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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성〔鳳凰城〕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4.02.06|조회수14 목록 댓글 0

봉황성鳳凰城

 

동풍 부는 봉황성에서 말에 기대니 / 東風倚馬鳳凰城
물산 번화하기로는성경에 버금가네 / 民物繁華亞盛京
땅은 청구에 가까우니 바다 상인 왕래하고 / 地近靑丘通海賈
강역은 흑수에 이어지니 변경 병사 유숙하네 / 疆連黑水宿蕃兵
붉은 누대 채색 편액에 아침 안개 걷히고 / 朱樓畫牓朝煙斂
하얀 성가퀴 화려한 망루에 삭방 눈발 빛난다 / 粉堞華譙朔雪明
안시성 옛터는 명승지로 남았으니 / 安市故墟留勝蹟
기이한 봉우리 구름 바깥으로 가파르게 서 있네 / 奇峰雲外立崢嶸

 

[-C001] 연운기행(燕雲紀行):

임인년(1782, 정조6) 겨울, 동지 겸 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연경(燕京)에 가게 되었다. 정 상공(鄭相公) 존겸(存謙)이 정사(正使)였고, 홍 학사(洪學士) 문영(文泳)이 서장관(書狀官)이었다.[壬寅冬 以冬至兼謝恩副使赴燕 鄭相公存謙爲正使 洪學士文泳爲書狀官.]

[-D001] 봉황성:

이 작품은 이계가 1782(정조6) 동지 겸 사은사 부사로 연경에 가는 사행 여로 중 요령(遼寧)의 봉황성에 당도하여 지은 시이다. 이곳이 고구려 때의 안시성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계나 정약용(丁若鏞)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등은 이러한 설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김창업(金昌業), 안정복(安鼎福), 박지원(朴趾源) 등은 각종 사서(史書)를 근거로 이 설을 부정하였다. 평성 ()’ 운의 평기식 수구용운체 칠언율시이다.

[-D002] 성경(盛京):

심양(瀋陽)의 이칭이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승현 ()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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