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휘성》 서문〔麻疹彙成序〕
천지의 큰 덕을 생(生)이라고 하는데오직 사람이 태어남에육기(六氣)는 밖에서 치고칠정(七情)은 안에서 갉아먹어생(生)을 해치니 성인이 일어나 의약으로써 그러한 것을 치료하였다. 이에신농씨(神農氏)가 온갖 풀들을 맛보고 헌원씨(軒轅氏)가《소문(素問)》을 지은 이후로 명의(名醫)들이 대대로 배출되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면서 비법을 전하였다. 그러나 천지가 생겨난 지 오래되자 사람들이 걸리는 병도 만여 종이나 되어404가지뿐만이 아니니 그저 앞시대 사람들이 효험을 본 처방만 살펴서는 병을 치료할 수 없게 되었다.
마진(麻疹홍역) 같은 것은 마마〔痘〕와 같은 종류이나 이름은 다르니 상고 시대에 없던 것이다. 그러므로 치료 방법도 옛날 신의(神醫)에게 근본하지 않고 오로지 형증(形症)과 운기(運氣)만 본다. 의술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이들은 먼저 그 형증을 살펴보고 불치(不治)ㆍ난치(難治)ㆍ이치(易治)의 조목으로 나누는데, 이른바 불치의 경우는 대개 반립(斑粒)의 많고 적음과 독기(毒氣)의 얕고 깊음으로 분별한다. 그러나 사람이 타고난 성질에는 튼튼하고 약함이 있고 시대의 운기(運氣)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거늘, 어찌하여 병에 걸린 초기에 치료할 수 있고 없음이 이미 판가름난단 말인가. 내 생각에는 불행히도 이 병이 헌황(軒皇황제(黃帝)) 때나 춘추(春秋) 시대 이전에 나타나지 않아서기백(岐伯)과 월인(越人)의 손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증상(症狀)을 논하고 약을 쓰는 데 있어 변하지 않는 신묘한 처방을 끝내 얻지 못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군 원풍(元豐)은 소아병을 잘 치료하는 것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마진의 치료법이 예로부터 의서(醫書)에 없어서 방법을 살펴서 병증을 치료할 수 없음을 일찍부터 한스럽게 여겨 옛 의술을 널리 고증하여 요지(要旨)를 가져오고 근세에 이미 증명된 처방을 참고하여, 모두 모아 책으로 만들고 《마진휘성》이라고 이름하였다.
먼저 운기(運氣)를 논하고 그다음에 형증을 논하였는데 큰 요강을 나열하고 세목을 나누어 손바닥을 보듯 분명하니 병을 살피는 사람들로 하여금집증(執症)에 현혹되지 않고 난치와 이치(易治)를 분별하여 치료에도 조리가 있게 하였다.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 방도에 크게 공을 세웠으니 그의 마음씀이 참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전에 듣기로는 송(宋)나라가정(嘉定)연간에 태의원(太醫院)에서《소아위생론(小兒衛生論)》20권을 편찬했다고 하는데 여기 실린두진(痘疹)에 대한 처방이 필시 이 책과 일치하는 점이 있을 것이다.군이 그 책을 구해서 징험해 보길 바란다.
麻疹彙成序
天地之大德曰生。惟人之生也。六氣伐其外。七情戕其內。不能無害生者。則聖人有作。乃有醫藥以濟之。於是乎神農氏嘗百草。軒轅氏作素問。自是以降。名醫代出。以救世而傳其法。然天地之生久矣。人之受病。有萬其種。不止四百有四。則不可只按前人已驗之方治之也。至若麻疹者。與痘同族而異名。卽上古所未有者。故其治方。未本於古之神醫。而惟視形症與運氣。世之以醫名世者。先觀其形症。爰有不治難治易治之目。所謂不治者。盖以斑粒之多寡。毒氣之深淺卞之。然人之生質有堅脆。時之運氣有制克。寧有得病之初。已判治不治之理哉。余則謂是病也。不幸而不出於軒皇之時春秋之前。未經岐伯越人之手。故論症投劑。終未得不易之妙詮也。李君元豐。以善治小兒。名於世。嘗恨麻疹之方。古無全書。無以按法而治症。遂博證古醫。提挈要旨。參之以近世已驗之方。裒輯成書。名之曰麻疹彙成。先論運氣。次及形症。列凡分目。瞭然如掌。使世之看病者。不眩於執症。而辨其難易。治有條貫。大有功於普濟衆生之術。其用心誠勤矣。嘗聞宋嘉定間。太醫院纂小兒衛生論二十卷。必有痘疹方。與此書暗合者。君其求而證之。
[주-D001] 마진휘성 서문 :
《마진휘성》은 홍역에 대한 의서이다. 《동의속방(東醫俗方)》ㆍ《동의보감(東醫寶鑑)》ㆍ《급유방(及幼方)》 등 종래의 의서에서 관련 내용을 채록(採錄)하고 그 당시에 경험된 처방을 합하여 편찬하였다. 저자 이원풍(李元豊, 1759~?)의 본관은 정읍(井邑), 자는 대유(大有), 호는 요산주인(樂山主人)이다. 본래 1777년(정조1) 역과(譯科)에 급제한 역관이었으나 의학에 정통하고 아이들의 병을 치료하는 데 능하여 이름이 알려졌다. 《유이태 생애와 마진편 연구, 경희대 한국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5》
[주-D002] 천지의 …… 하는데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지위라고 한다.[天地之大德曰生, 聖人之大寶曰位.]”라고 하였다. 생(生)이란 만물을 생육하는 것이다.
[주-D003] 육기(六氣)는 밖에서 치고 :
육기는 풍(風)ㆍ화(火)ㆍ한(寒)ㆍ서(暑)ㆍ습(濕)ㆍ조(燥)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운기설(運氣說)로 오운(五運)과 육기를 따져서 기후의 변화와 질병의 발생 등을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4] 칠정(七情)은 안에서 갉아먹어 :
칠정은 희(喜)ㆍ로(怒)ㆍ우(憂)ㆍ사(思)ㆍ비(悲)ㆍ공(恐)ㆍ경(驚)의 7가지 감정을 말한다. 갑작스럽게 강한 자극을 받거나 혹은 정기적으로 받은 자극이 인체의 정상적인 생리활동 범위를 초과하여 인체의 기기(氣機)를 문란하게 하고 장부의 음양기혈(陰陽氣血)을 실조시키면 질병이 발생한다. 이를 내상칠정(內傷七情)이라고 한다.
[주-D005] 신농씨(神農氏) :
중국 신화 시대의 제왕이다. 의약(醫藥), 쟁기와 보습, 도기(陶器), 활 등을 발명했다고 한다. 중국 의학의 시조로 받들어지며 수많은 약초를 맛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주-D006] 소문(素問) :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 포함되었고 그중 전반부에 해당한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이나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따른 병리학이 주된 내용이다.
[주-D007] 404가지 :
사람의 오장(五臟)에 각각 여든한 가지의 병이 있는데 죽음[死] 하나를 빼고 404가지의 병이라고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각종 질병을 의미한다.
[주-D008] 기백(岐伯)과 월인(越人) :
기백은 황제(黃帝) 때의 명의이다. 월인은 전국(戰國) 시대의 명의(名醫)로 알려진 편작(扁鵲)의 성명이다. 편작은 환자의 오장(五臟)을 투시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전한다. 편작은 원래 황제 때의 인물인데, 뒤에 전국 시대 정(鄭) 땅 사람 진월인(秦越人)의 의술이 신묘하여 그를 편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105 扁鵲列傳》
[주-D009] 집증(執症) :
본래 증세를 살펴서 병을 알아낸다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겉으로 드러난 병증을 의미하는 듯하다.
[주-D010] 가정(嘉定) :
남송(南宋) 영종(寧宗)의 네 번째 연호로 1208년부터 1224년까지 17년간 사용하였다.
[주-D011] 소아위생론(小兒衛生論) :
《소아위생총미논방(小兒衛生總微論方)》을 말한다. 남송(南宋) 시대에 간행된 저자미상의 의학서적으로 총 20권이다. 영유아(嬰幼兒) 및 소아(小兒)들에게 보이는 질병의 원인과 징후, 방약(方藥)과 치료법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명(明)나라 홍치(弘治) 연간에 인행(印行)하면서 《보유대전(保幼大全)》 또는 《보영대전(保嬰大全)》으로 명칭이 바뀌기도 하였다.
[주-D012] 두진(痘疹) :
전염병(傳染病)의 일종(一種)인 두창(痘瘡)이 드러난 증세(症勢)이다. 춥고 열(熱)이 나며 얼굴로부터 전신(全身)에 붉은 점(點)이 생기는 것이 홍역(紅疫)과 비슷하다.
[주-D013] 군이 …… 바란다 :
이 책의 저자인 이원풍이 본래 한학 역관(漢學譯官) 출신이므로 사행을 따라 중국에 갔을 때 의서를 구해보기 바란다는 의미로 쓴 말이다.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서한석 (역)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