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령〔磨天嶺〕
우뚝이 서고 웅장히 서린 모습 누가 짝할 수 있으랴 / 卓立雄蟠誰與徒
초연히 구름 위 높은 고개에서 한 번 길게 탄식하네 / 翛然雲外一長吁
산은 북두성에 맞닿아 높낮이를 다투고 / 山當北斗爭高下
바다는 푸른 하늘과 나란해 분간하기 어렵네 / 水竝靑天混有無
고갯길 열리고 뚫린 천 년 세월 귀신 도끼질 수고로웠고/ 開鑿千年勞鬼斧
회오리바람 타고 오른 여섯 달 붕새의 도모로 변하였네/ 扶搖六月化鵬圖
고개 올라 보매 곧봉래가 가까움을 알겠나니 / 登臨便覺蓬萊近
내일관하를 또 내달리겠구나 / 來日關河又載驅
[주-C001] 삭방풍요(朔方風謠):
정조의 등극 이후 홍국영(洪國榮)이 실권자로 대두하면서 노론인 홍국영과는 당색이 달랐던 이계는 정치적 입지가 위축되어 결국 외직인 경흥 부사(慶興府使)로 나가게 된다. 이계 역시 정조가 세손 시절일 때부터 정조를 보위하고 정조의 등극에 공이 있었으며 홍국영과는 친족관계이기도 했지만, 소론을 정계에서 몰아내고자 했던 홍국영의 계획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외직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이 당시 이계의 상황과 심정은 본집 권18 〈태사씨자서(太史氏自序)〉에 자세한데,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조 초년에 권흉(權凶) 홍국영이 나와는 친족이면서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서 배척하여 경흥 부사에 보임되었다. 경흥은 최북단의 불모지였으나 나는 편안히 거처하면서 문을 닫고 독서하며 스스로 즐겼다. 그리고 〈육서경위(六書經緯)〉와 〈대상해(大象解)〉와 〈만물원시(萬物原始)〉와 〈삭방풍토기(朔方風土記)〉 등의 글을 저술하였다. 3년을 보낸 뒤 홍국영이 쫓겨나고서야 부름을 받아 돌아왔다.[正宗初年, 權兇洪國榮以親屬心害之, 斥補慶興府使. 慶興極北不毛之地也, 良浩居之晏然, 閉門讀書以自娛, 著六書經緯大象解萬物原始朔方風土記等書. 居三年, 國榮敗, 始召還.]” 이계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함경도 경흥으로 부임한 뒤 그곳의 풍토와 백성들의 삶을 한시로 창작하여 〈북새잡요(北塞雜謠)〉와 〈삭방풍요(朔方風謠)〉 등을 완성하였다.
[주-D001] 마천령:
이 작품은 이계가 경흥 부사에서 해직되고 도성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마천령을 지나며 마천령의 험준한 산세와 장쾌한 풍광을 읊은 것이다. 이 작품에 앞서 이계가 경흥 부사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마천령을 지나며 지은 동일한 작품의 고체시가 본권 앞부분에 있다. 마천령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338쪽 앞 시 참조. 이 작품은 평성 ‘우(虞)’ 운의 측기식 수구용운체 칠언율시이다.
[주-D002] 고갯길 …… 수고로웠고:
마천령의 길이 열린 것은 도저히 사람의 솜씨라고 할 수 없고 귀신의 솜씨라고 해야 할 정도로 마천령이 험준하기 이를 데 없다는 말이다. 본권의 앞에 있는 같은 제목의 고체시(古體詩)에서도 “태곳적 길 열고 뚫은 것 사람 힘 아님을 비로소 알겠나니, 거령의 손과 뇌공의 채찍 누가 빌려주었나.[始知厥初開鑿非人力, 誰借巨靈之掌雷公鞭.]”라고 하였다. 거령은 전설상의 하신(河神)이고, 뇌공은 뇌신(雷神)이다.
[주-D003] 회오리바람 …… 변하였네:
이는 마천령에서 바라본 북쪽 바다의 광대한 모습을 말할 것이다. 붕새의 도모로 변하였다는 것은 북쪽 바다의 곤(鯤)이라는 고기가 붕새로 변하여 남쪽 바다로 가기를 도모한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있어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고, 이 고기가 변화하여 붕이라는 새가 된다.……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물결을 치는 것이 3천 리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를 올라가 여섯 달을 가서야 쉰다.[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라고 하였다.
[주-D004] 봉래(蓬萊):
금강산의 이칭이다.
[주-D005] 관하(關河):
함곡관(函谷關)과 황하(黃河)의 병칭으로, 고향이나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험준한 산천을 지나가야 함을 말한 것이다.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승현 (역)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