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가 제 어미를 무는 개를 물어 어미를 구원하려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그러한 것이겠는가,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4.02.17|조회수7 목록 댓글 0

“나는 강아지가 제 어미를 무는 개를 물어 어미를 구원하려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그러한 것이겠는가, 정이 있어 그러한 것이겠는가. 지금 일을 논하는 자들이 이 짐승의 생각만도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한 것에 관한 논〔予見犬雛救咬母咬之犬妄爲然耶有情然耶今時議事者不如此物之意若何論〕 연산군이 이러한 질문을 하였기에 공이 응제(應製)한 것이다.

 

다음과 같이 논합니다. 천지의 사이에 이치는 하나일 뿐입니다. 사람과 동물의 성품이 비록 각기 같지는 않지만 모두 하늘의 이치를 받아 생겨납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동물에게 부여된 이치가 같겠습니까? 같지 않습니다. 하늘의 이치에서 치우치고 막힌 것을 받으면 동물이 되고, 온전하고 통하는 것을 받으면 사람이 됩니다. 치우치고 막혔기 때문에 기린과 봉황과 거북과 용이 비록 날개 달리고 털이 나고 비늘이 있고 껍질이 있는 짐승 중의 으뜸이 되고 상서로운 세상의 영물이 되지만 결국 짐승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온전하고 통하기 때문에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어 비록 완고하고 우둔하여 바뀌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타고난 성품을 그대로 지키는 참마음을 절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매하여 지각이 없는 것이 모두 동물이 됨을 알겠는데 이치가 어디에 깃들며, 발굽이 있어 달리고 날개가 있어 날며 무리 지어 사는 것이 모두 동물이 됨을 알겠는데 이치가 어디에 깃들겠습니까? 이는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범과 이리는 지극히 사나운 동물이지만 부자의 정이 사라지지 않았고, 벌과 개미는 지극히 작은 동물이지만 군신의 예가 또한 분명하고, 저구(雎鳩)는 정이 두터우면서도 분별할 줄 아는 의리를 지녔고, 까마귀는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보은의 마음을 지녔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매우 치우치고 막힌 것들이지만 한 가닥 천리를 얻어 오히려 각기 저절로 그렇게 되는 성품을 지니게 되었으니, 어떤 동물이든 이치가 깃든 것이 이와 같습니다. 게다가 만물의 성품에서 우선으로 얻어 가장 가깝고 절실한 것은 부자간의 사랑입니다. 생명이 있는 경우 반드시 이러한 정이 있어서 모든 행동이 그런 것입니다.

지금 저 강아지가 제 어미가 다른 개에게 물리는 것을 보고는 사랑하여 구원하려는 마음이 절로 생겨나 자신의 힘이 미약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달려가 구원하면서 짖으며 물었으니, 정에 지극함이 있어 저절로 그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이 강아지는 오직 어미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만을 알고 다른 것은 알지 못하였으니, 성품에서 발현되어 자신이 하는 행동을 스스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동물은 지각이 없어 아무 생각 없이 행동이 나오는 것이라고 누가 말하겠으며, 동물은 사리에 어둡고 완고하여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이 없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대개 이치가 동물에게 깃들어 있기에 동물이 그 치우친 것을 얻었으면서도 이처럼 저절로 그렇게 되는 천리를 잃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사람이 여러 이치가 갖추어진 성품을 받고서 어찌 그것을 확충하여 온전히 할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이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의 도리를 사람에게 성품으로 부여하였고 사람은 그 도(道)를 얻어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이 살면서 애초 누군들 부모를 모시며 효도하려 하지 않겠으며 임금을 모시며 충성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집안에서 효도하여 나라로 충성을 옮겨 가는 것인데, 혹 그러하지 못하는 자는 본성을 잃은 것이지 하늘이 유독 그 사람에게만 부족하게 준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어 분별하지 못하고, 완고하고 사나우며, 사특하고 이익을 탐하며, 악하고 도리를 거스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기약하는 것은 모두 충성과 효도를 근본으로 할 뿐입니다. 이와 같지 않다면 짐승만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일을 논하는 자들의 말은 제 어미를 구원한 개와 비교해 볼 때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같은지 다른지는 신이 알 수 없으나, 그 의론을 통하여 그 끝을 궁구하고 이치상 합당한지를 살펴보면 의론하는 자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보면 어진 신하가 임금을 모시면서는 마음가짐이 성실하고 성심으로 관직을 수행하여 일을 논하면서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권면과 간언은 반드시 정도를 따릅니다. 그리고 가부를 잘 헤아려 일을 이루고 시비를 바탕으로 논쟁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순 임금과 문왕 같은 성효(聖孝)와 덕업을 이루도록 합니다. 또 지금 세상에 가르침을 베풀되 그 복록이 후세에 전해져 순 임금과 문왕처럼 만세의 표준이 되도록 하며, 허물이 없는 곳으로 이끌어 지성(至聖)의 경지에 이르도록 합니다. 그러니 그 말을 들어 보면 비록 임금의 뜻에 맞춘 적은 없으나 그 마음은 바로잡아 구원하는 데에 절실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첨을 일삼고 비위를 맞추는 자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음가짐이 사특하고 구차스럽게 관직을 수행하여 일을 논하면서는 윗사람의 뜻에 부합하기만을 힘쓰고 권면과 간언은 정도를 따르지 않으니, 논의하는 것을 들어 보면 비록 귀에 거슬리는 적은 없지만 그 마음을 궁구해 보면 모두가 아첨하며 총애를 공고히 하려는 것들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위에 명철한 임금이 있으면 아래에는 자연히 아첨하는 신하가 없을 것입니다.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요(堯)와 순(舜)이 임금이 되어서는 그 덕이 하늘과 같고 그 명철함이 해와 같아서 조정에 있는 사람들은 마땅히 그 뜻을 그대로 따르기에도 겨를이 없어 임금을 바르게 경계하는 일이 없었을 듯하지만, 말하고 의논하는 때에 사악(四岳), 고요(皐陶), 기(夔), 익(益), 직(稷) 등이 서로 경계하고 서로 반대하였던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임금을 사랑하는 성심이 말하고 의논하는 사이에 드러나 임금의 덕이 날로 향상되고 쇠퇴하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 경계하고 반대한 것은 전혀 요순의 단점이 되지 않고 도리어 요순의 지극한 덕의 풍도가 됩니다.

지금 우리 성상께서는 덕이 요순과 비견되고 명철함이 요순과 비견되어 요순의 다스림을 이루고자 마음먹고 계시니, 아래에 있는 사람 중 대신(大臣)은 항상 성상을 도와 성취시키고 바로잡아 보좌하려는 마음을 가지며, 소신(小臣)은 항상 몸과 마음을 다하여 직무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비록 사악, 고요, 기, 익, 직만큼은 못할지라도 그 마음은 성상께 성심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요순의 교화를 함께 보전하며 길이 요순의 신하가 되기를 기약하고 있습니다. 일이 생겨 권면하고 간언하는 때에 혹 성상의 뜻과 다른 의견이 있을지라도 마음으로는 지극히 합당한 방안에 도달하기를 추구할 뿐입니다. 어찌 성명한 임금께서 위에 계시는데 신들이 감히 충성과 효성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이는 짐승만도 못한 것이고, 하늘이 부여한 천성을 잃은 것입니다. 명철함을 가진 요순에게서 어찌 도망갈 수 있겠으며, 어미를 구원한 개에게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습니까. 신이 이 때문에 “그 의론을 통하여 그 끝을 궁구하고 이치상 합당한지를 살펴보면 의론하는 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니, 개와는 비교할 것이 못 됩니다. 삼가 논합니다.

 

予見犬雛救咬母咬之犬。妄爲然耶。有情然耶。今時議事者。不如此物之意若何。論。燕山主有此問。公應製。


論曰。天地之間。理一而已。人物之性。雖各不同。而皆受天之理以爲生。然則理之賦於人物者同乎。曰。不如也。得其偏而塞者爲物。得其全而通者爲人。偏而塞也。故麟,鳳,龜,龍。雖羽毛鱗甲之長瑞世之靈。而終不離於物。全而通也。故人爲萬物之靈。雖頑嚚不移之愚。而自有秉彝之衷。然則蠢焉無知者。皆知其爲物也。而理何所寓焉。蹄而走。翼而飛。群動而群息者。皆知其爲物也。而理何所寓焉。曰是易知也。夫虎狼。物之至暴者也。而父子之情不泯。蜂蟻。物之至微者也。而君臣之禮亦著。雎鳩有摯別之義。慈烏有反哺之報。是皆偏塞之甚者。而得一端之天。猶各有自然之性。夫理之不遺物。猶是也。況萬物之性。首得而最親且切者。父子之愛也。有是生。必有是情而有動皆然。今夫犬雛。見其母之受咬於他犬也。愛救之心。油然而生。不覺其力之微。奔而救之。吼而咬之。情有至而自不能止焉。當此之時。是雛也唯知救母。而不知其他。發乎性而不自知其爲也。誰謂物之無知而出於妄爲也。誰謂物之冥頑而不有性之天也。蓋理寓於物。物得其偏。而其不失自然之天也如是則人受衆理之性。寧不思所以充而全之乎。天以三綱五常之道。賦於人爲之性。而人得其道。以爲人焉。人之生也。其初孰不欲事親孝也。事君忠也。孝於家。移忠於國也。而或不能者。本性失也。非天之所與獨不足於彼也。非有愚冥頑悍諂利惡逆之心。則其所以自期者。皆本乎忠孝而已爾。不如是則禽獸之不如也。然則今之議事者之言。較之救母之犬。爲何如也。其同不同。臣未能知也。然因其議而究其終。審其理之當否。則議者之心。可知也。大抵良臣之事君也。持心以誠。守官以誠。議事不違於道。獻替必循乎正。濟之以可否。爭之以是非。欲使其君聖孝如舜,文。德業如舜,文。施敎于今而垂裕于後昆。爲萬世準則如舜,文。引之於無過之地。致之於至聖之域。聽其言則雖未嘗比同。而其心未嘗不切於匡救也。若諂佞諛悅之人。則不然也。持心以邪。守官以苟。議事務合乎上。獻替不循乎正。聽其議。雖未嘗逆耳。而究其心。皆容悅固寵之爲也。雖然。上有聖明之君。則下自無容悅之臣。臣謹按堯,舜爲君。其德如天。其明如日。在朝者當將順不暇。似無規警之事也。而言議之際。四岳,皐,夔,益,稷之徒。更相警戒。更相吁咈者。無他。愛君之誠。形於言議。而欲其君之德日進而無替也。其警戒吁咈。未足以爲堯,舜之短。而更爲唐,虞至德之風。今我聖上。德比堯,舜。明比堯,舜。心乎堯舜之治。而在下者大臣。常贊襄匡輔以爲心。小臣。常盡心竭力以效職。雖不能如四岳皐夔益稷之爲。而其心未嘗不誠於君上。期共保堯,舜之化。而長爲堯,舜之臣也。雖遇事獻替之際議或不同。而心求乎至當之地而止耳。豈有聖主在上。而臣敢有不心於忠孝者乎。不如是。則禽獸之不如也。失其性之天也。其得逃於堯,舜之明乎。其無愧於救母之犬乎。臣故曰。因其議而究其終。審其理之當否。則議者之心可知。而犬不足較也。謹論。

 

[주-D001] 나는 …… 논 : 《연산군일기》 6년 11월 5일에, 연산군이 이에 관하여 승정원과 홍문관에 논(論)을 지어 올리라고 명하였다. 《해동잡록(海東雜錄)》 〈신용개〉에는, 연산군이 과거에 모비(母妃)가 폐위된 일을 노여워하여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이라고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정원 (역)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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