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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강희제남순도권康熙帝南巡圖卷〉 南巡畫卷繪製始末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4.11.11|조회수235 목록 댓글 0

총 12개의 수권(手卷)들로 구성되어 있는 〈강희제남순도권康熙帝南巡圖卷〉은 1689년에 이루어진 강희제(재위 1662-1722)의 제2차 남순(南巡)을 그림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총 길이 197.60미터에 달하는 〈강희제남순도권〉은 강희제의 71일 간의 여행을 산수 배경 속에서 묘사한 거질(巨帙)의 궁정기록화이다. 〈강희 제남순도권〉은 표면적으로는 강희제의 강남 지방 여행 및 순시 장면을 거대한 산수 배경 속에 묘사한 궁정기록화이다. 그러나 〈강희제남순도권〉은 황제의 여행 기록을 넘어 천하태평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강희제의 정치적 열망과 포부가 담겨져 있는 그림이다. 〈강희제남순도권〉 제1권 제첨(題簽)에 따르면 강희제의 남순 목적은 황하 치수(治水) 상황 시찰, 백성들의 풍속 관찰, 지방관원들의 행정 점검이었다. 그러나 강희제의 남순은 이러한 표면적인 목적을 넘어 청제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태평성대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강희제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관련되어 있었다. 〈강희제남순도권〉의 정치적 성격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기록은 1692년에 발표한 강희제의 조유(詔諭)로 삼번(三藩)의 난, 황하 치수(治水), 대운하(大運河)를 통한 원활한 물자 교류를 국가 운영의 3가지 중대사로 규정하고 있다. 즉 강희제는 삼번의 난이라는 대규모 내전을 통해 조직화된 군사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황하의 범람이 초래하는 막대한 자연 재해의 심각성과 치수 사업을 통한 근본적인 홍수 예방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아울러 강희제는 대운하의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국가 재정의 핵심이 되는 강남 지역으로부터 유입되는 세곡(稅穀)의 원활한 운송이 제국 경영의 초석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3대 과제는 〈강희제남순도권〉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로 기능하게 되었다. 제1권과 12권에 보이는 대규모 군단(軍團)를 이루고 있는 만주팔기의 모습, 제10권에 보이는 마상사술(馬上射術) 장면, 제11권에 보이는 남경의 연자기(燕子磯)를 떠나 진강(鎭江)으로 이동하는 대규모 군선(軍船)들의 모습은 삼번의 난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인 군사력의 중요성에 대한 강희제의 성찰과 관련된다. 한편 제4권에서 강희제는 황하 치수를 통해 천재지변을 사전에 예방하고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애롭고 인자한 유교적 천자로 자신을 표방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황하 치수 작업은 대운하의 안정적 운용과 직결되어 있었는데 제7권은 대운하를 통해 소주에 도착한 강희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주는 강남의 경제적‧문화적 중심지로 대운하를 통한 강희제의 소주 방문 장면은 국가 경제의 핵심이 되는 소주 지역의 경제적 번성과 물자의 원활한 유통 모습을 통해 ‘성세자생(盛世滋生),’ 즉 태평한 시절을 맞아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 상황이 도래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강희제남순도권〉에 표현되어 있는 태평성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그림이 제작되고 있던 당시 청조는 ‘숙황(熟荒)’이라고 하는 장기적인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다. 숙황은 풍년이 들어 곡식은 넘치는데 구매력이 없어 곡물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지는 기이한 경제 현상으로 169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이러한 숙황 현상을 타개하고 농업과 잠업(蠶業)의 육성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던 강희제의 의지는 1696년에 초병정(焦秉貞, 1680-1720년경 활약)이 황명(皇命)을 받고 제작한 〈어제경직도(御製耕織圖)〉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예찬(倪瓚, 1306-1374)의 〈계정산색도(溪亭山色圖)〉(1365년, 대만고궁박물원 소장)에 보이는 강희제의 화압(花押)인 ‘태평(太平)’은 내전과 경제 불황을 극복하고 천하태평의 이상을 실천하려고 했던 그의 정치적 비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南巡畫卷繪製始末

滿清入主中原以後,清聖祖康熙皇帝愛新覺羅·玄燁(1654-1722)從監國戰略需要出發,為了更好地治理黃、淮等流域水患,整飭吏治和收撫民心,先後六次南巡(具體時間分別為康熙二十三年、二十八年、三十八年、四十二年、四十四年、四十六年)。 康熙南巡時為了避免給各地帶來額外開支,所用費用基本均由朝廷承擔,「不許分毫派取民間」。康熙二十八年(1689年)正月初八,他起駕離宮,開始了第二次南巡活動。行走線路基本上是沿著京杭大運河線路行進,途經濟南、剡城、淮陰、揚州、蘇州、杭州、紹興後折回。他由丹陽登陸後經過句容,於二月二十五日抵達江寧(今南京),駐蹕江寧府。三月十九日返京。 為了紀念這次南巡盛典,康熙皇帝玄燁親自下詔,決定以宏大的繪畫敘事方法記載此行經過,具體由內務府曹荃負責監畫。主持繪事的都察院左副都御史宋駿業,於是便推薦自己從畫的老師王翬擔綱。

王翬(1632-1717),字石谷,江蘇常熟人。出身繪畫世家,幼承家學,初學畫於張珂,後又得到王鑑、王時敏指點。在清初「四王」中比較突出。其畫在清代極負盛名,康熙三十年奉詔攜弟子楊晉等繪製《康熙南巡圖》,3年完成。康熙曾御筆「山水清暉」賜贈王翬,並欲授官職。不諳官場的王翬藉故推辭,於1698年南歸故里。當時參與繪畫的還有冷枚、王雲、徐玫、虞沅、吳芷、顧昉等畫師。

 

《康熙南巡圖》共12卷,每卷長度約在10米、20餘米長短不等,寬約60餘厘米,堪稱當時最長的宮廷畫卷珍品。根據宮廷繪畫特點,該畫卷同樣一律不落這些畫家的款印。晚清傾覆以後,第五、六、八卷由宮中散失下落不明,第二、四卷現在典藏於法國巴黎吉美博物館,第三、七卷現在典藏於美國紐約大都會藝術博物館。其餘各卷仍為北京故宮博物院所典藏。

第一卷 描繪康熙二十八年正月初八從京師出發的情景

車駕從北京外城的永定門到京郊的南苑,畫面開始即為永定門,康熙一行已經出城,送行的文武官員,站在護城河岸邊。浩浩蕩蕩的隊伍在大路上行進,玄燁坐在一匹白馬上,由武裝侍衛前後呼擁,沿途路旁有輿車及大象。前哨越過一座石橋,抵近南苑。路邊儀仗鮮明整齊,一直排列到南苑行宮門口,面幅到此為止。

 

第一卷 序

出永定門

皇帝出巡

 

鹵簿儀仗

第三卷 描繪康熙南巡至山東境內的情景

畫面開始為丘陵地帶,一座城池出現在眾山環抱之中,此即濟南府。康熙在城牆上視閱,隨從若干,城門大開,南巡的先行騎兵正從城裏出發,行進於綿延的山丘之間,山勢雄偉,草木蔥蘢。隊伍翻山過、河,穿過村落,群山逐漸高聳、 險峻,畫面出現了泰安州和泰山,康熙率扈從諸臣到泰山致禮。過泰山後,山勢略趨平緩,畫面至蒙陰縣止。

第三卷 序

 

濟南府城

開山廟

章夏鎮

 

泰安州

 

蒙陰縣

第六卷 描繪康熙從瓜州渡江登金山經常州府的經過

畫中選取了奔牛、朝京門兩處重要節點,根據畫中的描繪與場景,與歷史記載中的文亨橋、朝京門、花市街、米市河等常州標誌性建築相似,因此可推斷,畫作中標註「常州府」的畫面應該是現在的西贏里一帶。整張畫氣勢恢宏,記錄了皇帝下江南時常州到奔牛的盛況,畫作中,東邊城牆上方,「常州府」三個大字赫然映入眼帘,在城西運河邊,「奔牛鎮」三個漢字也是清晰可辨。運河兩岸商鋪林立,運河中舟楫往來,行人、工匠、商販,各色人物栩栩如生,城外沿運河兩岸,阡陌縱橫,農田密佈。

從瓜洲渡江登金山經常州府

 

常州西瀛里

常州文亨橋

常州篦箕巷

常州府城至奔牛鎮

常州奔牛鎮

 

第七卷 江南無錫至蘇州的山水、民居、城垣、店鋪、舟橋、良田

畫面開始是無錫惠山、錫山、秦園(寄暢園)、黃婆墩,之後為無錫縣城,往東直抵蘇州滸墅關,又見蘇州文昌閣、射瀆、楓橋、寒山寺,之後沿著蘇州七里山塘街到底是吳中第一名勝蘇州虎丘,這時畫面變成運河,順著運河繼續往東,沿途建築逐漸密集,看到一座兩重瓮城的規模宏大的城門,就是閶門,這個地區是繁華的商業街區,商賈輻輳,百貨駢闐。城牆附近,只見許多大臣們跪在兩旁,皇家侍衛嚴陣以待,恭候康熙皇帝駐蹕蘇州,繼續往東,蘇州城內市井繁華,眾多的河道、橋樑體現了江南城市的特色。最後為蘇州織造府,為康熙皇帝的行宮。

康熙南巡圖 第七卷 無錫至蘇州 全圖

第七卷 序

 

無錫惠山、錫山、秦園(寄暢園)、黃婆墩

無錫縣

新安鎮

蘇州滸墅關

蘇州文昌閣、射瀆、楓橋、寒山寺

蘇州半塘寺

蘇州關帝殿

蘇州虎丘

蘇州閶門

蘇州黃鸝坊

蘇州玄妙觀

蘇州織造府

第九卷 從浙江杭州出發,渡錢江塘,經蕭山縣,抵達紹興府大禹陵

畫面一開始即為錢塘江,江面風平浪靜,玄燁乘座的龍舟在許多小船的簇擁下,駛抵對岸,因為般大吃水深,船中裝載的物品由民夫肩扛人搬或用車運到岸上,隨行並有大量馬匹。再往前行,有一城門,門洞結綵,此為西關,關里是一小鎮,為西興驛,沿途村民行旅不斷,一條河直過蕭山縣,城有瓮城,門為兩層,河流通過水門穿城而過,城內街市整齊,熱鬧異常,城外河中舟船,岸上農商。過柯橋鎮,漸達紹興府,城市更顯繁華,街市、古塔、校場、府山、望越亭、鎮東閣等一一細加描繪。出紹興府,過田壠阡陌無數,即到大禹廟和大禹陵,康熙站立於華蓋下,周圍侍衛戒備森嚴,百官民眾跪迎。此卷最後以起伏的山巒結尾。

康熙南巡圖 第九卷王翬等繪 絹本設色 縱67.8公分 橫2,227.5公分北京故宮博物院藏

 

人馬過錢塘江

紹興府城

紹興大禹陵

第十卷 描寫從浙江北返過江蘇句容至江寧府(今南京)的情景

畫面開始為句容縣,過大平莊秣陵關至江寧通濟門,沿途一派江南農村的湖光山色。一進通濟門,皇帝經過的主要街道上搭有長達數十里的彩棚。江寧為江南繁華之地,商業發達,街道縱橫,房屋鱗次櫛比,秦淮河穿過畫面,之後出現了校場。康熙端坐在校場看台上閱兵。過雞鳴山、鐘山、觀屋台,以後湖結束。湖上漁舟若干,湖水蒼茫,開闊無比。

江寧府通濟門

江寧府秦淮河

江寧府三山街

江寧府較場

江寧府玄武湖畔

第十一卷 始於江寧府的報恩寺,經水西門及旱西門

畫面出現有名的秦淮河,河中舟船往來,跟隨康熙的官員正在登船。再往前出現了山巒,盡頭是一突入江心的巨大山石,這裏是天險燕子磯,下臨雄偉壯闊的萬里長江,江水奔騰翻滾,康熙乘坐的龍舟順江而下。畫面上時而出現江南景色,時而出現江北風光,江面越來越開闊,以迷濛的遠山結束畫面。

江寧府大報恩寺及琉璃寶塔

玄燁泛舟駛離南京

大江東流,浩蕩奔騰

第十二卷 康熙回京情景

人字

正陽門外

京師

京師午門



原文網址:https://kknews.cc/history/8ogykz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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