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諭中外大小臣庶綸音 1782년(정조 6) 12월 27일 반포한 윤음이다./원문과 번역문 첨록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2.09.25|조회수30 목록 댓글 0

諭中外大小臣庶綸音 유중외대소신서윤음 

 

宋德相 사건 뒤에 湖西‚ 海西의 獄事와 李澤徵‚ 李有白‚ 文仁邦‚ 李京來 등의 逆變이 잇따라 일어나자‚ 宋德相의 일에 대해 속시원히 밝혀 더 이상 백성들이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1782년(정조 6) 12월 27일 반포한 윤음이다. 宋德相은 宋時烈의 후손으로서 당시의 權臣 洪國榮을 추종하여 높은 벼슬에 오른 인물이다. 1778년(정조 2) 홍국영이 정조의 妃 孝懿王后가 후사가 없는 것을 기화로 자신의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 元嬪으로 삼았으나 元嬪 洪氏는 1년 만에 20세도 못 되어 病死하였다. 이에 홍국영은 정조의 동생인 恩彦君의 아들 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 完豊君에 봉하고 왕의 후계자로 삼도록 하여 세도정권을 유지하려 하였다. 그리고 홍국영은 正祖妃 孝懿王后가 원빈 홍씨를 살해했다고 정조에게 모함했다가 오히려 정조의 미움을 받게 되었으며‚ 송덕상은 1779년 6월 18일 올린 上疏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가 凶逆의 뜻이 있다 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후 사태가 수습되지 않고‚ 송덕상을 추종하던 무리가 여러 차례 逆變을 일으켰다. 이에 정조는 이러한 변란의 씨앗이 된 송덕상을 처형하고 그 동안의 사정을 백성들에게 밝혀서 민심이 더 이상 동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윤음을 반포하게 된 것이다. 홍국영과 송덕상의 일로 고민했던 정조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윤음은 실록의 1782년(정조 6) 12월 27일條에 실려 있는데 다음 날 반포된 <崇儒重道綸音>과 함께 합철되어 있는 책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 둘이 함께 간행된 듯하다. 그러나 <숭유중도륜음>은 언해본이 없고 이 <諭中外大小臣庶綸音>의 언해본만 존재한다. 한문본은 丁酉字로‚ 언해본은 丁酉字 병용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유중외대소신서륜음> 한문 9장‚ <숭유중도륜음> 한문 3장‚ <유중외대소신서륜음> 언해 17장‚ 도합 29장이 합철되어 있는 책이 대부분이다. 언해만 해도 17장이므로 정조대의 윤음언해 중 분량이 많은 편이다. 이 윤음의 언해문에 나타난 언어 사실은 정조대의 다른 윤음언해들과 마찬가지로 18세기 말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표기에 있어서는 분철 경향이 강하고[으미(1b)‚ 이(7a‚7b‚16b)‚ 혀(13a)] 재음소화 표기도 간혹 나타난다[일히(事端‚1a) 히(2a)]. 원순모음화[헐리고(1a‚9a‚12a)]‚ 자음동화[경(京來‚1a‚10a)‚ 낙(7b‚10a‚10b)]도 표기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ㄴㄹ’연쇄는 현대국어처럼 ‘ㄹㄹ’로 역행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ㄴㄴ’으로 순행동화되어 나타난다[산님(山林‚5a)‚ 탄노니(綻露‚7b)‚ 문니(文理‚7b)‚ 운냥관(運糧官‚9b)‚ 년누믈(11b)‚ 년(年來‚12b)‚ 간년니(株連‚17a)]. ‘ㅎ’ 말음 체언의 말음 ‘ㅎ’이 간혹 탈락되기도 하며[하늘을(1a)]‚ 체언 어간말의 ‘ㅌ’이 ‘ㅊ’으로 재구조화된 예[츨(2a‚2b)]‚ 용언 어간말의 ‘ㅏ’가 ‘ㅐ’로 재구조화된 예[오랠(2b)‚ 오래도록(3a) cf.오란지라(6a)]도 보인다. 부사 ‘널니’(3a)와 ‘넓이’(15b)가 공존하고 있다. 조사 ‘-쳐로’의 예가 나타나고[람에 과 쇼쳐로(12b)‚ 곤 즘쳐로(12b)]‚ 속격 조사는 ‘-의’로 거의 통일되어 가고 있다[두 남녁 나라희 교홰(2b)‚ 뎐하의 집일(3b)‚ 폐하의 집일(3b)‚ 나의 은혜의 덕을(16a)‚ 난의 근본(16b)]. 조사 ‘-지’가 보조사로 쓰인 예도 여럿 보인다[잡기지 니른즉(4b)‚ 당홰란 말지 나기에 니미라(11b)‚ 대궐을 범 거조지 니르히(12a)]. 명사문의 의문문에 의문 조사를 쓰는 경우[므어슬 침고(5a)]보다는 계사 활용형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몃 번이뇨(1a) cf. 몃 번고.‚ 챵고(4b)‚ 연괴 엇지미뇨(11a)]. 의존명사 ‘쟈’(者)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예가 많이 보인다[미처 능히 못 쟈(1a)‚ 그 운운이란 밧 쟈(4a)‚ 쾌히 나라 형벌을 베 밧 쟤라(9b)‚ 대션을 삼고져  밧 쟤(10a)]. 명사형 어미 ‘-기’의 용법이 중세국어에 비해 많이 확대되어 현대국어에서는 ‘-기’가 쓰이기 어려운 자리에까지 쓰인다[져근 일이 크기 서리로 얼음 됨 단 말이라(1b)‚ 그 만키 이긔지 못니(3b)‚ 만이 도모기 죡지 못야(6a)‚ 필경에 네 글로 고치기 나의 말니기 인연 연괴라(7b)‚ 진졍고 평안키로 읏듬을 삼아(16a)]. 중세국어의 ‘-디 어렵-’ 구문은 ‘-기 어렵-’ 구문으로 대체되었다[알기 어려온즉(3b)‚ 용납기 어렵거늘(4b-5a)]. 반사실적 가정의 ‘-던들’[진실노 그 계 시러금 던들 나라히 엇지 오날이 이시리오(6a)]‚ 보조동사 ‘보-’와 ‘주-’의 예가 보이며[흔드러 볼 계교(3a)‚ 죵시를 보젼야 쥰 쟤(6b)]‚ 동사 ‘알-’이 의문문을 보문으로 취한 특이한 예도 나타난다[이런 일이 잇가 아라(4a)]. 심리 형용사에 ‘-어 -’가 결합된 구성이 많이 나타나는데[살기 죠하고 죽기 아쳐믄(10b)‚ 두려워(11b)‚ 두려워랴(13a)] ‘두려’(11a)나 ‘두려며’(14b) 같은 형식은 오히려 적은 편이다. 한문 원문의 동사 ‘及’을 부사 ‘밋’으로 언해한 특이한 예가 보인다[밋 그 말이 실어금 발뵈지 못즉(5a)‚ 밋 일이 난 후(11a)]. 부사 ‘잠간’은 중세국어에서처럼 시간 부사 외에 정도 부사의 용법도 가지고 있었다[잠간 문니 아 쟈(7b)]. 특이한 어휘의 예를 들어 보면 ‘왼 셰샹을’(一世‚ 8a)‚ ‘의신이라’(矣身‚ 8b)‚ ‘몹슬’(不逞‚ 11b)‚ ‘ 되’(以爲‚ 13a)‚ 부사 ‘졔일’(第一‚ 13b)‚ ‘호조참판을 여’(4b)‚ ‘발뵈지’(售‚5a‚ 9a)‚ ‘손’(手段‚ 6a)‚ ‘덤벙이단 말이라’(14a)‚ ‘맛지 졍당미’(稱停‚ 14a)‚‘몸바드며’(體‚ 16a)‚‘된 배’(2a)‚ ‘냅드리오’(闖發‚ 4a) 등이 있다. (박진호)

 

본 자료는 弘齋全書卷三十一 / 敎二 에 수록된 글로 諭中外大小臣庶綸音와 같은 글입니다

편집자가 첨록 했습니다.  낙민 장달수

 

 

서울과 지방에 통렬히 유시하는 하교

 

조정에서 송덕상(宋德相)의 일로 한 번 통렬히 유시하고자 하였으나 아직까지 하지 못하였던 것은 진실로 차마 붓을 더럽힐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 사단(事端)이 층층이 발생하여 의혹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으니, 만약 끝내 유시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백성을 속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개 송덕상의 일이 일어난 뒤 역변(逆變)이 일어난 것이 몇 번 된다. 호서(湖西)와 해주(海州)의 옥사는 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임금을 욕하는 무리로는 이택징(李澤徵)과 이유백(李有白)이 있었고 계책을 꾸며 군사를 일으키려 한 무리로는 문인방(文仁邦)과 이경래(李京來) 등이 있었다. 이들이 비록 안면을 싹 바꾸기는 하였지만 실제로는 같은 속셈을 가지고 있어 송덕상을 근본으로 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아, 나 과인은 정성이 완악한 사람들을 감화시키기에 부족하고 밝음이 간사한 짓을 살피기에 부족하여 처음부터 서리를 밟으면 얼음이 얼 때가 온다는 경계를 소홀히 하여 하늘을 업신여기는 흉적들을 길러 내었다. 그러나 징토(懲討)를 다 끝내기도 전에 남은 흉얼(凶孼)이 더욱 치성하였으니, 가만히 그 이유를 궁구해 보면 오히려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러나 조정에서 수모를 당한 것이나 송덕상이 역모를 한 것은 이택징과 이유백의 무리가 날뛰어 마지않은 것과 함께 또한 자연 본말이 있다.
대개 부부(夫婦)가 있고 난 뒤에 부자(父子)가 있고 부자가 있고 난 뒤에 군신(君臣)이 있으니, 군신과 부자의 도리는 실로 부부에 근본을 둔 것이다. 부부란 인륜 가운데에서 큰 것이고 천지의 떳떳한 도이므로 《예기(禮記)》에서 군자(君子)의 도는 부부에서 발단한다는 뜻을 드러내었고, 《주역(周易)》에서 수레가 바퀴살이 빠지면 갈 수 없듯이 부부가 서로 반목하면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경계를 전하였다. 여염의 서민들도 오히려 함께 부부의 도리를 돈독히 하려 하는데, 더구나 숭고한 지위에 있으면서 치국평천하의 기초를 다지는 사람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음양(陰陽)이 어그러지면 비가 내리지 않고 궁곤(宮壼)이 올바르면 교화가 흘러 퍼지는 법이니, 이 때문에 요임금이 자기의 딸을 순임금에게 시집보내어 법도를 살펴보고, 《시경(詩經)》의 관저장(關雎章)이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맨 앞에 있는 것이다. 부부간에 지조를 지켜야 오래간다는 도리는 예로부터 성철(聖哲)이 권면하였던 것이니, 내 비록 부덕하나 어찌 혹 이에 대하여 소홀히 하겠는가.
그러나 동궁에 있을 때부터 이에 대해 말이 많은 것을 미워하였다. 중전의 예법은 전과 다름없었으나 외부에서 하는 말들이 분분하였으니, 대개 내가 병신년의 역당(逆黨)에게 미움을 많이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간사한 정상이 다 드러날 것을 꺼려 은혜를 저버리고 배반하려는 흉계를 품어 널리 거짓말을 퍼뜨려서 뒤흔들어 보려는 계책을 꾸미려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궁궐의 일은 매우 은밀하여 외부 사람들이 알기 어려우니 더욱 속여 무함하기가 쉽고 흑백을 뒤섞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근거 없는 비방과 망녕되이 추측한 말들을 크게 떠벌려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므로 항상 춘방(春坊)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적게 하였고, 마침내 《명의록(明義錄)》에 실어 그들이 역모를 꾀한 단안(斷案)으로 삼았으니, 이를 본 사람은 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해년 여름에 송덕상이 ‘전하의 집안일이다’라는 설을 나에게 말하였다. 이른바 ‘폐하의 집안일이다’라는 것은 어떤 때 한 어떤 말인데 감히 이런 말을 경연 석상에서 느닷없이 한단 말인가. 대개 이때 상변(喪變)이 일어나자 권력을 가진 간사한 무리들이 감히 말해서는 안 될 지위에 대하여 의심하여 비밀리에 운운하는 말을 올렸는데, 그 운운한 바에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므로 내가 엄한 말로 물리쳤다. 그때 여염에서는 와전된 말이 크게 퍼져 베 저자를 닫고 모자 만드는 장인들이 피신하였는가 하면 심지어 관리로 있는 자들까지 진짜로 이러한 일이 있는 줄 알고 미리 장수(匠手)를 붙잡기까지 하였는데, 송덕상이 이때 호조 참판으로 있으면서 권력을 가진 간사한 자들과 서로 번갈아 말을 퍼뜨리면서 예사로운 일처럼 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또 며칠 후에 입시하여서 멋대로 말을 꺼내었으니, 이것이 과연 어떠한 심보란 말인가.
아, 이러한 말들이 어쩌다가 이르게 되었단 말인가. 이는 실로 내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할 부분인데, 내가 체모를 같이하고 존귀함을 나란히 하는 사람은 신하들의 국모(國母) 소군(小君)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불측한 마음을 싹틔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 이 한 가지 일만 가지고도 실로 이미 천지 사이에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가 그 말이 이미 뜻대로 효과를 이루지 못하자 더욱 급하게 꾀를 꾸며서 또 은밀히 운운한 바가 있었는데, 송덕상이 ‘모양도리(某樣道理)’라는 넉 자를 가지고 장주(章奏)에 올렸다. 이른바 모양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아, 이 두 사람은, 하나는 서연(書筵)의 예전 관료로서 익대(翊戴)한 공로를 자부하는 사람이고 하나는 선정(先正)의 후손으로 오랫동안 산림(山林)이란 이름을 훔치고 있었던 사람이다. 나는 가상히 여기는 뜻을 돈독히 하여 의지하여 맡긴 바가 이미 중하였고, 옛날을 생각하는 뜻을 미루어 조정으로 올라오라고 부르기를 부지런히 하였다. 이는 대개 고락을 같이하는 세신(世臣)을 예우하여 편안하고 부유하며 존귀하고 영화롭게 해 주어 그 자손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혹 와주(窩主)가 되기도 하고 혹 우익(羽翼)이 되기도 하여 안팎으로 체결해서 대단한 기세를 부리면서 조정이 자신들의 지시를 어기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또 임금을 손바닥에서 가지고 놀 수 있으리라 여겨 나로 하여금 태아검(太阿劒)을 거꾸로 쥐고 한갓 빈자리만 지키고 있게 하려 하였으니, 빼앗지 않고는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는 형태가 점진적으로 계속되어 왔다.
종묘와 사직의 대계(大計)는 오직 저사(儲嗣)를 안심시키는 한 가지 일에 달려 있는데, 상변(喪變)이 일어난 초기부터 그자들은 감히 힘을 다하여 가로막고 나섰으니, 그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는 길 가는 사람도 모두 알 수 있었다. 몰래 도모하는 것도 부족하여 이렇게까지 앞장서서 근거 없는 말을 퍼뜨려 임금을 무시하는 흉악한 꾀를 멋대로 부리고 국권(國權)을 옮기려는 수단을 드러내 놓고 시험하려 하였으니, 진실로 그 계책이 조정에서 실행되었다면 어찌 오늘날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도리에 어긋나는 말은 비록 연석(筵席)에서는 감추고 하지 않았으나 음흉한 자취는 이미 장주(章奏)에서 드러났다. 나라에 법이 있다면 어찌 잠시라도 용서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장래를 보장해 주고서 권력을 내놓도록 한 다음 향리로 돌아가 편안히 지내도록 하고 일체의 범죄는 묻지 않도록 하였으니, 내가 끝까지 곡진히 보호해 주려고 한 것이 또한 지극하였다 하겠다. 이 어찌 나라의 작은 은혜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 도당은 안으로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밖으로는 신구(伸救)해야 한다는 설을 외치면서 ‘모양도리’ 넉 자에 대한 주석을 만들어 내어, 이 넉 자는 곧 중전(中殿)의 의약(醫藥)의 방법과 명문(名門)에서 간택한 일을 가리키는 것이지 다른 게 아니라고 하였다. 간택의 일은 그자들이 힘껏 저지했었으니, 감히 이 때문에 이 말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의약의 방법이라 한 것은 그 ‘전하의 집안일’이라고 아뢴 것과는 어찌 그리도 상반된단 말인가. 과연 이 의약과 간택 두 가지 일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어째서 명확히 말하고 정확히 논하는 것을 꺼려 짐짓 이와 같이 머리를 감추고 말하는 법을 썼겠는가. 비록 원소(原疏)만을 가지고 보아도, 말의 맥락이 따로 있고 가리키는 뜻이 저절로 드러나 있으니 문리(文理)를 조금만 아는 자라면 모두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위소(衛所)에서 주고받은 말은 전에 이미 들었는데, 그 상소의 초본 또한 위소에서 나왔다. 초본에서 운운한 바는 이번 상소에서 넉 자를 가지고 머리를 감춘 어법을 쓴 것과는 같지 않았으나 마침내 이 넉 자로 바꾸었으니, 내가 만류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일찍이 위소에서 들은 설이나 초본에서 본 말을 가지고 조정의 신하들에게 명확히 유시하지 않고 그 죄를 성토하는 말에서 단지 넉 자만을 언급하였던 것은 그들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만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랬을 뿐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이 넉 자뿐이니 오히려 흐지부지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너무도 이치에 가깝지 않은 말로 한 세상을 혼란시키려고 하였으니, 흉악하고 교활한 정상이 참으로 심하였다. 이는 호서(湖西)와 해서(海西)의 죄수가 스스로 왕법을 범한 까닭이었는데, 이택징(李澤徵)의 흉악한 말과 권홍징(權泓徵)의 급서(急書)와 문인방(文仁邦)ㆍ이경래(李京來)의 흉모(凶謀)와 역절(逆節)이 또 서로 잇달아 나왔다.
대개 이택징이 전에 범하였던 바가 이미 너무도 흉참하였는데, 그의 일기(日記) 가운데 운운한 바로 보면 또한 위를 범하려는 부도(不道)한 마음을 평소부터 쌓아 와 김상로(金尙魯) 무리의 속셈과 다름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중전을 범한 말은 더욱이 불측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장전(帳殿)에서 ‘저[矣身]’라고 칭하지 않고 ‘나[我]’라고 칭한 것과 옥중에서 ‘국가(國家)’라고 말하지 않고 ‘그것[渠]’이라 하였으니, 실로 역사가 있게 된 이래로 들어 보지도 있지도 않았던 바이다. 또 더구나 뇌물로 이유백(李有白)과 결탁하여 같이 계책을 세워 잇달아 일어났으며 근거도 없는 거짓말을 꾸며 내어 오로지 욕하는 것만을 일삼았다. 내전(內殿)을 지목하여 배척한 말들은 모두 그자들이 일찍이 꾸며 왔으나 끝내 감히 쓰지 못하였던 바인데, 도리어 과인에게 허물을 돌리고 흠잡을 거리로 삼아 선동의 계책을 쓰려 하였다. 더구나 권홍징의 일에 이르러서는 어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종이에 가득한 욕설과 비방 가운데 과인에 관계된 것은 우선 놓아두더라도 고금에 걸쳐 없었던 너무도 흉악하고 어그러진 말로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지위에 대하여 언급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피눈물을 머금고 그날로 친히 국문(鞫問)하여 나라의 법을 쾌히 시행하였다.
또 문인방 같은 자는 처음에는 요망한 말을 지껄이도록 앞장서서 사주하여 인심을 현혹하고 끝에 가서는 천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흉악한 꾀를 이리저리 폈다. 아무개를 대장(大將)으로 삼고 아무개를 선봉(先鋒)으로 삼고 아무개를 운량관(運糧官)으로 삼으며, 어디에서 병사를 일으켜 어느 군(郡)과 어느 영(營)을 약탈하고 어느 길을 경유하여 대궐을 범한다고 한 것은 부서(部署)가 이미 정해지고 시일이 기약되었던 것인데, 그들 우두머리의 맥락은 이미 역적 이택징과 이어져 통하는 것이었다. 또 일이 이루어진 뒤에 추존(推尊)하여 대선생(大先生)으로 삼으려고 하였던 자는 바로 송덕상이었다. 그 이른바 대장 이경래는 또한 역적 이택징의 처조카인데, 6도(道)와 연결하여 무리를 불러 모아 겁탈한 다음 곧장 서울을 향하여 올라오려고 하였다는 일 등은 문인방의 말과 한 입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단지 송덕상이 죄지은 몸으로 있어 구출하기에 급급하여 이와 같이 계획을 꾸몄다고만 공초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그동안의 옥사의 정상이 어찌 한 꼬치에 꿰인 듯 서로 맥락을 같이하여 모두 송덕상을 뿌리로 삼은 것이 아니겠는가.
아, 살고자 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한 것이니, 진실로 피붙이나 죽음도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니면 그 누가 흉역에 물들려 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 하늘 끝과 땅 모퉁이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들도 한 덩어리로 뭉치고 선봉에 있는 자나 후미에 있는 자처럼 처지가 다른 자들도 마음이 딱 맞아 하나가 되어 뿌리와 줄기가 단단하게 결성되고 맥락이 관통하여 차라리 적도(賊徒)가 될지언정 나라의 신하가 되려고는 하지 않으니, 이는 그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송덕상 같은 자는 죄를 짓지 않고 있을 때에도 그의 친지들이 모두 그 학식이 없는 자가 나라의 부름을 욕되게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사단이 터지고 나서는 다만 대가(大家)의 후예라는 이유로 조정에서 차마 사형을 시키지 못하고 가볍게 귀양 보내는 벌에 그쳤으니, 대개 책할 것도 없다는 뜻에서였다.
그런데 저 내막을 모르는 먼 곳의 무리들은 송덕상이 죄를 받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도 함께 걸려들어 죄적(罪籍)에 기록될 때 자신들까지 똑같이 적히고 법사(法司)에서 연좌시킬 때 자신들의 집에까지 미치게 될까 두려워하여, 평소 절친하던 자나 그렇지 않은 자를 막론하고 모두 일단의 의구심을 품었으니, 이는 내가 예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호서와 해서의 죄수 공초에서 당화(黨禍)의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비록 얼굴도 평소 모르는 사이라도 자신에게 직접 서로 관계되는 의리를 갖게 되었다.
이에 진짜 착하지 않은 무리들이 그 기회를 인하여 현혹시키고 두려워하게 만들어 그 의구심을 가중시켰다. 의구심이 가중되면 비호하고 아끼는 뜻이 깊어지고, 비호하고 아끼는 뜻이 깊어지면 원망하고 비방하는 생각이 일어나고, 원망하고 비방하는 생각이 일어나면 겨루어 이기려는 계획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역절(逆節)이 흐지부지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도 반드시 흐지부지되게 하려 하고 거괴(巨魁)를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도 반드시 구제하려 하여, 하늘을 욕하고 해를 꾸짖으며 군사를 일으켜서 대궐을 범하는 일을 또한 모두 저지르려 한 것은 진실로 이 때문이었다.
아, 어쩌면 그리도 어리석게 미혹되었단 말인가. 배척할 자는 송덕상에 그칠 뿐이고 죄를 줄 자도 송덕상에 그칠 뿐이니, 보통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근년 들어 위차(位次)를 변경함이 없고 시행한 조처가 예전 그대로였으니 조정의 뜻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여 서로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궁지에 몰린 맹수가 반드시 덤벼 싸우려 하는 것 같은 일을 한단 말인가. 지금 1백 가구가 사는 마을에 한 사람이 도둑질을 하였는데 남들이 장차 한 사람 때문에 1백 가구를 의심한다고 1백 가구도 장차 스스로 의심하고 두려워한단 말인가. 망녕되이 스스로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그 도둑을 비호하고 그 도둑을 도둑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둑을 감추어 준 데 대한 벌을 면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가 도둑임을 밝혀 마을에서 내쫓을 수 있다면, 보갑법(保甲法)과 같이 엄한 법에 있어서도 잡아 고발한 사람에 대해서 상을 준다고 들었지 이웃 사람들까지 연루시킨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에 역적을 다스리면서 그들의 식솔 이외에는 여전히 알아듣도록 깨우쳐 줄 방도가 있으니, 주벌하는 가운데 참작하여 용서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진안(鎭安)’ 두 글자를 첫 번째 급선무로 여겼다. 실로 이 무리의 죄는 악역(惡逆)을 범한 것이지만 실정에 있어서는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 당여(黨與)를 밝히고 감추어진 실정을 드러내어 남김없이 다 죽이려고 한다면 이는 내가 듣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변괴가 중첩되어 서울과 지방이 놀라 동요함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조정은 사방의 표준인데 그 기상(氣象)에서 편안하고 태평한 바를 볼 수 없고 거조(擧措)가 혹 급박하게 처리하는 듯할 때가 있으니, 사람을 논하면서는 어구(語句)를 잘 골라서 하지 않고 일을 의논하면서는 정당하게 하는 바가 전혀 없다.
각도에서 밀계(密啓)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비록 즐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근래 감영과 병영에서 보고하는 것들은 또한 혹 의심해서는 안 될 것을 의심하거나 계문하지 않아도 될 것을 계문하는 것도 있다. 집에서 참위서(讖緯書)를 보관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연 그에 대한 벌이 있지만, 먼 땅의 어리석은 백성이 그것이 무슨 책인지도 모르는 것을 괴이쩍게 여길 것이 없으니, 만약 묵은 종이와 끊어진 종이에 기록된 몇 자나 몇 마디 말을 가지고 요망하고 부도하다는 죄로 귀결시킨다면 어찌 크게 불쌍히 여길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외방의 분위기를 비록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역말들이 한창 바쁘게 왔다 갔다 하여 도로가 시끌벅적하고 뒤쫓아가서 체포하는 일이 간간이 일어나 마을이 놀라고 두려워할 것이며, 한 사람이 갇히게 되면 한집안이 슬피 울고 한 마을에 일이 생기면 한 고을이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니, 곧 이치와 형세상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때에 또 혹 민간에 대해 두루 정탐을 하고 우연히 하는 말까지도 적발하고 나선다면 조정의 본뜻에 크게 어긋난다. 이러다가는 인심이 흐트러져 진정되지 않아 역적을 제거하는 실지에는 도움이 없고 도리어 의구심만 더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므로 내가 난역(亂逆)의 시말에 대해 모두 논하고 이어서 진정시키고 안정시키려는 지극한 뜻을 말하는 바이니, 그대들 대소 신료는 반드시 앞서 말하였던바 타일러 깨우칠 방도와 참작하여 용서할 생각을 가지고 각자 명심하고 서로 힘써 권면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물들기 전에 깨우쳐 이끌고 이미 범한 뒤에는 참작하여 처리함으로써 제방(隄防)은 해이해지지 않게 하더라도 함정이 혹시라도 넓어지게 하지 말며, 차라리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잘못을 저지를지언정 오직 모두 새롭게 되게끔 힘쓰도록 하라.
방백(方伯)으로 있는 자들도 덕의(德意)를 널리 펴서 오염된 풍속을 변화시키도록 하라. 비록 자잘한 잔당 가운데 저절로 드러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하거나 매우 다급한 걱정거리가 아니면 일이 날 때마다 위로 보고할 것 없다. 본영(本營)에서 그 경중에 따라 혹은 타이르거나 혹은 죄를 다스려 안에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진정시키고 안정시키는 것을 위주로 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나의 괴로운 마음을 체득하고 나의 은택을 도와서 나로 하여금 말만 있었지 실제는 없고 뜻만 있었지 효과는 없는 데 이르지 않도록 하라.
아, 왕위에 오른 지 6년이 되어 가는데, 정치와 교화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착하게 변화하는 자는 들어 볼 수가 없고 법에 걸리는 자만 날로 많아지고 있다. 그리하여 감옥이 텅텅 비는 교화를 바랄 수 없고 다만 죄수를 보고 수레에서 내려 눈물짓는 일만 자주 하게 되었으니, 내가 이에 거듭 부끄러워 탄식하게 된다. 송덕상의 죄를 밝혀 바로잡고 소굴의 본거지를 깨뜨려서 난역의 근본을 끊고 백성의 뜻이 안정되도록 하는 것도 한 가지의 방도이기는 하나 이렇게 하지 않았으니, 실로 뜻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인방의 공초가 나온 뒤로 중론을 막을 수가 없어 체포를 하기는 하였으나 가둬 놓은 지 며칠이 지나도록 끝내 친히 국문하지 않았던 것은 또한 공초할 즈음에 혹 지적하여 꾸며 대는 바가 있어 나로 하여금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게 하거나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게 할까 두려워서였다. 오늘날의 조정 신하들이 과연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거괴(巨魁)에게 먼저 나라의 법을 시행하고 그 나머지 연루된 자들은 아울러 우선 감사(減死)하도록 하라. 아, 지금 이 처분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필시 너무 관대하다고 하겠지만 나의 본뜻이 전에 운운한 바와 같아서일 뿐만이 아니다. 마침 이러한 큰 경사를 만난 날에 특별한 은택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달 초에 소결(疏決)할 때 비록 죄적(罪籍)에 있는 부류들이라도 그들에게 대부분 죄를 씻어 주는 은택을 시행하였는데, 어찌 이 무리들에게만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죄가 있는 자는 은혜를 생각하여 마음을 고쳐먹고 죄가 없는 자는 의심을 풀고 안심하여 함께 새로운 교화 속에 들어가 이 경사와 기쁨을 함께하도록 한다면 비단 그들의 다행이 될 뿐만 아니라 곧 나라의 다행이 될 것이다. 이에 유시하니, 모두 잘 듣고 알도록 하라.

 

洞諭中外敎

 

朝家於德相事。每欲一番洞諭。而迄未之能焉者。誠以不忍泚筆故也。到今事端層發。誑惑轉甚。若終不諭。則是何異於罔民乎。大抵德相事出之後。逆變之作。凡幾遭矣。湖海之獄。置之勿論。詬天罵日。則有澤白焉。設計稱兵。則有仁邦京來等焉。是雖改頭換面。而實則連腸接肚。莫不以德相爲根柢。噫。予寡人誠不足以孚頑。明不足以察姦。始忽履霜之戒。馴致滔天之凶。而懲討未竟。餘孼益熾。靜究厥由。尙誰尤哉。然而朝廷之所以受侮。德相之所以爲逆。與夫澤徵有白輩之所以跳踉而不止者。亦自有本末矣。大抵有夫婦而後有父子。有父子而後有君臣。君臣父子之道。寔本於夫婦。夫婦者人之大倫。天地之常經也。故禮著造端之義。易垂說輻之戒。閭閻匹庶。猶敦共牢之義。况居崇高而基治平者哉。陰陽乖而雨澤閟。宮壼正而敎化流。此釐降所以觀刑。而關雎所以爲二南始也。咸恒貞久之道。從古聖哲之所必勉。則予雖否德。詎或少忽於斯哉。然而自在春邸。憎玆多口。中壼之禮度自如。外間之辭說紛然。蓋緣予積忤於丙申逆黨。忌姦情之畢燭。懷反噬之凶圖。廣煽譸張之語。要作搖撼之計。而宮闈事祕。外人難知。則尤謂欺誣易加。黑白可混。無根之謗。妄揣之言。哆侈噂沓。不勝其多。而恒𥳑春坊之酬酢。竟載於明義錄中。爲渠作逆之斷案。見此者。尙可以知予心矣。然而己亥夏間。德相以殿下家事之說。向予言之。夫所謂陛下家事者。卽何等時何等語。而乃敢以此闖發於筵席乎。蓋是時喪變之出。權姦敢疑不敢言之地。密進云云之說。其所云云。有不忍形言。予嚴辭斥之。而其時閭巷之間。大播訛傳之說。布肆藏閉。帽工避匿。甚至爲官吏者。認爲眞有是事。預捉匠手。則德相時帶戶曹參判。與權姦互相傳說。看以尋常。又於數日後入侍。肆然發口。是果何許心腸。噫。此等之言。奚爲而至哉。是固予自反處。而予之所敵體齊尊者。非臣子之國母小君乎。將心之萌。無所不至。卽此一事。固已難容於覆載間矣。及其說旣不得售。則爲謀益急。又密有所云云。而德相以某樣道理四字。登諸章奏。夫所謂某樣者。果何指也。嗚呼。斯二人者。一則以离筵舊僚。自負翊戴之勞。一則以先正後孫。久竊山林之名。予則篤嘉乃之志。倚任旣重。推念舊之意。招徠亦勤。蓋欲休戚與同。禮貌無替。安富尊榮。保其子孫。而彼乃或爲之窩主。或爲之羽翼。表裏締結。氣焰薰灼。謂朝廷莫違於頤指。謂宸極可弄於股掌。使予倒持太阿。徒擁虛器。不奪不饜。所由來者漸矣。宗社大計。惟在於廣儲嗣一事。而自其喪變之初。渠輩敢極力沮

遏。則其心所在。路人皆知。而潛圖之不足。倡說之至此。恣行無君之胷臆。顯試移國之手段。苟使其計。得行。朝家。豈得有今日哉。悖逆之奏。雖祕於筵席。而陰凶之跡。已露於章奏。國如有法。豈容暫貸。而猶使之杯酒釋權。鄕里偃便。一切辜犯。置之勿問。則予所以曲保終始者。其亦至矣。豈國家少恩云乎哉。然其徒黨內懷怨懟之心。外倡伸救之說。做出四字之註脚。謂此四字。乃所以指中殿醫藥之方。名門揀擇之擧。非有他也。夫揀擇之擧。渠輩之所力沮者在是。則其敢曰爲是而發是語耶。醫藥之方云者。與其家事之奏。又何其相反耶。且其四字。果爲是醫藥揀擇二事也。則何憚乎明言正論。而故爲此藏頭之語法乎。雖只就原疏觀之。語脈自在。指意自綻。粗解文理者。皆可以覰破。不特此也。衛所酬酢之說。先已聞之。其疏之草本。亦出於衛所。而草本所云云。則不若今本四字之藏頭。而畢竟以四字改之。因予之挽止故也。予曾不以衛所所聞之說。草本所見之語。明諭於廷臣。使其聲罪之辭。只及於四字者。非爲渠也。特不忍發也。而渠輩乃謂外面彰露者。只此四字。則猶可以漫漶。欲以千萬不近之說。疑亂一世。情狀之凶狡。吁亦甚矣。是則湖海之囚。所以自干王章。而澤徵之凶言。泓徵之急書。仁邦,京來之凶謀逆節。又相繼而發矣。蓋澤徵曾前所犯。已極凶憯。而以渠日記中云云觀之。亦可見其犯上不道之心。素蓄於平日。與尙魯輩心腸無異矣。况其語犯中壼者。尤極叵測。至於帳殿之不稱矣身而稱我。獄中之不曰國家而曰渠。實是載籍以來。所未聞所未有者。又况賂結有白。共謀繼起。搆虛捏無。專事詬罵。其指斥內殿之語。皆是渠輩所嘗經營而終不敢售者。而反以歸咎於寡躬。欲爲瑕疵之資。以售煽動之計。而至於泓徵事。尙何言哉。

滿紙詬罵之關係寡躬者姑捨是。以亘古今所無之窮凶絶悖之說。至及於不忍言不敢道之地。故此予所以沫血飮泣。卽日親訊。快施邦刑者也。又若仁邦。始則倡嗾妖言。誑惑人心。終則指畫天地。排布凶謀。以某爲大將。以某爲先鋒。以某爲運糧官。起兵於某地。掠某郡某營。由某路而犯闕云者。部署已定。時日有期。而其渠帥之脈絡。旣與澤賊連通。又其成事之後。所欲推尊以爲大先生者。卽德相也。若其所謂大將京來。又是澤賊妻姪。而聯結六道。嘯聚劫奪。直趨京都等節。與仁邦如出一口。而直曰德相方在罪中。故急於救出。如是設計納招。由此觀之。前後獄情。豈非一串貫來。而皆以德相爲根柢者乎。噫。好生惡死。人情之所同。苟非其血屬死友。孰肯爲凶逆染汙。而今則不然。天涯地角。打成一團。前茅後殿。脗然同情。根株盤結。脈絡通貫。寧爲賊徒。不欲爲國家臣子。此其故何也。如德相者。雖在無累之時。凡厥親知。無不知其蔑學沒識之玷辱旌招。而及夫事端之出。特以大家之裔。朝家不忍加辟。罪止薄竄。蓋出不足責之意也。彼遐土不識裏面之類。見德相之受罪。則自懼其幷罹丹書臚列。便同箚著於己身。法司株連。若將延及於渠家。無論平日親切與否。擧懷此一段疑懼。此非予臆料也。湖海囚供。至發黨禍之說。雖面目素昧之間。有痛癢相關之義。於是乎眞箇不逞之徒。因其機而誑惑之恐動之。以重其疑懼之懷。疑懼之懷重。則護惜之意深。護惜之意深。則怨誹之念起。怨誹之念起。則角勝之計成矣。非不知逆節之不可漫漶。而必欲漫漶之。非不知巨魁之不容伸救。而必欲伸救之。以至詬天罵日。稱兵犯闕之擧。亦皆爲之者。良以此也。噫。何其愚迷之甚也。可斥者德相而止耳。可罪者德相而止耳。其於平人何與哉。年來位著無改。施措依舊。則朝廷之意。卽此可見。何疑何懼。而以風馬牛之不相及。亦爲困獸。必鬭之擧哉。今夫百家之里。一人爲盜。人將以一人疑百家。而爲百家者。亦將自疑自懼乎。妄自疑懼而庇護其盜。以盜爲非盜也。則其可免藏盜之律乎。若能明其爲盜而黜之里中。則雖以保甲之法之嚴。吾聞捕告之有賞。而未聞隣比之有累也。故予則以爲今之治逆。渠率之外。尙有開曉之道。誅討之中。當存參恕之念。而鎭安二字。爲第一急務。誠以此輩罪雖犯於惡逆。而情則本於疑懼也。必欲窮其黨與。發其隱情。期於劓殄無遺。則非予之所欲聞也。然惟其變怪之層疊。未免中外之驚動。朝廷四方之表也。而氣象未見其安泰。擧措或涉於劻勷。論人則不擇語句。議事則全沒稱停。至於諸道密啓。雖非樂爲。而近日營閫之登聞者。亦或有不當疑而疑。不必啓而啓者矣。家藏讖緯。自有其律。而無怪乎遐土愚民之不知爲何書。若以故紙斷𥳑。隻字片語。歸之於妖言不軌之科。則豈不大可哀矜乎。外方之景像。雖不得目見。而驛騎旁午。道路騷擾。追捕間發。閭里駭懼。一人在囚而一家悲泣。一村有事而一邑恐動。卽理勢之所必然也。於斯時也。又或偵探遍於巷陌。摘發及於偶語。則大非朝家之本意。而抑恐人心波蕩。靡所底定。無益於鋤治之實。而反增其疑懼之情也。肆予罄論亂逆之源委。仍敷鎭安之至意。咨爾大小臣工。必以向所稱開曉之道。參恕之念。各自銘佩。競相勉勵。誘掖於未染之前。酌量於已犯之後。雖使隄防不弛。勿令坑阱或廣。寧失不經。惟務咸新。爲方伯者。亦宜廣布德意。期變汙俗。雖有小醜殘孼。自爾現露者。如非關係甚重。呼吸可虞。不須事事上聞。自本營隨其輕重。或諭或治。由內及外。壹是皆以鎭安爲主。以體予苦心。以輔予惠澤。無使予有其言而無其實。有其志而無其效也。嗚呼。臨御六載。治敎不立。遷善者未聞。而罹辟者日衆。無望空圄之化。徒煩下車之泣。予於是重爲之慙歎。若夫明正德相之罪。打破窩藏之地。使亂本絶而民志定。亦一道也。而不此之爲。意固有在。仁邦招出之後。衆論難遏。雖不得不逮捕。而繫囚累日。終不親問者。亦恐其納供之際。或有指擬。使予聞不欲聞之語。當不忍當之事故耳。今日廷臣。果能諒予之心乎。就其巨魁。先施邦刑。自餘株連。幷姑減死。噫。今此處分。諸議必以爲太寬。而非但予之本意如前所云云。値玆大慶之日。宜有非常之澤。故月初疏決時。雖在丹書之類。亦多施曠蕩之澤。何獨於此輩不然乎。有罪者。懷恩而改圖。無罪者。釋疑而安心。咸囿新化。同此慶喜。則非但渠輩之幸。卽國家之幸。故玆諭示。咸須聞知。

 

 

 

 

 

 

 

 

 

 

 

이하 원문 생략

 

 

 

 

 

이하 언문 생략 / 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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