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지를 준설한 뒤 군자정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동생이 서울에서 와서 함께하였다2수〔南池疏濬後 設宴君子亭 舍弟自京來會二首〕
성주께서 서주를 걱정하시어 / 聖主念西州
새로운 공업을 지난가을에 생각하셨네/ 新功想去秋
자식처럼 몰려와일만 개 삽을 꽂으니 / 子來萬鍤入
귀신처럼 퍼 옮겨 삼십 일 만에 공 이루었네/ 鬼運三旬收
물 넓어지니 어룡이 돌아오고 / 水濶魚龍返
방죽 길어지니 백성들이 노니네 / 堤長士女遊
술잔 들어다섯 군과 함께하니 / 擧觴同五郡
노래와 춤이 높은 누각에 있도다 / 歌舞在高樓
머지않아 올 줄은 알았거니와 / 亦知來不遠
이곳에서 상봉할 줄 상상이나 했으랴 / 那意此逢迎
아름다운 곳에서 형제가 모이니 / 勝地連枝會
푸른 봄날에 월계화를 썼구나/ 靑春戴桂榮
물가의 꽃은 인끈 곁에 화사하고 / 汀花明印綬
숲 속의 새는 퉁소 소리 속으로 날아가네 / 林鳥度簫聲
붉은 굴레가 누대 주변에 매어 있으니 / 紅勒樓邊繫
임금님 은혜가 형제에게 나란하도다 / 恩光並弟兄
[주-C001] 해서록(海西錄):
《이계선생삼편전서(耳溪先生三編全書)》의 원주에 “경인년(1770, 영조46) 봄 은대에 있다가 황해도 관찰사에 제수되고 신묘년 겨울(1771)에 체직되어 돌아왔다. 이 편은 부절을 쥐고 나아가 정사를 베풀던 때 유람을 기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001] 남대지를 …… 함께하였다:
이계가 황해도 관찰사로 있던 1771년(영조47)에 지은 시이다. 시에서 언급된 남대지(南大池) 준설은 1770년에 행해진 것으로, 남대지 인근 다섯 고을의 수령들이 각각 백성들을 거느리고 일을 하였다. 준설을 마치고 영조에게 상도 받았지만 흉년이 든 탓에 잔치를 베풀지 못하였고, 이해 이계의 순행 때 수령들이 군자정에 모여서 잔치를 베풀었다. 남대지를 준설한 일에 대해서는 본집 권14 〈연안남대지소준기(延安南大池疏濬記)〉에 자세하다.
[주-D002] 성주께서 …… 생각하셨네:
1770년 영조가 남대지 준설에 관해 전교한 것을 말한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770년 이계가 남대지 준설에 관한 장계를 올렸고, 4월 27일과 5월 14일 조정에서 논의가 있었으며, 7월 15일 영조가 주변 고을 수령들과 함께 백성들을 무휼(撫恤)하고 권면하여 일을 마치라는 전교를 내렸다. 9월 9일에 영조가 이계에게 숙마(熟馬) 한 필을 하사하자 이계는 9월 20일에 사은(謝恩)하는 소(疏)를 올렸다.
[주-D003] 자식처럼 몰려와:
백성들이 부모의 일을 하는 것처럼 기꺼이 달려와 일을 했다는 의미로 《시경》 〈대아(大雅) 영대(靈臺)〉에서 유래한 말이다. “서민이 일을 하여 하루가 못 되어 완성하였네. 일을 시작할 때 빨리 하지 말라 하셨으나 서민들이 자식처럼 와서 일하였네.[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주-D004] 귀신처럼 …… 이루었네:
원문의 ‘귀운(鬼運)’은 신운귀수(神運鬼輸)의 줄임말로, 옮기는 것이 매우 빠르다는 뜻이다.
[주-D005] 다섯 군:
남대지 주변에 있는 연안(延安)ㆍ배천(白川)ㆍ해주(海州)ㆍ평산(平山)ㆍ금천(金川)이다.
[주-D006] 푸른 …… 썼구나:
이계의 동생 홍명호가 문과에 급제하였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D007] 붉은 굴레:
화려하게 장식된 고관(高官)들의 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계가 관찰사로 있었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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