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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호(諡號) 2.

*최승로(崔承老) 927년(태조 10)∼989년(성종 8).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4.04.10|조회수44 목록 댓글 0

*최승로(崔承老) 927년(태조 10)∼989년(성종 8). 고려 초기의 문신·재상.

시호: 문정(文貞)

본관은 경주. 신라 6두품인 은함(殷含)의 아들이다.

경주에서 출생하여 935년(태조 18)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들어왔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태조의 사랑을 받았다. 즉 12세 때에 태조가 불러 《논어》를 읽게 하고서 매우 가상히 여겨 염분(鹽盆)을 하사하고 원봉성학생(元鳳省學生)이 되게 하였으며, 또 안마(鞍馬)와 예식(例食) 20석(碩)을 하사하는 등 특별한 은총을 내렸다.

그뒤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비교적 일찍부터 문병(文柄)을 위임받아 문장과 학문계통의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당대 제일의 지식인 대열에 참여하였다.

신라 6두품 지식인 중에는 도당(渡唐) 유학생 출신이 많았지만 국내에서 공부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국내에서 공부하여 가장 높은 지식수준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우리나라의 문화적 기반이 그만큼 발전되어 있었음을 반영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생애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광종 때에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고려사》 최승로전(崔承老傳)에 보면 연령상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기인 20대 초에서 40대 말까지의 생애를 보낸 광종 때에 문병을 맡았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학사직(學士職)을 가지고 비록 소극적이나마 정치에 참여하고 있었으리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광종의 정치에 어느 정도 깊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광종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하였느냐 하는 것은 의문이다. 아마도 중국 후주(後周) 출신 쌍기(雙冀)의 등장 이후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지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경종을 거쳐 982년(성종 1)에는 정광 행선관어사 상주국(正匡行選官御事上柱國)으로 행정의 요직을 맡게 되었다. 이해 6월, 성종이 경관(京官) 5품 이상에게 각각 봉사(封事)를 올려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게 하자 그는 태조에서 경종에 이르는 다섯 왕의 치적평(治績評)과 함께 북계(北界)의 확정과 방위책, 공덕재(功德齋)의 폐지, 승려의 궁중출입금지와 왕의 불법숭신(佛法崇信)의 억제 등 불교의 폐단에 관한 건의문과 그밖에 사회문제 및 대중국관(對中國觀) 등 28조에 달하는 시무(時務)를 올려 성종을 크게 공감시켜 당시 실시된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 상서문에는 정치사상과 고려 초기의 역사적 상황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방면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상서문을 올린 직후부터 어린 성종의 정치보좌관으로서 활약하여 983년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영전되고, 988년에는 문하수시중(門下守侍中)으로 청하후식읍칠백호(淸河侯食邑七百戶)에 봉해졌다.

그뒤 여러 차례 치사(致仕)할 것을 간청하였으나 성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989년에 죽으니 성종은 몹시 슬퍼하고 하교(下敎)하여 그 훈덕(勳德)을 포상하고 포(布) 1,000필, 면(麪) 300석(碩), 갱미(梗米) 500석 등을 부의하였는데, 성종의 이와같은 지극한 특별 배려를 통해서도 최승로가 성종대에서 차지한 정치적 비중이 얼마나 컸던가를 엿볼 수 있다.

태사(太師)에 추증되고, 998년(목종 1)에 성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으며, 1033년(덕종 2)에 대광 내사령(大匡內史令)이 가증(加贈)되었다.

 

공이 지은 시

 

성상이 태위의 책명을 받아 처음 왕으로 이어 봉해짐을 받들어 하례하며[奉賀聖上受太尉冊命初襲王封]

 

한황께서 동녘을 권고하시는 뜻이 깊어 / 漢皇東注意偏深

우리 임금 사대 정성을 갸륵히 여기셨네 / 美我君王事大心

팔도 조서가 하늘에서 내려와 / 八道詔書天上降

구소(하늘이 가장 높은 곳)의 사신이 해 가에 임하였네 / 九霄星騎日邊臨

대궐에 뜬 서기는 구름같이 엉기었고 / 雲蒸紫殿浮佳瑞

붉은 뜰에 윤음 선포되네 / 雷動彤庭布德音

미신이 다행히 반열에 참예하여 / 多幸微臣在朝列

끝없는 기쁨으로 서툰 시를 바치옵네 / 不勝歡慶貢巴吟

 

여자가 먼 곳의 임에게 부치는 것처럼 꾸미다[代人寄遠]

 

가는 수레 한 번 작별한 뒤 해가 격하였네 / 一別征車隔歲來

다락에 기대어 바라보고자 오르기에 몇 번이나 수고로웠나 / 幾勞登覩倚樓臺

상사의 괴로움 비록 이와 같을지라도 / 雖然有此相思苦

원하지 않네, 공 없이 빨리 돌아오는 것을 / 不願無功便早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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