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동학사의 사료적 가
치를 놓고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지만 동학농민
운동의 성격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국정 국사교과서 때부터 검정 역사교
과서들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실린 자료 중 하나이다. 그런데 2011년에
간행된 역사교과서에는 폐정개혁안 12개조의 출처로 동학사 앞에 모두
‘역사소설’이라는 말을 붙였다. 정확한 경위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동학
사의 사료적 가치를 신뢰하지 않거나 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검정위
원의 견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3년에 간행된 중학교 역
사와 2014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역사소설’이라는 말이 빠지
고 그냥 ‘동학사’로 표기되었다. 동학사에 대한 평가의 차이에서 비
롯되었을 것이다. 2011년과 2014년 사이에 동학사의 사료적 가치를 달
리 평가할 만한 새로운 연구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결국 이는 연구성
과의 반영보다는, 애초부터 존재했던 견해의 차이나 그 밖의 어떤 이유
가 ‘역사소설’이라는 말을 붙일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 것이라고 추측된
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는 역사이해나 교실 역사수업에 혼란을 줄 수
도 있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는 일제통치기 한국사 연구
나 역사교육을 둘러싼 가장 대표적인 논쟁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
하는 사람들은 한국사 교육이나 교과서가 일제통치 시기를 수탈과 저항
19) 김태웅, 국사교육의 편제와 한국근대사 탐구, 112쪽.
158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 역사적 사실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다고 비판한
다. 그리고 통계를 비롯한 자료들을 식민지 근대화론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들의 비판은 관련 연구를 활성화시키고 교과서 내용을 일부 고치게 하
였다. 토지조사사업 서술이 일본의 토지약탈 정책임을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토지소유권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조치였다든지 일본인의 토지소
유를 쉽게 하고 지세수입을 늘리는데 목적이 있었다는 방향으로 서술을
바꾼 것이다.20) 그러나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근대화’가 지니는 식민지배 담론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 뚜렷하지 않다. 나아가 이들은 일
제 경제정책이 근본적으로 지니는 수탈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21) 이는
앞으로 이 문제를 둘러싼 학문적 연구와 토론, 교과서 서술 방향에 대한
논의가 더 진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4) 한국근대사 인식을 둘러싼 사회 갈등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근현대사 인식과 교육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
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가져왔다. 한국근현대사 연구와 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학술적, 교육적 문제보다는 정치사회적 갈등의 양
상을 띠고 있다. 애초 논란의 출발과 확산이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
며, 교과서 서술이나 근현대사 인식의 차이를 이념 문제로 몰고 갔기 때
문이다. 주된 논란 대상이 현대사 교육이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근대
사 문제는 상대적으로 잘 부각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근대사의 일부 사
실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의 차이도 크다. 문호개방과 서구 문물의 수용,
개화기 민족운동, 독립운동의 노선과 주체, 친일행위의 서술 등이 대표적
이다.
20) 김한종, 앞의 글, 299~304쪽.
21) 최병택, 「일제 경제수탈 관련 교과서 내용에 대한 비판론의 대두와 교과서 서술상의
그 반영 방안」, 역사교육 107, 2008, 32~33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59
일부 학자들은 우선 조선의 문호개방을 한국사 교과서들이 부정적으
로 서술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민족주의적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다거나,
미국 중심의 해양문명권보다 중국 중심의 대륙문명권을 중시하는 위정
척사론적 대외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22) 그렇지만 실
제로 한국사 교과서들이 문호개방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
니다. 조일수호조규나 이어지는 서구 열강과의 통상조약 체결이 외세의
압력뿐 아니라 조선사회 내부의 개방 움직임에도 영향을 받았음을 서술
한다. 다만 통상조약의 불평등성을 강조하는데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 교과서나 역사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통상조약
의 불평등성은 조선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로 당시 국제관계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본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불평등
하더라도 문호개방이 세계적 추세이며 역사 전개에서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한다.23) 이런 비판에는 기존 역사교육이나 교과서가 조미수호통상
조약의 불평등성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반감을 조장한다는 의혹
이 깔려 있다. 또한 근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대외개방이 긍정적인 선
택임을 말하려고 한다. 한국사 교과서들이 개화파의 개혁운동이 항일의
식이 약하고 외세의존적이라고 서술하고 있다는 비판도 여기에서 비롯
된다. 결국 교과서 서술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바
라보는 정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호개방과 개화정책에 대한 이런 해석은 자연스럽게 일본의
식민통치와 그 시기 한국사회의 성격을 보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한국사
의 내재적 발전을 비판하고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한국이 근대사회
로 접어들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뒷받침하게 된다. 식민지 근대화론
22) 오영섭, 「현행 고교 국사교과서의 민족운동사 서술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의 분석과 제안」, 아산정책연구원·한
국현대사학회 주관 학술회의 자료집, 2013. 5. 31, 2쪽.
23) 김도형, 「2009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2 교과서의 근대사 서술 분석 -획일화된 역
사 기억 만들기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위의 책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중·고
등학교 한국사교과서의 분석과 제안」, 65~66쪽.
160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을 둘러싼 논란은 기본적으로 역사연구와 한국근대사의 체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지만,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불
러일으키고 있으며 식민지 과거사 청산과 친일 행위를 바라보는 시각과
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하면, 일제의 식민통치
목적이 어디에 있건 간에 거기에 협력한 행위는 상당 부분 정당화된다.
친일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특히 이승만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는 우리 사회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 대표적인 문제이다. 뉴라이트 계열이나 일부 보수 역사학자들은 검
정 역사교과서가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 했다고 비
판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한국근대사학계의 ‘좌편향’이나 운동사적 관점
의 연구 경향에서 찾는다. 이들은 독립운동사가 무장독립투쟁만 강조한
나머지 실력양성운동과 종교를 통한 민족운동은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
다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하여 1910년대 하와이에서 벌어진 이승만의 실
력양성운동을 서술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24) 1980년대 이후 독립운동사
교육에서 무장독립투쟁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주장처
럼 일제하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이 무장독립투쟁 위주로 구성되었는지
는 좀 더 세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교과서는 국내의 민족운동으로 물
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 신간회, 문맹퇴치운동 등 실력양성운동
이나 문화운동을 서술한다. 해외 독립운동은 독립군의 활동이 중심이지
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과 변화를 자세히 다룬다.
이승만의 외교운동이 빠져있다는 지적은, 무장독립투쟁 중심의 독립운
동사 교육을 비판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일
제하 이승만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는 독립운동의 주류가 무엇이며 성
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해방 이후 정치 변화와
이승만 정부의 통치, 나아가 이승만 자신에 대한 평가와 연결된다. 이승
만의 단독정부 주장을 냉철한 정세 파악에 따른 합리적 판단으로 높이
24) 오영섭, 앞의 글, 8~10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61
평가하는 경우, 같은 맥락에서 일제하 이승만의 외교활동도 효과적인 독립
운동의 방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4년에 간행된 교학사
의 고등학교용 한국사는 일제하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5군데에 걸쳐 서
술하고25) 그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이어 해방 이후 ‘정읍 발언’으로 일컬
어지는 이승만의 단독 정부 주장을 현실성 있는 판단으로 본다.26) 이승만
의 활동은 국제정세의 분석에 따른 합리적 행위였으며,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행위였다고 일관성 있게 평가하는 것이다.
3. 한국근대사 교육내용의 재구성
1) 근대사 내용체계의 재구조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개화기와 일제통치기를 다루는 근대사 내용
체계는 1970년대 자리를 잡은 이후 현재까지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한국근
대사 교육의 여러 문제와 쟁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연구성과
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내용체계가 필요하다. 물론 이 작업은 학교 역
사교육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사학계의 과제이다. 한국근대사 교육의 내
용체계와 요소는 곧 한국사 전반이나 근현대사 연구성과와 이를 바탕으
로 하는 개설서에 나오는 주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근래 다양한 관점에서 근대사의 변화를 추적하고 체계화하려는 움직
25) 권희영 외, 고등학교 한국사, 교학사, 2014, 257, 276, 288, 291, 293쪽. 특히 293쪽에
는 한 쪽 전체에 걸쳐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서술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문을 통해
학생들에게 그 의미를 평가하도록 유도한다. “(도움 글)이승만은 광복 직후 여운형
이 추진한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으로 추대될 정도로 좌우를 떠나 당시 한국인들에
게 민족 지도자로 받아들여졌다.”, “(생각해 보기) 만약 당시에 자신이 한반도에서
일본의 승리 소식만 접하고 있다가 이 방송(이승만의 단파방송-인용자)을 들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방송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26) 위의 책, 309쪽.
162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1. 고종이 홍영식과 대통령
제에 대해 토론하다 -민
주주의란 말을 언제 알았
을까-
2. 최초의 민주주의자를 찾
아서 -민주주의 실천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3. 의회와 헌법을 상상하다
-민주정치의 제도화는 어
떻게 시작되었을까-
4.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
로 -민주공화제를 우리
것으로 삼은 때는 언제
였을까-
5. 3·1운동, 마침내 대한민
국이 탄생하다 -대한민국
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
을까-
6. 혁명의 시대 -자유와 평
등을 야 날개로 삼아-
7. 민주공화국, 식민지 너머
의 꿈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국가를 상상하였을
까-
8. 선거를 통해 민주공화국
을 세우자 -해방, 국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제1장. 서양 정치사상의 수
용과 입헌군주제의 모색
1. 서양의 정치제도를 처
음 접하다
2. 개화파, 제한군주제의
길을 모색하다
3. 독립협회, 의회개설운
동을 전개하다
4. 입헌군주제 운동, 시
기를 놓치다
제2장. 민주공화제의 수용
과 임시정부의 수립
1. 국망 전후, 공화제 임
시정부 구상이 싹트다
2. 신해혁명과 함께 공화
주의의 파도가 밀려오
다
3. 3·1운동으로 공화제
임시정부를 선언하다
4. 민주공화제의 대한민
국임시정부를 세우다
제3장. 독립운동 진영의 통
일 모색과 건국 준비
1. 국외 독립운동 진영,
정당을 조직하기 시작
하다
1장. 인민: 만민평등을 향한
해방의 길
2장. 자치: 종교가 꾸린 대
안공동체
3장. 정의: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향한 100
년의 항쟁
4장. 문명: 신문과 학교에서
익히는 시민성
5장. 도시: 자발적 결사체와
시위·집회 공간
의 탄생
6장. 권리: 인권과 민권의 자
각
7장. 독립: 민주공화정으로의
길
<표 2> 근대 한국 사회의 지향성을 주제로 한 한국근대사 목차 구성
임이 나타나고 있다. 근대 한국이 지향했던 국가나 사회상을 기준으로 근
대사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려는 연구들이 하나의 사례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근현대사의 변화에 접근한 몇 권 책27)의 목차를 보면 <표 2>와 같다.
27) 김육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 우리 민주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휴머니스트, 2012 ; 박찬승,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헌법 제1조 성립의 역사,
돌베개, 2013 ; 김정인,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 시대의 건널목, 19세기 한국사의 재
발견, 책과함께, 2015.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63
9. 남과 북, 분단으로 치닫
다 -분단의 원인은 무엇
이며 정녕 피할 수는 없
었을까-
10.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는 어떤 이야기가 아로
새겨져 있을까-
2. 대독립당(민족혁명당
을 결성하다
3. 민족주의 좌우파 정
당, 통일을 모색하다
4. 민족주의 좌우파, 임
정 깃발 아래 결집하
다
5. 임시정부, 건국의 밑
그림을 그리다
6. 사회주의 진영, 인민
공화국 등을 모색하
다
제4장. 해방 이후 통일정부
수립의 좌절
1. 해방과 함께 건준·인
민공화국이 등장하다
2. 신탁통치 문제로 좌우
세력이 대립하다
3. 좌우파, 서로 다른 헌
법을 구상하다
4. 분단정부 수립의 길로
들어서다
개항 이후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행위 주체들은 사회변화에 대
응하여 자기 나름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들의 활동과 주장은 근대사
교육내용의 중심을 이룬다. 그렇지만 정작 이들이 만들고자 했던 국가나
사회상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회 상황을 보는 관점이나 새
로운 사회건설 방향을 둘러싼 의견 차이는 사회주도권 장악을 위한 정치
적 갈등으로 비춰지고, 근대사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로 점철된다. 민족운
동가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저 제국주의의 침략 의도를 간파했
는지 여부이다. 거기에다가 민중의 입장을 고려했는지 정도가 덧붙여진
다. 이런 문제점은 일제통치기의 독립운동이나 사회운동의 경우도 마찬
가지이다. 다양한 행위 주체들이 지향했던 국가나 사회상을 중심으로 한
국근대사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도 한국근대사 교육내용의 체계의 체계
를 세우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164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한국사 연구의 성과를 정리한 입문서도 한국근대사의 내용체계를 재
구성하는데 검토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한국사연구회가 펴낸 한국사
연구입문서인 새로운 한국사의 길잡이28)의 근대편 목차는 <표 3>과
같다.
근대Ⅰ 근대Ⅱ
근대사회 성격론
서구 열강의 침략과 동아시아 각국의 개항
척사와 개화
근대화 운동의 전개
농민들의 개혁운동
대한제국의 수립과 정치 변동
계몽운동과 의병전쟁
불평등 조약 체계와 경제 정책의 추이
상공업의 변화와 농업의 변동
신문물의 도입과 사회변화
의식과 학문, 교육의 변화
한국근대와 식민지 근대성론
일제의 한국병합과 식민통치
일제의 강제동원과 민족이산
식민지 자본주의화와 민족·계층 간 양극화
식민지 근대의 학술과 교육
근대문명의 확산과 대중문화의 출현
기층민중의 생활과 농민·노동운동
사회 교육 환경과 여성운동, 학생운동
근대이행기 농촌사회 변동과 지방 유력자
층의 정치·사회활동
민족주의 이념과 운동
항일전선 통일과 민족해방 운동
<표 3> 새로운 한국사의 길잡이 근대 부분 목차
여기에서 근대Ⅰ은 개항부터 국권피탈까지, 근대Ⅱ는 일제통치기에 해
당한다. <표 3>에 제시된 다수의 주제들은 기존 역사교과서나 한국사 개
설서의 내용과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근대사 연구의 성과와 경향을 반영
하는 주제들도 있다. 근대Ⅰ의 ‘불평등 조약 체계와 경제정책의 추이’와
‘의식과 학문, 교육의 변화’, 근대Ⅱ의 ‘식민지 근대의 학술과 교육’, ‘사회
교육 환경과 여성운동, 학생운동’, ‘근대 이행기 농촌사회 변동과 지방 유
력자층의 정치·사회활동’과 같은 주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양한 근
대사 연구결과와 연구 경향을 반영한 새로운 한국근대사 내용체계를 모
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한국사 개설서가 아니므로 이런 책들의
내용구성이 그대로 근대사 교육의 내용체계가 될 수는 없겠지만, 한국근
대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내용체계를 강구하는데 참고할 만하다.
28) 한국사연구회(편),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하), 지식산업사, 2008.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65
2) 한국근대사 학습내용 요소의 조정
근대사 교육의 내용요소를 조정하는 문제는 내용체계의 재구조화와
맞물려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내용체계에서도 새로운 내용요소의 선정
방식이 필요하다. 누차 지적되는 것처럼 학교 역사교육의 내용선정과 관
련해서 가장 자주 언급되어 온 것은 학습량의 과다였다29). 그래서 교육
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학습내용을 줄이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2015년 9
월 고시된 2015개정교육과정의 내용구성 방향도 학습량을 줄이기 위해
중학교는 사실나열식 구성을 지양하고 주제사 중심으로 하되, 중학생의
발달단계에 따라 꼭 알아야 할 주제를 선정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
성했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고등학교는 정치사를 중심으로 구성하고 이
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으로 사회·경제·문화사 내용을 포함하되, 정치·
토지제도 등 제도사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만 제시하여 학습량을 조절하
였다고 한다.30) 이런 취지대로 실제로 학습내용의 양이 줄어들지는 교과
서가 개발되고 교실수업에 적용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학수학능력
시험과 같은 입시에 어떤 내용들이 출제되는지도 한 몫을 할 것이다. 그
렇지만 교육과정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학습량의 조절을 위한
내용요소의 선정 방향이다. 2015개정교육과정을 비롯하여 이제까지 교육
과정을 개정할 때 내용요소를 조정하는 방향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
지고 있다.
첫째,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보다는 ‘무엇을 뺄 것인가?’가 내용선정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기존의 교수요목을 그대로 둔 채 제외할 내용요소
29) 사실 이런 비판은 비단 한국의 학교 역사교육에 대해서만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
회현상과 원리를 다루는 일반적인 사회과학 과목들과는 달리 ‘역사’라는 과목의 성
격상 텍스트의 내용이 곧 수업내용이 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
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이 글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학교 역사교육이 지나치게 많은 사실을 다룬다는 점에 대해서는 역사전공자나 역사
교사들 사이에서도 폭넓은 공감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30) 진재관 외, 2015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5, ⅳ쪽.
166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를 논의의 기초로 삼는다. 한국근대사 내용체계가 크게 바뀌지 않은 이
유 중 하나이다.
둘째, 어떤 분야나 주제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학습량을 줄이고자 한다.
학교급별로 특정 분야사나 주제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일부
주제나 분야를 배제한다고 해도 남게 된 주제나 분야의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다룬다. 결과적으로 제외된 범주의 역사적 사실은 거의 배우지
않는 대신, 선택된 주제나 분야의 역사는 여전히 사실을 망라하여 기억
하는 역사교육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기계적으로 분야사에 접근한
나머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상호 관련 속에서 다루어야 할 역사적 사
실을 인위적으로 분리한다. 예를 들어 1920년대 민족주의자들의 대표적
인 실력양성운동인 조선물산장려운동은 경제사로, 민립대학설립운동은
문화사로 나누어 서술함으로써31) 민족운동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셋째, 교과서 내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구체적 사실을 빼고 요점만을
정리해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까 다루는
내용 범위는 별로 줄어들지 않은 채 구체적인 사실을 생략하고 결론만
추상적으로 제시하여, 서술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32)
예를 들어 초등 사회 교과서는 개항 이후 외국 문물 도입을 위한 조선
의 개화시책을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개항 이후 조선은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근대 문물을 적극적
으로 받아들였다. 먼저 일본과 청에 사절단과 유학생을 보내 무기 제조
기술과 근대적 제도를 배우려고 하였다.33)
31) 분야사 체제를 취하고 있는 2006년에 간행된 고등학교 한국사의 경우, 물산장려운
동은 ‘민족 경제 운동’으로 경제사에(182쪽), 민립대학설립운동은 ‘민족교육 진흥운
동’으로 문화사에(325쪽) 서술하고 있다.
32) 김한종, 「한국역사교육의 쟁점과 새로운 방향」, 한국의 미래 역사교육과 교과서,
한국사연구회 주관 역사교육심포지엄 자료집, 2016.6.28, 6쪽.
33) 사회6-1, 교육부, 2016, 62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67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에서도 일본에 수신
사와 조사시찰단, 청에 영선사를 파견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다만 사절
단의 이름과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이를 서술할 경우 학
생들이 기억해야 할 학습내용이 되어서 부담이 되리라고 우려한 것이지
만, 역사의 흐름이나 역사적 사실을 이해할 수 없는 서술내용이다. 결과
적으로 학생들은 추상적인 서술내용을 그저 외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은 한국사 교육 전반에 걸친 것이지만, 근대사 교육에서
특히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지나치게 많은 사실 때문에 학생
들이 느끼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습량의 감축을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
리가 높기 때문이다. 기존의 근대사 내용구성 체계를 그대로 둔 채 일부
내용요소를 제외하면, 근대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고 역사 서술이 추
상화, 파편화 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이런 식의 내용선정보다는 오히
려 근대사의 내용체계를 구조화하고 근대사의 이해를 위한 스토리라인
을 마련한 다음, 이에 해당하는 사실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내용을 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가르칠 것인지를 내용선정의 기준으로 삼
아야 하는 것이다.
3) 근대사 학습내용의 보완
역사교육이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망라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한국근
대사 연구의 성과나 동향에 비추어 오히려 보완할 내용들도 눈에 띈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첫째, 근래에 강조되는 생활사의 내용이다. 근·현대의 사회변화에 따
라 구체적인 생활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완할 필요가 있다. 2000년
대 이후 교육과정이 바뀌고 교과서가 개편될 때마다 근대사에서 생활사
내용은 꾸준히 늘어났다. 생활사는 학생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근래 역사연구나 역사교육의 경향이기도 하다. 교과서에서 생활사 내용
은 주로 읽기자료나 탐구활동의 형태로 제시되다가 점차 독립적인 절로
168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편성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나 시대적 맥락 속에서 사회구성원의
삶을 서술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다 보니 생활모습의 변화를 나열식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에서는 서구와 일제에 의한 근대화의 산물
로서 의식주 생활의 변화가 초래되었으며, 도시의 변화와 더불어 의생활과
주생활에서 소위 ‘근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통은 낙후된
것이고, 근대는 발전된 것이라는 잣대가 적용된다.34) 또한 생활사를 늘리
는 것이 문명개화의 관점에서 근대사를 이해하게 만들어서 제국주의나 일
제의 침탈을 옹호하거나 희석시킬 우려도 있다. 구체적인 생활모습을 통해
역사변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민족운동과 민중운동의 보완이다. 민족운동이나 민중운동은
2000년대 이전보다 교과서 서술에서 크게 늘어났으며, 교실수업에서도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민족운동이나 민중운동에 대한
서술은 충분하지 못하다. 개항 이후 고종 연간에 농민봉기가 있었음은
대부분의 교과서들이 서술하고 있지만35) 매관매직 등 관리들의 부패와
농민 수탈, 외세의 경제적 침투 등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는 일반적인
서술뿐 구체적인 사실을 소개한 교과서는 없다. 동학농민운동 직전에 일
어난 농민봉기의 서술은 교과서마다 차이를 보인다. 활빈당이나 남학당,
영학당과 같은 광무연간의 농민항쟁도 마찬가지이다. 1920년대 이후 조
선공산당을 비롯한 사회주의계의 운동, 1930년대 대중운동 등도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검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도 출판사에 따라 서
술 비중에 차이가 있다.
셋째, 사회적 소수의 역사에 대한 학습이다. 근래 소수(minority) 또는
타자(others)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의 주류에 의해
소외당하고 억눌리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역사가 강조되는 것이다. 가
34) 왕현종, 「‘수정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개편내용과 근대사 서술 비판」, 역사교육
99, 2006, 46쪽.
35) 2014년에 간행된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중 교학사판 교과서를 제외한 7종
이 이런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69
장 대표적인 경우가 여성사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들도 민족운
동이나 사회운동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한 일부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혜석과 같은 신여성의 주장이나 삶을 소개하거나 여성운동을 서술하
는 것은 이런 경향을 반영한다. 그렇지만 한국근대사 교육에서 아직까지
여성의 주체적인 삶은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의 역사를 하나의 토픽으로
다룰 뿐이지, 역사의 흐름 속에 녹이고 있지 못하다. 이는 남성중심적 접
근이나 여성삽입적 관점으로, 젠더 통합적 접근이나 여성중심적 접근은
아니다. 여성의 독특한 경험이나 인식에 가치를 두지 않고 남성중심의
역사 서술 수단으로 여성 이야기를 넣거나, 남성 중심의 스토리에 여성
의 존재양식 변화, 역할, 공헌, 활동을 끼워 넣고 있는 것이다.36) 그러다
보니까 여성의 관점에서 근대사의 변화를 서술하거나 근대 여성의 활동
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내용분량도 교육과정의 변화에 따라 바뀌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청년이나 어린이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교과
서들은 3·1운동 이후의 청년회 운동이나 사회주의계 청년운동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렇지만 1920년대 사회운동의 한 부분으로 청년운동을
다룰 뿐이다. 그 밖의 역사에서 청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회 운동마
저 아예 서술하지 않은 교과서들도 다수이다. 어린이 역사의 경우도 비
슷하거나 오히려 관심 대상에서 더 배제되어 있다. 1920년대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방정환이 전개한 어린이 운동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는 정도
이다.37) 더구나 방정환의 어린이 보호 운동을 강조한 나머지, 어린이는
나약하며 보호받아야 할 미숙한 존재라는 인식만을 보이고 있다.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주체적인 어린이는 역사교과서에 없다. 청
36) 두 관점의 자세한 성격이나 역사교육에서 젠더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개념은 다
음의 글을 참조. 강선주, 「역사교육에서 젠더에 접근하는 개념적 틀」, 역사교육연
구 8, 2008.
37) 예를 들어 가장 학생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래엔이 간행한 고등학교 한국
사교과서에서는 ‘청년·학생운동이 활발해지다’와 ‘소년운동, 아이에서 ‘어린이’로’라
는 소항목에서 1/3쪽 정도 서술하고 있는 정도이다.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들도 비슷
하다. 한철호 외, 고등학교 한국사, 미래엔, 2014, 270쪽, 279쪽.
170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소년이나 어린이는 한국사에서 소수자에 해당하지만,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동료’이다. 역사 속에서 이들의 삶과 활동은 학생
들에게 사고 경험을 촉진시킬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더구나 근대사에
서 어린이와 청년은 사회적 존재의식을 새롭게 하고 역사 변화에도 능동
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런데도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같이 사건 속에서만
나올 뿐, 사회적 존재로서 이들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들이 만든 역사
적 사실을 알고, 이들의 생각을 되짚어보고 활동을 평가할 때 학생들의
사고 활동은 촉진될 수 있으며, 역사의 의미도 중요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학교사도 근대사 교육에서 보완될 필요가 있다. 근대사
에서 학교 교육은 소년이나 청년들이 사회적 주체로 자리를 잡는데 중요
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학교 교육은 근대 국가가 지향했던 이념을 잘 보
여준다. 한국근대사 교육에서 교육사는 민족운동의 일환이나 일제의 침략
정책으로 포함되었다. 그렇지만 학교교육에 나타난 근대국가의 이념이 무
엇이며, 학교교육이 어린이나 청년들의 삶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를 다룰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은 역사교육이 자신의 삶과 직
결되며, 현재 자신의 학교생활이 곧 역사가 된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다만 이런 주제나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나 교실수업에 어떻게 포함시
킬 것인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기존의 근대사 서술 체계 속에 추가로 넣
을 경우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바꾸기보다는 학습내용요소만을 늘리게
할 우려가 있다. 그 대안으로 학교급별 교과서나 수업에 따라서 토픽 중
심으로 내용을 서술한다든지, 주제나 쟁점 중심의 수업을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4. 비판적 사고와 근대사 교육
나열식 역사서술과 암기 중심의 역사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71
기 위해서는 사실 지식 중심의 역사교육에서 사고를 강조하는 역사교육
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역사교육이 과거의 사실을
망라해서 나열하던 것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사고의 경험을 제공해주
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력을 강조하는 것은 인문사회교육의 공통적 특
징이지만, 과거 인간의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역사교육은 특히 이에 적
합하다. 그것이 학교교육에서 역사과목의 지위를 정립하고, 역사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비판적 사고는 역
사교육을 통해 길러야 할 사고방식이다. 역사교육의 목표를 비판적 사고
의 육성에 두어야 한다는 학계나 교육계의 명확한 동의가 있는 것은 아
니지만, 적어도 역사교육의 개혁 방향과 관련하여 비판적 사고는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다.38)
역사교육이 비판적 사고의 육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논의는 한국
근대사 교육에도 해당된다. 역사적 사실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한 인간 행위라는 점은 근대사의 여러 사실들에 적용할 수 있
기 때문이다. 근대사 교육에서 다루는 많은 사실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판단과 동기, 목적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역사적 갈등 상황에서
행위자의 선택을 평가하거나 학습자 자신이 행위자로서 선택을 하는 수
업 방식은 근대사 교육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문호개
방을 둘러싼 박규수의 견해와 최익현의 상소문을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어느 편의 입장이 타당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도 그러한 접근 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학생들에게 양자택일식의 사고를 요구
하는 것보다는, 상황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가능
성을 열어두는 편이 좋다. 당시 조선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을 자료로 제
시하고, 조선정부가 선택할 국가운영의 방향과 정책을 학생들 나름으로
38) 예를 들어 역사학 계간 학술지인 역사비평은 ‘역사교육을 묻는다’라는 특집의 일
환으로 10명의 역사학자들에게 4개의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었는데, 질문 중 하
나는 “역사교육의 목적은 국가(국민) 정체성 형성인가, 아니면 비판적 사고능력 배
양인가?”였다. ‘역사교육과 역사 교과서에 대한 4개의 질문, 10인의 응답’, 역사비
평 107, 2014년 여름호.
172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제안하게 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근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나 근대사 자료를 다원적 관점에서 생각
하는 수업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을 봉오동 전투나 청산리
대첩, 의열투쟁과 같은 성과뿐 아니라 관련된 다양한 인물의 활동이나
삶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근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여성독립운동에
대해 생각해보자. 여성들의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을 학습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살림을 맡았던 정정화나 서간도 삼원보에서 집안
을 꾸려가며 살았던 이상룡의 손부인 허은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정정화
의 일대기39)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과 삶이 나타나 있다. 이야기 내용의 줄거리 자체는 교과서나 독립운동
사 개설서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지만, 여성의 관점으로 내
부에서 지켜본 독립운동가의 삶과 활동, 고민이 담겨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기존의 독립운동사에 비해, 정정화의 글
에서는 임시정부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이를 해결
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정정화의 고민과 활동도 함께 한다. 또한
정정화의 눈에 비친 유명 독립운동가들의 심성도 엿볼 수 있다. 이런 내
용들을 학습자료로 활용하면 기존과는 다른 독립운동의 측면들을 관찰
하고, 독립운동가들의 행위선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경험을 하게 된
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생활과 생
각을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정서적 공감을 할 수 있다. 반면 허은의 회고
록40)은 더 구체적으로 당시 여성에게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허은에게 독립운동의 주된 활동은 집안의 살림을 꾸려
가는 것이다. 일제의 침략과 이에 맞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큰 관심
을 가지고 있지만, 허은은 독립운동을 위해 건너온 사람들의 생활을 도
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집안 살림 걱정
한다. 남성들은 가계 경제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가부장적
39) 정정화, 장강일기, 학민사, 1998.
40) 허은 구술/변창애 기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의 바람소리가, 정우사, 1995.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73
관념은 이곳에서도 여전하다.41) 허은의 삶을 통해 독립운동이라는 하나
의 사실에서 역사의 다양한 측면에 접근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의 행위를 자기 나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역사교과서들도 독립운
동에 참여한 여성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서술하고 있다. ‘민족운동가
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허은의 활동을 소개하고 아직도 내귀엔 서간도
의 바람소리가 내용을 자료로 싣는 것은 그러한 예이다.42) 다만 여성들
도 독립운동에서 크게 활약하거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만을 강조하
는데 그치지 말고, 이들의 삶과 활동을 다양한 관점에서 인식하고 평가
할 수 있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역사적 상황에 대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경험하게 하는 수업도 비판적
사고를 유도하는데 적합하다. 예를 들어 19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개
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국민대표대회에서 개조파와 창조파의 주
장을 비교하는 것보다 당시 임시정부가 처한 상황을 바탕으로 개혁의 목
적과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학생들 나름으로 구체적인 개혁방안을 구상
하게 하는 편이 역사적 사실 자체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비판적
사고의 훈련으로는 효과적이다. 역사적 판단이나 행위 기준을 사회에 적
용하는 것이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서술한 내용이나 대비되는
평가를 제시하고 비교하도록 하는 것도 다원적 관점을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을 한국에서
는 식민지에서 독립하였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그렇지만 중국은 항일
전쟁의 ‘승전’으로, 일본에서는 ‘패전’이나 ‘종전’으로 표현한다. 일본의 항
복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주는 의미가 나라나 민족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41) “식량이 좀 넉넉하면 용도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곳은 항상 소금이 귀해서 그 무
엇보다 비쌌다. 쌀 너 말 갖고 가면 소금 한 말 바꾸어 준다. 그것도 무거운 것을
이고 아주 멀리까지 가야 한다. 나 말고는 갈 사람이 없는데 나는 무겁기도 하고 몸
빠져나올 여가도 없어서 못갔다. 비싸게 앉은자리에서 산다.” 허은 구술/변창애 기
록, 아직도 내 귀엔 사건도의 바람소리가, 정우사, 1995, 129쪽.
42) 김종수 외, 고등학교 한국사, 금성출판사, 2014, 336쪽.
174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이다. 이는 역사해석의 차이보다는 역사교육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이다.
앞에서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한 것처럼, 근대사의 많은 사실들은 역사
인식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며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 역사책이나
교과서의 서술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서는 학생들
에게 역사적 사실의 이러한 속성을 인지시켜야 한다. 또한 교과서를 비
롯한 교재의 내용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는지 분
석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교과서 저자가 어
떤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서술했는지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일제 말 친일행위를 달리 구성한 교과서 내용을 제시하고, 교과서
저자가 의도했던 친일행위에 대한 인식을 추론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역사적 평가의 차이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며, 학생들 자신도 역
사적 사실을 구성하는 주체임을 자각할 수 있다. 그 편이 근현대사 인식
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5. 맺음말
이 글의 목적은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들을 소개하고, 바람직한 한국
근대사 교육의 방안을 모색하는데 있었다. 한국근대사 교육내용의 재구
성 방안으로는 내용체계의 재구조화, 학습내용 요소의 조정, 근대사 학습
내용의 보완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사실 중심의 역사학습에서 비판적 사
고를 위한 역사학습으로 전환이 필요함을 설명하고, 학생들의 비판적 사
고를 유도하기 위한 몇 가지 학습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국근대사 교육이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식
한다. 역사교과서 저자들이나 교실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들도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 결과 한국근대사 교육이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75
이전보다 많은 발전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국근대사 교육은
여전히 커다란 변화를 필요로 한다. 개혁의 방향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
양하다. 근현대사의 비중이 한국사 교육 전체에서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
도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시각도 강하다. 2015개정교육과정 고등학
교 한국사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을 줄인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
은 학계와 교육계의 이런 시각을 보여준다. 역사교과서들 간에는 한국근
현대사의 일부 사실을 보는 관점이나 인식의 차이가 나타난다. 관점이나
역사인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술기조가 다르기도 하다. 이런 차이가 본
문 서술 외에도 읽기자료나 탐구활동 자료의 선택에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하더라도 교사에 따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사상이 다른 경우도 흔할 것이다. 이는 하나의 정답만을 가
지고 있는 수학이나 과학과는 달리, 인간의 행위와 사회현상을 다루는
역사 과목이 가지는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오히려 역사적 사
실의 이런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교사가 구체적인 사실들과 근대사의 흐름에 대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해해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교사들은 서로 다른 평가나 해석이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가
르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인식의 차이를 둘러싸고 사회
적 논란이나 갈등을 빚고 있는 사실이라면 부담은 더욱 크다. 교과서 서
술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부담을 줄일 수 있겠지만, 교과서들 간에 평가
와 서술의 차이가 있거나 국정 역사교과서와 같이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는 경우라면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역사수업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교사의 이해와 역사인식을 개재시키는 것은 불가피하다. 교사는 교육과
정이나 교과서를 재구성하여 수업을 한다. 수업 내용은 교사가 정리한
역사적 사실이다. 현재 사용하는 교과서 외에 다른 교과서나 한국사 개
설서를 참고하고, 사료를 비롯한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
지만 학생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지식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사고활동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이런 고민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학생들이
176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 투고일 : 2016. 9. 30 / 심사완료일 : 2016. 11. 10 / 게재확정일 : 2016. 11. 21
▪ 주제어 : 한국근대사 교육, 한국독립운동사 교육, 한국사 교과서, 한국근대사
내용체계, 비판적 사고
자신의 관점에서 근대사를 이해하고, 역사적 사실을 평가하는 활동이 들
어가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교실수업을 뒷받침하려면 교과서의 내용구
성이나 학교 역사교육의 방향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학습내용의 구성과 자료의 개발도 필요하다. 근대사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행동을 접하고, 이들의 활동이 역사를 변화시키는 동인이었음을 인
식하게 해야 한다. 적절한 자료를 개발하여 학생들에게 이런 사고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이를 통해 인간의 선택과 삶을 생각하는데 흥
미를 가지게 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 학교 역사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
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며, 바람직한 근대사 교육의 방향이다.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7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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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28
178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 국문요약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김 한 종
이글에서는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를 분석하여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으로는 세계사적 맥락을 강조
하는 한국근대사 이해 방법, 틀에 박힌 근대사의 체계와 학습 방안, 한국
근대사 연구성과의 학교 역사교육 반영, 한국근대사 인식을 둘러싼 사회
갈등을 들 수 있다.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한국근대
사를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근대사와 세계사를 어떻게 연결
할 것인지는 교과서마다 차이가 있다. 교과서에서 한국근대사에 영향을
미친 서구 국가들의 정책이나 세계적 상황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교
과서나 교실수업에서 다루는 한국근대사의 체계는 1970년부터 현재까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근대사 연구성과는 한국사교과서에 어느 정
도 반영되었다. 그러나 교과서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동일한 역사적 사
실이 집필기준이나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달라진다. 한국근대사 인식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다. 문호개방과 개화정책의
평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논란, 이승만의 독립운동 등은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들이다.
한국근대사 교육의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내용
을 재구성해야 한다. 한국근대사 교육내용을 재구성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근대사 내용체계를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근대사회가
지향했던 국가나 사회상을 기준으로 근대사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연
구서나 한국사 연구성과를 정리한 역사입문서의 단원구조를 이 작업에
참고할 수 있다.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79
둘째, 학습내용의 요소를 조정해야 한다. 근대사 내용체계를 구조화하
고, 이해를 위한 스토리라인을 마련한 다음, 이에 적합한 사실을 선택해
야 한다.
셋째, 근대사의 일부 학습내용을 보완해야 한다. 생활사, 민족운동과
민중운동, 사회적 소수의 역사를 학습해야 한다.
사실지식 중심의 역사교육에서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역사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역사교육 전반의 과제이지만, 한국근대사 교육에서
특히 필요하다. 한국근대사 교육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도록 하려
면, 다양한 행위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역사적 상황에 대한 판단
과 의사결정을 경험하는 역사수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근대에 일
어난 역사적 사실이나 근대사 자료를 다원적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수업을 해야 한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서술한다
든지 대비하여 평가를 하고, 비교하는 것도 비판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
180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6집
❂ 영문요약
Issues and Tasks of Korean Modern History
Teaching
Kim, Han-jong
This study aims to analyze issues and tasks of Korean modern history
teaching and to suggest some strategies for developing it. Main issues of
Korean modern history teaching are as follows: understanding method of
Korean modern history contextualized in world history, routine framework of
Korean modern history and its learning method, applying research results of
Korean modern history to school history, social conflict around to
recognizing Korean modern history. National curriculum and textbook
emphasize the context of world history for understanding Korean modern
history. But there are some differences of interconnecting with Korean
modern history and world history among history textbooks. The content on
the policy of Western states and world context is not involved in middle and
high school history textbook. Next, the framework of Korean modern history
in history textbook and history classroom has little changed since 1970s.
History textbooks accepted many research results of Korean modern history.
But there are some differences among textbooks, and the description of same
historical facts changes according to writing guideline and through the course
of authorizing textbook. Social conflict around to recognizing Korean modern
history has political nature. The evaluation on the opening of a port and the
enlighment policy, colonial modernity controversy and independent
movement Lee, Sung-man are hot issues in Korean modern history.
한국근대사 교육의 쟁점과 과제 181
We should firstly reorganize learning contents to solve these problems on
Korean modern history teaching. Some strategies to reorganize learning
contents of Korean modern history are as follows.
First, we should restructure content framework of Koran modern history.
We can refer to handbook for studying Korean history and research book
which try to understand the developing course of modern times based on
state vision.
Second, we should control elements of learning contents. We should
structure contents of Korean modern history at first, construct sdtoryline for
understanding them next, and select historical facts suitable to them last.
Third, we should make up for learning contents, for example, history of
nation movement, people movement and the minority.
It is important to transform from knowing historical facts to developing
critical thinking of history education. Critical thinking is necessary for
learning Korean modern history. History teacher provide various experiments
of act to develop students' critical thinking. Students should judge historical
circumstance and select decision-making in history classroom. History teacher
should make history classroom for students to think modern historical facts
or documents with multi-perspective. It is desirable for developing critical
thinking to describe the same historical fact with other’s perspective, and
compare and then evaluate its results.
Key Words : Korean modern history teaching, teaching Korean independent
movement history, Korean History textbook, Framework of
Korean modern history, critical thi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