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륜羅海崙 1583~ 1659 松島羅公墓誌銘 幷序○丙午

작성자樂民(장달수)|작성시간24.03.25|조회수40 목록 댓글 0

송도 나공 묘지명병서○병오년〔松島羅公墓誌銘幷序○丙午〕

 

옛날 장릉(長陵인조(仁祖))의 세대에 국가가 거듭 큰 난리를 치렀는데, 나해륜(羅海崙) 공이 두 번이나 창의(倡義)해서 피로 얼굴을 적시고 하늘에 맹세하고는 몸을 돌아보지 않고 분발하여 군주의 위급함에 달려갔다. 비록 난리가 평정되어 흉도(凶徒)가 해산하고 화의(和議)가 이루어져 퇴각함으로써 당대에 공렬(功烈)을 이루지 못했으나,하늘과 땅이 뒤바뀐 것을 애통해하여 스스로 종신토록 지조를 지킴을 달게 여기고 늠름하게바다로 뛰어드는 기풍이 있었다. 공이 이처럼 꿋꿋이 지켰던 일은 천하와 후세에 드러낼 만하니, 어찌 거룩하지 않겠는가.

공은 자가 응숙(應淑)이고 호가 송도(松島)이고 계통이 나주(羅州)에서 나왔으니, 고려조의 감문위(監門衛) 상장군(上將軍) 휘 부(富)를 시조로 삼는다. 조선조에 휘 진(璡)이 있었으니, 호조 판서에 제수되었으나 의리를 높여 벼슬하지 않았다. 고조 일손(逸孫)은 기묘사화(己卯士禍)의 명현(名贒)이고, 증조 창(昶)은 한림(翰林)이고, 조고 사음(士愔)은 주부(主簿)이고, 선고(先考) 덕겸(德謙)은 참의(參議)에 추증되었다. 참의공은충렬공(忠烈公) 덕헌(德憲)과 실로 종부형제(從父兄弟)가 되고, 선비 풍산 홍씨(豐山洪氏)는 참봉(參奉) 한신(漢信)의 따님이다.

공은 모습이 아주 기특하고 비범하였으며, 문장이 일찍 성취되어서 수은(睡隱) 강항(姜沆) 공에게 수학(受學)하여 깊이 인정을 받았다. 15세에 정유재란(丁酉再亂)을 당하여 공이 두 어버이를 모시고 덕룡산(德龍山) 속에 숨었는데, 참의공이 학질(瘧疾)을 앓아서 소간을 먹고 싶어 하였다. 공이 밤길로 옛집에 돌아가서 송아지를 끌고 오다가 왜적을 만나 붙잡히자, 공이 꾸짖기를 “내가 어버이 병환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으니, 누군들 부모가 없겠는가. 나를 해치지 말라.” 하니, 왜적들이 감탄하기를 “참으로 효자이다.” 하고 붙들어서 호송하였다.

난이 끝난 다음 집에 돌아오니, 종들이 모두 달아나고 없었다. 공은 몸소 땔감을 채취하고 쌀을 져다가 맛있는 음식으로 양친(兩親)을 공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장성하자, 스스로 분발해서 종제(從弟)인 남간(南磵) 해봉(海鳳) 공과 함께 부지런히 강습(講習)하여 선대의 가업을 계승하였다. 장성해서도 여전히 아내가 없었는데 혹자가 장가들기를 권하자, 말씀하기를 “효(孝)는 처자 때문에 쇠해지니,나는 장가들기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김선(金璇) 공은 그러한 뜻을 훌륭하게 여겨서 자기 아우 참봉 여(璵)의 따님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무신년(1608)에 고경리(高敬履) 공이 우계(牛溪성혼(成渾))와 송강(松江정철(鄭澈))의 모함을 변론하다가 금고(禁錮)를 당하자, 공이 박준철(朴濬哲) 공과 더불어 글을 지어서 억울함을 하소연하니, 바른 사람을 붙들고 간사한 사람을 배척하는 의리가 분명하게 빛났다. 이때 혼조(昏朝광해군(光海君))를 만나서 윤리가 무너져 끊기니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체념하였으나, 어버이 봉양을 위하여 사람들을 따라 과거를 보았다. 일찍이 한 번 초시(初試)에 합격하고 성시(省試진사(進士) 회시(會試))를 통과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시기를 받아 학적(學籍)에서 제명되었지만 공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병진년(1616)에 참의공의 병환이 위독하니, 공은 밤에도 띠를 풀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약수발을 하였으며, 자신이 대신 죽기를 기원하였다. 상을 당하자, 예제(禮制)보다 더 슬퍼하여 몸을 훼손하였고, 3년 동안 여묘(廬墓)를 하였는데, 눈물이 떨어지자 풀이 말랐고 절하고 곡한 곳에는 겨울의 눈이 먼저 녹았다. 상을 마치자, 대부인(大夫人)의 연세가 이미 90세였다. 공은 곁에서 간호하고 봉양하였는데, 혹 일이 있어 외출하게 되면 심하게 춥거나 무덥거나 많은 비가 오더라도 정해놓은 시간을 어기지 않고 돌아왔다. 그리고 무릎 곁에서 온화한 모습으로 항상 어린아이와 같은 장난을 하여 기쁘게 해드렸다.

갑자년(1624)에 진사에 합격하였는데, 어머니의 뜻에 따라 잔치를 베풀 적에 모친을 업고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니, 보는 자들이 감동하고 기뻐하였다. 얼마 후 역적 이괄(李适)이 배반했다는 말을 듣고는 고을의 선비들과 함께 강개(慷慨)하여 격문(檄文)을 돌려 군량(軍糧)을 모으고 의병을 일으켜 무리들과 맹세하였으니, 이 사실이《갑자모의록(甲子募義錄)》에 기록되어 있다.

경오년(1630)에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이전의 부친상과 똑같이 예를 집행하였다. 상복을 벗자, 울며 말씀하기를 “지금 이후로 내가 누구를 위해서 봉양하겠는가. 우리 왕이 병이 없기를 빌고 바랄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또 효도를 옮겨서 충성을 한 하나의 단서이다.

병자년(1636)에 청나라 사람들이 들어와 침략해서 대가(大駕)가 파천(播遷)하자 공은 또다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도모하였는데, 나주 목사(羅州牧使) 오준(吳竣)이 공을 의병장으로 삼으니, 이는 백성들의 바람을 따른 것이다. 공은 아들 경(儆)을 군관(軍官)으로 삼고, 의병청(義兵廳)을 객사에 마련하여 밤낮으로 군대를 다스리고 한 도(道)에 격문을 돌리니, 열사(烈士)들이 운집(雲集)하였다.

정축년(1637) 정월에 길을 따라 공주(公州)에 이르니, 의병 도원수(都元帥)기옹(畸翁) 정공(鄭公)이 진(陣)에 남아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불어 군대의 일을 논하였는데, 정공이 말하기를 “만일 의병장이 모두 그대와 같다면 적은 평정할 거리도 못 된다.”라고 하였다. 얼마 후에 화친(和親)이 이루어지자, 공은 북쪽을 향하여 통곡하며 말씀하기를 “살지 않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가을에 어떤 사람이 궁문(宮門)에 써 붙이기를 “삼강이 이미 끊어지니 나라가 뒤따라 망했네. 공론은 천추의 세월토록한청에 부끄러우리.〔三綱已絶國隨亡, 公議千秋愧汗靑.〕”라고 하였다. 공은 이 시를 보고 팔뚝을 어루만지며 말씀하기를 “애석하다. 이 사람이 미리 좋은 계책을 아뢰지 못해서 오늘의 일에 이르렀구나.”라고 하였으니, 이 뜻은 당시에 국가를 도모하는 자들이음우(陰雨)를 대비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깊은 한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로부터는 입을 다물고 세상사를 말씀하지 않았다.

경진년(1640)에 효릉 참봉(孝陵參奉)에 제수되었는데 의리에 입각하여 취임하지 않았다. 오직 자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사소한 잘못도 용서하는 법이 없었으므로 여러 아들들이 모두 성취함이 있어서 차례로승상시(升庠試)에 합격하였다. 항상 선(善)을 실천할 것을 경계하여 말씀하기를 “나의 자손들은 이것을 체행하고 길이 생각해서 황천(皇天)과 귀신(鬼神)에게 죄를 얻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인조가 승하하자, 공은 아침저녁으로곡림(哭臨)하고 거친 삼베옷을 입고 삼베로 만든 띠를 착용하고서 마치 어버이 상과 같이 하였다.주구(珠邱)를 정하자, 두 아들을 데리고흠위(廞衛)에 달려가 곡하였다. 이때 공은 오랫동안 학질(瘧疾)을 앓아 집안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간하였으나, 듣지 않고 말씀하기를 “부자(父子)가 천 리 먼 길을 달려와서 곡하였으니, 신하의 도리를 다하였구나. 내 마음이 편하다.”라고 하였다.

항상 어버이가 살아계실 때에 가난 때문에 가볍고 따뜻한 옷을 장만해드리지 못했다 하여 종신토록 통한(痛恨)으로 여겼으니, 노년에 이르러 집이 좀 여유가 생겼어도 여전히 비단옷을 입지 않았고, 염할 때 비단과 명주를 쓰지 말라는 경계를 남겼다.

공은 날마다 반드시 일찍 일어나서 관(冠)과 옷깃을 정돈하여 몸가짐을 매우 조심하였다. 마을사람들을 성실로 대우하고 후생들에게 학문과 효제(孝悌)를 권면하였으며, 평소 말씀하기를 “사람의 도리는 효도를 첫 번째로 여기는데 효도를 군주에게 옮기면 충성이 되니, 충과 효에서 잠시라도 떠날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동시대에 독행(篤行)을 논하는 자들이 번번이 공을 으뜸으로 삼았다.

기해년(1659) 10월 22일에 별세하니, 출생한 만력(萬曆) 계미년(1583) 7월 14일과의 거리를 계산해 보면 77세가 된다. 나주(羅州) 서쪽 장흥동(長興洞) 자좌(子坐)에 장례하였는데, 김씨 부인과 묘역은 같으나 봉분이 달랐으니, 선영을 따른 것이다.

공은 4남을 두었으니, 희(僖), 경(儆), 민(僶)은 모두 진사이고 다음은 선(僐)이며, 서출(庶出)은 보(保)와 근(僅)이다. 희의 아들 천로(天老), 천정(天鼎), 천형(天衡)은 모두 진사이고 천심(天心)은 생원이다. 선의 아들 천추(天樞)는 생원이고, 천추의 아들 이계(以桂)는 생원이다. 증손 이하는 모두 기재하지 않는다.

아! 공은 먼 지역의 포의(布衣)로서 하루아침 창졸간에 단지 기개와 의리에 격동되어 오직 군주가 있음만 알고 자기 몸이 있음을 알지 못하여 시퍼런 칼날에 달려가기를 평온한 땅을 달리듯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먼저 큰 것을 세운다.’는 것일 것이다.

공은 부모에게 깊은 애정이 있어서 기미를 알고 해(害)를 멀리 피해서 병화(兵禍)가 시끄럽게 일어났을 때에도수수(滫瀡)의 봉양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교활한 왜적마저도 감동시켰다. 또 6년 동안 여묘하면서 몸을 훼손하여 거의 생명을 잃을 뻔하였는데, 중니(仲尼)께서 말씀하시기를“효라는 것은 군주를 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효는 충성을 기다려서 완성됨을 알 수 있다. 군주와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고 군주와 신하의 의리를 밝힘에 있어서 공은 거의 부끄러울 것이 없다.

금성(錦城나주(羅州))에 서라(西羅)와 동라(東羅)의 명칭이 있으니, 서라는 바로 공의 후손들이 사는 곳이다.무신년의 변고에 동라에서는 혹 반역을 따랐으나, 서라에서는 반역과 순종의 의리를 크게 분별하였으니, 공이 충효의 풍교(風敎)와 덕업(德業)으로 후손들에게 큰 덕을 남겨주지 않았다면 어찌 능히 이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 공의 7세손인 석면(錫冕)이 공의 유사(遺事)를 가지고 나를 찾아와서 묘지(墓誌)를 청하니, 내가 늙어서연참(鉛槧)을 물리쳤으나, 공의 이름이 인멸되어 전하지 못함을 슬퍼하여 병을 무릅쓰고 명문을 짓는다. 명은 다음과 같다.

훌륭하고 훌륭한 나씨 집안에 / 抑抑羅宗
정기가 모여 충렬공을 낳았네 / 篤生忠烈
공이 또다시 충렬공을 계승하니 / 公又繩武
이 숙부에 이 조카였네 / 是叔是姪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켜서 / 爲國倡義
풍절을 다시 드날렸네 / 再揚風節
공을 미처 이루기 전에 / 功未及遂
하늘과 땅이 훼손되고 찢어졌네/ 乾坤毁裂
땅에 뿌릴 수 없게 되었으니 / 無地可灑
그것은 몸속에 가득한 뜨거운 피였네 / 滿腔熱血
세상을 피하여 몸을 숨기니 / 將身逃隱
봉필에서 은둔하였네 / 遵晦蓬蓽
근본이 있었으니 / 本之則存
백행의 근원인 효성이었네 / 百行是源
자식들을 가르쳐 본받게 해서 / 敎誨式似
시와 예로 가문을 창성하게 하였네 / 詩禮昌門
가문이 영화로움을 고하니 / 門闌告榮
세 아들에 일곱 손자였네 / 三子七孫
천도가 보시해서 / 天道報施
그 덕이 영원히 칭송되네 / 載永德聲
충효를 가르치니 / 課忠責孝
후손에게 넉넉한 덕을 남겼네 / 于後遺贏
남쪽 지역에 기강이 되니 / 有紀南國
공과 더불어 이름을 다툴 자 누구인가 / 疇與爭名
높고 높은 장흥동 산에 / 嵂嵂興岳
도끼와 같은 무덤이 있네 / 若斧其塋
글을 새겨 실제를 기재하여 / 琢辭載實
묘소에 드리우니 / 用納玄扃
준걸한 선비들이여 힘써 / 勖哉髦士
공을 본받을지어다 / 繄公是程

 

[주-D001] 하늘과 …… 것:

중화의 명나라가 망하고 오랑캐의 청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엄청난 변혁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 바다로 뛰어드는 기풍: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바다로 뛰어들어 죽는 기풍을 이른다.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인 노중련(魯仲連)이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나 얽매여 사는 것을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고 조(趙)나라에 은거하고 있었다. 이 사이에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여러 제후들이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감히 조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다. 위(魏)나라의 안희왕(安釐王)이 조나라를 구원하고자 하였으나 진나라의 위협을 두려워하여 출군하지 못하고, 신원연(新垣衍)이라는 변사(辯士)를 조나라에 보내 진나라 임금을 황제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는 계책을 말하게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노중련이 “포악한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칭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겠다.”라는 뜻을 밝힌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83 魯仲連鄒陽列傳》

[주-D003] 충렬공(忠烈公) 덕헌(德憲):

나덕헌(羅德憲, 1573~1640)으로, 자는 헌지(憲之), 호는 장암(壯巖), 시호는 충렬이다. 1603년에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을 거쳐 이괄(李适)의 난 때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안현(鞍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진무 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봉해졌고, 길주 목사(吉州牧使), 의주 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에 춘신사(春信使)로 심양에 갔다가 황제를 참칭(僭稱)한 청나라 조정의 국서를 받았다고 탄핵 당하여 백마산성(白馬山城)에 유배되었다. 뒤에 누명이 벗겨져 유배에서 풀리고 삼도통어사로 특진되었다.

[주-D004] 효(孝)는 …… 쇠해지니:

이 내용은 《설원(說苑)》 권10 〈경신(敬愼)〉에 보인다.

[주-D005] 갑자모의록(甲子募義錄):

갑자년(1624) 이괄의 난 때 영광(靈光)의 사인(士人) 신유일(辛惟一)이 전주(全州), 김제(金堤) 등 전라도의 12고을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집했을 때의 전말을 기록한 책으로, ‘나주(羅州)’ 조에 나해륜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이 책은 1760년경에 전라도 유생 이국좌(李國佐) 등이 공동으로 편찬하였는바, 윤봉구(尹鳳九)의 〈호남모의록서(湖南募義錄序)〉와 김원행(金元行)의 〈갑자모의록서(甲子募義錄序)〉가 실려 있는 1권의 목판본 《호남모의록》이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D006] 기옹(畸翁) 정공(鄭公):

정홍명(鄭弘溟, 1582~1650)으로,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용(子容), 호는 기암(畸菴)ㆍ삼치(三癡),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아들이고 송익필(宋翼弼)ㆍ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16년(광해군8) 증광 문과에 급제한 뒤 청요직을 두루 거치고 대제학에 이르렀다. 고문(古文)에 밝고 학문은 김장생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저서로 《기암집》이 있다.

[주-D007] 한청(汗靑):

고대에 청죽(靑竹)을 불에 구워 속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오게 해서 글을 쓰기에 편리하고 좀이 슬지 않게 만든 죽편으로, 여기에 주로 역사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사서(史書)를 이르는 말로 쓰였으며, 곧바로 역사(歷史)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주-D008] 음우(陰雨)를 …… 것:

유사시를 대비하여 미리 국방을 튼튼히 하지 못함을 이르는바, 《시경》 〈빈풍(豳風) 치효(鴟鴞)〉의 “비가 오기 전 날씨가 좋을 때에 저 뽕나무 뿌리를 거두어다가 창문을 칭칭 감는다면, 지금 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 今此下民, 或敢侮予?]”라는 구절을 원용한 표현이다.

[주-D009] 승상시(升庠試):

생원ㆍ진사시(生員進士試)의 다른 이름으로, 승학시(升學試) 또는 승보시(陞補試)라고도 부른다. 성균관 대사성이 사학(四學) 유생에게 매년 10회의 시험을 보여서 성적이 우수한 자는 생원ㆍ진사시의 복시에 바로 응시하도록 하는 소과 초시(小科初試)의 하나인데, 시험과목은 부(賦) 1편과 고시(古詩) 1편이다. 뽑는 인원은 모두 10인이다. 《大典會通 卷3 禮典 諸科》

[주-D010] 곡림(哭臨):

초상이 났을 때 여러 사람이 모여서 정해진 때에 슬피 곡하는 것을 말한다.

[주-D011] 주구(珠邱):

임금의 능침을 뜻하는바, 순(舜) 임금의 무덤에 새가 날아와 구슬을 떨어뜨린 것이 쌓여서 언덕을 이루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拾遺記 虞舜》

[주-D012] 흠위(廞衛):

임금이나 왕후의 장례 행렬에 쓰던 기구(器具)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장례 행렬을 가리킨다.

[주-D013] 먼저 …… 세운다:

이 내용은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보이는 말로, 마음에 큰 의리를 먼저 확립하면 작은 것인 귀와 눈 등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D014] 수수(滫瀡)의 봉양: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다. ‘수수’는 전분을 음식에 섞어 부드럽게 만드는 조리법의 일종으로, 《예기》 〈내칙(內則)〉에 부모를 음식으로 봉양하는 방법을 말하면서 “근(堇), 환(荁), 분유(枌榆)의 날 것과 말린 것을 잘 조리하여 부드럽게 하고 기름진 것으로 맛있게 한다.[堇荁枌榆免薧, 滫瀡以滑之, 脂膏以膏之.]”라고 보인다.

[주-D015] 효라는 …… 것이다:

이 내용은 《대학장구》 전(傳) 9장에 보인다.

[주-D016] 무신년의 변고:

무신란(戊申亂)으로, 무신년(1728, 영조4)에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가 경종(景宗)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난이다. 이인좌(李麟佐)가 중심이 되었기에 ‘이인좌의 난’이라고도 한다.

[주-D017] 연참(鉛槧):

글씨를 쓰는 납가루와 나무판자라는 뜻으로, 붓과 종이를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글 짓는 것을 뜻한다.

[주-D018] 하늘과 …… 찢어졌네:

명나라가 오랑캐에게 망하여 청나라가 됨을 표현한 것이다.

[주-D019] 봉필(蓬蓽):

‘봉문필호(蓬門蓽戶)’의 줄임말로 쑥대나 싸리로 만든 문이라는 뜻인데, 가난하여 누추한 집을 이른다.

ⓒ 성신여자대학교 고전연구소ㆍ(사)해동경사연구소 | 연석환 (역) | 2020

 

松島羅公墓誌銘幷序○丙午

在昔長陵之世。國家荐經大難。羅公海崙再倡義旅。沬血誓天。奮不顧身。以趨君父之急。雖因亂定而罷。和成而退。功烈不克遂於當世。而痛天壤之易處。甘沒世而自靖。凜凜有蹈海之風。其所秉執。可㬥於天下後世。詎不偉哉。公字應淑號松島。系出羅州。以麗朝監門衛上將軍諱富爲鼻祖。本朝有諱璡除戶曹判書。抗義不仕。高祖曰逸孫。己卯名贒。曾祖曰昶翰林。祖士愔主簿。考德謙贈參議。參議公與忠烈公德憲。寔爲從父兄弟。妣豐山洪氏。參奉漢信女。公狀貌奇偉。文藝夙就。受業于睡隱姜公沆。深見器許。十五遭丁酉倭冦。公將兩親隱德龍山中。參議公患瘧思牛肝。公夜行歸舊第。牽犢而來。遇賊被執。公責曰吾爲親病。冒險至此。誰無父母。毋我害也。賊感歎曰眞孝子也。扶而送之。亂已而還。臧獲盡散。公躬樵採。負米以供甘毳。不弛勞。旣長自奮。與從弟南磵公海鳳。講習不怠。用繩先業。及壯猶未有室。或勸之醮則曰孝衰於妻子。吾不願娶。金公璇慕其義。以其弟參奉璵之女妻之。至戊申高公敬履辨牛溪,松江之誣被禁錮。公與朴公濬哲治章鳴冤。扶正斥邪之義炳如也。時値昬朝。彝倫斁絶。絶意進取。而爲親故猶隨衆公車。嘗一發解過省。爲時輩所忌。見削學籍。公不少介懷。丙辰參議公疾革。公夜不解帶。竭誠刀圭。祈以身代。遭憂哀毁踰制。三年廬墓。淚濕草枯。拜哭處冬雪先消。服闋大夫人年已九十。左右護養。或以事出。雖祁寒暑雨。復不違時。繞膝怡愉。常作嬰兒戲。甲子中進士。以親意設宴。負母夫人斑衣而舞。觀者感悅。尋聞适賊叛。與邑中章甫。慷慨發檄。聚軍糧擧義誓衆。事載甲子慕義錄。庚午丁內艱。執禮如前喪。制除泣言今而後。吾誰爲養。所祈祝者吾王無疾。斯又移孝爲忠之一端也。丙子淸人入冦。大駕播遷。公又謀興義師。牧使吳公竣以公爲義兵將。從民望也。公以子儆爲軍官。設廳于客館。日夜治軍。傳檄一道。烈士雲集。丁丑正月。行到公州。義兵都元帥畸翁鄭公留陣以待。公與論戎事。鄭公爲言使義將皆如君。賊不足平也。未幾媾成。公北向慟哭曰不如無生。秋有人書宮門曰三綱已絶國隨亡。公議千秋愧汗靑。公見而撫腕曰。惜乎。此人不能豫陳謀猷。致今日之事。盖其意以當時謀國者之不能備陰雨爲深恨。自是絶口不言時事。庚辰拜孝陵參奉。引義不就。惟敎誨子孫。不少饒假。故諸房幷有造。次第升庠。常戒以爲善曰爲我子孫者。體此永念。無得罪於皇天鬼神。仁廟上賓。公朝夕哭臨。衣麁布麻帶。處之如親喪焉。及卜珠邱。率二子赴哭廞衛。公時久患瘧。家人諫行。不聽曰父子千里赴哭。臣道盡矣。我心安矣。常以親在時。貧不具輕煖。沒齒痛恨。到老家溫。猶不衣帛。遺戒斂勿用繒紬。日必早起。整冠襟欽欽如也。遇鄕人以誠。勉後生以學問孝悌。雅言人道以孝爲先。移君爲忠。忠孝可須臾離哉。幷時論篤行者。輒以公爲首焉。己亥十月二十二日卒。去其生萬曆癸未七月十四日。爲七十七歲。葬于州西之長興洞子坐。與金夫人同域異墳。從先兆也。公有四男。僖,儆,僶幷進士,僐。側出男保,僅。僖子天老,天鼎,天衡幷進士,天心生員。僐子天樞生員。天樞子以桂生員。曾孫以下俱不載。噫。公以下土布衣。一朝倉卒。徒以氣義相感激。惟知有君父。而不知有其身。赴白刃如平地。是所謂先立其大者歟。公有深愛於父母。知幾遠害。兵燹搶攘。而滫瀡不闕。至使狡酋感服。且六年居廬。毁瘠幾滅性。仲尼云孝者所以事君。知孝者俟忠而成之。答君親之恩。明君臣之義。公庶幾無愧也。錦城有西羅東羅之目。西羅卽公之後孫也。戊申之變。東羅或從逆。而西羅洞辨逆順之分。不有公忠孝風烈。垂裕後昆。亦何能乃爾哉。公七世孫錫冕抱公遺事。踵門而謁文。余老屛鉛槧。而竊悲公名之湮沒無稱。力疾而爲之銘。銘曰。
抑抑羅宗。篤生忠烈。公又繩武。是叔是姪。爲國倡義。再揚風節。功未及遂。乾坤毁裂。無地可灑。滿腔熱血。將身逃隱。遵晦蓬蓽。本之則存。百行是源。敎誨式似。詩禮昌門。門闌告榮。三子七孫。天道報施。載永德聲。課忠責孝。于後遺贏。有紀南國。疇與爭名。嵂嵂興岳。若斧其塋。琢辭載實。用納玄扃。勖哉髦士。繄公是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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