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서의 발〔跋兵書〕
상께서 일찍이 여러 장수들이 병서(兵書)를 읽고서도 그 요체를 알지 못하여 절제(節制)하는 데 어두운 것을 염려하였으므로,《병장설(兵將說)》을 지었다. 그리고 또 여러 장수들이 승평(昇平)에 물들어서 부귀를 구하는 데 뜻을 두고 충절(忠節)을 닦는 데 게을리하는 것을 염려하였으므로,《유장편(諭將篇)》을 지었다. 그런데 글은 간략하지만 뜻은 포괄적이어서 실로 장수들의 귀감(龜鑑)이 되었다. 그러자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신숙주(申叔舟) 등이 일찍이 그에 대한 주해(註解)를 내었으며, 아울러 논의(論議)를 저술하여 올렸다. 그러나 깊고도 오묘한 요지를 어찌 다 드러낼 수가 있었겠는가.
상께서 한가로이 지내는 여가에 다시 그 뜻을 간략히 다듬었다. 이에 예전에는 깊고 오묘하여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지금은 환하게 분명하여서 쉽사리 깨우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신하들이 또 어주(御註)와 본주(本註)에 음(音)과 훈(訓)을 첨가해 넣어서 올리니, 상께서 속히 인간(印刊)해 반포하라고 명하였다.
아아, 우리 성상께서 무략(武略)에 대해 깨우쳐 주어 장수감의 인재를 양성하는 뜻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무예를 일삼는 자들이 참으로 능히 우러러 체득하여 가슴속에 깊이 새긴다면, 군사를 움직이고 적을 제압하는 승산(勝算)과 자신을 검속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요도(要道)가 이 두 편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아 저절로 남는 군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칠서(七書)의 설과 백장(百將)의 전(傳)도 모두전제(筌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오직 장수들만을 위하여 말한 것은 아닌바, 성명(性命)의 근원을 탐색하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도 이 책에서 얻을 바가 있을 것이다.
上嘗念諸將讀兵書,而未領機要,昧於節制,故作《兵將說》;又念諸將狃昇平,而肆志富貴,怠於忠節,故著《喩將篇》。文約義該,實將帥龜鑑也。領議政府事臣申叔舟等嘗加註解,幷著論議以進。然淵妙之旨,豈盡發揮?
上於淸燕之暇,復略疏其義。於是昔之邃奧難解者,今乃明白易曉。臣等又就御註及本註,添入音訓,旣進,命亟印頒。
嗚呼!我聖上所以開諭武略、責成將材之意,切矣。業武者苟能仰體而服膺焉,則行師制敵之勝算、檢身忠國之要道,不外二篇,自有餘師,而七書之說、百將之傳,亦皆爲筌蹄也。非惟爲將之道耳,探頤性命之源、窮硏事物之故,亦於此書乎得之矣。
[주-D001] 병장설(兵將說):
세조(世祖)가 지은 책으로, 〈병설(兵說)〉과 〈장설(將說)〉로 이루어져 있다. 세조는 일찍부터 군무에 깊은 관심을 가져 문종을 도와 《병요(兵要)》, 《진설(陣說)》, 《병정(兵政)》 등을 편찬하고 여러 병서를 주해하였다. 이어서 1461년(세조7)에 이 책을 지었는데, 원래는 《병경(兵鏡)》이라 하였으나 후에 이름을 고친 것이다. 세조는 신숙주(申叔舟)와 서거정(徐居正) 등에게 주를 달 것을 명령하였는데, 1462년에 신숙주 등이 이 일을 마치고 전(箋)과 함께 임금에게 올렸다. 1책으로 되어 있다.
[주-D002] 유장편(諭將篇):
세조가 지은 책으로, 1464년에 최항(崔恒), 한계희(韓繼禧), 강희맹(姜希孟) 등이 역시 세조가 지은 《병장설》에 《병법대지(兵法大旨)》까지 합하여 새로 교정하여 간행하였다.
[주-D003] 칠서(七書):
무경 칠서(武經七書)로, 병법에 관한 일곱 가지 책이다. 《육도(六韜)》, 《손자(孫子)》,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 《울료자(尉繚子)》,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를 말한다.
[주-D004] 전제(筌蹄):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통발과 토끼를 잡는 데 쓰는 올무인데, 물고기나 토끼를 잡고 나면 이들을 잡는 도구인 통발이나 올무는 필요가 없는 것처럼, 목적을 달성하고 난 뒤에는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뜻이다. 《장자》 〈외물(外物)〉에 이르기를 “통발이란 것은 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게 된다.”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