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옥 장한 에게 답하다〔答崔士玉 鏘翰〕
일찍이 존장(尊丈)께서 나를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과분하게 거듭 찾아주셨으니 마음속으로 흠복(欽服)하여 평상시의 만남에 그치지 않았네. 지금 편지를 받아 보고 두씨(杜氏) 집안에 종문(宗文)이 있음을 알았으니 위안이 됨을 헤아릴 수 없었네. 편지 안의 말뜻이 정중하여 재기(才氣)가 뛰어나고 법도가 삼엄하니 그 아름다움을 헤아려 알 수 있었네. 후윤(厚允)이 또 말하기를, 족하가 집에 있을 때 몸소 온갖 일을 맡아서 하면서 조금이라도 겨를이 있으면 그때마다 글을 읽는다하니, 이것이 참으로 정당한 유자(儒者)의 사업일세. 축원하는 바는 다만 이것들을 감자나 백밀처럼 여겨서, 아주 조금이라도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뜻으로 자신의 허명(虛明)한 마음에 누가 되게 하지 않는다면 훗날의 성취를 어찌 쉽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마디 어리석은 견해를 드린다면, 지자(知者)가 지나친 것이, 상정(常情)으로 보면 어리석은 자가 미치지 못한 것보다 뛰어남이 어찌 월등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인이 한 마디 글귀로 단정하여 그 사이에 차등을 두지 않았으니 이것은 재주가 높은 사람이 가장 두려워 할 곳이네. 바라건대 족하는 ‘근졸(謹拙)’ 두 글자로 필생의 생애(生涯)로 삼으면 거의 허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네. 근굴(根窟)이라고 한 말과 별록(別錄)의 몇 가지 조목은 실로 망양지탄(望洋之歎)이 있으므로 감히 혼미한 견해로 이러쿵저러쿵 의론하지 못하겠으니 꾸짖지 말게. 나는 형상만 남아 있고 정신은 흩어진 지 오래되어 아마도 이 세상에서는 만나 보기 어려울 것 같네. 슬프고 슬프네. 오직 천만번 자애(自愛)하기 바라네.
曾往,過蒙尊丈不鄙至再,欽服心藏,非尋常逢迎而止。今承惠幅,乃知杜家元有宗文,慰不可量。幅中辭旨鄭重,才氣之俊邁,規矩之森密,約綽可測認。厚允又言足下居家,躬親百役,小暇輒佔畢,此眞正當儒業。所祝但當以此爲甘蔗、白蜜,勿以一分厭苦之意,累我虛明之地,則異日所就,豈易量哉?
更有一言貢愚,知者過之,以常情觀之,其賢於愚者不及,豈不遠哉?然而聖人一筆句斷,不等差於其間,此才高者最可畏處。願足下以謹拙二字,爲畢生生涯,則庶幾免夫。根窟之云及別錄數條,實有望洋之歎,不敢以昏翳之見,上下其論,勿嗔。鄙生形殼尙留,精神消散久矣,懸知難於此世接面。悵悵。惟千萬自愛。
[주-D001] 종문(宗文) :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맏아들로, 시에 뛰어났다고 한다.
[주-D002] 후윤(厚允) :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자이다. 본관은 초계(草溪), 호는 노백헌(老柏軒)이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삼가(三嘉)에 살았다.
[주-D003] 근굴(根窟) :
《주역》 〈역본의도(易本義圖)〉에 “모름지기 월굴을 더듬어 보아야 사물을 알 수 있고, 천근을 밟지 않고 어찌 인간을 알까. 건이 손을 만날 때 월굴을 보고, 지가 뇌를 만날 곳에 천근을 볼 수 있다. 천근과 월굴이 이 사이에 왕래하니,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로다.[須探月窟方知物, 未躡天根豈識人? 乾遇巽時觀月窟, 地逢雷處見天根. 天根月窟閒來往, 三十六宮都是春.]”라고 하였다. ‘월굴’은 달에 있는 굴이라는 뜻으로 음의 시작을 가리키며, 천근은 하늘의 뿌리라는 뜻으로 양의 시작을 가리킨다. 음양의 소장(消長)은 천지와 인물의 생성원리가 되므로 월굴과 천근을 알아야 사물과 인간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주-D004] 망양지탄(望洋之歎) :
남의 위대함을 보고서 자기의 초라함을 탄식하거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개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하백(河伯)이 북해(北海)에 이르러 바다를 보고 자신의 견문이 좁음을 탄식하였다고 한다. 《莊子 秋水》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ㆍ조선대학교 고전연구원 | 박명희 안동교 김석태 (공역)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