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金達)[1]
| 유형분류 | 인물 |
|---|---|
| 생몰년 | ?~? |
| 참고자료 | 『宣祖實錄』;『備邊司謄錄』; 趙慶男,『亂中雜錄』 |
| 참고사이트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 |
| 키워드 | 군관(軍官), 군공정(軍功正) |
| 자료문의 | 선문대학교(연구책임자 : 구사회 교수) |
| 설명 | 조선 중기의 군관(軍官). 동래(東萊) 출신. 군공정(軍功正)을 지냈다. 1600년 6월 15일 비변사(備邊司)에서 일본사신의 동태와 일본에 답서를 보내는 일로 아뢰는 글에 의거하면, 동래부사(東萊府使) 김준계(金遵階)가 본사(本司)에 “왜사(倭使)는 지난날 8일 중국 장수 등이 연회를 베풀고 호송한 뒤로 바람이 순조롭지 못하여 절영도(絶影島)에 정박하고 있다가 25일 배가 떠났다. 예조(禮曹)의 서계(書契)에 대한 회답은 군관(軍官) 군공정(軍功正) 김달(金達), 교생(校生) 박희근(朴希根), 통사(通事) 이희만(李希萬) 등을 각별히 간택하여 바람이 자거든 즉시 본사의 분부에 따라 보낼 계획이다.”라고 보고하였고, 이로 인해 김달은 예조의 공문을 가지고 박희근 ∙ 이희만 등과 함께 쓰시마에 다녀왔다. 이 일로 인해 김달은 뒤에 군공참봉(軍功參奉) 박희근과 함께 당상(堂上)으로 승품(陞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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