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후변안가 근친하고서 받은 시의 서〔昌寧曺侯燮安覲親詩序〕
무릇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간절히 원하는 것은 장수와 부귀와 아들을 많이 두는 것으로,화봉인(華封人)이 요(堯) 임금에게 축원한 것도 이뿐이었다. 이 때문에 신하가 임금에 대해서와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그리고 향당과 종족, 인척과 요우(僚友)가 더불어 교제하는 사이에 이르기까지 서로 축원하고 기원하는 자들은 모두 이것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천명(天命)에 관계된 것이어서 요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지식과 힘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것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선대에서 경사를 쌓은 나머지 자손들이 그에 대한 보답을 받아먹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남몰래 쌓은 공과 후한 은덕이 있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여 천지와 귀신의 도움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 어찌 우연히 오는 것이겠는가.
지금창녕 조후의 엄군(嚴君)이신 제학(提學) 선생께서는 일찌감치 괴과(魁科)에 발탁되어 화려한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비의(緋衣)를 걸치고 은어(銀魚)를 차고 있으면서 높은 품계에 올랐으니,이 세상에서 이름이 드러났다고 할 만하다. 또한 여러 아들을 잘 가르쳐서 학문이 넓고 글을 잘 지어계적(桂籍)에 잇달아 이름이 올라운로(雲路)에서 아름다움을 드날렸으니, 참으로 아들다운 아들을 두었다고 할 만하다. 이에 선생께서는 위연히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나 자신은 이미 현달하였고, 나이 또한 쇠하였다. 싫증이 나는데도 돌아갈 줄 몰라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여러 아들이 모두 이름난 관원이 되어 가업(家業)을 맡길 바가 있게 되었다. 족한데도 그칠 줄 몰라서야 되겠는가.” 하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는 전원이 있어서 맛좋은 음식을 마련해 봉양할 수가 있으며, 숲과 시내가 있어서 읊조리고 노래하는 즐거움에 일조하기에 충분하였다. 세시(歲時)와복랍(伏臘)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부로(父老)들 및 그 자제들과 더불어 물고기를 잡고 술을 빚어 여생을 즐기었다. 이에 한가로이 노닐며 정신을 편안히 수양하는 가운데기이(期頤)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강녕하여 아무 탈이 없다. 그러니 또한 부귀하면서도 장수를 누린다고 할 만하다.
무릇 장수하고 부귀하며 아들을 많이 두는 것은 사람들이 매우 바라는 바이지만 반드시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모두를 얻었다. 이는 반드시 그러한 까닭이 있을 것인데, 사람들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조후(曺侯)가 시권(詩卷) 하나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귀근(歸覲)하였다가 돌아올 적에 아버지께서 시를 지어 전송하였는데, 인하여 권계(勸戒)하는 뜻을 시 속에 부쳤다. 이에 내가 삼가 잘 배접하여 보관하고서 붕우들에게 한마디씩 해 주기를 구하고 있으니, 그대가 반드시 서문을 써 주어야 한다.”
하였다. 내가 그 시를 받아서 읽어 보니, 첫 번째는 충(忠)에 대해서 말하였고, 두 번째는 효에 대해서 말하였으며, 충과 효 이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이에 내가 곧바로 옷깃을 여미고는 일어나서 말하기를,
“선생의 말은 바로 선생의 마음이다. 무릇 사람이 나가서 임금을 섬길 때에 충성을 다하고, 들어와서 어버이를 섬길 때에 효성을 다한다면, 이 충과 효에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능히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면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할 수가 있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할 수가 있다. 그러니 천지와 귀신이 어찌 돕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생께서 부귀를 누리고 장수를 누리며 아들을 많이 둔 것은 마땅하다. 조후가 또 일찍이 집안에서의 가르침을 듣고서 충과 효로써 자신의 행실을 가다듬었다. 그러므로 이 시에 대해 권권해하는 뜻을 가져 이와 같이 오래도록 전해지기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는 비단 자신의 한 몸만 이를 명심하여 행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장차 자손들에게 남겨 주어 그들로 하여금 조씨 집안의 문호(門戶)가 번창하여 후손들에게 넉넉하게 전해 준 것이 여기에 있고 다른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아, 이 시를 보는 자는 충효의 마음이 뭉클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자손이 된 자들이겠는가. 아버지가 이것으로써 그 아들을 훈계하고, 아들이 이것으로써 그 손자를 훈계하여, 자자손손이 대대로 계속 이어지면서 모두가 충효를 마음속에 간직하여 잘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계승하게 한다면, 조씨 집안의 경사가 어찌 끝이 있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조후가 말하기를,
”그렇다. 이를 써 주어서 나의 자손들을 권계해 주기 바란다.”
하였다. 이에 이를 써서 준다.
凡人之生,所深願欲者,曰壽、曰富、曰多男子,華封人之祝堯,是已。是故臣之於君,子之於親,以至鄕黨、宗族、婚姻、僚友交際之間,相與稱願而頌禱之者,皆是物也。然是物也,關於天命,不可以僥倖而得,不可以知力而取也,而人之所以有得乎此者,則必其先世積慶之餘,而子孫食其報也。不然,必有陰功厚德,足以動天地、感鬼神而得其祐也,夫豈偶然而致之哉?
今昌寧 曺侯嚴君提學先生,早擢魁科,歷踐華貫,緋衣、銀魚,躋于峻品,可謂顯於世矣。敎養諸子,博學能文,聯名桂籍,蜚英雲路,可謂有其子矣。於是先生喟然曰:“身已顯矣,而年亦衰矣。倦而不知還,可乎?諸子皆成名宦,而家業有所托矣。足而不知止,可乎?” 卽命駕歸鄕。有田園足以具甘旨之養,有林泉足以供吟嘯之娛。歲時伏臘,率同閈父老與其子弟,擊鮮釃酒,以樂餘生,優游怡養,至于期頤,而尙康寧無恙,亦可謂富且壽矣。夫壽也、富也、多男子也,人之所深欲而不可必得者,而先生皆得之,是必有所以然,而人莫知其所以然也。
一日,曺侯袖詩卷來,語予曰:“吾嘗歸覲而旋也,嚴君作詩以送,因寓勸戒之意。吾謹裝褙,以求言於朋友間,子必序之。” 予受而讀其詩,一則曰忠,二則曰孝,忠孝之外,無他語也。予卽斂衽,作而言曰:“先生之語,先生之心也。夫人出而事君則忠,入而事親則孝,惟忠與孝,人道盡矣。能盡人之道,則可以與天地合其德,可以與鬼神合其吉凶,天地鬼神惡得而不祐乎?宜先生之富且壽而多男子也。曺侯又嘗聞過庭之訓,以忠孝飭其行。故能於是詩,拳拳焉以圖傳久如此,非但欲其服膺於一身,將以遺諸子孫,使知曺氏之所以能大其門而垂裕來裔者,在此而不在他也。吁!觀是詩者,忠孝之心,可以油然而生矣,況爲子孫者乎?父以是訓其子,子以是訓其孫,子子孫孫,繼繼繩繩,皆以忠孝存心,謹守勿失,世濟其美,則曺氏之慶,詎有涯也?” 侯曰:“然,請書之,以爲吾子孫之勸。” 於是乎書。
[주-D001] 창녕 조후(昌寧曺侯):
조변안(曺邊安)으로, 본관은 창녕이며, 을묘년(1435, 세종17)의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44년에 감찰(監察), 1447년에 승문원 교리, 1454년(단종2)에 지평, 1461년(세조7)에 황해도 관찰사, 1463년에 예조 참의가 되었다. 《동국정운(東國正韻)》,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등의 편찬에 관여하였다.
[주-D002] 화봉인(華封人)이 …… 것:
화봉인은 화지(華地)에 봉해진 사람을 말한다. 요 임금 때에 화봉인이 요 임금에게 수(壽)ㆍ부(富)ㆍ다남(多男)의 세 가지로 축원하자, 요 임금이 “수하면 욕(辱)이 많고, 부하면 일이 많고, 다남하면 두려움이 많다.” 하면서 모두 사양했다고 한다. 《莊子 天地》
[주-D003] 창녕(昌寧) 조후의 엄군(嚴君):
조상치(曺尙治)로 생몰년은 미상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자경(子景)이다. 길재(吉再)의 문인으로, 1419년(세종1)에 증광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재감 주부(司宰監主簿)가 되었다. 이후 집현전에서 유숙하였으며, 세종ㆍ문종ㆍ단종 3대를 섬겨 성삼문(成三問)ㆍ박팽년(朴彭年)과 더불어 총애를 받았다. 1455년(단종3)에 집현전 부제학에 발탁되었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 예조 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죽은 뒤에 ‘노산조부제학조상치지묘(魯山朝副提學曺尙治之墓)’라고 새긴 묘비를 세워 세조의 신하가 아님을 밝혀 충의를 기렸다. 그의 시문은 임종시에 모두 소각하였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주-D004] 비의(緋衣)를 …… 올랐으니:
비의와 은어(銀魚)는 모두 5품관 이상의 관원이 착용하던 복식(服飾)이다.
[주-D005] 계적(桂籍):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 놓는 책을 말한다. 옛날에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것을 흔히 “계수나무를 꺾었다.”라고 한 데에서 계적이라 하였다.
[주-D006] 운로(雲路):
청운로(靑雲路)와 같은 말로 벼슬길을 뜻한다.
[주-D007] 복랍(伏臘):
복(伏)은 여름철에 지내는 제사 이름이고, 납(臘)은 겨울철에 지내는 제사 이름이다.
[주-D008] 기이(期頤):
100살의 나이를 말하는데, 흔히 아주 오래도록 장수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