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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린權德麟 1529~ 1573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4.02.28|조회수55 목록 댓글 0

權德麟

 

權德麟君瑞, 號龜峯安東人。 中宗己丑生。 明宗癸丑文科, 官至郡守。 癸卒。

公早孤, 母夫人敎督甚嚴, 稍長, 受業於晦齋先生。 先生韜晦謙默, 不許人來學, 獨於公憐其志, 愛其才, 誘掖甚至, 每稱問難經旨, 有警發人處。

丁未, 先生謫關西, 自以未卒業爲恨, 就龜峯下作小齋, 杜門靜處, 探討書史, 後因以龜峯爲號。 爲親老, 傍習擧業, 癸丑登第。 是冬, 聞先生訃往, 中路迎柩而還。公乞外, 出宰懷德河東, 皆有聲績。 庚午, 除永川郡守, 過數月棄歸, 辛未, 倡同志建玉山院廟, 享先生。

朴南溪世采《東儒師友錄》, 至晦齋門徒, 獨稱公一人; 許草堂《玉山記》稱公謂年少志學之士。 權相一撰碣。

 

 

통 훈 대 부 행 병 조 정 랑 구 봉 선 생 권 공 의 행 장 [ 通訓大夫行兵曹正郞龜峯先生權
公行狀] 갑술년(1754)  -매산 정중기


본관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이다.
증조부 효충孝忠은 사직司直이다.
조부 명추命錘는 봉직랑奉直郞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이다.
아 버 지 계 중 繼中은 봉 직 랑 奉直郞 군 자 감 첨 정 軍資監僉正이 며 , 어 머 니 공 인 恭人은 양 성 이 씨
陽城李氏 유학 교도儒學敎導 세주世柱의 딸이다.
선생의 휘는 덕린德麟이고, 자는 군서君瑞이며, 성은 권씨權氏이다.
비 조 휘 행 幸은 안 동 에 서 일 어 나 고 려 태 조 를 추 대 하 여 사 성 賜姓되 고 태 사 太師에 임 명 되
었 다 . 그 뒤 에 휘 지 정 至正이 있 었 는 데 , 벼 슬 이 좌 윤 佐尹에 이 르 렀 다 . 이 로 부 터 대 대 로

벼 슬 하 였 다 . 조 선 에 들 어 와 서 휘 진 軫이 있 었 는 데 , 세 종 世宗 때 좌 의 정 이 며 시 호 는 문 경
文景이 다 . 공 의 형 제 가 모 두 크 게 드 러 났 다 . 막 내 초 軺는 문 과 에 급 제 하 여 시 정 寺正을
지 냈 고 용 궁 龍宮으 로 이 주 하 였 다 . 그 손 자 수 해 壽海 사 정 司正이 다 시 영 일 로 이 주 하 였 으 니 ,
바 로 선 생 의 고 조 부 이 다 . 증 조 부 사 직 공 司直公이 또 경 주 로 이 주 하 여 그 길 로 경 주 에
살았다.
가 정 嘉靖 기 축 년 ( 1 5 2 9 ) 에 선 생 은 경 주 부 북 쪽 안 강 현 安康縣에 서 태 어 났 는 데 , 천 품 이 영
특 하 고 재 주 가 명 민 하 였 다 . 첨 정 공 이 일 찍 세 상 을 떠 나 서 엄 한 가 르 침 을 받 을 곳 이
없 자 , 어 머 니 께 서 “ 과 부 의 아 들 을 사 람 들 이 반 드 시 무 시 하 는 것 은 가 르 침 을 받 은 곳 이
없 기 때 문 이 다 . ” 라 고 근 심 하 였 다 . 드 디 어 바 깥 선 생 에 게 나 아 가 수 업 하 도 록 하 고 는 자 정
慈情에 끌 려 과 독 課讀7 1 ) 을 느 슨 히 하 지 않 았 다 . 한 어 린 종 에 게 밤 낮 으 로 그 곁 을 지 키 도 록
하 고 는 , 만 약 외 운 것 이 더 러 시 험 에 서 틀 리 면 그 때 마 다 종 의 종 아 리 를 때 려 서 타 이 르 니 ,
이 때문에 더욱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며 스스로 힘을 쏟았다.
8 ~ 9 세 에 문 의 를 통 하 고 문 장 을 지 었 다 . 조 금 자 라 서 는 회 재 晦齋 이 선 생 李先生의 문 하 에
나 아 가 폐 백 을 가 지 고 배 우 기 를 청 하 니 , 이 선 생 이 그 영 특 함 을 아 껴 서 허 락 하 였 다 . 차 례
대 로 경 서 를 배 우 며 선 생 에 게 강 학 하 고 질 문 하 는 즈 음 에 가 르 침 밖 의 뜻 을 미 루 어 잘
알 아 내 니 , 이 선 생 이 머 리 를 끄 덕 이 며 “ 이 아 이 는 사 람 을 일 깨 워 주 는 점 이 많 으 니 , 함 께
강 학 하 면 매 우 유 익 할 것 이 다 . ” 라 고 하 고 는 , 그 숙 부 의 딸 로 아 내 를 삼 아 주 었 다 .
선 생 의 효 우 는 천 품 에 서 우 러 나 왔 다 . 어 머 니 를 봉 양 할 적 에 는 그 정 성 을 다 하 여 날 마 다
반 드 시 혼 정 신 성 昏定晨省과 양 지 養志․ 양 체 養體에 극 진 히 하 지 않 음 이 없 었 다 . 아 우 첨 정 공
僉正公 덕 란 德鸞과 화 락 하 게 함 께 즐 기 니 , 사 람 들 이 딴 말 을 하 지 않 았 다 . 이 는 또 한 학 문 의
힘에 도움을 받아서이다.
정 미 년 ( 1 5 4 7 ) 가 을 에 이 선 생 이 소 인 배 들 의 모 함 을 받 아 멀 리 관 서 關西로 유 배 가 게 되


71) 과독(課讀) : 과정을 정하여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었 는 데 , 선 생 은 부 모 님 이 늙 었 기 때 문 에 따 라 가 모 시 지 못 하 였 다 . 스 스 로 아 직 학 업 을
마 치 지 못 한 것 을 매 우 한 스 러 워 하 며 더 욱 분 발 하 여 날 마 다 예 전 에 배 웠 던 것 을 익 혔 다 .
안 강 현 양 월 리 楊月里 구 성 龜城에 터 를 잡 아 살 며 , 그 아 래 에 조 그 마 한 서 재 를 짓 고 서 구 봉
서 사 龜峯書舍라 고 편 액 하 였 다 . 문 을 닫 고 고 요 히 거 처 하 며 날 마 다 역 사 서 와 제 자 백 가 서 를
섭 렵 하 고 부 지 런 히 익 히 기 를 조 금 도 게 을 리 하 지 않 았 으 며 , 과 거 에 필 요 한 글 도 두 루
익혀서 못하는 것이 없었다.
계 축 년 ( 1 5 5 3 ) 에 소 과 시 험 과 정 시 대 책 에 서 모 두 장 원 을 차 지 하 였 는 데 , 나 이 겨 우
2 5 세 였 다 . 화 려 한 명 성 이 더 욱 크 게 퍼 졌 으 나 , 당 시 는 조 정 에 가 득 한 간 사 한 무 리 들 이
훌 륭 한 사 람 을 시 기 하 여 내 쳐 서 교 서 관 校書館에 보 임 補任되 었 다 . 이 해 겨 울 이 선 생 의 부 음
을 듣고 중도에서 운구 행렬을 맞이하였다.
병 진 년 ( 1 5 5 6 ) 에 성 균 관 전 적 成均館典籍으 로 승 진 하 였 다 가 , 정 사 년 ( 1 5 5 7 ) 에 예 조 정 랑 禮曹
正郞으 로 옮 겼 다 . 무 오 년 ( 1 5 5 8 ) 에 병 조 兵曹로 옮 겼 다 . 경 신 년 ( 1 5 6 0 ) 에 회 덕 현 감 懷德縣監으
로 나 갔 다 가 , 임 기 가 차 서 체 직 되 었 다 . 병 인 년 ( 1 5 6 6 ) 에 하 동 현 감 河東縣監에 제 수 되 었 다 .
이 당 시 조 정 의 의 논 이 조 금 평 온 해 져 서 훌 륭 한 사 람 의 벼 슬 길 이 점 점 열 렸 다 . 선 생 의
문 장 과 덕 행 을 흠 모 하 여 바 야 흐 로 사 간 원 의 물 망 에 올 랐 으 나 , 선 생 은 부 모 님 의 봉 양 에
편 리 하 기 위 하 여 매 번 외 직 에 보 임 되 기 를 구 하 여 작 은 고 을 에 서 전 전 하 니 , 공 의 公議가
애 석 해 하 였 다 . 그 러 나 정 사 를 베 풀 며 반 드 시 자 신 에 게 는 검 소 하 고 백 성 에 게 는 은 혜 로
웠으니, 부임지마다 명성과 공적이 있었다.
경 오 년 ( 1 5 7 0 ) 에 영 천 군 수 永川郡守에 제 수 되 어 집 과 가 깝 다 는 이 유 로 두 어 달 만 에 벼 슬
을 그 만 두 고 고 향 으 로 돌 아 왔 다 . 신 미 년 ( 1 5 7 1 ) 에 고 장 의 동 지 들 과 안 강 현 청 縣廳에 모 여
옥 산 玉山에 서 원 을 건 립 하 자 는 의 논 을 정 하 였 다 . 이 는 이 선 생 이 신 원 된 뒤 로 오 랜 기 간
제 향 의 의 논 이 있 었 으 나 사 화 를 겪 은 나 머 지 사 기 士氣가 꺾 여 서 머 뭇 거 리 며 감 히 발 의 하 지
못 하 던 것 을 선 생 이 홀 로 개 연 히 선 창 을 하 니 , 사 람 들 이 도 학 을 높 이 려 는 정 성 에 감 복 해 서
이다.
임 신 년 ( 1 5 7 2 ) 에 합 천 군 수 陜川郡守에 제 수 되 어 서 는 청 렴 한 신 조 를 더 욱 가 다 듬 어 늘
녹 봉 이 외 에 는 조 금 도 취 하 는 것 이 없 었 다 . 위 엄 으 로 아 전 을 다 스 려 간 사 한 행 위 를

귀 신 같 이 밝 혀 내 었 다 . 백 성 을 다 스 림 에 있 어 서 는 보 살 핌 과 사 랑 을 다 하 는 마 음 으 로
그 들 을 위 하 여 이 득 을 일 으 키 고 폐 단 을 제 거 하 였 다 . 토 지 점 검 이 공 정 하 지 않 고 세 금
부 과 가 공 평 하 지 않 음 을 걱 정 하 여 상 정 소 詳定所를 설 치 해 서 허 실 을 살 펴 공 평 하 게 처 리
하 였 다 . 번 거 롭 고 무 거 운 용 조 庸調7 2 ) 를 또 대 부 분 덜 어 주 어 서 제 때 에 농 사 지 을 수 있 도
록 하였다.
선 비 를 가 르 침 에 있 어 서 는 학 교 를 중 수 하 고 재 사 才士를 기 르 되 , 경 전 으 로 가 르 치 고
예 양 으 로 인 도 하 여 함 양 하 고 진 작 시 켜 서 비 루 한 풍 습 을 한 번 바 꾸 었 다 . 부 임 한 지
겨 우 한 해 만 에 합 천 군 사 람 들 이 흡 족 해 하 며 부 모 를 모 시 듯 이 추 대 하 니 , 옛 날 순 리 循吏의
풍 도 가 퍽 이 나 있 었 다 . 가 을 에 무 선 武選을 맡 았 는 데 , 과 거 를 보 는 사 람 들 이 시 험 장 을
어 지 럽 혀 서 파 면 되 어 돌 아 오 니 , 아 녀 자 나 아 이 들 마 저 도 모 두 의 기 를 잃 고 서 로 위 로 하
기를 “우리들은 젖줄을 잃었다.”라고 하였다.
합 천 군 수 로 부 임 한 첫 해 에 아 우 및 형 수 가 집 에 서 연 이 어 세 상 을 버 리 자 , 선 생 이
월 급 을 덜 어 장 사 의 비 용 을 도 우 면 서 도 오 히 려 관 아 창 고 의 재 물 을 함 부 로 허 비 하 지
않 았 다 . 조 카 에 게 편 지 를 보 내 “ 상 제 喪祭는 집 안 살 림 의 유 무 에 맞 도 록 하 는 것 이 예 이 다 .
단 지 힘 닿 는 대 로 치 러 야 지 , 겉 만 그 럴 듯 하 게 할 필 요 는 없 다 . ” 라 고 하 였 다 . 조 카 가
경 주 부 윤 에 게 편 지 를 보 내 일 꾼 을 얻 어 달 라 고 요 청 하 자 , 거 절 하 며 “ 사 가 의 상 을 위 하 여
백 성 을 동 원 하 는 것 은 나 라 의 법 이 아 니 다 . ” 라 고 하 였 다 . 그 의 리 를 잡 고 국 법 을 지 킴 이
이와 같았다.
계 유 년 ( 1 5 7 3 ) 에 곤 양 군 수 昆陽郡守에 제 수 되 었 다 . 부 모 님 의 봉 양 을 위 하 여 부 임 하 려 고
길 을 나 섰 다 가 , 병 이 나 서 돌 아 왔 다 . 7 월 1 0 일 에 정 침 에 서 생 을 마 치 니 , 향 년 4 5 세 였 다 .
9 월 2 4 일 경 주 부 북 쪽 두 류 동 頭流洞 부 묘 負卯 터 에 장 사 지 내 니 , 선 영 의 아 래 이 다 .
부 고 가 나 가 자 , 사 림 들 이 모 두 “ 어 진 군 자 가 세 상 을 떠 났 구 나 . ” 라 고 하 면 서 탄 식 해


72) 용조(庸調) : 부역 대신에 바치는 세금과 특산물을 말한다

 

마 지 않 았 다 . 합 천 사 람 들 은 더 놀 라 울 부 짖 었 으 며 , 더 러 는 빈 소 에 와 서 곡 하 고 더 러 는
장 지 에 와 서 전 을 올 리 기 도 하 였 다 . 이 해 에 또 비 석 을 만 들 고 비 문 을 새 겨 서 끼 친 사 랑 을
칭 송 하 였 으 니 , 그 글 에 서 “ 우 리 사 또 의 앞 뒤 로 우 리 사 또 와 같 은 분 이 없 었 네 . [ 我侯前後
未有我侯] ” , “ 학 문 에 연 원 이 있 었 으 나 크 게 펴 보 지 못 하 였 네 . [ 學有淵源 未大厥施] ” 라 고
하였다. 공의 덕의德義가 공송公頌에 오른 사실은 덮을 수 없을 것이다.
초 당 草堂 허 엽 許曄7 3 ) 은 평 소 선 생 과 도 의 지 교 道義之交를 맺 었 는 데 , 돌 아 가 셨 다 는 소 식 을
듣 고 또 한 선 생 을 위 하 여 마 음 아 파 하 며 “ 젊 어 서 학 문 에 뜻 을 둔 선 비 가 갑 자 기 이
지 경 에 이 르 렀 으 니 , 이 무 슨 운 명 인 가 ? ” 라 고 하 였 으 니 , 이 는 단 지 선 생 만 을 위 하 여 애 석
해 한 것 이 아 니 라 , 대 개 이 선 생 의 도 학 이 그 전 함 을 잃 어 버 렸 기 때 문 에 거 듭 애 석 해 한
것이다.
부 인 숙 인 淑人은 여 주 이 씨 驪州李氏 적 순 부 위 迪順副尉 휘 필 苾의 딸 이 자 , 훈 련 원 참 군 訓鍊院
參軍으 로 이 조 판 서 에 증 직 된 휘 수 회 壽會의 손 녀 이 다 . 가 정 신 묘 년 ( 1 5 3 1 ) 에 태 어 나 나 이
51세에 세상을 떠나니, 뒤에 부장하였다.
1 남 1 녀 를 두 었 다 . 아 들 사 의 士毅는 순 릉 참 봉 順陵參奉이 며 , 딸 은 사 인 안 대 해 安大海에 게
시집갔다. 측실의 두 아들은 사민士敏과 사눌士訥이다.
참봉은 1남을 두었다. 응생應生은 진천 현감鎭川縣監이다.
현 감 은 3 남 을 두 었 다 . 기 炁는 통 사 랑 通仕郞이 고 , 임 㶵은 참 봉 이 고 , 도 燾는 통 덕 랑 通德郞이 다 .
통 사 랑 은 3 남 을 두 었 다 . 해 垓․ 욱 ․ 준 埈이 다 . 참 봉 은 5 남 을 두 었 다 . 중 균 仲均․ 중 탄 仲坦․
중 후 仲垕․ 중 배 仲培․ 중 증 仲增이 다 . 통 덕 랑 은 3 남 을 두 었 다 . 숙 塾은 문 과 에 급 제 하 였 고 , 규 奎
와 학壆이다.
내 외 의 내 손 來孫과 곤 손 晜孫7 4 )
이 하 가 모 두 삼 백 여 인 인 데 , 지 금 다 기 록 하 지 못 한 다 .


7 3 ) 허 엽 ( 許曄, 1 5 1 7 ~ 1 5 8 0 ) : 자 는 태 휘 ( 太輝) , 호 는 초 당 ( 草堂) , 본 관 은 양 천 ( 陽川) 이 다 . 1 5 4 6 년 문 과 에
급 제 , 부 교 리 ․ 대 사 성 ․ 경 상 도 관 찰 사 등 을 지 냈 다 . 저 서 로 는 『초 당 집 』․ 『전 언 왕 행 록 ( 前言往行錄) 』
등이 있다.

 

아 ! 선 생 의 시 대 는 어 떠 한 시 대 였 던 가 . 기 묘 사 화 를 겪 은 나 머 지 ‘ 이 학 理學’ 두 글 자 를
세 상 에 서 크 게 금 하 던 시 대 였 다 . 이 선 생 은 바 야 흐 로 스 스 로 덕 을 깊 이 감 추 고 사 도 師道를
맡 아 후 배 가 르 치 기 를 즐 겨 하 지 않 았 으 나 , 선 생 은 같 은 향 리 의 아 버 지 없 는 한 아 이 로 서
책 상 자 를 지 고 큰 스 승 께 나 아 가 서 덕 스 러 운 음 성 을 받 들 고 경 서 의 지 결 을 수 업 하 며
간절히 도를 구하려는 의지를 품었으니, 이것이 남보다 아주 뛰어난 점이다.
만 약 시 종 모 시 고 배 워 서 배 우 기 원 하 는 정 성 을 마 쳤 다 면 순 서 대 로 의 진 취 를 어 찌
헤 아 릴 수 있 었 겠 는 가 ? 불 행 히 도 이 선 생 에 게 화 가 혹 독 하 여 길 이 먼 변 방 에 막 혀 서
유 배 지 로 따 라 가 서 론 緖論을 들 어 지 취 志趣를 넓 히 지 못 하 였 으 며 , 또 불 행 히 도 젊 어 서
급 제 한 뒤 어 버 이 봉 양 을 위 하 여 벼 슬 을 하 느 라 고 전 원 으 로 물 러 나 후 생 을 이 끌 어 회 재
선 생 의 학 문 을 길 이 전 하 지 못 하 였 으 며 , 또 불 행 히 도 소 명 召命이 너 무 늦 은 데 다 가 수 명
은 서 둘 러 짧 아 져 서 맑 은 조 정 에 서 아 홀 牙笏7 5 ) 을 가 지 런 히 잡 고 그 경 륜 의 능 력 을 시 험 해
보지 못하였으니, 아! 이 또한 명이 있어서인가?
유 문 遺文은 전 쟁 의 불 길 속 에 흩 어 진 데 다 가 또 종 가 가 연 이 은 화 재 로 다 타 버 려 서 ,
단 지 대 책 對策의 두 시 권 試券만 보 존 되 어 있 으 니 , 이 또 한 다 행 이 다 . 지 금 그 남 은 글 을
읽 어 볼 때 풍 부 한 문 장 과 강 직 한 의 론 이 강 건 하 고 화 려 하 며 호 방 하 고 웅 장 하 여 신 구
神駒의 날 렵 한 다 리 에 가 벼 운 수 레 를 매 워 천 리 를 달 리 고 한 조 각 외 로 운 돛 단 배 가
순 풍 을 타 고 큰 바 다 를 내 달 리 는 듯 하 니 , 이 러 한 재 능 과 식 견 으 로 어 디 에 쓰 인 들 되 지
않았겠는가?
홍 문 관 에 있 었 다 면 왕 명 을 밝 히 고 나 라 를 빛 내 는 솜 씨 를 펼 칠 수 있 었 을 것 이 며 ,
사 헌 부 에 올 랐 다 면 간 사 한 이 들 이 꺼 리 고 두 려 워 할 직 필 을 떨 칠 수 있 었 을 것 이 다 .
그 러 나 외 직 으 로 만 돌 고 내 직 을 맡 지 못 하 였 으 며 한 분 야 에 서 재 직 하 느 라 두 루 역 임 하


7 4 ) 내 손 ( 來孫) 과 곤 손 ( 晜孫) : 자 손 을 헤 아 릴 때 자 ( 子) ․손 ( 孫) ․증 손 ( 曾孫) ․현 손 ( 玄孫) ․ 내 손 ( 來孫) ․ 곤 손
(晜孫)의 순으로 멀어져 가므로, 비교적 먼 후손을 나타낼 때 쓰이는 표현이다.
7 5 ) 아홀(牙笏) : 2품 이상의 관원이 지니는 상아로 만든 홀이다

 

지 못 해 서 이 름 이 낮 은 관 직 에 묻 혀 세 상 에 크 게 드 러 나 지 못 하 였 으 니 , 소 잡 는 칼 로
닭을 잡는다는 탄식76)이 어찌 자유子游에게만 그러하였겠는가?
본 고 장 의 선 비 들 이 선 생 의 덕 행 과 학 문 을 묻 어 버 릴 수 없 다 고 생 각 하 여 사 당 에 제 향
할 것 을 모 의 한 지 가 오 래 되 었 다 . 거 의 백 여 년 뒤 에 야 의 논 이 드 디 어 정 해 져 서 운 천 동 雲
泉洞에 사 당 을 건 립 하 고 비 로 소 제 향 을 거 행 하 니 , 식 자 들 이 모 두 다 행 이 라 고 여 겼 다 .
그 러 나 겨 우 몇 해 만 에 금 령 禁令으 로 뒤 에 새 로 세 운 서 원 은 훼 철 을 당 하 였 으 니 , 탄 식 을
견딜 수 있겠는가?
임 신 년 ( 1 7 5 2 ) 에 선 생 의 6 세 손 순 淳 등 이 매 산 梅山 아 래 로 나 를 찾 아 와 근 심 스 레 말 하
였다.
“ 우 리 선 조 의 학 술 과 행 의 는 후 세 에 전 하 기 에 충 분 하 나 작 은 비 석 에 는 명 문 이 빠 져
있 는 데 다 가 또 세 월 이 오 래 되 어 마 멸 되 었 습 니 다 . 이 제 막 비 석 을 갈 고 명 문 을 받 아
영 원 히 전 하 기 를 도 모 하 면 서 감 히 훌 륭 한 글 을 당 신 에 게 부 탁 합 니 다 . 당 신 은 사 양 하 지
마 십 시 오 . 저 의 증 조 부 참 봉 공 參奉公께 서 일 찍 이 유 사 한 편 을 지 었 으 나 , 너 무 간 략 하 여
사 적 의 대 부 분 이 빠 져 있 습 니 다 . 옛 사 적 을 모 아 보 충 하 고 정 리 하 는 일 은 당 신 이 아 니 면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당신은 우리 선조의 외손인데,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정중히 사양하며 말하였다.
“ 예 전 에 제 가 서 울 에 유 학 하 며 이 른 바 『해 동 유 림 록 海東儒林錄』을 보 았 습 니 다 . 비 록 누
가 편 찬 한 것 인 지 는 모 르 나 이 학 理學의 연 원 을 일 일 이 서 술 한 것 이 퍽 이 나 상 세 하 였 습 니
다 . 우 리 회 재 선 생 의 기 사 에 이 르 러 서 는 ‘ 문 인 권 아 무 개 의 벼 슬 은 군 수 郡守이 고 호 는
구 봉 龜峯’ 이 라 하 였 으 니 , 이 분 은 실 로 나 라 사 람 이 함 께 존 경 하 는 분 이 었 습 니 다 . 선 배 들
도 찬 양 한 일 인 만 큼 공 의 公義에 있 어 감 히 사 양 할 수 없 는 일 이 나 , 생 각 건 대 , 얕 은 식 견 의


7 6 ) 소 … … 탄 식 : 뛰 어 난 재 주 를 가 진 사 람 이 재 주 를 제 대 로 펼 쳐 보 지 못 한 것 을 말 한 다 . 공 자 가 자 유 ( 子
游) 가 읍 재 ( 邑宰) 로 있 던 무 성 ( 武城) 에 가 서 거 문 고 타 고 시 를 읊 는 소 리 를 듣 고 는 빙 그 레 웃 으 면 서
“ 닭 잡 는 데 어 찌 소 잡 는 칼 을 쓰 겠 는 가 ? [ 割雞焉用牛刀] ” 라 고 한 데 서 유 래 한 다 . ( 『論語』「陽貨」)

 

후 학 이 외 람 되 이 외 손 의 반 열 에 있 어 서 비 록 숨 겨 진 광 채 를 발 휘 하 여 사 람 들 에 게 보 여
준 들 사 람 들 이 누 가 다 시 저 의 말 을 믿 겠 습 니 까 ? 모 쪼 록 다 시 다 른 사 람 에 게 가 셔 서
도모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순 등 이 그 치 지 않 고 더 욱 독 촉 하 였 다 . 드 디 어 끝 까 지 사 양 할 수 없 어 서 남 아 있 는
문 자 를 대 략 취 하 여 차 례 대 로 서 술 하 여 당 세 입 언 자 立言者의 재 단 을 기 다 린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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